묵향 19권 14화 – 어울리지 않는 동행

어울리지 않는 동행

요즘 매화검(梅花劍) 옥대진(玉大振)은 심사가 매우 불편한 상태였다. 그의 바로 곁에는 무림 최고의 재녀라는 4봉(四鳳) 중의 한 명이 착 달라붙어 아양을 떨고 있음에도 전혀 그의 심사는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가 더욱 그의 심사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고 봐야 했다.

화산 장문인인 현천검제의 비리를 폭로하며 자신의 명성을 떨치고자 했건만 그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일은 더욱 꼬여 들어 연인인 능비화(花) 의 배경인 화산파만 박살이 나고 말았다.

야심이 큰 옥대진이 능비화를 꼬신 것은 그녀가 강호 후기지수들 중 최고라는 4봉의 일원이라는 점 외에도 화산파라는 든든한 배경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화산파가 사라진 지금, 옥대진에게 있어서 능비화가 지닌 가치는 날로 하락하고 있는 중이었다. 만약 그녀가 4봉만 아니었어도 화산파가 무너진 그 순간 옥 대진은 능비화를 차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까지 4봉이라는 희소성을 지니고 있었다.

‘젠장! 4봉만 아니었어도…….”

하지만 그런 옥대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능비화는 옥대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사문도 없어진 지금 그녀에게 남은 것 은 옥대진뿐이었으니 말이다.

“자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는 겐가?”

탁자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준수한 청년은 파양검(波楊劍) 황보룡(皇甫龍)이었다. 말을 걸었는데도 대꾸가 없어서 가만히 상대를 관찰해 보자 뭔가 딴 생각을 하 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배경도 옥대진에 못지않은 그였기에 짜증을 감추지 못하고 인상을 팍 일그러트렸다.

지금 객잔에는 옥대진을 비롯하여 7룡4봉에 속한 젊은 후기지수 다섯 명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그들은 모두 무림맹의 뜻을 좇아 양양성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상대는 금나라의 잡졸들이 아닌가. 그곳에서 한바탕 휘저어 주면 자신들의 명성이 팍팍 올라갈 것이다. 더욱이 잡졸들이 상대인 만큼 위험 부담도 적을 게 분명했다. 그런 만큼 이들은 한가로이 유람을 떠나는 기분으로 양양성을 향하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화들짝 정신을 차린 옥대진이 사과했다.

“으응? 아, 이런 내 정신 좀 보게. 죄송하게 되었소이다. 몇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서…….”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는 듯 황보룡이 말했다.

“걱정 말게. 금의 세력이 아무리 강성하다고 하지만, 그들은 무공이라고는 익히지 않은 잡졸들이 아닌가.” 황보룡의 말에 옥대진이 퉁명스럽게 반문했다.

“누가 금나라 잡졸들이 두렵다고 했소?”

이때, 상대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던지 황보룡은 능비화를 향해 정중하게 포권하며 말했다.

“이 황보룡의 생각이 얕았소이다. 능비화 소저의 처지를 생각하지 못한 점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오.”

그런 다음 그는 옥대진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곳에는 마교의 세력도 있다고 하던데, 그것 때문에 걱정인 게로군.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번 일이 끝난 후에 그놈들에게 죗값을 물어도 늦지 않을 걸세.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흘러도 늦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누가 그따위 것 걱정이나 한데? 이런 젠장! 처음부터 초미를 물었어야 했어. 초씨세가의 힘이 조금 미약하다고 하지만, 그 계집의 미모는 4봉 중에서 으뜸이지 않 은가. 이런 덜떨어진 계집보다는 초미가 백배 나은데 말씀이야. 쩝, 바로 앞에 앉아서 얌전을 빼고 있는 당소진(唐素珍)도 나쁘지는 않군. 하지만 저 계집하고 결혼 한다면 당가(唐家)에 데릴사위로 들어가야 한다는 게 영 마음에 안 든단 말씀이야.’

옥대진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능비화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쑥스럽게…, 뭘 그렇게 바라보시나요?”

위기에 몰린 옥대진은 가증스럽게도 짐짓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느끼한 말로 응답했다.

“아니오. 너무나도 그대가 아름다워서 내가 잠시 실례를 했소.”

그의 말이 너무나도 뻔뻔스러웠는지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헛기침을 크게 터뜨리며 말했다.

“험험, 에잇 젠장. 이거 짝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는가.”

바로 이때, 객잔 문이 활짝 열리면서 엄청난 기세를 뿜는 무인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객잔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주위를 살핀 다음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강인해 보이는 청년이 그들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섰다. 허리에 매인 고색창연한 보검 하나만 봐도 그가 보통 신분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옥대진 등은 벌떡 일어서서 그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상대는 화려한 배경을 지닌 그들이라도 무시 못 할 신분을 지닌 사람이 었다. 그가 바로 황룡문의 문주 황룡무제(黃龍武帝) 혁련운(赫蓮運)이었으니까.

“노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니, 그래 자네들은 누구인고?”

황룡무제의 물음에 그들은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황룡무제는 원래 그들의 이름만 듣고 지나칠 생각이었는데, 이들이 현 세대의 7룡4봉이라는 점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과거 자신도 7룡4봉의 일원으로 뽑혀 그들과 폭넓은 교류를 가졌었지 않았든가. 그리고 그 덕분에 지금 자신이 이 자리에 서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황룡무제는 따뜻한 말로 후배들을 대하며 그들과 동석했다.

“자네들의 준걸한 모습을 보니 노부의 마음이 흡족하구먼. 그래, 자네들도 양양성으로 가는 길이었던가?”

“예, 선배님. 미약한 힘이지만 저희들도 한팔 거들고자 나섰습니다.”

황룡무제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헛, 장한 일이로다. 자네들 같은 후기지수들이 있는 한 무림의 앞날은 밝게 빛날 것이야.”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허허, 참. 자네들 아직 식사 전이라면 노부와 함께 하지 않겠는가?”

그 말이 끝나자마자 옥대진을 비롯한 후기지수들은 일제히 포권하며 소리쳤다.

“영광입니다, 황룡무제 대협!”

말이 좋아 3황5제지, 평생 가도 그들 중의 단 한 명도 만나기 힘든 게 바로 이 넓고도 넓은 강호다. 그런데 오늘 강호 최강고수 중 한 명인 황룡무제를 만났으니, 이 런 영광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7룡4봉에 들어 있는 후기지수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강호 노고수를 극진히 모시고 있었다.

모처럼 황룡무제가 강호 후배들을 앞에 두고 목에 힘주고 있을 때였다. 또다시 객잔 문이 활짝 열리며 아무도 청하지 않은 불청객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자 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화통하게 술잔을 들이켜고 있던 옥대진이 푸악하고 술을 내뿜었다. 그가 뿜어낸 술방울은 앞에 앉아 있던 황보룡이 고스란히 덮어쓰고야 말 았다.

황보룡은 화를 버럭 내며 외쳤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지만 옥대진에게 황보룡이 하는 말은 단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은 화등잔 만하게 커져서 밖에서 들어온 인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옥대진의 상태를 가 장민감하게 느낀 것은 당연히 그 옆에 앉아있던 능비화였다. 그녀의 시선이 옥대진을 따라 움직인 순간, 그녀는 너무나도 놀라 젓가락을 놓치고 말았다. 젓가락이 땅바닥을 구르고 있을 때, 황룡무제가 무슨 일인가 하여 쓰윽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는 봤다. 무림에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자의 얼굴 을…

“끄어억!”

황룡무제의 입속에서 괴상한 음성이 튀어나올 무렵, 상대도 혁련운을 알아봤는지 빙글거리며 다가오는 중이었다.

“여어, 이게 누구신가. 워낙 오래전이라 이름은 잊어먹었지만, 그 얼굴은 잊을 수가 없지. 아주 건강한 모양이군.”

스스럼없이 다가와서 황룡무제의 등을 툭툭 치는 사람. 그 모양을 보고 동석하고 있던 후기지수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대체 황룡무제가 누구인가. 화경에 오 른 극강의 고수이자, 황룡문의 문주가 아닌가. 그런 그의 등을 스스럼없이 때릴 수 있는 인물이 존재할 줄이야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황룡무제는 얼빠진 듯 미소를 지으며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바로 무림 역사상 두 번째로 현경을 개척했다는 마교 교주였다. 아무리 그라도 몸을 사 릴 수밖에 없었다.

“노, 노야(老也)께서도 건강하신 것 같아 기쁘군요.”

묵향은 옆 탁자에서 의자를 끌어당겨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자네도 양양성 쪽으로 가는 모양이지?”

“예.”

묵향은 넉살 좋게도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음식들을 스스럼없이 집어 먹으며 말했다.

“잘됐군. 나도 그쪽으로 가는 길인데 함께 가면 딱이겠군.”

초류빈을 돌려보낸 후, 형님과 함께 가고자 개봉에 갔다가 허탕을 친 묵향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화경급의 고수를 만났으니, 이게 하늘의 뜻이 아닌가. 웬만한 일 은 모두 다 이 녀석에게 시켜 버리면 아주 편리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묵향의 생각이야 어떻든 간에 그 말을 들은 황룡무제의 얼굴은 똥색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그와 함께 가기 싫다. 하지만 딱히 거절할 명분이 없 는 것이다. 무림맹이 마교와 협정을 맺기 전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전장에서 함께 싸워야 하는 아군이 된 것이다.

황룡무제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옥대진과 능비화는 지금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이자가 현천검제하고도 친하게 밀담을 주고받더니, 이제는 황룡무제까지? 과연 이자가 마교 교주가 맞기나 맞는 것인가? 어떻게 정파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3황5제의 둘과 이렇듯 스스럼없이 지내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들로서는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다른 후기지수들은 저마다 묵향에게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황룡무제가 저렇듯 공손히 대하는 것을 보면 무림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명 숙일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하지만 옥대진과 능비화는 저마다의 생각에 바쁜지라 묵향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묵향에게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이쪽은 공동파에서 온 옥대진이라고 하고, 저쪽은 화산파에서 온 능비화입니다.”

자신들이 묵향에게 소개되자 능비화는 찔끔하는 듯 옥대진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화산파의 능비화라고?”

묵향은 그때부터 둘의 관계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분위기로 보아하니 꽤나 깊은 사이인 듯한데, 왜 자신을 경계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이때, 묵향의 뇌리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맞다. 전에 아르티어스와 여행했을 때, 패력검제 녀석하고 같이 다니던 아이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충분히 지금까지 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누군지 저 둘은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저쪽에서 모두들 자기소개를 하는데 묵향이라고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렇기에 묵향은 싱긋 미소 지으며 말해 줬다.

“본좌는 천마신교를 책임지고 있는 묵향이라고 한다네.”

그 순간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눈치다. 개중에는 자신의 귓구멍을 후벼 파는 녀석도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들은 자신이 들은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 감히 마교 놈이 합석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한 젊은이가 벌떡 일어서며 우렁차게 호령했다. 자신을 팽대성(彭大成)이라고 소개한 우람한 덩치를 지닌 젊은이였다. 팽대성은 건곤신장(乾坤 神掌)으로 대변되는 권법의 명문 하북팽가(河北彭家)의 후계자였다. 하북팽가는 권법으로도 유명했지만, 그 불같이 급한 성질로도 유명했다.

“감히 마교 놈이 이 자리에 합석하다니 네놈의 간덩이가…….”

하지만 팽대성의 말은 도중에 막혀 버렸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앉힌 것이다. 그러면서 노기에 불타오르는 그의 뇌리에 전음성이 울려 퍼졌 다.

<이보게 팽소협, 성급한 행동을 자제하게. 방금 저자가 마교를 책임진다고 했지 않은가? 그렇다면.

‘천마신교를 책임진다’ 라면 바로 교주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저자가 암흑마제라는 말인가?

설마 하는 기색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묵향은 아주 재미있다는 듯 씩 미소 지었다. 그런 다음 결정타를 날려 줬다.

“자네들도 들어 봤는지 모르겠지만, 정파의 쓰레기들은 본좌를 암흑마제라고 부르고 있지.”

그런 다음 묵향은 방금 자신에게 따지고 들었던 팽대성에게 미소 띤 얼굴로 이죽거렸다. 물론, 그 말을 듣는 팽대성의 입장에서는 그 얼굴이 아마도 악귀의 모습처 럼 보였을 테지만.

“본좌도 정파 놈들하고 여행하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것도 네 녀석 같은 애송이라면 더욱 그렇지. 네놈들을 보자마자 껍질을 홀랑 벗겨 놓지 않은 것도 다 그 놈의 무림맹주하고 주고받은 협정서 덕분이라는 것을 명심하라구. 알겠어?”

그 말을 들은 젊은이들은 모두 얼굴색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하지만 황룡무제는 묵향을 향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지금까지 묵향을 두 번이나 만나고도 살아남아 있는 그였다. 피도 눈물도 없다는 암흑마제의 탈을 쓰고 있지만, 사실 그의 마음 씀씀이가 대협의 풍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그렇지 않다면 커다란 고목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자신과 비무 까지 해 주면서 가르침을 줬을 리가 없었다.

“허허헛, 너무 아이들을 겁주지 마십시오. 협정서가 유효한 한은 동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습니까? 자, 한잔 드시죠.”

“그러지.”

“과거 크나큰 은혜를 주셨는데, 그 사례도 못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으셔서 혹시 큰일이라도 당하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뵈니 과거와 하나도 변하신 게 없으시군요.”

무림명숙이라는 황룡무제가 이 정도까지 저자세로 나오는데 묵향의 마음이 흡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클클, 본좌야 언제나 그렇지, 뭐. 자네도 한잔 들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후기지수들은 아연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마교 교주와 황룡문 문주가 저렇듯 가까운 사이라 니. 그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후기지수들은 묵향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황룡무제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황룡무제 대협, 저…, 천마신교의 교주님과 함께 가시는 자리에 저희들 같은 무림말학들이 함께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희들은 먼저 출발했 으면 합니다.”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게.”

황룡무제가 이끌고 온 황룡문의 무사 수는 1백여 명에 이른다. 아무래도 이동할 때는 수가 많은 것보다는 적은 것이 다소 유리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황룡 무제는 그들의 부탁을 허락했다. 하지만 옆에서 듣고 있는 묵향에게는 그게 그런 뜻으로 들리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호오, 본좌하고 함께 가는 게 영~ 껄끄러운 모양이군. 천마신교라는 단체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나?”

그 말에 젊은이들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그, 그건 결코 아닙니다. 저희들은 그냥 조금이라도 빨리 달려가기 위해서…….”

“아아, 그건 걱정 마. 안 그래도 그곳에는 본좌의 수하들이 먼저 가서 열심히 싸우고 있을 테니 말이야. 자네들은 천천히 가도 괜찮을 거야. 사실, 괜히 피 튀기게 싸워봐야 뭐 하나? 산천 구경이나 하면서 천천히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지. 안 그런가?”

마지막에 가서 황룡무제의 동의를 구하는 묵향이었다. 황룡무제라고 그 말을 정면으로 반박할 수는 없었다. 사실 정사를 불문하고 세력이나 무공만으로 무림명숙 의 순서를 잡으라고 한다면 그 첫손에 꼽힐 인물이 마교 교주가 아니던가. 예전처럼 서로 원수지간일 때는 얘기가 달랐겠지만, 지금은 금이라는 적을 앞에 두고 서

로 협력해야 하는 처지다.

“노야의 말씀이 옳으십니다. 사실, 아무리 서둘러 봐야 며칠 상관이 아니겠습니까?”

“하하핫, 본좌의 말이 바로 그 말이야. 자,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고 아침이나 들지?”

말투는 호탕하면서도 부드러운 듯했지만, 그의 눈초리는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만약 자신의 말을 안 들으면 곧바로 곤죽으로 만들어 놓겠다는 의지가 담뿍 배어 있었던 것이다.

후기지수들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묵향은 희희낙락하며 중얼거렸다.

“과연 명가의 제자들답게 잘 먹어서 그런지 기골이 장대하구먼. 부려먹기 딱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