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권 15화 – 서서히 다가오는 마의 손길

서서히 다가오는 마의 손길

“도대체가 마음에 안 들어!”

신경질적인 마화의 말에 시큰둥한 반응이 왔다.

“뭐가?”

“넌 왜 그렇게 불평불만이 많아?”

별일 아니라는 듯한 임충의 말에 신경질이 돋은 마화가 울컥하는 기분에 따지기 시작했다.

“그럼 불평 안 하게 생겼어? 지금 하는 꼴을 보라고…………. 몽고 놈들이 도와주지 않아도 찬황흑풍단의 힘만으로도 몽고 놈들 9만 정도 죽이는 건 식 은 죽 먹기야. 그런데 왜 대장군은 몽고 놈들하고 손잡아서 일을 처리한다고 이렇게 시간을 끄는 거야.”

“그건 다 단장한테 생각이 있어서겠지.”

“거기에 저건 또 뭐야.”

임충은 마화가 가리킨 곳을 힐끗 쳐다본 다음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뭐긴 뭐야, 몽고 계집들이지.”

“저런 것들은 뭐 하려고 잡아들이는 거야. 매일매일 끌려 들어오는 저 처참한 계집들 모습만 봐도 먹은 게 올라오려고 한다구. 아예 본때를 보이고 싶으면 몽땅 다 죽여서 들판에 던져 놓든지. 그것도 아니고 질질 끌고 오면서…………. 이 부근에 정찰 나가면 길가에 지쳐서 쓰러져 죽은 애들의 시체가 한둘이 아니라구. 도대체 뭣 때문에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거지?”

“너무 신경 쓰지마. 관지 대장의 말로는 조만간 결판이 날 거라고 그러던데………

“하지만 결판이 난다고, 철진천의 목을 벤다고 끝날 것 같지 않아.”

“왜? 적의 우두머리가 죽었는데, 왜 돌아가지 않겠어.”

“우두머리만 죽일 작정이었으면 흑풍단 내에서 고수 열 명만 뽑아서 암살하면 된다구. 그게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 우리 대장…, 참내 국광이라고? 흥! 웃겨서…….”

“너 오늘 왜 그러냐? 신경이 보통 날카로운 게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대장 이름은 왜 들먹여.”

“그냥 대장, 대장하다가 얼마 전에 이름을 물었더니 국광이라니까 웃겨서 그런다. 흥! 뭐가 국광이야. 그런 이름도 있어? 그런 멍청하고 무공만 강한 나으리를 앞세워 너 같은 바보들 열 명 정도만 보내면 끝날 걸 가지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학살할 필요가 있냐고.”

‘단단히 성질이 받친 모양이군. 오늘이 그날인가. 계집들은 그날이 되면 성질이 더러워진다고 누가 그러던데………”

“거기다 공지, 그 파렴치한 녀석은 허구한 날 잡아 온 계집들 중에서 그래도 얼굴이 반반한 애들 골라 가며 계집질을 해 대는데, 수하들이 뭐라고 생 각하겠어. 참내 얼굴 뜨거워서… 겨우 몽고 녀석이 쏘는 화살도 못 피해서 어깨에 구멍이 난 주제에 낯짝이 두꺼워도 유분수지… 흥!” 드디어 이성을 상실한 마화가 상관 욕까지 해 대자 임충은 얼굴색이 핼쑥해졌다. 국광이야 성질이 좋은 것을 알기에 혹시나 이런 욕설 듣는다고 해 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위인인 것을 알지만 공지 천인대장의 귀에 욕설이 들어갔다가는 세상 종친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너… 오늘 말조심 해야겠다. 안 되겠다, 이리 와.”

“왜 그래?”

“나하고 같이 순찰이라도 돌자구. 말을 타고 달리면 기분이 풀릴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퍽!

임충은 짐짓 엄청나게 고통스럽다는 듯 배를 주무르며 우는 소리를 했다.

“윽! 빌어먹을, 손은 매워가지고……………. 아이고, 나 죽는다.”

“뭘 엄살떨고 있어.”

“이봐, 그러지 말고 저리 가자. 응? 여기는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이라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내 입으로 내가 말하는데 뭔 참견이야.”

“제발 나 좀 살려 주라. 정 그렇게 눈 밖에 나고 싶으면 너 혼자 나라구. 나까지 물귀신처럼 끌고 들어가려고 하지 말고…………….”

“이게 내뱉으면 다 말인 줄 알아?” 퍽!

임충은 가슴팍을 주무르면서 투덜거렸다.

“아구구구…, 오늘 재수 더럽….”

‘이년하고 싸워 봐야 나만 개망신이고 우선은 이 위기를 잘 피해 나가는 게 최선의 길이지………

“…아니지. 마화야, 그러지 말고 나한테 술이 약간 있는데, 마유주 말고…………. 혼자 마시려고 꽁쳐 놓은 것이 조금 있으니까 그거 마시면서 얘기하자,

“응?”

“술?”

“그럼, 아주 향기로운 중원 토종 술이지. 그리 가자구. 여기서 떠들어 봐야 답도 안 나오니까 이럴 게 아니라 한잔 쭉 하면서 얘기하면 말도 술술 잘 나오고 좋잖아.”

“좋아, 가지. 가자구.”

‘끙, 무공이 비슷하니 간단하게 제압하는 건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치고받자니 나만 못된 놈 되고……………. 아고고, 애꿎은 귀한 술만 작살나는군………….’ 마화와 임충이 이름하여 낮술(?)을 마시고 있을 때 국광은 10여 명의 수하들을 거느리고 순찰을 돌고 있었다. 몽고군은 처음에는 꽤 당당한 진용을 자랑했지만 뛰어난 일부 장수들과 2만의 병사가 사라지고 거기에 자신의 가족들이 어찌 되었는지 소식도 불투명한 지금에 이르러 기세가 많이 꺾였 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순찰을 얼마나 돌았을까…………. 국광은 미세한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적인가? 아군인가? 대단한 고수다. 지금까지 만나지 못한…………….

국광이 아무렇지도 않게 주위를 한번 쓱 둘러보며 수하들의 얼굴을 살폈지만 숨은 자의 기척을 눈치 챈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군. 아군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쪽에 기척을 알리는 것이 도리…………. 아직까지 조용하다는 것은? 적이 분명하겠군. 하지만 나로서도 숨어 있는 대략적인 위치만 알 수 있을 뿐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니, 놀라운 녀석이다.’

국광은 상대의 기습에 대비하여 살며시 옆에 있는 나뭇잎 한 장을 따서는 냄새를 맡아 보는 척했다. 그러면서 일부러 뒤따르는 수하에게 말을 걸었 다.

“이게 무슨 나무냐?”

“잘 모르겠습니다. 나무의 이름은 알아서 뭐 하시게요?”

“모르면 됐다.”

국광은 얼렁뚱땅 답을 흘리며 상대의 위치를 잡아내기 위해 공력을 집중했다. 천라지청술(千羅知聽術)! 황궁무고에서 익힌 기술로서 미세한 소리로 상대의 위치를 잡아낼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이다. 국광은 혹 잠결에 이상하게도 적이 어디에 있는지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잠결이 아니라 그 런지 적의 위치를 알기가 힘들어 황궁무고에서 배운 술법을 쓰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국광 일행은 말을 몰아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거의 10장(약 30 미터) 정도 나갔을까…………. 어느 순간 미세한 음향이 국광의 천라지청술에 잡히면서 그 위치가 파악되었다.

“갈!”

국광은 최대한, 하지만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만 공력을 끌어올려 나뭇잎을 쏘아 보냈다. 그가 사용한 기술은 황궁무고에 있는 암기술의 하 나였는데, 나뭇잎이 쏘아져 들어간 위치에서는 이상하게도 더 이상 아무런 반응도 느껴지지 않았다.

‘잘못 알았나? 토끼일 수도 있지.’

갑자기 국광의 외침 소리와 함께 나뭇잎이 바위라도 부술 기세로 쏘아져 나가자 수하들이 저마다 무기를 뽑으며 주위를 경계했다. 하지만 아무런 동 정도 없자 국광의 눈치만 보며 무기를 다시 거둘 것인지 망설였다.

“내가 신경이 좀 날카로워져서 실수를 한 모양이다. 모두들 무기를 거둬라.”

“예.”

국광 일행이 멀어져 간 다음 숲 속에서 한 인영(人影)이 나타났다. 그자는 짙은 녹의를 입었는데, 정확히 심장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아니, 심장 부 분의 옷에만 구멍이 뚫려 있었고, 기이할 정도로 심장에 난 상처는 빠르게 아물어 가고 있었다. 그 괴인도 그 상처에 별로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았 다.

“과연 부교주가 확실하군. 지금까지의 정보를 종합해 보면 기억을 상실해 본교에서 익힌 모든 무공을 잊은 게 분명한데, 적엽상인(迪葉傷人)을 시전 하다니.. 적엽상인은 한낱 나뭇잎으로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무학인 만큼 내공의 조화로운 통제가 필요한데, 역시 마교 사상 최강의 고수라 불릴 만하군. 심장에 칼을 맞고 전신 혈맥까지 파열된 상황에서 간신히 도망쳤는데 벌써 몸을 완전히 회복했다는 말인가?”

짙은 녹의를 입은 괴인은 점차 속력을 내기 시작하더니 엄청난 속력으로 경공을 전개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한 곳에서 멈추었다. 괴 인이 그곳의 수풀을 뒤적이자 그 안에는 열 마리의 전서구(傳書鳩가 들어 있는 큼지막한 새장이 있었다. 그는 전서구를 옆에 두고 주저앉아 작은 붓 과 종이를 꺼내어 깨알만 한 글씨를 적어 내려갔다.

묵향 부교주가 살아 있음이 확실함. 현재 흑풍단의 백인대장으로 근무 중. 묵혼검 대신 호화로운 검을 차고 있기에 부교주의 얼굴을 모른다면 추적 이 불가능함. 적엽상인의 무공으로 속하의 심장을 관통시켰는데, 그걸 기초로 추측컨대 황궁의 무학을 익힌 것 같고 본교에서 익혔던 예전의 무공은 모두 잊은 것 같음. 그 내력이나 무공으로 보아 그는 화경 정도의 경지를 회복한 것으로 추측됨. 속하의 실력으로는 묵향 부교주가 대비하지 않은 상 태에서도 10장 내로 들어설 수 없었음. 기억은 잃었지만 몸이 예전처럼 반응하는 듯함.

天(천)」

괴인은 이 글을 모두 암호로 작성했고, 똑같은 글을 한 통 더 써서 전서통에 말아 넣은 후 밀랍으로 봉인했다. 그리고는 비둘기 두 마리를 골라 전서 통을 다리에 매단 다음 하늘로 날려 보냈다. 괴인은 멀어져 가는 비둘기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부교주께 비밀리에 불려가 특명을 받았을 때도 믿지 않았는데, 진짜 묵향 부교주가 살아 있을 줄이야…………. 그는 본교가 배출한 최고의 고수……. 그 의 기억이 돌아온다면 본교에는 피 구름이 덮이겠군.”

이틀 후 비둘기 한 마리가 몽고 남부 숲에 자리 잡은 커다란 장원에 날아들었다. 그 장원은 양(楊) 대인이라 불리는, 중국에서 망명하여 몽고에서 자 리 잡은 한 상인의 저택이다. 그는 몽고에서 수확되는 방대한 양의 고급 모피나 말을 중원으로 수출하고, 대신 중원에서는 소금이나 값싼 선철로 만 든 냄비, 주방용 칼 등 잡화류와 몽고의 귀족들이 사용하는 금은 세공품 따위, 그리고 몽고인들이 즐겨 마시는 차 종류를 수입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수입하는 물품들이 중원에서는 취급도 안 할 정도의 저급품들이다 보니 막대한 이득을 올리고 있었다. 국경을 통한 무역이니만치 몽고의 여러 부족 장들이나 국경을 관장하는 관리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주어 사이를 돈독하게 유지하고 있는 변경(邊境)의 실력자이기도 했다.

변경에서 야만족들과 무역을 하다 보니 장원 안에는 몽고 옷을 입은 무사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중 몽고 옷을 입기는 했지만 얼굴 생김새로 보아 중원인이 확실한, 검은 수염을 짙게 기른 중년의 남자가 새로 비둘기장으로 날아든 전서구를 발견하고는 조심스럽게 비둘기를 잡아 발목에서 전서통 을 풀었다. 수수하게 생긴 전서통이 밀랍으로 봉인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이 볼 성질의 물건이 아님을 직감하고는 재빨리 양 대인의 집무실로 뛰 어갔다.

“양 대인 나으리, 전서가 도착했습니다.”

“음…….”

양 대인은 먼저 전서통의 봉인을 살펴봤다. 전서의 봉인은 그렇게 복잡한 문양이 있는 것도, 그렇다고 화려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이 양 대인의 마음 에 걸렸다. 대부분의 상행위에 사용되는 전서는 구태여 밀랍으로 봉인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봉인을 뜯고 전서통 안의 서신을 들여다봤다. 편 지 내용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암호로 가득했다. 하지만 정작 양 대인을 경악하게 만든 것은 종이의 뒷면에 쓰인 여섯 글자였다. 그것은 별 뜻 없이 쓴 것 같은 「父親本家入納(부친본가입납)」이라는 글자였다. 원래 1급이니 특급이니 하는 말을 쓰면 우연히 전서를 입수한 사람이 더욱 호기심을 나타 내기에, 사냥꾼이나 야생 매에게 잡혀 희생될 소지가 다분한 전서구를 이용해 통신할 때는 그럴듯한 상투어를 써서 그 등급을 나타냈다. 그는 지체 없이 무사에게 명령했다.

“장 집사를 빨리 불러라!”

“예!”

장 집사라 불리는 나이가 지긋한 사내가 헐레벌떡 달려오자 양 대인은 그 전서를 건네주었다.

“어서 오게나. 긴급한 연락이 왔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빠른 시간 내에 필히 이것을 총타에 전해야 한다. 어찌 하는 것이 좋을까?” 그러자 장 집사라고 불린 노인은 신중한 어조로 답했다.

“국경을 통해 전서구를 날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수비군이 발견하면 활을 쏘거나 매를 날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변경 지방이라 야생매도 많습죠. 직접 낙양의 분타에 보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걸려. 다른 방법은 없나?”

“다른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가장 안전한 방법은 역시 직접 전하는 것뿐입니다.”

“이건 최상층부로 보내지는 특급 전서다. 낙양에 전달하는 게 늦어지면 내 목이 위태롭단 말이다. 경공술이 뛰어난 자 다섯 명을 뽑아서 가장 좋은 말 열 필을 주어 빨리 출발시켜라. 그리고 길목에 있는 족장들과 수비대의 조장군에게도 연락해서 편의(便宜)를 봐달라고 부탁해라.” “예.”

양 대인은 뛰어 나가는 집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이런 변방에 거의 좌천되다시피 와서 본타 최상층부에 직접 보내져야 함을 뜻하는 ‘부친본가입’이 쓰인 전서를 받을 줄이야…………. 몽고에서 수집 되는 모든 정보는 이곳을 통해 낙양 분타로 가고, 그다음 낙양 분타에서 원하는 지역으로 보내진다. 그렇다면 이번 일은 몽고에서 벌어진 일을 총타 에 알리는 것인데…………. 총타의 핵심 세력이 신경을 쓸 만큼 중대한 일이 몽고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인가? 도대체 무슨 일일까? 맞아!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지금 찬황흑풍단이 철진천과 대전 중이지. 아마 그 일에 대해 총타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모양이군.’

그로부터 일주일 후, 숨 막히는 마기를 내뿜으며 탁자의 끝 부분에 앉은 30대 초반 정도의 수려하게 생긴 마인이 입을 열었다.

“놀라운 소식이 있어서 그대들을 소집했소.”

그의 피부는 은은한 자색(紫色)이 어려 있어 기괴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 점을 제외한다면 전체적인 이목구비가 반듯한, 상당한 미남이었다. 자색을

띤 괴인의 말에 넓은 탁자의 양쪽에 앉아 있는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괴인들은 은근한 마기를 뿜어낼 뿐, 침묵을 지켰다. “……”

“묵향 부교주가 살아 있소!”

그 자색을 띤 괴인의 확정적인 말에 좌중은 경악했다. 묵향 부교주가 누군가. 교주마저도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뛰어난 고수이다. 때문에 제거했었 는데…………. 하지만 북궁뇌내총관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의 얼굴은 경악과 불신에 가득 차 있었다.

“속하는 교주님의 말씀을 믿을 수 없습니다. 아마 부교주와 얼굴만 비슷한 다른 인물이 아닐까요? 아무리 환수(幻壽)가 부교주를 탈출시켰다고 해도 그건 무사생환은 불가능한 일…………. 환수의 시체는 발견되었고 부교주의 시체는 찾지 못했지만, 그때 부교주는 단전과 심장이 파열된 상황에서 무리 하게 역혈수라마공(逆血修羅魔功)을 써서 공력을 끌어올렸습니다. 그 무공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동귀어진(同歸御盡)을 위해 최후로 극한의 공력을 짜 내는 역천(天)의 무학입니다. 결과는 전신혈맥의 파괴로 인한 즉사입니다. 설혹 살아났다 하더라도 전신혈맥과 단전이 파열되어 폐인이 되었을 텐 데, 어찌하여………..”

북궁뇌 내관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혁무상 장로가 입을 열었다.

“그건 내가 대답함세. 북궁뇌 내총관의 말에도 일리는 있소이다. 허나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를 종합해 봤을 때 그가 부교주라는 것은 확실하오. 무 영문에서 묵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처사였소. 그는 누가 뭐래도 과거 본교 최강의 고수였으니, 그의 행방불명에 대해 관심 을 가졌을 것이오. 하지만 황궁에서도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지다니…..

모두들 혁무상의 말에 관심을 기울이며 듣고 있다가 황궁이라는 말이 나오자 큰 흥미를 나타냈다. 황궁은 무림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피차간의 관례였기 때문이다.

“황궁이라니요?”

“금의위 말이외다. 최근에 금의위에서 비밀리에 묵향에 대한 정보를 입수해 갔소. 하지만 그 사실은 삼비대에게 포착되었소. 그래서 본인은 왜 모반 에나 관심을 갖는 금의위에서 무림에, 그것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묵향 부교주에 대해 신경 쓰는지 의문이 일어 정보를 역으로 추적했소. 그 결과 찬 황흑풍단의 수장인(首長) 옥영진 대장군의 수하 중에 과거의 기억을 상실한 국광이라는 초고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소.”

“국광이라구요?”

밑도 끝도 없는 혁무상 장로의 말을 듣던 좌중은 사실 여부를 확인이라도 하듯 일제히 교주를 쳐다봤다. 그러자 교주는 혁무상 장로의 말을 인정했 다.

“그렇소. 혁 장로가 알아본 바로는 국화를 광적으로 좋아한다고 해서 국광이라 부른다더군. 지금 현재 그는 몽고 원정에 참전 중이기에 본좌가 장인 걸 부교주에게 부탁해서 묵향의 얼굴을 알고 있는 네 명의 뛰어난 고수를 급파했소. 그중 진궁(眞)이 직접 국광을 확인했는데 기억 상실로 인해 본 교에서 배운 무학은 모두 잊었지만 황궁무학을 익혔는지 거의 화경(化境)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더군. 그대들도 알 거요. 아무나 화경의 경지 에 오를 수는 없소. 화경이라면 거의 중원 안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실력이오. 얼굴 모습은 흉내 낼 수 있으나 그의 무공 수준까지 흉내 낸 다는 것은 불가능하오. 그래서 본좌가 내린 결론은, 얼굴이 비슷하면서도 화경이라면 묵향뿐이오.”

능비계 부교주는 묵향에게 강기 세례를 받았던 과거의 공포스럽던 기억이 떠올라 몸을 떨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의 기억이 되살아나기 전에 없애야 합니다. 화경이라면 저희들에게도 승산이 있지만 현경이라면 어렵습니다. 그것도 부교주의 경우 자 신의 입으로도 말했지만 현경의 끝에 다다라 생사경을 바라본다고 했을 정도니……………”

묵향을 암습했을 때 묵향의 장력을 정통으로 맞은 사람은 두 명뿐이었다. 둘 다 화경에 오른 부교주들이었다. 장인걸의 경우 귀혼강신대법(歸魂따□ 身大法)을 익혔기에 상관없었지만, 능비계는 그 한 방으로 호신강기가 파괴되었던 것이다. 다행이 흑미륵마공 덕분에 혈도를 상하지는 않았지만 그 퍼런 강기 덩어리가 몰려오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그였다.

“기억을 잃었다손 쳐도 화경임이 확실하다면 그를 제거하는 데 본교의 5대 세력을 총동원하는 것이 후환이 없을 것입니다.”

“클클클..

옆에서 듣고 있던 장인걸 부교주가 웃음을 터트리자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 능비계 부교주가 발끈했다.

“왜 웃으시오? 본인의 말이 틀렸다는 거요? 만약 잘못해서 놓친다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거요?”

“아니외다. 그대의 말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오. 우리들은 지금 아주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잊고 있소이다.”

“중요한 사실?”

“그렇소. 묵향 부교주는 모두들 알다시피 동자공을 통해 눈부신 성취를 이룬 사람이오. 그가 어떤 수행을 해서 현경에 올랐던 그건 문제가 되지 않 소이다. 중요한 것은 그 내공의 기반이 동자공이라는 사실이오. 그렇다면………….”

장인걸 부교주의 말에 교주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클클클, 본좌도 깜빡 잊고 있었군. 맞아, 그 친구 여색을 멀리했었지. 하지만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자네가 뒷조사를 해 보게나. 동침한 여자가 있는지………….”

혁무상 장로가 공손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장인걸 부교주는 자신 있게 말했다.

“동자공을 연성한 것이 확실하다면 뒤처리는 간단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간단하지는 않아.”

교주의 회의적인 말에 의아해하며 장인걸 부교주가 반문했다.

“예?”

“자네들은 지금 묵향이 어디에 몸담고 있는지 잊었나?”

“…….”

“황제 직속인 찬황흑풍단의 백인대장을 암살하는 건 어떻게 둘러 대도 황실에 대한 모반이야. 내 말은 그가 흑풍단에 몸담고 있는 한은 해치우기 어 렵다는 것일세.”

교주의 조심스런 말에 혁무상 장로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헤헤헤, 그걸 피해 갈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뭔가?”

“지금 간신 엄승(嚴承)은 옥영진 대장군을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습니다. 자신을 따돌린 다음 요, 몽고와 전쟁을 일으킨 인물들 중의 한 명이니 까요. 거기다 자신이 황실을 요리하자면 막강한 세력을 가졌으면서도 우직하고 융통성 없는 충신인 그가 눈엣가시겠죠. 엄승을 설득해서 옥영진을 없애는 겁니다.”

“옥영진을? 왜?”

“옥영진을 없앤다면 옥영진의 수족이라고 볼 수 있는 백인대장급 이상의 장수들도 모두 처단될 것입니다.”

“하지만 황실에서는 그들을 없앨 정도의 고수가 없으니 그 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어. 옥영진이 그냥 자결해 준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아니죠. 그러니까 옥영진과 그 수족들을 없앨 때 본교가 도와준다고 넌지시 떠 보는 겁니다. 국광이란 고수를 이쪽에서 처치해 주고 나머지를 죽이 는 데도 최대한 협력하겠다고 말이죠. 꽤 향기로운 미끼니까 대어(大魚)의 관심을 끌지 않을까요?”

교주는 혁무상 장로의 말에 수긍을 하면서도 다소 미심쩍은 어조로 말했다.

“흠…, 묘책이군. 묵향도 죽이고 황실에 연줄도 만들고…………. 하지만 너무 저쪽에 일방적으로 좋은 제안이라 의심하지 않을까?”

교주의 말이 일리 있다고 여긴 혁무상 장로는 곧바로 추가 방책을 제시했다.

“예,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렇다면 돈이나 토지 등을 상대가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량 요구하고, 나중에 정권을 잡고 나면 본교가 중원을 장악 하는 데 일조해 주기를 원한다고 제안하면 어떨까요?”

“그게 좋겠군. 묵향을 없애는 방법은 혁무상 장로가 삼비대를 동원해 묵향의 내력을 조사해서 확실히 동자공을 익혔는지 여부를 확인한 후 결정하 기로 하지. 혁무상 장로는 묵향의 내력 조사와 더불어 엄승과의 접촉도 시도하도록!”

“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