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권 17화 – 황홀한 정사
황홀한 정사
마지막 작전이 수행되고 난 다음 한 달이 지나자 몽고에서는 더 이상의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옥영진 대장군의 지시로 정벌군은 후퇴를 시작했다. 몽고란 나라 자체가 별로 돈이 없는 가난한 야만족들의 나라이기에 노획한 금은보화는 마차 세 대 분량 정도로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하지 만 대신 엄청난 양의 노예를 잡아서 그 손실을 만회했다.
이번 전쟁의 승리로 한동안 북방으로부터의 위험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동방의 늑대라 할 수 있는 요와의 전쟁도 상당히 유리하게 전개되 고 있었다. 아마 조만간에 승리를 획득할 가능성이 컸다. 벌써 다섯 개의 수도 중 두 개가 송의 영토가 되어 버렸으니까…………. 그러니 이번의 대규모 원정만 끝나고 나면 적어도 1백 년 동안은 동북방에서 송을 위협할 만큼 거대한 세력이 재등장할 가능성은 사라지게 된다.
동방에 자리 잡은 고려의 경우 강력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타국을 침입할 정복욕이 없는 평화로운 국가라 그냥 내버려 두면 될 것이다. 그리고 왜 (倭)의 경우 무력은 강하나 통일된 집단이 아니고, 통일이 된다손 치더라도 영토는 작지만 30만에 이르는 군사력을 갖추고 길목을 지키고 있는 강력 한 고려와 일전을 치러야 하기에 위협이 될 것도 없었다.
서방(西)의 경우, 비단 판매상의 정보에 따르면 수많은 나라들이 난립해 있어 송의 막강한 힘에 도전할 정도의 배짱도 없었고, 그럴 여유도 없었 다. 그야말로 모든 주변국들의 상황이 대 송제국의 탄탄한 앞날을 보장해 주고 있었다.
옥영진 대장군이 거느린 찬황흑풍단은 당당히 개선하여 수많은 보화와 노예들을 황제께 바친 후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아직도 요와의 전쟁은 계 속 진행 중이라 크게 연회를 베풀지는 않았지만, 황제도 그의 개선을 축하해 주었기에 그로서는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간신배가 중간에 끼어든 이후 로 황제 폐하와 사이가 조금 벌어졌지만, 이번의 귀중한 승전으로 다시 가까워질 것이고 황실에서의 위치도 더욱 탄탄해질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개선 후 옥영진 대장군은 산적한 일 때문에 정신이 없는 나날을 보냈다. 황제 폐하의 논공행상이 있었으나 그건 다만 공이 큰 몇몇의 장수에게 하사 금을 내리거나 승진시키는 일일 뿐이었다. 실질적으로는 자신이 황제 폐하로부터 하사 받은 보화와 노예를 적당한 액수로 팔아 공이 있는 모든 자들 에게 은자(銀資)를 나눠 줘야 하는 거의 1만 명에 이르는 수하(下)들에 대한 논공행상을 처리해야 했다. 거기에 그동안 밀린 봉록(俸祿)도 지급해야 했고, 전쟁을 치른 만큼 새로이 무기나 말, 식량 등도 보급 받아야 했다.
옥영진 대장군이 바쁜 데다 나으리가 붙여 놓은 혹이라 볼 수 있는 옥항도 잔인했던 전쟁을 치르면서 제법 노숙해져 국광으로서는 오랜만의 평안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국광으로서는 저놈의 선머슴 같은 마화가 와서 떠들어 대지만 않는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지만, 그건 아마 단시간 에는 바랄 수 없는 꿈인 것 같았다. 그날도 마화의 등살에 귀를 막고 지내다 한시름 돌리고 있는데 고요한 달빛을 통해 금음(琴)이 들려왔다.
어쩌다 한 번씩 금음이 들리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었지만, 그 음을 듣는 순간 국광은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과 함께 무어라 할 수 없는 그리운 감정이 몰려왔다. 국광은 오랜 시간 이슬을 맞으며 금음을 듣다가 이 소리를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자신이 이 곡을 알고 있다는 것을 느 꼈다. 다음 소절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 소절이 기억나는 걸로 봐서 그 점을 확신할 수 있었다. 벌써 다섯 곡째 들려오고 있었는데 그 모든 곡이 그런 감회를 불러일으키다 보니 국광으로서는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한번 가봐야겠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신형(身形)은 어둠을 박차고 날아가기 시작했다.
국광은 금음이 울려 나오는 저택까지 가면서 금을 뜯는 사람이 누군지 더욱 의문이 솟아났다. 처음에 금음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또렷이 들리는 점으로 미루어, 멀지 않은 곳인 줄 알았지만 막상 찾아가다 보니 의외로 먼 곳이었기 때문이다.
‘상당한 고수로군. 기를 교묘하게 조정하여 심금(心琴)을 울리다니……………. 과연 누굴까?”
넓은 저택의 후원, 아담하게 꾸며 놓은 정원 중간에 자그마한 정사(靜舍)가 있었다. 그 정사의 벽면에 뚫린 둥근 창문 안으로 엷은 청의를 입은 묘령 의 소녀가 금을 뜯는 모습이 보였다. 살며시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고, 또 추억에 잠기는 듯 몽롱한 표정을 짓기도 하며 계속 금을 타고 있는 모습이 국광의 눈에 들어왔다.
먼저 국광은 정사의 창문이 정면으로 보이는 큼직한 나무 위에 자리를 잡고는 주변을 철저히 살폈다. 물론 이 저택 전체를 둘러보아 아무런 위험이 없음을 조사해 본 후에 자리 잡은 곳이다. 정원에는 국광의 능력이 미치는 한도 내에서는 그 어떤 위험도 없었다.
‘함정은 아닌 듯한데……………. 그럼 저 계집은 뭐지? 껍데기는 젊게 보이지만 아마도 알맹이는 최소한 마흔은 넘은 무림고수가 분명한데………… 그런데도 어쩌면 저렇게 청순하고도 아리따운 얼굴과 분위기를 풍길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
반 각 정도 더 지속되던 금음이 멈췄고 그녀는 잠자리에 들려는지 창문을 닫았다. 잠옷을 갈아입는 음영(陰影)이 창문에 비쳤다. 국광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자신의 기를 최대한 끌어올려 주변을 수색했다.
‘역시 잡히는 게 없군. 그렇다면……’
국광은 기척도 없이 몸을 날려 정사에 다가갔다. 국광이 다가가는 도중에도 주위에는 풀벌레 소리만이 들려올 뿐 그 어떤 기척도 없었다.
갑자기 국광이 방 안으로 들어서자 잘 준비를 하고 있던 소녀는 조금 놀란 것 같았지만 소리는 지르지 않았다. 그녀는 황급히 일어선 후 우선 자신의 옷매무새를 단정히 정돈을 한 다음 국광을 아래위로 주의 깊게 훑어보며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오셨죠?”
“우선・・・ 앉으시오.”
국광이 방 안을 둘러보니 무기는 없었다. 대신 무기 대용으로 쓸 만한 것이라면 침상 옆 탁자 위에 놓인 경옥(玉)으로 만든 한 자 정도 길이의 옥적 (玉)이 있을 뿐이다. 그 외에는 여자의 방답게 갖가지 아담한 장식물들이 걸려 있었고 한쪽에는 화장대도 보였다. 방 안에는 달콤한 향기가 은은히 배어 있었는데, 방 한쪽에 있는 작은 향로에서 조금씩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으로 보아 그 향을 소녀가 언제나 즐기는 모양이었다.
‘향기도 좋고, 살기도 없고…………. 그런데 이런 밤중에 금을 잘 타는, 미모를 갖춘 여고수(高手)라…………. 하나하나를 두면 문제가 없는데 함께 섞어 놓 으니 좀 이상하군. 아무래도 여고수라는 점이 마음에 걸려.’
소녀는 엉거주춤 앉더니 다시 물었다.
“누구신가요?”
그러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슬며시, 도둑에게서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는 듯한 몸짓으로 옥적을 들었다. 일단 옥적을 손에 잡자 약간 말투가 바 뀌었다. 약간은 초조해 보이더니 느긋해졌다고 해야 할까.
“흥! 빨리 말을 안 한다면 살아서 이곳을 나갈 생각을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소녀의 가시 돋친 말투와 경계심이 오히려 국광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사실 흑막이 있다면 이 정도로 상대가 조심스럽게 자신을 경계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그대는 금을 누구에게서 배웠소?”
국광의 질문에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냉소뿐이었다.
“흥! 그따위 질문을 하려고 야밤에 담을 넘어 여인의 처소에 왔다는 건가요?”
그러자 국광은 좀 더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싸늘하게 내뱉었다.
“다시 한 번 더 질문하지. 누구에게서 배웠소?”
그러자 소녀는 조금 말투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강아 사부님께…
“강아? 그대의 이름은?”
“설약벽(薛若碧)이라고 해요.”
“설약벽? 언젠가 들어 본 것 같은 이름이군. 기억은 안 나지만……………. 그런데 문제는 그대가 뜯는 금음이 좀 이상하다는 데 있소. 아무래도 과거에 들 어 본 것 같기도 하고, 또 그 곡들도 내가 아는 것 같고. 설명을 해 줄 수 있소?”
“글쎄요. 소녀도 당신 같은 무례한 사람은 처음 보는지라 뭐라 말할 수 없네요.”
“그렇다면 한 가지만 더…………… 그대가 뜯은 곡들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곡이오?”
국광의 질문에 소녀는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그 곡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런데 당신이 그 곡들을 들어 봤다니 이상하군요. 당신은 어디서 그것들을 들어 봤죠?” 잠시 침묵이 흘렀고 마침내 생각을 정리한 국광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군. 사실 나는 과거를 기억할 수 없기에 그대에게 몇 가지 확인해 볼 것이 있어 찾아온 거였소. 그런데.. 헉! 이런, 무슨 농간을?” 국광의 다급한 어조와 달리 설약벽은 느긋한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얼굴에는 어조와는 달리 후회, 동정의 빛이 어려 있었다. “확인하실 필요 없어요. 저기서 피어오르는 향은 천락마라향(樂魔羅香)…………. 일단 흡입한 후에는 손쓸 방법이 없는 음약(淫藥)이죠. 당신의 무공은 너무나 강하기에 눈치 채지 못하게 처음부터 아주 조금씩만 피어오르게 만들어 서서히 중독시켰으니 지금에야 효과가 나오는 거예요.”
국광은 치밀어 오르는 욕화(慾)를 억누르느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핏줄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국광은 어서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지만 도저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바로 앞에 미모의 여인이 있다 보니 점차 가물거리는 이성(理性)이 욕정(情)을 억압하지 못하는 것 이다.
‘나는 동자공(功)을 익혔다. 그렇다면…………… 보기 좋게 당했군. 이제 더 이상의………….’
이성으로 간신히 욕화를 억누르고 있는 국광을 보며 설약벽이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묵향 부교주님, 당신은 너무나 강하기에 본교로서는 당신을 없애는 데 이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렇지 않고 정면 대결을 한다면 수많은 형제들이 그대의 묵혼 앞에 목숨을 잃어야 하겠죠. 교주께서 명령하셨을 때 제가 기꺼이 이 일을 떠맡은 건… 어쩌면 도저히 넘볼 수 없었던 당신을 약간이나마 사모했던 제가 끝마무리를 하는 것이 좋을 거라는 판단에서예요. 더 이상 참지 마시고 이리 오세요. 그리고 평안한 안락을 찾으세요”
설약벽이 두 팔을 벌리고 그를 이끌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국광은 그녀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설약벽은 노련한 경험자답게 무식하게 파고만 드는 국광을 아주 자연스럽게 이끌어 나갔다.
설약벽은 우악스럽게 찢듯이 옷을 벌린 후 탐스럽게 부풀어 오른 유방을 빨아 대는 국광을 적당히 밀어내면서 살며시 옷을 벗었다. 그리고는 국광의 옷을 조심스레 벗겨 주고 침상으로 이끌었다. 국광은 음욕(淫)에 눈이 멀어 눈앞의 이 아름다운 여체(體)를 감상할 시간도 없었으니………….
국광은 온몸이 약 기운으로 타올라 끓어오르는 음욕을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 달려들었지만, 경험 많은 설약벽이 한눈에 보기에도 그는 초보자
가 확실했다. 무턱대고 끌어안으며 파고들기만 했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기 때문이다. 50년이 넘게 무공에만 매진해 온, 존경했던 고수가 한낱 음약에 굴복해 버린 모습은 설약벽에게도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의 기억이 그대로 유지된 상태라면 이런 허점 따위는 만들 지 않을 인물이란 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녀는 존경했던 인물의 마지막을 부드럽고 깨끗이 장식하기 위해 노력했다.
설약벽은 파고드는 국광을 안은 채로 침상에 누워 약 기운에 한없이 뜨겁게 달아오른 국광을 몸속 깊이 받아들였다. 일단 거기까지 유도하자 그다음 부터 국광은 본능에 따라 움직이며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정사가 지속되면서 헐떡거리며 매달리는 국광을 바라보는 설약벽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지 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도 계속되는 자극에 달아오르며 국광의 동작에 달콤한 신음성을 흘리며 무의식적으로 호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허리를 다리로 꽉 잡고 매달리며 헐떡거리는 설약벽의 몸 위에서 거칠게 몸을 움직이던 국광의 몸이 약간 경직되며 방사(射)했을 때, 설약벽 도 어느 결에 쾌락의 극치에 올라 비명을 질렀지만 그녀의 쾌감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국광의 방정(精)이 뭘 뜻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 곧 국광의 체내에서 동자공이 무너져 방대한 양의 기가 막대한 고통을 수반하며 흩어지고 육체 또한 사그라들 것이다. 설약벽이 존경의 뜻에서 일부러 채양보음(採陽補陰)의 수법을 쓰지 않았기에 죽음에 이르지는 않겠지만,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국광의 육체는 50대가 가진 본래의 육체로 돌 아갈 것이 분명했다.
이제부터 다시 속성으로 내공을 쌓는다면 어느 정도까지 무공을 회복할 수도 있으리라. 만약 그 전에 마교의 고수들에게 살해되지 않는다면.. 설약벽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지만 국광의 힘은 줄어들지도 않았고 또한 육체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국광은 또다시 허리를 놀리며 설약벽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악! 이럴 수가…………. 아마 현경의 고수라서 기가 다 빠져나가려면 다른 사람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걸까? 이건 말도 안 돼……………”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더 이상 연결되지 않았다. 그녀의 육체도 덩달아 급속히 뜨거워지기 시작했기에……………. 가을이 무르익어 조금 쌀쌀한 날씨였지 만 설약벽에게는 그런 것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에게 그 밤은 너무나도 뜨거운 열락悅樂)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