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권 18화 – 떨어지는 별
떨어지는 별
국광이 음희의 거미줄에 걸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옥영진 대장군의 저택에는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옥영진 대장군이 호출 하지도 않은 1백여 명이 넘는 방문객이 쳐들어온 것이다. 그들의 내왕을 통보받은 옥영진 대장군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지금 이 시간에 자기한테 올 일이 없기 때문이리라. 옥 나으리는 하인의 안내로 들어오는 방문객 중 한 명에게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자네가 여기는 웬일로 왔나?”
“예? 회의도 할 겸 원정의 성공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멋지게 한턱 낼 테니 모두 오라고 하셔서 왔는데요. 왜 그러십니까?”
갑작스레 수상한 태도로 나오는 옥영진 대장군에게 전포(戰袍)이기는 하지만 한껏 멋을 낸 마길수 상장군이 되물었다.
“그렇다면 백인대장급 이상이 모두 다 왔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관지와 관지를 보좌할 백인대장 두 명은 오지 않았습니다. 관지는 별로 이런 자리를 안 좋아하기에……………. 왜 그러십니까?”
“누가 그 말을 전하던가? 나는 그대들을 부른 적이 없는데.”
“단장님 댁의 하인이라고 하는 자가 전해 왔습니다. 저희들도 그런 줄 알았구요.”
“이거 큰일이군. 아무래도 모종의 흑막이 있는 거 같아. 자네는 빨리 돌아가서 부대를 장악하게. 나도 준비가 되는 대로 갈 테니까………..?
“예.”
이때 밖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껄껄껄, 그러실 필요 없소이다. 옥영진 대장군 나으리. 그대를 모반 혐의로 체포하라는 어명(命)이 계셨소이다.”
“뭐시라?”
어느덧 사방에서 앞 부분에 「禁(금)」이란 글씨가 수놓아져 있는 황의를 입은 무사들 1천여 명이 날아와 경악한 옥영진 대장군과 그 수하들을 포위했 다. 그리고 그들의 뒤편에서 「親(친)」이란 글씨가 쓰여 있는 적의를 입은 열두 명 정도와 황의를 입은 세 명이 함께 걸어 나왔다. 방금 한 말은 그중의 한 명이 내뱉은 것이었다.
모반…………. 이 얼마나 살 떨리는 단어냐. 말도 안 되는 모함이라도 그것에 걸려들기만 하면 삼족(三)이 살아남을 수 없다. 옥영진 대장군은 기가 막 혀 말도 안 나올 정도로 분노가 끓어올랐으나 차분히 노화를 가라앉혔다. 여기서 처신을 잘못하면 모든 게 다 끝장나는 것이다. 별 볼일 없는 자가 이 런 말을 한다면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복장을 보아하니 이들은 모반의 냄새를 찾아다니는 황제의 사냥개, 금의위인 것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그대는 누구요?”
“소인은 이번에 금의위의 포박대장으로 임명된 엄사량이라고 합니다. 만약 대장군께 죄가 없다면 그건 취조하는 과정에서 밝혀지겠지만 본 금의위 에서는 대장군이 모반을 획책하고 있다는 확실한 물증을 잡고 있습니다.”
옥영진은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이들을 불러 모은 것도 그대들의 짓인가?”
“그렇습니다. 뿌리를 남겨 두면 안 되죠. 화근의 싹은 뿌리째 뽑아야.
상대의 단호한 대답에 옥영진 대장군은 허탈한 음성으로 사정했다.
“그대들이 원하는 것은 본인의 목. 수하들은 놔 줄 수 없겠나?”
“그럴 수 없음은 대장군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여봐라, 모두 다 포박하라.”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자 옥영진 대장군은 지금 잡혀 가든지 아니면 일단 이들을 물리치고 후일을 도모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함을 알았다.
‘지금 잡혀 간다면 끝장……………. 보나마나 혹독한 고문 끝에 그냥 죽임 당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으으으, 나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손을 쓰게 만드는구나. 좋다, 너희들의 목을 베고 황상께 따지리라. 나의 죄가 무엇인지. 쳐라!”
옥영진 대장군의 판단을 기다리던 무장들도 그의 명령에 따라 검을 뽑아 들었다. 이왕에 자신들에게도 역적의 누명이 씌워진 이상 모두 함께 행동하 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사방에서 전포를 입은 흑풍단의 장수들과 금의위의 위사들 간의 격돌이 벌어졌다. 찬황흑풍단은 기병대라 원래가 마상전(馬上戰)에 익숙한 무리들 이다. 하지만 여기 모인 자들은 모두 백인대장급 이상의 일당백의 용장들…………. 전마(戰馬)도 없고 갑주도 입지 않았지만 그들의 무공은 뛰어났기에 삽 시간에 금의위의 위사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차분히 바라보던 적의(衣)를 걸친 한 사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자가 입 을 열자 남자의 목소리도 아니고 여자의 목소리도 아닌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도와줘라!”
그에 답하는 적의 무사들의 목소리도 그와 비슷했다.
“존명!”
이들이 달려들자 장내의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그만큼 적의 무사들의 무공은 가공할 정도로 뛰어났다. 아마도 이들이 지닌 이상한 목소리도 그 들이 익힌 괴이한 사공(功) 때문인 듯싶었다. 적의 무사들이 장내로 뛰어들어 순식간에 몇 명의 전포를 입은 무사들을 베어 버리자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옥영진 대장군이 뒤에 서 있던 사내에게 말했다.
“항아, 황상의 경호대인 친황대(親皇隊)까지 나선 것을 보면 아무래도 뒷일을 기약하기 힘들 것 같구나. 참, 국광은 어디 있냐?”
옥항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할아버님. 방에 있는 것 같았는데 일이 시작되었을 때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있다면 사태가 역전될 수도 있었을 것을…………. 아마도 그 녀석의 무공이 강하니 꾀어 낸 다음 일을 벌였겠지. 그도 지금쯤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을 게다. 내 검을 다오.”
“여기 있습니다.”
옥영진 대장군은 검을 건네는 옥항의 손에서 검을 통째로 건네받지 않고 손잡이만을 잡은 후 검을 뽑았다. 그리고는 적의를 입은 무사들을 향해 몸 을 날렸다. 옥영진 대장군은 황궁이 자랑하는 3대 무공의 두 가지를 익힌 인물답게 그 쏘아 가는 신법 또한 엄청나게 빨랐다. 적의 무사가 흠칫하는 사이 옥영진 대장군은 이미 그의 뒤에 떨어져 내렸고, 그와 동시에 번쩍이는 보검을 쳐올렸다. 순식간에 한 명의 적의 무사를 토막 낸 다음 또 다른 먹이를 향해 쏘아 갔다. 그가 두 번째 상대를 베고 세 번째 상대에게 검을 날렸을 때 그의 검은 옆에서 튀어나온 검에 막혔다.
캉!
두 검에서 불꽃이 튀었고 상대방 검의 압력에 밀려 옥영진 대장군은 두 걸음이나 물러서서야 자세를 잡고 상대를 쏘아봤다. 상대는 적의의 사내들에 게 명령을 내렸던 사내로 20대 초반 정도로 보였는데 쏘는 듯한 눈빛을 지닌 예쁘장하게 생긴 자였다. 그는 희고 깨끗한 피부에 시원하게 솟은 콧날, 수염이 나지 않은 가냘픈 턱선으로 말미암아 언뜻 보기에 계집이 남장을 한 것처럼 보였지만 옥영진과 더불어 황궁 5대 고수에 끼이는 인물이 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남성을 상실한 태감(胎減)으로, 뛰어난 무공의 자질 때문에 황제의 경호단인 친황대에 뽑힌 인물이다. 1백여 명의 내시(內侍)들로 구성된 친황대는 황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호한다. 과거에는 무술이 뛰어난 자들을 뽑아 경호 무사로 삼기도 했으나 그들도 남자인지라 여자들만 있는 황궁에서 황제의 잠자리 가까이까지 호위를 하다 보니 심각한 문제가 벌어졌다. 궁녀와 경호 무사가 눈이 맞아 아이를 가지는 사태가 벌어지자, 그들은 모두 황궁 외곽 경호로 내몰고 다소 무공이 떨어지더라도 내시들에게 무공을 가르쳐 측근경호대를 조직했다.
이게 친황대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하지만 무림의 정설대로 내시들은 근력(筋力)이 떨어져 절정무공을 익히기가 어려웠기에 뛰어난 실력자가 없었 다. 그런데 모반에 연루되어 사형을 언도받은 황궁의 고수(高手)가 태감(胎)이 되면서 그 죄를 씻고, 50여 년간 황궁 내에서 무공을 연구하여 황궁 무공 최고의 걸작인 규화보전(閨花寶典)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 문제가 해결되었다.
규화보전 전편에는 내시들이 속성으로 내공을 익히는 토납법이 기록되어 있고 후편에는 검법이 기록되어 있다. 규화보전은 세월이 지나면서 후인들 이 더욱 발전시켜 황궁 3대 무공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무공이 되었다. 하지만 보전 자체가 내시들이 발전시킨 무공이기에 그 무공을 익히 는 초기 단계의 내공수련에서 급격히 차오르는 음기 때문에 일반인은 익힐 수 없는 괴이한 무공이 되어 버렸다.
남자가 익히는 경우 급격히 차오르는 음기와 기존의 양기가 더해져 생기는 상승효과로 인한 욕념(慾念) 때문에 도저히 주화입마에서 벗어날 수 없 다. 그리고 여자가 익히는 경우 기존의 음기에 초기에 차오르는 강렬한 음기가 더해져 극음極陰)의 상태가 되기에 도저히 몸이 버티지를 못한다. 그 러나 거세를 당한 내시의 경우 몸속에 차오르는 강렬한 음기를 다스릴 양기가 내제되어 있으면서도, 그들이 엉켜 상쇄되며 일어나는 욕화가 일어나 지 않기에 극성까지 익힐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규화보전은 아주 익히기 까다롭고 또 그 위력이 엄청나기에 1백여 명이나 되는 친황대의 무사들 중 일부에게만 익히는 것이 허락되었다. 보 통 친황대 고수들 중 20명 정도가 보전의 무공을 익히는데, 그중에서 보전이 완성된 후 극성까지 익힌 몇 안 되는 인물 중의 한 명이 자신의 검을 막 은 해공공(公公)이라는 사실을 옥영진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도 황궁 3대 무공 중 두 가지나 익히고 있지만, 오늘 한 차례 검을 부딪쳐 본 다음에야 해공공의 무공이 자신보다 한 수 위라는 사실을 느꼈다. 하지만 해공공은 거의 실전 경험이 없었고, 자신은 막대한 실전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옥영진 대장군은 그 점에 기대를 걸고 해공공과 감히 맞설 생 각을 하기 시작했다. 또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었기에………………
‘저 녀석은 실전 경험이 적으니 무조건 선제공격과 암수를 교묘히 조화시켜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들면 승리가 가능하다.’
옥영진 대장군은 상대가 눈치 못 채게 슬며시 내력으로 품속에 들어 있던 엽전 몇 개를 왼손으로 끌어당겼다. 갑작스런 기습으로 무기를 챙기지 못 했기에 암기 대용으로 쓰려는 것이다.
“호… 친황대를 맡고 계신 해공공께서 어찌 황상 곁에 계시지 않고 여기까지 나오셨소이까? 거기에 거의 보이지도 않던 고수들만 뽑아 가지고………….”
“흐흐흐, 그대를 없애 버리라는 황제 폐하의………….”
해공공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해공공이 말을 하는 순간을 노려 옥영진 대장군의 공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한 번이라도 상대의 기습에 혼쭐이 나 보았다면 조금 힘이 들더라도 계속 내력을 유지하지만, 실전 경험이 없는 자들은 대화를 나눌 때는 자연히 끌어올렸던 내력을 흐트 러뜨린다. 바로 이점을 노린 한 수였다.
“이얏!”
옥영진 대장군의 검은 화려한 광채를 날리며 36 방위를 거의 순간적으로 찔러 들어갔다. 그 검 끝에서는 막대한 검기(劍氣)가 뿌려졌다. 상대에게 들 키지 않도록 순간적으로 내력을 끌어올렸기에 10성의 내력을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웅후한 옥영진 대장군의 6성 공력으로 펼쳐지는 황궁 3대 무공의
하나 파황벽사검법(破荒壁邪劍法)의 위력은 엄청났다. 하지만 그 검기를 막아 내며 가까스로 뒤로 물러선 해공공의 옷은 여섯 군데나 길게 찢어진 흔 적이 만들어졌지만 놀랍게도 하나의 상처도 없었다.
하지만 옥영진 대장군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이미 상대가 뒤로 빠질 것을 염두에 둔 탓인지 해공공을 향해 세 개의 동전이 파공성을 흘리며 날아 갔고, 그 뒤를 쫓아 이번에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도로 공력을 끌어올리며 옥영진 대장군이 쏘아져 들어갔다. 그는 해공공이 검으로 동전을 막는 사 이 두 번째 공격을 가할 작심이었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해공공은 슬쩍 옆으로 비켜서며 두 개의 동전만을 피했을 뿐, 나머지 하나는 그냥 몸으로 받아 버렸다.
‘세 개를 다 맞으면 충격이 오지만 겨우 하나쯤은 맞아도 상관없다는 건가?”
“이야압!”
파황벽사검법의 마지막 초식 파천파지(破天破地)! 64곳을 찔러 들어가며 강기(氣)들이 백룡의 형상으로 사방을 덮었고 막강한 검기와 검풍이 사방 으로 몰아치며 주변에 있던 황의 무사들을 날려 버렸다. 하지만 64마리 중 급속도로 뒤로 물러서고 있는 해공공이 있는 곳으로 날아간 것은 겨우 10 여 마리…………. 해공공은 간단히 검들을 놀려 그들을 튕겨 버렸다. 놀랍게도 해공공이 초식을 펼칠 때 그의 검은 이전과 달리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 다.
‘어기충검! 놀랍게도 저자는 화경(化境)의 고수로군. 그러나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옥영진 대장군은 거의 무리다 싶을 정도로 막대한 내력을 소모하는 파황벽사검법을 써 댔다. 하지만 해공공은 일부러 옥영진 대장군이 지치기를 기 다리는지 적당히 피하거나 받아칠 뿐 본격적인 공격은 가해 오지 않았다.
“깔깔깔, 황궁 5대 고수의 실력이 겨우 이건가? 웃기는군. 깔깔깔…….”
이때 놀랍게도 옥영진 대장군의 검법을 요리조리 피하며 도망 다니던 해공공의 뒤에서 갑자기 막대한 검강(劍剛)이 뿜어져 나왔다. 이번만은 해공공 도 준비하지 못했기에 검강 중의 몇 개가 해공공의 등판을 때릴 수 있었다.
“큭!”
그 검강은 해공공의 호신강기를 뚫기는 했지만 강력한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 해공공은 치밀어 오르는 핏덩이를 꿀꺽 삼킨 다음 비웃듯이 말했다. “오호… 마길수 대인을 잊었군. 깔깔, 언제부터 황궁 5대 고수들이 기습이나 일삼는 치사한 도배(徒輩)들로 전락했지?”
“!”
옥영진은 비웃는 해공공을 향해 왼손을 들어 황궁 3대 무공 중 하나인 파열태양장(破熱太陽掌)을 먹인 다음 본격적인 합공(合)을 시작했다. 오래전 에 정해졌던 황궁 5대 고수의 첫째 자리를 옥영진이 차지하고 있다면, 두 번째는 전 금의위의 대영반이었고, 세 번째가 해공공, 네 번째가 마길수 상 장군이었다. 하지만 해공공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이 공무(公務)로 바빠 연공練功)을 할 시간이 없었던 반면, 황상의 호위만을 전담한 친황대의 해 공공은 열심히 무공을 닦았으니 세월이 지난 다음에 벌어진 대결에서 그 실력이 월등히 차이가 나 버린 것이다.
암습에 의해 상처를 입었다고 하지만 그들은 해공공에게 치명타를 먹일 수 없었다. 20초가 경과하자 옥영진 대장군이나 마길수 상장군은 해공공을 이길 수 없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관지가 여기 있었다면 저 요물을 처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
관지는 연회 같은 공식적인 자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소박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그 수하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황궁 5대 고수의 말석 (末席)을 차지하는 뛰어난 무장이다. 아무리 화경의 고수라도 세 명이 진법을 형성하여 공격한다면 물리칠 가능성이 있었다. 화경에는 못 미치지만 그들도 뛰어난 고수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뿐이라 그 단순한 삼재진(三才陣)도 형성할 수가 없으니…………. 이건 하늘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옥영진과 마길수, 두 노장(老將)은 수많은 전장을 누볐던 백전의 용장들이다. 상대도 그들과 비슷한 종류의 무공을 익혔다면 아무리 화경에 올랐다 하더라도 실전 경험이 떨어지는 이상 벌써 시체가 되었으리라. 하지만 해공공이 사용하는 규화보전의 무공은 너무나도 괴이한 검법이었고, 무엇보다 쾌(快)를 중시하기에 그 들고 빠지는 속도가 섬전(閃電)과도 같아 얄팍한 술수에 걸려들지 않았다.
초수(初)가 거듭될수록 옥영진 대장군과 마길수 상장군의 몸에는 작은 상처가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괴이한 기합 소리와 함께 해공공의 신 형이 섬전처럼 움직이자, 마길수 상장군의 움직임이 중지되었다. 그리고는 그의 손에서 검이 툭하고 떨어지더니 마길수 상장군의 육중한 몸이 뒤로 천천히 쓰러졌다. 그의 심장에는 언제 생겼는지 하나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마길수 상장군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옥영진 대장군이 악에 받쳐 외쳤 다.
“더럽게 빠르구나. 네 녀석을 찢어 죽이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다.”
그와 동시에 옥영진 대장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몸을 사리며 공격을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기에 완전히 동 귀어진(同歸御盡)을 각오한 필살의 공격이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무식한 공격이 몇 초 진행된 후 약간 수세에 몰리던 해공공의 입에서 괴이한 기합성이 터졌다.
“끼요옷!”
캉!
그와 동시에 은빛 광선이 옥영진 대장군의 몸을 떠나 왼쪽으로 빛과 같이 빠른 속도로 튀어나갔고, 그 선상에 있던 금의위 무사의 몸에 연결되었다. 금의위 무사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날아와 자신의 복부에 삐죽이 뚫고 나온 검날을 쳐다보다가 숨을 거두었다. 옥영진 대장군의 검이 부러짐과 거의 동시에 어느덧 옥영진 대장군의 가슴에도 마길수 상장군과 같은 상처가 생겨 있었다.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보며 옥영진 대장군은 허탈 한 듯이 중얼거렸다.
“허허허, 황상을 위해 내 평생을 바쳤거늘…
그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해공공은 아직도 숨이 채 끊어지지 않은 옥영진의 목을 간단히 잘라 버린 다음 그 수급을 들어 올렸다.
“깔깔깔, 황궁 5대 고수. 이름이 좋구나, 깔깔. 너희들도 빨리 항복하거라. 더 이상 손을 쓰기도 귀찮으니…………. 깔깔깔.”
그러나 해공공의 비웃는 듯한 항복 권유에도 모든 일이 글렀다는 걸 알면서도 찬황흑풍단의 장수들은 한 명도 검을 던지지 않았다. 그들도 무인(武 人)이었기에, 이길 수 없음을 알지만 구차스럽게 목숨을 건지려 들지는 않았다. 설혹 여기서 목숨을 건진다 하더라도 남은 건 혹독한 고문 뒤의 죽음 이라는 당연한 결과가 남아 있다는 걸 모두들 알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