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권 21화 – 해공공(海公公)
해공공(海公公)
국광은 진법이 깨지면서 허둥대는 검수들을 정신없이 베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느낌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몸이 옆으로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크윽!”
급소는 피했다고 하지만 강렬한 타격이었다.
‘무슨 일이지? 벽사제류강(壁邪帝流剛)을 뚫고 나에게 충격을 주다니, 설마……………’
국광이 두리번거리자 저쪽에서 흑의를 걸친 한 인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자로군. 엄청난 고수다.’
국광은 순간적으로 옆에서 공격해 오는 네 명의 검수를 토막 낸 후 새로운 강적을 기다렸다. 그의 입에서는 가는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공력의 소모가 너무 심했어. 거기에 방금 전 무형무음(無形無音)의 일격. 큰 피해는 없었지만 내장이 울릴 정도야. 과연 이곳에서 뼈를 묻게 되려 4………
이때 국광의 모습을 뚫어지게 보고 있던 해공공이 능비계에게 말했다.
“이보게, 나한테 양보할 수 없겠나?”
“예?”
“깔깔깔, 저 정도의 고수는 흔하게 만날 수 없지. 이 기회에 본좌의 무공도 한번 점검해 보고………….”
능비계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공공의 부탁을 거절할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 양보해 드리겠습니다.”
“검을 다오.”
옆에 서 있던 적의를 입은 무사가 검을 뽑아 해공공에게 건넸다. 해공공은 검을 잡고는 방어 자세도 없이 한발 한발 국광에게 접근했다. 그걸 보고 능비계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도대체 뭘 믿고 저러는 거지? 황궁무학이라야 별 볼일 없는 수준…………. 방금 전의 그 뭐라더라 파황천류도는 대단했지만 본교의 무공보다 더 공력의 소모가 심한 무식한 검법인 것 같고, 승산이 별로 없을 텐데…………. 저 녀석이 죽는 건 별로 아쉬울 게 없지만 황궁과의 밀약(約)은 누가 지키지?’
하지만 일단 해공공이 나선 이상 그가 뭐라고 제지할 입장이 아니었다. 해공공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황궁 내의 실세 중의 실세인 황제의 경호 를 주 임무로 하는 친황대의 대장이었기 때문이다. 친황대는 극소수의 막강한 고수들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아마도 1백 명은 넘지 않을 거라는 의견 이 정보를 관장하는 삼비대에서도 지배적이었다.
일단 국광과 해공공의 본격적인 대결이 펼쳐지자 능비계의 모든 걱정은 기우였음이 밝혀졌다.
‘역시 믿는 구석이 있으니 저 괴물 앞에 나섰겠지.’
해공공의 검법은 쾌를 생명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빠름만을 전부로 하는 것은 아니고 그 위력도 엄청났다. 해공공의 검은 푸르스름한 광채를 띠고 있어 그 와중에도 막강한 내력이 지속적으로 공급되고 있음을 드러냈다. 거기에 기이할 정도로 빠른 보법…………. 국광이 점차 뒤로 밀리는 것을 보며 능비계가 경악했다.
‘세상에, 저런 무공이 황궁에 있었다니…………….’
그는 염치 불구하고 옆에 서 있는 적의를 입은 무사에게 물었다.
“저게 무슨 무공입니까?”
그러자 그 적의를 입은 무사는 자못 거만스레 답했다.
“저건 규화보전의 신공(神)이오.”
상대가 잘난 체하는 모습을 보고 능비계는 상대를 더욱 띄워 주었다. 기분이 좋아지면 안 할 말도 하는 게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말 대단한 무공이군요. 저렇게 막강한 무공이 있는데 어찌하여 황궁에 그렇게 고수가 많지 않은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능비계의 질문에 그 적의를 입은 사내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이유가 있지.”
“이유라니요?”
“저 무공은 무상(無上)의 위력을 지니지만 신체적인 금제가 필요한 무공이오.”
“금제요? 아주 어릴 때부터 익혀야 한다든지, 아니면 뭐 특이한 신체라야만 한다든지 그런 건가요?”
“아니오, 태감만이 익힐 수 있다 이거요. 저 무공을 익힐 수 있는 사람은 친왕대의 고수뿐이오.”
“왜 그렇습니까? 아주 궁금하군요.”
“규화보전은 남자가 익히면 초반에 급속히 차오르는 음기로 인한 욕화 때문에 주화입마에 걸리지. 또 여자는 자신이 가진 음기에다 초기에 차오르 는 강렬한 음기가 더해져 그 극음의 상태를 견딘다는 게 불가능하거든. 하지만 우리들 내시들은 몸속에 차오르는 강렬한 음기를 다스릴 양기가 내제 되어 있으면서도 상승효과가 불러일으키는 욕화가 일어나지 않기에, 오로지 내시만이 익힐 수 있다 이거지. 하지만 아주 위력이 강하기에 경호를 위 해 밤이나 낮이나 황제 폐하의 측근에서 경호하는 친황대 소속의 내시들만이 규화보전을 익히는 특전을 누리지. 이제 알겠소?”
‘크크, 그러면 규화보전을 익힌 건 1백 명도 안 된다는 소리군. 거기에 지금 말하는 자는 해공공의 발치에도 못 미치는 무공을 지니고 있으니…………… 규화보전이란 것도 별 볼일 없다고 봐야 하나.’
하지만 내심과는 달리 상대를 칭찬하는 것으로 끝냈다. 어쨌든 고마운 정보였으니까.
“오호, 그렇군요. 오늘 안계(眼界)를 넓히는 기분입니다. 정말 대단한 무공이군요.”
그런 대화가 오가는 중에도 해공공과 국광의 대결은 극을 향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결은 인간이 어느 정도의 쾌를 실현할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내 주었다. 국광이 사용하는 무공은 황궁무공의 정점. 은은한 금빛을 내는 호신강기 벽사제류강에 황궁무공 중 최고의 속도를 내는 금황신보를 이용한 각종 정통 무학을 사용하고 있었고, 그에 대해 해공공의 무공은 전혀 황궁무학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사악하면서도 괴이한 무공을 사용하고 있었 다. 누군가 얼핏 보았다면 사파의 마두(魔頭)와 황궁의 신장(神將)이 대결하고 있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대결도 종반으로 치닫고 있었다. 둘의 실력은 막상막하, 아니 이성적으로는 아니지만 본능적으로는 거의 현경의 수준을 유지한 국광이 회 피나 그 반사적인 움직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공공은 황궁의 무학을 자세히 알고 있었기에 국광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었 다. 반 시진여 동안 검이 오간 후 국광은 이 사실 하나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움직임이 읽히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저 요괴에게 유리하다. 나에게 남은 공력은 많지 않아. 내상도 약간 있다. 이때는 비장의 수 법을……’
해공공은 상대의 움직임이 약간씩 늦어진다는 점을 포착했다.
‘클클, 공력을 비축하고 있군. 아마 조금 더 지나면 결정타를 날려 오겠지. 그럼 어떻게 한다?’
국광의 최강 공격법 파황천류도를 구경한 다음이라 해공공은 감히 방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보전에 기록된 최강의 호체기공 화령수라강기( 逞守羅剛氣)를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그에 따라 그의 속도도 조금 늦춰져 또다시 평행선상을 달리는 대결이 시작되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끼야!”
찬란한 금광(光)이 뻗어 나와 밤하늘을 밝혔다. 순간적으로 눈이 멀 것 같은 광채 속으로 다섯 가닥의 지풍이 해공공에게로 달려들었다. 그 지풍 중 세 가닥은 간신히 피했지만 두 가닥은 해공공의 몸에 격중되고 말았다.
“큭!”
하지만 지풍들은 화령수라강기를 관통하지 못했다. 약간의 충격만을 주었을 뿐…………. 휘청하던 해공공은 순간적으로 자세를 가다듬으며 검초를 날렸 다.
“얍!”
‘이상하군.”
그의 검초에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었다.
‘클클, 도망갈 생각을 하다니.’
곧이어 시력을 회복한 해공공의 눈에는 저 멀리 금광(金光)을 흘리며 멀어지는 국광이 보였다.
“받아랏!”
그와 동시에 해공공이 가진 검이 허공을 향해 일직선으로 파공성을 내며 날아갔다.
퍽!
국광은 뒤에서 뻗어 오는 날카로운 예기(氣)를 느끼고 사력을 다해 피했으나 검은 국광을 따라오더니 등을 관통했다.
“큭!”
국광은 자신에게 박혀 있는 검을 공력을 이용해 해공공이 장난치지 못하게 앞으로 튀어나온 검날을 손으로 움켜쥔 채 필사적으로 달려 나갔다. “제기랄, 두고 보자…….”
‘흐흐, 내 입에서 두고 보자는 말이 나올 줄이야……………
하지만 국광으로서는 욕설을 내뱉는 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그 더러운 기분을 해소할 수가 없었다.
“쫓아랏!”
그와 동시에 흑의, 적의를 입은 자들이 섬전과 같이 국광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옥영진 대장군의 저택에서는 더 이상 죽일 것이 없다고 판단 한 황의를 입은 자들이 그들의 뒤를 뒤따랐다.
저택에 목숨이 붙어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옥영진 대장군의 시신은 머리가 잘린 채 구석에 쓰러져 있었고, 그를 받들던 백인대장급 이상의 장수들 도 작전 회의라는 미명 하에 소환되었다가 모두 척살되었다. 거기에 집 안에 있는 모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하인들, 심지어는 개까지도 죽음을 면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