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권 5화 – 행운의 여신 |
행운의 여신 |
탁자 위에 중원을 비롯한 새외(外) 변방까지 자세히 그려진 거대한 지도가 놓여져 있다. 그 위에는 크고 작은 모형 말이나 사람들이 있었는데 말이 나 사람의 모형에는 작은 깃발이 달렸고 그 깃발에는 글이나 숫자가 쓰여 있었다. 여러 늙은 장군들이 그 탁자에 둘러서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중에 는 옥영진 대장군도 포함되어 있었다.
“요와의 국경선에 병력을 증파할 수는 없소이까? 요의 위세는 점점 더 높아만 간단 말이외다.”
칠순의 나이에도 장대한 체구를 유지하고 있는 북동원수부(北東元帥府)의 부원수(副元帥) 마룡(馬龍) 대장군이 사정하자 정군관征軍:총사령부) 의 수장(首長)인 진길영 원수가 딱하다는 얼굴로 얘기했다.
“전선에 계신 분이 그런 부탁을 하신다면 들어드려야 하겠소만, 그곳에 돌릴 군사력이 없소이다. 부원수는 지금 작전 협의차 이곳에 온 지 얼마 되 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요의 국경선에는 북동원수부 소속의 20만 어림군(禦臨軍)과 중앙원수부(中央元帥府) 소속의 12만 어림군이 투입되어 있소이 다. 영정왕부(英精王部)에 통지해서 지방군을 동원하든가 해야지 더 이상의 어림군은 불가능하오.”
“그렇다면 황군이라도………….”
“허허…, 황군이 변방이나 지키라고 만든 군사인 줄 아시오? 지금 영정왕부에서 동원해 준 지방군만 해도 20만을 넘고 있지 않소이까? 총합 52만의 군세인데, 그래도 모자란단 말씀이오?”
“지금 북동원수부는 총력을 다해 요와의 전쟁을 억지하고 있소이다. 겨우 52만으로 그들을 위협하여 전쟁을 억지한다는 건 무리가 있소이다. 요는 이번에 새로이 50만 대병을 준비하고 있다 하오. 이들이 어디로 올지 모르오. 기병 위주인 요의 정예에 비해 보병 위주인 지방군의 전투력이 너무 떨 어져서, 요의 정예들과 전투가 벌어진다면 그저 숫자나 채울 뿐 실질적으로 필요가 없는지라 그러는 거요.”
“그래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중앙원수부 소속의 남은 군사 8만은 뺄 수 없소이다.”
“지금 몽고 쪽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기에 정북원수부의 군사도 뺄 수 없소이다.”
“그러면 다른 곳은 어떻소?”
“아시다시피 정서원수부에서는 천산 쪽의 무역로를 방위해야 하기에 빼기 어렵소. 가뜩이나 요즘 들어 마적단이 많이 출몰해 많은 통로를 지킨다고 그쪽도 힘든 모양이오.”
“동남원수부에서 남경과 동경의 외곽 수비 병력을 뺀다면 5만 정도는 더 뺄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그것도 정진남 원수의 허락이 있어야 하겠지 만………….”
진길영 원수가 계속적으로 병력의 증파를 반대하자 마룡 대장군의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 요가 본국과의 국경선에 배치한 병력이 얼만 줄 아시오? 80만이란 말이오. 자그마치 80만 대병이 송의 속살을 파먹으려고 대기 중이란 말이 외다.”
“그쪽 사정이 딱한 것은 알고 있소이다. 하지만 곧 요에 대한 정벌이 시작될 것이니 그때까지는 그 병력으로 막아 주는 수밖에 없소. 누구는 주고 싶 지 않아서 안 주는 줄 아시오?”
“그렇다면 정벌은 언제 시작되는 겁니까? 아직 황제 폐하의 윤허조차 떨어지지 않고 있지 않소이까? 그러면서 전방의 정예군을 정벌 준비를 위해 집결시킨답시고 북경 부근으로 빼내고 있으니 더욱 국경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곧이어 시작될 것이오. 이창해(滄海 원수, 자네가 설명해 주게.”
그러자 정길영 원수의 왼쪽에 서 있던, 백발에 긴 수염을 가진 깡마른 중앙원수부의 수장인 이창해 원수가 싸늘한 안광을 뿌리며 좌중을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정벌군의 주축은 중앙원수부 소속의 20만이 될 것이오. 그리고 북동원수부에서 15만이 동원될 것이외다.”
그러자 마룡 대장군이 얼굴이 벌개져서 따지고 들었다.
“그래 봐야 겨우 35만이 아닙니까? 그리고 북동원수부에서 15만의 병력을 빼내면 북동부의 방위는 누가 합니까? 북동원수부에 남은 겨우 5만의 어 림군과 얄팍한 지방군으로 모든 걸 책임지라는 말씀입니까?”
“아니오, 일단 정벌이 시작되면 각 왕부에 연락을 보내어 지방군 중에서 무술 실력이 뛰어난 자들을 5만씩 뽑아 들일 것이오. 그러면 25만을 만들 수 있소. 그들 중 15만을 정벌에 동원하고 나머지 10만을 각 요처의 수비 병력으로 주둔시킬 것이오.”
“하지만 그래도 50만입니다. 지금 요의 국경선에는 80만이 배치되어 있고, 후방에 50만이 더 준비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합하면 130만인데 그걸 50만으로 공격한다면 그야말로 이란격석(以卵石)이 될 겁니다.”
“아니외다. 송에서 동원하는 병력만 50만이고, 정안국에서 3만, 고려에서 20만, 여진의 각 부족장들도 군사 지원을 약속했소. 여진족들만 합해도 30만은 될 것이오. 그렇게 되면 총 103만이 될 거요.”
마룡 대장군의 반응은 약간 냉소적이었다.
“엄청난 대군이군요. 하지만 그걸 효과적으로 운영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또 그 보급은 어떻게 합니까?”
“보급은 각자에게 맡길 것이오. 여진의 군대 중 8만은 북쪽으로, 15만은 중앙으로, 나머지 7만은 고려군과 함께 남쪽으로 진격해 들어갈 것이오. 그 리고 정안국의 3만은 본국의 군세와 합류하여 행동하기로 했소.”
모두들 이창해 원수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마룡 대장군이 한숨을 내쉬며 회한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총군세 103만이라고 해도 걱정이 되는군요. 지금 원체 요가 맹위를 떨치는 데다가 몽고 쪽이 문제가 많아서…………. 일찍이 요가 발원했을 때 싹부터 잘라 버렸어야 하는 건데, 후회가 되는군요. 찬황흑풍단이 재기하는 동안 변방에 신경을 못 썼더니만 변방의 오랑캐들이 통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가 되다니…………. 더구나 요의 세력이 더욱 강성해진 게 문제요. 일찍이 중앙원수부 소속의 용병대라도 보내어 적절히 요리를 해 놨으면 이 정도 사태 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진길영 원수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와서 후회하면 뭘 하겠소? 사실 지금까지 변방 이민족을 정벌하는 데 너무 흑풍단에만 의존했기에 관군의 실전 경험이 많이 떨어져 그것이 문 제요. 거기에 이번 전쟁이 장기화되면 국고의 손실도 손실이려니와 가뜩이나 강대한 기마민족인 몽고가 통합되지나 않을지 걱정이오. 가장 좋은 건 이제 싹이 자라나고 있는 몽고부터 없애 버리는 건데…………….”
그 말에 옥영진 대장군도 동의했다.
“맞는 말이오. 몽고는 워낙 척박한 기후와 토양에서 자라난 부족들이라 아직 통합이 안 되어서 그렇지 그들이 통합된다면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지금 가장 골칫거리는 서북방에서 칸으로 추대된 철진천(鐵進天)이란 자요. 작은 부족장에서 시작했으나 40여 세가 될 때쯤에는 주변의 부 족들을 통합해 강대한 세력으로 키워 낸, 회색 늑대라 추앙받는 용자(勇者)인데, 그가 가장 위험한 인물이죠.”
마룡 대장군이 동의를 구한다는 듯 진길영 원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암살이라도 해 버리면 어떨까요?”
그러나 진길영 원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몇 번 시도를 해 봤지만 원체가 척박한 땅이라 실패했소. 암살자들이 그가 위치한 곳까지 도착이나 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오.” 옥영진 대장군이 진길영 원수에게 물었다.
“그런데 황제 폐하께서는 이번 요에 대한 선제공격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예전에는 큰일이 있을 때마다 함께 상의를 해 주시더니 요즘은 통………….”
“그놈의 간신배 엄승(嚴承)이 농간을 부려 아직도 결정을 못 하고 계시오. 아시다시피 엄승은 왜 그런지 몰라도, 아니 아마 요에서 뇌물이라도 받 아 처먹었는지도 모르지. 그놈은 요와 화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소이다. 그가 옆에서 감언이설(言利)로 황제 폐하를 부추기니 말발이 달리는 무장들이 재간이 있겠소이까?”
마룡 대장군이 함께 울분을 터트렸다.
“겨우 애첩의 오라비 주제에 정사는 물론이고 군무에까지 깊숙이 관계를 한다는 건 너무한 일이오.”
한심하다는 듯이 이창해 원수가 혀를 찼다.
“쯧쯧, 황제 폐하께서도 예전엔 그렇지 않으셨는데 엄귀비(貴妃)에게 빠지신 다음부터 정사를 등한시하시니 원…… 나이도 드셨는데 황태자께 양 “위를…………….”
그러자 진길영 원수가 그의 말을 제지했다.
“이 사람이 큰일 날 말을…………. 말조심하게나. 잘못 확대되면 역적의 누명을 쓸 수 있어.”
그러자 발끈한 이창해 원수가 말했다.
“말이야 바른 말이 아니오? 엄승이 지금 금의위의 수장까지 자신의 친족으로 바꾸려고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단 말이오.”
옥영진 대장군이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자신은 없는 듯 부정하지는 못하며 중얼거렸다.
“설마, 장 대영반이라면 자타가 공인하는 충신이신데 그를 내치실 리는…………….”
“앞일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것. 그렇게 된다면 조정의 모든 정보를 엄승이 쥐게 되는데, 그때는 말 한마디만 실수해도 살아남기 힘들게 될 거 요.”
“말세로군. 성군으로까지 불리셨던 분께서 어째서 만년에 이르러 이런 큰 실수를 하시는지.
엄승의 제지로 모든 준비를 갖추고도 출정 명령이 떨어지지 않아 요에 대한 정벌은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었다. 이미 동북방의 모든 방위는 지방군 에게로 이양된 상태였고 어림군은 북경 외곽에 집결해서 요와의 전쟁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때 중경의 정군관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낭보를 접하 자마자 대장군 이상 고위 장성들에게 정군관에 집합하라는 명이 내려왔다.
탁자 위에 그려진 넓은 지도. 요나라 위에 있던 많은 인마(人馬)의 모형들이 사라지고 없어졌다. 그것은 거의 50만에 가까운 병력이 없어졌다는 걸 나타냈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수많은 장수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치고 있었다. 그걸 재확인하는 듯이 정군관의 수장인 대사마(大事磨) 진길영(晋吉
領) 원수가 미소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고려에서 희소식이 도착했소. 송과 싸우기에 앞서 뒤를 튼튼히 하기 위해 고려 정벌에 나섰던 요의 군사 50만을 고려의 맹장將) 강감찬이 대파 하여 살아 돌아간 수가 수천뿐이라고 하오.”
마룡 대장군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도대체 어떤 기책(奇策)을 썼기에 50만이 수천으로 줄어든단 말입니까?”
“정보에 의하면 대단히 치밀한 작전에 녹아난 것 같소.”
“대체 어떤 작전입니까?”
“우선 침입 예상로에 있는 모든 민가를 철수시켜 식량의 노획을 막았다고 하오. 그리고 상대가 깊이 들어올 때를 기다려 소수의 복병으로 보급로를 공략하여 철저히 식량 보급을 차단했으니 자연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더 있겠소?”
“묘책이군요.”
마룡 대장군의 수긍에 이창해 원수가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대단한 작전도 아니군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삼국지>에서 나오는 작전이 아닌가요? 촉나라에서 유비에 대항하기 위해 사용하려고 계획했 던 겁니다. 겨우 그런 작전에 녹아나다니, 오랑캐들이란…………….”
진길영 원수가 그의 말을 듣고는 잘못된 점을 상세히 지적했다.
“그렇지 않소. 누구나 그 작전을 알고는 있지만 막상 실행하기는 힘들지요. 그 많은 주민들의 생활 터전을 없애고 철거시켜야 하는데, 이게 보통 배 짱이 없고서는 밀어붙이기 힘들기 때문이오. <삼국지>에도 유장이 그 계책을 사용하면 백전백승할 터인데도 백성을 생각해서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 다고 쓰여 있소. 그에 비하면 그 강감찬이란 장수는 정말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없소.”
“정말 대단하긴 하군요. 백성의 안위는 살피지도 않고 가장 지독한 전쟁법을 택한 걸 보니…
“허허, 너무 그런 식으로 말씀하지 마시오. 저쪽도 국가의 운명을 건 전쟁이라 그랬을 거외다. 강감찬은 보급을 막은 연후에 각 지점에서 화공이나 기습 공격을 가해 적을 피곤하게 만든 후 그들이 지나가는 길목의 둑을 터트려 일거에 치명타를 가했다고 하오. 하지만 50만 대병이나 되니 겨우 강 둑 하나 터졌다고 그렇게 큰 타격이 될 리는 없지요. 요의 대병을 지휘한 대원수 소배압은 그래도 침략의 의욕을 잃지 않고 계속 남하하다가 끝내는 보급 문제와 지속적인 기습에 사기가 극도로 떨어져 후퇴를 시작했다고 하오. 강감찬 장군이 상당한 손실을 입고 퇴각하는 적을 지속적으로 끈질기 게 물고 늘어지면서 추격전을 편 결과 50만 대군 중에서 살아서 돌아간 자가 겨우 수천에 이른다고 들었소이다.”
그 말을 들은 장군들은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고려는 이번까지 세 번에 걸친 요의 대규모 침입을 받았소. 소국으로서 그 정도 손실만 입으며 요의 병력을 막아 낸 것은 단순히 기적이라고 할 수 는 없지요. 고려의 승리는 하늘의 도우심이니 우리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오. 요에 대한 우려는 잠시 접어 두어도 되니 작전을 변경하여 자라나는 싹 몽고의 철진천부터 없애 버려야 하오. 30만에서 40만 정도 어림군을 투입하면 곧이어 결판이 날 거외다. 그런 다음 병력을 돌려 요를 멸할 것이 오. 요와의 전쟁에는 이미 여진의 족장들이 지원을 약속했고 고려도 전쟁에 지치긴 했지만 우리의 출진 제의를 거절하지는 못할 거요.”
진길영 원수의 대략적인 설명에 중앙원수부의 부원수인 임청(淸)대장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요는 강대한 국가라 전쟁이 얼마나 오래 갈지 모릅니다. 거기에 거란족은 유목 민족이라 거의 대부분의 장정이 훌륭한 군인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요. 아무리 50만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새로이 병력을 모아 버틴다면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너무 전쟁이 오래 지속되면 민심이 흉흉해질 테니 그게 문제로군요.”
“민심이 조금 흔들리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소.”
“그래도 지속적으로 전쟁을 벌이는 건 위험합니다.”
임청 대장군의 의견에 마룡 대장군도 찬성의 뜻을 나타냈다.
“맞습니다. 모든 군사력이 요에 가 있는데 만약 민란이라도 벌어지면 진압하기도 힘듭니다. 그 강대했던 한나라도 겨우 황건적 때문에 망했는데 송 이라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란 법은 없소이다.”
정북원수부에서 작전 상의차 수도에 온 공상지(相) 대장군이 여태까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본국에서 몽고를 친다면 요의 황제도 바보는 아니니까 우리들이 자신을 치기 전에 뒷정리를 한다는 사실을 눈치 챌 것입니다. 그들이 선제공격을 해 온다면 우리 측의 피해는 더욱 커질 겁니다.
그러지 말고 몽고와 요를 동시에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지금 요는 크나큰 피해를 입은 상황이니 단시간에 군사력을 재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초반에 승세를 탄다면 주변의 약소한 유목 민족들을 회유하기도 쉬울뿐더러 그들을 전장에 투입하면 더욱 피해가 적어질 것입니다. 그리 고 동시에 전투를 시작하니까 몽고를 끝내고 요로 들어가는 것보다 전쟁 기간이 훨씬 줄어들 겁니다.”
공상지 대장군의 의견을 듣고 진길영 원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생각이오. 하지만 딱히 몽고에까지 파병할 병력의 여분이 없소.”
이때 옥영진 대장군이 나섰다.
“몽고는 소장이 책임지겠소이다. 1만 명만 지원해 주면 되오. 강노(强弩) 2백 틀과 보병만 주면 됩니다. 흑풍단이 기병대이긴 하지만 그래도 강노의 지원이 있다면 피해가 적을 거외다. 그리고 2만의 병력을 동원하는 것이니 군량도 많이 필요 없소. 아마 지금 몽고 국경에 저장된 군량미만 가지고도
충분하리라고 생각되니 총력을 요와의 전선에 투입해도 될 것이오.”
옥영진 대장군의 말이 떨어지자 진길영 원수가 임청 대장군에게 물었다.
“정원수부에서 1만 정도를 빼내도 상관없겠소?”
“예, 1만이 아니라 5만이라도 상관없소이다.”
“알겠소, 임 장군.”
진길영 원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옥영진 대장군에게 말했다.
“고맙소, 옥 장군. 그대가 몽고를 책임져 주시오. 정북원수부에서 1만 어림군을 뽑아 가시오. 정북원수부의 남은 19만 어림군은 예비 병력으로 사용 할 예정이니까 필요하면 더 요청하시오. 그리고 될 수 있다면 몽고 원정을 빨리 끝내 줄 수 있겠소?”
“흑풍단을 따로이 사용하실 데가 있습니까?”
진길영 원수가 약간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실은 이창해 원수와 함께 새운 기밀 작전이 있어서 그러오.”
“소장들에게도 기밀입니까?”
그러자 이창해 원수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아니오. 이번 기회에 노부는 요뿐만 아니라 여진까지 정벌할 생각이오. 그 때문에 모든 정벌이 끝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거요. 그동안 새 외 이민족들의 움직임을 옥 대장군이 차단해 주셨으면 좋겠소이다.”
“여진까지라뇨?”
“여진도 지금 제법 큼직한 부족장들이 나타나고 있소. 그래서 이번에 여진의 부족장들에게 압력을 가해 병력을 차출해 요와의 전쟁에서 소모시키 고, 요와 전쟁이 끝나면 여진까지 정벌하고 돌아올 생각이오. 그리고 이번에 몽고 원정에서 사정을 봐주지 말고 그들을 패퇴시켜 다시는 중원을 넘볼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시오.”
“알겠소이다. 그런데 대사마께서는 엄승의 반대를 어떤 방식으로 뚫으실 요량이신지?”
그러자 진길영 원수가 대답했다.
“우선 일을 만들어서 엄승을 이레 정도 정령산(靖靈山)으로 보낼 생각이오.”
“정령산이라면?”
“그렇소, 국가의 다급한 일이 있다든지 할 때 하늘에 제사 지내는 곳이지요. 요의 대군을 고려가 다행히 격멸한 고로 한동안 국가가 평안하게 되었 으니 하늘과 조상님들에게 감사를 올려야 한다고 황제 폐하께 상소할 생각이오. 그리고 황제 폐하께 그 적임자로 엄승을 추천할 거요. 감사제의 제사 장(祭司)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니 엄승을 좋게 보시는 황제 폐하도 찬성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소.”
모든 장수들이 탄복했다.
“묘책이군요.”
“사흘 동안 제를 올릴 것이고, 정령산까지 오가는 데 나흘 정도 걸리니까 이레라는 시간이 나오게 되지요. 그동안에 집중적으로 황제 폐하께 간한다 면 허락을 받아 낼 수 있을 것이오. 어디 이보다 더 좋은 의견이 있거나 아니면 보충할 만한 점이 있다면 말씀을 해 주시오.”
마룡 장군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참! 정령산에서 조금 떨어진 의양성에 엄귀비의 생가가 있으니 황제 폐하께 몇 가지 좋은 물건을 준비해 엄 귀비의 생가에 하사하는 게 좋겠다고 상소하는 겁니다. 그리고 엄승이 제사를 지내러 가는 길에 하사품도 가지고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상소한다면 그도 가지 않고는 못 배길 것입니 다.”
“그것도 묘책이외다. 둘 다 사용해 보기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