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권 9화 – 하부르

하부르

마을에 도착한 국광은 주위에 흐르는 진령하에서 몸을 씻었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 쓴 것 같았다. 갑주와 마갑에 묻은 피도 깨끗이 씻어 냈다. 그가 열심히 씻고 있는데 마화가 다가오더니 그의 하는 모양을 보고는 생긋이 웃었다.

“깨끗한 걸 좋아하시는 모양이군요. 하지만 곧 전투가 또다시 벌어질 건데 그렇게 닦을 필요는 없잖아요. 사람의 피란 기름기가 있어서 그냥 놔둬도 녹슬지는 않는다구요.”

“글쎄・・ 하지만 피가 덕지덕지 붙어 있으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

이해한다는 듯 마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어디까지나 선배의 입장에서의 충고하듯 말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구요.”

국광은 열심히 씻어 대더니 갑주의 물기를 대강 닦아서 다시 입었다. 마갑도 닦아 말에다 씌웠다.

“이게 잘하는 건지 잘 모르겠군…….”

“뭐가요? 씻는 거요? 지금은 불필요하다고 했잖아요.”

“그게 아니라 살인 말이야.”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는 건 살인이 아니에요. 우리가 죽이지 않는다면 그들이 우리를 죽이러 온다구요.”

“글쎄…….”

마화는 약간 놀리는 투로 짐짓 무게를 잡았다.

“왜 그러세요? 살인을 해 보니까 몸이 떨리고 사람을 죽였다는 죄악감이 가시지 않나 보죠? 처음엔 다 그래요. 하지만 좀 지나면 그런 생각도 없어 지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러자 뜻밖에도 쓸쓸한 얼굴로 국광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야.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면서 나는 쾌감 같은 걸 느꼈어. 그 외엔 아무런 느낌도 없었어. 피를 보면서 피어오르는 흥분, 비릿한 혈 향(血香)…………… 난 흥분 상태에서 죽이고, 또 죽였지. 그러면서도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의문이 이는 거야. 왜 나는 사람을 죽이면서도 죄의식을 가지 지 않지? 내가 읽은 책에서 본 대로라면 죄의식을 가져야 되는데… 쓸데없는 소리를 했군. 자네도 좀 씻게나.”

마화는 돌아가는 국광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죄의식이 느껴지지 않아 고민이라고? 이게 무슨 말이야.’

마을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사방에 시체가 즐비했고 곳곳에서 여인들의 비명 소리, 그리고 헉헉거리는 신음 소리……… 말을 타고 지나면서도 파오(몽고천막)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병사들이 계집을 끌어다가 파오 안으로 밀어 넣기도 했고, 어떤 병 사들은 뭔가 들고 나오다가 그걸 말리는 집주인인 듯한 늙은이를 파오 앞에서 두 토막 내기도 했다.

국광이 눈살을 찌푸리며 서둘러 자신의 막사 쪽으로 말을 몰고 있는데 저쪽에서 유난히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놈들아! 안 된다.”

국광은 황궁무고에서 나온 후 몽고어를 좀 배웠기에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힐끗 보니 한 소녀를 잡아끄는 네 명의 병사를 어머니인 듯한 여자 가 말리고 있었다. 실랑이를 벌이던 병사가 귀찮다는 듯이 칼을 꺼내 여자를 찔러 버렸다. 울부짖으며 그녀에게 다가가려는 소녀를 그들이 막무가내 로 잡아끌어 파오 안으로 밀어 넣는 모습을 보면서 국광은 한없는 서글픔을 느꼈다.

‘겨우 이따위 짓이나 하려고 그 지독한 혈전을 벌였는가? 이러면 야만인 놈들이나 중원 놈들이나 뭐가 다르게 된다는 거지?”

소녀가 우는 모습은 국광에게 이상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리움이었다.

‘설마 저 계집하고 만나 본 적이 있을 리는 없고………….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나?”

더 이상 좌시할 수 없게 된 국광은 말에서 내려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흑풍단이 아니라 어림군이었기에 자신이 명령만 한다고 될 건 아니었다. 국광이 다가가자 그들은 약간 경계의 빛을 띠더니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들은 갑옷에 새겨진 숫자로 그가 백인대장이란 걸 눈치 챘다. 그들도 오랜 시간 흑풍단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다 보니 그들의 계급을 알아 두는 것 이 편했고, 또 흑풍단은 모두 뛰어난 무공을 지닌 장교급들이었기에 자연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를 나한테 줄 수 없겠나?”

무슨 일인지 짐작한 어림군 병졸들은 킥킥거렸다.

“이 애가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지만 이건 저희들이 먼저 발견한 물건이라……………”

“흠, 그래도 나는 저 애가 마음에 드니 우리 흥정하면 어떤가? 은화 한 닢씩 주지.”

돈을 주겠다는 말에 그들의 귀가 솔깃했다. 계집은 한 번 품으면 그만이지만 은화는 얘기가 다르다. 거기에 지금 주변에는 널린 게 계집이니 이 아이 는 포기하고 다른 아이를 골라도 되었기 때문이다.

“헤헤헤, 좋죠.”

비굴한 웃음을 띠는 사내들에게 은화 한 닢씩을 던져 준 국광은 그 아이에게 몽고어로 말했다.

“부모의 유품이 될 만한 것을 가지고 나오너라.”

소녀가 잠시 머뭇거리자 다시 말했다.

“빨리 해라. 시간이 없다.”

소녀는 저쪽의 파오로 달려갔다. 국광이 그 앞에서 잠시 기다리자 나무로 깎은 보살상(菩薩像) 하나와 한눈에 봐도 돈이 될 것 같지 않은 몇 가지 자 질구레한 물건들을 들고 나왔다. 이미 파오를 병사들이 약탈해 가서 돈이 될 만한 유품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국광은 마을 밖까지 데리고 가서 놔 줄 생각으로 소녀를 말에 태워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마을에서 벗어났다. 외곽으로 나가다가 수하의 흑풍단원을 만났다. 그는 국광이 꼬질꼬질한 소녀를 안고 가는 걸 보고 미소를 지었다.

“벌써 하나 건지셨군요. 역시 대장님이셔. 하녀로 부리실 모양이죠? 아무리 단장님이 허락하셨다고 하지만 저는 몽고 계집을 하녀로 두고 싶지는 않 습니다.”

그는 꼬질꼬질한 소녀를 자세히 바라보면서 덧붙였다.

“하긴, 그리 못생긴 건 아니군요. 뭐,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겠지만………

그러더니 저쪽으로 달려가 버렸다. 국광은 그가 했던 말 중에서 ‘단장님이 허락했다’는 말을 다시 한 번 곱씹고 있었다.

‘단장이 몽고 계집을 하녀로 쓰는 걸 허락했다면 인적도 없는 마을 외곽에 갖다 버릴 필요는 없겠지. 이 아이와 안면이 있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데 리고 있다가 그 사람에게 맡기는 게 좋겠군.’

몽고에서는 약탈혼(掠奪婚)이 성행했다. 아무 여자나 마음에 들면 납치해다가 데리고 산다. 그러면 그 여자는 그 남자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또다시 납치되면 이전의 남편과 아이는 잊고 다시 새로운 가정을 위해 일한다. 이건 짐승과 같은 욕구를 가진 남자들만의 세상에서 여자들 이 살아남기 위한, 체념 속에서 습득한 적응법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몽고의 여자들에게는 정조(貞操)라는 개념이 희박했다. 누구나 자신을 원하면 같이 사는 것이다.

몽고인의 습성을 잘 아는 옥영진 대장군은 이 이유로 별 말썽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하녀로 들이는 것을 허락한 것이다. 안 그래도 사로잡힌 계집들 은 모두 노예로 팔 생각인데, 도중에 하녀로 쓰다가 팔아 버리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쓴다고 닳는 물건도 아니고……………

마음이 정해지자 국광은 막사로 길을 잡았다. 좀 있으니 견디기 어려운 역한 냄새가 코를 괴롭혔다.

‘이게 무슨 냄새지?’

고개를 숙여 소녀의 냄새를 맡아 보자 이건…, 으웩!

“너 목욕한 지 얼마나 됐지?”

“목욕이 뭔데요?”

몽고어로 목욕이 뭔지 모르니 중국어로 목욕이라고 했으니 못 알아들을 수밖에…

“목욕 몰라? 음, 몸을 씻는 거.”

“지난여름에 씻고…………….”

몽고에서는 남녀 구분이 없는 두터운 가죽옷을 입고는 그대로 추운 겨울을 난다. 그 가죽옷은 이불 대용도 되어서 겨울이 끝날 때까지 벗지도 않고 뒹굴 정도니…………. 날이 풀릴 때까지 씻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광은 두말 않고 말머리를 돌려 진령하로 갔다. 진령하에 도착한 국광은 소녀를 강물 속으로 집어던졌다. 아직 봄이라 조금 서늘한 날씨인 데다가 진령하는 산골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물이라 몹시 차가웠다. 갑자기 강물 속으로 떨어지자 그 아이는 기겁을 했다.

“아악!”

허우적거리다가 일어서는 소녀를 보고 국광이 냉정하게 말했다.

“어서 씻어, 깨끗이. 그리고 옷도 좀 빨아. 가만있자….”

그는 안장 주머니에서 작은 비누 조각을 꺼내 던져 주었다.

“이걸 써서 깨끗이 씻어. 안 그러면 물속에 처박아 얼어 죽게 만들어 주지.”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면서 국광이 말하자 소녀는 겁에 질려 옷을 벗고는 재빨리 씻기 시작했다. 아직 여물지 않은 여체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몸 을 씻고 옷까지 빨고는 추위에 떨며 엉거주춤 걸어 나오는 소녀의 모습을 보며 묵향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여분의 옷이 없다……………….

‘이걸 어쩐다? 물기를 닦을 만한 것도 없군……………’

하는 수 없이 국광은 그 아이에게 다가가서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이는 검은 갑주를 입고 안면 보호대까지 착용해 두 눈밖에 보이지 않는 국광에 대 해 두려움을 느끼고는 움찔했지만 감히 저항하지는 못했다. 국광은 소녀의 어깨에 손을 올린 상태에서 내공을 뿜어 넣었다. 강대한 내력이 소녀의 몸 을 타고 흐르자 소녀의 몸에서 떨림이 사라졌고, 물기가 순식간에 날아갔다.

그러고 나서 국광은 소녀의 손에서 둘둘 만 옷가지를 받아 들고 툭 털며 내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옷가지의 물기도 순간적으로 날아가 버렸다. 국광 이 깨끗이 마른 옷을 건네주자 소녀는 마치 요술을 보는 듯 신기해했다. 옷을 다 입은 소녀를 보며 국광은 이 애가 대원의 말대로 그리 못생긴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국광은 그녀를 다시 말에 태워 자신의 막사로 돌아왔다.

“너・・・ 몇 살이지?”

“열다섯 살.”

“열다섯? 그렇게 어린 것도 아니군. 이름이 뭐냐?”

“하부르(春].”

“하부르? 좋은 이름이군. 너는 좋으나 싫으나 한동안은 나하고 함께 살아야 돼. 괜히 도망갈 생각하지 마라. 도망가다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 4……………..”

국광이 막사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하부르가 입을 여분의 옷을 구하는 것이었다. 옷가지와 약간의 살림살이가 갖춰지자 그걸 하부르에게 주 었다.

“요리는 할 줄 알겠지?”

“예.”

이러쿵저러쿵…………. 몽고어가 막히는 대목에 가서는 손발을 동원하여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수하 하나가 찾아왔다. 그는 막사 안을 슬며시 들여다보 았다.

“단장님이 찾으십니다.”

그는 밖으로 나오는 국광을 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와, 진가 녀석이 말하길래 안 믿었는데…………. 능력이 좋으시군요. 벌써 한탕 하셨습니까?”

“헛소리하지 말고 일이나 봐.”

국광이 대장군의 막사에 들어서자 옥영진이 반겨 맞이했다.

“오, 이번 전투에서 자네의 도움이 컸네. 잘해 줬어.”

“과찬이십니다.”

“이번에 꽤 공도 세웠고, 그래서 자네에게 뭘 줄까 생각하다가 이걸 선물하기로 했지.”

그러면서 검 한 자루를 내밀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화려한 검이었다. 손잡이와 검집에 보석이 장식되었고 검집의 문양도 아주 정성스럽게 만들어져 있었다.

“저는 제 검으로 만족하는데요.”

“아닐세. 자네의 검은 보통 싸움에는 좋겠지만 전쟁을 치르는 데는 별로 좋지 않아. 겨우 2척 3촌의 검으로 적과 대결하려면 무리가 많지. 이건 3척 (약 91센티미터)의 장검이니 마상전을 벌일 때 도움이 될 걸세. 과거 여진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워 황제 폐하께 하사 받은 청성검(淸性劍)인데 나한테 는 맞지 않아서 그냥 놔두었지. 이걸 자네가 썼으면 좋겠어. 묵혼검처럼 보검 축에 들어갈 만큼 좋은 검도 아니고, 그냥 보통 검들보다는 조금 더 날 카롭고 튼튼하다는 것뿐이니까 그렇게 사양할 필요는 없네.”

“알겠습니다. 감사히 쓰겠습니다.”

“그런데 방금 들으니 몽고 계집을 얻었다면서?”

“예.”

“여태껏 여색을 멀리하던 자네가 왜?”

“사람의 생각이란 바뀌는 거니까요.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국광은 동정심으로 하부르를 데려다 놓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밤이 되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혼자서 생활할 때는 별 문제 없었 지만 동거인이 한 명 생기고 나니 귀찮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나 이 상처받은 아이를 토닥거려야 하는데, 여자 애와 얘기를 나눈 것도 오늘 이 처음인 그로서는 도저히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마화나 기타 여자 수하들에게 맡기자니 그들이 비웃을 것 같아 그 럴 수도 없었다.

잘 때가 되자 구석에 쌓아 둔 짐 꾸러미에서 두터운 모피 네 장을 꺼내어 하나는 이쪽에 하나는 저쪽에 깔아 놓고 어색한 표정으로 손짓했다.

“너는 저쪽에서 자거라.”

더 이상의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그는 서둘러서 자리에 들어 돌아누웠다.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로 하부르도 자리에 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

만 문제는 조금 더 있다가 시작됐다. 지금까지는 국광이 말 상대라도 해 줘 그런대로 버티고 있었지만, 조용한 밤에 혼자 누워 있자니 자신의 처지와 오늘 있었던 일들이 한꺼번에 떠오른 하부르가 낮게 흐느껴 울기 시작한 것이다. 국광 정도의 무공 수준이 아니었다면 눈치 채기 어려울 만큼 낮은 소리였지만 막상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를 듣자 난감함이 앞섰다. 그렇다고 공력을 동원하여 이 소리를 못 들은 척하자니 그것도 못할 짓이라 참고 있 었다. 하지만 2각 정도가 지나도 흐느낌이 멈추지 않자 드디어 짜증이 난 국광이 고함을 질렀다.

“야! 그만 훌쩍거리지 못해?”

하부르는 일순 찔끔하는 것 같더니 좀 더 큰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국광은 소리만 친다고 이 난국이 해소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생각을 정하 자 난처한 김에 국광의 행동은 더욱 빨라졌다. 국광이 벌떡 일어났더니 하부르의 흐느낌이 딱 멎었다. 혹시나 두들겨 맞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 때 문일 것이다.

하지만 국광은 생각을 바꾸어 하부르의 곁에 누웠다. 그리고는 하부르를 부드럽게 안아 등을 토닥거리며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낮의 일에 너무 상심하지 말거라. 그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잖니?”

국광이 이렇게 나오자 하부르는 국광을 껴안으며 더욱 큰 소리로 흐느꼈지만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았다. 국광이 공력을 하부르의 체내에 주입하여 진기의 유통을 도우면서 심신을 편안하게 해줬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흐느낌이 잦아들더니 드디어 국광의 의도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

마음 같아서는 혼혈을 짚어 완전히 잠들게 만들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국광도 잠이 들어 버렸 다.

다음 날 아침 둘이 사이좋게 껴안고 자고 있는데, 난데없이 마화가 들이닥쳤다.

“대장님!”

상쾌한 말소리와 함께 막사의 휘장을 걷자 그 안의 광경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은근히 국광에게 마음이 있던 마화에게 몽고 계집을 껴안고 자는 국광 의 모습이 기분 좋게 비칠 리가 없었다. 마화는 가시 돋친 말투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출동 명령이 떨어졌어요.”

그제서야 국광이 부스스 일어났다.

“왜? 여기서 3일 정도 쉰다고 하지 않았나?”

“북동쪽 140리(약 56킬로미터) 지점에서 도주하는 몽고 패잔병이 발견되었답니다. 수효는 8천! 제4, 5, 6천인대에 출동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제4 천인대가 선봉이고, 관지(知) 대장이 우리 사륙 백인대에게 선행하며 본대를 인도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러자 국광이 벌떡 일어나서 갑주를 입기 시작했다. 당연히 잠결에 일어난 그로서는 남자의 왕성한 아침 활동이 아직 멈추지 않았다. 옷 안에서 불 룩 튀어나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양물(陽物)을 보고 마화가 얼굴이 벌게졌다.

“밖에서 기다리죠. 지시는 없습니까?”

마화가 얼굴을 붉히든 말든 무심한 국광은 그걸 모르고 지나쳤다. 국광은 죄 지은 게 없으므로 당당하게 지시를 내렸다.

“1각 후에 출동한다. 그동안 대강 요기를 해 두라고 일러라. 제1, 6, 7십인대가 선행하며 본대를 유도하라. 그리고 멀리 가야 하니까 마갑(馬鉀)은 씌우지 마라.”

“예.”

마화는 국광의 지시를 전달하기 위해 뛰어나갔다. 국광은 서둘러 갑주를 챙겨 입고 옆에 서 있는 하부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얌전하게 있어야 한다. 알겠지?”

그러자 하부르는 저쪽 검대에 매인 채 세워져 있는 국광의 청성검을 집어 주며 대답했다.

“몸조심하세요.”

“그럼…….”

국광이 하부르에게 검을 받아 쥐고 나오자 수하들이 국광의 말을 가져왔다. 국광은 날렵하게 말에 올랐다.

“자, 빨리 가자. 이봐! 임충!”

“예.”

“모두들 식량은 충분히 챙겼나?”

국광이 말하는 식량이란 말이나 양, 돼지, 소 등의 고기를 소금에 절여 말린 것으로 밥을 지을 때 찢어 넣어서 같이 끓이거나 아니면 국 등에 넣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 그냥 뜯어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육포와 쌀, 약간의 양념 등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인데, 그중에서 육포를 많이 가지고 간다. 마상에서 진군하면서 먹어도 든든하게 요기가 되기 때문이다.

임충은 문제없다는 듯 자신 있게 답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