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0권 10화 – 흑살마왕장인걸

흑살마왕장인걸

봉문을 선언한 소림사를 제외하고, 9파1방에 속한 문파들의 대부분의 사정은 요 근래에 멸문당한 종남파의 그것과 거의 유사한 것이었다. 무림맹에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그곳에 일정수의 고수들을 파견해야만 했고, 체면 유지를 위해 양양성에도 상당한 수의 고수들을 보내야만 했던 것이다.

특히 그들 중에서도 감숙성 남쪽에 위치한 공동파는 무림맹에 다른 문파들보다는 훨씬 더 많은 고수들을 파견해 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무 림맹주가 무당파의 태극검황으로 바뀐 후에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림맹 내에 공동파의 세력을 더욱 확장시켜 놓을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공동파의 장문인은 무림맹에서의 세력 유지를 위해 많은 고수들을 파견해 놓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는 중이었다.

“크흐흐흣, 천하의 공동파도 별것 아니었구먼.”

공동파에 혈겁을 일으키고 있는 괴한들 중의 한 명이 내뱉는 말에 장문인은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 공동파를 침입한 괴한들의 대부분은 그렇게 뛰어난 고수 들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무시무시한 마기를 뿜어내는 수십 명의 고수들의 존재였다. 그 몇 안 되는 고수들이 공동파를 시산혈해로 만들고 있는 것이 다. 만약 뛰어난 실력을 지닌 고수들을 외부에 파견하지 않고 이곳에 남겨 두기만 했어도, 이토록 심하게 밀리지는 않았을 것을..

“귀하는 천마신교에서 왔소?”

“물론이지. 본교가 아니라면 누가 있어 이토록 많은 고수들을 키운단 말이냐? 알았으면 순순히 항복하거라.”

“참으로 가증스럽도다. 겉으로는 무림맹과 합작 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세력 확장을 위해 본문을 치다니. 그게 인간으로서 할 짓이냐?”

“물론, 승자에게 그런 작은 허물쯤은 용서되는 법이지.”

상대는 넉살 좋게 대꾸했다. 문파의 수장인 장문인 주위에는 그 문파가 보유한 가장 뛰어난 고수들이 포진해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장문인이 서 있는 그 부근에 는 고수들 간의 격돌로 인한 여파로 검기와 검풍이 사방으로 흩뿌려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상대는 이 격전장의 중심에 태연히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허어, 이거 오늘은 흉다길소(凶多吉小)한 날이로다. 저런 뛰어난 고수들을 이끄는 자가 약자일 리는 없는 법.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혀 마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설마, 저자가 말로만 듣던 극마의 고수라는 말인가?’

한없이 약해지려는 마음을 추스르며 장문인은 상대를 향해 일갈했다.

“그런 돼먹지 못한 궤변은 파락호들에게나 늘어놓게.”

“쯧, 그렇다면 협상 결렬인가?”

상대는 가볍게 혀를 차며 이죽거리는 듯했는데, 어느 순간 장문인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돌진해 오고 있었다. 공포스러울 정도로 빠른 몸놀림을 이용한 기습적인 공격이었다.

“헉!”

다급한 신음 소리를 삼키며 장문인은 다급히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몸이나 다름없이 수십 년을 함께해 온 보검을 뽑아 들자, 과연 공동파라는 거대 문파의 수장 답게 장문인은 뛰어난 무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백류매화검법(白流梅花劍法)과 공동파 장문인에게만 전수되는 비전 통천검법(通天劍法)을 절묘하게 구사하며 상대와 격전을 벌였지만, 누가 봐도 장문인이 괴한 에게 밀리고 있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곧이어 장문인 주위에서 마인들과 접전을 벌이고 있던 장로 세 명이 장문인을 돕기 위해 달려들었다.

“크흐흐흣, 이 정도는 되어야 싸울 맛이 나지. 하지만 종남파도 그랬지만 공동파도 허명만 높을 뿐, 명성에 맞는 실력을 지니지는 못하고 있다는 게 유감이야. 본좌 는 이렇게 싱거운 싸움을 원한 게 아니었거든.”

그와 동시에 괴한의 손이 기괴한 움직임을 드러냈다. “크업!”

펑!

한순간 괴한을 포위하고 있던 네 명의 고수들이 뒤로 튕겨 나갔다.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면서도 괴이한 한 수에 당한 것이다. 물론 그들도 공동파가 자랑하는 고수들인 만큼 그 정도에 무너질 리는 없었다. 재빨리 방어 자세를 갖추며 다시 한 번 접전을 벌일 태세를 갖췄다.

하지만 이때, 뭔가 몸에 이상이 있음을 눈치 챈 것은 그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던 장문인이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게요? 독이요?”

그 말에 다른 사람들도 서둘러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방금 상대의 장력에 격중된 부위에 뭔가 부조화가 감지되었는데, 조금씩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부조화는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조금 쓰라리던 부위가 점차 시간이 지나자 엄청난 통증을 유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크흐흐흣, 지금껏 본좌는 독 따위를 쓰는 놈들을 벌레 보듯했거늘, 하물며 본좌가 그따위 유치한 장난을 치겠느냐? 네놈들은 본교가 자랑하는 흑살마장(黑殺魔 掌)에 죽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라.”

“흑살마장……..”

중얼거리는 장문인의 어조에는 절망감이 묻어 있었다. 장력에 스치기만 해도 그 부위가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는 지독한 마공이 바로 흑살마장이었다. 지금 당장 치료하면 생명은 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막강한 고수를 눈앞에 두고 어떻게 치료를 받는다는 말인가.

물론 지독하기 그지없는 흑살마장이라고 해도 단점이 없을 수 없다. 공력을 뿜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장력이 발출되는 거리도 다른 장공들에 비 해 상대적으로 짧다. 더군다나 그것을 10성까지 익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마교 고수들 중에서 극히 일부만이 이것에 도전해 보는 것이다.

그런 약점을 지닌 것이 흑살마장인데도, 상대는 한순간에 네 번의 장력을 발출했다. 거기에다가 설상가상으로 엄청나게 뛰어난 신법마저도 지니고 있지 않은가? 그런 자에게 장력의 사거리 따위는 무의미했다. 장력이 미치는 사거리까지 순식간에 파고들어 일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처에서 치밀어 오르는 통증이 점점 더 강렬해지자 장문인은 신음성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크으윽! 귀하는 유감스럽게도 10성을 다 연성한 모양이구려.”

장문인의 질문에 상대는 호기롭게 대꾸했다.

“10성뿐이겠느냐? 12성 대성(大成)하였느니라.”

그 말은 곧 더 이상 흑살마장이라는 초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말이었고, 그것이 지닌 단점을 뛰어넘었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그, 그렇다면 설마… 귀하가 흑살마왕(黑殺魔王)?”

그 말에 흑살마제 장인걸은 눈에 이채를 발하며 이죽거렸다.

“호오, 아직까지도 본좌를 기억하는 자가 있을 줄은 몰랐군. 본좌가 누군지 알아챈 그 안목을 높이 사 제일 마지막에 죽여주마.”

모두들 점점 더 극심해져 오는 통증에 신음성을 흘리면서도 장인걸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런 그들에게 비웃음을 던지며 장인걸이 이죽거렸다.

“본좌의 흑살마장에 격중된 이상 살아남기는 힘들 것이야. 괜히 힘 빼지 말고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게다. 크흐흐흣.”

바로 이때, 어디선가 긴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문제는 그 휘파람 소리에 엄청난 내력이 실려 있어 공동산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장인걸의 안색이 조 금 다급해졌다. 단번에 죽일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만큼 장소성에 실려 있는 내력은 너무나도 웅후하여 장인걸 같은 극마의 고수조차도 감히 경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장인걸은 망설임 없이 즉각 손을 썼다. 과연 극마의 고수답게 그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빨랐다. 신형이 번뜩인다 싶은 순간, 이미 그의 몸은 장문인의 코앞에 다가 와 있었다. 장인걸의 손에서 시커먼 기운이 일렁거린다 싶은 순간 펑하는 굉음과 함께 장문인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복부에 정면으로 흑살마장을 맞은 장문인이 즉사해 버리자, 그 모습을 지켜본 다른 세 명의 고수들 또한 자신들의 처지가 어찌 될 것인지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앉아서 죽느니 적의 팔 하나라도 자르는 것이 지금 공동파를 향해 접근해 오는 누군가를 도와주는 길이 될 것이다. 서로의 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 오랜 세월 공동파에서 함께 수련해 온 그들은 서로의 마음 을 눈치 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장인걸을 향해 몸을 날렸다.

“크흐흣, 가소로운 것들.”

퍼펑!

장인걸을 향해 몸을 날린 공동파 장로들의 의기는 가상한 것이었으나, 불행히도 그들의 실력은 장인걸 같은 극마급 고수를 상대함에 있어서 너무나도 격이 떨어지 는 것이었다. 그들의 몸이 성할 때도 장인걸을 어떻게 하기 힘들 텐데, 그들은 지금 극심한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장인걸은 그들을 잔인하게 죽여 나갔다.

장문인과 세 명의 장로들을 죽여 버린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장인걸은 다시금 몸을 날렸다. 장문인이 있는 전각 주위에는 공동파의 최정예 고수들이 포진하고 있 었고, 그들은 지금 침입한 적도들과 사력을 다해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장인걸 같은 엄청난 고수가 끼어들어 그들의 뒤통수를 치니 어떻게 해 볼 도 리가 없었다.

그냥 가만히 놔두기만 해도 천마혈검대의 고수들이 알아서 처리할 수 있었겠지만, 장인걸이 손수 손을 쓴 이유는 미지의 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지금 달 려오고 있는 적의 실력은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렇다면 지금 당장 후퇴해야 하는 것이다.

전각 주위에 포진하고 있던 공동파의 상층부 고수들을 몽땅 해 치워버린 장인걸은 아직도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장내를 향해 명령했다.

“철수하라!”

단 한마디의 명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끌고 있는 병사들은 재빨리 격전을 멈추고 철수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때가 공동파로서는 장인걸의 수하들을 도륙 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미 장인걸과 그가 거느리고 간 천마혈검대 때문에 공동파의 장로급 이상의 수뇌부는 거의 다 죽음을 당한 상태였기에, 공동파 제자들을 통솔할 만한 인물이 없었던 탓이었다.

장인걸이 철수한 지 채 반각(7분 정도)도 지나지 않아 수라도제가 이끄는 5백여 명의 고수들이 공동파에 도착했다. 숭산에서 수라도제가 급히 출발했을 때, 장인 걸과는 거의 하루하고도 반나절에 걸친 시간차가 있었다. 하지만 수라도제는 일행들을 독려하여 그것을 겨우 몇 시진의 차이로까지 좁혀 놓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가 공동파에 도착했을 때, 수라도제는 자신이 너무 늦었음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장문인은 어디 계시느냐?”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공동파 제자를 붙잡고 질문을 던지자 그는 힘없이 중앙에 서 있는 큰 전각을 가리킬 뿐이었다. 그 제자는 아직까지도 자신이 이 아수라장 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것이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수라도제가 전각으로 급히 달려갔을 때, 그곳에는 수백 구가 넘는 시신들을 수습하고 있는 공동파 제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장문인은 어디 계시느냐?”

그 말에 제법 나이든 제자 한 명이 나서며 대답했다.

“장문인께서는 괴한들의 손에 돌아가셨습니다.”

“뭣이?”

수라도제는 제자를 닦달하여 급히 장문인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타 문파 장문인의 시신에 손대는 것이 실례임을 알면서도 시신에 난 상처를 헤집기 시 작했다. 흉수가 누구인지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곧이어 그는 장문인의 내부 장기가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신음성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흐으음, 흑살마장이로구나. 그 저주받은 마공을 쓰는 놈이 아직까지 존재할 줄이야.”

그 말에 옆에 서 있던 황룡무제가 놀랍다는 듯 되물었다.

“흑살마장이라면…, 마교가 관계되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런지도 모르지. 교주가 말도 안 되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동행을 거부했지 않았는가. 아무래도 교주가 우리들에게 말하지 않은 은밀한 뭔가가 있는 듯하 구먼. 그자가 함께 왔으면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당장 추궁했을 텐데.”

이때 저쪽에서 공동파 제자들과 뭔가 대화를 주고받던 패력검제가 다급히 다가와 말했다.

“그자들이 이곳에서 철수한 지 1각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놈들의 수는 얼마나 된다고 하던가?”

“갑자기 급습을 당했기에 그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답니다. 하지만 적들 중에서 대단히 뛰어난 고수들이 몇 명 섞여 있는 것은 확실한 모양입 니다.”

“그렇겠지. 그런데 설마 마교가 금과 어떤 연관을 지니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군. 지금 당장 출발하세.”

수라도제의 명령에 따라 무림 연합의 최정예 고수들은 금군의 흔적을 찾아 내달리기 시작했다.

숭산을 향해 달려가던 제2진의 고수들이 피곤에 지친 안색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제1진으로 가장 선두에 달려갔던 무림 연합 고수들 중 5백여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2진을 이끌고 있던 공동파 장로는 즉시 그들을 알아보고 말을 걸었다.

“아니, 무슨 일인가? 집결지는 숭산이 아니었는가?”

제1진의 고수들 중 한 명이 공동파 장로에게 권하며 인사를 건넨 후 대답했다.

“수라도제 대협께서 양양성으로 돌아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수라도제 대협께서? 노부는 이해할 수가 없구나. 대협께서 왜 그런 명령을 내리셨다는 말이냐?”

“소림사는 금의 압력에 굴복하여 10년 동안 봉문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 만큼 소림을 돕기 위해 달려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지요.”

그 말에 공동파 장로는 장탄식을 터뜨리며 되물었다.

“허어, 그게 사실이냐?”

“제가 어찌 감히 대협께 허언을 아뢸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소림사가 그런 선택을 할 줄이야. 정말이지 형편없는 작자들이 아닌가?”

이때 제1진의 무사들과 함께 행동하고 있던 묵향이 슬그머니 나서며 공동파 장로에게 말을 걸었다.

“남걱정하지 말고 자네 걱정이나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그런 말을 한 것이 마교 교주임을 알아본 장로는 감히 발작하지는 못하고 불쾌한 듯 대꾸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오? 교주.”

“돌아가라는 지시만 내려놓고, 정작 그 지시를 내린 당사자인 수라도제는 왜 여기에 없겠는가.”

잠시 장로를 비웃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묵향이 말을 이었다.

“물론 자네의 그 머리통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을 테니, 본좌가 가르쳐 주지.”

그 말에 공동파 장로의 안색이 붉으락푸르락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처음에 장로와 인사를 나눴던 장한이 다급히 중간에 끼어들었다.

“교주님, 그런 말씀을 하실 필요가…….”

“아아, 필요가 있고 없고는 본좌가 결정해. 네놈이 참견할 일이 아니란 말이야. 자,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맞아. 그 늙은이가 어디로 갔느냐 하면, 바로 자네의 사 문인 공동파로 달려갔다네.”

‘무슨 일로 말이오?”하고 말하는 듯 의문에 찬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공동파 장로에게 묵향이 자세히 설명해 줬다.

“금군이 공동파를 기습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정보가 개방에서 들어왔지. 수라도제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공동파로 갔다네.”

공동파 장로는 나지막하게 콧김을 내뿜으며 시큰둥한 어조로 대꾸했다. 마교 교주가 옆에서 깐죽거리는 바람에 상당히 화가 나 있었던 것이다.

“흥, 겨우 금군 졸개들이 움직인 것 가지고 그런 말씀을 하다니요. 교주께서 본문을 걱정해 주시는 것은 감사드립니다만, 본문은 그렇게 나약한 문파가 아니외다.”

하지만 묵향은 비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혀를 끌끌 차며 어린애라도 가르치듯 말했다.

“쯧쯧, 그게 아닐걸? 그놈들 때문에 9파1방에 자리를 잡고 있던 종남파도 멸문당했다네. 공동파도 혈겁을 피하기는 힘들걸?”

다른 사람들은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지만, 장인걸이 공동파를 멸문시키려고 작정했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목적한 바를 이룰 것임을 묵향은 잘 알고 있었다. 오 랜 시간 장인걸과 싸워 왔기에 상대의 습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교주의 지적에 공동파 장로의 안색이 조금 창백해졌다.

“서, 설마 그럴 리가…….”

“자네는 확신하나? 공동파가 지닌 힘이 종남파보다 더욱 강하다고 말이야.”

“…..”

공동파 장로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자, 묵향은 싸늘한 비웃음을 던지며 말을 이었다.

“수라도제가 다급히 움직인 것을 보면 그는 공동파가 위험하다고 판단한 거야. 만약 공동파가 충분히 적들을 막아 낼 수 있을 거라고 그가 생각했다면 뭐 하려고 힘 빼가며 공동산으로 달려갔겠냐? 숭산을 포위했다가 물러가는 금군 놈들의 뒤통수를 쳤겠지. 안 그래?”

여기까지 들은 공동파 장로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 모양이었다. 사문인 공동파에 위기가 도래했다는데 교주와의 사소한 시비가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렇듯 본문을 걱정해 주셔서 가, 감사드립니다, 교주.”

공동파 장로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는 제자들을 이끌고 다급히 공동파를 향해 길을 떠났다. 사문의 안위가 걱정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문파의 고수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곳까지 급히 달려오느라 모두들 지쳐 있기도 했지만, 제1진에 속한 고수들을 통해 양양성으로 돌아가라는 수라도제의 지시가 내려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문파의 입장에서 본다면 공동파가 박살 나든 말든, 남의 집에 불난 것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길을 떠나는 공동파 제자들 중에 옥대진과 능비화도 끼어 있었다. 그들의 피로에 지친 뒷모습을 묵향은 아주 만족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공동파 장로에게 일 부러 이 사실을 알린 것도 다 그곳으로 꽁지가 빠지게 달려가라고 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지금 공동산으로 달려가 봐야 모든 게 다 끝난 후일 테니 도착한 후에 는 더욱 허탈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묵향의 기분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