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0권 9화 – 공동파로 가는 길공동파로 가는 길
공동파로 가는 길공동파로 가는 길
수라도제가 객잔으로 돌아왔을 때, 객잔 한편에서 만통음제와 교주가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간간이 미소까지 짓고 있는 것을 보면 저 둘은 어기전성으 로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양이었다.
공공대사가 뭐라고 하더냐는 질문을 묵향에게 던지려던 수라도제는 곧 마음을 돌렸다. 비웃음을 흘리며 옆으로 지나가던 묵향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수라 도제는 내심 이빨을 갈며 다짐했다.
‘으드드득! 오냐, 오늘 밤에 월담을 해 주마. 아무리 많은 땡중들이 지키고 있다고 해도, 밤이라면 해낼 수 있어.’
수라도제가 객잔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종리영우와 제갈기가 반겨 맞이했다.
<그래, 어찌 되셨습니까? 공공대사는 만나셨습니까?>
<부끄럽게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모두들 의문에 찬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수라도제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어이없게도 들켜 버리고 말았거든요. 그래서 밤에 다시 한 번 더 가 보려고 합니다.>
<과연 소림의 저력이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입니다. 아무리 낮이었다고는 하지만, 사돈께서 침투하시는 것을 발견해 내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런 이유도 있지만, 노부의 생각으로는 그 녀석이 알려 준 침투 경로에도 문제가 있는 듯했습니다. 나한전을 가로질러 방장실을 통과하라니, 그게 제정신을 지 닌 자가 선택할 침입로겠습니까? 나한전과 팔대호원에서 무승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서야 그 망할 녀석에게 당했다는 게 느껴지더군요.>
종리영우와 제갈기는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비육걸개가 교주에게 너무나도 쉽게 소림사 내부를 알려 준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교묘 한 함정이 숨어 있을 줄이야. 아마도 비육걸개는 교주가 소림승들에게 들켜서 치도곤을 당하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쪽에 멀쩡한 모습으로 술잔을 들고 있는 교주의 모습으로 보아 아쉽게도 비육걸개의 계책은 실패한 모양이다.
이때, 객잔 문이 벌컥 열리며 또다시 비육걸개가 뚱뚱한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다급히 달려온 것인지, 그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마침 계셨군요, 수라도제 대협.”
“어? 자네는 간 것이 아니었나?”
비육걸개가 거친 숨을 내쉬며 다급히 말했다.
“급한 전갈을 받고 되돌아왔습니다.”
“급한 전갈이라니…, 도대체 그게 뭔가?”
바로 이때, 묵향이 비육걸개의 뒤로 슬쩍 다가와서 살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호오, 안 그래도 자네를 만나고 싶었는데 정말 잘되었군. 정말 잘되었어.”
그 말에 비육걸개는 아연한 표정으로 몸을 사리며 중얼거렸다.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묵향은 비육걸개의 멱살을 그러쥐며 으르렁거렸다.
“본좌에게 사지로 들어가는 길을 알려 줘? 그러고도 네놈이 무사할 줄 알았더냐?”
그 말에 비육걸개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상대의 옷매무새는 몇 시진 전에 봤을 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소림사 내에서 격전을 벌였다면 그가 아무리 대단한 고수라도 뭔가 흔적이 남았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걸 보면 교주는 아무런 문제없이 소림사 내부를 들락거렸다는 말이 된다. 다시 한 번 교주의 실력이 얼마 나 공포스러운 것인지 비육걸개는 실감할 수 있었다.
비육걸개는 필사적으로 항변했다.
“저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교주께서는 분명히 알기 쉽게 설명하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 길이 가장 이해하기 편하죠. 그렇게 설명하지 않고, 어떤 산 쪽으로 가서 그쪽에서 동남방으로 몇 리를 가라는 둥,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교주께서는 이 일대 지리를 하나도 모르실텐데, 이해하셨겠습니까?”
딴은 일리 있는 말이었기에 비육걸개의 멱살을 쥔 손아귀의 힘이 조금 풀렸다. 그것을 느낀 비육걸개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는 교주께서 설마 대낮에 소림의 담장을 넘으실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밤이라면 교주님의 실력으로 미루어 충분히 성공하고도 남으실 거라고 믿었기에 감히 그 길을 알려 드린 것이었습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본좌가 오해해서 미안하구먼.”
자신의 변명이 먹혀 들어가는 듯하자 비육걸개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잠시의 시간 여유를 두고 묵향의 이죽거림이 이어져서 들려왔다.
“…하고 말할 줄 알았지?”
갑작스런 상황의 반전에 비육걸개는 아연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 그건 무슨 말씀?
“이유가 어찌 되었건 너는 좀 맞아야 되겠어.”
그 말에 비육걸개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 그럴 수가! 맞을 때 맞더라도 이유는 알아야…….”
“맞는 데 이유가 필요해? 그러면 들려주지. 본좌는 지금 네놈을 두들겨 패고 싶어. 그게 다야.”
이어서 화려한 묵향의 몸놀림이 번개처럼 이어졌고, 퍼퍼벅하는 요란한 격타음이 객잔 안에 울려 퍼졌다.
“크아아악!”
“살결이 물컹물컹한 것이 감촉이 좋구먼. 몇 대 더 패도 되겠어.”
“제… 제발, 그 정도면 되셨지 않습니까?”
겉으로 봤을 때 비육걸개의 신색은 두들겨 맞은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방금 전에 객잔 안에 울려 퍼졌던 요란한 소리만 아니라면 비육걸개가 엄살을 떤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수라도제 같은 고수들은 알고 있었다. 묵향이 방금 전에 비육걸개에게 얼마나 지독한 내가중수법을 가했는지 말이다. 겉모습이야 어떤지 몰라도 비육걸개는 지금 혈도가 뒤틀리고 내장이 뒤집혀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상황에서 기절하지 않고 서 있는 것을 보면 비육걸 개의 정신력도 그 비대한 덩치만큼이나 대단한 것인 모양이다.
이때, 수라도제가 슬쩍 앞으로 나서며 묵향을 말렸다.
“그 정도면 과하게 손을 쓰신 것 아니겠소이까? 이제 그만 하고 용서하시는 것은 어떻겠소이까?”
순간 묵향의 살기 어린 시선을 받자 수라도제는 기가 질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게 수라도제를 바라보는 것은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했다. 묵향은 언제 자신 이 수라도제를 그렇게 바라봤냐는 듯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자네도 저놈 때문에 꽤 고생했을 텐데, 용서해 줄 마음이 나는 모양이지?”
그 순간 수라도제의 마음속에는 엄청난 살심이 솟구쳐 올랐다. 감히 이런 식으로 자신을 희롱하는 놈이 있을 줄이야……. 하지만 갑자기 상대와 자신의 실력 차가 떠올랐다. 지금 달려들어 봐야 필패.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를 악물며 정신을 수습한 수라도제는 먼저 비육걸개의 뒤틀린 혈도를 바로잡아주며 묵향에게 대꾸했다.
“그건 노부의 실력이 모자라서 그리 된 것이니 누구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소이다.”
“뭐,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누구나 다 자네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니야. 본좌에게는 본좌의 방식이 있는 거라구. 좀 더 지근지근 밟아 놔야 다 시는 그런 짓을…….?”
살기 띤 어조로 묵향이 다가서는데, 이번에는 뒤에서 패력검제와 황룡무제까지 가세하여 묵향을 말렸다.
“노야, 이제 그만하고 용서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객잔 안의 분위기를 살피던 만통음제가 묵향을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적당히 하고 이리 와서 술이나 마시세. 금군을 앞에 두고 동도들끼리 싸울 필요가 없지 않은가?”
만통음제까지 나서는 데야 묵향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한 달은 족히 정양해야 하도록 만들 생각이었는데…, 너 오늘 운수대통한 줄 알아라.”
비육걸개는 입가로 흘러내리는 핏물을 소맷자락으로 닦으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가, 감사합니다, 교주님. 쿨룩쿨룩! 그건 그렇고 공공대사는 만나셨습니까?”
이 질문은 비육걸개의 함정이었다. 만약 교주가 대답만 해 준다면 자신의 추리가 맞았는지, 틀렸는지 곧장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대답을 안 해 준다손 치더라도 그 질문을 들은 상대의 표정만 봐도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지독한 통증이 온몸을 휘감고 돌아 서 있기도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계책을 쓰는 것을 보면 비육걸개도 보통 인물은 아닌 모양이었다.
묵향의 표정에 이채가 어렸다.
‘어쭈! 미련 곰탱이처럼 생겨가지고, 생긴 것 답지 않게 제법이구먼.’
“본좌가 공공대사를 만나러 갔었음은 어찌 알았나?”
비육걸개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눈치 하나로 먹고사는 개방 제자가 아니겠습니까? 그 정도는 금방 알지요.”
“미련해 보이는 덩치에 비해서는 제법이로군. 다시 봐야겠어. 하지만 쓸데없는 호기심은 화를 부른다는 것을 명심하라구.”
그렇게 대답한 후 묵향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자신의 추리가 사실이었음을 확인한 비육걸개가 골똘히 뭔가 생각하고 있을 때, 수라도제가 답답하다는 듯 짜증 어린 어조로 말했다. 방금 전 일어났던 일에 대해, 자신이 교주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음을 느끼고 그는 매우 기분이 안 좋은 상태였다.
“급한 전갈이라는 것이 도대체 뭔가?”
비틀비틀 간신히 걸음을 옮겨 의자에 주저앉은 비육걸개는 긴 한숨을 푹 내쉰 후, 수라도제의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지, 지금 1천여의 금군이 엄청난 속도로 서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답니다.”
비육걸개의 대답은 대단히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겨우 저따위 소리를 하기 위해 여기까지 와서 악취를 풍기다니……. 돼지고기 구울 때 육수가 흘러내리듯, 아직 까지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비육걸개를 보며 수라도제는 더욱 짜증이 솟구치고 있는 중이었다. 땀까지 가세하고 보니 그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는 평상시 보다 두 배는 지독하게 느껴졌다.
‘뭔가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겠군. 도저히 이놈의 악취는 못 참겠어.’
속으로 이빨을 갈며 수라도제는 퉁명스런 어조로 되물었다.
“겨우 1천의 금군이 움직이는 것이 뭐가 그리 큰일이라고 그렇게 달려온 것인가?”
“그게 아닙니다. 대협께서도 금군이 종남파를 멸문시킨 것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쿨룩! 그, 그때 본방에서도 사람을 파견하여 조사했었습니다. 시체가 많이 훼손되어 자세한 것까지는 알기 힘들었지만, 상당한 수준의 무공이 사용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했습니다. 종남파를 멸문시킨 것은 수많은 금군 병사들에 의해 이뤄 진 것이 아니라, 극소수의 정예들에 의해 이뤄진 것입니다.”
수라도제는 문득 비육걸개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가 참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게 사실인가?”
“제가 왜 거짓말을 한단 말씀이십니까? 모든 게 분명한 사실입니다. 본문의 정보가 아니라 무영문에서 흘러 들어온 정보니까 말입니다. 그들의 이동 속도가 워낙 번개 같기에 본방의 제자들로는 그들을 감히 감시할 엄두조차 낼 수 없습니다. 꼭 이동 방법이 마……..”
여기까지 말한 비육걸개는 고개를 살짝 돌려 힐끔 묵향의 눈치를 살핀 후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동 방법이 천마신교의 상급 무력 단체들과 흡사하다는 겁니다. 인적이 없는 산길을 통해 고속 이동을 하는 것이죠. 본방의 제자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직업의 특성상 마을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 집중되지 않습니까? 그렇다 보니 아예 그들의 움직임 자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무영문에서는 용하게도 그것을 포착한 모양입니다.”
수라도제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렸다.
“무영문에서 보내온 정보라면 신뢰할 수 있지. 그래, 무영문은 그놈들의 목표가 어디라고 예상한다던가?”
“공동파일 가능성에 9할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본방에서의 판단도 그렇고요.”
“그 말은 다른 작전을 펼치기 위해 움직였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로군.”
“예. 사실 그 방향으로 움직였을 때, 몇몇 군소방파들도 자리 잡고 있지 않습니까? 또, 그 방향으로 계속 움직인다면 곤륜파까지도 사정거리에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1할의 가능성을 딴 곳에다가 남겨 둔 것이겠지요.”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종리영우가 끼어들었다.
“아무래도 곧장 움직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도 형님의 의견에 찬성입니다.”
반 시진 후, 수라도제가 거느리는 고수들은 또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소림사까지 달려온 피로를 채 풀기도 전에 또다시 하게 된 강행군이다. 1천여의 고수들을 모 두 다 거느리고 가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겠지만, 정작 적을 만났을 때 너무 지쳐 버린다면 오히려 짐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수라도제는 피로하여 또다시 강 행군을 할 수 없는 자들은 이곳에 남아 있다가 몸을 추스른 후 양양성으로 되돌아가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후발대들과 연락을 취해 그들 또한 양양성 으로 돌아가게 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본좌는 이곳에 남겠소.”
교주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하자 수라도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진정이시오?”
“진정이오. 여기까지 달려온 후 곧바로 술 한잔했더니 아직 피로가 안 풀려서 말이오.”
교주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변명을 뻔뻔스럽게 내뱉은 후 당당하게 객잔의 객실로 들어가 버렸다. 기가 막혀서 뭐라고 말도 못하고 있는 수라도제를 남겨 놓고 말이다. 이때, 객실로 향하는 교주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만통음제 또한 다급히 말했다.
“노부도 빠지겠소. 어어, 과음을 했나? 뒷골이 뻐근하구먼.”
속 보이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허둥지둥 만통음제까지 빠져 버리고 나자, 수라도제는 어이가 없었다. 강력한 적을 앞에 두고 가장 뛰어난 고수들 중 둘이 빠 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끌고 갈 강제적인 수단은 전무한 상태였다.
“이제 빠질 사람은 다 빠진 것 같으니 서둘러 출발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황룡무제의 말에 패력검제 또한 덧붙였다.
“아마 그는 이곳에서 할 일이 남아 있는 모양이지요. 그가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 없다고 해도 금군쯤이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딴은 맞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수라도제는 출발 명령을 내렸다. 이제 5백으로 그 수는 줄어들었지만, 훨씬 더 정예화된 고수들을 이끌고 말이다.
“정말 안 갈 건가? 동생. 자네가 이렇게 단독 행동을 하면 수라도제는 물론이고 무림맹도 별로 좋아하지 않을 텐데…….”
만통음제의 물음에 묵향은 피식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그런 거 신경 쓰지도 않습니다. 과거부터 원수지간이었고, 또 이번 합작만 끝나고 나면 또다시 원수지간이 될 텐데 그놈들 입맛에 맞춰 움직여 줄 이유가 없죠.”
“그거야 그렇네만…, 동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공동파를 살리는 것이 우선이 아니겠나?”
묵향은 창문을 통해 수라도제가 거느리는 고수들이 떠나는 모습을 훔쳐보며 말했다.
“무림에 수많은 문파들이 있지만, 제가 가장 싫어하는 문파는 딱 하나뿐이죠. 안 그래도 멸문당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문파를 금나라 녀석들이 대신해서 없애 주겠다는데, 제가 그걸 방해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말에 이제야 이해가 가는지 만통음제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공동파와 원한이 있었던 모양이군.”
“예, 전대 무림맹주 옥청학이 공동파 출신이 아니겠습니까? 그럴 수밖에 없죠.”
묵향의 뇌리에는 옥청학 외에 또 다른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있었다. 옥령인. 잊고 싶었지만,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자신의 손이 그녀의 뱃속을 파 고들었을 때, 입가로 피를 흘리며 슬픈 눈매로 자신을 바라보던 그녀의 표정.
“이런 젠장!”
묵향은 그녀의 뱃속을 꿰뚫었던 자신의 오른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의 뱃속을 헤집을 때의 느낌이 손목을 타고 전해져 오는 듯했기에 그 느낌을 떨쳐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자 묵향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은 후,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니……. 하지만 공동파가 사라지고 나면 어쩌면 잊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더불어 그놈의 옥씨들까지 몽땅 다 뒈져 버렸으면 좋겠 어. 그녀의 눈매를 닮은 놈들은 모두 다 말이야.’
뭔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는 묵향의 옆모습이 왠지 슬퍼 보인다고 느끼는 만통음제였다.
‘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뭔가 깊은 속사정이 있는 모양인 게로군. 과거의 원한을 떠올리는 사람이 저런 모습일 리 없으니 말이야.’
문득 그게 뭔지 궁금해지는 만통음제였다. 하지만 만통음제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담지 않았다. 쓸데없는 호기심을 보여 동생의 마음을 상하게 할 만큼 미련한 그가 아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