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1권 11화 – 패력검제 마교를 가다

패력검제 마교를 가다

마교 교주와 헤어진 패력검제는 소연을 어깨에 들쳐 메고 서둘러서 마을을 찾아갔다. 마침 어두운 밤이었기에 망정이지, 거의 벌거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그녀를 운반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기절초풍했을 것이 분명했다. 패력검제는 소연을 숲 속에 숨겨놓은 다음 그녀에게 입혀놓을 만한 옷부터 구입했다. 하지만 그 녀의 몸이 워낙 딱딱하게 굳어있었기에 도무지 그것을 입힐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패력검제가 차선책으로 생각한 것이 그녀를 관 속에 집어넣어 운반하는 것이었다. 밤이 늦었기에 문을 연 장의사가 단 한 곳도 없었지만, 패력검제는 그 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잠자던 장의사를 두들겨 깨워 관을 구입한 그는 재빨리 소연에게로 돌아갔다. 그는 소연을 관 속에 집어넣은 후, 그녀의 몸을 옷으로 덮었 다. 나중에 총타에 도착하게 된다면 필요하게 될 테니까.

그런 다음 그는 관을 들고 객잔(客棧)으로 달려갔다. 객잔의 점소이는 웬 사내가 관을 들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기겁했지만, 패력검제가 돈푼을 던져주자 두말 하지 않고 바로 방으로 안내했다. 만약 그 속에 사람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무리 돈을 많이 쥐어준다 해도 절대 방을 빌려주지 않았겠지만, 점소이는 전혀 그런 것은 예상조차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패력검제는 그 관이 마치 빈 관이나 되는 듯 아주 손쉽게 다뤘으니까.

방에 들어온 패력검제는 쓰러지듯 침상에 누워서 골아 떨어졌다. 아닌 밤중에 잠도 자지 않고 천 리가 넘는 거리를 전력 질주 했으니, 피곤하지 않다면 그건 사람 도 아닐 것이다.

패력검제가 눈을 뜬 것은 해가 중천에 떠오른 다음이었다. 그는 일어나자마자 운기조식부터 한 다음 객점(客店)으로 내려가 텅 빈 뱃속부터 채워 넣었다. 충분한 휴식과 영양가 있는 식사로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한 패력검제는 방으로 돌아와 관 뚜껑을 열었다. 관 속에는 소연이 창백한 얼굴로 누워있다. 교주가 시전한 대법에 의해 완벽하게 냉동되어 있는 상태인 것이다.

패력검제가 관을 연 것은 교주의 당부 때문이었다. 지금이 겨울이라 그렇게 자주 해 줄 필요는 없지만, 하루에 두 번은 꼭 대법을 시전하여 그녀의 냉기를 지속시 켜 줘야만 했다. 안 그러면 도중에 냉기가 풀리면서 소연의 목숨이 끊어질 우려가 있는 것이다.

패력검제는 양손을 뻗어 한 손은 그녀의 심장에, 또 다른 한 손은 그녀의 단전에 장심(掌心)을 밀착시켰다.

‘처음 하는 건데 잘 될지 모르겠군. 그러니까 이 상태에서 운기(運氣)를 어떻게 했더라?”

패력검제는 어젯밤을 떠올렸다.

「대법이라고 해 봐야 별로 어려울 것은 없어. 한 손은 이곳에, 또 다른 한 손은 이곳에 장심을 밀착시킨 후 운기를 하는 거야. 내가 기(氣)를 이끌어줄 테니 그 경로 를 꼭 명심해. 그리고 그대로 하기만 하면 돼. 」

그런 교주의 말에 패력검제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도대체 어떤 대법이오?」

「사람을 냉동시키는 거라고 할 수 있지. 물론 다른 사람에게 이 방법을 써봤자 헛일이야. 그 뒷감당을 할 수가 없거든. 하지만 총타에는 유일하게 그 뒷감당을 해 줄 만한 사람이 하나 있지. 그분이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어쩌면 소연이를 살릴 수 있을 거야. 본좌는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네.」 어찌 보면 아주 무책임한 소리였다. 하지만 패력검제는 그 말을 하고 있는 교주의 열기어린 표정에서 희미한 희망을 발견했다. 그는 여기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 는 것이 분명했다. 사실 이런 편법이라도 동원하지 않았다면 이미 죽었을 것이 분명한 소연이었으니까.

교주가 알려준 대로 기를 움직이자 패력검제의 손은 투명하게 변하면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옷! 뭔지 모르겠지만, 제법 시각적인 효과는 쓸 만한 걸?”

아직까지도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확실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패력검제는 교주가 알려준 대법이 보여주고 있는 시각적 효과에 매료되고 있었다. 그의 손은 투명할 정도로 희게 변하기 시작했고, 벽옥처럼 푸르스름한 광채를 은은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너무나도 차가운 느낌을 주는 푸르스름한 광채였다. 냉동 시킨다고 하더니 과연 교주가 알려준 대법이라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빙공임이 분명했다.

“이거 뜻하지 않게 기연을 얻은 셈인가? 이 정도 수준의 무공을 익힐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데 말이야. 예상보다는 공력의 소모가 조금 크기는 했지만, 뭐 감당 못할 수준은 아니니까 제법 쓸 만하겠어. 그런데, 이걸 실전에서 쓴다면 어떨까??

혼자서 좋아하며 이런저런 초식들을 생각하고 있던 패력검제는 갑자기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이거 비슷한 무공이 있다는 소리를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데, 그게 뭐였을꼬? 마공이었던가? 아니야. 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봤을 때 정종무공이 분명해. 그렇다면 마교 교주가 어째서 이런 무공을 익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구먼.”

패력검제가 마교의 정예들과 직접적인 대결을 자주 벌였었다면 곧바로 해답을 찾아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소수마공(素手魔 功)의 변형된 형태인 무공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마교의 간판급 무공들 중의 하나인 소수마공을 왜 그가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일까? 그것은 그가 지금껏 들었었던 소수마공과 방금 전 자신이 사용한 대법이 상당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소수마공이라고 하면 모두들 소수(素手) 즉, 흰 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물론 투명하고 하얀 손이 맞기는 하지만, 그의 경우 하얗다 못해 푸르스름 하게 보일 정도의 깊이를 담고 있었다. 더군다나 소수마공의 경우 상대를 압도하는 지독한 마기를 뿜어낸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이것은 그 어떤 사이한 기운도 느껴

지지 않았다. 그래서 패력검제는 이것이 소수마공일 것이라고는 짐작조차 못했던 것이다.

모든 준비가 갖춰지자 패력검제는 길을 떠났다. 그는 관을 어깨에 메고 가급적이면 소연에게 큰 충격이 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경공을 전개하여 달려갔다. 마차를 빌리면 간단히 해결되지 않겠느냐고 생각되겠지만, 마차의 구조상 노면의 굴곡에 따라 잦은 흔들림과 충격이 고스란히 소연에게 전달될 수밖에 없다. 교주는 최대 한 충격을 주지 말아줄 것을 그에게 당부했었다. 그 때문에 패력검제는 관을 들고 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총타까지 1만 리에 달하는 엄청난 길을 달려가야 한다. 그런 만큼 얼마 전에 교주를 추격하는 만용을 부릴 때처럼 전력 질주는 절대로 할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그 때문에 아직까지도 근육들은 피로가 안 풀려서 제대로 된 힘을 못 내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쉬엄쉬엄 달려갈 수도 없었다. 교주가 가급적 이 일을 빨리 완료해 주기를 원했었으니까. 교주는 아무리 늦어도 칠주야(七晝夜)를 초과하면 안 된다는 단서까지 붙였었다. 그 이상 경과되면 소연이 영원히 잠들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면서. 그렇다면 그가 하루에 달려야 하는 거리는 최소한 1천5백 리는 되어야 한다 는 결론에 도달 한다.

“그때 내가 왜 교주를 따라갔을꼬? 허허이~, 참. 내가 뭔가에 씌었던 게야.”

낮은 어조로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패력검제는 교주와의 약속을 어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럴 셈이었다면 그는 처음부터 못하겠다고 거절했을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 * *

아무리 봉우리의 수가 많다고 해도 결코 10만 개씩이나 될 리 없었지만, 어쨌건 사람들은 수많은 봉우리들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십만대산(萬大山)이라 부르고 있는 거대한 산악이 저 오지(奧地) 깊은 곳에서 하늘이라도 뚫을 듯 솟아올라 있다. 이곳은 저 먼 옛날부터 마교의 본거지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었는데, 워낙 튼튼 한방비와 천연적인 악조건으로 말미암아 단 한 번도 외세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은 것으로 더욱 유명한 곳이다.

십만대산은 수십 겹의 방어선이 쳐져 있었는데, 그것을 크게 나눈다면 두 가지로 구분되었다. 바깥쪽은 외총관 휘하의 외곽 경비대원들이 맡는 구역으로써, 그들 의 무공수위는 비교적 낮았다. 그리고 안쪽은 내총관 휘하의 자성만마대원들이 투입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그 방비가 튼튼했다. 그리고 총타로 들어오는 가장 중요 한 통로들은 염왕대가 맡고 있었으며, 그 외 다른 단체들은 총타 내부를 경계하거나 빈자리가 생겼을 때를 대비한 대기조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요 무력세력들의 거의 대부분이 총타를 떠나 버린 상태였다. 관지 장로가 흑풍대를 이끌고 떠난 것을 시작으로, 얼마 전에는 철영 부교주가 혈랑 대와 수라마참대, 그리고 천랑대를 이끌고 교주가 내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나 버렸다. 그렇기에 지금 현재 십만대산 내부의 경비는 오로지 자성만마대와 염왕 대의 고수들만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이곳은 십만대산의 가장 초입으로 연결되는 널찍한 관도상. 이곳을 경계하고 있는 것은 외곽 경비대 제15조로서 그 수는 총원 112명. 그리 무공이 뛰어난 편도 아 니었기에, 마교의 입장에서는 그냥 생색용으로 앞에 세워놓은 무사들이었다.

도로상에 목책(木柵)을 세워놓고 검문하고 있던 마졸(卒) 셋이 갑자기 쑤근거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웬 사내가 관처럼 생긴 커다란 나무 곽을 등에 지고 눈길 을 헤치고 달려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달려오는 발걸음이 가벼운 것으로 보아 짐은 그 크기에 비해 아주 가벼운 듯 보였다. 그렇다면 관 속의 내용물이 매우 수 상쩍어진다. 저 정도 크기에 그토록 가벼운 물건이 존재하다니 말이다.

지금껏 그들이 이곳에 있으면서 총타로 공급되어 들어오는 각종 물품을 실은 마차들을 수없이 검문해 봤지만, 저런 행색으로 물건을 공급하는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었기에 그들은 더욱 의아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은 워낙 추워서 들어오는 물건이 하나도 없을 줄 알았는데, 뭔가 하나 있기는 있는 모양이군.”

“서라! 그 곽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이냐? 출입증부터 내놓고, 곽을 열어라.”

상대가 자신들의 앞에 멈춰 서자, 경비무사들 중의 한 명이 품속을 뒤져 검사도구를 꺼내들었다. 혹시 물품 속에 독극물이라도 들어 있는지, 그런 것을 검사할 준 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는 여기에 처음 와 보는 모양이었다. 방문자는 우선 곽을 옆에 내려놓고 출입증부터 제시해야 할 텐데, 그는 곽을 땅바닥에 내려놓을 생각조차 하지 않 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야 이쪽이 출입증의 진위 여부를 먼저 판단한 후, 출입증에 기록된 내용과 곽 속에 들어 있는 물건이 동일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을 텐 데 말이다. 물론 그때 독극물 검사도 함께 하는 것이 정해진 순서였다.

하지만 그는 곽을 등에 진채 품속을 뒤져 뭔가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패력검제는 묵향과 헤어진지 80시진(160시간) 만에 십만대산에 도착했다. 그 짧은 시간에 커다란 짐-관-을 들고 1만 리 길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운 그는 지금 너 무나도 지쳐있었다. 공력 소모를 줄이고자 답설무흔(踏雪無痕)의 경공 따위는 때려 치운지 오래였기에,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은 그의 체력 소모를 더욱 부채 질하고 있었다.

십만대산에 도착하기만 했다고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십만대산 외곽을 지키고 있는 마교의 졸개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제서야 패력검제는 자신이 마교 의 총타에 왔다는 실감이 났고, 동시에 뭔가 새로운 것을 탐사하는 듯한 묘한 설레임까지 들고 있었다.

십만대산에 마교 총타가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십만대산의 위치도 웬만한 무림인이라면 다 알고 있었다. 십만대산에 발이 달려 이리저리 이동하는 것도 아닌 만큼 그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유명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정파고수도 안에 들어가는데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십만

대산은 철옹성이었던 것이다.

패력검제는 마졸들의 외침에 교주에게서 건네받은 흑룡패를 품속에서 꺼내들어 응수(應酬)했다.

“수석장로에게 안내하거라.”

교주가 이것을 자신에게 건네주며 말했었다.

「이것을 보여주면서 수석장로에게로 안내하라고 해. 그러면 해 줄 거야.」

흑룡패를 꺼내들자, 과연 반응이 있기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패력검제가 생각했던 반응은 아니었다. 마졸들은 한동안 흑룡패를 살펴보더니 수상쩍다는 듯 그를 다그쳐왔던 것이다.

“이것이 뭔데 네 녀석이 감히 지고하신 수석장로님을 뵙게 해 달라는 것이냐?”

그 옆에 서 있는 놈은 한술 더 떠서 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죽거렸다.

“이거 수상한데? 혹시 저 속에 뭔가 이상한 물건이라도 들어 있는 거 아냐? 빨리 곽부터 열어라. 네놈이 수석장로님을 팔면 우리들이 겁먹을 줄 알았던 모양인데, 이곳은 그리 허술한 곳이 아니다.”

그들의 눈에 눈길을 씨근덕거리며 달려온 패력검제가 결코 고수처럼 보였을 리가 없었다. 마교의 고수들처럼 강렬한 마기가 드러나는 것도 아니었고, 만 리 길을 달려오느라 지쳐서 허연 입김을 연신 뿜어내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고수의 풍도를 찾으라는 것은 너무나도 무리한 주문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무장을 하지도 않 은 채 커다란 관 하나만 달랑 등에 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짐꾼으로 밖에는 볼 수 없었다.

“그 물건이 뭐냐? 빨리 내려놓지 못하겠느냐?”

각자 무기를 겨누며 이런 식으로 위협해 오자 패력검제로서는 황당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사실 이 흑룡패가 제작된 것이 요 근래였기에 그것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문제기는 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런 하급무사들에게까지 그 모습이 알려질 정도로 흑룡패가 하찮은 물건이 아니라는데 있었 다. 최소한 조장급 이상은 되어야 이것이 지닌 가치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허허, 말이 안 통하는 놈들이로다. 교주의 부탁으로 수석장로를 만나러 왔거늘…….”

하지만 그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입장에서 그가 칭하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지고한 위치에 계신 높으신 분들이었으므로, 전혀 현실감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새파랗게 젊은 놈의 말이니 더 볼 것도 없었다.

“이런 미친놈. 교주님이 네놈 친구냐?”

“정말 수상한 놈이군.”

마졸들의 응대에 이제 패력검제는 허탈하기까지 했다. 자신이 그렇게 만만하게 보인다는 말인가?

“허~, 미친놈이라고? 이런 무례한 놈들을 봤나. 노부가 누군줄 알고 네놈들이 감히!”

“더 이상 상대할 것 없다. 포박해라!”

마졸들이 달려들었지만, 당연히 그들이 패력검제의 상대가 될 수가 없었다. 주먹질 한 번에 기세좋게 앞서나갔던 동료 하나가 눈길 위에 큰 대자로 쭉 뻗어 버리 자, 그들 중 한 명이 품속에서 호각을 꺼내어 정신없이 불기 시작했다.

삐익! 삐익! 삐익!

얼마 지나지도 않아 방금 전 패력검제가 때려눕혔던 마졸들과 똑같은 복장을 한 자들이 사방에서 달려 나왔다. 이 일대를 맡고 있는 제15조 외각 경비대 무사들이 었다. 물론 15조 대원의 수가 백여 명이기는 했지만 경비하는 지역이 워낙 넓다보니, 각자가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조금씩 차이가 났다. 그렇다 보니 그들은 자연 순 차적으로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차례대로 패력검제에게 한방씩 맞고 나뒹굴고 있는 실정이었다.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다고 느꼈는지 마졸들 중의 한 명이 호각을 꺼내어 불었다. 이번에는 방금 전의 그것과는 소리가 조금 틀렸다.

삐이이익!

‘호오, 이것도 꽤 재미있는데?”

패력검제가 마졸들을 때려잡는 것에 재미가 붙을 때쯤 되어, 이제 진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 전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마졸들과는 그 차원이 다른 인물들이 말이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현장의 상황을 곧바로 파악한 후, 패력검제를 향해 무자비한 공격을 가해왔다.

“허업! 이건 제법인데!”

한순간에 달려 들어온 자들의 수는 무려 50여 명. 방금 전까지 패력검제를 상대하던 자들과 그 복장은 똑같았으나 각자 휴대한 무기를 장식하고 있는 수실의 색이 자색이라는 점만 달랐다. 그들이 바로 마교의 정예 자성만마대의 고수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녹록치 않은 실력자들이었지만, 그렇다고 패력검제의 상대가 될 수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니었다. 패력검제는 마졸들 중의 하나에게서 빼앗은 검 한 자루를 이용하여 상대방을 적당하게 다져놓고 있는 중이었다.

어느덧 30여 명에 달하는 자성만마대 대원들이 부상을 당해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을 때 쯤 되어, 더욱 많은 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저기에서 요란한 호각 음이 들려오고 있었고, 그 소리를 들은 고수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1차적으로 대기조로 편성되어 있었던 자성만마대 대원 100여 명이 도착하는가 싶더니 반각도 채 지나지 않아 그들보다 더욱 고수들이라고 할 수 있는 염왕대 소속의 고수 30명이 도착했다.

염왕대 고수들을 이끌고 도착한 냉막한 표정의 무사는 어지럽게 쓰러져 있는 수많은 마교 고수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순간, 그는 자신의 수하들을 향해 저놈 을 치라는 명령을 내리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저런 뛰어난 고수가 왜 이곳에 와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여기저기 에 쓰러져 있는 자들 중 부상자도 있기는 했지만 죽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것은 상대가 이쪽과의 대화를 원한다는 증거였다.

“멈춰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패력검제를 향해 부나비처럼 달려들고 있던 마졸들은 일제히 뒤로 빠졌다.

“당신은 대체 누구시오? 보아하니 꽤나 무림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고수인 듯한데, 어찌하여 본교에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있는 것이오?”

패력검제가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니, 그곳에도 역시 똑같은 복장의 마교 고수가 한 명 서 있었다. 하여튼 모두들 똑같은 복장들을 하고 있다보니 옷값이 적게 들어 좋을 듯하기는 했지만, 너무나도 개성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해 보는 패력검제였다. 이때, 패력검제는 그자가 다른 인물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음을 찾아냈 다. 바로 검에 걸려있는 수실의 색이 황색이라는 점. 아마도 마교에서는 계급의 높낮이를 수실의 색으로 구별하는 모양이라고 패력검제는 생각했다.

“허어, 이제야 말이 통하는 놈이 왔구먼.”

이제야 자신이 말을 할 틈을 얻은 패력검제로서는 상대의 제안이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품속을 뒤져 다시 한 번 흑룡패를 꺼내들며 말했다.

“이걸 알아보겠나?”

상대방은 잠시 흑룡패를 노려봤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노려본다고 해서 흑룡패가 다른 것으로 둔갑할 수는 없는 노릇. 그는 이것이 바로 흑룡패라는 확신이 서자 곧장 부복하며 외쳤다.

“흑룡패를 뵈옵니다.”

뜻하지 않은 상관의 반응에 다른 마졸들도 일제히 부복하며 외쳤다. 그들 중에는 이놈의 흑룡패가 뭔지도 모르는 자가 부지기수였지만, 아무튼 따라서 외쳤다. “흑룡패를 뵈옵니다!”

방금 전 자신에게 칼을 빼들고 달려들 때는 언제고, 이제는 이 작은 옥 조각에 부복하다니. 정파인의 한사람인 패력검제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행동이었 다. 물론 정파의 각 문파에도 문주를 대표하는 신물(信物)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이 들고 왔다고 해서 이처럼 부복하는 황당한 행위를 하지 는 않았다. 신물이라는 것은 차기 문주 내정자라든지 뭐 그런 것을 뜻하는 하나의 증표일 뿐이기에.

“수석장로에게 노부를 안내해 주겠는가?”

“수석장로님께 말씀이십니까?”

그는 잠시 생각해 본 후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예. 안쪽에 기별을 넣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그러는 한편 그는 옆에 서 있는 자에게 뭔가 전음으로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 명령이 끝나자 그 명령을 받은 자는 재빨리 어딘가로 떠났다.

패력검제는 황색수실 무사의 안내를 받으며 총타쪽으로 걸어갔다. 물론 등에 소연이 들어 있는 관을 진 채로 말이다. 그는 주위의 경관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고 노력하며 구경했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은 십만대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마교의 본거지에 와 본 정파인은 자신뿐일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나중에 문서로라 도 이곳에서 그가 본 것을 남겨 혹시 마교와의 전쟁이 벌어질 때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그였다.

그러던 와중에 그의 감각에 예리한 고수의 느낌이 전해져 왔다. 자신을 안내하는 황색수실의 무사와는 차원을 달리할 정도로 막강한 실력자들의 느낌. 그 수는 거 의 백 명에 달했다. 만약 그들이 기척을 숨길 수 있는 정파의 고수들이었다면 패력검제라 해도 그들의 위치를 눈치채기 어려웠을지 모르지만, 마교도들은 뛰어난 실 력자일수록 그놈의 마기 때문에 더욱 위치 파악이 용이하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들의 존재를 단숨에 파악했던 것이다.

‘일문의 장로급 정도를 상대할 수 있는 고수가 백 명이라. 마교라는 단체는 정말 대단하구나.’

패력검제가 이렇게까지 칭찬한 자들은 바로 호법원에 속한 고수들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가 수석장로를 만나겠다고 청했는데, 그가 아무리 교주의 신물인 흑룡패를 지니고 있다 해도 그를 전폭적으로 믿을 수는 없었기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이들이 출동한 것이다.

짙은 마기만 아니라면 순박하기 그지없는 촌로(村老)로 보일 정도로, 순후한 인상의 늙은이가 자기를 소개했다.

“어서 오시구려. 노부는 수석장로직을 맡고 있는 북궁뇌(北宮雷)라고 하오.”

패력검제는 마주 포권하며 인사했다.

“노부는 서진(眞)이라고 하오.”

서진이라는 말에 수석장로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이때, 그의 뇌리에 떠오르는 하나의 명호가 있었기에 그는 경악해서 외쳤다.

“귀하가 패력검제란 말씀이오?”

패력검제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침묵이 너무나도 오랜 시간 계속되었기에 패력검제가 자신의 용건을 먼저 밝히려는 순 간, 수석장로가 싸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노부를 만나자고 한 이유는 무엇이오? 그리고 흑룡패를 귀하가 지니고 있는 이유 또한 듣고 싶소이다.”

수석장로의 차가운 눈초리는 만약 대답이 마음에 안 들면 패력검제를 결코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것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수석장로 한 사람이라면 패력검제를 어떻게 하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수석장로실 밖에는 호법원의 고수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지금 연락을 받고 초류빈 부교주까지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사실상 교주가 총타에 없는 지금, 총타의 가장 윗사람은 초류빈이었기에 흑룡패를 든 괴한이 총타를 방문한 사실을 수석장로가 그에게 안 알렸을 리 없었다. 그런 만큼 패력검제가 제아무리 화경급의 고수라고 해도 수석장로가 그를 제거하기로 결정만 내린다면 그는 오늘 이곳에 뼈를 묻을 수밖에 없었다.

“노부가 이곳에 온 것은 교주의 부탁 때문이오.”

또다시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수석장로는 「교주의 부탁」이라는 말에 패력검제를 한 번 보고, 이번에는 패력검제 뒤쪽에 놓여 있는 관을 한 번 바라봤다. 잠시 후 수석장로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저것과 상관있는 것이오?”

수석장로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은 관이었다. 패력검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대답했다.

“그렇소. 저것을 교주의 아버지라는 사람에게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소. 아마도 지금 연공실에 있을 거라고 했소이다만…….?

“연공실이라구요?”

잠시 생각하던 수석장로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지금 그분께서 연공실에 계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면 그분을 직접 만나실 생각이시오?”

“그렇게 부탁받았소. 연공실로 내려가서 쇠문을 두들긴 후, 아무런 대꾸가 없을 때는 문을 박살내면 된다고 하더군요.”

“크헙!”

그 말에 수석장로는 기겁을 했다. 그런 짓을 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하지만 패력검제가 수석장로에게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 알려 준 효과는 당장 나타났다. 바로 그 한마디에 수석장로의 대우가 달라졌던 것이다.

수석장로는 즉시 밖에 대고 외쳤다.

“이분을 즉시 천마동으로 안내해 드리거라.”

그런 다음 그는 패력검제에게 덧붙여 말했다.

“아무래도 그… 문을 부수는 것은 혼자 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하구려. 노부는 지금 꼭 해야 할 일이 생각나서…. 그럼 마중은 안 하겠소이다. 잘 가시오.”

왜 갑자기 평생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정중히 인사를 건네는 것인지 패력검제로서는 의아했지만, 뭐 사실 마교도하고 자신하고 다시 볼 필요는 없을 것이 아닌가. 아마도 일이 끝난 후 자신을 찾지 말고 그냥 돌아가라는 뜻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는 패력검제였다.

“호의 고맙소이다. 그럼.”

수하들의 안내를 받아 밖으로 나서는 패력검제의 뒷모습을 보며 수석장로는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아마 교주께서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이라도 하시려는 모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