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1권 14화 – 교주의 딸

교주의 딸

초류빈은 패력검제와 만난 후 군사의 집무실로 갔다.

“가신 일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어떻게 되긴. 오늘 오후에 떠나겠다고 하더구먼. 그러니 수고비 좀 챙겨줘서 보내라고.”

“예? 수고비라면 얼마나…….”

“그야 교주님의 일을 처리하러 왔으니 최소한 은자 천 냥은 내놔야 하는 거 아닌가?”

“헉! 천 냥씩이나 말입니까? 그렇게 큰 거금을 줄 필요가 있겠습니까?”

“일문의 문주가 움직였으니 그 정도는 줘야 하는 게 아닐까? 자그마치 만 리를 달려온 사람일세. 그 정도 고된 일을 시키고도 너무 적게 준다면 교주님의 체면이 손상될 수도 있지 않겠나?”

“예. 그렇게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군사가 자신의 눈치를 보면서 망설이고 있자 초류빈은 짜증 섞인 어조로 물었다.

“뭔데 그렇게 뜸을 들이는 건가? 빨리 말해 보게. 싫으면 관두고.”

초류빈이 나가려고 하자 군사는 급히 말했다.

“저, 가신 일은…….”

“방금 말해줬잖아. 떠난다고.”

“그게 아니라 그 여자분 말입니다.”

군사의 말에 초류빈은 어이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아, 그걸 잊어버리고 있었군. 설마 교주님께서 사랑의 열매까지 얻으셨을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교주님의 딸이라고 하더군.”

그 말에 군사는 경악했다.

“예? 그게 정말이십니까?”

“본좌가 자네를 상대로 농담이나 하고 있는 줄 알았나?”

“아,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대로 있을 일이 아니군요.”

군사는 초류빈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 후, 급히 장로회의를 소집했다. 사안의 중요성으로 봤을 때, 그 혼자서 처리할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 갑자기 회의를 소집한 이유가 뭔가? 군사.”

수석장로의 물음에 군사는 이번 일이 굉장히 비밀을 요하는 것이라는 듯 목소리를 낮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부교주님께서 아주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군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호계악 대호법의 말이 이어졌다.

“군사. 이건 호법원의 일이니 자네가 관여할 사항이 아닐세.”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분의 호위를 위해 내 수하들이 파견되어 있는데, 내가 그것을 모를 줄 알았는가? 부교주님과 패력검제가 주고 받은 말은 모두 다 노부에게 보고되었고, 노부는 그 후속 조치를 이미 지시했네.”

이때, 현 사건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던 수석장로가 끼어들었다.

“호법원의 일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그분이 교주님의 정인임이 확실하다는 말인가?”

호계악대장로는 짐짓 점잔을 빼며 대답했다.

“따님이라고 했습니다.”

“뭣이? 따님이라고?”

“예. 교주님 일가에 대한 경호는 호법원의 고유 권한인 만큼, 저희들이 책임지겠다는 것이지요. 밖에서 호된 일을 겪으신 모양인데,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재 발되지 않도록 경호에 만전을 기하도록 지시해 뒀습니다.”

원래 단일세력만으로 본다면 마교 최강의 세력은 천마혈검대가 아니라 호법원이었다. 교내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교주의 신변을 호위해야 하는 만큼, 가장 우수한 실력자들이 우선적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장인걸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큰 피해를 당한 상태에서 도주하는 호법원과 교주 호위대의 잔존세력 300여 명을 치기위해 천마혈검대와 수라마참대 100명을 투입했다가 엄청난 피해를 당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만약 그때, 흑풍마령(黑風魔靈) 황노각(黃老角) 대호법을 없애지 못했다면, 오히려 전멸당한 쪽은 장인걸이 파견한 고수들 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인걸 측의 고수도 대호법을 없애면서 피해가 작았던 것은 아니었다. 장인걸의 오른팔이었던 멸절신장滅絶神掌) 제갈천(諸葛天)은 전사했고, 왼팔이었던 환영비마幻影飛魔) 구양운(丘陽雲)은 중상을 당했어야 할 정도로 대호법은 엄청난 강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묵향이 교주직에 오르면서 하늘을 찌르던 호법원의 위세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묵향은 호법원의 호위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장인걸이 이끌고 도주한 천마혈검대와 대적할 혈랑대를 만들기 위해 우수한 고수들도 상당수 뺐겨 버렸다. 이런 식으로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던 호법원이었던 만큼, ‘딸의 호위’라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대호법이 그 호위권을 타인에게 양보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수석장로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속히 그분의 거처를 마천루(魔天樓)로 옮겨야 할 것일세. 군사, 자네는 즉시 마천루에 통고하여 전망이 좋고, 볕이 잘 드는 방을 골라 안락 하게 꾸며놓으라고 하게.”

“예. 수석장로님.”

하지만 이미 수하들을 통해 보고를 받은 호계악 대호법은 어깨를 으쓱하며 되물었다.

“그러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분께서는 오후에 패력검제와 함께 교를 나서실 모양이던데 말입니다.”

“그게 사실인가?”

“예. 저는 수하들에게 그렇게 보고받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것은 막아야 하네. 그분께서는 관에 실려 오실 정도로 큰일을 당하신 후가 아닌가? 또 다시 밖에 나가셨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시려고. 이곳 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할 걸세.”

“그러실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교주님께서 그분이 밖에서 기거하도록 놔두신 것을 보면, 교주님의 허락이 있었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도 그렇구먼. 그렇다면 차후에 또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호위에 만전을 기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말인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꼭 밖으로 나가시겠다면 여문기에게 일러 10개 대를 이끌고 가서 호위에 임하라고 하겠습니다. 그 정도라면 장인걸이 직접 쳐들어 온다 하더라도 절대로 그분의 신상에 해를 끼칠 수 없을 겁니다.”

우호법 은편패왕(銀片覇王) 여문기(呂文起)를 포함한 10개 대라면, 호법원 전력의 절반을 그곳에 투입하겠다는 말이었다. 요즘 호법원은 별로 하는 일이 없었으 니 그렇게 많은 전력을 밖으로 빼돌려도 문제가 될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때, 삼면인마(三面人魔) 소무면(簫無面) 장로가 제동을 걸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교주님께서는 저희들에게까지 그분의 존재를 숨기셨습니다. 그 말은 그분의 정체는 철저히 숨겨져 있으며, 본교와 관련 없다는 듯 행동하 신다는 말이 되겠지요. 그런데 그분의 주위에 마기를 풀풀 풍기는 놈들이 득실거려 보십시오. 그분의 입장이 어떻게 될지 말입니다. 더군다나 그것으로 인해 그분의 정체가 만천하에 알려질 위험성도 생각하셔야 될 겁니다. 현재 본교 최대의 적은 장인걸이 아닙니까? 장인걸은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닙니다. 강력한 마기를 풍기 는 고수들이 득실거리면 그는 그것이 뭘 뜻하는지 곧장 눈치 채고 그것을 이용하려 할 겁니다.”

수석장로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지만 그의 대답은 지극히 회의적이었다.

“외총관 말도 옳은 듯하군. 하지만 본교의 고수들 중에서 마기를 안 풍기는 놈이 있어야지.”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비교적 마기를 덜 풍기는 놈들로 골라서…….”

하지만 그의 말은 호계악 대호법에 의해 도중에 끊겼다.

“말도 안되는 소리! 자네 밑에 있는 놈들이 마기가 약한 것은 그만큼 무공이 약하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런 놈들 수천 명을 집어넣는 것보다는 본원의 고수들을 투 입하는 것이 백 배 낫네.”

서로 간에 감정싸움이 될 듯하자 수석장로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외총관의 말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해. 그분의 주위에 본교의 인물임이 분명한 자들을 배치한다는 것은 그분께 폐를 끼치는 행위일 수도 있어. 이 일을 어찌하면 좋지?”

이때 군사가 수석장로에게 말했다.

“홍진 장로님께 부탁하면 되겠군요.”

군사는 홍진 장로에게 말했다.

“비마대에는 기척을 숨길 수 있는 고수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을 좀 보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그 말에 홍진장로는 난색을 표했다.

“본대의 특성상 기습 공격이라면 혹 몰라도, 정면 대결에 뛰어난 놈은 하나도 없네. 그런 놈들로 어찌 그분의 경호를 할 수 있겠는가? 암살하는 것이라면 모르되,

그분을 보호하는 임무라면 절대로 불가하네.”

수석장로도 홍진 장로의 생각과 같았다.

“으음, 자네 말이 옳은 듯하군. 젠장. 여기에 관지 장로가 있었다면, 흑풍대의 고수들을 뽑아달라고 하면 간단할 것을.”

호계악 대호법은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즉시 반박했다.

“흑풍대 역시 평원의 기마전에 능한 것이지 그분의 호위 역할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역시 본원의 고수들을 투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기를 풍기는 호법원 고수들을 밖에 풀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군사는 머리를 쥐어짜 새로운 방책을 제안했다.

“그보다는 초류빈 부교주님의 초연대를 빌리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부교주님의 요청에 따라 비마대에서 차출한 고수들이 아닙니까? 그들은 부교주님께 서 특별히 정파의 무예를 가르친 자들인 만큼, 이번 조건에 가장 적합한 듯이 보입니다만.”

“옳거니. 군사의 말이 옳습니다.”

“하지만 그건 안 될 말이야. 그들은 부교주님의 독립 호위대가 아닌가? 어찌 감히 그들을 빌려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이 아니라면 따로 보낼 놈들이 없지 않습니까?”

“괜히 그러지 말고 호법원 고수들을 투입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입니다. 좀 눈에 띄는 것이 탈이라서 그렇지,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그분을 보호할 수 있는 강골들 이 아닙니까?”

수석장로는 골치가 아픈지 머리를 감싸 쥐며 투덜거렸다.

“젠장. 호위무사 몇 붙여드리는 것이 이렇게 골치가 아프다니.”

마화가 출발한 후 일주일이 지난 다음에야 천지문이 돌아왔다. 그들이 변을 당한 곳이 양양성으로부터 워낙 멀리 떨어진 곳이었기에, 만약 마화가 마차 30여 대에 부상자를 치료할 각종 약품은 물론이고 의생 5명까지 데리고 그곳으로 달려가지 않았다면 훨씬 더 많은 사망자를 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녀왔습니다, 교주님.”

“먼 길에 수고했다. 가서 푹 쉬도록 하거라.”

“사상자의 수는 사망…….”

하지만 묵향은 손을 내저으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아아, 본좌에게 보고할 필요 없어.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묵향의 무심한 반응에 보고를 하려던 마화는 멈칫 했다. 천지문도들을 데려왔으니, 지나가는 말로라도 사상자의 수를 물어볼 수 있지 않은가. 물론 묵향이 이미 그 곳에 갔었다는 것을 진팔을 통해 들었다. 하지만 교주가 그곳에서 지체한 시간은 매우 짧았고, 아직 경황중이라 천지문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피해를 당했는지는 알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찌 저리도 무심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진 공자에게 들으니 교주님께서 패력검제 대협께 부탁하여 소 소저를 총타로 보내신 모양이시더군요.”

묵향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 대답으로 대신했다.

“소 소저는 괜찮으실까요?”

“나는 아버지를 믿는다. 그뿐이다.”

“그렇다면 총타에 기별을 넣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건 현장에서 총타까지 만 리가 넘는 길이라고 하지만, 패력검제라면 지금쯤 총타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살아있을지, 아니면 죽어 버렸는지 이미 결론이 난 상태일 것이다.

하지만 묵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괜한 짓 할 필요 없다. 살아 있다면 어련히 이곳으로 돌아오려고.”

“뜻이 그러시다면, 총타에 연락을 보내지는 않겠습니다. 그럼 속하는 물러가겠습니다.”

묵향은 마음속이 복잡한지 손을 한 번 내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묵향이 총타에 연락을 보내지 말라고 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따를 마화가 아니었다. 아마 묵향은 극심한 갈등에 휩싸여 있을 것이 분명했다. 소연의 생사가 궁금 하기는 했지만, 그녀가 이미 죽었다는 연락이 올 수도 있는 만큼 감히 알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냉철하고 과감하면서도 이런 때는 꼭 약한 모습을 보이신단 말이야. 죽었으면 죽은 거고, 살았으면 산 거지. 나 같으면 그렇게 애태우고 있을 바에는 하루라도 빨 리 결론을 알고 싶을 텐데 말이야.”

잠시 후, 양양성의 마교도들의 근거지에서 전서구 몇 마리가 날아올랐다. 발에 달린 전통에 소연의 생사를 지급으로 전해 달라는 내용을 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