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1권 6화 – 조호이산지계(調虎離山之計)
조호이산지계(調虎離山之計)
만통음제는 엄청난 속도로 경공술을 전개했다. 흑풍대의 무사들이라면 회하를 건너는데 송의 전선(戰船)에라도 의지해야 도강을 할 수 있겠지만, 만통음제 같은 고수에게 그런 것은 전혀 불필요한 행위였다.
회하가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불구하고 만통음제는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곧이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만통음제의 몸이 육지에서 달려가던 그 모습 그대 로 강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놀라운 등평도수의 경공술이었다.
물론, 경공술을 통해 매우 민첩하게 발을 움직이고, 또 일정 수준의 경신(輕身法)을 사용하여 몸무게를 가볍게 만들 수만 있다면 물 위를 달려가는 것은 그리 어 려운 일이 아니다. 일부 경공술에 뛰어난 고수들의 경우 10장(약 30m) 정도의 폭이 좁은 개천쯤은 그냥 통과할 정도니 말이다.
물론 그건 폭이 좁을 때의 얘기다. 아무리 실력 있는 고수라도 수십 장이 넘는 폭넓은 강을 달려서 건넌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 하고 만통음제는 자신이 화경의 고수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넓은 회하를 단숨에 달려서 건너 버렸다. 만약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기절초풍했을 일대 사건이었지만 강 위를 달려가는 만통음제의 표정은 무표정하기 그지없었다.
만통음제는 회하를 건넌 후, 곧장 눈에 띄는 나무 꼭대기로 몸을 날렸다. 그는 나무 꼭대기에서 중심을 잡고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허어, 참. 이 근처라고 들었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듣고 온 정보가 그다지 많지 않다 보니 팽선 일행을 찾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때, 저 먼 곳에 짙은 야행복을 입은 괴한이 은밀하게 이동하는 모습이 그 의 눈에 포착되었다. 머리까지 두건으로 가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결코 팽선 일행은 아닌 것이 확실했다. 수천 명이나 된다는 팽선 일행이 저렇게 얼굴을 가리고 다 닐 이유가 없을 테니까.
“흐흐흐,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먹잇감이 제발로 나타날 줄이야……. 저놈에게 물어보면 되겠군.”
말을 마치기도 전에 만통음제의 신형은 매가 병아리를 낚아채기 위해 하강하듯, 녹의괴한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수박덩어리처럼 둥그런 것이 둥둥 떠서 흘러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의 머리통이었다. 진팔이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한겨울에 강을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요 근래 적진을 정찰하기 위해 밤마다 헤엄쳐서 건너다니느라 죽을 지경이었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이었다. 오늘이 바로 행동을 개시하는 날 이었으니까.
강기슭에 도착한 상태에서도 진팔은 몸을 일으키지 않고 주위를 세심하게 살폈다.
‘역시 저기 오는군.”
모든 것이 예상대로였다.
매일 밤, 이곳을 들락거린 결과 경비병들이 언제 순찰을 도는지는 이미 파악을 끝낸 상태였다. 놈들은 반시진 단위로 순찰을 도니까 저들이 한 바퀴 돌고나면 그다 음 경비병들이 올 때까지 반시진의 여유가 있는 셈이다. 경비병들이 다가오자 진팔의 머리통은 슬그머니 물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경비병의 수는 4명이었는데, 앞에 선 하나만이 밝은 횃불을 들고 있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서 그런지 그들의 걸음은 매우 빨랐다. 대충 형식적으로 훑어 본 다음 조금이라도 빨리 따뜻한 불가로 돌아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경비병들이 멀어진 후, 물속에서 천천히 진팔의 머리가 떠올랐다. 진팔은 물속에서 눈만 내놓고 주위를 두리번거린 다음 그들이 완전히 갔다고 판단된 다음에야 물 밖으로 나왔다.
찬바람이 불어오자 온몸에 지독한 냉기가 돌기 시작한다. 오히려 방금 전 살얼음이 맺혀있던 강물속이 더 따뜻했던 것 같을 정도다. 공력을 일주천시켜 냉기를 막 아보려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진팔은 손바닥을 세차게 비벼 조금이라도 온기를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우선 손의 감각이라도 살아나야 무공을 펼치는데 수월 할 테니 말이다.
“이런 떠그랄. 오늘은 날씨가 지랄 같아서 그런지 더 추운……. 아니군. 초승달까지 완전히 가릴 정도로 구름이 잔뜩 끼었으니, 오히려 하늘이 돕고 있다고 해야 하나? 어쨌건 날씨는 좋은 것 같군.’
너무 추워서 그런지 갑자기 재채기가 나오려고 한다. 진팔은 사력을 다해 참아봤지만 이건 도저히 참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는 재빨리 입을 틀어막아 소리가 밖으로 새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크욱.”
진팔은 흘러내리는 콧물을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소매로 훔치며 재빨리 주위를 둘러봤다. 다행히 아무런 이상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한동안 주위를 살펴보던 진 팔은 행동으로 들어갔다. 작은 돌맹이를 들어 강의 중심을 향해 힘껏 던진 것이다. 저쪽에서 배를 타고 대기하고 있을 사저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파공성 이 흘러나올 정도로 내력을 집어넣은 것도 아니었건만, 돌멩이는 곧바로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진팔은 곧바로 돌멩이를 하나 더 집어 들었다.
‘하나 더 던질까? 아니야.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괜히 소리를 낼 이유는 없으니까.”
진팔이 돌멩이를 하나 더 던질까 말까 궁리하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때, 살그머니 물길을 가르는 소리가 찰그랑찰그랑 들려오기 시작했다. 진팔은 돌멩이를
내려놓고 다시 한 번 주위를 주의 깊게 둘러보기 시작했다.
진팔은 아직까지 천지문의 행동이 적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자신하고 있었지만, 그건 순전히 그의 착각이었다. 천지문의 행동은 오래전부터 장인걸 일당의 손아귀 속에 있었다. 밤마다 조선소를 살피러 오는 진팔의 행동을 장인걸은 마치 재미있는 놀이라도 되는 듯 즐겁게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팔이 돌멩이를 던지는 것을 보고 장인걸의 입꼬리는 음흉스럽게 말려 올라갔다. 오랜 기다림이 끝나고 드디어 결실의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지 그의 목소리는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크흐흣, 드디어 두더지들이 움직이는 것인가?”
장인걸은 옆에 서 있는 무사들에게로 슬쩍 시선을 돌렸다. 무사들은 모두 장인걸과 똑같은 시커먼 야행복을 입고 있었는데, 냉막한 표정뿐 아니라 4척이나 되는 장검(長劍)을 등에 메고 있다는 점까지 똑같았다. 그들의 몸에서는 무시하기 힘든 괴이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이들은 진팔의 민감하기 그지없는 이 목을 완전히 속일 수 있을 만큼 멀찍이 떨어진 이 산꼭대기에 모여 있었던 것이다.
장인걸은 자신의 뒤에 늘어서 있는 4명의 무사들 중 한 명에게 질문을 던졌다.
“왕걸(傑) 대장. 자네 생각은 어떤가? 편복대주의 말대로 화경급 고수가 나타날까?”
제6대장 왕걸이 여기 모여 있는 4명의 대장들 중에서 가장 선임이었기에 그의 의견을 물은 것이다. 하지만 왕걸은 전혀 감정이 섞이지 않은 딱딱한 어조로 대답했 다.
“속하의 짐작이 무슨 필요가 있겠사옵니까?”
장인걸은 싱긋 미소지으며 말했다.
“자네 말이 옳군. 한낱 짐작 따위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조금만 기다려 보면 알 수 있는 것을.”
장인걸은 슬쩍 시선을 돌려 편복대주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그쪽에는 쓸 만한 놈이 있다고 하던가?”
장인걸이 말하는 「그쪽은 팽선 쪽으로 가 있는 제7대를 말하는 것이었다. 편복대주는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그쪽에서는 아직까지도 화경급 고수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하옵니다.”
“흐음, 역시 나타난다면 이곳인가?”
장인걸은 좀 더 안력(眼)을 돋워 칠흑과도 같이 어두운 강물 위를 쏘아봤다. 과연, 수십 척에 달하는 배들이 살금살금 접근해 오는 것이 보였다.
“기대가 되는 도다. 과연 몇 놈이나 올 것인지. 기왕이면 수라도제가 왔으면 좋겠군. 크흐흐흣.”
편복대주는 팽선이 이끄는 세력의 상륙 정보를 듣자마자 곧바로 이것이 놈들의 계책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잘하면 대어를 낚을 듯한 예감이 들었기에 그는 지체치 않고 장인걸에게 달려갔다.
“교주님, 이번에 대어(大魚)를 낚을 수 있을 듯하옵니다.”
대어라는 말에 장인걸의 눈이 음산하게 빛났다.
“대어라고? 그래, 무슨 일인데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무림맹에서 파견한 것으로 보이는 상당한 규모의 세력이 홍택호의 상류 쪽에 상륙했다는 정보를 보내왔사옵니다. 회하 강변을 둘러보고 있던 순찰병들이 그들을 발견했다 하옵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장인걸은 편복대주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무래도 놈들이 노리는 것이 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놈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이지?”
편복대주는 품속에서 널찍한 지도를 꺼내어 장인걸이 잘 볼 수 있도록 펼쳤다. 그런 다음 그는 상륙 지점에서 적이 움직일 만한 위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 했다.
“저들의 행동에 관해 구체적인 보고가 아직 올라오지 않았기에 명확히 단정할 수는 없사옵니다. 하지만 군사적인 관점에서 유추해 본다면, 현재 저들이 상륙한 곳 에서 움직일 만한 곳은 서주(徐州)외에는 달리 없을 것이옵니다.”
서주는 화북평원의 운송의 중심이자 중요한 상업도시였기에 그곳이 약탈당하거나 파괴당한다면 금 제국은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 도 장인걸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흐음, 서주라고? 놈들이 그리로 움직여서 뭘 하겠다는 것일꼬?”
만약 장인걸이 진짜 군부의 장수라면 서주를 구하겠다고 날뛰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인걸은 원래가 뼛속까지 무림인이었다. 지금은 일이 워낙 꼬이다 보니 팔자에 도 없는 대원수 노릇을 하고 있었지만, 군인들의 움직임보다는 무림인의 행동양식을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사파라면 혹 모르지만, 정 파놈들은 결코 양민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를 리가 없다는 점을 말이다.
“그렇기에 속하가 군사적인 관점이라고 말씀드린 것이옵니다. 만약 상륙한 대상이 송군이었다면 서주로 직행할 것이 분명하옵니다. 하지만 수하들의 보고대로 이 들이 송군이 아니라 무림인들이라면 서주를 공격할 이유가 없습지요.”
편복대주의 말에 장인걸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본좌도 이유를 모르겠구먼. 왜 저들이 저토록 드러나게 행동하는 것인지 말이야. 아무리 허접한 놈들이라도 순찰병 따위에게 발각될 정도라면, 그게 무공을 배운 놈들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혹시 송군 놈들이 변복(變服)을 하고 진군하는 것은 아닐까?”
“속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즉시 편복대 제14대를 그곳으로 급파했사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사옵니다. 그 때문에 수하들의 보고도 받지 않고 교주님께 달려온 것이옵니다.”
“그래 그것이 뭔가?”
“속하의 짐작으로는 이곳이 들통난 것이 아닐까 사료되옵니다만..”
편복대주가 가리킨 곳을 본 장인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회하를 건널 군선들을 건조하고 있는 조선소가 있는 곳. 그곳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너무나 도 잘 알고 있는 장인걸은 노성을 터뜨렸다.
“본좌가 그토록 비밀을 유지하는데 만전을 기하라고 재삼 명했건만, 일을 어찌 처리했단 말이냐?”
편복대주는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노화를 거두시옵소서, 교주님. 오히려 이것이 하나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이옵니다.”
「기회」라는 말에 장인걸의 얼굴에 슬쩍 흥미가 떠올랐다.
“기회라니? 무엇이 말이냐?”
“저자들이 치려는 것이 조선소가 맞다면, 그곳에 상륙한 것도 무림인이 확실할 것이옵니다. 송군 떨거지라면 몇만 명이 상륙한다 해도 감히 조선소를 넘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림인이고, 또 조선소를 넘본다고 가정한다면 한 가지 문제점이 있사옵니다.”
“뭔가?”
“바로 거리이옵니다. 만약 저들이 직접 이곳을 칠 생각이 있었다면, 이렇게 먼 곳에 상륙하지는 않았을 것이옵니다. 목표 지점까지의 거리가 400리에 달하지 않사 옵니까? 그자들의 전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단숨에 치고 들어올 만한 거리는 절대로 아니옵니다.”
장인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흐음, 그러니까 자네의 말은 어딘가 계략이 숨어있다는 말이로구먼.”
편복대주는 깊숙이 고개를 숙인 후 대답했다.
“예. 속하가 판단하기로는 그것들이 감히 교주님을 상대로 어설픈 성동격서의 계책을 쓰고 있다고 사료되옵니다.”
장인걸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편복대주가 펼쳐들고 있는 지도를 살펴본 후 입을 열었다.
“그래? 자네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대응책도 마련했겠지?”
“예. 전갈을 받자마자 조선소 부근을 은밀히 수색하라고 수하들에게 일러두기는 했사오나, 보고를 기다릴 것도 없이 그 일대에 소수의 정예가 치고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사옵니다. 속하는 아마도 그 기습조를 지휘하는 자가 최소한 화경급은 될 것이라고 생각했사옵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만 조선소를 확실하게 파괴할 수 있을 테니 말이옵니다.”
편복대주가 아뢰는 계책을 듣고 있는 장인걸의 안색에는 음흉스런 미소가 짙어지고 있었다.
“본좌의 생각도 그대와 같도다. 화경급의 고수라……. 크흐흣. 안 그래도 놈들에게 뛰어난 고수가 많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었는데, 잘 되었구나. 이 기회에 몇 놈 없애 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장인걸이 이번 작전에 투입한 천마혈검대의 고수는 5개 대, 총인원 40명씩이나 된다. 대주를 포함한 천마혈검대의 전체 인원이 81명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전 력을 이곳에 집결시켜 놓은 셈이었다. 그들 중 이천진(李任振) 대장이 이끄는 제7대, 8명은 팽선 장로가 지휘하는 연합세력이 침입해 온 곳에 가 있었고, 나머지 4 개 대는 이곳에서 장인걸과 함께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윽고 놈들의 배들이 강가에 접안했고, 수백의 인원들이 앞 다투어 병장기를 들고 뛰어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곧 있으면 화경급 고수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 른다는 기대감에 장인걸의 심장은 박동 수가 조금 빨라졌다.
두근두근.
“놈들의 퇴로를 막아라.”
조선소 양옆에는 각기 100명씩의 병사들이 작은 배 10척에 나눠 타고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출동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인걸의 말은 이들을 출동시켜 퇴 로를 막으라는 명령이었던 것이었다. 물론 출동 명령은 불빛이나 소리 같은 것을 신호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적이 모르게 은밀히 움직여 퇴로를 차단해야 하는 만 큼, 그렇게 뻔히 보이는 신호를 줄 수는 없었기에, 전령이 직접 그들에게 달려가야만 했다. 편복대주가 슬쩍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자, 두 명의 편복대원들이 각자 맡 은 임무대로 매복조를 향해 달려갔다.
장인걸은 명령을 내린 후, 계속적으로 적들을 살펴봤다. 화경급 고수라 해도 모든 기척을 숨길 수 있다는 반박귀진(返縛歸眞)의 경지에 들어간 것은 아니기에, 잘 살펴보면 상대가 어느 정도로 뛰어난 고수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워낙 거리가 멀었기에 극마의 고수인 그라고 해도 상대의 실력을 한눈에 꿰뚫는 것은 불가 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일단 공격이 시작된 후, 적들이 반항을 시작해야 화경급 고수가 이 안에 섞여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두운 강위로 20척의 작은 배들이 날쌔게 움직이는 모습이 장인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자 그는 즉시 공격 명령을 내렸다. 이제 퇴로가 차단된 이상 놈들은 옴
치고 뛸 수 없으니 지닌 실력을 다 발휘하여 이곳을 탈출하려 할 것이 분명했다.
“지금이다! 하루아 장군에게 공격 신호를 보내라.”
“옛, 교주님.”
장인걸의 뒤편에 서 있던 제6대장 왕걸이 날카로운 장소성(長嘯聲)을 날렸다.
휘이이익!
그가 분 휘파람에는 강력한 내공이 실려 있어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잠시 후, 저 산 아래쪽에서 「우와아아아!」하는 괴성이 아련히 들려오며 800명에 달하는 고수 들이 적들을 향해 돌진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방금 전 장인걸이 보낸 신호를 들은 하루아 장군이 적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맞춰 강 위에 떠 있는 배들이 일제히 횃불을 밝혀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냈다. 물론 이것은 적에게 자신들이 있음을 알리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이렇게 어두워서는 적들을 향해 화살 한 발 날리기 힘들기에 주위를 밝히기 위해 횃불을 각 배당 대여섯 개씩이나 밝혀 놓은 것이다. 일단 상대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드러 나자 그들은 각자 활을 꺼내들고 침입자들을 향해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조선소에 침입한 적들은 강쪽으로의 퇴로가 갑자기 막히고, 또 무지막지한 화살 세례가 퍼부어지자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 허둥대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 하루아 장군이 지휘하는 800명의 고수들이 그들을 덮쳤다.
아래쪽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를 기대어린 눈빛으로 꼼꼼하게 살펴보던 장인걸은 곧이어 허탈한 음성으로 외쳤다.
“이럴 수가……. 그토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렸건만, 쓸 만한 놈은 하나도 안 왔다는 말인가?”
그 말에 편복대주는 급히 저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아래쪽은 너무나도 컴컴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과연 교주의 말이 맞을까?’하는 의구심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편복대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교주는 극마의 고수. 교주가 없다고 하면 없는 것일 것이다.
편복대주는 급히 부복(俯伏)하고는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으며 사죄했다.
“속하가 대세를 잘못 읽어 지고하신 교주님께서 헛걸음하시게 한 점 사죄드리옵니다. 속하를 벌하여 주시옵소서.”
편복대주의 우려와 달리 장인걸은 그리 속 좁은 인물이 아니었다. 장인걸은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핫! 작은 부분이 틀렸다고 해서 징죄를 한다면 누가 본좌를 믿고 큰일을 도모하겠는가? 어찌되었건 자네의 말이 거의 대부분 맞았지 않은가? 그러니 일어서 게.”
“속하의 큰 허물을 이렇듯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니 너무나도 감사하옵니다, 교주님.”
장인걸은 떨떠름한 어조로 말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것이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래, 이 대주 쪽은 어떻다고 하던가?”
팽선을 상대하고 있는 제7대의 경우에도 아직까지 그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고, 조금씩 미끼를 투입해 가면서 상대편의 전력을 탐색하고 있는 중이었다. 만약 그들 중에 화경급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제7대 혼자서는 상대하기가 힘들기에, 즉시 전령을 보내오기로 되어있었다.
“아직 연락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그쪽도 없는 모양이옵니다.”
장인걸은 아쉬운 듯 입맛을 쩍쩍 다시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 호랑이는 빠졌더라도 이 정도에서 만족하는 수밖에. 이천진 대장과 워더리 장군에게 전령을 보내어 더 이상 시간 끌 필요 없이 끝장내 버리라고 전 하게. 이쯤에서 작전을 종료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먼.”
워더리 장군은 장인걸의 정예무사 1천과 그 주위에서 끌어 모은 5만에 달하는 병력을 거느린 채, 공격 명령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워더리 장군이 거느 린 병력으로 적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이천진 대장이 지휘하는 제7대가 정면에서 공격한다면 그쪽으로 진입해 들어온 무리들도 이곳에 들어온 놈들처럼 전멸을 면 키 힘들 것이다.
“알겠사옵니다, 교주님.”
“크흐흐흣, 가소로운 것들. 본좌를 향해 잔머리를 굴리다니.. 단 한 놈도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음이야.”
이렇게 되어 지금까지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며 편복대주가 수립한 조호이산지계(調虎離山之計)가 막 결실을 거둬들이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노리고 있었던 호랑이가 그물에 걸려들지 않았으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장인걸로서도 내심 아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때, 장인걸의 눈이 이채롭게 빛났다. 저 멀리 강 건너편 하늘 위에서 붉은 불꽃이 번쩍이는 것을 봤던 것이다. 곧이어 그것에 답하듯 그보다 훨씬 더 먼 곳에서 역 시작은 불꽃이 빛났다.
장인걸의 입꼬리가 슬쩍 위로 올라갔다. 꺼져가던 희망이 다시금 불붙기 시작한 것이다.
“호오, 뭔가 또 다른 준비가 있는 모양이군.”
장인걸은 다시금 시선을 저 아래쪽의 난장판으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크흐흣, 뭔지는 모르겠지만 기대가 되는군. 화경급이라도 뛰어오려나?”
장인걸이 음흉스런 웃음을 토해 내고 있을 때, 갑자기 어둠을 뚫고 녹색 야행복을 입은 사내가 달려왔다. 편복대 소속의 전령이었다. 그는 장인걸을 발견하자마자 땅바닥에 납죽 엎드리며 외쳤다.
“교주님, 이천진 대장님의 전갈이옵니다. 화경급 고수 한 명이 나타났사온데, 그 처리를 어찌해야 하올지 하명해 주시옵소서.”
장인걸의 두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포기했던 꿈이 다시 열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장인걸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뭣이? 그래, 그놈이 누구라고 하더냐?”
“그것까지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사옵니다. 턱수염을 아주 길게 기르고 있는 자이온데, 처음에는 권법을 사용하더니, 잠시 후 떨어져 있던 검을 집어 들고 사용했 사옵니다.”
“권법과 검을 사용했다?”
장인걸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수라도제 그 늙은 것은 아닌 모양이군. 어찌되었건 가자.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놈만은 필히 죽여야 한다.”
막 출발하려던 장인걸이 멈칫하더니 뒤돌아서서 제8대장, 조대삼(趙大三)을 호명했다.
“조대삼 대장.”
“옛 교주님.”
“이곳에도 혹시 화경급 고수가 출몰할지도 모르니, 자네가 여기에 남아 있다가 그런 놈이 출현하면 본좌에게 속히 연락을 보내라. 그런 다음 놈을 본좌가 있는 곳 으로 유인해라. 그 뒤는 본좌가 처리하겠노라.”
“존명.”
장인걸은 전력을 다해 경공술을 전개하여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속도가 너무나도 빨랐기에 편복대주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장인걸이 전력을 다해 경공을 전개하는 것은 그도 처음 봤던 것이다.
곧이어 제6대장 왕걸이 길게 휘파람을 불더니 장인걸의 뒤를 따라 달려갔고, 다른 대장들도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저 밑에서 따로 대기하고 있던 천 마혈검대원들이 대장들의 뒤를 따라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가 버렸다. 그것을 보고 있던 편복대주는 끓어오르는 자부심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교주의 무공은 극마급이라고 들었으니 엄청나게 대단할 것을 처음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마혈검대원들이 전력을 다해 경공을 펼치는 것은 지금 처음 봤 던 것이다. 주위의 사람을 압도하는 엄청난 마기(氣)를 뿜어내기에 어느 정도 강할 줄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설마 그들 개개인의 실력이 저 정도일 줄이야. 그들 이 달려가는 속도는 결코 교주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빨랐다. 그런 자들이 81명씩이나 교주 휘하에 모여 있는 것이다.
‘천마혈검대의 모든 고수들이 다 저 정도의 실력자들이라면, 교주님께서 중원을 취하고자 하시는 것도 결코 꿈은 아니야. 아아, 가슴이 끓어오르는구나. 나는 정말 주인을 잘 만났어.’
옆에 조대삼 대장이 없다면 광소라도 터뜨렸겠지만, 그는 감히 그 앞에서 그런 무례한 짓을 할 수가 없었다. 천마혈검대의 고수들이 뿜어내는 마기는 너무나도 강 렬하여 편복대주라 할지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들을 향한 공포감은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편복대주는 조대삼 대장을 향해 말을 걸었다.
“조대삼 대장님.”
“왜 그러시오?”
“저는 이곳의 일이 다 끝났기에 수하들과 함께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그렇게 하구려. 지금껏 수고가 많았소.”
“예. 수하 몇을 남겨두고 가겠으니 전령으로 이용하십시오.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편복대주는 조대삼 대장에게 깊숙이 절을 한 후, 수하들에게 손짓을 하며 돌아갔다.
만통음제는 소연을 찾아 달려가던 중 의문의 고수들을 발견했다. 모두들 뛰어난 실력을 지닌 고수들이었는데, 몸에서 뿜어 나오는 짙은 마기만 봐도 마공을 연성 했음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묵향이 이 일대에 투입한 마교단체는 흑풍대 뿐이었고, 그들은 저렇게 강렬한 마기를 뿜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들은 흑살마왕의 수하 들임에 분명했다.
관지에게 듣기로는 팽선은 무려 3천에 달하는 고수들을 거느리고 금군을 압박하기 위해 진격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동생은 소연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말도 했다. 또, 관지는 자신에게 혼자 가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으니 함께 움직이시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까지 했었다. 그렇다면 동생은, 아니 마교에서는 장인걸이 팽선의 세 력을 격파하기 위해 방대한 전력을 투입했다는 정보를 어디선가 입수했음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증거가 만통음제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8명이나 되는 절정고수가 수하들도 대동하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의 무공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절대 그들만으로는 3천씩이나 되는 고수를 전멸시킬 수 없다는 것을 만통음제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 외에도 많은 장인걸의 수하들이 팽선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아마 이들은 팽선의 세력을 무찌르기 위한 주력세력을 도와 주기 위해서 그곳으로 이동하고 있던지, 아니면 그 주력세력을 이끄는 수뇌부일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지 않 은가. 만통음제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그들을 없애 버리기 위해 달려들었다.
1대 8의 싸움. 대결이 시작되자마자 상대방은 등에서 4척씩이나 되는 핏빛장검을 뽑아들었다. 그것을 본 만통음제는 이놈들이 마교에서 흑살마왕과 함께 이탈한 천마혈검대(天魔血劍隊)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천마혈검대는 무림사에 일획을 그을 정도로 막강한 집단이었다. 그들 개개인의 실력도 무서운 것이었지만, 그들의 진정한 무서움은 그 엄청난 수에 있었다. 일문 의 장로급에 해당하는 강자가 101명이나 되는 것이다. 그들이 한꺼번에 진을 짜서 움직이면 설혹 화경급 고수라고 해도 그들의 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과거 만통음제의 사부는 4척이나 되는 핏빛장검 즉, 천마혈검(天魔血劍)을 사용하는 마인들을 만나면 무조건 도망칠 것을 당부했었다. 마교 최강의 단 체 천마혈검대를 상대로 혼자 싸운다는 것은 그야말로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을 정도로 어리석은 행위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부가 천마혈검대에 대해 그에게 말해 줄 때, 무조건 도망치라고 권한 것은 천마혈검대의 그 엄청난 숫자 때문이었다. 인간의 무공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그 많은 수를 혼자서는 절대로 감당할 수가 없다고 사부는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만통음제는 지금 사부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만통음제가 생각하기에 천마혈검대 전체라면 응당 사부의 뜻을 좇아 도망치는 것이 옳겠지만, 그들 중 8명이라면 한번 해 볼 만한 것이다. 아니, 자신의 먹잇감으 로 딱 좋은 숫자에 불과했다.
만통음제는 그들을 빠른 시간 안에 없애 버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아야만 했다. 그놈들은 그로서도 처음 보는 아주 특이한 진(陣)을 짜서 대항하고 있었기에 상대하기가 조금 까다로웠던 것이다.
1시진 정도 싸우고 나자 만통음제는 상대가 시전하고 있는 진법에 점차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명호에 만박통지(萬博通知) 즉 만통(萬通)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그다. 진법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이 있는 그에게 그 정도 시간 여유를 준다면 파훼까지는 힘들더라도 그 특성정도는 파악하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만통음제가 서서히 우위에 서기 시작했다. 허점을 파고드는 만통음제의 예리한 공격에 상대가 조금씩 손해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들은 재빨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상대가 불가능함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흥! 그런다고 순순히 보내줄 것 같으냐?”
등을 보인 순간, 저들의 단결된 방어력은 일순간 무너졌다. 그 틈을 놓칠 만통음제가 아니었다. 순간의 틈을 이용하여 만통음제의 양손에서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두 줄기의 강기가 날아갔다. 화경의 고수가 발출한 것인 만큼 그것은 엄청난 파괴력을 내재하고 있었다. 목표물로 찍힌 둘은 재빨리 방향을 틀었지만, 뒤쫓아 오는 강기다발도 마치 눈이라도 달린 듯 순식간에 각도를 꺾으며 따라붙었다.
퍼펑!
“크윽!”
“으악!”
심장 부근을 관통당한 것이다. 볼 것도 없이 즉사였다. 두 놈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을 때, 만통음제는 이미 공격을 가한 놈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두 번째 먹 이를 향해 지금까지 품속에 숨겨두고 있던 혈영비를 날렸다. 혈영비는 저녁노을처럼 붉은 광채를 뿜으며 날아갔다. 검을 사용하는 무공의 마지막 경지라는 어검술 (御劍術)이었다.
날카로운 파공성을 흘리며 날아간 만통음제의 검에 다시금 세 명의 적이 땅바닥에 쓰러졌고, 그때 만통음제의 몸은 어느새 다른 적들을 따라 전력으로 달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화경을 깨달은 자들이나 할 수 있을 법한 기민하기 그지없는 몸놀림이었다.
“이제 세 놈 남은 건가?”
이때 갑자기 만통음제는 자신을 덮쳐오는 강렬한 기운을 느꼈다.
“허억!”
‘뒤로 간 놈이 있었나? 아냐! 그럴 리가, 그쪽으로 간 놈은 몽땅 다 죽였는데.”
그는 재빨리 몸을 틀어 뒤에서 가해진 기습 공격을 전력을 다해 막았다. 그의 손이 기이한 각도를 그리며 움직이며 두터운 강기의 벽을 쌓았다.
퍼펑!
공격은 하나가 아니었다. 무려 다섯 줄기나 되는 강기의 다발들. 아마도 어검술을 쓰면 파공성이 흘러나오기에 좀 더 공력 소모가 크더라도 은밀한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강기를 날린 모양이었다. 예상치도 못한 기습 공격에 만통음제는 크게 낭패를 당할 뻔 했지만, 화경의 고수답게 아무런 피해 없이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데 성 공했다.
이때, 만통음제의 시선에 이미 죽어서 쓰러져 있어야 할 다섯 놈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 놈도 안 죽었잖아. 이게 어찌된.
만통음제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맞다. 귀혼강신대법(歸魂?身大法)! 저놈들도 그걸 익혔구나. 하기야 장인걸과 함께 마교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20여 년인데, 저놈들이 그걸 안 익혔을 리가 없 지.’
수라도제와 패력검제, 황룡무제가 일차적으로 흑살마왕 패거리와 일전을 벌인 후, 그 황당함에 대하여 떠들어댄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그런 희한한 무공도 있 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직접 당해보니 이 시대 최강자들인 그들이 그토록 당황했던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심장을 바숴 버렸는데도 멀쩡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인간이 있다니, 정말 경악감을 감추기 힘들었던 것이다.
“저런 인간 같지도 않은 놈들과 꼭 싸워야 할까??
하지만 이건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저런 강시 같은 놈들은 기회가 있을 때 보이는 족족 없애 버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리고 지금 처럼 본대에서 떨어져 나와 있을 때가 최적의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가만있자, 머리통만 박살내면 된다고 했나? 그렇다면 이건 더 이상 필요 없겠군.”
만통음제는 혈영비를 다시금 품속에 집어넣은 후,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오늘 노부를 만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