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2권 1화 – 천마동에서 나온 아르티어스 옹
천마동에서 나온 아르티어스 옹
천마신교 외총관 삼면인마 소무면 장로는 요즘 들어 무지하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년쯤 전만 해도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려야만 했던 때와 비 교하면, 지금은 하루하루가 눈알이 핑핑 돌아갈 정도로 바쁘게 흘러가고 있었다.
묵향 교주가 돌아온 후, 마교는 노선을 완전히 바꿨다. 그것은 바로 그가 꿈에도 그리고 있었던 중원 진출이다. 설무지가 중원에 있는 모든 분타들을 철수시켜 버 린 상황이었기에, 그는 교주의 명령에 의해 수십 개에 달하는 분타들을 한꺼번에 만들어야만 했다.
이것만 해도 엄청난 일거리인데, 그 외에 새로운 일거리까지 생긴 상황이다. 즉, 교외에 나가 있는 전투대들에 대한 지원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마교를 빠져 나갔음으로 인해 총단의 방어선에는 엄청난 구멍이 뚫린 상태였다. 얼마 전 패력검제가 난동을 부릴 수 있었던 것도 다 총단 내의 주력 전투대들이 외부로 빠져나갔 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상대가 아무리 화경급 고수라고 하지만 겨우 한 명이 그토록 난리를 칠 수는 없었다.
“이봐, 식량 보급에 대해서 알아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되었나?”
“최대한 비밀을 요하는 상태에서 식량을 수송하려면, 안휘성 분타에서 보내는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외총관님.”
“안휘성 분타가 3천6백 명이나 되는 인원이 먹을 식량을 비밀리에 수송할 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을까?”
“그렇다면 주위에 있는 다른 분타들에서 인원을 차출하여 안휘성 분타를 지원해 주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일단 모두들 건량을 넉넉하게 지닌 상황에서 출발했으 니, 한 달은 버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겠군.”
이때, 소무면 장로는 실내로 들어오는 수석장로를 발견하고 재빨리 자리에 일어섰다.
“아니, 여기까지 오시다니…, 통보를 주셨으면 제가 그쪽으로 갔을 텐데 말입니다.”
“아닐세, 한참 바쁜 걸 뻔히 아는데, 노부가 이쪽으로 오는 게 옳겠지. 본교에 있는 거의 모든 세력이 빠져나간 관계로 자네가 고생이 많구먼.”
“일거리가 없어서 빈둥거리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낫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구먼.”
“그런데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 말일세.”
“무엇을 말입니까?”
“내 홍진 장로에게서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는데 말이야.”
홍진 장로라면 교주 직속의 정보 단체 비마대의 대주다. 그가 해 준 재미있는 얘기라면,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아주 비밀스런 정보일 것이다. 그 런데 왜 정보 단체의 장도 아닌 자기에게 찾아와서 그것에 대해서 물어본다는 말인가? 소무면 장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어떤 재미있는 얘기였습니까?”
“초 부교주님께서 요즘 마영각에 간혹 들르신다고 들었는데, 자네도 혹시 알고 있었나?”
초류빈 같은 무공광이 마영각에 들락거릴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소무면 장로는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마영각이라구요?”
소무면 장로는 부하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명령했다.
“마영각에서 보내온 보고서를 가져와라.”
“옛.”
잠시 후 부하는 두툼한 문서철을 가져왔다.
“흐음…, 그게 사실이라면 마영각주가 올린 보고서에 그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텐데….
이리저리 문서를 뒤적거리던 소무면 장로는 이윽고 문서 하나를 집어 들며 외쳤다.
“여기 있군요.”
소무면 장로는 문서의 내용을 쏜살같이 읽어 내린 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것을 수석장로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허허, 초 부교주님께서 본교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 대상이 겨우 허드렛일이나 하는 하녀라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초 부교주님께서는 원래 여색을 탐하시는 분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하다는 거죠. 하룻저녁 수청을 들어드리도록 예쁘게 단장시켜서 그분의 처소로 보내야 할지, 아니면 중매를 서야 할지. 웬만한 계집이라면 중매를 서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겠지만, 그 계집의 신분으로 봤을 때 말을 잘못 꺼냈다가 그게 아닐 경우 되려 이쪽에서 경을 칠 우려도 있지
않습니까?”
“그럴 가능성도 있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것들보다도 부교주님께서 눈독들이고 계신 계집을 다른 놈이 건드리는 거야. 행여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자네가 신경 좀 쓰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하는 말일세, 알겠나?”
“예, 명심하겠습니다.”
“부탁 좀 하겠네. 만약 나중에 이 일로 인해서 노부가 질책을 받게 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자네는 어찌 될지 알겠지?”
아주 노골적인 협박. 수석장로로서도 딴 일이라면 위쪽의 질책을 당한다 해도 참아 줄 수 있겠지만, 한낱 하녀 하나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하게 된다면, 결코 참고 넘 길 수는 없다는 말이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내 분명히 경고했네.”
“예, 예, 걱정 마십쇼.”
수석장로가 떠난 후, 소무면 장로는 도저히 못 참겠는지 문 쪽에다 대고 외쳤다.
“빌어먹을! 그딴 연애질에 관한 건 좀 한가한 사람에게 부탁하십쇼. 안 그래도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한 판에, 지금 누굴 놀리는 것도 아니고…….”
한 건 처리해 놓은 후, 수석장로는 가벼운 걸음걸이로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사실 교 내의 주요 무력 단체들이 몽땅 다 빠져나간 상황에서 지금 그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지금 가장 바쁜 사람은 외총관 쪽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무력 단체들이 빠져나간 공백까지 그들이 전부 메워야 했으니 말이다.
“향긋한 차나 한잔할까?”
흥얼거리며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수석장로. 하지만 그는 이내 자신의 집무실로 서둘러 돌아온 것을 후회해야만 했다.
“수석장로님, 천마동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천마동이라는 말에 수석장로의 얼굴에 긴장감이 흐른다.
“천마동? 혹, 어르신께서…….”
“예, 어르신께서 천마동에서 나오셨답니다.”
“헉! 그게 사실이냐?”
교주를 제외한 천하의 그 누구도 눈 아래로 보던 수석장로의 안색이 급격하게 새하얗게 변했다. 그만큼 천마동에서 나왔다는 어르신의 존재는 그에게 극심한 부담 감을 안겨 주고 있었다.
예전에는 마화가 어르신을 담당했었다. 그런데 그녀가 떠난 후, 어르신은 매우 상대하기 까탈스런 인물로 변해 있었다. 물론 이건 아르티어스 옹을 상대해 줄 묵향 이나 마화가 모두 빠져나가 버렸기에 벌어진 결과였지만, 홀로 총단에 남아 노친네의 짜증을 다 받아 줘야 하는 입장에 놓인 수석장로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었던 것이다.
“옛, 그분께서 나오시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왔다고 하니, 정확한 사실일 것입니다.”
“마천루(魔天樓)에 기별을 넣어, 그분께서 나오셨으니 대접에 소홀함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라고 해라. 만약 그분의 마음에 안 들었을 시, 본좌가 직접 목을 베겠다 고 말이야.”
“옛, 즉시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명령한 후, 수석장로는 일이 손에 안 잡히는지 안절부절못했다. 마교라는 대문파의 수석장로라면 해야 할 일이 녹록하지 않다. 확실히 아르티어스가 천마 동에서 나왔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수석장로는 본연의 침착함을 잃어버렸다. 그만큼 아르티어스라는 존재가 주는 압박감이 무겁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갑자기 왕지륜(王志)이 다시금 뛰어 들어오며 외쳤다.
“수, 수석장로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어, 어르신께서 지금 이쪽으로 오고 계시다는 전갈입니다.”
수석장로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뭣이? 이런 빌어먹을.”
수석장로는 황급히 밖으로 나가려 했다. 아르티어스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후다닥 뛰어 대전 밖으로 뛰쳐나오던 그는 재수 없게도 아르티어스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부하들에게 마천루로 모시라고 명령을 했지만, 아르티어스가 그들의 말을 들을 리 만무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무슨 볼일이 있는지 수석장로가 근무하는 이쪽으로 곧바로 걸어온 것이다.
“오, 안 그래도 자네를 찾아가던 참이었는데 잘되었군.”
수석장로는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뒤 아르티어스를 환영했다.
“어, 어르신, 어서 오십시오. 방금 전에 수하로부터 천마동에서 나오셨다는 기별을 받고, 어르신께 인사 여쭈러 서둘러 달려가던 참이었습니다.”
수석장로는 낯짝도 두껍게 둘러댔다. 하지만 그 아부가 통했는지 아르티어스의 안색이 활짝 펴졌다.
“그랬나? 나를 찾아올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흐흐흣, 내가 자네를 찾은 건 다름이 아니라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야.”
“하명하십시오.”
“아들놈은 지금 어디에 있나?”
“지금 양양성에 계십니다.”
당연히 아르티어스로서는 양양성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알 리가 없다.
“양양성에? 양양성이 어디에 있지?”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던 수석장로와 왕지륜의 눈이 마주쳤다. 순간 수석장로는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이놈이 조금만 더 빨리 통보해 줬다면, 이 빌어먹을 영감의 얼굴을 보 지 않아도 됐을 것이 아닌가. 뭘 생각했는지 수석장로의 눈빛이 모질게 빛났다. 그는 옆에 서 있는 왕지륜의 어깨에 손을 턱 올리며 아르티어스에게 너스레를 떨었 다.
“중원의 지리를 잘 모르실 테니 차라리 왕지륜이 어르신을 양양성까지 모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놈과 같이 가라고?”
왕지륜은 그 말에 사색이 다 되어 끊임없이 수석장로에게 구원의 눈짓을 보냈지만, 한 번 마음먹은 수석장로에게 그게 통할 리 만무했다.
“눈치 빠르고, 행동이 재빠른 놈이니 데리고 다니시면 편하실 겁니다.”
아르티어스는 왕지륜을 아래위로 쭉 훑어본 후 씨익 미소 지었다.
“흠, 딴 건 몰라도 맷집은 꽤 괜찮아 보이는군.”
그 말이 수석장로와 왕지륜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들렸다. 수석장로에게는 통쾌함을, 왕지륜에게는 절망의 손길로 다가왔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천마동에 웅크 리고 있던 아르티어스의 발길이 중원으로 향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