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2권 11화 – 무림맹에서 되살아난 마교의 꿈
무림맹에서 되살아난 마교의 꿈
하북팽가의 장로 팽선이 마교 교주에게 묵사발이 난 사건으로 인해 곤혹스럽기는 서문세가의 가주, 벽력도객 서문길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무림맹에서 회답이 오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전령을 보냈으면 빨리 답변이 와야 할 거 아냐!”
서문길의 질책에 총관은 쩔쩔매며 대답했다.
“무림맹까지의 거리가 있는데, 어찌 그리 빨리 회답이 오겠습니까. 최소한 1주일은 기다리셔야 할 겁니다.” 서문길은 도저히 짜증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꽝!
“젠장, 우르르 몰려와서 별의별 헛소리를 다 해 대는데, 그걸 앞으로 1주일은 더 참고 들어야 한다는 말이냐?”
서문길은 두통이 오는지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의 반응은 당연했다. 팽선 사건이 벌어진 직후, 양양성에 있는 한다하는 명숙들이 모두 다 그를 찾아와 어떻게 일처리를 하는 것이 옳은지 떠들어 댔기 때문이 다. 문제는 그 의견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모두 다 중구난방이라는 데 있었다.
교주의 횡포를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떠들어 대는 사람,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마교와 싸울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 심지어 그동안 팽선이 거들먹거리던 것이 눈꼴시렸다고 묵사발 난 게 고소하다며 씹어 대는 사람까지.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었다.
이 사건을 일으킨 마교 교주에게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주제에 자신에게만 몰려와 이래라 저래라 하고 있으니, 서문길로서는 울화가 치밀 만도 하지만 지금 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배분이 딸린다는 점도 있었지만, 마교와 관계된 일에 앞장서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교처럼 막강한 문파와는 될 수 있으면 개인적인 원한은 지지 않는 게 상책이다. 정과 사로 나뉘어 싸울 때야 대충 세력전을 하는 선에서 끝날 수가 있지만, 문파 대 문파가 된다면 마교와 싸워 살아남을 수 있는 문파는 단 하나도 없다. 화산파 같은 대문파도 하루아침에 멸문당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서문길은 이 모든 걸 무 림맹에 떠넘긴 채,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지 말고 교주와 만나 얘기라도 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답답한 소리! 무림맹에 기별을 넣은 이상, 맹의 결정에 따라야지. 내가 교주와 만나 얘기를 나눈다고 해서, 무슨 해결 방안이 생기겠는가? 자칫 그 불똥이 우리 가 문에 튀면 어쩌려고 하는가. 생각 좀 하고 말을 하게!”
서문길의 질책에 총관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속하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서문길도 서문길이었지만 끊임없이 몰려드는 명숙들을 상대해야 하는 총관 역시 죽을 맛이었던 것이다.
“이럴 때 아버님이 계셨어야 하는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던 서문길은 아버지인 수라도제를 떠올렸는지 살짝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어디론가 가 버린 수라도제지만 서문길은 그다지 걱정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마음의 벽을 깰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무공을 연마하다 보면 어느 순간 벽을 느끼게 되고, 그 벽을 넘을 수만 있다면 무공이 큰 폭으로 상승하게 된다.
화경의 고수가 벽을 넘는다면 현경이지 않겠는가. 만약 서문길의 바램처럼 수라도제가 현경의 고수가 된다면 무림사가 요동을 칠 게 분명했다.
***
양양성의 서문길로부터 긴급 보고를 접수한 무림맹의 수뇌부들은 다급히 모여 대책 회의를 가졌다. 아직 정확하게 사태를 파악한 것이 아니었기에 회의를 주재한 것은 맹주가 아니라 그의 오른팔인 청호 장로였다. 사실, 아직 정확한 내막도 모르는 일을 가지고 맹주가 직접 나서서 회의를 주관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도대체 교주가 그런 짓을 한 저의(底意)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공수개 장로.”
청호 장로의 질문에, 공수개 장로는 대답하기가 몹시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 글쎄올시다. 아직 본방에 요청해 놓은 정보가 도착하지 않아서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그렇다면 언제쯤이면 정확히 알 수 있겠소이까?”
“그건 저도 잘…….”
이때 옆에서 듣고 있던 백량 장로가 답답하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끼어들었다.
“개방만 믿고 기다리고 있을 게 아니라, 무영문 쪽에도 정보를 요청하는 게 낫지 않겠소이까?”
공수개 장로는 그 말을 꺼낸 백량 장로를 확 째려보기만 했을 뿐, 뭐라고 반박하지는 못했다. 사실 개방보다 무영문의 정보의 질이 좋다는 것은 자신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무영문 쪽에는 이미 부탁해 뒀소이다.”
청호 장로가 대답했지만 백량 장로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계속 자신의 주장을 주절거렸다. 골수까지 정파인 백량 장로인지라 처음부터 마교와의 협력 관계를 반대했다. 금나라와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대세에 밀려 입을 다물고 있던 그에게 이번 사건은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좋은 기 회였던 것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게 뭐가 있겠소이까? 보나마나 마교 놈들이 이번 전쟁에서 발을 빼려고 연극을 하는 것이겠지요.”
“그건 아닐게요. 그자는 장인걸과 철천지원수지간이 아닙니까? 원수를 갚으려면 본맹과 힘을 합치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그자도 잘 알 텐데, 뭣 때문에 동 맹을 파기하는 행동을 했겠습니까?”
그래도 백량 장로는 이죽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글쎄요. 아마 장인걸 쪽에서 기가 막히게 매력적인 제안을 했을지도 모르지요.”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다. 청호 장로는 잠시 생각을 해 보다 고개를 갸웃하며 대꾸했다. 그가 아무리 생각해도 서로 간의 원한을 잠재울 만한 매력적인 제안 따위 는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제안이라니요. 그게 가당키나 합니까? 놈이 어떤 제안을 한다고 해도 교주에게는 씨알도 안 먹힐 거외다. 서로 간에 쌓인 원한이 얼마나 큰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요. 자, 생각들 해 보시오. 마교가 지금껏 꿈꿔온 것이 바로 무림일통(武林統아니겠소? 장인걸은 그 꿈을 이뤄 줄 능력을 지니고 있소. 그놈이야 천하를 손에 넣을 수도 있을 테니, 무림쯤은 뚝 떼어 마교에 줘 버릴 수도 있을 거 아니오.”
그 말이 그럴듯한지 청호 장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를 처음부터 자신들과 같은 정파의 인물들처럼 생각했기에 제안의 답이 떠오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배 신을 밥 먹듯이 하는 사파의 특성을 감안해 본다면 말이 되었다.
“허어~, 그것 참. 그럴 수도 있겠구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추측이다. 처음 장인걸은 자신만의 힘으로 황실은 물론이고 무림을 몽땅 다 자신의 발아래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무작정 몰아쳤을 것이 다. 하지만 정과 사가 일치단결하여 황실을 돕자, 의외로 무너뜨리기가 힘들어졌다. 이때, 그가 꾀를 낸다. 둘 중 하나를 꼬셔서 자신과 같은 배를 타게 만든다. 그리 고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마교의 배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청호 장로는 소름이 오싹 끼치는 것을 느꼈다.
백량 장로를 바라본 청호 장로는 침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큰일이 아닙니까?”
자신의 말이 먹혀 들어가자 백량 장로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확신에 찬 음성으로 떠들었다.
“흑살마왕이나 암흑마제나 결국은 한 뿌리에서 나온 상종 못할 쓰레기들입니다. 그런 놈들을 믿고 일을 벌인 게 크나큰 실수외다. 그래서 내가 그 잡종들과 동맹 을 맺는 걸 그렇게 반대했던 거요.”
장내가 소란스러워지자 청호 장로는 탁자를 손바닥으로 탕탕 치며 소리쳤다.
“자자, 조용히들 하십시다. 아직까지는 암흑마제가 배신을 한 건 아니오. 하북팽가가 큰 피해를 당하기는 했지만, 그쪽에서도 막무가내로 일을 벌인 건 아니고 다 른 이유를 댔다고 하지 않소이까?”
기세를 탄 백량 장로는 탁자를 쾅 소리 나게 치며 소리쳤다.
“흥, 천지문 말씀입니까? 겨우 그따위 하찮은 이유로 팽가를 묵사발 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그놈이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얼마나 본맹을 하 찮게 보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지금 당장 뭔가 그에 합당한 응징을 가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맹의 권위는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 겁니 다.”
너무 과격한 주장에 청호 장로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백량 장로를 바라봤다. 만약 그 말이 사실로 드러나면 백량 장로의 말처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보를 모아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먼저다.
무림맹의 수뇌부라는 사람이 지혜를 모아 이 사태를 풀 생각은 없고, 무작정 무력을 통한 응징만 주장하고 있으니 회의를 주관하고 있는 청호 장로로서는 답답했 던 것이다.
“응징을 가하자구요? 그렇다면 고수들을 투입하여 이 사건의 주모자인 암흑마제의 목을 베자는 말입니까? 아니면 팽가가 박살 난 만큼의 피해를 마교 쪽에 가하 자는 겁니까? 참, 팽선이 폐인이 되었으니, 지금 양양성에 와 있다는 그 흑풍대주를 폐인으로 만들면 되겠군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만약 진짜 그런 일을 벌인다면, 마교와 정파는 또다시 피를 피로 씻는 전쟁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것도 금나라라는 오랑캐를 코앞에 두고 말이다.
백량 장로 역시 머리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비꼬는 듯한 청호 장로의 말에 대답을 하기 난처해지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그,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소이다.”
“그런 뜻이 아니라니……. 이따위 일로 마교와 반목해 봐야 결국 그들과 결별하는 결과만을 만들게 되지 않겠소? 오랑캐들과 대전을 치를 시기가 코앞으로 다가 왔는데 마교와 사이가 안 좋아져 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소.”
이대로 꼬리를 말기엔 백량 장로 역시 싫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마교의 행동을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거야 그렇지만, 그렇다고 이 일을 그냥 덮고 넘어갈 수도 없는 일이 아니겠소이까?”
“이 일을 벌인 암흑마제의 의도가 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겠지요. 그가 장인걸과 몰래 손을 잡은 것만 아니라면, 지금은 놈을 잘 달래서 써먹는 수밖 에 없소이다. 그리고 그 울분은 마음 깊숙한 곳에 담아 두고 계시다가 전쟁이 끝나면 마음껏 푸시구려. 그게 좋지 않겠소?”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공수개 장로가 앞으로 나섰다.
“청호 진인의 말씀이 옳은 듯 합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마교를 관찰해 보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길인 듯싶군요.”
공수개 장로까지 나서자 백량 장로는 마지못해 자리에 앉으면서도 이죽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팽가나 팽가와 친분을 맺고 있는 다른 문파들이 이 일을 어찌 받아들일지……..
그 일 역시 만만치 않은 것이기에 청호 장로는 난감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 잠시 참아야 했다.
“그쪽은 그쪽대로 따로 손을 써야겠지요.”
잠시 궁리를 하던 청호 장로는 백량 장로의 옆에 앉아 있는 만수 장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만수 장로.”
“예, 말씀하십시오, 사형.”
만수 장로는 무당파 출신으로서 청호 장로의 사제이기에 공식석상임에도 불구하고 깍듯이 존대를 쓴 것이다.
“자네는 팽가주에게 가서, 봄이 되어 전쟁이 재개되면 마교도들을 가장 앞에 세워 막대한 피를 흘리게 만들 테니 지금은 노화를 풀라고 설득 좀 해 주게.” 무림맹의 수뇌부 중 가장 팽가주와 허물없이 지내는 이가 만수 장로이기에 그에게 부탁한 것이다.
이때 옆에서 듣고 있던 공수개 장로가 조언을 던졌다.
“팽가의 경우 하북에서 쫓겨나 오랫동안 객지 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맹에서 약간이라도 지원을 해 준다면 팽가주가 좋아할지도 모릅니다.”
“호오, 그것도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려.”
어느샌가 대책 회의의 방향이 마교에 대한 보복에서 팽가주를 어떻게 달래느냐 하는 것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청호 장로는 다른 장로들을 설득하여 그들의 노기를 어느 정도 가라앉히는 데 최선을 다했다. 괜히 성질이 급한 장로들 중 한둘이 마교 쪽에 감당 못할 짓이라도 해 버리면 큰일이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런 다음 그는 맹주에게 회의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걸어갔다. 이때, 공수개 장로가 맹주에게 드릴 말이 있다고 했으므로 그는 공수개 장로와 함께 맹주실로 들어갔다.
마침 맹주는 감찰부주와 담소를 주고받고 있는 중이었다.
“어서 오게, 이리 앉게나.”
둘이 자리에 앉자, 맹주는 청호 장로에게 물었다.
“그래, 장로들의 생각은 어떻더냐?”
청호 장로와 감찰부주는 무당파의 은거고수였던 태극검제가 맹주에 선출되었을 때 무림맹에 데리고 온 인물들이다. 둘 다 태극검제의 사질들로서, 뛰어난 실력과 인품을 지닌 무당파의 고수들이었다.
맹주의 물음에 청호 장로는 쓸데없는 부분은 다 빼고, 회의 결과를 간략하게 간추려 대답했다. 그걸 다 들은 맹주는 수염을 쓱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흐음, 결국은 두고 보며 관찰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로군.”
“그렇습니다, 맹주님.”
“청호 사질, 교주가 팽가와 사단을 벌인 이유가 천지문 때문이라고 했느냐?”
“예, 서문가주가 보내온 전서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금나라를 상대로 벌였던 작전에서 천지문을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게 그 이유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청호 장로는 그때 있었던 작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보고서를 슬쩍 맹주 앞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맹주는 그걸 펼쳐 보지 않고 청호 장로에게 계 속 질문을 던졌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마교의 주장에 타당성이 있더냐?”
“조금 의심스러운 점은 있었습니다.”
맹주는 감찰부주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청수사질, 네 생각도 그러하냐?”
“예, 저도 사형과 같은 생각입니다. 천지문에서 큰 피해를 당한 것은 유감이지만 증거도 없는데, 팽선 같은 원로고수를 폐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너무 과한 처사 였습니다. 혹, 교주가 시비를 걸기 위해 일부러 트집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번에는 맹주의 시선이 공수개 장로에게로 옮아갔다.
“공수개 장로의 생각은 어떻소? 기왕에 여기 오셨으니 개방의 고견을 들려주시구려.”
공수개 장로는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저도 그 일 때문에 맹주님께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 찾아뵌 겁니다.”
공수개 장로는 청호 장로와 감찰부주의 눈치를 힐끗 살핀 후, 말을 이었다.
“어쩌면 교주의 의도는 다른 데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 본방의 생각입니다.”
“다른 데 있을 수도 있다니요? 그게 뭡니까?”
“마교의 꿈 말입니다.”
마치 선문답이나 하자는 듯한 공수개 장로의 대답에 감찰부주의 안색에 약간의 짜증이 떠올랐다. 정보를 다루는 것이 주 업무이다 보니, 얄팍한 정보 하나를 가지 고 뭔가 엄청난 것이라도 알고 있다는 듯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이 참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공수개 장로.”
“마교의 꿈이라면 다른 게 있겠습니까? 바로 무림일통을 말하는 것이지요.”
“무림일통이라니요. 왜 그 말이 여기서 튀어나오는지 빈도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소이다, 그려.”
“단일방파로서는 마교가 최강의 힘을 지니고 있을 겁니다. 역대 마교의 교주들은 그 힘을 이용하여 무림을 정복하려 했고, 좌절당했습니다. 그게 바로 무림의 역 사였죠.”
“그건 여기 있는 모두가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오. 그런데 공수개 장로가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이 도대체 뭐요?”
감찰부주의 채근에 공수개 장로는 자신이 생각해 온 결론을 밝혔다.
“이번에 천지문의 일을 빌미로 해서 팽가를 친 이유는 교주가 자신의 영향력을 무림에 과시하기 위해 벌인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라도?”
“현재 마교는 역대 최강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자성만마대와 함께 마교에서 가장 하급에 꼽히는 것이 바로 흑풍단입니다. 핵심 전투단도 아닌 흑풍대가 대 금전쟁에서 빛나는 전과를 올리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모두들 공수개 장로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더욱 위험한 것은 그가 눈에 보이지 않게 서서히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는 겁니다. 만통음제와 의형제를 맺었고, 황룡무제나 패력검제와도 꽤 친분 을 쌓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더군다나 현천검제도 그의 수하로 받아들였지요.”
그 말에 감찰부주가 가장 크게 놀랐다. 왜냐하면 정보를 취급하는 그가 이런 얘기를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현천검제라니요? 그는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 말에 청호 장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끼어들었다.
“그건 무슨 말인가? 사제. 화산파에서는 그가 은퇴했다고 발표했었는데…….”
“사형도 참, 마교의 첩자였던 사람을 어떻게 은퇴시키겠습니까. 죽여 버렸겠죠. 그 때문에 교주가 화가 나서 화산파를 멸문시켜 버린 게 아니겠습니까.” “조용히들 해라.”
맹주는 청호 장로와 감찰부주를 질책한 후, 공수개 장로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자 빨리 말해 보게, 공수개 장로. 그 말을 꺼낸 이유가 뭔가? 혹, 현천검제가 마교에 있는 걸 찾아내기라도 했다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단전이 파괴되거나 한 것도 아니고, 아주 건강한 상태로 마교도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럴 수가…….”
“그리고 무영문의 옥화 봉공님도 교주와 상당한 친분을 유지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천검제가 생존해 있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현 무림에 존재하는 화경급 고수는 아홉 명으로 늘어납니다. 3황6제가 되겠지요. 그들 중 교주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의 수는 무려 다섯 명이나 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공수개 장로의 말에 좌중에 있던 세 사람은 말문을 잃어야 했다. 맹주는 놀란 마음을 추스르기라도 하려는 듯 헛기침을 하며 공수개 장로를 바라 보았다. 계속 말을 해 보라는 표시였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교주 같은 최강자를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현 무림에 단 한 명도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여럿이서 협공을 할 수밖에 없을 텐데, 아 홉 명의 화경급 고수들 중 다섯 명을 그가 포섭해 버렸다면 제대로 된 공격이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더군다나 교주 밑에는 최소한 한 명 이상의 부교주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극마급인 그들의 존재까지 가세한다면…….?
“그만! 그 말씀, 책임지실 수 있소?”
“물론입니다, 감찰부주. 만약 제가 말한 것 중에 엉터리 정보가 있다면, 제 목을 치셔도 좋습니다.”
공수개 장로가 워낙 자신 있게 대답했기에, 감찰부주는 입을 꽉 다물 수밖에 없었다. 맹주는 이 정보에 대한 판단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만큼 엄청난 충격을 준 정보였던 것이다. 개방과 공수개 장로의 공로를 치하한 맹주는 공수개 장로에게 마교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모아 줄 것을 당부했다. 지금으로서는 정보를 통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 근거가 필요했던 것이다.
“공수개 장로는 마교 쪽의 동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시오.”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공수개 장로를 내보낸 후,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던 맹주는 이윽고 마음을 정한 듯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양양성에 가 보는 것이 좋겠구나.”
“그러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맹주님.”
“수라도제가 제 역할을 못 해 주고 있으니 교주가 그토록 간 크게 나올 수가 있는 게 아니겠느냐? 그가 일처리를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노부가 가 서…….”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맹주님. 차라리 이번 기회에 곤륜파를 끌어들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썩 내키지 않는다는 듯 맹주가 대꾸했다. 곤륜무황은 그의 오랜 경쟁자였기 때문이다.
“곤륜무황을 말이냐?”
“예, 맹주님께서 벌써부터 앞으로 나서신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아직까지는 뭐 하나 제대로 된 정보가 취합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 교주가 뒤통수를 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맹주님께서 양양성에 직접 가 계시는 것은 너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좋다, 그건 네가 알아서 처리하거라.”
“예, 맡겨만 주십시오.”
잠시 고민하던 맹주는 청호 장로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영문에서는 뭔가 들어온 정보가 없었느냐? 개방에서 저런 결론을 내렸을 정도인데, 무영문이 모르고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느냐.”
“아직 아무런 보고도 없었습니다.”
“이상한 일이구나. 그렇다면 공수개 장로의 말대로 마교 쪽과 손을 잡은 것인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노회한 옥화 봉공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리 없습니다. 계속적으로 양쪽을 저울질하며 어느 한쪽으로 평행추가 기울 때를 기다리고 있겠지요.”
계속되는 좋지 않은 보고에 맹주는 답답한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중원 전체에 괴이한 혈겁까지 벌어지고 있는데, 정보에 있어 최고라는 무영문까지 믿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렀으니 정말 산 넘어 산이로구나, 무량수 불.”
“심려 놓으십시오, 맹주님. 아직까지는 정확한 흉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만, 저희 감찰부 소속의 고수들까지 다수 파견해 놨으니 조만간 결론을 낼 수 있을 겁 니다.”
존경하는 사숙이 한숨을 내쉬자 감찰부주 역시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걱정 마시라고 말은 했지만 아직 흉수에 대한 조그마한 단서조차 찾지 못한 감찰부주의 안 색은 어둡기만 했다.
쾅!
***
“이럴 수가 없어, 어떻게 서문세가에서 우리 팽가를 이렇게 무시한단 말인가!”
서문길을 만나 마교에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고 돌아온 팽지량 장로는 치미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탁자를 거칠게 내리쳤다. 자신을 상대하던 서문길의 태도가 마음 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강호에서 잔뼈가 굵은 팽지량이다. 은근히 발을 빼려고 하는 서문길의 기색을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었다.
“우리 팽가가 피를 흘리며 희생을 치렀건만 치하는 고사하고, 이런 무시를 당해야만 하다니…
이번 작전에 동원되었다가 희생된 제자들을 떠올린 팽지량은 행패를 부린 마교 교주보다, 믿었던 서문길에 대한 원망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한동안 치미는 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탁자 주위를 서성거리던 팽지량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밖을 향해 소리쳤다.
“게 누구 있느냐?”
“옛!”
문밖에 대기하고 있던 2대제자 한 명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들어왔다.
“너는 당장 이번 전투에 참여한 제자들 중 한 명을 데리고 오너라. 자세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제자여야 한다.”
“옛, 명심하겠습니다.”
잠시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다고 해서 왔습니다.”
팽지량이 힐끗 보니 아직 상처가 채 낫지 않아 안색이 창백했다. 그런 자를 이쪽으로 불러들인 것이 안쓰러웠기에 질문을 던지는 팽지량의 음성은 부드러웠다. “이번 전투가 시작되기 전부터 끝날 때까지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상세하게 말해 봐라.”
“예, 처음 제가 지시를 받은 것은…….?
처음에는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했던 그 제자는 어느 순간 술술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사건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제자는 그의 기대보다 훨
씬 더 아는 것이 많았다. 천지문과의 불화를 시작으로 작전이 수립되고, 예상과는 달리 없어야 할 적병들이 대거 나타나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 했던 것까지. 한참 이 야기를 듣던 팽지량 장로는 점차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갔다.
왠지 팽선이 천지문에게 수작을 부렸다는 냄새가 짙게 풍겼던 것이다. 제자가 말한 내용 그대로라면 누구라도 팽선이 개인적인 감정으로 천지문을 사지로 밀어 넣 었다고 생각할 게 분명하지 않은가.
“이놈! 허튼 소리를 했다가는 당장 목을 날려 버리겠다.”
“그, 그렇지는 않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지금까지 들어 본 바에 의하면 팽선보다 마교 교주의 말에 더 믿음이 갔다. 더군다나 이야기를 하는 제자는 2대제자로서 팽선의 행동을 낱낱이 파악할 수 있을 정 도의 위치에 있던 자였다. 당연히 팽지량으로서는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허, 팽선이 어찌 그런 악수를 저질렀단 말인가.’
잠시 망연자실해 있던 팽지량은, 정색을 하고 제자를 향해 엄한 어조로 말했다.
“추호라도 다른 곳에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이런 이야기가 들려오면 내 손으로 네 목을 벨 것이야.”
“옛,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제자들 역시 입 조심을 하도록 조치를 취하거라. 아니, 아예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도록 해라. 본 세가는 이번 전투로 인해 고귀한 피를 흘렸다는 것 외에는 모두 다 잊어라. 알겠느냐?”
제자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자각한 듯 긴장한 안색으로 대답했다.
“절대 외부로 새 나가지 않도록 단속을 철저히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만 나가 보거라.”
제자가 밖으로 나가자 팽지량은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허어, 노회하던 팽선이 어찌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했단 말인가?”
잘못하면 오랜 세월 동안 쌓아 왔던 팽가의 명성이 일순간에 진흙탕에 나뒹굴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팽지량은 나오는 한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수심에 잠긴 팽지 량은 사지가 박살 나 아예 사람 구실을 하기엔 불가능한 팽선의 모습이 떠오르자 가슴이 아파 왔다. 지금껏 팽가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팽선이었기에 그 안타까 움은 더욱 애절했는지도 모른다.
***
개방도와 만나고 돌아온 현천검제는 눈앞이 깜깜했다. 전통 있는 명문정파의 장문인이었던 자신이 마교의 무리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개방의 입이 얼마나 싼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지 않은가. 다급한 김에 방주를 찾아가 해명을 하겠노라고 말은 했지만 찾아가 만나 봐야 무슨 얘기를 하겠는가.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 숨어 버리고 싶지만 사형인 묵향을 생각하니 그럴 엄두도 나지 않았다. 아무리 궁리를 해 봐도 길이 보이지 않자 현천 검제로서는 나오는 게 한숨뿐이었다.
“휴우~~~.”
이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소연이 말을 건넸다.
“사숙께서도 무슨 근심이 있으신가요? 근래 두 분 다 왜들 그러시는지…….”
“아,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패력검제께서는 무슨 고민이라도 있소?”
자신에게로 향하는 관심이 부담스러웠던 현천검제는 은근슬쩍 패력검제를 바라보며 말을 돌렸다.
패력검제는 그 말에 한참을 망설이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댁도 참 용하시오. 그런 괴물들과 함께 잘 지내고 계시는 걸 보면..”
“어쩔 수 있소? 팔자려니 해야지.”
패력검제로서는 마치 세상사를 포기한 듯한 현천검제의 태도가 가슴에 와 닫았다. 이해가 충분히 되었던 것이다. 아르티어스를 보고 난 후, 요즘 자다가도 가위에 눌려 벌떡벌떡 일어나곤 하지 않은가. 묵향의 무공을 접했을 때의 아득한 절망감과는 또 다른 완벽한 허탈감이었다.
전설 속의 존재인 용, 그리고 그 용이 아들이라고 말하는 마교 교주. 지금까지 살아오며 쌓아 왔던 관념이 일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헛것을 본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화타가 환생한다 해도 살릴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소연이 한순간 빛무리에 휩싸이더니 멀쩡하게 나아 버린 건 어떻게 설명하겠는 가.
그리고 꿈에서도 잊기 힘들 정도로 무자비한 구타까지 당한 그였다. 그때는 정말이지 자존심이고 뭐고, 제발 좀 그만 패라고 얼마나 싹싹 빌었는가. 만약 상대가 사람이었다면 약한 모습을 보이느니 차라리 목을 베라고 외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전설 속의 영물인 용이었다. 그것도 성 질이 아주 더러운.
잠시 안쓰러운 눈빛으로 현천검제를 바라보던 패력검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장이 곁에 있는 만큼, 소연이의 안위는 문제가 없을 듯하고. 그래서 본인은 여기서 헤어지는 게 좋을 듯하오.”
“그, 그게 무슨 말이오? 사실 나도 형장에게 그 일을 부탁하려 했는데…….?”
양양성에 가서 사형인 묵향과 수많은 정파인들을 만날 생각을 하자 눈앞이 깜깜했던 현천검제는 건수만 생기면 어딘가로 튈 생각이었다. 그런데 패력검제에게 선 수를 빼앗긴 셈이다.
“어디로 가시려고?”
“허허, 그건 아실 필요 없고, 급한 볼일 한 가지가 생각나서 말이오. 그럼 소연이를 잘 부탁드리겠소.”
그 말을 끝으로 패력검제는 곧바로 몸을 돌려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부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현천검제의 시선을 뒤로 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