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2권 15화 – 곤륜파를 끌어들여라
곤륜파를 끌어들여라
만현에 도착한 묵향은 만통음제를 데리고 그곳에서 가장 좋은 객잔으로 들어갔다. 만통음제에게 조금이라도 더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3 일에 걸친 유람이 조금 힘들었던지 만통음제는 운기조식을 끝낸 후,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묵향은 점소이를 불러 술상을 봐 오라고 이른 후, 달을 벗 삼아 홀로 술잔을 기울였다. 그런데 탁자 위에는 술잔이 하나 더 놓여 있었다.
세 번째 술병이 비워져 갈 무렵, 옥화무제가 우아한 몸놀림으로 밤하늘을 가르며 객잔 담을 넘어왔다. 그녀는 도착함과 동시에 묵향의 맞은편에 앉아서는 새침한 어조로 따지기 시작했다. 등 뒤로는 긴장으로 인해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걸 숨기기 위해 그녀는 더욱 새침함을 가장하고 있었다.
“낮에도 시간은 충분한데, 꼭 밤에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뭐죠?”
묵향은 그녀 앞에 놓인 술잔에 술을 따르며 딴청을 부렸다.
“만나자마자 그런 식으로 얘기할 필요는 없잖아. 자 한 잔 하라구.”
“당신에겐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으로 보였던 모양이죠? 하지만 나 아주 바쁜 사람이라구요. 그런데 이런 산골짜기로 불러내다니, 대체 정신이 있는 거예요? 없 는 거예요?”
“아아, 덕분에 구경 잘하면서 왔을 텐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바쁘게 일만 하다 보면 일도 잘 풀리지 않고, 성질만 더러워지잖아. 그래서 오랜만에 바람이나 쐬 라고 이쪽으로 불렀지. 어때, 내 배려에 감사하지 않아?”
‘헉! 뭔가 분위기가 수상쩍은데…….?
상대가 평상시와 달리 너무 능글맞게 나왔기에 옥화무제는 간이 콩알만 해질 수밖에 없었다. 예상과 너무 다른 상대의 행동이 그녀를 더욱 불안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어쩌면 저자는 일부러 이러고 있는 줄도 모른다.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서.
‘그래, 시험이 분명해!’
그렇게 마음을 정한 옥화무제는 최대한 평상시 그를 대하던 것과 비슷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마음의 불안 때문이었는지 평상시보다는 많이 퉁명스러웠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나를 부른 용건이나 어서 말해요.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나를 직접 봐야겠다고 요청한 거냐 이 말이에요?”
“허, 미인의 입에서 이런 쌀쌀맞은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걸. 이렇게 감성이 메말랐을 줄이야. 자,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라구. 얼마나 아름다워? 은은한 달빛에……..”
하지만 묵향의 말은 옥화무제의 신경질적인 어조에 가로막혔다.
“정말 계속 흰소리만 할 거예요? 댁한테 그딴 감성 없다는 거 뻔히 알고 있는데.”
“이런, 그대야말로 나를 정확히 모르고 있었군. 나는 그렇게 메마른 사람이 아니야. 삶이 나를 그렇게 보이게 했을 뿐이지.”
묵향은 품속에서 피리를 꺼낸 다음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옥화무제는 이 인간이 이번에는 또 무슨 짓을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그저 잠자코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그녀의 싸늘한 표정도 잠시, 묵향이 피리를 불기 시작하자 싸늘함은 놀라움으로, 놀라움은 곧 탄성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피리 소리에 빨려 들 어간 듯 몽롱한 상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놀라운 솜씨!’
그녀는 피리 소리를 들으며 과거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그녀가 묵향을 처음 만났을 때였다. 기억을 잃은 현경급 고수가 옥영진 대장군과 함께 청성루에 왔다는 총 관의 보고에 그녀는 다급히 그가 머물고 있는 방으로 달려갔었다. 그때 그녀는 그곳에서 처음 묵향의 탄금을 들었다. 어지간한 예인(藝人)은 감히 연주를 하겠다는 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명성이 높은 청성루였다. 하지만 그때 들은 묵향의 탄금 실력은 청성루에서도 특급으로 인정받을 만큼 뛰어났었다.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날카로웠던 그녀의 마음도 평상시와 같아졌고.
“음공(音)을 익혔나요?”
잠시 피리 소리가 멈췄을 때 옥화무제가 별생각 없이 건넨 질문이었는데, 그게 묵향의 신경을 건드린 모양이다. 묵향은 피리를 품속에 신경질적으로 집어넣으며 불쾌한 듯 투덜거렸다.
“겨우 사람 하나 죽이자고 음(音)을 이 정도까지 익히는 사람을 봤나? 그런 말은 나나 형님에게 모욕이라구.”
여기까지 말한 묵향은 말을 끊고 싸늘한 눈길로 옥화무제를 바라봤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묵향이 먼저 그 침묵을 깼다. 그의 목소리는 처음과 달리 아주 사무적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방금 전의 불쾌함도, 그리고 그녀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느낀 뻔뻔함을 가정한 다정함도 없었다.
“장인걸의 정확한 위치, 그리고 그놈에게 위급한 일이 벌어졌을 때 놈을 구하기 위해 달려올 모든 전력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그 정보를 언제까지 제공해야 하죠?”
“놈이 죽을 때까지.”
옥화무제는 상대의 제안을 생각해 보는 척하면서 묵향의 안색을 살폈다. 왜 갑작스럽게 이렇게 그의 분위기가 변한 것일까? 처음부터 의도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 불쾌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처음에 친한 척 다정하게 말했던 것은 또 무슨 수작이었던 것일까?
워낙 생각이 많은 그녀였기에 태연을 가장하려는 의도와는 달리 머릿속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이게 아니라 다른 것이었는 데, 그와 상관없는 별의별 잡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떠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잡념을 쫓듯 살짝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꽤나 힘든 의뢰로군요. 좋아요. 서로 협정도 맺은 사이니 싸게 해 드리죠. 매월 황금 백 냥이에요.”
황금 백 냥이면 은자로 치면 2천 냥이다. 머릿속은 딴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오랜 세월 정보 장사를 해 온 그녀였는지라 그녀의 입은 그녀를 배신하지 않았던 것이 다.
“일시불이 아니라 매월이라면 엄청난 금액이로군.”
“이쪽도 땅 파 먹고 장사하는 건 아니니까요. 대신 그만한 값어치는 한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오랫동안 시간만 끌지 않는다면 그렇게 부담이 갈 금액도 아니잖아 요?”
“좋아, 양양성에 돌아가면 매월 은자 2천 냥씩 그쪽에 지급하라고 명령해 두지. 그리고 또 한 가지, 요 근래 무영문에 요청했던 자료들 말인데……..
그 말이 나오자 옥화무제는 내심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 근래 행해졌던 작전에 대해 될 수 있으면 마교와 팽가 간의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 해 그녀의 지시 하에 정보를 조금 왜곡해서 보냈었다. 그걸 묵향이 눈치 챈 것일까?
옥화무제는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며 반문했다.
“본문에 요청한 자료라구요?”
“그래.”
“그런 게 있었나요?”
옥화무제가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듯 맹한 어조로 되물었기에 묵향은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에게는 중요한 자료인데, 저쪽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니 화가 날 만도 했다.
“이봐, 본교에서 요청한 자료인데, 어떻게 모르고 있을 수가…….”
“그쪽은 현역인지 모르지만 나는 이미 딸한테 문주 자리를 물려주고,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는 상태라구요. 내가 꼭 알고 싶어 하는 정보가 아닌 한, 모든 것은 딸아 이가 처리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다면 모르고 있었나?”
“물론이에요. 그런데 뭐가 불만이라는 거죠? 당신이 뭔가를 원한다는 공문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답신이 안 왔다는 거예요? 아니면 이쪽에서 보내 준 정보 의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거예요?”
‘그 일에 대해서는 아예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군.’
묵향은 옥화무제의 눈을 자세히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은 결코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순진하게 빛나고 있었다. 묵향은 옥화무제에 대한 혐의를 풀 수밖 에 없었다.
만약 자신이 원한 정보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옥화무제가 자세히 알고 있었다면, 묵향은 다른 의미에서 그녀가 전해 준 정보를 의심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만큼 이 일을 자세히 알고 있다는 사실은, 묵향에게 전해 주는 정보를 약간이라도 왜곡해 놨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흐음, 받기는 했는데 너무 기대에 못 미친 게 사실이라…….’
옥화무제를 빤히 바라보던 묵향은 소연이 중상을 당했던 그 작전에 대해 무영문이 확보해 놓은 모든 자료를 원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렇다면 돌아가는 대로 총관을 불러 지시해 놓겠어요. 이쪽에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전해 주라고 말이에요.”
“그렇게 해 주면 고맙지.”
“그런데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호오, 정보의 여왕이라는 그대가 나한테 물어볼 일이 있다니 놀랍군. 그래, 뭐야?”
비꼬는 상대의 어조에 그만 둘까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럴 수는 없었다.
“지금 중원 각지에서 혈겁이 벌어지고 있어요. 혹시 그쪽의 작품인가요?”
자신이 그런 의심을 받고 있다는 게 불쾌한 모양인지 묵향의 어조는 퉁명스러웠다.
“나는 금시초문이야.”
“그렇게 믿겠어요.”
둘의 대화는 여기서 끊겼다.
옥화무제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놈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마음이 평정되자, 평상시와 같은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생각 해 보니 묵향의 행동이 아주 불쾌했다. 꼭 상대가 자신을 가지고 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옥화무제가 가만히 눈치를 보니 묵향은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며 술만 들이켜고 있을 뿐, 더 이상 자신과 대화를 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처음에 은근슬쩍 다정하게
대하는 척하더니 이쪽에서 조금 튕겼다고 그걸로 끝이다.
‘속 좁은 인간 같으니라구……..’: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 쪽에서 분위기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녀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홀가분 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새침한 어조로 말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면 이만 가 봐야겠군요. 나도 바빠서 말이에요.”
“좋을 대로. 하는 일 잘되기를 바래.”
그녀는 방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덕담을 해 준 보답으로 한 가지 알려 드리죠.”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던 묵향의 시선이 옥화무제에게로 옮겨 갔다.
“무림맹에서 곤륜파로 사람을 보냈어요.”
묵향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었다. 꽤나 대단한 정보인 줄 알았는데 사람을 하나 보냈다고 하니 황당했던 것이다.
“맹에서 곤륜파에 사람을 보낸 게 나한테 생색을 낼 만큼 그렇게 중요한 정보인가?”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묵향의 반응에 옥화무제는 더욱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항변했다.
“물론 문파에 심부름꾼 하나 보내는 거야 흔히 있는 일이겠지만, 누굴 보냈느냐 하는 게 문제겠죠.”
그 말에 묵향은 아차 싶었다.
“그래, 누굴 심부름꾼으로 보냈는데?”
옥화무제의 눈이 야비하게 반짝 빛났다. 이 순간을 위해 서두를 꺼낸 것이기 때문이다.
“무료 봉사는 여기까지. 방금 전에도 말했죠? 한 가지만 알려 준다구요. 나머지를 알고 싶으면 돈을 지불하든지, 아니면 직접 알아보세요.”
화사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한 거였지만, 그걸 듣고 있는 묵향의 속은 그녀의 의도대로 확 뒤집혀 버렸다. 무영문이라는 단체 자체가 정보를 사고파는 것이 주업인 만큼, 돈 내라는 것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약 올리듯 하는 말투와 그녀의 표정이 그의 심사를 뒤집어 놨다고 해야 할까?
“젠장, 알았어. 직접 알아보지.”
“어머머, 그게 생각대로 잘될까 모르겠네~. 어쨌건 이제 더 이상 나한테 볼일은 없는 것 같으니 그만 가 볼게요.”
마지막 한마디까지 비꼬아준 뒤 옥화무제는 사라져 버렸다. 그녀로서는 오랜만에 작은 복수를 할 수 있었기에 무지하게 통쾌했으리라. 어쩌면 그런 식으로밖에 분풀이를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원통했을지도 모르지만..
옥화무제가 돌아간 뒤, 묵향은 그녀가 제시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오랜 시간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가 너무 없다 보니, 떠오르는 것이 없 었다. 오히려 골치만 아파질 뿐……
묵향은 양양성에 돌아가는 대로 군사에게 연락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그에 대한 해답을 만통음제로부터 얻어 낼 수 있었다. 다음 날 새벽, 잠에서 깬 만통음제는 운기조식을 한 후, 묵향과 식사를 했다. 식사 도중에 묵향은 별것 아니라는 듯 슬쩍 물어봤다.
“무림맹에서 곤륜파로 꽤나 거물을 파견한 모양이던데, 무슨 일이라고 형님은 생각하십니까?”
“거물이라…, 무림맹 장로급 정도의 핵심을 말하는 건가?”
“예, 대충 그 정도인 모양입니다.”
묵향의 대답에 만통음제는 아주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다른 문파라면 몰라도 곤륜파에 그 정도 거물을 파견한 게 사실이라면 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군.”
“어떤 일 말입니까?”
“곤륜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무림에 발자취를 남기는 일 말일세.”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말씀이십니까? 곤륜파야 오랜 옛날부터 무림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강인한 문파였는데요.”
만통음제는 손까지 내저으며 묵향의 말을 부인했다.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전혀 그렇지 않아. 곤륜파는 그 규모와 전력에 비해, 거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지. 그 이유가 뭐겠나?”
그건 묵향도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그 원인 제공을 한 게 다름 아닌 그가 몸담고 있는 마교였으니까. 십만대산에서 가장 가까운 정파의 거대문파가 곤륜파다. 그렇다보니 곤륜파와 마교 사이에는 크고 작은 충돌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더군다나 마교가 무림일통을 외치며 대대적인 침공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큰 피해를 당하는 문파 역시 곤륜파였다.
물론 잃는 것이 큰 만큼, 얻는 것 또한 많다. 곤륜파만큼 마교의 무공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한 문파도 없었고, 고수들 간의 실전 경험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곤 륜의 도사들은 마교도들과 싸우며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쭉정이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알곡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런 형국이다 보니, 곤륜파는 살아남는 데 급급해서 다른 데로 신경을 돌릴 틈이 없었다. 오죽하면 무당파에 버금가는 막강한 전력을 지니고도 9파1방에 끼지도
못했을까.
“그야 당연히 본교 때문이죠. 맨날 우리한테 줘 터진다고 다른 데 한눈 팔 시간이나 있었겠습니까?”
“바로 그걸세. 그래서 그런지 곤륜파는 제자들을 키우는 데 전력을 다하지. 다른 문파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제자들을 받아들일 뿐더러, 그 제자들에게 하나라도 더 많은 것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아.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곤륜파는 오래전에 멸문당했겠지. 문도들의 평균 수명이 곤륜파만큼 낮은 문파도 없으 니 말이야.”
묵향은 그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끈질기기가 바퀴벌레보다 더한 놈들이죠. 본교에게 그토록 오랜 세월 짓밟히고도 살아남았으니까요.”
“하지만 요즘 들어 곤륜파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 그 이유를 자네는 아는가?”
“글쎄요. 본교에서 건드리지 않으니까 힘이 남아도나요?”
되는대로 말한 거였지만, 그게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만통음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쉬지 않고 입을 놀렸다. 상대가 자신의 말에 이토록 흥미를 보이며 경청하자 설 명해 줄 맛이 났던 것이다.
“그래! 바로 그거야. 요 근래 수십 년 동안 마교는 너무나도 조용하게 지냈고, 그 덕분에 소모전을 한 번도 치루지 않은 곤륜으로서는 세력이 필요 이상으로 커져 버린 거지.”
“흐음…, 그러니까 형님 말씀은 곤륜파가 남아도는 힘을 바탕으로 중원으로 그 세력을 넓혀 올 거다, 이 말씀이로군요.”
“그렇지! 동생 말이 맞아. 하지만 곤륜은 정도를 걷는 것으로 알려진 문파가 아닌가? 그런 만큼 생각이 있다고 해서 무턱대고 세력을 확장할 수는 없겠지. 다른 문 파들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으로 파고 들어가자면 아무래도 명분이라는 게 필요하거든. ‘우리는 댁들의 영역을 침범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 으니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이야. 그런데 이런 명분을 무림맹이 제공해 준다면?”
충분히 일리가 있는 얘기였다.
“호오, 얘기가 그렇게 연결되는 겁니까? 그러니까 무림맹에서 곤륜에 사람을 보냈다는 게 바로 곤륜이 밖으로 나올 명분을 제공한다는 거로군요.”
“이 우형의 생각으로는 그런 것이 아닐까 싶구먼. 물론 진실은 시간이 지나면 정확하게 드러나겠지만 말일세.”
“흠, 곤륜파라…….”
예정에도 없던 곤륜이라는 거대 문파의 개입이 현 전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묵향으로서는 예상하기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는 묵향의 눈빛 은 더욱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