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3권 18화 – 죽여야 할 아군
죽여야 할 아군
며칠 뒤, 순우기 장군은 유광세 상장군의 명을 받고, 여문덕 상장군을 회유하기 위해 무한으로 달려갔다. 평소에도 자주 무한을 들락거리던 그였기에 여 상장군은 순우기 장군을 아무런 의심없이 맞이했다.
“안녕하셨습니까? 상장군.”
“먼 길을 오느라 수고가 많았네. 그래, 이번에는 무슨 일로 귀관이 직접 달려왔는가?”
“1천 명 정도 병력을 보충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봄이 되면 금군과 전투가 재개되지 않겠습니까? 그에 따른 작전 토의를 하기 위해 왔습니다.”
순우기 장군은 품속에서 서신을 꺼내 상장군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저들의 예상된 이동로와 함께 그것을 저지할 방법에 대해 몇 가지 안을 마련해 봤습니다.”
그런 줄로만 알고 서신을 받아 든 상장군은 앞부분을 읽자마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순우기 장군의 설명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서신 은 유광세 상장군이 직접 쓴 것이었는데, 간신배들을 척살하고 황실의 위엄을 드높이자며 이번 거사에 함께 동참할 것을 권유하는 내용이었다.
“이, 이게 도대체 뭔가?”
“요즘 워낙 첩자들이 날뛰다 보니, 보안 유지를 위해 조심을 좀 해 놓은 겁니다.”
상장군은 그 말을 즉시 이해했다. 혹시 누군가 엿듣고 있는지 모르니 조심하자는 말인 것이다. 서신을 다 읽은 상장군은 그걸 다시금 순우기 장군에게 돌려주며 떨 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서신의 내용이 가져다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 정말이지…, 파격적인 작전이로구먼.”
“과찬이십니다, 상장군.”
“다른 장수들도 그 작전에 대해 알고 있나?”
“물론입니다, 상장군. 안 그래도 썩어빠진 금나라를 정벌할 기회이니 특히 젊은 장수들이 적극 지지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들의 대화 내용을 첩자가 엿들었다고 해도 봄이 되면 시작될 금나라와의 전투에 대한 작전 토의를 나누고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잠시 아무런 말이 없던 여문덕 상장군은 한참 후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지금 바로 대답해 줘야 하나?”
“그건 아닙니다만 될 수 있으면 빨리 답을 달라는 유 상장군의 청이셨습니다.”
“알겠네. 내 긍정적으로 생각해 봄세.”
순우기 장군은 여 상장군이 일단 반쯤 승낙했음을 눈치 챘다. 그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서신에는 요 근래에 중서성에서 날아온 진회의 포고 문을 기억해 보라고 쓰여 있었다. 상장군은 그 공문을 찾아내서 다시 읽어 볼 필요도 없었다. 아직까지 그 내용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진회가 대장군을 모반죄로 참수한 이상, 조만간에 그의 부하들인 자신들도 체포될 것이 확실하다. 진회가 마수를 뻗쳐오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손을 써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도 대장군처럼 개죽음을 당할 게 분명하니 말이다.
여문덕 상장군은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목숨이야 어찌 되어도 좋지만 만약 거사가 실패한다면 자신을 믿고 무한으로 모여든 여씨 일가는 모두 머 리가 잘려 효수될 것이 아닌가. 역모죄는 삼족이 몰살이니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그가 마음을 쉽게 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고지식하다고 할 정도로 올곧은 성 품 때문이었다. 비록 고위직은 아니었지만 그의 가문은 지금껏 송 황실에 수많은 충신들을 배출하였고, 그 역시 그런 명예로운 자신의 가문을 긍지로 여겼다. 그런 그에게 황성을 향해 같이 진격을 하자니. 잘못되면 가문의 이름에 똥물을 끼얹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랬기에 거사에 동참하겠다는 말을 선뜻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자신도 유광세 상장군의 진영에 합류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고민을 해 봐도 선택 의 여지가 없었기에.
* * *
재상 진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악비 대장군의 참살을 강행했을 정도로 섭평은 배짱도 컸지만, 그걸 받쳐 줄 만큼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그에게는 진 회와 달리 커다란 야심이 있었다.
군권을 추밀원에 귀속하라는 진회의 명령도 있었고, 또 그걸 도와주겠다는 약속도 받아 냈다. 그런데 진회는 무슨 생각인지 자신의 이름으로 각 군벌에 악비 대장 군이 역모를 꾀했기에 처형했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그리고 그 공문에는 다시는 악비와 같은 자가 나타나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군권을 추밀원으로 귀속시키겠다 는 내용까지 담았다.
그 사실을 알자마자 섭평은 펄쩍 뛰었다. 공문을 받아 든 각 군벌들의 반응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살살 꼬드겨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말을 듣지 않으면 악비
처럼 죽이겠다는 위협을 했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35만이라는 엄청난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악가군의 고위급 장수들이 어쩌면 황성을 향해 검을 겨누게 될지도 몰 랐다. 역모죄로 처형당한 악비 대장군의 심복들을 황실에서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을 그들도 잘 알 테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군권을 추밀원으로 회수한단 말인가. 섭평은 진회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섭평은 한동안 자택에서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진회가 이 제 곧 뭔가 트집을 잡아 자신을 제거하기 전에 그동안 긁어 들인 재산을 들고 먼 이국으로 도망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섭평은 이 상황이 자신에게 크나큰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각 군벌에 보낸 공문의 발송자는 바로 진회였다. 기왕에 진회가 악역을 자처 한 이상 섭평으로서는 이 기회를 최대한 이용해야만 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진회의 가슴에 검을 겨눠야 했다.
한동안 칩거하며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던 섭평은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냈다. 진회를 천하의 간신배로 만들어서라도 주인을 잃은 악가군을 자신의 휘하로 끌어들 이는 것만이 최선의 길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대신 자신의 계책을 진회가 눈치채면 곤란하므로 그는 ‘신임 추밀사로서 군사들의 사기를 점검하기 위해 전선을 시찰하러 가겠다’는 정도로 둘러댔다. 황도에서 출발하여 가장 먼저 송군 최대의 집결지인 무한에 들렀다가 그다음 양양성으로 올라간다. 그런 다음 회하를 따라 내려오며 그 일대에 자리 잡고 있는 군벌들과 만나 회담을 나눈다는 것이었다.
진회 일파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연막을 치기 위해 모든 군벌들을 다 만난다는 식으로 일정을 보고했지만, 그의 전선 시찰의 핵심은 악가군의 장악이었다. 무한의 여문덕 상장군과 양양성의 유광세 상장군을 직접 만나 그들만 회유할 수 있다면 진회와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선다는 것도 꿈이 아닌 것이다.
섭평의 전선 시찰 계획에 대한 공문은 중서성은 물론이고, 각 군벌들에게도 보내졌다. 추밀사가 방문하는 만큼 경계 태세에 만전을 기하라는 내용과 함께 말이다.
* * *
그런데 그 공문을 받아 보고 입이 찢어져라 광소를 터트린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유광세 상장군이었다. 혹시 주위에 있는 첩자들이 행여 들을세라 입으로 떠 들지는 못했지만, 이건 그에게 하늘이 내려 준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이 새끼가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군. 크흐흐흣.’
섭평은 자신이 대장군을 살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이런 대담한 계획을 세운 모양이지만, 유광세 상장군은 이 미 묵향에게서 그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다.
이건 복수의 기회임과 동시에 여문덕 상장군을 끌어들일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순우기 장군이 무한에 다녀온 이후 아직까지 여문덕 상장군에게서 회신이 없었 다. 지금까지도 거사에 동참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섭평의 목을 벤 후 군사를 일으킨다면 황실에서는 악가군 전체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판단할 것 이다.
그렇게 된다면 여문덕 상장군도 어쩔 수 없이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게 분명했다. 아무리 자신은 아니라고 말하려 해도 황실에서 믿어 주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 다. 대장군을 모시고 있었다는 원죄(原罪)에 반란의 무리라는 낙인까지. 그렇게 해서라도 여문덕 상장군이 합류할 수만 있다면 무려 31만이라는 엄청난 대군이 아 군이 되는 것이다.
유광세 상장군은 ‘관지 장로와 군무에 관련된 몇 가지 사항에 대해 대화를 나눌 것이 있다’고 둘러댄 후, 마교도들이 머물고 있는 매화 장원으로 향했다. 요즘 들어 순우기 장군과 비밀스런 대화를 나눌 일이 생기면 상장군은 종종 그곳을 애용하곤 했다. 안 그래도 관지 장로가 사방에 첩자가 있음을 알고 있는 처지이니 다른 곳 에서 수근거리는 것보다는 그래도 이쪽이 낫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섭평이 도착하는 날 결행하는 게 좋겠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상장군. 섭평의 도착에 맞춰 거사를 일으킬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그 전에 여문덕 상장군과 만나 담판을 짓는 게 좋지 않을까?”
“괜히 첩자들을 자극할 만한 행동은 자제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보다는 섭평의 목을 벤 후 곧바로 무한으로 달려가는 게 더 좋지 않겠습니까? 더 이상 선택의 여 지가 없다는 걸 알면 곧바로 동참해 오실 겁니다.”
“그렇군. 그게 좋겠어. 대장군 휘하에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모반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에 놓였으니 동참할 수밖에 없겠지.”
유광세 상장군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첩자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그동안 대장군의 복수를 아예 포기한 듯 행동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짓을 할 날 도 얼마 남지 않았다.
유광세 상장군과 순우기 장군은 기밀 유지를 위해 밀실을 빌려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사실 그들의 대화를 은밀히 엿듣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두 장군의 회동이 끝난 후에는 언제나 관지 장로를 찾아가 그들이 나눈 대화를 요약해서 보고했다.
오랜 세월 군부에 몸담았었던 관지 장로는 마화의 보고에 씁쓸한 표정을 감추기 어려웠다.
“허어, 대장군의 죽음에 이어 이제는 모반이라는 말인가?”
“정확히 말해 모반은 아닙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대장군의 복권과 복수, 그리고 썩어빠진 관료들의 숙청이니까요.”
“하지만 일단 실행이 된 후에는 그렇게 간단하게 끝낼 수 있는 게 아니야. 한 번 군사를 일으키면 그렇게 쉽게 물러설 수가 없는 거지. 저들의 처음 의도는 순수할 지 몰라도 나중에 권력을 잡고 나면 어떻게 변질될지 알 수가 없는 일이 아닌가? 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물러섰다고 해도 조정에서 저들을 반역도로 규정하고
군사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하겠나? 그런 우려가 있는 한 황도에서 물러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야.”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장로님.”
관지 장로는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자칫 자신의 잘못된 결정에 마교 전체가 반역의 무리로 낙인이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일에 대해 교주님께서도 어느 정도 알고 계신 듯했다. 황실에 대한 반란이나 반역이라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기에 나한테 언질을 주지 않으신 듯하지 만……. 어찌 되었거나 지금은 그냥 두고 볼 수밖에.”
이때 밖에서 경계병이 들어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절강성에서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들어오라고 해라.”
절강성 분타주가 보내온 두 번째 서신이었다. 이번에도 정상적인 보고 경로를 무시한 것이기는 했지만 관지 장로는 서신을 가져온 전령에게 아무런 문책도 하지 않았다. 첫 번째 서신이 왔을 때 묵향으로부터 왜의 지원군에 대한 처리의 전권을 위임받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 묵향은 만통음제를 찾는다고 출타 중이다. 그렇기 에 관지 장로는 서신을 묵향에게로 보내는 대신 자신이 읽기 시작했다.
절강성에서 보내온 내용이야 뻔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서신을 읽어 내려가던 관지의 눈이 곧 화등잔만 해졌다.
“뭐, 뭐야? 1만이라고?”
옆에 앉아 있던 마화가 궁금하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1만이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장로님.”
“허어, 이런 기가 막힌 일이. …. 후지와라 영주가 지원군을 보내겠다고 하더니 1만 명이나 되는 완전 무장 병력이 지금 절강성에 도착했다는군. 이걸 어떻게 하 지?”
“교주님께서도 알고 계신 일인가요?”
관지 장로는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곧 좌우로 흔들었다.
“알고는 계시지만 설마 1만 명이나 올 줄은 교주님께서도 모르신다네. 동맹군의 의리상 몇백 명 정도 올 줄 알았지, 설마 이 정도가 올 줄이야.”
말을 하던 관지 장로는 갑자기 짜증이 나는지 왈칵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교주님께 받은 지시는 지원군이 오면 적당히 경치 좋은 데로 데리고 가서 유람이나 시키다가 돌려보내라는 것이었는데, 무슨 수로 1만 명이나 되는 놈들을 다 유람을 시켜? 더 골치가 아픈 것은 이들을 인솔하고 온 장군이라는 놈이 주제파악도 못 하고 자신들을 가장 중요한 격전지로 보내 달라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모양이야.”
이야기를 듣던 마화의 눈에 서신의 안쪽에 또 다른 서신이 하나 더 들어 있는 게 보였다. 급히 꺼내 보니 그걸 보낸 인물은 바로 왜에 가 있는 정상(鄭想) 천인대장 이었다. 그의 서신을 읽어 본 결과 왜 이렇게 많은 병력이 지원군이랍시고 도착한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왜에 파견된 흑풍대는 단기간에 너무나도 엄청난 전공을 세워버렸다. 그들의 전투력이 얼마나 놀라웠었던지, 그들 1천 기마대가 앞장서기만 해도 웬만한 성주들 은 그냥 성문을 열고 항복해 버렸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당연히 주위에 있는 수많은 영주들이 앞 다투어 동맹을 청해 왔다. 막강한 전력을 지닌 후지와라 영주와 싸 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후지와라 영주에게도 말 못할 고민이 있었다. 주위의 영주들이 자신의 핵심 전력이라 믿고 있는 흑풍대가 언젠가는 중원으로 돌아갈 거라는 점 말이다. 그 때문에 흑풍대원들이 고향을 잊어버리고 왜에 정착할 수 있도록 수많은 선물을 안기고, 또 예쁜 여자들까지 방에 들여보내 줬지만 결과는 별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묵향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이 너무나도 강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후지와라 영주는 차선책을 생각해 냈다. 흑풍대를 왜에 붙잡아 둘 수 없다면, 그들이 중원으로 떠나기 전에 화근거리를 몽땅 다 없애 버리면 될 것이 아 니겠는가. 그래서 여러 중신(重臣)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서 생각해 낸 계책이 바로 지원군 파병이었다. 물론 말이 좋아 지원군이지, 실상은 충성도를 믿기 힘든 영주라든지 혹은 그 추종자들의 세력 약화가 주 목적이었다.
그렇기에 정상 천인대장은 서신에서 후지와라 영주가 왜에서 파견된 지원군을 가장 지독한 격전장으로 보내 몽땅 다 소모시켜 달라고 묵향에게 부탁하더란 말을 써 놓았다. 그리고 그 대가는 충분히 지불하겠다는 말까지 말이다. 서신 말미에는 그렇게 해야만 하루라도 빨리 자신들이 이곳을 떠나 중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 라는 푸념도 적혀 있었다.
“이거 골치 아프게 됐구만. 어쩐지…, 지원군 사령관이라는 자가 격전장으로 보내 달라고 고집을 부렸다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었군.”
“교주님께 연락을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마화의 말에 관지 장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겨우 1만밖에 안 되는데 그걸 가지고 교주님의 심기를 어지럽게 할 필요가 있겠나? 안 그래도 만통음제 대협의 실종으로 정신이 없으실 텐데……..
“그렇다면 그들을 중원인으로 변장시켜 양양성으로 이동시키는 건 어떨까요? 무기만 따로 수송한다면 큰 문제없이 해결될 듯도 합니다만.”
잠시 생각해 보던 관지 장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1만이나 되는 중무장 병력이 수십 척의 배에 나눠 타고 상륙했는데 그걸 군부에서 모르고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조용히 이동시키려고 하다가 오히려 괜한 오해를 살 우려도 있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추밀원과 무림맹에 정식으로 통지하는 게 좋을 듯하군. 사실 1만이라고 해 봐야 그리 대단한 전력도 아니니 떳떳하게 밝히고 이동시키는 게 뒤 탈이 없을 거야.”
“그렇다면 이동로는 어디로 잡을까요?”
관지 장로는 손가락으로 지도 위를 쓱 훑으며 말했다.
“절강성에서 관도를 따라 항주(杭州), 소주(蘇州)를 거쳐 진강(鎭江)까지 간 다음 거기에서 배편으로 무한까지 이동시킨다. 그런 다음 무한에서 양양성까지 행군 시키면 되겠지.”
“그럼 그렇게 통보하도록 하겠습니다.”
마화가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밖으로 뛰어나가자, 관지 장로는 머리가 아픈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력에 도움도 되지 않을 1만이지만 어쨌든 그들의 뒤치다꺼리 는 관지 장로의 몫이기 때문이다.
마교의 모든 정보는 십만대산으로 집결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총단에서 홍진과 군사 설민이 정보를 취합한 후 그중 묵향에게 보고할 만한 것들을 골라내어 양 양성으로 보내 주는 방식이다.
물론 화급을 다투는 중요한 정보들의 경우 곧바로 관지 장로나 묵향에게 보고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건 적군의 이동 같은 더 이상의 가공이나 포장을 필요로 하 지 않는 1차적인 정보들이었다. 여기저기서 모은 자잘한 정보들을 종합하여 거기서 추론해 내는 2차적인 정보의 경우, 십만대산에서 취합되고 정리된 후에야 보내 오게 된다. 그런 탓에 관지 장로는 쓸 만한 정보를 입수하는 데 있어서 항상 한 박자 느린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고, 정확한 상황 판단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 다.
물론 관지 장로도 자신이 처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개방과 무영문으로부터 그때그때 최신 정보를 얻어 냄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 하 고 있었다. 하지만 그 두 집단에서는 자신들이 얻어 내는 모든 정보를 관지 장로에게 전달해 주는 게 아니라, ‘마교 쪽에 알려 줘도 무방하다’라고 판단되는 정보들 만을 보내 줬고, 그 대부분은 금나라의 동태에 집중되어 있었다.
악비 대장군의 죽음이라는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야 이런 정보 취합 방식으로도 별문제가 없었지만, 황실과 무림맹과의 관계가 악화된 지금으로서는 금나라를 제 외한 정보망에 엄청난 구멍이 뚫린 셈이었다.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관지 장로는 섭평이 류태청에게 악비 대장군을 구금하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의 죽음이 알려지는 것을 우려해 황군으로 하여금 양양성으로 돌아가려는 호 위대를 강제로 막다가 충돌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묵향이 황성에서 어떤 식으로 악비 대장군을 찾고 그의 죽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 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개방과 아미파, 공동파가 얼마나 마교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도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묵향이 옥령인과의 추억에 젖어 이러한 부분을 관지 장로에게 제대로 말을 해 주지 않았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더군다나 만통음제의 실종이라 는 급박한 일로 묵향이 자리를 비우게 될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그 때문에 관지 장로는 현재 관부와 무림맹에서 마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