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4권 1화 – 미끼를 물어라!

미끼를 물어라!

묵향으로서는 확실한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움직인 것이었지만, 그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묵향의 움직임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특히 장인걸 쪽에서는 마교 쪽의 기묘한 움직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놓고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만통음제를 납치하지 않았으니까.

“부교주가 괴이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사옵니다.”

“괴이한 움직임이라고?”

“예, 여기를 보시옵소서.”

편복대주는 커다란 지도를 탁자에 쭉 펼쳐 놓은 후, 근래 움직임이 포착된 마교 세력들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먼저 원뿔 모양의 조각을 올려놓은 곳은 바로 양양성이었다.

“마교에서 이번 전쟁에 투입한 유일한 전투 세력인 흑풍대이옵니다. 조사해 본 결과 무한 방면으로 진격하던 파저 원수의 20만 대군을 격파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편복대주는 양양성 위에 빨간 원뿔 조각을 하나 더 올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이건 묵향 부교주이옵니다. 교주님과의 충돌을 통해 그의 개입을 파악할 수 있었으며, 현재 그는 양양성에서 흑풍대와 함께 기거하고 있음을 밝혀냈사옵니다.” 편복대의 첩자들이 지속적으로 구멍을 뚫어 댄 결과 양양성 쪽의 정보가 조금씩이나마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장인걸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 다.

양양성은 정파 연합 세력의 최대 집결지였다. 거기에 모인 정파 고수들의 수만 3만 명에 달하는데, 그곳에 달랑 흑풍대만 거느리고 가 있다니. 아무리 자신을 상대 하기 위해 동맹을 맺었다고는 하지만 만약 정파 쪽에서 뒤통수를 치기라도 하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다는 건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제아무리 무공이 고강하다 해도 한 손이 열 손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더군다나 한 문파의 수장이라는 놈이 이렇게까지 무모하다니. 어이가 없는 장인걸은 탄식 과 함께 입을 열었다.

“허어, 정말 대단한 놈이군. 정파 놈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오합지졸들만 거느리고 가 있다니……. 도대체 간덩이가 얼마나 큰지 짐작하기가 어렵구먼.”

그 말에 자신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던 편복대주는 또 다른 원뿔 조각 하나를 꺼내 십만대산 위에 올려놓고, 거기에서부터 동쪽으로 쭉 움직이다가 화 산 근처에서 멈췄다.

“전에 말씀드렸던, 십만대산에서부터 관도를 따라 천천히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세력이옵니다.”

“여문기가 통솔한다는?”

“예.”

여문기라면 마교에서도 핵심 고수들 중 한 명이기에 장인걸은 살짝 눈을 감고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무공 정도나 전투 습성을 알면 그만큼 대처하기 편하기 때 문이다.

“흠, 그때도 무공이 꽤 쓸 만한 놈이었으니 지금쯤은 서열 50위권 안으로 들어갔겠군. 그런 놈이 하릴없이 움직일 리는 절대 없지. 놈이 움직이는 이유는?”

“면목 없사옵니다만 아직…, 워낙에 뛰어난 고수들이라 몰래 정탐하기가 쉽지 않은지라……?

말끝을 흐리며 송구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편복대주에게 장인걸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잠시 턱 끝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던 장인걸은 뭔가 떠오른 듯 작 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혹시 이쪽의 신경을 건드리기 위해 일부러 저런 괴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쨌거나 묵향 부교주 쪽에서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냄새는 짙게 풍기고 있사온데…, 그게 과연 뭔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는 상황이옵니다. 더군다나 오늘 또 다른 마교 세력까지 포착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사옵니다.”

그러면서 편복대주가 원뿔 조각 하나를 올려놓은 곳은 바로 무산(巫山) 근처였다. 장인걸은 지도의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원뿔 조각들을 하나하나 지그시 노려보 다 툭 내뱉었다.

“그들의 규모는?”

“인원수는 101명. 소규모입니다만 그 개개인의 능력은 특1급으로 추정된다고 하옵니다.”

그 말에 장인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특1급이라면 최강의 전투 집단, 즉 천마혈검대급 정도의 전투력을 지녔다는 말이다. 아마 천마혈검대를 상대하기 위해 묵향 이 조직한 전투단이라고 보는 게 옳으리라. 그런 고수들이 쓸모없는 일에 동원될 리는 절대로 없다. 뭔가 엄청난 일을 벌이고 있음에 틀림없는 것이다. 문제는 아무 리 지도를 살펴봐도 무슨 꿍꿍이인지 전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한참 동안 지도를 뚫어져라 노려보던 장인걸은 불쑥 편복대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놈들은 지금 뭘 하고 있나?”

놈들이라는 말에 편복대주는 잽싸게 머리를 굴려 누구를 지칭하는 것이지 생각한 뒤 곧바로 대답을 하였다.

“그게…, 어떤 사람을 찾고 있다고 하옵니다.”

“사람을 찾고 있다고?”

편복대주는 만현에서부터 시작해서 무산 인근까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예, 그들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이쪽까지 이동하며 이렇게 생긴 사람을 찾고 있다고 하옵니다.”

편복대주는 품속에서 초상화 한 점을 꺼내 지도 위에 올려놨다. 잘생긴 얼굴에 미염공(髥公 : 관우)을 연상시키는 듯한 긴 수염……. 장인걸도 이미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이건 만통음제가 아니냐?”

“예, 교주님에 의해 죽음 직전까지 몰렸었던 만통음제가 맞사옵니다. 수하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자들은 바로 이 만통음제를 찾고 있다고 하옵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장인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묵가 놈이 저자를 내 손에서 구출해 갔으니, 설마 죽여 없애려고 찾는 건 아닐 테고……. 거참, 이유를 도통 모르겠군.”

“보고에 의하면 아마 실종된 모양이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엄청난 고수들까지 동원해서 난리 법석을 떨며 찾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장인걸은 묵향이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짓을 하는지 열심히 머리를 굴려 봤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흠, 화경급 고수의 실종이라…….?”

“속하도 일단 편복대원들에게 이 일대를 샅샅이 뒤지며 만통음제를 찾으라 지시를 내려놓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잠깐!”

“예?”

“편복대원들을 어느 정도 투입했나?”

“급한 사안인 듯하여 예비 인력을 몽땅 다 투입하였사옵니다.”

장인걸은 급히 지도에 놓여 있는 원뿔 조각들을 노려봤다. 원뿔 조각들의 위치는 우연인지는 몰라도 거의 정삼각형에 가까웠다. 만약 만현 쪽에 있는 놈들을 공략 하러 들어간다면, 여문기의 세력과 양양성의 세력에 포위당하기 딱 좋은 위치였다.

문득 장인걸의 뇌리 속으로 예전에 묵향에게 어처구니없이 당했던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 마교 교주로 등극한 장인걸은 천하에 무서운 것이 없었다. 하지 만 묵향의 생각지도 못했던 전술에 휘말려 허망하게 교주 자리를 뺏기고, 목숨을 건지기 위해 사력을 다해 도망쳐야만 했다.

피눈물을 흘리며 도망치던 장인걸은 그때서야 정보와 전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상대를 노려보면서 상대의 이목(耳目)을 틀어막을 수만 있다면 필승을 거둘 수 있다.

그렇다. 이건 자신의 이목이라고 할 수 있는 편복대를 노린 함정일 가능성이 컸다. 뭔가 그럴 듯한 건수가 있는 것처럼 움직여 이쪽의 호기심을 자극해 편복대를 유인한 다음, 일망타진하려는 것임이 분명하다.

장인걸은 편복대주를 향해 급하게 소리쳤다.

“이건 조호이산지계(調虎離山之計)가 분명해! 지금 당장 편복대를 철수시켜라!”

장인걸의 말에 편복대주는 다급히 고개를 들었다. 편복대주 역시 그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다. 하지만 만통음제의 실종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이 계책을 세운다면 뭔가 그럴듯한 이유를 대지, 이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곧 만통음제의 실종이 진실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저들의 다급한 움직임으로 봤을 때, 계책이 아니라 진짜로 실종된 것일 수도 있사옵니다, 교주님. 위험하기는 하지만 충분히 감수할 만한 사안인지라 부디 명령 을 거둬……..”

“본좌의 의지는 확고하다. 지금 당장 편복대를 철수시키도록 해라!”

편복대주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조아려야만 했다.

“조, 존명.”

“만약 함정이 아니라고 해도, 구태여 편복대를 투입해서 조사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놈이 십만대산에 숨겨 두고 있던 최정예까지 투입할 정도로 만통음제가 소중 한 인물이라면, 다른 각도에서 조사를 해 봐도 충분히 답은 나올 테니까.”

“다른 각도라고 하시면…….”

고개를 갸웃하던 편복대주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 다급히 말을 이었다.

“아! 만통음제를 이쪽에서 제압하여 구금하고 있다고 슬쩍 소문을 흘리면 어떻겠사옵니까? 만통음제의 실종이 사실이라면 저쪽에서 뭔가 반응을 보이지 않겠사 옵니까?”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로다.”

조심스럽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장인걸은 만통음제의 실종이 사실이기를 간절히 원했다. 상대방 쪽의 초고수 한 명이 사라진다는 의미 외에도, 그걸 이용해 묵향을 함정에 빠뜨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종이 사실이라면 놈을 손쉽게 함정에 끌어들일 수 있어. 내가 생각해 봐도 지금 그 정도 초고수를 흔적 없이 납치할 수 있는 단체라면, 우리 쪽뿐이니까.’

하지만 그는 곧이어 그렇게 손을 쓸 수 있는 단체가 하나 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무림맹이다. 편복대주는 무림의 물을 덜 먹었기에 정파의 수뇌부 들이 정, 사의 대립에 있어서만은 얼마나 추접스럽게 변할 수 있는지 상상조차 못 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뇌 회전이 빠름에도 불구하고 범인으로 무림맹을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리라. 만약 그렇다면 두 거대 단체의 동맹을 깨트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지금 당장 무림맹에 잠복해 있는 편복대에 기별을 보내도록 해라. 혹, 맹에서 만통음제를 제거했는지 알아보라고 말이야.”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 시국이 어떤 땐데 무림맹에서 그런 고수를 제거하려고 들겠사옵니까? 더군다나 만통음제는 정파 쪽 고수이지 않습니까?”

“정사 간의 원한이 얼마나 깊은지 자네는 잘 몰라. 본좌는 확신하네. 만약 만통음제가 실종된 게 사실이라면, 그 범인은 무림맹일 거야. 그쪽에 대한 조사도 철저히 시행하도록 !”

장인걸의 명령에 편복대주는 고개를 조아렸다.

“존명! 그렇게 지시를 하달하도록 하겠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