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4권 5화 – 드러난 묵향의 약점

드러난 묵향의 약점

장인걸은 고위급 장수들과 함께 봄에 시작될 군사 작전에 대해 논의하던 중이었다.

이때 아무런 통보도 없이 문이 갑자기 벌컥 열리며 편복대주가 뛰어 들어왔다. 편복대주는 장인걸이 장수들과 함께 있는 걸 보자마자 급히 발걸음을 늦추며 전음 을 보냈다. 장수들에게까지 이 사실을 알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주님! 큰일 났사옵니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난리를 치는 것이냐는 듯 잔뜩 얼굴을 찌푸린 장인걸의 시선이 편복대주 쪽으로 향했다.

<묵향 부교주가 움직이기 시작했사옵니다.>

그 말에 장인걸은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시선을 돌려 휘하 장수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편복대주가 본좌에게 할 중요한 얘기가 있는 모양이네. 작전 회의는 다음에 하는 게 어떻겠나?”

장수들이 모두 집무실을 나간 후 장인걸은 편복대주에게 말했다.

“소상히 고해 보거라.”

편복대주는 재빨리 지도를 편 후 그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마교의 3개 전투단이 포착되었사온데…….”

3개 전투단이라는 말에 장인걸의 표정에 긴장감이 떠올랐다.

“놈들의 목표는?”

“그 위치에서 놈들이 공격해 올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이곳과 이곳이옵니다.”

편복대주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노하구와 남양이었다.

노하구는 장인걸의 주력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었기에 이곳을 공격 목표로 잡을 멍청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편복대주가 두 번째로 가리킨 곳이 목표일 가능성이 컸다.

순간, 침착하던 장인걸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군량미를 잃게 되면 60만에 달하는 대군을 유지할 방법이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군량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태사의에서 벌떡 일어선 장인걸이 서둘러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편복대주는 급히 그 뒤를 쫓아가며 말했다.

“이미 각 장수들에게 출동 준비 명령을 내렸사옵니다.”

편복대주가 말하는 건 장인걸 직속으로 편제되어 있는 마공을 수련한 수천에 달하는 고수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무림맹의 움직임은?”

“일전에 보고드린 것에서 변동 사항은 없사옵니다. 우리 쪽의 작전대로 황실의 압력에 의해 왜군을 격파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곤륜에서 양양 성으로 움직이고 있는 도사들은 그 이동 속도로 보아 이번 작전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듯 보이옵니다.”

급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장인걸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무림맹의 움직임이 전혀 없다는 게 의외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양성의 움직임은?”

“그쪽도 아직까지 아무런 변동이…….”

장인걸은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마교의 단독 작전이란 말인가?”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봐서는 그런 것 같습니다, 교주님.”

“이상하지 않은가? 노하구나 남양을 마교 혼자서 치려면 막심한 피해를 각오해야 할 텐데, 그런 미친 짓을 놈이 왜 하려고 하는 거지? 뭔가 딴 계략이 있는 게 아닐 까? 혹시 연경을 치려고 연막을 친다든가…….”

“놈들이 만약 연경을 노린다면 더욱 잘된 일이옵니다. 황제 폐하의 암살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을 때, 연경에 5백 명의 고수들을 이미 지원해 놓은 상태이지 않사옵 니까? 그들이 연경으로 이동해 들어간다면 교주님께서는 전 병력을 이끌고 그들을 추격하여 연경 인근에서 포위, 격멸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편복대주의 말대로 되기만 한다면 놈들을 이리저리 몰며 박살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놈들의 움직임이 어디로 향하느냐 하는 점이었다.

“좋아, 일단 남양으로 가서 사태를 관망하기로 하지.”

* * *

불세출의 고수 묵향의 그늘에 가려 빛을 잃고 있긴 했지만, 철영 역시 마교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걸출한 고수다. 교내에서 2인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그였지만, 요즘 그의 마음은 그다지 편안하지 못했다. 교내에서 그의 유일한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관지는 계속 크나큰 전공을 세우며 자신의 능력을 교주에게 과시했기 때문 이다..

하지만 자신은 이게 뭐란 말인가? 뭔가 확실한 걸 보여 줘서 교주의 신임을 얻어야만 한다. 안 그래도 묵향 부재 시에 교주직을 차지하려 했던 일로 인해 밉보여 있 는 ᆞ상황인데… 물론 묵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 몰라도 지은 죄가 있는 철영의 마음은 찜찜했던 것이다.

하지만 재수 없게도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그에게는 제대로 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만한 기회가 말이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기회가 왔 다.

연경으로 돌진해 들어가 황제를 붙잡아 오는 임무. 더군다나 마교 최강의 전투단인 혈랑대를 지휘할 수 있는 만큼 황제의 모가지는 이미 손아귀에 쥔 거나 다름없 었다.

그 때문에 철영 부교주는 자신이 그 임무를 맡겠다며 묵향에게 고집을 부렸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남양으로 향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렇다고 지금 자신이 떠맡은 임무가 만만하다는 건 아니었다. 노회하기 그지없는 장인걸의 발목을 붙잡는 임무다. 더불어 적의 식량 창고를 불지를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관지가 세운 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공을 세우게 된다.

식량이 없는데 60만 대군을 무슨 수로 유지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적의 대군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것이고, 이 전쟁의 최고 수훈자는 자신이 될 게 뻔하다. 지금 자신의 휘하에는 마교 전투단 중 상위급에 들어가는 수라마참대와 천랑대가 있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무림맹에 쳐들어가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해도 기꺼이 따랐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이 지닌 무공은 하늘을 뒤엎을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연경으로 이동하고 있는 묵향과 보조를 맞춰야 했기에 철영은 천천히 이동했다. 덕분에 그가 돌격선(突擊線)에 도착했을 때는 휴식을 취할 필요성마저 없을 정도 로 모두들 팔팔한 상태였다.

마교도들의 경우 짙게 뿜어져 나오는 마기로 인해 공격 목표로부터 20리(약 6킬로미터) 안쪽으로는 접근할 수가 없었다. 상대에게 자신들의 정체를 노출시키지 않고 접근할 수 있는 한계가 20리였고, 거기가 바로 마교도들이 정의하는 돌격선이었다.

일단 돌격이 시작되면 그 후로는 상대를 제압하기 전까지는 쉴 틈이 없다. 그렇기에 돌격선에 도착하면 앞으로 행해질 혹독한 전투에 대비해 운기조식을 하며 충 분한 휴식을 취하는 게 지금까지의 관례였다.

돌격선에 도착한 철영은 수하들에게 휴식을 취하도록 명령한 후, 장로들을 불러들여 자신이 세운 작전을 설명했다. 그는 나뭇가지를 주워 땅바닥 위에 목표 주변 의 지형지물을 대략적으로 그리며 각 부대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지시를 내렸다.

“옥관패 장로, 자네는 최대한 적진 깊숙이 돌파해 들어가 적의 식량 저장고를 불태우되, 적의 저항이 심해서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후퇴하게. 구 태여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식량 저장고를 노릴 이유는 없으니까.”

“존명!”

“한중평 장로는 이 일대를 완전히 제압! 옥관패 장로가 행동하기 편하도록 뒤를 받쳐 주게.”

지시를 받은 한중평 장로는 살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존명!”

“장인걸이 파견해 놓은 고수들이 조금 있긴 하겠지만, 그 절대 다수는 무공을 모르는 장졸들이 될 걸세. 그런 만큼 놈들이 조직적인 저항을 할 엄두조차 나지 않도 록 초전에 기선을 제압하기만 하면 손쉽게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거라고 본좌는 생각하네.”

철영의 당부에 옥관패 장로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

“놈들에게 지옥이 뭔지 보여 주겠습니다, 부교주님.”

“아예 싸울 의지조차 생기지 않도록 철저하게 짓밟아 놓겠습니다.”

장로들의 다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여 답한 후, 철영은 고개를 뒤로 돌려 수하들을 바라봤다. 그의 뒤편에는 수라마참대와 천랑대 대원들이 무시무시한 마기를 내 뿜으며 상관의 돌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철영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장로들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하게 명령했다.

“그럼, 이제 시작하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장로들은 각자 자신이 이끄는 대원들에게 외쳤다.

“돌격!”

“놈들에게 지옥이 뭔지 보여 줘라!”

명령이 떨어지자 마교 고수들은 저마다 괴성을 질러 대며 토성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토성까지는 탁 트인 개활지였다. 적의 접근을 파 악하기 용이하도록 나무들을 모두 베어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

앞장서 달려가면서도 철영은 성 쪽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온 정신을 집중시켰다. 장인걸이 성내에 얼마나 많은 고수들을 파견해 놨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무영문에서 보내 준 정보에 따르면 3명의 절정고수와 1백여 명의 고수들이 있다고 했다. 성내까지 들어가서 확실하게 알아 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마기를 읽은 것이었기에 거의 틀림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문제는 그 정보가 며칠 전의 것이라는 데 있다. 장인걸이 이쪽의 움직임을 눈치 챘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투입한 증원부대가 벌써 와 있는지, 아니면 아직 여 기에 도착하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만약 벌써 도착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다면 쉽지 않은 싸움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벽 쪽에서 느껴지는 마인의 기척은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약 50여 명 정도로 느껴졌는데 그중 절정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크흐흣, 아직 대비가 안 돼 있어. 행운이 함께하는군.”

그 순간 철영의 머릿속에는 이번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더불어 적들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식량을 잿더미로 만듦으로 인해 최고의 전공을 세운 자 신의 호탕한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만 된다면 자신은 마교의 2인자로서 확고한 지위를 보장받을 게 분명하다.

이때 토성 위쪽에서 요란한 경종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제야 자신들의 접근을 눈치 챈 모양이다. 철영의 눈초리가 먹이를 눈앞에 둔 매처럼 표독스럽게 빛났다.

“크흐흣, 지금 눈치 채 봤자 너무 늦었어.”

철영의 얼굴은 살기 어린 미소로 뒤덮였다. 이제부터 광란의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피와 공포로 가득 찬..

돌진해 들어오는 마교 고수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와 지독한 살기는 그 앞에 서 있는 자로 하여금 온몸이 얼어붙게 만들어 버릴 정도였다. 거기에다가 그들 은 일반 병사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말(馬)이라도 되는 듯 뿌연 먼지까지 휘날리며…

하지만 성벽 위에서 그들을 노려보고 있는 병사들의 표정은 의외로 평온했다. 그건 장수들이 전의를 불태우며 그들을 격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궁노병(弓弩兵)들은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발사하지 말고 기다려라! 보다시피 놈들은 무공을 고도로 익힌 자들이다. 먼 거리에서 화살을 날려 봐야 효과가 전혀 없다. 최대한 가까이 끌어들여 일격에 몰살시키는 게 최선이다. 알겠느냐!”

궁노병들의 뒤편에 서 있는 병사들은 장수들의 명령에 따라 각자 지닌 병장기들을 꽉 움켜쥐고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아무리 장수들이 격려를 해 준다고 해도 병장기를 쥔 그들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만큼은 어떻게 해 주지 못했다. 그들도 대원수부에 소속된 무림인들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존재들인 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이 탄다. 적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는 손이 긴장으로 인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침이라도 한 모금 삼켰으면 좋겠지만 입안까지 바짝 말라 그마저도 불가능 했다.

있지도 않은 침을 삼켜 대는 꿀떡거리는 소리가 북소리처럼 요란하게 들려올 정도로 주위는 긴장과 침묵으로 가득했다.

적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거리를 좁혀 오는 중이다.

500장, 400장, 300장, 200장, 150장, 100장…….

“이거 너무 가까운 거 아냐?”

병사들의 눈에 공포가 어리기 시작할 무렵, 그들이 간절히 원하고 있던 명령이 드디어 떨어졌다.

“발사!”

슈슈슉!

그와 동시에 1만 발을 상회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화살이 새까맣게 하늘을 뒤덮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화살에 맞고 쓰러진 적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워낙 많은 화 살이 날아갔고 또 그 화살들 중에는 상자노(床弩)에서 발사된 엄청나게 크고 강한 것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달려오던 마교 고수들은 노련하게도 자신들에게 상해를 가할 만큼 강한 위력을 지닌 것들만 막아냈을 뿐, 나머지 화살들은 그냥 놔뒀다. 자신들의 몸을 철갑처럼 보호해 주고 있는 호신강기(護身剛氣)를 믿은 것이다.

몸 전체에 화살 몇 개씩을 달고서 악귀처럼 달려드는 마교 고수들. 워낙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온 데다 거리마저 너무 가까웠기에 두 번째 화살을 쏠 여유조차 없 었다. 더군다나 성벽마저도 병사들의 보호막이 되어 주지 못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사다리조차 사용하지 않고 수십 척이나 되는 성벽을 그대로 뛰어올랐다. 아니, 날아올랐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순식간에 성벽 위에 떨어져 내리며 악귀 같은 공격을 퍼붓는 마교 고수들. 예리하게 갈린 창과 칼, 도끼 따위로 무장한 병사들이 달려들었지만, 그들은 곧이어 피 를 토하며 나뒹굴어야만 했다.

맨주먹으로 치는데도 방패와 갑주가 수수깡처럼 깨져 나가니 그들로서는 도저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금군은 남양 남쪽에 자리 잡은 대령산에 방대한 양의 식량을 야적해 뒀다. 그런 다음 그 산을 빙 둘러 토성(土城)을 쌓아 적의 침입에 대비했다.

작년 가을만 해도 엄청난 양의 식량이 곳곳에 쌓여 있었지만, 겨울을 나면서 상당량 소모했기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양이 반 이상 줄어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래 도 그 양은 어마어마했다.

대령산의 꼭대기.

지금 이곳에는 수십 명에 달하는 인원이 모여 점점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공방전을 매서운 눈길로 분석하고 있었다. 한참을 지켜보던 장인걸은 인상을 찡그리며

편복대주에게 말했다.

“본좌가 아무리 살펴봐도 2개 전투단밖에 안되는 것 같은데?”

“……”

순간, 편복대주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토성을 공격하고 있는 적의 숫자는 대충 2천여 명. 그렇다면 가장 막강한 전력을 지닌 전투단이 여기에 없다는 말 이 아닌가.

“천마혈검대급으로 이뤄졌다는 그 전투단이 이동할 만한 곳은 어디라고 생각하나?”

고개를 떨군 편복대주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무림맹에서 빼내 온 정보가 스쳐 지나갔다. 황제의 암살! 마교는 어처구니없게도 살수가 아닌 전격적인 전투를 통해 황제를 죽이려 하는 것이다.

“여, 연경일 가능성이 크옵니다.”

“연경이라……. 허, 완전히 허를 찔렸구나. 양동 작전이었다니.”

“그래도 아직 승패가 판가름 난 것은 아니옵니다. 연경에는 구양운 장로께서 계시고, 요 근래 헛소문에 속아서 증원한 5백여 명의 고수들까지 있지 않사옵니까? 당시에는 놈들에게 당했다고 생각했사온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나마 다행이 아니올런지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장인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구양운 장로에게 전서구를 띄워라. 그쪽으로 적들이 가고 있다고 말이다. 적의 전력이 뛰어난 만큼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물리치라고 일러라.”

“옛, 교주님.”

편복대주의 지시를 받은 편복대원 중 한 명이 어딘가로 달려갔다. 아마도 지시받은 전서구를 연경으로 날리기 위해 간 것이리라.

장인걸은 성벽 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격전을 지긋이 바라보다,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탄식을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그의 어조에는 허탈감이 묻어 있었다. “허, 거참. 웃기는 놈이로다. 본좌가 놈을 그렇게 안 봤거늘, 입으로만 인정에 끌리지 않는 척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 그렇다면 황제 폐하가 목표가 아니라…….”

“우리가 구금하고 있다는 만통음제가 목표지.”

편복대주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통음제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이런 무모한 작전을 펼치다니, 그것도 자칫하다 문파 태반의 전력이 박살 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말이다.

노하구에서 남양으로 이동하고도 시간이 꽤나 흘렀다. 그동안 여러 정보들이 추가로 입수되었고, 그것들을 떠올리며 만통음제라는 요소를 집어넣어 본 편복대주 는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마교가 이번에 행하고 있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이 작전은 순전히 묵향의 광기로 인해 비롯된 것이라는 걸 말이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이성을 상실하게 만든 이유는 딱 한 가지뿐이었다.

“속하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옵니다. 설마 만통음제를 잡아 두고 있다는 헛소문 한마디에 이토록 이성을 상실해 버릴 줄이야…….”

편복대주는 고개를 조아리며 장인걸에게 사죄했다.

“그자의 약점을 지금껏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속하의 미흡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장인걸은 허탈한 듯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자네를 용서하고 말고 할 것이 있겠는가? 예전에 본좌도 깜빡 속아 넘어가, 놈이 아끼는 양녀를 손아귀에 쥐고서도 써먹지 못했었는데…….”

“예? 양녀라니요?”

그 말에 과거를 회상하는 듯 장인걸의 시선이 아련하게 바뀌었다.

“아, 자네는 아직 모르고 있었나? 놈에게는 양녀가 한 명 있지. 과거 그 계집을 붙잡아서 놈을 위협한 적이 있었네. 그때는 씨알도 안 먹힌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다 놈의 연극이었을 줄이야.”

순간, 편복대주의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전번 전투에서 행해진 묵향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혹, 그녀가 있는 곳이 천지문이 아니옵니까?”

편복대주를 정보대의 수장으로 임명한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며 장인걸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호…, 자네도 어느 정도는 눈치 채고 있었던 모양이군그래! 놈은 딸을 거기에 숨겨 두고 있었지. 아마 본좌 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있는 사실일 거야. 그 딸 이름이 뭐였더라?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천지문주의 적전제자였던 건 생각나는군.”

“수하들에게 자세히 알아 보라고 지시해 두겠습니다, 교주님.”

편복대주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장인걸은 전장(戰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지금 적을 습격할 적절한 시점을 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