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5권 4화 – 교주보다 더 악독한 놈!

교주보다 더 악독한 놈!

개방의 남경분타가 연루된 고위 관료 납치·고문 사건의 경우, 황제를 향한 모반적 성격이 아니었기에 그 조사의 공식적인 주체는 형부(刑部)였다.

그렇기에 남경분타에서 사로잡혀 온 거지들은 형부의 감옥에 갇혀, 험악한 인상의 고문 기술자들에게 매일 시달려야만 했다. 그런데 아는 것이 있어야 불 게 아닌 가. 모든 걸 다 불어 버리고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어도, 뭘 알아야 실토하고 자시고 할 게 있을 거 아닌가.

하지만 형부 쪽의 입장은 얘기가 달랐다. 이놈들의 입이 얼마나 질긴지, 아무리 고문을 해도 속 시원하게 부는 놈이 없는 것이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불구 하고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보니 상부에서는 연일 질책성 문책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결국 똥줄이 탄 형부의 관리들은 그저 개방도들만 죽어라 고문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기 때문에 아무런 죄도 없는 방도들이 고문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독두개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다. 옆에 돌덩어리라도 하나 있다면 콱 머리를 처박고 죽고 싶 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지독한 중상을 당한 상태인데다가, 혈도마저 제압당해 있었기에 자결도 하지 못하고 내심 피눈물만 뚝뚝 흘리며 누워 있어야만 했다.

형부의 고문 기술자들은 독두개의 내상이 워낙 심각해 어떻게 손을 쓰지도 못하고 그냥 지켜보고만 있는 형편이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독두개야 말로 이 사건 의 전말을 알고 있는 핵심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하지만 손가락이라도 하나 까딱했다가는 그날이 바로 독두개의 제삿날이 될 가능성이 컸기에, 형틀에 매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저 지켜만 보며 발만 동 동 구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황성사에서 파견한 인물들이 형부에 도착하면서 독두개의 처우가 일변했다. 하루빨리 죄를 밝혀 내라며 형부를 채근하다 지친 황성사에서 직접 전문 가들을 보낸 것이다. 아무리 그 권력이 하늘을 찌른다는 황성사라지만 이런 식으로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지는 않는다. 묵향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맺힌 연공공의 입 김이 작용한 것이다.

“이런, 이런…, 몸이 아주 엉망진창이로구먼.”

독두개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년 사내는 형부의 간수를 향해 물었다.

“지금까지의 치료는 어떻게 했었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음에도, 간수는 화들짝 놀라 황급히 대답했다.

“저는 잘 모르겠고……. 조금만 기다리십쇼. 지금 당장 황 선생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간수가 의생을 부르러 급히 달려 나가는 걸 힐끗 보며 독두개는 사내의 신분을 짐작하려 애썼다. 간수가 저토록 긴장하는 걸 보면 꽤 높은 신분임에 분명했다. 누굴까? 독두개의 눈동자에 희미한 의문이 깔렸다.

사내는 독두개가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다는 걸 그제야 눈치 챘는지 빙그레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대접을 해 주지 못해 미안하군. 나는 견정(見正)이라고 한다네. 이제부터 새로운 자네의 담당이지. 잘 부탁하네.”

견정은 이런 험한 장소에서 만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선한 인상을 지닌 중년 사내였다. 그런 그가 부드러운 미소까지 지으니, 마치 이곳이 형부의 감옥이 아닌 다른 곳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독두개는 내심 소름이 온몸에 돋는 것을 느꼈다. 정보 단체인 개방에 있다 보니, 개방도 필요할 경우 고문을 통해 정보를 획득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아는 것이다. 눈 앞의 상대가 겉모습과 달리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를.

“빌어먹을, 차라리 혀라도 깨물고 죽을 수 있다면 좋겠구먼.’

앞으로 닥쳐올 끔찍한 고문에 대한 두려움에 독두개가 자살을 생각할 만큼 말이다.

견정은 꽤 높은 신분을 지닌 자인 듯했다. 그의 한 마디에 지금까지의 허접한 의생이 아닌, 꽤 실력 있는 의생이 달려온 것을 보면 말이다. 새로 온 의생은 어쩌면 황실에 소속된 의생일지도 모른다고 독두개가 생각할 정도로 형부에 소속된 의생들과 차원을 달리했다. 생사를 오갈 정도로 중태였던 독두개의 내상을 빠른 시일 안에 안정화시켜 놨으니 말이다.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해지자 견정은 독두개에게 다시금 자기 소개를 했다.

“이런,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내 신분을 밝히지 않았군. 내가 그렇게 예의가 없는 사람은 아닌데 가끔 깜박하곤 한다네. 나는 황성사 내의 감찰부 소속이지. 맡고 있는 일은 주로 죄를 지은 자들이 제대로 자신의 죄를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네.”

‘역시…….”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확인한 독두개는 더 이상 상대를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슬며시 옆으로 돌렸다. 견정은 그런 독두개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 소리로 말했다.

“내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 하는 그 마음은 십분 이해한다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일단은 나도 상부로부터 부여받은 임무가 있는데…….”

독두개는 메마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게 뭘 원하는 게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네. 공공께서는 마교 교주가 황도에서 벌인 짓거리에 대해 자네가 잘 알 거라고 하셨지.”

독두개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견정은 다시 말했다.

“그걸 자세히 기록할 수 있도록 나한테 말해 주면 자네가 할 일은 끝나는 거야. 자네의 치부를 밝히라는 것도 아니고, 교주가 하지 않은 짓을 지어 내라는 것도 아 닐세. 그가 이곳에서 했던 일만 말해 주면 돼. 그러면 자네의 자유를 보장하겠네. 원한다면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도 아끼지 않을 것이야. 자, 어떤가? 꽤 괜찮은 제안이 아닌가?”

독두개가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견정은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자네는 아직 모르는 모양인데, 개방에서는 자네가 교주에게 포섭되어 이번 불미스런 일을 벌인 거라고 발표했다네. 쉽게 말해, 자네는 버려진 게야.”

말을 듣던 독두개의 눈동자가 일순 흔들렸다. 그도 일개 분타를 이끌던 고위급 인물이다. 개방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절망감 이 밀려옴을 어쩔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개방은 자신을 버림으로써 이번 일을 마무리 지으려는 속셈인 게 틀림없으니까.

“이렇게 되면 이 일과 개방은 아무런 관련이 없고, 모든 죄를 자네가 뒤집어써야 한다네. 따라서 자네가 진술서를 쓴다고 해도 개방에 해가 될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야.”

진술서로 인해 화를 당하는 건 개방이 아니라 마교다. 그런 만큼 부담 없는 마음으로 진술서를 써 줄 수도 있다. 더군다나 진술서만 써 준다면 자유를 보장하겠다 는 달콤한 제의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 아니던가.

만약 황궁에서 마교를 완전히 뿌리 뽑아 버릴 수 있는 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독두개는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그동안 교주가 저지른 온갖 극악무도한 일 들을 모두 써 줄 용의가 있었다. 아니, 아예 마귀와 같이 써 달라고 해도 기꺼운 마음으로 진술서를 여러 수백 장이라도 써 줬을 거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황성사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현재 송나라 황실의 힘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마교를 어떻게 할 능력이 없다 고 독두개는 확신하고 있었다.

독두개는 자신이 진술서를 써 줌으로써 벌어질 묵향의 분노가 두려웠다. 아직 무림의 실상을 잘 모르는 황성사에서 어설프게 교주를 건드린다면 그 후환後患)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잠자는 호랑이의 콧털을 뽑은 황궁이 박살 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일 것이고, 진술서를 써 줘 그에 협조한 개방 또한 교주의 분노를 피하기 힘 들 것이다.

잠시 후, 복잡한 심정으로 생각을 거듭하던 독두개가 견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까칠하게 메말라 있었다.

“연공공께서는 교주에게 직접 고문까지 당하셨는데, 내 진술서가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이오?”

“이런 경우 진술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사실 연공공 나으리 혼자서 주장하는 것보다, 개방처럼 공신력 있는 거대 문파의 남경분타주인 자네의 진술서 까지 덧붙여진다면 훨씬 더 무림맹을 설득하기가 용이하지 않겠나?”

그 말에 독두개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결론은 황실은 뒤로 쏙 빠지고, 자신의 진술서를 이용해 무림맹에 연대 책임을 물어 마교를 상대하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무림맹을 설득해서 뭘 하시려고 그러시오? 함께 마교를 멸망시키자고 하시려오? 그게 아니면 황실에서 마교를 정벌할 테니, 더 이상 악의 집단인 마교와 손을 끊 으라고 압력을 가하시려고 그러시오.”

“그걸 난들 알겠나? 나는 자네에게 진술서를 받아오라는 명령만 받았을 뿐이라네.”

“차라리 그냥 죽여 주시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견정의 눈빛이 바뀌었다. 얼굴로는 부드럽게 웃고 있었지만 눈은 차디차게 가라앉았다.

“대화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자네가 어렵게 만드는구만.”

견정의 말에서 독두개는 직감적으로 곧 잔혹한 고문이 시작될 것임을 깨달았다. 독두개는 흔들리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고문 따위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내 수하들은 그렇지 않다네. 그들은 내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지. 수하들은 죄수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서라도 결국 내가 원하는 바를 말하게 한다네. 난 자네가 그런 모진 고문을 받게 된다면 무척이나 가슴이 아플 것 같군.”

어찌 들으면 자신을 생각해 주는 듯한 말투였지만, 독두개는 전신으로 싸늘한 한기가 치솟았다. 자신이 처음 견정을 봤을 때 느낀 것처럼 이 사내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사내다. 그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독두개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자 발악적으로 소리쳤다.

“젠장! 송 황실에서 감히 마교를 멸할 수 있겠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내 지금이라도 기꺼이 진술서를 써 드리리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말장난 그만하고 빨리 죽여 주시오.”

그 말에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견정의 안색이 일순 딱딱하게 굳었다. 사실 관부에서 일하는 그에게 있어서 황실이 지닌 힘은 절대적이었으니까.

“감히 네놈이 지금 황실을 능멸하는 게냐? 황실에 맞서고 살아남은 자가 누가 있단 말인가. 일세를 풍미했던 악비 대장군 같은 사람도 한순간에 목이 날아갔는데, 제아무리 마교가 기고만장하고 있다지만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일 뿐이야!”

“젠장, 자라 좆 까는 소리 하고 있군.”

상대를 자극해 자신에게 해코지하게 하려 했으나 견정은 느물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크크, 기대해도 좋다. 네놈에게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뭔지를 알게 해 주마.”

잠시 후, 견정을 따라 한 사내가 감옥 안으로 들어섰다. 사내의 두 눈은 지금부터 시작할 고문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광기로 번들거렸다. 사내는 들고 온 연장들 을 탁자 위에 쭉 늘어놓은 뒤 독두개의 전신을 훑어보며 이죽거렸다.

“제법 뼈대가 굵은 것 같은데 내가 즐거움을 듬뿍 맛볼 수 있도록 제발 오래만 버텨다오.”

어느새 부드러운 미소를 회복한 견정이 조용하게 말했다.

“입만 살아 있으면 된다. 나머지는 너에게 맡기마.”

“예, 대인!”

달랐다. 견정이 데려온 수하는 말 그대로 고문에 있어서는 나름 일가를 이룬 자였다. 무림에도 분근착골과 같은 고문 수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처럼 몸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사내는 어떻게 하면 사람이 고통스러운지를 완벽하게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피부를 벗기고 소금을 뿌리는 것은 애교였다. 손톱과 발톱이 뽑힌 것은 이미 오래전이고, 이빨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내의 손길이 전신을 스칠 때마다 독두개는 말 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에 차라리 혀라도 깨물고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고통이 너무 심하면 졸도라도 할 텐데, 사내는 사람이 버틸 수 있는 한계점까지만 고통을 주며 즐겼다.

어느새 감옥 안은 짙은 혈향으로 가득 찼고, 그 한가운데에는 피부가 모두 벗겨져 벌건 고깃덩이처럼 보이는 독두개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독두 개의 두 눈이 흐리멍텅하게 변해 갔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차츰 미쳐 가는 것이다.

“크으으, 날 죽여. 제발 죽여 달란 말이야.”

“이제 시작인데 벌써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허접한 놈들이야 고문을 하다 죽이기도 하지만, 난 그런 놈들과는 달라.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내가 주는 즐거움을 듬뿍 느껴 보라고. 좀 더 발악을 하란 말이다, 크크크.”

죽지도 못하고, 참을 수 없는 이런 고통이 계속될 것이라는 사내의 말에 독두개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절망감에 미친 듯이 발작을 일으키던 독두개의 몸이 일순 빳빳하게 굳는가 싶더니 축 늘어졌다. 기절을 한 것이다.

사내는 재빨리 독두개의 코 밑으로 손가락을 대 보았다. 미약하지만 숨결이 느껴지자 사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독두개의 전신 기혈을 만져 주었다. 자술서를 아직 받지도 못했는데 죽으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때 감옥 안으로 언제 들어왔는지 견정이 사내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어찌 된 게냐?”

“고통에 기절을 했사옵니다, 대인.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시면 충분히 입을 열게 할 자신이 있사옵니다.”

하지만 견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흠, 나도 그러고 싶지만 상부에서는 멀쩡한 모습의 죄수를 원하신다. 자술서를 쓰라는 건 그렇게 회유를 해서 황실을 위해 여기저기에 마교 교주의 악독함을 알 리려는 게야.”

“그, 그렇다면.. ..?”

견정은 손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일단 물러가 있거라. 나중에 필요하면 다시 부를 테니 말이다.”

“예, 대인.”

사내가 연장을 챙겨 감옥 밖으로 나가자 견정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독두개와 같이 의지가 굳건한 사람들을 한두 명 상대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고 문을 해도 이런 사람들은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하지만 의외의 자극에 그들은 쉽게 무너지곤 했다. 문제는 그게 무엇이냐는 것이다.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견정의 입가에 어느새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독두개를 무너트릴 좋은 방법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독두개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전신을 엄습하는 고통에 치를 떨어야 했다. 어느새 그의 온몸에는 진한 연고가 발라져 있었는데 꽤 좋은 약인지 빠르게 상처가 아물 고 있었다. 독두개는 두려움에 찬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을 고문하던 사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사내는 보이지 않았지만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술잔을 들이키는 견정의 모습은 보였다.

“오, 이제 깨어났는가? 기다리기 지루해서 한잔하고 있었던 참일세.”

마치 친구에게 건네는 듯한 그 여유로운 말투에 독두개는 새삼 묵향보다 더 악독하고 잔인한 놈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몸서리를 쳤다.

“쯧쯧, 아무리 내 수하들이라고는 하지만 이래서 난 무식한 놈들이 싫어. 충분히 대화로 풀 수 있는 문제를 그놈들은 무식하게 고문으로만 해결하려 하거든. 그렇 지 않은가?”

독두개는 대답을 하지 않고 아예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그의 귓가로 견정의 부드러운 말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자네가 만약 나보다 내 수하들을 더 좋아한다면 어쩔 수 없지. 안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강골이라고 서로 이 감옥 안으로 들어오겠다고 난리거든.”

또다시 그런 끔찍한 고문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자 진저리를 치며 독두개는 두 눈을 번쩍 뜬 뒤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빌어먹을 자라 좆같은 새끼야! 죽여! 날 죽이란 말이야!”

“허허, 애써 약까지 발랐는데 흥분하면 몸에 좋지 않아. 진정하게나.”

견정은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하지. 누구를 위해 그토록 버티는가? 자네가 이러는 걸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가? 그러지 말고 내 말대로 하게. 자술서만 쓰면 평생 배부르게 먹 고살 만큼 재물도 주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정착까지 시켜 주겠네.”

독두개가 더 이상 상대를 하지 않겠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자 견정은 빙글빙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네의 마음이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만. 혹시 아는가? 지금 이곳에 갇힌 거지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독두개는 슬그머니 눈을 뜨고 견정을 바라보았다.

“자네가 계속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난 한 시진마다 한 명씩 그들을 이 방으로 데려와 죽일 게야. 그리고는 이렇게 말할 생각일세. 가슴 아픈 일이지만 자 네가 그들을 살려 주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이지.”

순간 독두개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너무 심한 정신적 충격에 또 다시 정신을 잃은 것이다. 점차 사라져 가는 의식 속에서 독두개는 확실하게 알 수 있 었다. 자신이 왜 자술서를 쓰는 것을 극구 거부했는지를.

묵향의 무자비한 보복도 두려웠지만, 썩을 대로 썩은 송 황실에 대한 반감이 더 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