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7권 9화 – 또 다른 총단의 위치
또 다른 총단의 위치
“결혼이라는 게 사람을 변화시킨다더니, 확실히 그 말이 맞군요. 신수가 아주 훤해지셨습니다, 교주님.”
홍진 장로의 말에 묵향은 과장되게 인상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눈을 보면 잔잔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쓸데없는 말 말게. 아주 귀찮아 죽겠으니까. 결혼하고 나니까 완전히 내 머리 꼭대기로 기어오르려고 드니 말일세.”
“그래도 예전과는 달리 뭔가 분위기가 변하신 것만은 사실입니다.”
“객쩍은 소리는 그만하고, 대체 무슨 일인가?”
“예, 이번에 꽤 재미있는 정보가 하나 입수되었기에 보고 드리려고 왔습니다.”
안 그래도 요즘 평온한 나날이 지속되자 좀이 쑤시던 묵향이었기에, 재미있는 정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한 모양이었다. “재미있는 정보라……………. 뭔가? 흥미가 동하는군.”
“전 맹주, 그러니까 태극검황과 청호진인, 청수진인이 수라도제를 잡는다고 추격전을 벌이고 있답니다.”
묵향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속하도 어찌 된 연유인가 싶어 조사를 시켰더니, 글쎄 수라도제가 미쳐 버렸다고 하지 않습니까.”
순간 묵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라도제가 미쳤다고?”
“예, 예전에 공공대사가 미쳤었지 않았습니까? 수라도제 역시 그렇게 미쳐 버렸다고 하더군요.”
묵향은 미쳐 버린 상태의 공공대사와 싸워 본 전례가 있었다. 그렇기에 현경의 벽에 가로막혀 미쳐 버린 자들의 특징이 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묵향이 생각하기에 화경급 고수인 태극검황의 능력으로는 결코 수라도제를 제압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이면 무의식중에 현경급의 무공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묵향은 그걸 받아 낼 수 있겠지만, 과연 태극검황 일행도 그럴 수 있을까?
거기에 생각이 미친 묵향은 피식 미소 지었다.
‘헛수고들 하고 있군.’
“그러니까 미쳐 버린 수라도제를 제압하기 위해 태극검황 일행이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소림도 공공대사를 포기했었는데, 수라도제와 별 상관도 없는 그가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거지?”
“붙잡아서 치료할 생각이 아닐까요? 화경급 고수면 큰 전력이니 말입니다.”
“치료라고? 흥!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묵향은 수라도제가 미쳐 버린 것이 단순한 정신병 같은 게 아님을 잘 알았다. 그건 현경의 벽에 가로막혀 의식과 무의식이 충돌하며 벌어지는 현상 이었다.
‘그 말코는 불가능하겠지만 본좌는 가능하지. 수라도제를 깨우는 게………………’
자만심 가득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묵향의 뇌리에 공공대사와 무림맹 수뇌부들이 돌격해 올 때의 그 아득하던 절망감이 떠올랐다. 당시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었다. 묵향은 죽음을 각오했었다.
결국에는 너무나도 공명정대한 공공대사 덕분에 살아나올 수 있었지만, 그때의 그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짜릿했던 감각은 아직까지도 그의 뇌리를 자극하고 있었다. 묵향이 그토록 커다란 위기감을 느낀 순간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녀석을 깨우면 그때의 그 전율戰慄)을 다시 한 번 경험할 수 있을 거야.’
마음속에서 악마가 속삭이는 듯했다. 이건 더할 나위 없이 강한 유혹이었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 만한 적수가 없어진 묵향에게는 하 지만 묵향은 곧 자신의 생각이 당치도 않다는 듯 필요 이상으로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아서라, 쓸데없이 위기를 자초할 필요는 없지.”
묵향의 뜬금없는 말에 홍진 장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닐세. 어쨌거나 꽤나 재미있는 얘기였네.”
“좀 더 자세히 조사해 보라고 시킬까요?”
“그럴 필요 없으니 그냥 놔둬. 헛고생 좀 하라고 말이야.”
묵향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미 그의 목소리에서 더 이상의 흥미는 찾기 힘들었다.
헛고생이라고 단정 짓는 묵향의 말에 홍진 장로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주는 뭔가를 알고 있는 것이다.
치료가 불가능한 것일까? 하지만 공공대사는 갑자기 제정신을 찾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걸까? 묵향과 공공대사 간의 일을 모 르는 홍진 장로의 머릿속만 복잡해지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묵향이 질문을 해 왔기 때문이다.
“요즘 금나라는 어떻다고 하던가?”
홍진 장로는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 곧장 대답했다.
“이제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사료됩니다.”
“장인걸이 요소요소에 배치해 놓은 놈들이 있을 텐데, 자네가 그렇게까지 단정적으로 말하니 좀 의외로구먼. 참, 이름이 뭐였더라? 장인걸이 세운 황제 말이야. 그 녀석 꽤나 능력이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
“장인걸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암살당했습니다.”
“허~, 그 녀석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말까 한 상태일 텐데, 집안싸움까지!”
홍진 장로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원래 망하는 집구석이 다 그렇죠. 더군다나 북방에서 몽골까지 압박해 들어오니 조만간 멸망의 길로 들어설 것 같습니다.”
“자네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몽골이 꽤나 선전하고 있는 모양이군.”
“예, 교주님.”
테무진의 소식에 묵향이 흐뭇해하고 있을 때, 호위를 맡고 있는 무사 한 명이 다가와 보고를 올렸다.
“무슨 일이냐?”
묵향의 질문에 무사는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부복한 채 보고했다.
“개방의 거지 하나가 교주님을 만나 뵙기를 청하고 있다 하옵니다.”
“개방의 거지가?”
아무리 생각해도 개방의 거지가 자신을 찾아올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홍진 장로에게 물었다.
“방주가 본좌에게 사자를 보낼 이유가 있나?”
무사는 머리통이 바닥에 닿을 듯 부복하고 있었기에 교주의 시선을 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 질문이 자신에게 묻는 것인 줄 알고 더욱 고개 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방주가 보낸 것이 아니옵고, 비육걸개 장로의 명을 받았다고 하옵니다.”
“비육걸개라…….”
잠시 기억을 되살리던 묵향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희미한 영상은 살이 뒤룩뒤룩 찐 불결하기 짝이 없던 비만돼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제법 유능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만나 보기로 하지. 들여보내도록.”
“존명!”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호법원 무사의 안내를 받으며 거지 한 명이 들어왔다. 호화로운 태사 위에 앉아 있는 묵향을 보고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 거 지가 잠시 망설이는 사이, 호법원 무사가 달려들어 다짜고짜 그의 뒷덜미를 잡고는 찍어 눌렀다.
거지는 저항했지만, 호법원 무사의 무공은 압도적이었다. 거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치 개구리처럼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부복한 자세가 되 어 버렸다.
“네놈은 누구냐?”
“비, 비을걸개 진곡추(陳哭秋)라고 합니다, 교주님.”
“흠…, 비육걸개 장로의 명령을 받고 왔다고? 그래, 무슨 일인데 본좌와의 대면을 청한 것이더냐.”
위에서 찍어 누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곡추는 고개를 억지로 치켜 올려 교주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목이 아픈데도 그렇게 한 것은 상대의 표 정을 살피기 위함이었다.
“교주님께서 무영문의 본거지를 찾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묵향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곡추는 말을 이었다.
“그걸 알려드리겠습니다.”
우연찮은 기회에 무영문 총단 위치에 대한 정보를 또 하나 습득하게 된 묵향이다. 너무나도 원했던 정보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얻기 어렵다는 정보 가 며칠 사이 계속 굴러들어오자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묵향은 짐짓 진곡추를 노려봤다. 그럼에도 기가 죽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향해 희번덕거리는 눈빛을 보내오는 것이 꽤나 오기가 있는 놈인 듯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구나. 그래, 뭘 원하느냐?”
“정보를 드리기에 앞서 한 가지 교주님께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묵향이 뭐라고 답변하기도 전에, 진곡추를 찍어 누르고 있던 호법원 무사가 손아귀에 더욱 힘을 가하며 화가 잔뜩 난 음성으로 으르렁거렸다.
“네까짓 게 감히 지존께 그런 제안을 할 수 있는 처지가 된다고 생각했느냐?”
“아아, 그만 물러나 있거라.”
묵향의 명령에 무사는 황급히 고개를 조아리며 뒤로 물러섰다. 뒤에서 찍어 누르는 힘에서 해방된 진곡추는 이제 독 오른 독사처럼 고개를 번쩍 들 고 노골적으로 묵향의 눈을 쏘아보기 시작했다.
“그래, 뭘 알고 싶으냐. 말해 보거라.”
“교주님께서 무영문을 찾고 계시는 것은 무영문을 손아귀에 넣고자 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멸하고자 하시는 겁니까?”
진곡추의 질문에 묵향은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멸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 단체가 움켜쥐고 있기에는 그들이 다루는 정보가 너무 위험해.”
“하지만 그 정보를 교주님께서 차지하신다면 엄청난 힘이 되겠지요. 어쩌면 무림일통까지도 가능하게 해 줄 정도로……
진곡추의 말에 묵향은 피식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무림일통을 하는 데 굳이 그런 수법까지 동원해야 할 만큼 본교의 힘은 약하지 않다. 무림을 일통하려고 했다면, 본좌는 이미 무림의 지존이 되어 있었을 게다. 본좌에게는 그만한 힘과 능력이 있고, 본좌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 유능한 수하들이 많다. 네놈은 그리 생각하지 않느냐?”
“허면, 왜 아직까지 무림일통의 행보를 시작하지 않고 계시는 것인지 감히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런 헛된 신기루를 이룩하느라 수하들의 목숨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서니라. 그따위 무림을 손아귀에 넣으면 무엇하겠느냐. 본좌가 천하제일고수 가 되었다고 해서 좋은 게 있는 줄 아느냐? 오히려 적수가 없어져 심심할 뿐이니라.”
춘릉에서 무림맹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음에도 교주가 그대로 놔둔 것을 진곡추가 모를 리 없었다. 교주가 왜 그렇게 한 것인지 는 개방에서도 의아해하고 있는 중이니까. 하지만 오늘 진곡추는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무림일통 따위는 할 생각이 없었던 것 이다.
어쨌건 교주의 대답은 진곡추의 마음에 꼭 들었다. 묵향이라면 지금껏 그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일을 해낼지도 모른다. 바로 무영문을 멸망시키는 것 말이다.
진곡추는 엎드린 채 품속을 뒤져 지도 한 장을 꺼냈다. 그는 그걸 두 손으로 잡아 머리 위로 받들며 말했다.
“무영문의 총단이 위치한 곳을 기록해 놓은 지도입니다.”
진곡추의 뒤에 서 있던 무사가 다가가 지도를 빼앗아 묵향에게 바쳤다. 지도를 살펴보고 있는 묵향에게 진곡추가 부연설명을 했다.
“총단 인근에는 수없이 많은 관찰초소가 있습니다. 제가 알아낸 것들은 모두 다 지도에 기록했습니다만, 기록하지 못한 게 몇 배는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지도 위에는 총단을 중심으로 그 근처에 수많은 크고 작은 표시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흐음, 꽤나 그럴듯하군. 그런데 과연 이 지도가 진짜일까? 본좌는 그게 가장 궁금하군. 아무 이득도 없는데 난데없이 뚱땡이가 자네를 이리로 보냈 을 리가 없거든.”
“교주님께서 의심하시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쪽도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현 중원에서 교주님이 아니라면 그 누가 무영문을 말살할 수 있겠 “습니까.”
잠시 교주의 눈치를 살핀 진곡추는 말을 이었다.
“본방과 무영문이 우이마을 사건으로 충돌을 일으켰던 것을 혹시 알고 계십니까?”
잠시 생각해 봤지만 떠오르는 게 없자, 묵향은 옆에 서 있는 홍진 장로에게 물었다. 홍진 장로는 우이마을에서 개방과 무영문이 충돌한 사건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홍진 장로의 설명이 대충 끝났을 때, 진곡추는 다시금 말을 시작했다.
“그때의 충돌로 인해 저는 형제처럼 지내던 분타원들을 모두 다 잃어야만 했습니다. 그 후, 저는 무영문 총단을 찾아 전국을 헤맸습니다. 복수를 위 해서 말입니다.”
그러자 묵향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본좌는 그 점에서 믿음이 가지 않아. 무명문의 총단을 찾아 헤맨 문파가 한둘이 아닌데, 자네가 그걸 혼자 찾아냈다는 게 말이야. 아니, 개방이 찾
아냈을 수도 있겠지만, 좀 전에 자네는 자네 혼자서 찾았다고 말하지 않았나. 어쨌거나 지금까지 그 누구도 찾아내지 못했던 곳을 자네가 혼자서 그 렇게 간단히 찾아냈다는 말을 본좌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질문에 진곡추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생각하신 것만큼 그렇게 쉽게 찾은 건 아닙니다. 저는 무영문의 총단으로 날아가는 수많은 전서구를 뒤따라갔고, 그곳을 찾아내기 위해 죽을 고비 를 몇 번씩이나 넘겨야 했으니 말입니다.”
“호오, 전서구를 뒤따라갔다니… 말은 쉽다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왜 지금까지 수많은 문파들이 무영문의 총단을 알아내지 못했겠느 냐.”
“그야 첩자들 때문이죠. 그 부분에 있어서는 설혹 천마신교라 하더라도 자유롭지는 못할 겁니다. 이곳 십만대산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고수들 안에 첩자가 끼어들기는 힘들겠지만, 중원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분타들을 생각해 보면 얘기가 달라지니까요. 외부와의 접촉이 빈번해지면, 날파리들이 끼어들 여지도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묵향은 슬쩍 홍진 장로를 바라봤다. 홍진 장로의 얼굴은 창피함으로 인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홍진 장로는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토록 찾았는데도 왜 아직까지 무영문에 대한 그 어떤 실마리조차 찾아내지 못한 것인지, 그 이유를 말이다.
“좋아, 내 자네를 믿어 보지. 하지만 자네의 말이 틀릴 경우, 그때는 각오해야 할 거야.”
“예,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염두에 두고 행동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한 번에 끝장내지 못하면, 그들은 재빨리 흔적을 지우고 잠 적할 거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건 본좌가 알아서 할 테니, 자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네.”
진곡추를 물러나게 한 후, 묵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지도를 쳐다봤다. 그 전에 입수했던 무영문 총단의 위치와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왜곡된 엉터리 정보라는 말이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던 홍진 장로는 황급히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지금 당장 수하들을 풀어 자세히 조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냐, 그럴 필요 없다.”
“예?”
“녀석의 말도 일리가 있거든. 외부와 접촉이 빈번해지면 날파리들이 끼어들 여지가 높아진다는 것 말이야.”
묵향의 지적에 홍진 장로는 즉시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지금 당장 수하들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장인걸을 치는 과정에서 비마대는 무영문과 아주 깊은 협조체제를 갖췄었다. 어쩌면 그러는 와중에 무영문에 포섭된 자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지금 감사를 할 필요는 없어. 자칫 무영문에서 눈치 챌 가능성이 있으니 말이야. 운이 좋다면 둘 중 하나는 진짜겠지. 물론 둘 다 가짜일 가능 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조사도 제대로 안 해 보고 무턱대고 병력을 움직인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더군다나 목표가 두 군데가 아닙니까. 흑풍대의 전투력을 비하할 생각 은 없습니다만, 반으로 나눠진 병력으로는 죽도 밥도 안 될 가능성이 너무 큽니다. 더군다나 총단이라고 밝혀진 곳들이 둘 다 산 속이라, 흑풍대로서 는 최악의 조건이지 않습니까?”
“흠, 그것도 그렇긴 한데……………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일단 군사를 불러오게. 흑풍대를 통한 기습작전에 대한 안건도 그 녀석이 만들었으 니, 뭔가 괜찮은 계책을 내놓을지도 모르지 않나.”
잠시 후, 군사 설민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군사부(軍師部)에서 여기까지 꽁지 빠지게 달려왔는지, 무공을 익히지 않은 그는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었 다.
“어서 오게.”
“헉헉, 차, 찾으셨습니까? 교주님………….”
“그래, 그렇게 달려올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자, 이쪽으로 앉게.”
설민에게 자리를 권한 뒤 묵향이 부른 용건을 말했다.
“무영문 토벌작전에 있어서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네.”
묵향을 대신해 홍진 장로가 좀 전에 들은 진곡추의 얘기를 군사에게 자세히 설명해 줬다.
설민은 홍진 장로가 건네준 지도를 심각한 표정으로 들여다보더니, 이내 흥이 난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이건 그 전에 획득한 것에 비해 훨씬 더 그럴듯하군요.”
“맞아. 그래서 자네를 급히 부른 거야.”
“그렇다면 목표물을 이쪽으로 변경하면 어떻겠습니까? 이쪽이 훨씬 무영문의 총단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요?”
잠시 고심하던 묵향이 대답했다.
“만에 하나라는 말도 있으니, 본좌는 둘 다 때려 부숴 버렸으면 하는데…………….”
묵향의 말에, 옆에 서 있던 홍진 장로가 끼어들었다.
“이 두 곳의 위치가 너무 많이 떨어져 있는데다, 새로 발견된 곳은 아주 남쪽이지 않습니까. 흑풍대를 반으로 나눠서 보내기에는 너무 위험합니다.”
사실, 무영문만을 상대한다면 흑풍대의 절반 정도만 있어도 충분했다. 하지만 무영문이 뭔가 수작이라도 부려서 무림맹과 충돌이라도 일으키도록 만든다면 전멸당하기 딱 좋은 숫자이기도 했다. 새로 알려진 총단이 있는 지점으로 내려가려면 무림맹이 위치한 지역 인근을 통과해야만 하니 말이 다.
한참 동안 지도를 노려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설민이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기가 막힌 계책이 떠올랐는지 입을 연 그는 아주 자신만만 했다.
“흑풍대를 나눌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이쪽은 이쪽대로, 저쪽은 저쪽대로 따로 공격하면 되지요.”
“어떻게 그렇게 한단 말인가?”
“바다를 이용하면 됩니다.”
“바다를?”
무슨 소리냐는 듯 멍한 눈으로 지도를 바라보던 홍진의 안색이 서서히 밝아졌다. 하지만 그에 비해 묵향의 안색은 핼쑥하게 질렸다. 바다라고 하니 끔찍했던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