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8권 3화 – 묵향의 고뇌
묵향의 고뇌
무영문의 총단이 위치하고 있던 곳은 불타버린 건물들의 폐허만이 남아있을 뿐, 인기척이라고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교는 그곳에서 완 전히 철수해 버렸다. 아니, 이곳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던 개방은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드디어 꼬리를 드러냈습니다. 교주님.”
총단쪽으로 경계를 나갔던 철영이 돌아오며 두 명의 사내를 붙잡아왔다.
“두 명밖에 없던가?”
철영은 가소롭다는 듯 두 사내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예. 이놈들이 자신들은 무영문도가 아니라며 박박 우기고 있습니다만, 조금만 주리를 틀면 모든 걸 토설할 겁니다.”
일순 사내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가만히 보니 그렇게 심지가 굳은 놈들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묵향은 그들의 아혈을 풀어주며 질문 을 던졌다.
“순순히 털어놓는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두 사내는 억울하다는 듯 일제히 외쳤다.
“저분께도 말씀드렸지만, 저희들은 무영문도가 아니라 개방도입니다요. 제발 믿어주십시오, 교주님.”
거지 복장을 하고 있는 사내들은 묵향의 신분을 알아본 모양이다. 하기야 철영이 교주라고 했으니, 묵향의 신분이 뭔지는 금방 눈치 챌 수 있지 않겠 는가.
“개방도?”
그러고 보니 사내놈들이 입고 있는 복장이 개방도들이 흔히 입고 다니는 낡아빠진 누더기였다. 하지만 복장만 보고 개방도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무영문도가 그렇게 위장할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예, 교주님. 저희들은 개방에서 나왔습니다.”
“개방에서 여기는 어떻게 알고?”
“저 옆에 관도가 뚫려있는데 당시 오고가던 사람들이 보고 이곳에 무영문의 총단이 있고, 또 그들을 치기 위해 천마신교의 고수들이 출동했다는 소 문을 퍼트려 지금 중원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없다면, 이미 맹에서도 알고 있다는 말이렷다?”
“물론입지요. 맹에서 이곳을 조사해 달라고 본방의 방주님께 기별을 넣었습니다.”
그러면서 개방도는 자신들이 이곳에 도착한 것은 10일쯤 전이며, 그때까지는 이곳의 동정만을 살피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마교가 완전히 철수 한 것 같아 총단의 피해 상황을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 접근했다가 철영에게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하기야, 무영문도일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은 게 사실이지.”
정탐을 위해 밖으로 파견된 놈들치고는 무공이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너희들 외에 이곳에 온 개방도는 몇 명이나 되느냐?”
묵향의 질문에 개방도는 순순히 대답했다.
“아마도 천 명쯤 될 겁니다, 교주님.”
“꽤나 많이 왔군.”
“혹시 귀교의 고수들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희 조장께서 우리들 보고 먼저 탐색해 보라고 해서..
“너희 조장이라는 녀석에게 이곳에 와서 조사해도 좋다고 전하거라.”
묵향은 철영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명령했다.
“저 녀석들을 따라가서 방금 전에 녀석들이 한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라. 그 조장이라는 놈이 없다면 저놈들 다시 이리로 데리고 오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한참 후에 철영은 혼자 돌아왔다.
“사실이었던 모양이지?”
“예. 거지들이 득실거리고 있더군요.”
그렇게 대답한 철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결심했다는 듯 묵향에게 공손히 말했다.
“더 이상은 시간낭비인 듯 합니다, 교주님.”
“그래도 꼴에 총단인데, 겨우 그 정도 밖에 인원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잖나?”
“그렇긴 합니다만 이미 몽땅 다 도망쳐 버렸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땅굴을 파놨는지, 그리고 그 땅굴들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조차 예상할 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건 자네의 말이 옳구먼.”
이곳에서 숨어있는 놈들이 밖으로 기어 나오기를 기다리며 허송세월한 게 벌써 1개월이나 되었다. 만약 적들이 숨어있는 게 맞다면 한 번쯤 정찰을 하기 위해서라도 몇 놈이 밖으로 기어 나왔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낌새조차 보이지 않으니 묵향은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장로들과 합류해서 상의해 보도록 하세. 그게 좋지 않겠나?”
결정을 내린 묵향은 철영과 함께 혈랑대와 수라마참대가 매복하고 있는 지점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도착했다는 기별을 받은 동방뇌무 장로와 한중 평장로가 급히 달려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교주님.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겨우 감시하는 것 뿐인데, 고생은 무슨 고생..”
증원을 요청하기 위해 온 것이라면 둘 중 한 사람만 이쪽으로 달려와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쪽을 비워두고 둘 다 이리로 왔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매복 작전을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겠는가.
“철수하시는 겁니까?”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묵향은 이곳으로 오기 전에 개방도들을 붙잡았던 얘기를 했다. 그리고 철영의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다. 묵향이 하고 싶은 토의는 과연 이곳에 계속 남아있을 필요가 있는가 였다.
“속하의 의견도 부교주님과 같습니다.”
“본좌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무런 성과도 없이 이대로 철수할 수는 없지 않겠나?”
“그건 그렇지요.”
“뭐, 좋은 계책이라도 떠오르는게 없나?”
하지만 모두들 서로의 눈치만 살필 뿐,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무공만을 익혀온 그들에게 군사로서의 재능까지 바란다는 것은 무리이리라.
“갑자기 계책을 내놓으라 하시니 뭐라 드릴 말씀이………….”
“괜찮아, 괜찮아 괜찮은지 아닌지는 본좌가 판단할 테니 아무거나 생각나는 대로 말해 봐.”
그러자 한중평 장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긴 합니다만………….”
“그게 뭔데?”
“조금 비열한 방법이라서……
그 말에 묵향은 환히 웃으며 대꾸했다.
“비열한 거 조~옿지! 말해 봐. 효과만 확실하다면, 나는 그런 거 안 따지니까.”
“일단 더 이상의 분쟁은 그만두자고 제의를 하는 겁니다.”
“분쟁을 그만두자니………….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지?”
“평화협정을 맺자고 하는 거지요. 교주님께서 직접 조인식에 참석하시겠다고 하신다면, 저쪽에서도 늙은 여우가 기어 나오지 않겠습니까?”
“오호, 그러니까 자네 말은 평화협정을 맺는 자리에서 그녀의 목을 베어버리자 그거로군.”
묵향은 제법 그럴듯한 계책이라고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철영 부교주의 반대가 심했다. 다른 장로들 이야 감히 교주의 의견에 대놓고 반대할 수 없었겠지만, 철영은 명색이 부교주였다.
“말도 안 됩니다, 교주님. 만약 그 계책을 실행하셔서 설혹, 옥화무제의 목을 벨 수 있다 해도 교주님의 명성이 땅바닥까지 추락할 겁니다.”
“그게 뭐 어때서? 안 그래도 그놈의 ‘암흑마제’에 얽힌 유언비어로 인해 갈 때까지 간 상황인데 말이야.”
“그래도 춘릉대회전 이후 교주님에 대한 세인들의 평판이 많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지금까지의 그 어떤 교주님보다 공명정대하시다고…….” “쯧, 그놈의 공명정대가 밥이라도 먹여주나?”
뚱한 표정으로 묻는 묵향에게 철영은 황급히 대꾸했다.
“그, 그건 아닙니다만…………….”
“됐어. 한중평 장로의 방법을 쓰기로 하지.”
그 말에 철영 부교주는 머리를 굴리며 다급히 입을 열었다.
“교주님. 그런 치졸한 계책보다는 좀 더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럼 어디 한 번 말해보게. 본좌가 어디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게 강제한 적이 있던가.”
“본교에서 말 안 듣는 군소방파들을 상대로 흔히 써먹던 방법인데 말입니다. 무영문에 사신을 보내어 최후통첩을 하는 겁니다. 옥화무제만 축출한 다면, 더 이상의 공격 행위는 없을 거라고 말이지요. 지금껏 이 계책에 넘어가지 않은 문파는, 거의 없었습니다.”
전혀 없다고 말하려던 철영의 뇌리에 굴복하지 않은 문파가 하나 있다는 게 떠올랐다. 그렇기에 그는 황급히 말을 바꿨던 것이다.
굴복하지 않은 문파는 바로 곤륜파였다. 곤륜무황이 문주였던 시절, 그를 중심으로 곤륜파가 급성장하는 것이 탐탁지 않았던 마교에서는 문주의 목 만 가져온다면 곤륜을 치지 않겠다고 회유했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노린 악랄한 수법이었다. 하지만 그 계략은 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마교 로부터 워낙에 많은 침공을 당했던 곤륜파였기에, 문주의 목을 베어다가 바친다고 해봐야 상황이 좋아질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깊은 내막까지는 묵향이 알리가 없었다. 하지만 철영 부교주의 계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묵향은 콧방귀를 뀌며 이죽거렸다.
“킁, 무영문은 옥화무제 그 계집 하나로 인해 유지되는 문파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과연 그런 계책이 통하기나 할까?”
“본교의 힘을 아는 한, 굴복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제아무리 일인문파라 해도 과언이 아닌 무영문일지라도 소속된 문도들의 생명을 아예 무시할 수 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녀 한 사람의 목숨만 내준다면 다른 문도 모두가 무사할 수 있을 텐데, 그걸 단호히 거절하기는 힘들 거라 생각합니다.”
“네 녀석은 옥화무제가 닭대가리일 거라고 생각하나?”
“……”
묵향의 질문에 철영은 선뜻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따라붙는 수식어가 바로 ‘뱀처럼 지혜로운 여인’이라는 것이었으니까. 그녀를 뱀에 비유 한 이유는 가까이 하면 물리기 때문이었다.
“그런 멍청한 수법에 걸려들려면 우선 상대가 위기감에 빠져 있어야 해. 이걸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곧바로 망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구. 하지만 지금 무영문도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 같나? 우리는 놈들이 어디에 숨어있는지조차 전혀 모르는데 말이야.”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교주님이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것보다야………….”
“본교가 언제부터 세인들의 눈치나 살피며 살았던가? 철영, 명심해라. 역사는 승리하는 자만을 기억한다는 것을. 허례허식에 빠져 남들의 이목을 따 지면서 살았다면, 본좌가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게야.”
묵향의 질책에 철영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속하가 실언을 했습니다.”
철영의 얼굴은 창피함으로 인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부하들 앞에서 이런 개망신을 당하다니.
“한 장로의 계책을 쓰기로 할 테니, 그리 알고 준비들 하게.”
철영이 입을 다물자, 이번에는 천진악 장로가 조심스럽게 묵향의 눈치를 살피며 반론을 제기했다.
“그런데 만약 이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본교와 협정을 맺으려고 할 문파가 있을까요?”
“안 맺으면 그만이지. 우리 쪽에서 아쉬울 건 하나도 없잖아?”
묵향의 뻔뻔스런 대꾸에 수하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까지 강하게 밀어붙이면 도저히 설득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때, 묵향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그런 문제보다는 그 계집이 워낙에 영악해서 이 계책에 걸려들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겠지. 뭐, 그래도 어쩌겠나. 다른 방법이 없는데 말이야.”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아시면서 굳이 실행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차라리 일단 십만대산으로 돌아가 군사와 상의를 한 뒤 좀 더 좋은 계책을 짜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묵향이 쾌활하게 대답했다.
“길게 내다 보자고. 어차피 계책을 짜더라도 이리저리 복선을 깔아둬야 할 테니 말이야. 그러니 한 장로의 계책을 우선 시행하면서 그 계집의 반응 을 보는 것도 괜찮을 게야. 게다가 지금까지 본좌가 그 계집을 직접 만난 게 몇 번인가 있었지. 자신이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기어 나올 게 분명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속하들이 더 이상 말릴 방법이 없겠군요.”
“물론이지. 그런데 문제는 무영문에 어떻게 연락을 넣느냐 하는 건데 말이야.”
여기까지 말하던 묵향은 뭔가 떠올랐다는 듯 손가락을 딱 튕기며 철영 부교주에게 물었다.
“참, 무영문의 지단을 몇 개 정도 추적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렇긴 합니다만 이번 사태로 인해 무영문은 완전히 잠적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홍진 장로에게 보고를 받았는데, 지금까지 무영문과 관계있는 자 들이 아닐까 싶어 몰래 감시하고 있던 자들 중 일부가 갑자기 행방을 감춰버렸다고 하더군요.”
“미행에 실패한 모양이군.”
“정예고수들을 투입한 것도 아니고, 분타에 소속된 무사들의 실력으로는 그 정도가 한계입니다.”
“그럼 남은 놈들이라도 모두 다 잡아들여서 족쳐보는 것은 어떨까?”
“아마 소득이 없을 겁니다. 행방을 감춘 놈들이 진짜고, 나머지는 엉뚱한 놈들일 테니까요.”
“쯧, 어쩔 수 없지. 일단 홍진 장로에게 찾아보라고 하고, 도저히 안 되면 무림맹에 사람을 보내는 수밖에.”
묵향의 말에 철영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무림맹에 말입니까?”
“그곳에 무영문의 지단이 있지 않았나. 설마하니 그곳의 지단까지 잠적했으려고.”
“아, 그렇군요. 그게 좋겠습니다.”
묵향의 생각과 달리 무영문과의 엉킨 실타래를 푸는 해결책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게 되려 묵향의 골치를 아프게 했다. 묵향이 무사들을 이끌고 십만대산으로 돌아오자, 설민이 급하게 달려 나왔다.
“무영문의 부문주가 교주님을 뵙기를 청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뭣! 영인이가 이곳에 와 있다고?”
“예, 교주님.”
설민의 말을 옆에서 함께 들은 한중평 장로가 반색하며 외쳤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왔군요. 이건 기회입니다, 교주님!”
한중평 장로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뻔한 것이었다. 하지만 묵향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심약한 설민이었기에 상대방의 감정 변화를 살피는데 있어서는 꽤나 예민했다. 급격히 어두워진 교주의 표정을 보자 뭔가 일이 있다는 걸 느끼고는 한중평 장로에게 슬쩍 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십니까? 한 장로님.”
한중평 장로는 십만대산으로 돌아오기 전에 교주와 협의했던 계책에 대해서 설민에게 설명해줬다. 그 계책을 생각해 낸 게 자신이었기에, 그의 얼굴 에는 자부심이 가득 했다.
교주가 그의 계책에 찬성했다고는 하지만, 문제는 그 계책을 써먹기 위한 상대로 매영인은 적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매 영인은 교주가 꽤나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모질지 못한 교주의 성격상, 이대로 한 장로의 계책을 밀어붙이기 에는 무리가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설민이었기에 급히 입을 열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생각해 보고 자시고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군사.”
노회하기 짝이 없는 장로들은 모두 다 설민을 밥으로 보고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 이곳은 교주의 앞이었다. 공식 서열상 자신보다 윗줄에 놓여있는 설민에게 반말을 할 수는 없었다.
“뼈대만 대충 잡혀있는 계책이잖습니까. 그러니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보다 세심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 전까지는 섣불리 행동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사료되는군요. 일단, 무영문의 부문에 대한 건은 교주님께서 그분과 만나보신 후, 그쪽에서 원하는 것을 들어본 다음에 결정하는 게 순서일 듯 합니다.”
“흠…, 군사의 말이 옳은 듯 하구먼.”
하지만 설민이 주위의 눈치를 슬쩍 보니 부교주나 다른 장로들은 그 말에 납득을 하는 기세가 아니었다. 교주의 체통을 운운하며 반대를 했음에도, 오히려 면박에 가까운 비웃음을 당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런 면박을 준 사람이 바로 교주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좋은 기회가 제 발로 찾아왔는데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말인가. 그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더군다나 교주에게 망신을 당한 철영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설민이 조금 더 빨랐다. 그는 철영 부교주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급히 묵향에게 말을 건넸던 것이다.
“주모(母)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부문주에 관한 얘기는 나중에 천천히 하시고, 먼저 주모님부터 만나시는 게 순서가 아니겠습니까?”
신혼인 교주가 마교를 비운 채 몇 달씩이나 밖에 있다가 모처럼 돌아왔다. 그래서 우선 신부를 만나러 가는 게 좋겠다고 군사가 조언하는데, 그걸 반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도 급히 교주에게 찬성의 뜻을 비쳤다.
“군사의 말이 옳습니다. 주모님께서 교주님이 돌아오시기를 얼마나 기다리고 계셨겠습니까.”
묵향은 마지못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지만, 왠지 부하들한테 자신의 속내를 보이는 듯해 민망했던 것이다.
“그・・・,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