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권 11화 – 눈에는 눈

눈에는 눈

묵향은 혈마(魔)라 불렸던 전진이 낳은 최강의 고수 장진(張賑) 도인을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눈 후 그에게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 기억에도 없는 실수를 오랜 세 월 은둔하며 참회해 온 그의 삶이 묵향에게 새로운 어떤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묵향이란 인물은 참회하고는 아주 아주 거리가 먼 인물이었기에 자신이 죽었 다가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끈기 있게 행하고 있는 그에게 존경심이 생겼던 것이다.

묵향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지금 자신의 양녀를 만나기 위해 낙양으로 가고 있음을 그에게 우연히 말하게 되었다. 그러자 장진 도인은 정사는 양립하기 어 려우니 그녀를 위해서 낙양에 갈 것을 포기하라는 충고를 해 왔다. 해서 묵향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흑룡문으로 돌아갔다. 그로서도 장진 도인의 말을 거역할 만한 어떤 타당한 이유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묵향은 구(舊) 흑룡문의 정문에 들어설 때 걸려 있는 현판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黑龍門(흑룡문)」이란 현판은 없어졌고, 묵향의 지시대로 새로운 현판이 걸렸는 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天魔神敎陝西分打(천마신교섬서분타)」

묵향이 돌아오자 여태껏 처리한 서류 뭉치들을 가지고 설무지가 찾아왔다.

“첫 번째 것이 본타가 거느리고 있는 식솔들의 계급 체계 및 그들에게 지급되는 봉록, 장비 등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것은 타주께서 안 계신 동안 사업을 확장한 것들을 기록한 것이고, 셋째는 본타의 현재 재산 상태를 기록한 것입니다.”

“흐음…….?

묵향은 서류들을 대강 뒤적거리다가 옆에 놓으며 물었다.

“흑풍단이 도착했을 텐데 그들은 어떻게 처리했나?”

“예, 직접적인 것은 관지 대장에게 들으시고, 속하는 아무래도 그들은 따로 놔두는 것이 좋을 듯하여 따로 묵을 곳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관지 대장과 의논하여 흑 풍대라고 명명했사옵고, 그 계급 체계는 그에게 일임했습니다. 그들에게 지급한 새로운 무기와 의복, 장비 등을 구입하는 데 든 액수가…….”

“아아, 돈 얘기는 그만 하게, 골치 아프니까. 그것은 그대에게 일임하기로 했잖은가?”

“예.”

“새로 사업을 벌이다니, 그건 뭔가?”

“예, 속하가 도착하고 보니 뜻밖에도 정말 엄청난 힘이라……. 그들을 놀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일부를 이용하여 표국 사업과 위사(衛 : 지금의 보디가드와 유 사함) 사업을 벌였습니다. 염왕적자에게 부탁하여 부근의 모든 잔챙이들을 토벌하여 일정 금액을 상납받기 시작했고, 여덟 군데의 전방과 세 군데의 기루, 다섯 군 데의 도박장, 열두 군데의 전당포를 입수했습니다.”

“입수하는 데 문제는 없었고?”

“조용히 잘 마무리 지었습니다.”

“수입은 괜찮은가?”

“워낙 중경(中京)이 가까운지라 본타의 강력한 고수들이 부상(富商)이나 고관들을 찾아가 시범을 보이자 모두들 만족해하며 호위를 청해 왔습니다. 그들은 안전 만 확실히 책임지면 돈을 아끼는 위인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표국 사업도 근처의 세 개의 표국을 흡수하여 벌써 안정권에 들어갔사옵니다.”

“좋아, 좋아. 모든 것은 그대가 알아서 하게.”

“존명! 그런데…….”

“무엇이오?”

“타주님을 찾아온 자가 있사온데, 용건을 밝히기를 한사코 거부하며 지금 일주일째 여기 머물고 있사옵니다. 만나 보시겠습니까?”

“어디서 온 자인가?”

“대산(大山)에서 왔다고 하더이다.”

“좋아, 데리고 오게.”

“예.”

조금 지나자 마기를 풍기는 한 인물이 들어왔다. 그는 묵향에게 부복했다.

“안녕하셨습니까? 부교주님!”

“그래, 자네는 누군가?”

“교주님의 서한을 전하고자 왔습니다.”

그를 인도하여 온 장한(壯漢)이 그가 주는 편지를 받아 설무지에게 전했고, 그것을 다시 설무지가 묵향에게 전했다. 묵향은 별 흥미 없다는 듯이 무표정하게 편지

를 찬찬히 읽어 본 다음에 설무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설무지는 편지를 읽은 다음 얼굴빛이 핼쑥해지며 노기(怒氣)를 터트렸다.

“이것을 따르면 아니 됩니다.”

“왜?”

“함정일 것이 뻔합니다. 이놈들은 지금 타주님의 양녀를 인질로 잡아 타주님을 해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꾐에 속으시면 안 됩니다.”

“그래도 내가 안 가면 그 아이를 죽일 텐데?”

“그래도 안 되옵니다. 그것은 나중에 복수를 하면 그만.. 지금 이들의 말을 따르면 타주님의 생명이 위험합니다.”

여태까지 심각한 표정이었던 묵향이 갑자기 대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

“자네의 생각이 내 생각과 아주 부합(符合)이. 사실 나도 그곳에 갈 생각은 추호도 없어. 이제는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에도 가물거리는 계집애를 위해서 내가 왜 사지(死地)로 간다는 말인가. 껄껄껄, 이제는 교주도 나를 웃기는군. 자네가 내 대신에 편지 좀 써 주게나.”

“예, 준비가 되었습니다. 부르시지요.”

“여러 가지 인사말이나 뭐 그런 거는 자네가 예법에 맞게 쓰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이거야. ‘만약 내 양녀를 죽인다면 나는 그것을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 소. 사실 내가 교주를 죽인다는 것은 아주 힘드오. 교주의 무공도 무공이려니와 그 주위에 호위하는 무리들이 많기 때문이오. 하지만 교주보다 무공이 약한 교주의 가족들은 죽이기가 아주 손쉽지. 그대가 내 양녀를 죽인다면 나는 그대의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를 손쉬운 순서대로 차근차근 죽여 주겠소. 그건 별로 어 려운 게 아니니까……. 나야 밑질 것이 하나도 없으니 우리 서로 누가 많이 죽일 수 있는지 내기해 봅시다.’ 이렇게 써서 이것으로 인장을 찍은 후 저놈에게 줘라.” “예.”

설무지가 편지를 써서 묵향이 준 옥패로 인장을 찍은 후 장한에게 건네줬다. 장한이 마기를 풍기는 인물에게 전해 주자 답장을 받은 마인은 편지를 품속에 갈무리 한 후 묵향에게 예를 드리고 물러가려 했다.

이때 묵향이 그를 불렀다.

“잠깐!”

상대가 돌아서자 묵향이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아주 더러운 소식을 나한테 전하고 가는데, 예물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안 하나?”

그러자 상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곧바로 오른손에 진기를 끌어올리더니 수도(手刀)의 기법을 이용하여 왼손을 내리쳤다. 그는 왼손이 떨어져 나가자 몇 군데 혈도를 잡아 지혈을 한 후 무표정하게 말했다.

“더 필요하십니까?”

그러자 묵향은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답했다.

“아닐세. 예물이 과하군. 무인은 한쪽 손이라도 없으면 아주 불편하기 때문에 나는 그냥 한쪽 귀면 되었는데, 자네가 먼저 손을 써 버렸으니 어쩔 수 없구먼. 대산 까지 잘 가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