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권 12화 – 세력 확장

세력 확장

마교에서 왔던 인물이 떠나가자 묵향은 대장급 이상의 고수들을 불러들였다. 그에 따라 묵향이 거느린 3대 세력인 천랑대, 염왕대, 흑풍대의 대장들과 군사인 설 무지, 그리고 묵향에 앞서 설무지를 찾아와 통합을 청한 살막의 막주와 부막주가 참석했다. 살막은 묵향과 합치는 이때를 이용해서 아예 그 주력을 섬서성으로 이동 했고 또한 본거지는 마교 섬서분타의 서쪽에 위치한 큼지막한 장원 한 채를 조용히 꿀꺽하는 것으로 손쉽게 해결했다.

묵향은 모인 인물들을 쭉 훑어본 다음 입을 열었다.

“이제야 대강 준비가 갖추어진 것 같군. 관지!”

그러자 얼굴을 숨기기 위해 복면을 하고 있는 관지가 대답했다.

“예.”

“우리끼리 있을 때는 복면을 벗게나.”

묵향은 복면 안에서 드러나는 관지의 남성다운 패기가 넘치는 눈을 잠시 바라보더니 말했다.

“혹시 불편한 것은 없나? 내 모든 것을 일러뒀으니 혹 미흡한 것이 있으면 군사에게 말하면 들어줄 거야.”

“모든 것이 풍족합니다. 신경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묵향은 관지에게서 눈을 떼고 좌중을 둘러 본 후 말했다.

“지금 이곳은 인원이 너무 많이 모여 있소. 구 흑룡문의 아이들을 뺀다 하더라도 6천이나 된단 말이오. 그래서 군사와 의논을 좀 해 본 결과 한 가지 그 타개책을 구상했소. 이번 일이 끝나면 우리는 더욱 강대한 힘을 가질 수 있을 거요. 군사!”

“예, 사실 한 곳에 전력을 모아 둔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유리함도 있지만 기습을 당했을 때는 오히려 불리함도 있습니다. 그래서 힘을 조금 분산하고자 합니 다. 그리고 그에 병행하여 산서성의 마교 세력을 흡수하려고 하는데, 어떤 분께서 힘을 써 주실 건지…….”

그러자 염왕적자가 말했다.

“속하가 염왕대를 이끌고 해결하겠소이다.”

“좋습니다. 그럼 낙양을 염왕적자 대장에게 맡기겠습니다. 그곳의 낙양분타주인 방철(傍哲)과 먼저 비밀리에 연락을 하세요. 그러면 방철은 이미 본타에 전폭적인 협조를 해 주겠다고 연락을 해 온 만큼 손쉽게 낙양 일대를 제압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낙양 일대의 제압이 끝나면 염왕대와 함께 그곳에 비밀리에 분타를 건설하고 세력을 확장하기를 바랍니다. 제 딸 설령이를 데려가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실 겁니다. 그리고 조사한 결과 방철은 무공은 떨어지지만 관리 면에서 아주 뛰어난 인 물이니 그를 잘 이용하십시오.”

“알겠소이다.”

“그리고 관지 대장!”

“예.”

“관지 대장은 흑풍대를 이끌고 태백산(太白山)에 비밀 분타를 건설해 주십시오. 물론 인부와 물자는 제가 비밀리에 충분히 제공해 드릴 것입니다. 건설이 끝난 다 음에는 그곳에 머물면서 세력을 키워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본타의 핵심 시설은 모두 다 태백의 분타로 이동할 것이고, 이곳은 껍데기만 남겨 적의 이 목을 속이는 데 이용될 것입니다.”

“홍진 막주.”

“예.”

“부막주와 함께 당분간은 이곳에서 저를 도와 일해 주십시오. 대신 살막의 중추 세력은 태백의 분타로 단계적으로 이동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살막의 정보력 을 낙양으로 돌려 염왕적자 대장의 낙양 제압을 도와주십시오.”

“그러지요.”

“그리고 한 가지! 여러분께서도 아시겠지만 본타는 마교에서 분리된 단체입니다. 타주님께서는 본타가 마교 힘의 4할에 이른다고 하셨지만 정직하게 말하면 그 정도는 안 된다고 천리독행 대장이나 염왕적자 대장과 세밀한 대화를 통해 결론지었습니다. 타주님께서 우리들을 이끈다면 4할, 어쩌면 그 이상의 힘도 낼 수 있겠 으나 타주님이 빠진 상태라면 4할은커녕 2할의 힘도 낼지 의문입니다. 지금 본타의 주력이라고 볼 수 있는 천랑대와 염왕대를 합쳐 놨다 하더라도, 타주님이 빠졌 을 때 마교의 최고 정예인 천마혈검대(天魔血劍隊)의 기습을 받는다면 순식간에 괴멸당할 것이 확실합니다. 그만큼 마교의 상위 무력 단체와 하위 무력 단체 간의 실력 차이는 너무나 큽니다. 그것을 어느 정도 막기 위해 상위로 갈수록 숫자를 적게 배치했지만, 정면 대결이 아닌 기습이라면 숫자가 적을수록 더욱 유리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그렇기에 어느 정도 세력을 분산시켜 둘 필요성을 느낀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본타의 이름을 무림에 알리고 새로운 고수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비무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비무대회라고?”

“예, 분타 창설 기념 비무대회 정도로 하면 되겠지요. 그러면서 눈이 뒤집힐 정도로 좋은 상품을 몇 가지 내거는 겁니다.”

“좋은 의견이기는 하지만 무예에 미친놈들을 그까짓 황금 따위로 모집할 수 있을까?”

“아니지요. 타주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보검 두 자루, 보도 세 자루를 확보해 뒀습니다. 돈이 좀 많이 들었고 그중 몇 개는 흐흐흐… 조금 특이한 경로로 입수했지 만 뭐, 그래도 입수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사방에 수소문해서 뛰어난 미모(美貌)를 지닌 계집 열 명을 확보했지요. 그것과 함께 본타 내에서의 제법 괜찮은 직위, 그리고 뛰어난 마공(魔功)을 익힐 수 있는 특전 따위를 주겠다고 한다면 정말 뛰어난 자는 어렵겠지만 그런대로 쓸 만한 놈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하지만 첩자들이 들어올 수도 있는데……. 그것에 대한 대비책은 뭔가?”

“사실 이들은 섬서분타에서 사용할 소모품들이지요. 이 섬서분타를 지금 뜯어 고치고 있는데, 내부와 외부의 두 군데로 확실하게 구분 짓는 공사지요. 이번에 받 아들인 자들은 외부의 수비(守備)에 이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예의 일부는 내부에 배치하구요. 내부와 외부 사이에 진법으로 강력한 그물을 쳐 두면 웬만한 놈들 은 얼씬도 하기 힘들지요. 그리고 요소요소에 일부 뛰어난 고수들만 배치하여 첩자들에 대한 대비를 하고, 또 이 내부에 타주의 주력이 있는 것처럼 꾸미는 것입니 다. 그래 놓고 일부 고수들을 제외한 힘은 모두 다 비밀 분타들에 분산해 버리면 최악의 경우를 당해도 궤멸당하는 것은 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적들은 타주님의 주력이 이곳에 있는 줄 알고 여기만 감시할 테니 세력을 따로 움직이기도 편하구요. 나중에 상대가 기습을 가해 오면 타주님 이하 고수들 은 밖으로 피해 나가면서 나머지 놈들을 먹이로 던져 주면, 흐흐흐…”

“별로 기분 좋은 생각은 아니지만 뭐, 그런대로 방법은 괜찮군. 대신 나는 여기에 언제나 있어야 하고?”

“그렇지요. 하지만 타주께서는 무공이 원체 고강하시니 원하신다면 언제나 눈에 띄지 않게 빠져나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대신 이곳에 계속 계신 것으로 해 놓아 야 놈들이 타주가 계신 실세(實勢)를 찾는다고 노력하지 않게 되죠. 그리고 이곳은 그때쯤 첩자들이 우글우글하게 될 것입니다. 완전히 닫아 걸고 숨기기는 힘드니 아예 열어 둔 후에 비밀리에 주의에 주의를 하는 것이 더욱 안전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곳 이름을 아예 대놓고 마교 분타로 포고한 이상 마교 내의 권력 다툼이 되어 버리니, 교주가 직접 세력을 이끌고 오지 않는다면 마교와의 충돌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대신..”

““대신?”

“정파에서 기습을 가해 올 가능성은 있으니 그쪽으로의 대비는 확실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파에서도 대놓고는 기습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들이 마교를 등에 업 고 있는 한 우리를 친다면 마교와의 정면충돌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겠죠. 실지로는 둘이서 붙는다면 마교에서 좋아하겠지만………

“좋아, 역시 군사는 아주 머리가 좋군. 만일의 경우 천랑대가 희생되면 아까우니 나중에는 천랑대도 1백여 명만 남기고 모두들 철수시키게나.”

“예.”

“관지.”

“예.”

“자네 수하 중에서 네 명을 차출해서 보내 주게나. 군사가 호위를 두라고 하는데, 나는 마기를 뿜어 대는 놈들을 호위로 두지 않거든. 밖으로 돌아다닐 때 너무 표 시가 나기 때문이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기를 뿜지 않는 자들은 흑풍대뿐이야. 그러니 자네에게 부탁하네.”

“영광입니다. 속히 네 명을 뽑아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관지는 묵향과 과거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 무공이 강한 자들만을 뽑아 묵향에게 보내 줬다. 임충(任充), 정상(鄭想), 차림(車林), 그리고 할아버지가 군부의 고위 장수인 관계로 빠졌다가 근래에 흑풍단이 안정된 다음에 합류한 마화(馬花)가 그들이었다. 묵향은 시간 나는 대로 무공이 약한 그들에게 무공을 가르치며, 또 한 자신의 수련을 계속했다. 어차피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교주를 죽인답시고 준비도 없이 쳐들어갔다가는 도리어 목숨이 날아가 는 쪽은 이쪽이 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묵향이 눈송이처럼 휘날리는 벚꽃 잎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마화가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이번에 받아들인 네 명의 호위들은 몽고전쟁 시절부터의 전우였고 상관이었기 때문인지 묵향에게 스스럼없이 대해 왔고, 그중에서도 마화 같은 경우 묵향에게 가 장편안한 인상을 주는 인물이었다. 묵향으로서도 그들의 태도가 오히려 편하고 좋았다. 현재 자신이 엉뚱하게 차지하고 앉은 절대자(絶對者)의 자리는 사실 너무 나 고독한 자리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보면 묵향 자신이 수하들을 거느리고 뻐기는 것을 좋아하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으응? 오래전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지.”

“…..”

“현경의 경지에 오른 후 나는 너무나 자만에 빠져 있었어. 사실 현경에 올랐다고 기록된 인물은 구휘 정도였고 그도 행방불명이 된 후 내가 유일하게 현경에 오른 인물이었으니까……. 하지만 얼마 전에 만난 선배의 경우 나를 정말 놀라게 했었지.”

“누군데 그러세요?”

“또 한 명의 현존하는 현경의 고수. 마화도 무림을 조금 돌아다녔다니까 들었을 거야. 혈마라는 명호를

마화가 놀라서 물었다.

“혈마를 만났어요?”

“응, 정말 대단한 고수였어. 혈마 선배가 검을 쓴다면 아마도 내가 이길 확률이 높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권과 장을 쓰는 인물이더군. 그가 쫓아 들어오는 것을 보 고 내가 기습적으로 날린 강기 세례를 그는 간단하게 막아 내면서 거기에 반격까지 가해 오는 것을 보고 느꼈어. 그는 나보다 한 수 위였지. 근접전에서는 최고의 무기가 뭔지 아나?”

“그야 권(拳)이 아닐까요?”

“그렇지. 권(拳), 각(脚), 검(劍)이나 도(刀), 봉(棒)이나 창(槍), 편鞭.

뭐 이런 식으로 거리가 정해지는 거야. 내가 아무리 근접전을 장기로 하지만 진정한 권 법의 대가(大家)하고 근접전을 펼칠 배짱은 없어. 그의 두 손은 두 개의 검과 같은 것. 하나의 검으로는 무리가 있지. 그런데 그는 1백 년도 전부터 강기를 가지고 세 상을 놀라게 한 인물이야. 그에게는 거리의 이점을 이용해 파고들 수가 없어. 멀면 먼 대로,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수많은 공격과 방어의 기법을 터득한 인물이지. 요즘 들어서는 어떻게 하면 그를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군.”

“그렇지만 타주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아마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혹시 상대를 과대평가하고 계신 게 아닌가요?” “아니야. 만약, 이건 정말 만약인데 그가 1백 년에 걸쳐 농경(農耕)에서 깨달았다는 비법을 곡괭이가 아닌 손이나 발을 통해서 언제나 사용할 수 있다면, 나 같은 고수 열 명이 덤벼도 힘들 거야.”

“설마…. 농경에서 깨달았다는 비법이 뭔데요?”

“……”

묵향은 상대가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떠들고 있다는 것을 문득 느낀 순간 입을 다물었다.

묵향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자 마화는 뒤로 물러섰다. 그녀 자신도 명상이나 사색이야말로 초고수들에게는 오히려 수련보다도 더 큰 상승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주워들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때 쓸데없는 말을 걸어 방해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묵향이 요즘 들어 죽자고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자신이 무의식중에 익히고 있는 귀혼강신대법(歸魂?身大法)이었다.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해 봐도 그 사악한 마공과 자신이 익히고 있는 무공과의 접합은 불가능했다. 귀혼강신대법은 정통 마공이라고 할 수 없는, 혈교의 요술적인 힘과 마교의 파괴적인 힘이 만난 독특한 무 공이었다. 그렇기에 불사에 가까운 신체가 주는 매력은 대단했지만 그 자신도 비급을 훑어본 다음 불가능함을 깨닫고 익히기를 포기했던 사악한 무공이었다.

하지만 자신과 싸웠던 수하들의 말을 종합해서 판단해 본 결과 자신의 기억이 돌아오는 그 순간에 심각한 상처를 안고 있다가 순식간에 그것을 치료했다는 것은, 또 방대한 내공을 일시에 회복했다는 것은 자신이 생각해도 이해하기가 힘든 노릇이었다. 내공의 회복이야 북명신공을 통했다고 하더라도 상처는 아무리 묵향이 머리를 굴려도 귀혼강신대법 외에는 없는 것이다.

‘귀혼강신대법을 무의식이 아닌 의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살을 주고 상대의 뼈를 깎는, 아니지 뼈를 주고 상대의 뼈를 잘라도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 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으니…….’

묵향이 요즘 들어 생각하는 것은 북명신공의 매력이 아니었다. 북명신공의 몇 가지 난해한 점은 제쳐 두고라도 그것은 일단 익힐 수 있는 무공이니까. 하지만 아무 리 노력해도 익힐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무의식중에 익히고 있다면 그것만큼 황당한 것이 없다.

“이놈의 무공은 내가 죽기 일보 직전쯤 되어 정신을 잃어야만 발동되나? 하지만 그 전에 죽어 버리면 끝장이잖아. 혈마, 혈마, 혈마의 무공을 제압하는 데 그것만 큼 좋은 수법이 없는데 말이야…….?

묵향이 이토록 고민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혈마가 지척까지 거의 무방비 상태로 접근해 오기를 기다렸다가 발사한 회심의 일격, 그것도 거의 1백 가닥에 이르는 강기 다발을 모두 다 격중당했으면서도 손쉽게 그 힘을 막아 냈다는 데 있었다. 상대의 방어력이 그토록 강하다면 현재 묵향이 가지고 있는 어떤 무공으로도 그를 해친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도저히 이길 가능성이 없는 상대……. 묵향에게는 그것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최고의 경지에 올라서 있는 고독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