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권 25화 – 새로운 수하들
새로운 수하들
묵향은 열한 명의 수하들과 섬서분타에 도착했다. 물론 그 수하들 중에 초류빈이 끼어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묵향이 나타나자 설무지가 공손히 인사를 건네 며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여행은 즐거우셨는지?”
“그런대로 재미있었지. 그런데 무슨 일인가?”
“자객의 암습이 있었습니다. 물론 자객을 처치하기는 했지만 타주님 대신 세워 놨던 그림자는 죽음을 당했죠. 대단한 실력의 자객이었습니다.”
“그 외의 피해는?”
“없습니다. 하지만 타주님이 밖에 나가신 것은 비밀이었기에 부상당하신 걸로 처리했죠. 그 때문에 적의 기습이 있을지도 몰라 애태우던 중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왔으니 상관없겠지. 나중에 수하들에게 나의 건재한 모습도 보이고 하면 녀석들도 긴장하기 시작할 거야. 참, 마화는 도착했나?” “예.”
“비무대회는 잘 끝마쳤고?”
“예, 실력 있는 자들로 2천 명 정도 받아들였습니다. 그 녀석들을 철저히 추려 내는 중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인물이 없더군요. 괜찮다 싶으면 조금 뒤가 구린 놈이 고…….?
“뭐 그 정도는 처음부터 각오했던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건 그렇고 비밀 분타는 어찌 되었나?”
“거의 공사가 끝났습니다. 타주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적의 기습을 당할 확률이 대단히 높았었기에 1백 명 정도를 남겨 두고 모두 그리로 이동시켰습니다. 마교 쪽 은 원체 보안이 잘되는 통에 거의 정보를 얻지 못했지만 정파 쪽은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걸 보시죠.”
설무지는 묵향에게 두툼한 종이 뭉치를 건네주었다.
“살막 막주 홍진의 보고서입니다. 지금 무림은 구휘 대협의 무덤을 둘러싸고 치열한 암투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정사의 정면 대결로까지 번질 수도 있을 정돕니다. 어찌 되었든 타주님 이전에 있었던 유일한 현경의 고수였으니까요. 그리고 혈교가 진천왕을 도와 슬슬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동성 전투 에서 혈교의 고수들이 등장해서 관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때 강시도 2백여 구 동원된 걸로 조사되었습니다.”
“강시 따위야 별것도 아니지. 그 외에는?”
“타주님께서는 별것 아니시겠지만 보통 사람들이나 무림의 고수가 아니라면 대단히 힘든 상대죠. 지금까지 조사된 바로는 진천왕 밑에서 일하는 혈교의 고수는 2 천 명 정도……. 그리고 강시는 1천여 구 정도입니다. 아마 십중팔구는 더 많은 힘을 뒤로 감추고 있을 겁니다. 진천왕은 송의 주력 부대들이 요와의 전쟁터에 투입 된 뒤를 노린 기습을 감행했기에 지금 욱일승천의 기세를 자랑하고 있지만 아마도 그 기세는 오래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왜?”
“지금 들어오는 정보로는 1년 이내에 요와의 전쟁이 끝날 것 같기 때문이죠. 요가 고려를 정벌한다고 소모한 군대의 공백이 너무 컸는지 그렇게 힘을 발휘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지금 진천왕의 진격 속도로 봤을 때 1년이란 시간은 너무 촉박합니다. 아무리 혈교가 뒤에서 도와주고 있다고 해도 말이죠.
거기에 혈교가 뒤를 도와준다는 걸 알고 무림인들까지 나서서 어림군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무림맹에서도 각 문파를 설득해서 2천 명의 정예 무사를 파견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무림이 진천왕에 대해 거의 신경을 쓰고 있지 않죠. 그들이 진천왕이나 혈교의 재출현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은 구휘 대협의 무덤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2천의 정예라……. 그들의 전력은 어느 정도인가?”
“각 문파에서 대강 체면치레로 끌어 모은 인물들이니, 말이 정예이지 그렇게 대단한 인물들은 별로 없을 겁니다. 대신 황실 쪽에서는 무림의 도움에 감사하면서, 그 파견 무사들에게 무림인의 생리에 맞게 몸통 정도만 보호할 수 있는 약식 갑옷과 방패를 하나씩 선물했다고 하더군요.”
“참, 그때 떠날 때 부탁해 놨던 것은 준비해 뒀나? 문파에 소속되지 않은 뛰어난 고수 명단을 부탁했잖나?”
“아… 예, 그건 준비를 해 뒀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시기 전에 만나실 분들이 계신데요.”
“누군가?”
“총타에서 온 고수들입니다. 교주가 보냈다고 하더군요. 타주님께 직접 전할 편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온 지 여러 날 되기에 더 이상 기다리게 하는 것은 실례니까 지금 만나셔야 하겠습니다.”
“좋아. 들라 해라.”
““예.”
설무지는 옆에 대기하고 있던 무사에게 지시했다.
“그들을 들어오게 해라.”
“예.”
그 무사는 밖으로 뛰어 나갔다. 잠시 후 일곱 명의 마기를 풀풀 풍기는 인물들이 들어왔다. 그중 상당수는 묵향이 잘 아는 인물들이었다.
“오랜만이군.”
그러자 천도왕(天刀王) 여지고(黎志高) 수석장로가 일행을 대표해 정중히 대답했다.
“예, 안녕하셨습니까? 부교주님.”
“본좌야 늘 안녕하지. 그래 무슨 일인가?”
“교주께서 이걸 전해 드리라 했습니다.”
여지고 수석장로는 밀서를 옆에 서 있는 무사에게 줬고 그 무사는 쫓아와서 묵향에게 밀서를 정중히 바쳤다. 묵향은 수하가 전해 주는 밀서를 받아 들며 물었다.
“자네는 내용을 알고 있나?”
“모릅니다. 무조건 가서 전하라는 지시만 받았습니다.”
“흐음…….”
묵향은 편지를 뜯어 쭉 읽어 본 다음 황당한 표정으로 여지고 장로에게 말했다.
“교주의 뜻을 이해할 수 없군. 자네도 내용을 모른다니 이걸 한번 읽어 보게나. 자네는 이대로 행할 자신이 있는가?”
여지고 장로는 서신을 쭉 읽어 본 다음 말했다.
“교주님의 명령은 어떤 것이라도 지켜져야만 하지요. 부교주님께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본좌는 교주와 싸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만약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이건 제가 직접 교주님께 받은 밀서고, 또 교주님의 마지막 명령이니까요.”
여지고 수석장로는 뒤에 늘어선 인물들에게 편지를 직접 읽어 볼 수 있도록 건네줬다. 그들도 편지를 읽어 본 다음 묵향에게 부복하며 외쳤다.
“부교주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그럼, 여지고 장로.”
“예.”
“일단 여기 쓰여 있는 ‘이번에 보내는 수하들은 그대에게 주는 선물이니 본교의 부교주로서 그들을 수하로 받아 주기 바라오’하는 말은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이지만, ‘이들 외에도 조만간 본좌의 성의를 확실히 알게 해 주겠소’하는 제일 마지막 말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군. 이건 무슨 말이오?”
“글쎄요. 거기 서신에 쓰여 있는 대로 교주님과 묵향 부교주님 간의 충돌은 그 장인걸 부교주의 공작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교주님께선 부교주님과 다시 사이좋게 지내기를 원하시는 거죠. 그리고 동시에 둘이 힘을 합쳐 장인걸을 몰아내자는 겁니다. 그 때문에 본교 내의 실력 있는 고수들을 부교주님의 밑에 두려는 것이구요.” 묵향은 여지고 수석장로의 말에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실력 있는 고수라……. 눈앞에 보이는 자네들만 해도 엄청난데 더 이상 뭘 주겠다는 건가?”
묵향의 앞에는 수석장로 여지고를 선두로, 차석장로 사혈천신(蛇血天神) 호계악(胡戒惡), 외총관 고루혈마(枯?血魔) 옥관패(玉冠覇), 좌외총관 지옥혈귀(地獄血 鬼) 천진악(天進惡), 우외총관 음희(淫嬉) 설약벽(薛若碧), 혈화궁주 사망혈매(死亡血梅) 나유란(羅幽蘭), 만악궁주 만묘서생(萬妙書生) 진천악(陳天岳)이 부복하 고 있었다. 이들은 수석장로를 제외하면 모두 다 마교의 주력이 아닌 분타를 관할하는 직책을 가진 인물들이거나 마교의 주 세력과 분리된 분파 세력을 가진 인물들 이었다. 이들을 준다는 말은 곧 그들의 휘하 세력까지 준다는 말일 것이다.
“그럼 교주는 자기는 총타 안에서 세력전을 펼칠 테니 나는 외부를 맡아 달라는 건가? 그도 아니면 뭔가? 총타를 제외하고 외부에 퍼져 있는 1만 고수들을 나에게 맡기는 이유가 뭐냐구?”
묵향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좌중을 훑어보며 말하자 여지고 수석장로가 황급히 답했다.
“서신에 쓰여 있듯이 지금 총타의 세력전은 이미 누가 승리할 수 있을지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장인걸은 아예 대놓고 자신의 추종 세력을 총타에 집결시키고 있는 판국이구요. 그렇기에 교주께선 부교주께서 밖에서 도와주시기를 원하는 것이죠. 지금은 누가 적인지, 또 누가 아군인지 그것조차 도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부교주께서 교주님을 도와주신다면 교주님은 승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여지고 수석장로의 말에 비웃는 듯한 묵향의 대답이 이어졌다.
“하지만 뭘로? 교주가 나한테 준 1만 마교도들로? 그 1만의 힘이라고 해 봐야 총타의 20분의 1도 안 된다는 걸 자네는 알고 하는 말인가? 진짜 정면전이 벌어진다 면 외부에 깔려 있는 1만 마교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들이지. 돈이나 벌어 들이는 데는 소용이 있을지 모르지만, 실전에는 너무나 약해.
그렇다면 그 ‘성의’란 말의 해석은, 교주가 나에게 새로운 무력 단체를 하나 선물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는 건가? 뭘 보고 교주의 말을 믿어야 하지? 그때는 죽이려고 하더니 이번에는 장인걸과 세력 다툼이 있으니 도와 달라고 하면 나는 예, 그렇습니까? 하고 도와줘야 하나? 어쩌면 장인걸과 교주가 둘이서 짜고 날 죽이 려고 또다시 꼼수를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데? 나를 설득하기 위한 거라면 예물이 너무 적어.”
“그건 그렇습니다. 평화 시라면, 돈 벌어 들이는 데는 외부 분타들이 대단히 효과적이죠. 하지만 부교주님 말씀대로 모든 전투 세력은 총타에 집결해 있는 게 사실 입니다. 하지만 부교주님께서는 천랑대와 염왕대의 정예를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들만으로도 총타가 지닌 힘의 3할은 가지고 계신 것이지요.”
“3할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본좌가 만약 없다면 천마혈검대와 수라마참대만으로 하루 저녁에 모두 시체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그게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지만 부교주님이 여기 계시지 않습니까? 교주님은 휘하의 무력 단체들을 믿지 못하기에 장인걸의 입김이 적은 세력부터 총타로 부터 차근차근 분리해서 부교주님께 넘기시는 것입니다. 본교는 약육강식의 철칙이 지켜지는 곳. 일단 교주님께서 부교주님께로 세력이 보내지기만 한다면 부교주 님께서 그들을 장인걸의 입김에서 분리하실 것이라고 믿고 계십니다.”
“강자지존强之尊)의 법칙이 있으나 사실 그 법칙이란 게 꼭 지켜진다는 법은 없지. 본교 내에서도 암습이나 모략이 없는 게 아니니까. 교주가 갑자기 선심 쓴답 시고 주는 세력에 첩자들이 끼어 있으면 아주 곤란하지. 뭐, 어쨌든 준다고 하니까 고맙게 받기로 하고 자네들에 대한 처리는 나중에 할 테니 숙소에 돌아가 쉬게나. 그리고 여지고 장로는 좀 남아 있게.”
여지고 외의 인물들이 물러가자 묵향은 그를 이끌고 자그마한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 여지고 장로의 눈을 쏘아보며 말했다.
“진정한 교주의 뜻을 알고 싶어.”
“방금 말씀드린 게 전부 진실입니다. 부교주님의 축출은 장인걸의 음모였습니다. 교주님은 그걸 알아내신 것이구요. 알면서 또다시 당할 수는 없잖습니까?” 그러자 묵향은 살기 띤 미소를 지었다.
“자네라면 한 번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상관에게 충성을 맹세할 수 있을까? 그것도 자네보다 무공도 약한…….”
그 말에 여지고 장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일이 있기는 참 힘들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교주의 총애를 받아 실력이 없으면서도 높은 직위를 차 지하고 있는 멍충이들도 있는 게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묵묵히 묵향의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채려고 노력 중인 우직한 무인을 찬찬히 바라보던 묵향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나를 봐도 별로 알아낼 게 없을 걸세. 사실 나 자신도 다음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말이야. 한 가지만 확실히 해 두세나.”
“자네는 나 한 사람에게만 진정으로 충성을 맹세할 수 있나?”
“역시 교주가 걸림돌이지?”
“부교주님이 교주 취임을 하신다면 몰라도 그렇기 전에는 어쩔 수 없습니다.”
“만약 장인걸이 교주를 없애고 취임한다면? 교주를 폐하고 교주에 등극한 사람은 많지. 그렇기에 하는 말이야. 자네의 충성은 교주란 직위를 향한 것인가? 아니면 한중길이란 개인을 향한 것인가?”
“그 두 가지가 함께라고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분의 취임식 때 충성의 서약을 했으니까요. 물론 지금의 교주가 바뀐다면 그 충성의 대상은 두 번 째 서약을 한 부교주님을 향한 것이 될 것입니다.”
“좋아. 어쨌든 교주가 마음이 변치 않는 한 자네를 죽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군. 그렇지?”
“아닙니다. 그 누구도 믿지 말라는 명이셨습니다. 총타를 떠난 후에는 교주님의 서신이나 그 모든 것을, 설혹 제 앞에 교주님이 직접 나타나신다 해도…….그러니 당연히 이후의 충성의 대상은 부교주님이 되겠죠.”
“뭐 좀 복잡한 것 같지만 어쨌든 현재는 변절할 가능성이 없다니 되었군. 이봐! 설무지.”
“예.”
“들어오게.”
설무지가 들어오자 묵향은 무표정하게 물었다.
“자네가 방금 들은 대로야.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자네의 의견을 제시해 보게.”
“방금 거두어들이신 세력은 본교의 전투 세력은 아닙니다. 또 그 안에는 첩자가 있을 수도 있구요. 그렇다면 처리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그들을 최대한 빨리 분산 해서 숨겨 버리는 거죠. 첩자가 들어 있는 조직은 아마도 드러나면서 적의 공격을 받고 괴멸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공격을 했다고 해도 그 모든 조직이 다 무너질 수는 없겠죠. 우선 그들을 총타와 섬서분타, 양쪽의 세력에서 분리해 버리는 겁니다. 나중에 모든 다툼이 끝나면 그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마 적들도 그 미 약한 세력들을 자신의 세력을 분산하면서까지 토벌하려고 들지는 않을 겁니다.”
“좋아, 일단은 그렇게 하자. 여지고 장로!”
“예.”
“호계악 장로에게 일러 분타의 모든 세력을 숨어들게 하라. 그들이 현재 가진 모든 재산은 처분해라. 그런 다음 새로운 비밀 분타를 건설하는 거야. 그 외에 외총관 휘하의 무력 세력들은 모두 이곳으로 불러들여라. 아무리 별 볼일 없다 해도 쓸모는 있겠지.”
“존명!”
등에 4척이나 되는 장검을 두 자루나 짊어진 6척(약 180센티미터) 장신의 무사가 발걸음도 가볍게 걸어가고 있다.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인물로 강렬한 안광과 더불어 강렬한 마기가 전신에서 뿜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평상시와 같이 검붉은 핏빛이 도는 구역질이 날 듯한 빛깔의 낡은 옷으로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큼직한 철문 앞에 이르러 문을 네 번 두드렸다. 그러자 쇠창살이 박혀 있는 작은 창문이 열렸고 그 안에서 사람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쇠창살 안의 인물에게 품속에서 붉은색 옥패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하늘 아래 한 사람이 있으니.”
그러자 쇠창살 속의 인물이 답했다.
“정, 사, 마를 통합하여.”
그러자 그가 다시 말했다.
“뱃놀이를 하리라.”
마지막 말은 영 문구에 어울리지 않는 괴상한 말이었지만 철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고 그 안에 서 있던 네 명의 무사들은 반쯤 뽑았던 검을 집에 꽂아 넣었다. 그러면서 그에게 절을 하며 말했다.
“인어와 함께.. 안으로 드시지요. 교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암호를 묻고 답하는 것이 복잡한 이유는 양쪽이 서로를 시험하여 문답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암호는 하루에 한 번 이상 바뀌게 되어 있다. 그리 고 그 상대에 대한 시험은 교주의 근처로 다가갈수록 엄중해진다. 하지만 이런다고 암살당해 죽은 교주가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암호의 교환은 초기에 마교 총단이 만들어진 후 내려오는 관습일 뿐 뭐 별다른 뜻은 없었다. 사실 암호라도 교환해야 뭔가 호위라도 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 아닌가?
교주는 밀실로 들어오는 그를 보며 반겼다. 그는 문 옆에 검대를 풀어 두 자루의 검을 세워 둔 후 교주의 곁에 가 인사를 올렸다. 무기를 휴대한 상태에서 교주 가까 이 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안녕하셨습니까?”
“그래, 어서 오게나.”
“무슨 하교하실 말씀이라도?”
교주는 품속에서 밀서 두 개를 꺼낸 후 그에게 주었다.
“자네는 본좌의 명령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지킬 자신이 있는가?”
“예.”
“자네는 지금 곧 천마혈검대(天魔血劍隊)를 이끌고 섬서분타로 가게.”
“섬서분타라면 그 묵향 부교주가 세운……?”
“그렇네.”
그러자 천마혈검대의 대장 환영비마幻影飛) 구양운(丘陽雲) 장로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천마혈검대만으로 그를 공격하라는 말씀입니까?”
구양운 장로의 항변에도 교주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떻게 할지는 거기 있는 노란색 봉투의 밀서에 쓰여 있네. 자네는 일단 섬서분타 부근까지 수하들을 이끌고 가서 그 노란색 밀서를 꺼내 읽게나. 그런 다음 그 밀 서에 쓰여 있는 대로 행하면 돼. 완벽한 전투 준비를 챙겨서 준비가 되는 대로 출발하게.”
“존명!”
“자네가 출발하는 것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게. 그냥 본좌의 명으로 출동한다고만 하게. 나머지는 본좌가 처리해 둘 거야. 행선지는 절대 그 누구에게도 노출시 키면 안 돼. 거기에 이 작전의 승패가 달려 있네.”
“명심하겠습니다.”
구양운 장로가 나가고 난 후 청의를 입은 무사 한 명이 문을 열고 교주에게 알렸다.
“백마동(白魔洞)에서 온 특급 전문입니다.”
그 무사는 비둘기 다리에서 갓 떼어 낸, 밀봉된 작은 대롱을 교주에게 바로 전했다. 대부분의 연락은 암호를 해독한 후 교주에게 건네주는 게 순서였지만 몇 군데 특정한 장소에서 도착하는 것만은 교주에게 즉각 전달되었다. 물론 봉함을 뜯지 않고.
교주는 그 대롱에 붙어 있는 밀봉에 누군가 손을 대지 않았는지 세심히 살펴본 다음 아무런 이상이 없자 대롱을 열었다. 그 속에는 아주 얇은 종이가 똘똘 말려 있 었다. 교주가 그걸 조심스레 뽑아내자 그 안에는 깨알같이 작은 이상한 기호들이 빽빽이 쓰여 있었다. 교주는 품속에서 책 한 권을 꺼내어 그것을 천천히 해석하기 시작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교주는 품속에 책을 집어넣고는 내공을 끌어올려 종이를 태워 버리고 외쳤다.
“도진!”
그러자 갑자기 한 인영이 스르르 교주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부복했다.
“예.”
“교외에 비밀리에 잠시 나갈 것이다. 외출 준비를 해라.”
“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