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권 5화 – 벼룩의 간 꺼내 먹기II
벼룩의 간 꺼내 먹기II
거지들이 따라붙고 난 다음부터 묵향은 될 수 있으면 큰 마을이나 도시를 피해서 이동했고, 산길이나 길도 없는 들판을 그냥 돌파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거지들이 방해할 가능성은 만에 하나라도 없었지만 다만 자신의 행적이 들통 나는 것은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산길과 들길을 이용해 지금 사천 성의 중앙부에 위치한 아미산(峨嵋山) 가까이에 있었다.
사천성에는 거대한 명문(名門)들이 많기 때문에 묵향도 조금은 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한 번 난리를 쳤던, 독으로 유명한 당문(唐門), 검으로 유명한 아 미산에 있는 아미파(峨嵋派)와 청성산에 위치한 청성파(靑城派), 창술과 검술로 유명한 점창산에 위치한 점창파(占槍派)……. 정도의 핵심이라는 9파1방 중에서 무려 네 개의 문파가 똬리를 틀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무산에 위치한 도의 명가 종리세가(鍾里世家)가 위세를 자랑하고 있는 곳이다.
예전에 9파1방은 정파 중에서 가장 강한 상위 열 개 문파를 가려 뽑은 것이었지만, 실상 한 번 이름이 오른 문파를 없애고 다른 신진문파로 대체할 수는 없는 노릇 이라 계속 열 개 문파만이 지명되어 왔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열 개 문파 중 청성파와 종남파(終南派)가 뛰어난 제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었고, 개방도 남개방과 북개방으로 나뉘어져 쇠퇴의 길을 걷는데 반해 무영문이나, 저 변방인 청해성 골짜기에 박혀 있어 끼지 못했던 곤륜파(崑崙派)는 그 기세를 더하고 있어 미묘한 갈 등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묵향은 그 위치에서 90도로 꺽어 무산 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도 감시자가 생긴 마당에 자신의 행적을 정직하게 드러낼 바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요 즘 들어 더욱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은 개방 같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대단히 뛰어난 어떤 놈들이 자신의 뒤를 추격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거의 현경의 위치를 벗어나느냐 마느냐 하는 정도의 무공을 지닌 묵향으로서도 자신에게 붙은 꼬리가 어떤 놈들인지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에잉, 지금 시간을 투자해서 귀찮더라도 몇 놈 잡아서 족쳐 봐? 아니면 그냥 이대로 갈 길을 갈까? 고민되는군.’
상대의 움직임은 대단히 조용해서, 만약 묵향이 이동하지 않고 그냥 한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면 그들의 움직임을 눈치 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묵향이 움 직임에 따라 놈들도 따라 움직이다 보니 미세한 기척이 감지된 것이다.
묵향이 추격을 눈치 챈 다음 벌써 세 번이나 경공술을 이용한 도약을 했는데도 꼬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그를 추격하는 뛰어난 실력의 미행자가 한두 놈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그의 경공술을 따라올 놈은 없다고 자부하고 있는 터……. 그리고 자신이 도약하면서 뒤따라오는 놈을 눈치 채지는 못했으니 아마도 상대는 묵향을 기준으로 거 의 원형에 가까운 포진을 하고 감시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죽자고 경공술을 전개해 내빼면 감시하는 놈들의 수가 무한대가 아닌 한 떨어질 것이 뻔하지 만 아직은 그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도대체 어떤 문파가 이렇게 대단한 놈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거지? 이해할 수가 없구만. 마교일까? 아니면 무림맹? 에이 골치 아파! 나중에 지나 보면 알겠지.’ 묵향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서 다섯 명의 남루한 옷을 걸친 무리들이 튀어나오며 길을 막았다. 그리고는 저마다 가진 무기를 묵향에 게 들이대면서 외쳤다.
“서랏!”
“호오… 이것들은 또 뭐야?”
“빨리 가진 것 다 내놔랏!”
묵향이 둘러보니 칼도 썩 좋지 못한, 대장간에서 대강 만든 것들을 가진 걸 보니 아마도 3류 산적쯤 되는 모양이었다.
“이봐, 이 몸은 지금 바쁘니까 딴 놈들이나 털어. 그래도 먹고 살자고 하는 노릇이라 봐준다. 알겠어?”
그러자 그중에서 제일 덩치가 큰 놈이 말했다.
“말로 해서는 통하지 않는 놈이군. 쳐라!”
그 말에 네 명의 산적이 묵향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곧이어 도대체 어떻게 손을 썼는지 보이지도 않고 비쾌한 격타음만 들렸다.
퍼퍼퍼퍽!
그와 동시에 네 명은 큰 대자로 뻗었고 주변에는 그들의 손을 벗어난 칼들이 어지러이 널렸다.
“별 재주도 없는 놈들이 좋게 말할 때 다른 상대를 택하라니까……?”
그러면서 묵향이 아직 쓰러지지 않고 멀쩡히 서 있는 덩치 큰 놈에게 서서히 다가가자 그자는 안색이 파랗게 질리며 주춤주춤 뒷걸음질치며 애원했다.
“나으리… 하늘을 몰라 뵙고…….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내놔.”
“예?”
“나를 가로막고 힘을 쓰게 했으니 수고비를 내놔야 할 거 아냐, 이 자식아.”
“소인들은 돈이 없는뎁쇼? 오죽하면 산적질을…….”
“이 녀석이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군.”
퍽!
“크엑, 살려 주십시오, 나으리.”
“빨리 주머니 털어서 있는 대로 다 내놔, 이 자식들아.”
묵향은 기어이 산적들을 닦달해서 일곱 냥하고 32문의 동전을 뺏어낸 다음에야 유유히 길을 떠났다. 묵향의 신형이 멀찌감치 사라지자 당장 오늘 저녁밥을 굶게 생긴 산적들은 울분에 찬 욕설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잘 먹고 잘살아라. 원참, 더러워서…….”
“못된 놈. 벼룩의 간을 내먹어라.”
그 장면을 멀찌감치 지켜보던 두 명의 인영들은 이 기막힌 사태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린 한 명이 상대에게 전음을 보냈다.
<정말 성격이 희한한 놈이군.>
<그러게 말이야.>
<저런 놈이 본문의 인원 8할이 출동해 미행을 하면서도 진땀을 빼는 상대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
<글쎄 말이야. 도대체가 고수의 면모라고는 하나도 갖추지 못한 잡배같이 행동하면서…….>
<그건 그렇고, 빨리 따라가세나. 더 이상 지체하면 힘들지도 몰라.>
<그러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