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0권 14화 – 똑똑한 오크보다 교활한 올란도
똑똑한 오크보다 교활한 올란도
돼지처럼 생긴 생김새만을 보고 사람들은 머리가 안 좋은 몬스터의 대명사로 오크라는 이름을 써먹고 있었지만, 사실 오크는 아주 영악한 몬스터였다.
식량 공급처로 점찍은 호비트 마을이 있으면, 일 년에 한두 번만 약탈한다. 약탈을 너무 자주 하면 호비트들이 거기에서 살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다는 것 을 놈들은 잘 아는 것이다. 그리고 약탈을 한다고 해도 몽땅 다 털어가는 것도 아니다. 굶어죽지 않을 정도는 놔두고 간다.
그렇게 해놔야 다음에도 또다시 그만큼의 식량을 얻을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런 이유로 해마다 오크의 습격을 받으면서도 영지의 주민들이 이곳에서 끈질기게 버 틸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오크는 인간과 공존하는 삶의 지혜를 터득했지만, 인간의 영주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은 너무나도 욕심이 많았다. 오크 떼가 쓸어가 버리니, 제대로 된 세금을 거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오크가 보이는 족족 씨를 말려버리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파견했지만, 성과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영악하기 짝이 없는 오크들은 대규모 병력이 눈에 띄면 곧바로 짐을 싸서 산속 깊은 곳으로 도망쳐 버렸기 때문이다.
이곳에 터를 잡고 있는 오크 족장 ‘휙바르’도 이런 식의 밀고 당기기에 도가 튼 오크였다.
“휙! 족장! 족장!”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 남은 상태. 경계병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오크들이 잠을 자고 있을 시간이다. 그리고 휙바르 역시 단잠에 취해있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휙바르는 본능적으로 후다닥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느 결에 집어 들었는지 그의 손에는 창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가끔 자신의 통솔에 불만을 품은 오크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기에, 족장의 자리에 앉아있다고 해서 절대 안심하고 살 수는 없었다. 특히, 곤히 잠자고 있을 때가 가장 위험한 시간이었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긴장이 풀린 휙바르는 커다란 송곳니를 드러내며 입이 찢어져라 하품부터 했다.
“추익, ? 무슨…, 일이냐?”
“쇠 냄새 풍기는 호비트들 숲 뒤지고 있다.”
경계병의 보고에, 휙바르는 또다시 토벌군이 왔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는 두 눈을 매섭게 빛내며 물었다.
“휙? 몇 놈이냐?”
“몇 안 된다.”
경계병 오크는 손가락을 주섬주섬 꼽더니 한참 만에야 대답했다.
“휙! 10마리 정도?”
“겨우 10마리?”
숲을 뒤지는 숫자치고는 너무 적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휙바르는 부하에게 명령했다.
“너, 마을 살펴라. 취익! 쇠 냄새 풍기는 놈 숫자 세라!”
오크족의 수컷이 전투에 능하듯, 호비트들 중에서 전투에 능한 것들은 짙은 쇠 냄새를 풍겼다. 철기(鐵器)로 중무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쇠 냄새를 풍 기는 놈들의 숫자만 파악하면, 앞으로의 행동을 결정지을 수 있다. 이곳에 남아서 싸울 것인지, 아니면 도망칠 것인지 말이다.
4시간쯤 흘렀을까? 마을로 보냈던 오크들이 돌아왔다.
“휙! 족장, 10마리 정도다.”
자신의 손가락 10개를 쫙 펼쳐 보이는 오크.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휙바르는 어이가 없었다. 주위를 뒤지고 있다는 놈이 10마리. 마을에 남은 게 10마리. 그렇다 면 겨우 20마리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건데, 그 숫자로 감히 자신들을 없애겠다고 기어들어왔다니…….
“취익! 가소로운 것들.”
“휙! 족장, 어떻게 하나?”
“족장, 마을 쳐들어가자!”
마을을 습격할 때는 밤에 하는 게 최고라는 것을 휙바르도 잘 안다. 하지만 노회한 그는 쇠 냄새 풍기는 놈들을 상대로는 그게 썩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 으로 알고 있었다.
오크가 겨우 몽둥이나 창 정도를 사용할 수 있는데 반해, 호비트들은 활이라는 무시무시한 무기를 쓸 줄 알았다. 더군다나 놈들도 이 근처에 오크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상 필히 대비를 철저히 하고 있을 게 아닌가. 완벽하게 대비 태세가 갖춰져 있는 곳으로 쳐들어 간다면 막심한 피해를 각오해야만 했다.
“휙! 숲에 들어온 놈 죽인다! 그게 호비트 죽이기 쉽다. 편하다.”
족장이 결정을 내리자마자 오크들은 저마다 무기를 들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쇠 냄새 풍기는 호비트들이 상당히 잘 싸운다는 것을 오크들도 잘 알고 있었지만, 울
창한 숲 속에서 싸운다면 자신이 있었다. 더군다나 숲을 뒤지고 있는 호비트의 숫자는 겨우 10여 마리 남짓. 자신들의 숫자는 그 6배가 넘는 만큼, 겁날 게 없는 것 이다.
오크들이 호기롭게 달려 나갔지만, 그들은 빈손으로 동굴로 돌아와야만 했다. 숲 속에 들어왔던 호비트들이 어느새 모두 다 철수하고, 한 마리도 없었던 것이다. 휙바르는 저 멀리 보이는 마을을 아쉽다는 듯 바라봤다. 지금 당장 쳐들어갈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첫날인 만큼 놈들의 대비 태세 또한 가장 철저할 게 뻔했으니까.
“오늘 밤 사냥 없다.”
오늘 밤에는 사냥을 하지 않는다는 휙바르의 선언에 모두들 동요했다.
“사냥 없으면 고기 없다. 그럼 뭐 먹나? 족장.”
“저장한 거 먹는다. 푹 쉬고 내일 새벽 싸운다!”
호비트 마을에서 약탈해 온 곡식류는 장기 보관이 되기에 동굴 안 깊숙한 곳에 보관해 뒀다. 사냥이 잘 안 되는 어려운 시기에 먹기 위해서다.
“마을 공격하나?”
“아니, 내일 숲 들어오는 놈 매복해서 죽인다.”
오크들 중 경험이 많은 놈들은 휙바르가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인지 곧바로 이해했다. 새벽에 출발해서 숲 속 여기저기에 매복하고 있다가, 정탐하기 위해 들어오 는 호비트들을 공격한다면 최소한의 손실만으로 놈들을 몽땅 다 때려죽일 수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현명한 족장을 모시고 있는 것을 행운이라 생각하며 소굴로 돌아갔다. 내일의 전투를 고대하며…
밤이 깊어서야 아스탄과 모라이어스가 돌아왔다. 하리스의 말대로 그들은 오크의 후각을 피해가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그 어떤 상처도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라이는 그들을 존경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봤지만, 두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고 곧장 올란도에게로 다가갔다.
“그래, 알아냈나?”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오크 족장 휙바르는 자기 딴에는 꾀를 부린다고 부린 모양인데, 오히려 그게 올란도 일행을 도와준 결과가 되어버렸다. 지금껏 수많은 오크들을 상대해 본 올란도 는, 오크들이 자신들을 살펴보기 위해 정찰병을 보낼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아스탄과 모라이어스는 그 정찰병의 뒤를 밟아 역으로 그들의 소굴을 포착해 냈던 것이 다.
“자, 이제 놈들의 소굴을 알아냈으니, 토벌하는 일만 남았군. 토벌작전은 내일 모래 새벽에 할 거니까, 내일은 모두들 푹 쉬도록 해라.”
“예, 중대장님.”
올란도는 오크들이 다음에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놈들이 지금까지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나지 못했기에 아직까지 번성하고 있는 것이라면, 올란도 패거리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오크족들의 씨를 말리면서 그 노하우를 터득한 강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휙바르와 그의 부하들은 그 다음날 새벽 일찍부터 숲 속에 매복한 채 하루 종일 호비트 수색병들이 들어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하지만 해가 질 때까지 숲 속으로 들어온 호비트는 단 한 놈도 없었다.
“휙! 숲에 왜 안 들어오는 거냐?”
“눈치 챈 거 아닐까?”
“그럴 리 없다. 숲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걸 어떻게 알겠냐.”
부하들과 토의해 본 결과, 휙바르는 결론을 내렸다. 놈들의 숫자는 겨우 20마리. 처음부터 자신들의 소굴로 쳐들어올 생각이 없었다고 말이다. 아니면, 나중에 본 대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나 끌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놈들은 처음부터 싸울 생각 없었던 거다. 휙! 사냥해서 배나 채우자.”
호비트 놈들이 와서 기웃거린 탓에 밤에 사냥하고 낮에 잠자던 그들의 생활 패턴이 무너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어젯밤은 오늘 낮의 싸움을 위해 휴식을 취해두느 라고 사냥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 않은가.
단순하기 짝이 없는 오크들은 그때부터 시작해서 밤새도록 사냥한 다음 새벽녘에 실컷 퍼먹고는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올란도가 부하들과 함께 움직인 시점 또 한 바로 그때였다.
“모두들 든든하게 먹어라. 오늘 힘 좀 써야 할 테니까 말이야.”
“옛!”
새벽이 되기 전에 식사를 마친 후, 올란도는 촌장을 찾아갔다. 지금껏 촌장에게 당한 멸시에 대한 복수전을 하기 위함이다.
새벽에 자신의 단잠을 깨운 용병대장이 그리 달가울 리 없다. 안 그래도 후줄그레한 겉모습만을 보고 얕잡아보고 있었던 차인데 말이다. 그래서 촌장은 입이 찢어 져라 하품을 한 뒤 시큰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꼭두새벽에 대체 무슨 일이시오?”
의심스런 눈길로 자신을 탐색하듯 바라보는 촌장. 안 그래도 어려운 살림에 식량이나, 돈이라도 내놓으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모양이다.
올란도는 심사가 뒤틀렸지만, 애써 내심을 숨기고 점잖게 말을 꺼냈다.
“오늘 오크 소굴을 토벌할 겁니다.”
“벌써 말이오? 그런데 왜 나를 깨운 건지. ???
“놈들의 소굴은 숲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토벌을 마친 후, 저희들은 곧바로 이 마을을 떠날 예정입니다. 그런 만큼 누가 함께 가서 우리들이 토벌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을 해주셔야겠습니다. 그리고 오크 소굴이 어디에 있는지 그 위치를 알아야, 놈들이 약탈해 간 식량을 마을로 다시 가져올 수 있을 게 아닙니까. 토벌 후 돌아와서 주민 몇 사람을 데리고 다시 오크 소굴까지 다녀오기에는 시간낭비가 너무 심하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올란도의 제안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촌장은 전혀 따라갈 마음이 없었다. 이들이 토벌에 성공할 리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저들을 따라 숲 속에 들어간다는 말은 곧 자살하러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촌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럴 수는 없소.”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토벌 후에 다시 숲 속을 안내할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싫소. 토벌 후에 안내해 주시오.”
“저희들이 그렇게 해드릴 의무는 없습니다. 계약 내용에 오크들이 약탈해 간 식량을 되찾아 줘야 한다는 내용은 없었으니까요. 제가 이런 제안을 드리는 것은, 마 을 형편이 어려운 만큼 그 식량이라도 확보해 드리는 게 도리가 아닌가 해서 드리는 겁니다. 그런데도 거절하시겠습니까?”
“우리는 그런 식량 따위는 필요 없소.”
식량이 필요 없을 리가 없지만, 촌장은 목숨을 내걸고서까지 숲 속으로 들어갈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서명해 주십시오.”
올란도는 촌장이 이렇게 나올 줄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제안을 촌장이 거절했다는 걸 증명해 줄 문서를 미리 만들어 왔던 것이다. 괜히 촌장이 나중에 영주에게 헛소리를 해대면 귀찮기 때문이다.
“이, 이게 뭐요?”
“방금 전에 촌장님께 드린 말씀을 문서로 남겨놓은 겁니다. 저는 분명히 사람을 보내달라고 했고, 촌장님은 필요 없다며 거부하셨죠? 바로 그 내용입니다. 자, 서 명하시죠.”
“아무리 그래도 서명을 해주는 건 좀…….”
머뭇거리는 촌장을 향해 올란도는 강하게 다그쳤다.
“서명을 하시기 싫다면 사람을 보내주십쇼.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숲 속으로 들어가야 하니까요.”
촌장은 두려움에 물든 시선으로 슬쩍 어두컴컴한 숲을 바라봤다. 오크가 야행성 동물이라는 것은 어린애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겨우 20명도 안 되는 인원으 로, 해도 뜨지 않은 이 꼭두새벽에 숲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느껴졌다.
올란도가 계속 채근하자, 촌장은 결국 문서에 서명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용병들 무리에 동행할 사람을 내줘야 할 판이었으니까.
촌장과의 일이 마무리된 후, 올란도는 부하들을 이끌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선두에 서서 그들을 이끄는 것은 아스탄과 모라이어스였다. 둘 다 이미 오크들의 소굴 까지 가봤기에 그들의 발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얼마 전에 이 마을로 오크를 토벌하러 왔던 질랜드 남작은 우세한 병력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크들의 홈그라운드라고 할 수 있는 숲 속에서의 전투를 고집했다. 사실, 오크와의 실전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았던 그로서는 오크 소굴을 찾아낼 좋은 묘안도 없었고 말이다.
하지만 숲 속에서 오크와 싸운다는 게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다.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는 숲 속에서는 공간이 없기에 진형을 짜서 적과 대치할 수도 없다. 더 군다나 오크들이 정정당당하게 맞대결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오크들을 찾아서 숲 속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결국 놈들의 기습을 받고 각개격파 당하는 경우 가 허다했던 것이다.
하지만 올란도의 휘하에 겨우 2개 소대밖에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단장이 그에게 오크 토벌을 명령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그의 부하들이 그만큼 뛰어난 실력자들 이었기 때문이다. 올란도는 절대로 숲 속에서 오크 떼와 싸우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얼마쯤 걸었을까? 갑자기 모라이어스가 대열을 이탈해 빠른 걸음으로 앞서나가더니, 어느덧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대신 아스탄이 중대원 전체를 인도했다. 한 시간 정도 숲 속을 더 걸었을 때였다. 어디선가 나지막한 음조의 새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아스탄이 주저앉으며 주먹을 번쩍 들어보였다. 멈추라는 신호 였다! 그러자 중대원 전체가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라이 역시 도끼를 꽉 움켜쥔 채 주위를 열심히 살폈다. 어디서 오크들이 튀어나올까? 긴장해서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는 않았다.
잠시 후, 방금 전에 들렸던 그 새소리가 2번 반복되며 다시 한 번 더 들려왔다. 그제서야 일어서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아스탄. 그 뒤를 따르며 라이는 하리스에게 물었다.
“왜 저러는 거죠?”
“뭐가 말이냐?”
“새소리에 따라서 쉬었다가 갔다가 그러고 있잖아요?”
“아, 그건 저 앞쪽에서 새침데기가 내는 소리야. 그가 길을 열고 있는 거지. 보이지는 않지만 저 숲 어딘가에는 경계를 서던 오크들이 시체가 되어 나뒹굴고 있을 걸.”
“아, 예…….”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아무 소리도 없이 오크를 죽였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 라이였다. 그런 일이 몇 번이나 계속된 후, 결국 3시간에 걸친 행군이 끝이 났다. 노릿하면서도 코를 찌르는 역겨운 오크 냄새. 그 냄새만 맡아도 이 근처에 오크들의 소굴이 있다는 것을 라이는 확신할 수 있었다.
오크 소굴로 들어가는 입구는 아주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었다. 그것 하나만 봐도 이곳 오크들이 얼마나 많이 인간들과 부대끼며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바로 코앞에 오크 소굴이 있는데도 올란도는 긴장감 따위는 전혀 느끼지도 못하는 모양이다. 오크 소굴 앞에서 연신 코를 킁킁거리던 그는 익살스런 표정으로 중 얼거렸다.
“크~, 냄새. 이 정도 악취라면 백 마리는 족히 들어앉아 있을 거야.”
그는 부하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나직한 어조로 명령했다.
“자, 모두들 여기까지 오느라고 수고들 많았다. 잠시 후에 전투를 시작할 예정이니, 그동안 충분히 휴식을 취해두도록!”
중무장을 한 채 숲 속을 3시간씩이나 걸어온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모두들 땀에 흠뻑 젖어있는 상태였다. 대원들은 올란도의 명령을 반기며 삼삼오오 숲 속에 자리를 잡았다.
라이는 하리스의 뒤를 쫓아가다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숲 속에 쓰러져 있는 오크 시체를 봤기 때문이다. 미간을 꿰뚫고 들어간 화살 한방이 그 오크가 죽은 이 유였다. 정말이지 놀라운 솜씨였다!
라이가 오크 시체를 넋 나간 듯 보고 있을 때, 숲 속에 퍼질러 앉은 하리스는 배낭 안에서 햄과 빵 한 덩어리씩을 꺼냈다. 그리고 칼로 햄을 작게 잘라 빵과 함께 입 안에 넣고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이때, 옆에 앉아있던 바트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아, 뭐 하나 물어보자. 저 꼬맹이를 왜 뺀질이라고 부르는 거지?”
“왜냐니? 뺀질이니까, 뺀질이라고 부르는 거지.”
그러자 바트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이상하네. 내가 보기에는 순진하고, 성실해 보이던데, 거참!”
“크크, 네가 임무를 나갔을 때 난 저놈 훈련시킨다고 남아있었잖아. 처음에는 나도 몰랐어. 그런데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켜보다 보니 알겠더라고. 놈이 얼마나 지능 적으로 뺀질거리는지를.”
“훈련을?”
고개를 끄덕이던 하리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라이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참! 나도 처음에는 감쪽같이 속았다니까. 얼마나 기가 막히게 뺀질거리는지 눈치조차 채기 힘들었단 말이야. 너도 한번 생각을 해봐라. 너 같으면 통나무 치 기를 2시간동안 줄곧 할 수 있겠냐? 그것도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대낮에 말이야.”
통나무 치기라는 것은 통나무 말뚝 하나를 땅에 박아넣은 다음, 그 말뚝을 상대로 무기와 방패술을 단련하는 수련법이었다. 혼자 수련할 수 있었기에 광범위하게 애용되고 있었다. 특히, 이때 사용하는 방패나 무기를 평상시 사용하는 것보다 무거운 것을 사용하면, 근력증대에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움직이지도 않는 통나무를 적으로 삼는다고 우습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전력을 다해 방패로 내리찍고, 또 칼을 휘두르다 보면 20분도 채 되지 않아 땀으로 목욕을 해야 하는 강도 높은 수련 법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갑옷으로 중무장까지 하고 있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바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대꾸했다.
“대낮에 2시간 동안? 에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렇지? 그런데 저놈은 그걸 해낸단 말이야.”
“말도 안돼..”
“크크,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저놈을 뺀질이라고 부르는 거야. 어린놈이 얼마나 농땡이를 피우는데 도가 텄는지, 옆에서 빤히 보고 있는데도 모를 정도니 말이야. 하 여간에 뺀질거리는 재능은 아주 타고난 거 같아.”
하리스는 오크 시체를 쳐다보고 있는 라이를 향해 손짓했다.
“뺀질이, 뭐하고 있냐? 이쪽으로 안와?”
“아, 예.”
라이는 얼른 하리스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리스는 자신이 들고 있는 햄덩어리에서 한 조각을 크게 잘라 라이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빵 꺼내서 이거를 얹어 같이 먹어봐. 꽤 맛있을 거다.”
“감사합니다.”
라이가 햄을 얹은 빵을 씹고 있을 때, 모라이어스가 숲 속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그를 쳐다보며 라이는 존경심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저렇게까지 뛰어난 활솜씨를 지닌 사람은 처음 봤으니까.
수통을 꺼내 목을 축이고 있는 올란도. 라이는 틀림없이 그 안에 술이 잔뜩 들어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 예상이 맞는지 수통에서 입을 떼는 올란도는 ‘크~.’하면 서 인상을 찡그렸다. 올란도는 모라이어스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미소 띈 표정으로 치하했다.
“수고들 했다. 이 안쪽은 우리가 해결할 테니, 너희 둘은 혹시 밖에서 접근해 오는 오크들이 있으면 처리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올란도는 부하들에게 휴식시간을 충분히 제공했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있는 상태였다. 오크들은 지금 잠에 취해 있을 게 뻔했다.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 다.
다만 한 가지, 부하들에게 명령해서 커다란 모닥불 하나를 피워두라는 명령은 잊지 않았다. 횃불이 있어야 저 어두운 굴속에서 싸울 수가 있을 테니까.
이윽고 올란도가 자리에서 털고 일어서며 명령했다.
“자, 휴식 끝! 전원 전투준비! 전투에 직접적인 필요가 없는 짐은 이곳에 놔두고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