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1권 9화 – 사람 가죽도 벗기나요?

사람 가죽도 벗기나요?

올란도 부대가 마을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작업은 고블린 거주지와 인접한 마을 외곽에 방어선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방어선만 설치한다고 해서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이곳에 온 목적은 놈들을 완전히 소탕하기 위해서였으니까.

사실, 겨우 열다섯 명만으로 고블린 1개 부족을 소탕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직접 맞붙어 싸운다면 고블린의 숫자가 열 배가 넘는다고 하더라도 육체 적인 능력은 물론이고, 방어구와 무기에서 월등하게 우세한 용병들이 밀릴 리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놈들이 정면 대결을 회피한다는 데 있었다. 그렇다면 놈들이 맞붙어 싸울 마음이 들도록 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그건 바로 배고픔!

배고픔이야말로 동물적인 본성으로 가득 찬 고블린에게 취할 수 있는 가장 큰 압박 수단이었다. 하지만 놈들의 거주지역 전체를 포위해 식량 조달을 차단하기에는 용병들의 병력이 너무 적다는 게 문제였다.

한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소대장들이 짜낸 아이디어는 전망탑이었다. 높지막하게 건설해 놓은 전망탑은 탁 트인 시야로 인해 주변을 감시하기도 편리했을 뿐더러, 만약 놈들이 보이기만 하면 곧장 화살을 날려 쏴 죽이기에도 용이했다.

더군다나 전망탑을 건설하고 보니, 앞에 언급한 것들 외에도 또 다른 잇점이 있다는 게 밝혀졌다. 그것은 바로 방어 거점의 기능이었다. 오크와 달리 고블린은 불 을 사용할 줄 모른다. 놈들의 주 무기가 독침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얄팍한 나무판자 조각으로 만들어진 전망탑이라도 놈들에게는 난공불락의 요새나 다름없었 다.

하지만 문제는 전망탑을 건설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제대로 된 연장도 없었고, 노동력 또한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만약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지금보다 몇 배나 더 고생을 해야 했으리라.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판자나 기둥을 제작하는 일을 맡았고, 용병들은 그것들을 운반해 전망탑을 만드는 일을 했다. 가뜩이나 인력이 모자라는데 이렇게 분업을 해야만 했던 이유는, 주민들이 고블린의 독침을 두려워해서 아무리 설득해도 마을 밖으로는 나가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고블린의 독침이 무서운 게 사실이기는 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사거리가 짧았다. 강철도 아니고, 가느다 란 나뭇가지를 다듬어 만든 가벼운 독침을 입김으로 날려 봐야 얼마나 멀리 날리겠는가.

그리고 독침에 발라져 있는 독의 성분도 그리 강한 것이 아니었기에, 한 대 맞는다고 해서 곧바로 즉사하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몇 시간 정도 정신이 몽롱할 정도 로 마비가 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주변을 경계하는 틈틈이 해를 보며 시간을 가늠하던 라이언 소대장이 대원들에게 외쳤다.

“오전 작업 끝! 모두 돌아갈 준비를 해라.”

소대장의 지시에 따라 대원들은 작업을 끝내고 돌아갈 준비를 했다. 대원들의 몸은 마치 비라도 맞은 듯 땀으로 질척거렸다. 안 그래도 힘든데, 갑옷까지 입고 일 을 하자니 죽을 지경이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모두들 갑옷부터 벗어던지고는 냇물로 뛰어들었다. 대원들은 몸을 씻고 난 뒤 지금까지 입고 있던 옷들도 모두 벗어 깨끗이 빨아서 널었다. 이렇게 자주 세탁을 하지 않으면 냄새가 나서 입을 수가 없었다.

대원들은 몸을 씻은 후 모두들 여기저기 널브러져 쉬기 시작했지만, 라이는 쉬지 못했다. 고블린 토벌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 출발한 바로 그날부터, 대원들의 식사 를 책임져야만 했기 때문이다.

다른 소대들의 경우 식사 당번을 돌아가면서 했는데, 유독 3소대에서만큼은 라이 혼자 식사 준비를 했다. 하리스는 쫄따구가 식사 준비를 하는 게 3소대만의 전통 이라고 둘러댔지만, 사실은 라이가 술주정을 하는 척 자신을 속인 거라고 오해한 그의 자그마한 보복일 따름이었다.

식사 준비를 처음 했을 때야 힘들었지만, 지금은 숙달되어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척척 알아서 만들었다. 라이는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솥단지를 걸어 놓고 불을 피워 놓은 다음 씻으러 갔다. 라이가 씻고 돌아왔을 때쯤에는 물이 끓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침에 대원들에게서 거둬 두었던 재료에 마을 촌장이 건네준 식재료들. 이것들을 뭉텅뭉텅 썰어 넣은 다음, 소금을 대충 뿌려 넣으면 끝이다. 요리라고 하기 힘들 만큼 단순했고, 양념이라고는 소금밖에 없었지만 의외로 짭짤한 게 맛있었다. 매일, 하루 3번씩 이런 요리를 만들다 보니 간을 얼마나 해야 할지가 완전히 몸에 익 어 버린 것이다.

내용물이 익을 때쯤 밀가루를 풀어 넣고 걸쭉하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 라이가 내용물을 국자로 휘저으며 언제쯤 밀가루를 집어넣을까 눈대중을 하고 있을 때였 다. 이때, 옆쪽에서 들려오는 거친 론도 소대장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왜 벌써부터 그렇게 조급해 하냐? 참아, 앞으로 최소한 한 달은 더 이러고 있어야 하잖아.”

라이언 소대장이 말리고 있었지만, 그게 오히려 론도 소대장의 울화를 더욱 치밀어 오르게 만든 모양이었다.

“그걸 누가 몰라서 그래? 저 고주망태 중대장이 나만 보면 잡아먹지 못해 닦달을 하잖아. 내가 능력이 없어서 고블린 따위도 빨리빨리 없애 버리지 못한다면서. 젠 장! 자기는 손끝 하나 까딱하지도 않으면서 말이야. 빌어먹을!!”

한 달이라는 말에 우연히 두 사람의 말을 엿듣게 된 라이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 달? 이미 두 달 동안 포위망을 구축한 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 도 모자라 또다시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다행히도 아직 밀가루를 집어넣기 전이었다. 즉, 불 곁을 떠날 수 있다는 말이다. 라이는 슬그머니 하리스에게로 다가가서 그의 옆구리를 톡 치며 물었다.

“한 달 동안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진짜예요?”

“아, 너는 이거 처음이지? 젠장, 잘 들어. 비축 식량이 바닥났다고 해서 놈들이 곧바로 기어 나오는 줄 알아? 고블린은 인간이 아니야. 그 점을 착각해서는 안 돼.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자기들끼리도 서슴지 않고 잡아먹는 놈들이란 말이야.”

맞다. 그 부분을 생각하지 못했다. 라이가 오크들에게 붙잡혀 있었을 때, 겨울 식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게 그들의 동족인 오크 고기였지 않던가.

“그, 그렇군요.”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눈다고 나눴는데도 하필이면 그걸 라이언이 들은 모양이다. 라이언은 라이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엄한 목소리로 질책했다.

“식사 준비는 끝난 거냐?”

“아, 예. 곧 끝납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쇼.”

라이는 허겁지겁 솥단지를 향해 달려갔다.

론도 소대장은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 머리카락을 거칠게 쥐어뜯으며 외쳤다.

“으아아악! 정말 미쳐 버리겠네. 돈은 돈대로 못 벌어! 중대장한테는 능력 없다는 소리까지 들어! 왜 하필이면 이런 빌어먹을 임무가 걸려 가지고!”

이때, 경계를 서고 있던 대원들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보고했다.

“론도 소대장님, 중대장님을 뵙기를 청하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누군데? 데리고 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대원은 낯선 젊은이 한 명을 데리고 왔다. 론도 소대장은 그 젊은이를 향해 의심스런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누구신데 중대장님을 뵙겠다는 겁니까?”

젊은이는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며 대답했다.

“예, 저는 용병길드에서 나왔습니다. 여기가 붉은 전갈 용병단 71중대 맞죠?”

용병길드에서 나왔다는 말에 론도 소대장의 의심쩍은 시선이 약간은 누그러졌다.

“그렇긴 합니다만, 왜 중대장님은……?”

“중대장님께 전할 긴급 서신이 있어서 말입니다.”

긴급 서신이라는 말에 론도 소대장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지금 중대장은 손님을 맞을 상태가 아닐지도 몰랐다. 보나마나 밤새 퍼마셨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 서신을 자신에게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중대장이 없다면 몰라도, 그건 규정 위반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론도 소대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술집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중대장님께서는 저기에 계십니다.”

젊은이는 왜 론도 소대장이 중대장의 위치를 알려 주기 꺼려했는지 금방 눈치 채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저는 가 보겠습니다. 수고들 하십시오.”

인사를 건넨 후 술집으로 걸어가는 젊은이를 향해 론도 소대장과 라이언 소대장은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문득 론도 소대장이 중얼거렸다.

“젠장, 완전 떡이 돼서 뻗어 버린 건 아닌지…….”

“설마 아직 낮이잖아. 그 정도까지 마시지는 않았을 거야.”

라이언 소대장의 추측이 옳았던 모양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술집에서 올란도가 뛰어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올란도는 소대장들을 보자마자 급히 외쳤다.

“이봐! 모두 출발 준비 하라고 해!”

올란도를 뒤따라 밖으로 나온 용병길드의 젊은이는 용건을 모두 끝마쳤는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중대장님.”

“어, 수고하셨소. 먼 길 오셨는데 술이라도 한잔 대접해야겠지만,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올란도의 입에서 술 냄새가 짙게 풍기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었지만 젊은이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전 괜찮습니다. 그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쇼.”

올란도의 출동 명령에 식사를 하다 말고 후다닥 뛰어온 소대장들. 두 사람은 말을 타고 마을 밖으로 벗어나고 있는 젊은이의 뒷모습을 힐끔 바라본 뒤 올란도를 향

해 다급히 물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겼는지 술에 쩔어 팍삭 찌그러져 있던 상관의 얼굴이 오랜만에 생기를 띠고 있었다.

“갑자기 출발 준비라니요?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다른 임무가 떨어졌다.”

“예? 그럼 여기 임무는 어떻게 하고요?”

“현재 맡고 있는 임무는 일단 중단하고, 5일 내로 메르헨 영지에 집합하라는 상부의 명령이다.”

“메르헨 영지라고요? 거기에는 왜…….”

올란도는 명령서를 론도 소대장에게 건네주며 기분 좋게 말했다.

“전쟁이다! 지금까지 벌지 못한 것을 충분히 벌충할 수 있다는 뜻이지. 대원들을 출동 준비시키도록!”

“알겠습니다, 중대장님. 식사가 끝나는 대로 출발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메르헨 영지를 향해 이동한다는 상관의 명령에 대원들은 모두 환호했다.

“드디어 이 빌어먹을 마을을 떠날 수 있게 됐다!”

“전쟁이다! 전쟁!”

“도렌 영지하고 싸운다는데, 도렌이 도대체 어디야? 누구 거기 가 본 사람 있어? 아니면 들었거나…….”

“아무려면 어때. 그냥 작은 군소 영지인 모양인데, 우리는 쳐들어가서 약탈이나 하면 되는 거지.”

“한몫짭짤하게 챙길 수 있겠군.”

“우와! 신난다.”

대원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어리는 것을 보며, 라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는 두려움이 앞섰다. 아마도 그것은 지금껏 그가 단 한 번도 살인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는데 왜 저렇게 좋아하는 거죠, 선배?”

하리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걸 몰라서 묻는 거냐?”

“모르니까 묻는 거죠.”

“너 저번에 오크족 토벌할 때, 뭐 건진 거라도 있냐?”

하리스의 물음에 라이는 자랑스러운 듯 대답했다.

“송곳니를 8개나 뽑았어요.”

하리스는 손가락까지 꼽아 보이며 말하는 라이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다.

“그래. 몬스터 때려잡아 봐야 얻을 수 있는 건 뻔하지. 이빨이나 발톱, 가죽……. 하지만 그런 거 팔아 봐야 몇 푼이나 벌겠냐?”

그러자 라이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잡화점에 가져다 주면 짭짤하게 벌 수 있다고 열심히 챙기라고 하신 건 선배잖아요.”

“물론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아무리 짭짤하다고는 해도, 사람을 때려잡았을 때의 수입에 비하면 그건 푼돈이나 마찬가지야.” 라이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급히 반문했다.

“설마… 사람 가죽도 벗겨요?”

그 겁먹은 표정에 하리스는 박장대소했다. 한동안 배꼽이 빠져라 웃던 하리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사람 가죽을 벗겨다가 어디에 쓰게. 가죽을 벗기는 게 아니라, 그놈이 가지고 있는 물품을 노획할 수 있다는 말이야.”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라이는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쓸 만한 갑옷 한 벌…, 아니 검 한 자루만 챙겨도 떼돈을 벌 수 있거든. 그래서 모두들 환성을 질러대고 있는 거야.”

그러면서 하리스는 예전에 자신이 영지전에서 적병을 죽인 뒤 그의 품속을 뒤져 값나가는 물품을 약탈했었던 무용담을 들려줬다.

“꽤 실력 있는 놈이라서 맞서 싸울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지. 그래서 녀석은 무시하고, 그 옆에 있는 다른 만만해 보이는 놈들을 하나씩 해치우고 있었거든. 그런데 그놈이 나한테로 달려오는 게 아니겠어? 마음 같아서는 당연히 달아나고 싶었지. 그런 놈과 목숨 걸고 싸워봤자 수당을 한 푼이라도 더 주는 것도 아니

고.

여기까지 말하던 하리스는 자신의 롱 소드를 검집에서 쑥 뽑아 들었다. 그의 애검은 용병들이 쓰기에는 너무 고급스러운 것이었다. 용병들은 대체로 얄팍한 롱 소 드보다는 파괴력이 뛰어난 브로드 소드 같은 중병기를 즐겨 쓴다. 대인격투에는 가벼우면서도 긴 롱소드가 유용할지 모르지만,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데는 튼튼하 고 묵직한 브로드 소드가 훨씬 낫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놈이 눈에 확 들어오는 거야. 정말 멋진 놈이지?”

결국 하리스의 말은, 롱 소드를 뺏기 위해 그자와 목숨 걸고 싸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자신의 멋진 애검이 생긴 것이고.

“괜찮은 게 눈에 띄면 바로바로 주워. 안 그러면 다른 놈이 금방 채 가 버리니까 말이야. 하기야, 도끼는 그리 인기 있는 품목이 아니니 경쟁자가 그리 많지는 않겠 군. 물론 도끼를 쓰는 놈도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문제기는 하겠지만 말이지.”

자신이 사용하는 도끼가 그만큼 비인기 무기라는 것에 라이는 씁쓸한 표정을 감추기 힘들었다.

“다, 다행이네요.”

“한 번 더 말하지만, 좋은 걸 보면 절대 기회를 놓치지 마.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테니까 말이야. 이건 흔히 오는 기회가 아니거든.”

“선배님 얘기를 들어 보니, 영지전이라는 게 그리 자주 벌어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죠?”

“당연하지. 전쟁 한판 벌이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알기나 하냐? 영지에 소속된 병사들만으로도 모자라, 우리들 같은 용병들까지 고용하려면 가 “히…….”

오랜만에 큰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리스가 신이 나서 입을 연신 나불거리고 있을 때, 라이언 소대장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리스! 이 자식,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짐이나 챙겨!”

“옛, 소대장님! 분부대로 합죠.”

즉시 대답하는 하리스. 하지만 말과 달리 그대로 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라이언 소대장이 딴 데로 시선을 돌리자마자, 라이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투덜거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젠장. 말 안 해도 다 알아서 할 건데, 딱딱거리기는…….”

이때, 어디선가 나타난 올란도가 다가오더니 큰 목소리로 부하들에게 외쳤다.

“자자, 모두들 주목!”

중대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쏠린 것을 확인한 후, 올란도는 말을 이었다.

“제군들! 영지전에 참여하기 위해 이동할 거라는 얘기는 소대장들을 통해서 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메르헨 영지에 5일 내로 무조건 도착해야 한다. 시간이 아주 촉박하다. 강행군을 해야 하는 만큼, 최대한 군장의 무게를 줄여라. 꼭 필요하지 않은 짐은 이곳에 놔두라는 말이다. 내가 촌장을 직접 찾아가서 양해를 구해 뒀으 니, 잘 보관해 줄 거다. 그러니 그 점은 걱정하지 말도록.”

“그럼 영지전이 끝나면 다시 이 마을로 돌아올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한 대원의 질문에 올란도는 짐짓 장난스런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럼 너는 이 마을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냐? 여기 있는 고블린들은 누가 잡고?”

순간 얼굴이 확 일그러지는 중대원들.

“이런 젠장! 다시 돌아와서 고블린을 잡아야 하는 거였어?”

“좋다 말았네.”

투덜거리는 중대원들을 향해 올란도는 손뼉을 짝짝 치며 지시했다.

“자자, 시간이 없다. 모두들 빨리 짐 챙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