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4권 12화 – 이런 보물을 몰라보다니
이런 보물을 몰라보다니
“아잉~, 오랜만에 와서는 거기서 뭐하고 있어? 지명까지 하고 왔으면서…………. 빨리 이리로 와.”
여자는 간드러지는 비음으로 자신을 유혹하고 있었지만, 루크는 그쪽으로 갈 수가 없었다. 확인할 게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잠깐만 좀 기다려 봐, 이년아.”
곧이어 루크는 자신이 원하던 걸 볼 수 있었다. 앞쪽의 화려한 건물에서 새파랗게 질린 여자들이 허둥지둥 달려 나오며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본 것 이다.
“살인이다!”
“사람 살려!”
그걸 본 루크는 피식 미소 지었다. 그 꼴을 하고 들어갔으니 경비들과 충돌이 일어났을 건 뻔했고, 경비를 죽였다면 녀석은 절대로 저곳에서 살아서 나올 수 없으리라. 왜냐하면 저곳이야말로 용담호혈(龍潭虎穴), 샐러맨더 파의 본거지였으니까.
잭에게는 블러드 엑스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조직원들이 몽땅 다 밖으로 쏟아져 나가버린 후라 텅 비어 있다고 뻥을 쳤지만, 수많은 부를 긁어모 으는 금고나 다름없는 이곳을 무방비 상태로 놔둘 리가 있겠는가.
요새의 고관들은 물론이고, 밀수를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한 상인 등등…………… 그런 인물들에게 한번 찍힐 경우 재수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하는 사태까 지 갈 수도 있다. 때문에 그들이 평안하게 즐기며 돈을 펑펑 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중간보스급 한 명 죽은 것쯤은 이 곳 경비 태세에 그 어떤 영향도 줄 수가 없는 것이다.
“멍청한 녀석! 네 녀석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두목님의 애인을 건드렸을 때부터 네 녀석의 운명은 이미 결정 난 거나 다름없었어. 어쨌거 나 잘됐네.”
루크는 기분이 몹시 좋은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잭이라는 녀석의 실력에 위협을 느꼈었기 때문이다. 조직의 가장 큰 수입이 산적질에서 나오고 있었던 만큼, 싸움 실력이 좋다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뛰어난 강점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아직 어린 녀석일지라도 머지않아 자신의 윗자리로 올라갈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굉장히 불안했었다. 그런데 설마하니 녀석이 처음 부터 두목의 눈 밖에 나 버린 상태였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제법 쓸 만한 놈이었는데, 아깝게 됐군.”
“빨리 와~. 나 심심하단 말이야.”
침대에 누워있던 창녀가 루크를 채근한다. 이 일대는 적의 영역이다. 이곳에서 괜히 수상쩍은 냄새라도 풍기면, 저 여자를 통해 불리한 소문이 퍼질 우려가 있다. 그렇기에 루크는 마지못해 창문에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좀 더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음에도 불구하고…..
“알았어, 이년아.”
사실 필요한 것은 다 봤다. 녀석이 저 안에서 살아서 나올 수 있을 가능성은 만에 하나도 없었으니까.
루크는 여자 옆에 누워 그녀를 꽉 껴안으며 음탕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 예쁜이 심심했어?”
기다렸다는 듯 여자가 입을 맞춰 왔다. 요 며칠 루크를 짓누르고 있던 일이 홀가분하게 해결되었다. 이걸로 블러드 엑스 살해에 대한 저들의 조사는 멈출 것이다. 이 모든 일을 블랙울프 파에서 사주했다는 증거가 녀석의 시체 속에서 튀어나올 테니까.
‘이제 이년이랑 편안히 즐기다 돌아가면 되겠군. 그나저나 양쪽 다 최대한 많은 피해를 입어야 할 텐데 말이야…………….
그리고 이 모든 계책을 성공적으로 이끈 자신의 공로에 대해 두목이 치하해 줄 게 틀림없다. 녀석에게로 가는 돈의 일부를 중간에서 꿀꺽하긴 했지 만, 두목이 그걸 알 리 없으니까.
‘크흐흣, 지위를 올려 주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을 거 같고…………. 고생했다고 얼마나 줄까?’
하지만 그런 루크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 여인에게로 그의 온 신경이 집중되어 버렸으니까.
창녀와 농탕하게 즐긴 루크가 싸구려 창관에서 피곤한 안색으로 걸어 나온 건 새벽이 다 되어서였다. 잭에게로 갈 돈의 상당액을 빼돌린 덕에 주머 니는 아주 풍족했다. 창녀 손아귀에 은화 두 닢을 쥐여 주자 얼마나 잘해 주던지………….
뜨거웠던 밤을 생각하면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온다. 신이 나서 밖으로 나오던 루크는 꼭두새벽부터 길거리에 몰려나와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는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샐러맨더 파에서 잭이라는 녀석 하나를 해치웠을 뿐인데, 어떻게 알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 이 밖에 나와 있는 거지?
더군다나 여왕벌의 둥지 건물 앞에 서 있는 병사들은 또 뭐야! 뭔가 그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음에는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평소에는
경비병들조차 근처에는 얼씬조차 하지 않던 여왕벌의 둥지 앞에 병사들이 삼삼오오 서서 경계를 하고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것도 꼭두새벽부터. ‘뭐야, 저거. 병사들이 여기에는 왜?”
위쪽에 줄이 닿아 있는 칼릭스가 자신의 건물 앞에 병사들이 포진하고 있도록 놔둘 리가 없다. 무장한 병사들이 건물 앞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영업에 엄청난 방해를 받게 될 테니까.
루크는 건물 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 구경꾼들에게 슬그머니 다가가 물었다.
“이봐요. 여기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습니까? 저 병사들은 다 뭡니까?”
그러자 구경꾼인 듯 보이는 사내는 잔뜩 흥분해서는 열기 띤 어조로 대답해 줬다.
“칼릭스가 죽었답니다. 그 부하들과 함께 말이오.”
“에?”
어이가 없어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루크에게 사내는 흥분해서 외쳤다.
“그 망할 놈들이 몽땅 다 뒈져 버렸단 말이오!”
사내는 여왕벌의 둥지 건물 쪽으로 고개를 돌려 침을 퉤 뱉으며 소리쳤다.
“에이, 쓰레기 같은 것들! 잘 뒈져 버렸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루크가 황급히 물었다.
“그, 그게 저, 정말입니까?”
못 믿겠다는 투의 루크의 대응에 구경꾼은 흥분해서 외쳤다.
“나도 처음에는 거짓말인 줄 알았소. 하지만 사실인 걸 어쩌겠소. 어쨌거나 저런 쓰레기들이 몽땅 다 뒈져 버렸으니, 한동안은 이곳도 조용해지겠 지.”
“범인은 잡혔습니까?”
이미 살해당했을 거라는 확신을 밑바닥에 깔고 물은 것이었지만, 대답은 그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젊은 남자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단서도 없답니다. 대단하지 않소? 혼자서 저 악당들 소굴로 쳐들어가 몽땅 다 죽여 버렸다는 게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사내가 울분 어린 어조로 끼어들었다.
“그놈들의 악행을 더 이상 참지 못하신 여신께서 천사를 보내 주신 게야. 암 그렇고말고.”
“망할 새끼들! 잘 뒈졌다. 저것들 말고도 죽을 놈들이 아직 수두룩한데, 설마 이걸로 끝은 아니겠지?”
구경꾼들의 말에 루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마터면 속마음을 밖으로 떠드는 최악의 실수를 저지를 뻔했을 정도다. 어쩌면 이 근처에 샐러맨 더 파 똘마니들이 쫙 깔려 있을지도 모른다. 입조심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 빨리 두목께 보고해야겠어.’
루크는 황급히 본거지로 되돌아간다고 돌아갔지만, 두목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두목은 루크를 보자마자 으르렁거렸다.
“멍청한 새끼! 어디에 갔다가 이제야 오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두목.”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가짜 신분증을 원한다는 쓰레기 무사 놈이 칼릭스를 비롯해서 샐러맨더 지부를 단신으로 쓸어버렸다는 게 말이나 돼?”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아무래도 정통 검술 교육을 받은 녀석인 것 같습니다.”
옆에 서 있던 부두목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두목은 콧방귀를 뀌었다.
“기사학부 수련생? 흥! 나도 그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야.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기사학부에서 가르친다는 수준이라는 게 뻔한데, 혼자서 수십 명 을 쓸어버린다는 게 말이 돼? 자네가 기사학부 물을 좀 먹어봤다고 했으니 잘 알 거 아냐.”
“그건 두목 말씀이 옳으시긴 합니다만………….”
하지만 두목은 부두목의 말을 끝까지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 도중에 말을 잘랐다.
“넓은 야외라면 혹시 몰라. 이리저리 도망 다니면서 상대를 분산시켜 각개격파를 시킬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 하지만 싸움이 벌어진 곳은 지하잖아. 그것도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모르는!”
부두목은 자신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두목의 행동에 짜증이 났는지 약간 언성을 높여 말했다.
“두목, 정통 검술교육을 기사학부에서만 가르치는 건 절대 아닙니다.”
흠칫하던 두목은 잠시 후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제가 말씀드리려는 건, 녀석이 어디의 이름 높은 그래듀에이트로부터 직접 사사하고 있던 종자(從)일 수도 있다는 거였습니다.”
꿀 먹은 벙어리마냥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기는 두목. 그도 아는 것이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추론이라는 것을.
잠시 말이 없던 두목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런 놈이 왜 여기서 위조 신분증을 사겠다고 했을까? 그것도 땡전 한 푼 없이…………. 말이 안 되잖아.”
“될 수도 있지요. 혹시 모반에 연루된 것이라면?”
그렇다! 그렇다면 말이 된다.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런 엄청난 실력을 지니고 있는데다가, 세상 물정에 어두운 것까지도………….. 두목의 얼굴이 갑자기 팍 일그러졌다.
“이런 젠장! 넝쿨째 호박이 굴러들어온 것도 모르고,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두목의 말을 알아듣기 힘들었기에 루크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예? 왜 그러십니까, 두목님.”
“그 녀석이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있을 뿐, 멍충이는 아니잖아. 그런데 칼릭스를 죽이라고 해 놨으니………
“두목, 지나간 일 후회해 봐야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녀석을 어떻게 할 것인지 부터 결정을 하셔야 합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뭔가 생각이 있으니 말을 꺼낸 것일 테니, 그걸 묻는 것이다.
부두목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실수였다고 둘러대는 게 가장 좋지 않겠습니까?”
“내 생각도 그렇긴 한데, 그게 과연 먹혀들어갈까? 그게 걱정이야.”
“녀석이 이 바닥에 대해 눈곱만큼이라도 알고 있다면 통하지 않겠죠.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녀석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 점을 물고 늘어진다면 잘 하면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꽤 그럴듯하다고 생각한 두목은 루크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지시했다. 자기 부하들 중에서 말 잘하는 것 하나만 본다면 루크를 따라갈 놈이 없었으니 까.
“루크, 너만 믿겠다. 빨리 가서…..”
“루크를 보내는 것보다는 제가 가는 게 좋겠습니다.”
부두목이 자신의 말을 끊으며 끼어들었기에 두목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부두목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평소 일을 떠맡아 솔선수범하는 인물은 아니었 기에 부두목이 이런 말을 꺼낸 의도가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자네가…, 왜?”
“정통 기사수업을 받던 녀석이라면 윗사람이 직접 찾아와서 해명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녀석은 루크가 조직 내에서 어느 정도 지위를 지니고 있는지 전혀 모릅니다. 그런 만큼 평소 자신과 접촉했던 자가 또다시 찾아와 해명이랍시고 늘어놓는 것에 대해 자신 을 놀리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뭐, 사실도 그렇고요. 안 그렇습니까, 두목?”
“끄응…….”
“물론 두목께서 손수 찾아가셔서 사과를 하고 해명을 하시는 게 가장 잘 먹혀들어갈 거라는 게 제 생각이긴 합니다만, 그건 너무 위험부담이 크죠. 녀석에게 변명이 먹혀들지 않으면 두목께서는 죽으러 가시는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 될 테니까요.”
“그래서, 자네가 가겠다?”
“예. 녀석의 체면도 세워 주고, 또 두목님의 생명도 보장할 수 있는 거니까요. 제가 죽는 건 상관없습니다만,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작금의 상황에서 자칫 두목께서 돌아가시기라도 하는 날에는 조직이 산산조각 날 수도 있습니다.”
“흐으음…….”
뭔가 약간 찜찜하긴 했지만, 느낌만 가지고 부두목의 의견을 묵살하기는 힘들었다. 왜냐하면 그의 말이 충분히 일리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자칫 자 신의 목숨이 날아갈 우려가 있는 만큼, 부두목의 제안이 솔깃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두목은 어쩔 수 없이 부두목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자네 말이 옳은 듯하군. 그럼 이번 건은 자네한테 일임할 테니 잘 부탁함세.”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부두목은 루크에게로 시선을 돌려 지시했다.
“녀석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예, 부두목님.”
둘이 밖으로 나간 후, 두목은 턱을 괴고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부두목이 녀석을 잘 구슬려 주기만 한다면, 델카 요새는 물론이고 어쩌면 다란 툼 영지 전체의 뒷골목을 장악하는 것도 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흐흐흣…………. 행운의 여신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 선물해 주신 보석덩이를 몰라보고 걷어차 버릴 뻔하다니…………. 어쨌거나 부두목이 잘해 줘야 할 텐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