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4권 2화 – 대지의 기억

대지의 기억

공간이동 마법 목적지 좌표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바로 연못이나 강물 위쪽이다. 좌표 아래가 물이기에 떨어져도 안전할뿐더러, 물 위에 구조 물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속으로 공간이동 마법을 쓸 경우에는 아주 위험했다. 공간 이동할 좌표에 나뭇가지와 같은 이물질이 끼어 있었다가는 곧바로 비명횡사를 당할 수가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해밀턴 팀은, 뒤따라올 본대가 안전하게 공간 이동할 수 있도록 지상 20여 미터 위치의 좌표를 불러줬었다.

“도착 좌표 위치가 상공 20여 미터 정도라고 한다. 바로 밑에 나무가 있을 수도 있으니 착지할 때 모두들 주의하도록!”

공간이동이 끝나자마자 대원들은 모두 신경을 곤두세운 채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최대한 장비와 짐의 무게를 줄였다고는 하지만, 척살대원 개개인 이 지닌 짐의 무게만 해도 거의 20킬로그램에 육박했다.

더군다나 전사(戰士)들의 경우 빠른 추격을 위해 가벼운 가죽갑옷을 착용했는데도, 무기까지 합하면 그 또한 20여 킬로그램에 육박했다. 합계 40여 킬로그램. 이런 상태로 상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이니 자칫 실수라도 했다가는 곧바로 피떡이 될 터였다. 대원들은 떨어져 내리면서 지면을 빠르게 훑으며 차분하게 나뭇가지를 밟아 낙하 충격을 줄여나갔다.

공간이동을 하자마자 비행마법을 사용한 마법사가 우아한 모습으로 땅바닥에 착지했을 때, 이미 다른 대원들은 모두 착지를 끝낸 상태였다. 상당한 실력자들만 뽑아온 만큼, 앤트러스는 착지 때 혹 부상이라도 입은 대원은 없는지를 묻지 않았다.

“모두들 흩어져서 해밀턴이 남긴 흔적을 찾아보게.”

대원들이 흔적을 찾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지자 마법사가 앤트러스에게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잠깐.., 보고 드릴 게 있습니다.”

“뭔가?”

마법사는 손가락으로 산맥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착지하기 전에 저쪽으로 와이번이 날아가는 걸 봤습니다.”

대원들은 숲 위쪽으로 공간이동을 하자마자, 곧바로 아래로 떨어졌다. 안전하게 착지를 하기 위해 발밑 쪽으로 최대한 신경을 집중시켰기에 주변을 살필 여력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마법사의 경우 비행마법으로 낙하속도를 줄일 수 있는 만큼,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나도 내려오면서 봤다네. 순찰을 돌고 있는 거겠지.”

“그럴 가능성이 크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찜찜해서 말이죠. 작전 지역으로 투입되기 전에 이곳 분견대에서 공간이동 마법진의 사용을 불허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마법진이 수리 중이라면서 말입니다. 그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와이번을 보고 나니 왠지 마음에 걸려서요.”

앤트러스는 마법사의 말에 공감했는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 역시 지금껏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때로는 이성보다 한순 간 번뜩이는 육감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우연은 결코 반복되어 일어날 수가 없다는 것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원로원 쪽에서 이번 일을 눈치챘을 가능성은 없었다.

“일단은 좀 더 상황을 두고 보기로 하세. 물론 조심할 필요는 있겠지.”

이때 숲 속으로 흩어진 대원들 중 한 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흔적을 찾았습니다!”

앤트러스가 이끄는 특무대는 킬러 2개 팀(해밀턴 팀, 브레이 팀), 마법사 2명, 신관 1명으로 이뤄진 급조된 조직이다. 선발대로 투입된 해밀턴 팀과 마법사 1명과의 연락이 갑자기 끊긴 게 좀 찝찝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증원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곧바로 해밀턴 팀의 흔적을 쫓아갔다. 설혹 해밀턴 팀에 뭔가 변고가 생겼다 해도, 지금 있는 인원만으로도 배신자들을 처리하기에는 차고도 넘칠 정도의 전력이었으니까.

하지만 추적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해밀턴 팀이 느꼈던 것과 똑같은 의문을 떠올려야만 했다. 추적을 따돌리기 위함이라는 건 이해 해도, 길도 없는 험지를 억지로 뚫고 나간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배신자들 중에는 레인저도 한 명 있었다. 감찰부 소속 레인저들은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의 전문적인 훈련을 받는다. 산속이라 면 그곳이 어디든 맨몸뚱이로 떨어트려 놓아도 순식간에 적응하고 길을 찾는다.

단 한 줌의 흔적만으로도 적을 추격하고 격살하기 위해 특화된 직종이 레인저였고, 배신자들 중 한 명 역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그런 임무를 수행하 며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었다.

“우리가 뒤를 쫓는다는 걸 눈치라도 챈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어설픈 방식의 도주 방식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흠, 공포에 질리면 그럴 수도. 배신자의 말로가 어떻다는 건 그들도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야. 어쨌든 이렇게 헤매고 있다면 멀리 가지는 못했겠

군. 그런데 왜 해밀턴은 통신에 응답하지를 않는 거지?”

“혹시 매복공격이라도 받은 게 아닐까요?”

해밀턴 팀의 숫자가 겨우 셋밖에 되지 않다 보니 이런 우려를 표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걱정스러워 하는 표정으로 의문을 던진 대원의 말에 앤트러 스는 마법사를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아닐 걸세. 마법사의 이목을 숨기고 매복할 수 있는 건 오직 마법사뿐이니까.”

겨우 마법사 한 명이지만 그가 있음으로 인해 발휘할 수 있는 전력 차이는 엄청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연락이 되지를 않고 있으니, 그들로서는 이 해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전방에서 흔적을 따라가던 레인저가 황급히 한 손을 올려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 뒤를 따르던 대원들은 모두 황급히 자세를 낮추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 매복한 적이라도 있나 싶어서.

레인저는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오크 소굴입니다!”

레인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작은 동굴이 하나 보였다. 그리고 굴 앞쪽으로는 한눈에 봐도 꽤나 많은 오크의 발자국이 어지러이 찍혀 있었 다.

“동굴 안으로 들어갔나?”

앤트러스의 물음에 레인저는 가소롭다는 듯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공손히 대답했다.

“아마 그렇게 보이기 위해 꽤나 애를 쓴 것 같지만, 그런 얄팍한 수법에 제가 속을 리가 있겠습니까.”

레인저는 숲 한쪽을 아무런 망설임조차 없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녀석들은 저쪽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럼 오크들이 눈치채서 귀찮게 하기 전에 이곳을 빨리 벗어나자.”

숲을 가로질러 나 있는 수많은 발자국들. 그중에는 배신자들의 것도 있었고, 해밀턴 팀의 발자국도 있었다. 물론 가장 많이 찍혀 있는 것은 오크들의 발자국들. 무수한 오크들의 발자국에 가려 사람의 발자국은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아마 베테랑 레인저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녀석들이 오크 굴속으 로 들어간 줄 알고 따라 들어갔으리라.

발자국들을 이리저리 가리키며 레인저는 자신의 추론을 앤트러스에게 보고했다.

“약 20여 마리 정도의 오크들이 배신자들을 쫓아갔습니다. 그리고 해밀턴 팀이 그 뒤를 쫓아갔고요.”

오크라는 변수가 등장하긴 했지만, 그 누구도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겨우 오크 20여 마리 정도로는 해밀턴 팀은 물론이고, 배신자 들의 발걸음조차 막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발자국들을 따라간 지 대략 30여 분쯤 되었을까? 갑자기 격전이 벌어진 흔적이 나타났다.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오크들의 발자국과 검붉은 핏자국 들.

“여기서 오크들과 싸운 것 같습니다.”

“마법의 흔적입니다.”

“여기에 검이 떨어져 있습니다.”

대원들은 빠르게 주위를 살펴보며 흔적들을 찾아서 보고했다. 그런데 오크들이 땅에 떨어져 있는 검을 가져가지 않았다는 게 정말 이상했다. 자체적 으로 무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오크들이었기에 날붙이면 아무리 낡아빠진 거라도 무조건 주워 자신들의 무기로 썼으니까. 그렇다면 이곳에 서 벌어진 격전에서 승리한 것은 오크가 아니라 사람들이란 소리다.

이때, 대원들 중 하나가 시커멓게 말라붙은 핏자국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가죽갑옷을 하나 찾아냈다. 그리고 그 주위에서 부서진 굵은 뼛조각도 함 께 발견되었다. 온전한 형태라면 한눈에 알아봤겠지만, 너무 조각조각 부서져 있다 보니 한참을 살펴본 후에야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이거…, 오크 뼈가 아니라 아무래도 사람 뼈인 거 같은데요?”

다시 그 주위를 샅샅이 수색을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대원들은 갈기갈기 찢긴 옷 몇 가지와 무기, 그리고 다수의 뼛조각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옷 가지 중 하나는 마법사용 로브였기에 이 뼛조각들은 배신자들의 뒤를 쫓던 해밀턴 팀의 흔적임이 분명했다.

마법사는 대원들이 찾아온 무기들과 뼛조각들을 바라보며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 불신의 빛을 그대로 드러냈다. 군집생활을 하는 오크는 사냥 한 동물을 소굴로 가져가서 무리들과 함께 나눠 먹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곳에 뼈가 있다는 것은, 사냥 후 곧바로 잡아먹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상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해밀턴 팀이 입고 있던 갑옷과 무기들이 그냥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지 않은가. 다 썩어가는 장비조차도 탐 욕스럽게 챙겨가서 사용하는 게 오크들인데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대원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건 따로 있었다. 설혹 기습을 당했다고 해도 감찰부의 정예 암살 팀이 오크 따위에게 전멸을 당했다니. 더군다나 마법사까지 동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카렙, 오크와 비슷한 발자국 모양을 지닌 몬스터는 어떤 게 있지?”

앤트러스의 질문에 레인저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곧바로 대답했다.

“저도 믿기지 않습니다만, 일반적인 오크의 발자국에 비해 좀 크긴 해도 이 발자국의 형태는 오크의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혹시나 해서 물었던 것이었지만 단호한 레인저의 대답에 앤트러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해밀턴 팀의 장비와 무기를 쳐다봤다. 예상을 벗어난 의외 의 상황이 연속으로 이어지자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때 뭔가 고심하던 마법사가 급히 앤트러스에게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보십쇼. 어떻게 된 건지 제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마법사는 품속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주머니에서 쏟아져 나온 건 대량의 숯가루였다. 마법사가 주문을 외우면서 숯가루를 솔솔 뿌리자, 그 가 루가 이리저리 움직이다 뭉치며 거대한 마법진의 형상이 만들어져 갔다.

뭔가 굉장한 마법이라도 되는 듯 한참 동안 주문을 외우는 마법사. 주문이 완성되자마자 마법사를 중심으로 거의 10여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마법 진이 형성되며 희뿌연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마법이 발현되자, 무척 힘들었는지 지친 기색이 역력한 마법사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자, 모두 이쪽으로 모이게. 곧 마법진 위로 이곳에서 벌어졌던 전투의 영상이 떠오를 거야. 잘 봐둬.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니까.”

기회가 단 한 번뿐이라는 말에 앤트러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대지의 기억은 몇 번이라도 읽을 수 있는 마법이 아니었나?”

앤트러스의 지적에 마법사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단지 제 실력이 모자라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무리라는 뜻이었습니다.”

“쯧, 그렇게 자책할 필요 없네. 자네는 지금 충분히 제 몫을 해내고 있으니까 말이야. 자, 어서 영상을 띄우게나.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자고!”

“리멤버런스 오브 더 어스(Remembrance Of The Earth; 대지의 기억)!”

마법사가 시동어를 외치자마자 마법진의 중앙에 커다란 원반 형태의 빛무리가 생겨나더니 그 안에 세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영상의 화질이 너무 엉망이라 세 사람의 얼굴조차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지만 그들은 분명 해밀턴 팀이었다.

대원들에게 있어서 화질이 나쁜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해밀턴 팀이 이곳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죽었는지만 알 수 있어도 충분했으니까. 문제는 워 낙 단편적으로 어느 것이 먼저인지 알기 힘들 만큼 뒤죽박죽 떠오르는 짧은 영상들에 있었다. 이런 난잡한 영상만으로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예측해 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때, 사방에서 덮쳐 들어오던 시커먼 그림자들이 폭발적인 화염에 휩싸이더니 뒤로 튕겨져나가는 영상이 하나 떠올랐다. 마법사가 오크들을 향해 제대로 한 방 날린 모양이다. 커다란 원반을 가득 메울 정도의 엄청난 화염이었다. 만약 오크가 밀집해 있는 곳에 이 마법이 떨어졌다면, 그 한 방만 으로도 승패를 결정지을 치명타가 되었을 것이다.

영상만 봐도 해밀턴 팀이 오크들의 매복에 걸려 손도 못 써보고 당한 것은 아닌 듯했다. 더군다나 오크로 짐작되는 시커먼 그림자의 숫자도 그리 많 지 않았다. 영상 속에 비친 시커먼 그림자는 잘해 봐야 10여 마리 정도였으니 말이다.

“쯧, 저렇게 잘 싸웠는데도 해밀턴 팀이 전멸했다는 게 말이 되나?”

앤트러스의 혀를 차는 소리에 마법사 지크펠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저도 도저히 이해가……………”

이때, 그들의 눈에 상상하기조차 힘든 영상이 하나 보였다. 마법사 뒤쪽에 널브러져 있던 시커먼 그림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 것이다.

“저거 분명 마법을 맞고 죽었던 놈 아니었나?”

“그…, 글쎄요….?”

마법사 뒤쪽에서 일어나는 시커먼 그림자. 그건 얼마 전 영상에서 마법에 직격당해 쓰러진 놈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하며 머리를 쥐어 짜던 지크펠은 자신 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화질이 워낙에 엉망이었기에 확신에 찬 대답을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저도 뭐라 답변을 드리기가………….”

“이건 뭐 트롤도 아니고, 어떻게 오크가 저럴 수가 있는 거지? 혹시 마법 실력이 모자라면 영상조차 엉망으로 떠오르는 거 아냐?”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에 지크펠이 발끈해서 대꾸했다.

“제 실력이 모자랐다면 아예 대지의 기억 마법이 발현조차 되지 않았겠죠. 하지만 떠올랐다면 그건 제대로 마법이 발현된 겁니다. 뭐, 제 실력이 좀 허접하다 보니 있는 그대로 영상을 띄울 수밖에 없지만 능력 있는 대마법사쯤 되면 대지의 기억 마법에 왜곡된 정보를 섞어 발현시킬 수도 있겠지 요.”

지크펠의 반발에 앤트러스는 굉장히 짜증스럽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빌어먹을, 그럼 결론은 오크들에 의해 해밀턴 팀이 전멸 당했다는 말인데. 이걸 상부에 보고해 봐야 믿어 줄 것 같지도 않고 말일세.”

“어쨌든 분명한 건 오크들에 의해 해밀턴 팀이 전멸당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복수를 해야 합니다.”

이를 갈며 이런 소리를 내뱉은 건 마법사인 지크펠이었다. 그 말에 앤트러스의 뒤에 서 있던 신관 역시 살기 어린 목소리로 찬성하고 나섰다.

“맞습니다. 저 망할 것들의 씨를 말려 놔야 합니다.”

앤트러스는 씁쓸하게 웃으며 복수를 외치는 신관과 마법사의 얼굴을 슬쩍 쳐다봤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엄밀하게 말한다 면 감찰부와 킬러 조직은 물과 기름처럼 완전히 별개의 존재였다. 특히 인성(人性)이라는 부분에서는…………. 앤트러스는 문득 자신들과 같은 감찰부 특 무대원들에게 동료로서의 정이 있기는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쓴웃음을 지었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동료의 목숨까지도 주저 없이 날려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감찰부의 킬러 조직이었으니까.

앤트러스의 시선이 이번엔 암살 팀장인 브레이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브레이는 앤트러스의 내심을 읽기라도 한 듯 곧바로 신관과 마법사를 쳐다보 며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를 내팽개치고 동료들의 복수를 하러 가자, 이 말인가?”

브레이의 말에 지크펠은 재빨리 꼬리를 내렸다. 그도 아는 것이다.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에는 절대 사적인 감정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 그게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배신자들 역시 이놈의 오크들에게 잡아먹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지크펠의 말에 다른 대원들 역시 공감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까지 끼어 있는 해밀턴 팀이 전멸할 정도라면 배신자들 역시 오크들에게 죽었다고 보는 게 당연했으니 말이다.

앤트러스의 시선이 이번에는 레인저인 카렙에게로 향했다. 숲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전문가인 그에게 묻는 것이 최선이었으니까.

“카렙, 자네는 오크 떼가 배신자들을 쫓아가는 중이라고 했어. 그렇지 않나?”

“맞습니다, 대장님.”

“이곳에서 해밀턴 팀을 전멸시킨 것도 바로 그 오크들이고, 맞지?”

“예. 흔적으로 봤을 때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오크들이 배신자들을 처치하고 되돌아오는 길이었겠나? 아니면 추적을 포기하고 되돌아오는 길이었겠나?”

자신의 대답 여하에 따라 특무대원 전체의 향방이 정해질 것 같기에 카렙은 신중하게 대답했다.

“좀 이해하기 힘든 행동 몇 가지가 있긴 합니다만, 발자국과 흔적들은 오크가 분명합니다. 그리고 영상 속의 그것들이 흐릿하기는 해도 아무리 봐도 오크들이었습니다. 뭐, 평범한 오크들보다는 덩치가 약간 큰 것 같기는 했지만…………. 그렇지 않습니까?”

앤트러스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자 카렙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알기로는 오크는 한 번 정한 사냥감을 그리 쉽게 포기하는 몬스터가 아닙니다. 분명 배반자들을 먹어 치웠거나, 아니면 붙잡아 되돌아오는 길 이었을 테죠. 해밀턴 팀도 당했을 정도의 오크들인데, 배반자 둘쯤이야 뻔하지 않겠습니까.”

“흠, 그렇다면 이 오크들을 뒤쫓아 가 봐야겠군.”

앤트러스의 결정에 지크펠이 곧바로 찬성하며 나섰다.

“그게 좋겠습니다. 오크 소굴을 뒤져 보면 혹시 배신자들이 사용했던 물품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앤트러스가 오크 소굴을 먼저 토벌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은, 일단 가까웠기 때문이다. 카렙은 배신자들과의 거리가 최소한 사흘 이상 벌어져 있다고 했었다. 전속력으로 쫓아가도 따라 잡으려면 3~4일은 걸린다는 얘기다.

만약 뒤쫓아 갔는데 오크들에게 잡아먹힌 것이 맞다면 배신자들의 죽음을 확인시켜 줄 만한 증거품을 확보하기 위해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했 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오크 동굴부터 뒤지는 게 훨씬 효율적인 것은 당연한 사실. 만약 그자들이 죽었다는 증거를 동굴에서 찾아내지 못하면 그때 다시 추적을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데에는 원로원파가 개입되어 일이 복잡하게 흐르기 전에 최대한 빨리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가는 게 좋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크펠.”

“옛.”

“본부에 연락부터 넣어라. 현 상황을 설명한 뒤 배신자들의 유품을 찾기 위해 오크 소굴을 토벌할 거라고 말이야.”

지크펠은 앤트러스의 명령에 살짝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조언했다.

“본부에 알리지 않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배신자들을 추적할 생각은 하지 않고, 사사로운 복수나 한답시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오해를 살 우려 가 있습니다.”

그건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오크는 그리 대단한 몬스터가 아니었으니까. 사실, 방금 전에 지크펠이 보여줬던 영상이 아니었다면 그 또한 해밀턴 팀이 오크 따위에게 당했다는 것을 절대 믿지 않았으리라.

“그건 자네 말이 맞는 것 같군. 만에 하나 오크 소굴에 놈들의 유품이 없다면 아주 곤란해지겠지. 그럼 빨리 움직이도록 하자. 오크 소탕을 해지기 전에 끝내려면 서둘러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