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4권 6화 – 악연의 시작

악연의 시작

정신이 든 라이는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몸으로부터 전해지는 감각이 너무나도 이상했던 탓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들이 자신의 몸을 간질이고 있 는 것 같은 낯선 느낌.

“이, 이게 뭐야?”

왜 내가 발가벗고 있지? 그리고 온몸에 묻어 있는 이 검붉은 것들은 또 뭐야?

손은 물론이고 자신의 몸까지 이리저리 살펴봤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본다고 해도 없는 옷이 갑자기 생겨날 리가 없었고, 몸에 묻어 있는 시뻘건 핏 자국과 살점들이 사라질 리도 만무하다.

킁킁~.

온몸을 뒤덮고 있는 비릿한 혈향 안에는 몬스터 특유의 악취가 짙게 섞여 있었다.

“맞아!”

그제서야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시커먼 몬스터 떼가 떠올랐다. 광기에 번뜩이는 시뻘건 눈동자. 그리고 침을 질질 흘리는 주둥이 속에서 새하얗게 번쩍거리던 날카로운 송곳니들. 어떻게 그 몬스터들 속에서 살아나와 이곳에 쓰러져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던 라이의 얼굴이 갑자기 급격히 일그러졌다.

“이런 젠장! 결국 난 미끼가 되어 버려진 건가?”

대장의 명령에 따라 도끼를 들고 몬스터들을 막아섰을 때, 두려움에 잠깐 뒤를 돌아봤었다. 뒤를 받쳐 주겠다던 대장과 샘을 보며 기운을 내기 위해 서였다. 그런 라이의 두 눈에 들어온 것은 열심히 도망가고 있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었다.

순간 라이의 머릿속에서 뭔가 툭 끊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것은 짙은 절망감과 인간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대장이 웃으며 부드러운 말로 자신을 대 해 주긴 했지만 눈치 빠른 라이가 모를 리가 없었다. 자신을 동료로서가 아닌, 뭔가 이용하기 위해 어르고 뺨을 치고 있다는 것을. 그래도 대장만큼은 믿고 싶었다.

집을 떠난 뒤로 오크에게 붙잡혔을 때도, 그리고 겨우 구출을 당해 도시로 들어갔다가 노예로 팔렸을 때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생각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그건 기사였던 아버지에게 오랜 시간 배워 왔던 교육의 힘이었다. 하지만 노예 검투사가 되었다가 다시 용병단으로 팔려갔을 때는 그 생각이 많이 흔들렸었다.

거짓된 혓바닥으로 타인을 농락해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보다는 약자를 보호하며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게 뼛속까지 기사였던 아버지로부터 받은 교육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기 위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자신은 항상 이용만 당해 왔고, 결국은 쓰레기처럼 버림을 받아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부드러운 미소로 라이를 다독거려 주던 대장은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주저하지 않고 자신을 버리고 도망쳤다. 뒤를 받쳐 주 겠다며 자신을 몬스터들을 막는 미끼로 던져 놓고 말이다.

대장의 얼굴이 떠오르자 또다시 느껴지는 짙은 배신감에 라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언젠가 다시 보게 된다면 네놈의 목을 댕강 잘라 줄 테다. 이 빌어먹을 새끼!”

라이는 이제부터는 두 번 다시 어리숙하게 살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받은 대로 돌려주리라. 아니, 할 수만 있다면 남이 자신을 이용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뒤통수를 치더라도 다시는 이런 개 같은 꼴을 당하지 않으리라. 라이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를 으드득 갈며 나약했던 지난날들을 반성하던 라이는 일단 자신이 당면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왜 지금 발가벗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옷은 물론이고, 무기와 식량을 넣어 둔 짐 보따리까지…, 아무것도 없었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런 적이 몇 번 있긴 했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정신을 잃은 것 같았고, 눈을 떠보면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아무리 생각 해 봐도 그 이상은 알 수 없었다. 왜 자신이 정신을 잃는 것인지, 정신을 잃었을 때 뭘 했는지.

생각에 잠겨있던 라이는 서늘한 바람에 몸이 차가워지자 언뜻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정신을 잃었을 때 자신이 뭘 했는지 고민하고 있 을 때가 아니다. 문제는 지금 그가 가지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옷은 물론이고, 식량이 들어있던 짐 보따리까지…………. 허리에 차고 있던 물통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목이 급격하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점차 시 간이 흐를수록 그의 머릿속은 비관적인 생각으로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식량도 옷도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여기가 어딘지 전혀 모르겠고, 뱃 가죽은 등가죽에 붙을 정도고, 목구멍은 물을 달라고 아우성이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자유를 되찾았다고 좋아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잖아. 현 상황이 암울하긴 해도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결과가 어디 있 어?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이보다 어려웠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냐. 최소한 오크 굴에 갇혔을 때보다는 낫잖아. 빌어먹을!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살길을 찾아보자.’

마음을 다잡은 라이는 힘을 내어 몸을 일으켰다. 자유를 되찾았지만, 터벅터벅 내딛는 그의 발걸음은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라이로서는 다행히도 3시간 정도밖에 걷지 않았는데, 산속에서 흘러내려 오는 것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수량이 많은 하천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허 겁지겁 달려가 배가 터지도록 벌컥벌컥 들이켰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갑자기 잔뜩 마신 탓에 뒷골이 아파 왔지만, 그의 입에서는 만족스러운 한숨 이 새어 나왔다. 물이라도 잔뜩 마시고 나니 살 만했던 것이다.

배가 어느 정도 채워지자 라이는 물속으로 조심조심 걸어 들어갔다. 엄청난 한기에 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온몸에 묻은 피와 땀, 그리고 코를 찌를 것만 같은 악취…………. 이 찝찝한 느낌으로부터 해방되려면 씻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물뿐이긴 했지만, 뱃속이 든든해지니 비관적이었던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희망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하천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다 보 면 작은 개척마을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산길을 헤매는 것에 비한다면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희망을 품고 라이는 하천을 따라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열심히 걸음을 옮기고 있자니 찬물로 인해 젖었던 몸도 점차 말라갔고, 싸늘하게 식었던 몸이 조금씩 따뜻해졌다. 누군가 사람을 만나 약간의 도움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이 암울한 지옥에서 벗어나 생명을 건질 수 있으리라.

운 좋게도 그의 바램은 상상 이상으로 빨리 이루어졌다. 해가 지기도 전에, 그는 숲 저 멀리 높게 솟아올라 있는 작은 망루를 하나 발견했던 것이다.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의 모습도 어렴풋이 보였다.

“살았다!”

이 절대적인 행운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을이 하천 건너편에 있다는 사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또다시 들어가야만 한다는 생각에 벌써 부터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라이였다. 온몸에 덕지덕지 묻어 있던 피와 땀을 씻어 낸답시고 이미 한차례 들어가 봤기에 물속이 얼마나 차가운지 그의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류로 올라가면 하천의 폭이 좁은 데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어느 세월에 상류로 올라가 하천 폭이 좁은 데를 찾는다는 말인가. 그러기에는 라이는 너무나 지쳐 있었고, 굶주려 있었다. 마을이 있으니 어 쩌면 하천을 건널 수 있는 다리나 배가 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짐작이 틀려 도저히 방법이 없으면 헤엄쳐서 건너갈 생각으로 라이는 하천을 따라 부 지런히 내려갔다.

얼마 내려가지 않아 라이는 자신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느끼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천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가 하나 건설되어 있는 게 보였던 것 이다.

다리가 점차 가까워지자 라이는 과연 저 다리를 통해 건너편으로 건너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다리가 너무나도 허접스러웠기 때문이다. 통나무를 이용하여 대충 얼기설기 얽은 뼈대. 그 위에 통나무를 반 토막 내어 납작한 부분이 위쪽으로 가도록 쭉 연결해 놨다. 게다가 폭은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 빈약한 다리였다.

‘이것도 다리라고 만들어 놨나…..?’

이때, 라이는 두 눈이 휘둥그레진 상태로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온 신경을 다리에 집중하고 있다 보니 그 사람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적갈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상당히 매혹적인 미녀였다.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이리저리 훑어보고 있었지만 라이는 전혀 신 경조차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람을 만났다는 것 그 자체가 너무나도 반가웠으니까.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지금 홀딱 벗고 있다는 것조차도 인식하 지 못하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라이가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서자 여인은 후다닥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망토 자락을 옆으로 확 젖혔다. 그러자 허리에 차고 있는 60cm 정 도 길이의 단검(Shot sword)이 보였다. 언제든지 단검을 뽑아 공격하겠다는 무언의 경고인 셈이다. 망토 안에는 상당히 공을 들여 만든 것처럼 보이 는 멋진 가죽갑옷을 입고 있다. 그녀는 싸늘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넌 뭐냐? 왜 홀딱 벗고 다니는 거지?”

순간, 라이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찾아 들어가고 싶었다. 그제서야 자신이 지금 홀딱 벗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으니까. 너무나도 쪽팔렸다. 하천 을 따라 내려올 때 대충 나뭇잎이라도 따서 아랫도리를 가릴 걸 하는 후회가 치밀어 올랐지만, 이미 이런 꼴을 보인 거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게다 가 지금 이 근처에는 저 여자 혼자뿐이었으니까. 라이는 슬그머니 한 손으로 아랫도리를 가리며 여인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재수가 없다 보니 산적을 만나 몽땅 털렸습니다. 혹시, 이 근처에 마을이 있습니까?”

“강을 건너 저쪽으로 20분 정도 걸어가면 마을이 있긴 하지. 물론 대낮에 홀딱 벗고 다니는 너같이 수상쩍은 인간을 받아들여 줄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말이야.”

비비 꼬인 말투. 눈살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여인의 모습에 지금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순간 반가움에 살가 운 표정을 짓던 라이의 얼굴이 싸늘하게 바뀌었다.

“그건 네가 판단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뭐라고? 이게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너같이 허접한 놈들은 내 말 한마디면 당장 목이 잘린 시체가 되어 어디 깊은 산 속에 묻어 버릴 수도 있어!” 표독스런 말투에 라이가 잠시 대꾸를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자 여자가 또다시 소리쳤다.

“아이, 짜증나. 가죽 좀 저렴한 가격에 사겠다고 이리로 왔다가 저런 미친놈을 만나게 될 줄이야.”

신경질적으로 몸을 흔들며 소리치던 그녀는 갑자기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라이를 째려봤다.

“아니아니, 그냥 죽이는 것보다 내 기분을 상하게 한 죄로 잡아서 노예로 팔아 버릴까?”

일부러 거칠게 말해 라이의 기를 죽이려는 의도였겠지만, 오히려 노예라는 단어에 라이의 두 눈에 짙은 살기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뭐라고? 날 노예로 팔아? 이런 망할 년이!”

대장의 배신 이후 다시는 나약하게 살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을 하긴 했지만 지닌 성격이 쉽게 바뀌는 건 아니다. 그랬기에 여인의 조롱하는 듯한 말 투에도 성질이 나긴 했어도 애써 화를 참고 있었다. 게다가 상대는 눈에 띌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던가. 미녀를 보호하는 건 기사의 로망이요, 사 명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런 세뇌와도 같은 생각이 뒤흔들릴 만큼 노예라는 단어가 주는 충격이 컸다.

노예로 잡혀 겪어야 했던 처참했던 지난날들이 떠오르자 라이의 가슴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흉폭성이 대가리를 꿈틀거리며 기어 나왔다.

“네년의 그 잔망스런 주둥아리를 쫙 찢어주마. 이 망할 년!”

살심을 품은 라이가 여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여인은 라이가 자신의 멱살을 틀어쥐는 그 순간까지도 설마 맨 몸뿐인 상대가 선제공격을 가해올 것이 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듯했다.

“뭐하는 짓…, 꺅!”

여인이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채 뽑기도 전에 라이가 다리를 걸면서 뒤로 밀어 버렸다.

쿵.

뒤로 나자빠진 여인은 넘어질 때 머리가 어딘가에 부딪혔는지 잠시 꿈틀거리는 듯하더니 축 늘어져 버렸다.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게 왜 사람 성질을 자꾸 건드려.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하지?”

기절한 여인을 쳐다보던 라이는 자신을 조롱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인을 죽이긴 싫었고, 그렇다고 치밀어 오른 화를 참기도 힘들었다. 그만큼 노 예라는 말은 라이에게 있어서는 역린과도 같은 단어였던 것이다.

잠시 눈살을 찌푸리며 여인을 쳐다보던 라이는 현재 자신이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여인이 두른 후드가 달린 두툼한 망토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어차피 이대로 발가벗은 채 마을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이 정도로 여인을 용서하고 그냥 가기에는 끓어오르는 분노가 너 무 컸다. 그렇다면 자신의 화가 풀릴 정도의 적당한 대가가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라이는 일단 여인이 두른 망토를 벗겨 몸에 걸쳐 보았다. 약간 작긴 했지만 망토의 특성상 벌거벗은 몸을 가리기에는 충분했다. 그런 라이의 눈에 여 인의 허리춤에 걸려있는 작은 돈주머니가 들어왔다. 어차피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할 터다. 잠시 망설이던 라이였지만 마음을 독하 게 먹고 돈주머니를 끌러 손에 쥐었다. 하나를 빼앗나 둘을 빼앗나 어차피 빼앗은 건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결국,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쨌거 나 한 번은 거쳐야 할 과정인 셈이다.

처음이 힘들지 두 번째부터는 순조로웠다. 돈주머니까지 손에 든 라이의 두 눈이 여인의 온몸을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늘씬한 체형에 여자치고는 키가 무척이나 컸다. 가만히 보니 옷이나 가죽갑옷도 잘하면 입을 수 있을 듯했다. 꽉 끼는 옷이었다면 라이가 뺏어 입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겠지만, 다행히도 활동적인 걸 좋아해서인지 품이 넉넉하게 입고 있었다.

“꽉 끼긴 하지만 뭐, 못 입을 정도는 아니네.”

가슴 부위는 유방 덕분인지 품이 넓어 꽉 끼긴 해도 그럭저럭 입을 만했는데, 옆구리 부분은 도저히 들어가지를 않았다. 그래서 옆구리 부분을 단검 으로 쭉 찢어버린 후 입었다. 여자 옷을 입는 게 쪽팔리는 노릇이긴 했지만, 그래도 벌거벗고 다니는 것보다는 백배 낫지 않겠는가.

그리고 갑옷의 경우는 각 가죽 판을 연결하는 가죽끈 부분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것으로 간신히 해결했다. 모양은 좀 웃길지 몰라도 망토를 둘러 가 리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리라.

문제는 가죽 바지였다. 그가 입기에는 너무 작았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꽉 끼는 부분은 단검으로 쭉쭉 찢어 간신히 착용하는 데 성공했다. 엉덩이 부분이 들어갈 수 있기에 악착같이 시도했지, 그게 아니었다면 시도도 하지 않고 포기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속옷만 빼고, 가죽갑옷까지 몽땅 다 착용하는 데 성공했다. 무기도 반가웠지만, 제법 두둑한 액수가 채워져 있는 돈주머니가 제일 반가웠 다. 가죽을 사러 이 마을로 왔다는 그녀의 말이 사실인 모양이다.

“덕분에 벌거벗고 다니지 않게 되어 좋군. 그건 그렇고 이 년을 어떻게 해야 하나……………?”

물론 죽여 버리는 게 가장 깔끔한 뒤처리이긴 했지만 자신에게 조롱의 말 몇 마디 했다고 그러긴 싫었다. 사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살인이라는 걸 해보지 않은 탓에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었지만, 라이는 애써 자신에게 변명했다. 자신에게 많은 걸 베풀어준(?) 여자를 굳이 죽일 필요까지는 있겠는가 하고………….

“앞으로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려서는 안 된다는 걸 이번 기회에 잘 배웠겠지. 네가 내게 준 건 그런 교훈을 준 댓가라고 생각하라고.”

널브러져 있는 여인에게서 시선을 뗀 라이는 마을 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작은 마을이다. 저 여자가 이 마을에 가죽을 사러 왔다고 하는 걸 보면, 그녀의 옷차림을 기억하고 있는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또, 저 여자가 깨어나면 가장 먼저 뒤질 게 저 마을일 것은 뻔한 이치. 차라리 계속 하천 을 따라 내려가다 또 다른 마을을 찾는 게 현명하리라.

게다가 여인에게서 뺏은 무기도 있는 만큼, 그걸로 작은 동물이라도 사냥할 수 있으면 식량 걱정도 어느 정도는 해결될 테고.

“마을에서 식량을 좀 구입하고 가는 게 좋긴 하지만, 그러다 이 년이 강도를 당했다고 지랄발광을 하면 위험해 지겠지. 에이, 어쩔 수 없지. 안전한 게 최고니까.”

마음을 굳힌 라이는 하천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또 다른 마을이 나타나길 희망하면서……………

라이가 사라지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절해 있는 여인 옆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마를린이었다. 마를린은 속옷만 입어 거의 반나체나 다름없는 상태로 널브러져 있는 여인을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세상에 아무리 입고 있는 옷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여자 옷을 빼앗아 입을 생각을 하다니. 이런 양아치와 같은 짓으로 미뤄 보아 사내는 절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기사는 아닌 것으로 판단되었다.

만약 기사였다면 아무리 힘든 상황일지라도 절대 연약한 여성을 대상으로 이런 짓거리는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라면 여자에 게 강간당한 흔적이 없다는 것 정도…………….

여색은 별로 밝히지 않는 모양이지?’

앞으로도 계속 사내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 정체를 밝혀야 할 마를린이었기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아직까지는 따가운 햇볕에 그대 로 노출되어 있는 여인을 마법으로 들어 올려 그늘이 진 쪽으로 옮겨 줬다. 안 그러면 저 여자가 깨어날 때쯤이면 따가운 햇볕에 반쯤 익어 버릴 테니 까.

“어쨌거나 지금보다 더 조심해야겠어. 저런 꼴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시체라도 된 듯 축 늘어져 있는 앤트러스, 월터에게 끌려가다 기회를 봐서 탈출하려다가 얼마 가지도 못하고 붙잡힌 후, 자살을 시도하다 들켜 이 꼴 이 된 것이다. 월터는 앤트러스를 구출한 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감을 잡아 버렸다. 이 자는 절대로 기사단 소속 기사가 아니라는 것 을.

월터는 기절시킨 앤트러스를 짊어지고 산맥을 타고 넘어 토리아 왕국에 도착했다. 그가 코린트에서 출발하여 알카사스 왕국으로 들어갔던 길을 거 꾸로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토리아 왕국 비밀 서부 거점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일단 본국으로 보고부터 올린 뒤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고 있었다. 보고를 올린 지 채 30분도 되지 않아 본국에서 사람 하나가 급파되어 왔다. 거점과 본국 간에 공간이동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는 덕분이었다. “이쪽입니다, 마법사님.”

요원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오는 앳된 얼굴의 미모의 여인. 그녀는 어려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농염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는데, 육감적인 몸매를 과 감하게 드러내는 옷차림을 하고 있는 탓에 그녀를 안내해 들어온 요원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옆이 길게 트인 치마는 늘씬한 허벅지를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살짝살짝 드러내고 있었고, 상의는 탐스러운 가슴골 윗부분을 훤히 드러내고 있다. 농염한 몸매와 앳된 얼굴이 섞여 뭔가 퇴폐적 인 기운을 물씬 풍기는 여인이었다.

요원은 안내하면서도 은근슬쩍 그녀의 모습을 훔쳐보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런 미모의 여인을 바라보는 월터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허엇, 서, 선배님이 어떻게 이곳에…………?”

미모의 여인은 살짝 토라진 듯 대꾸했다.

“어머~, 표정이 왜 그래? 마치 못 볼 거라도 본 것처럼……..나 충격받을 거 같아.”

“아, 아닙니다, 리카 선배님. 이번 임무가 너무 힘들다 보니 저도 모르게 피곤이 쌓인 모양입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월터는 긴 의자 위에 축 늘어져 있는 앤트러스를 가리키며 얼른 화제를 돌렸다. 리카라는 여인은 앳된 얼굴과는 달리 기사단장인 까미유 드 크로데 인 공작과 함께 활동했었던 전대의 거물이었다. 그녀와 얽혀서 좋을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분위기에 휩쓸려 혹여 말실수라도 했다가는 뒷감 당도 어렵고………….

“자기 말로는 콘돌 기사단 제32정찰조 소속 기사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기사단 쪽 사람이라기보다는 정보부 쪽 인물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서 말이지요.”

“만나자마자 일 얘기부터 시작하는 거야? 자기, 너무 무~드 없다.”

“저…, 선배님. 일에 집중해 주십쇼.”

내심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힘겹게 참으며 월터는 웃는 얼굴을 유지하려 애를 썼다.

보내주려면 상대하기 편한 샤사를 보내 줄 것이지, 뭐 이런 퇴물을…………. 월터는 그녀를 이리로 보낸 크로데인 공작을 저주했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흐응~, 아주 잘 생긴 오빠네에~.”

리카는 앙증맞은 손놀림으로 앤트러스의 얼굴을 툭툭 치며 깨웠다.

“이봐, 오빠. 일어나 봐, 응?”

“끄으응…….”

“어떻게 했기에 얘가 이렇게 정신을 못 차려?”

“어쩌긴 뭘 어쨌겠습니까? 급한 김에 이걸로…………….”

말을 하며 주먹을 쥐어 보이는 월터를 보며 리카는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에휴~, 이렇게 힘 조절을 못 해서야. 여자를 다룰 때는 강약 조절을 잘해야 하는 걸 몰라? 이러니 여자가 없지.”

“아니, 이놈이 여잡니까? 그리고 이런 놈 잡아왔으면 칭찬을 해주셔야지, 뜬금없이 이러니 여자가 없다니요?”

“오호, 이젠 좀 컸다 이거지? 감히 선배의 말에 토를 달고 말이야.”

“아, 그…, 그게 아니라.”

월터는 아차 싶어 급히 말을 얼버무리며 은근슬쩍 리카의 시선을 피했다.

“호호, 우리 월터가 내 칭찬을 많이 듣고 싶었나 보네? 이리와, 내 엉덩이 토닥토닥 해줄게. 아니면 상으로 내 가슴을 만지게 해줄까?”

“아, 아니 괜찮습니다. 그딴 상 절대로 안 받을 겁니다.”

“바보, 그냥 준다고 해도 싫데.”

‘꼭 말을 해도….?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월터. 사내에게 들었을 때는 썰렁한 농담이겠지만, 이게 저런 예쁜 여자에게 들었을 때는 얘기가 다른 것이다.

잠시 귀여운 입술을 삐죽거리며 투덜거리던 리카는 다시 앤트러스를 깨웠다. 이번에는 방금 전과 달리 어깨를 잡고 과격하게 흔들어서 그런지 앤트 러스는 신음성을 흘리며 깨어났다.

“끄으응…, 여, 여기는 어디지?”

“흐응, 오빠, 깨어났구나. 나야, 나 모르겠어?”

바로 그 순간 리카는 앤트러스가 자신을 동료로 생각하게 만드는 마법을 비롯하여 상대를 매료시키는 마법까지 세 가지 마법을 거의 동시에 걸어 버 렸다. 한순간에 앤트러스의 얼굴에 마치 헤어진 애인이라도 만난 듯 화색이 떠오르는 것을 보며 월터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마도 크로데인 공작이 샤사를 보내지 않고 리카를 보낸 것도 다 그녀가 정신계 마법에 훨씬 정통해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어? 마리엔, 네가 어떻게 이곳에…..?”

“오빠가 보고 싶어서 왔지. 그런데 오빠, 어떻게 된 거야?”

정신계 마법이라고 해도 만능은 아니다. 상대가 분위기에 젖어 술술 불도록 만들어야지, 의심을 하게 만들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화를 매끄럽게 이끌어가며 필요한 부분을 캐묻는 리카의 화술은 정말이지 놀라운 수준이었다.

대화를 통해 월터가 잡아온 사내의 이름이 ‘케빈 콜린스’가 아니라 앤트러스 에이크 후작이라는 것과 알카사스 왕실 직속 감찰부의 상당한 고위직에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흐응~, 뜻밖의 거물을 잡아왔네~. 단장님이 무척 좋아하시겠어.”

리카는 무척 좋아했지만, 그 옆에서 대화를 엿듣고 있던 월터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설마하니 그때 뭔가 찝찝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키메라들을 이끌고 가서 없애 버린 그자들도 감찰부 소속일 줄이야. 더군다나 그들은 감찰부를 배신하고 국외로 탈출하고 있던 중이라고 하지 않는 가. 그야말로 포섭하기에 딱 좋은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정신계 마법을 통한 세뇌라는 위험천만한 모험을 할 필요도 없는………….

‘쩝, 아깝게 됐네. 이럴 줄 알았으면 도망치게 그냥 놔둘걸.’

“여기서 계속 심문하는 건 힘들겠고, 본부로 데려가 제대로 된 취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런데 월터는 어떻게 할 거야? 이 누나하고 함께 돌아 갈 거야?”

“아뇨,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할 일이 있어서요.”

“그래? 아깝게 됐네. 그럼 나는 이만 가 볼게.”

앤트러스의 눈 앞쪽으로 손바닥을 쓱 움직이며 뭐라고 나지막하게 주문을 중얼거리는 리카. 곧이어 앤트러스의 몸이 축 늘어진다. 잠들어 버린 것이 다.

가녀린 몸매에도 불구하고 리카는 앤트러스를 번쩍 들어 어깨에 들쳐 멨다.

“이런 힘든 일을 내가 직접 해야 하다니잉………. 월터, 정말 나 혼자 돌아가야 돼?”

마법을 쓰면 커다란 트롤조차도 번쩍번쩍 드는 여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월터였기에 그런 투정에 넘어갈 리가 없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저는 급히 할 일이 있어서요. 꼭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단장님께 직접 허가를 구해…………….”

“흥, 됐어. 나 혼자 할께.”

리카는 토라진 듯 콧방귀를 뀌며 방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런 젠장! 엄청 늙은 할망구라는 걸 내가 뻔히 알고 있는데 귀여운 척은.”

월터는 방금 전까지 앤트러스가 늘어져 있었던 긴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그건 그렇고, 이제 어떻게 한다?”

국경지대 경비가 강화되었던 건 배신자들 때문이었고, 자신이 거기에 재수 없게 걸려 그 고생을 했다는 것을 앤트러스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배신자

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뒤를 쫓던 앤트러스 일행까지 몽땅 없어져 버렸으니, 강화되었던 경비는 조만간 풀릴 것이다.

“일단은 한동안 좀 쉬면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단장의 지시를 기다리는 게 좋겠어. 한두 명 증원을 받을 수 있으면 더욱 좋고.”

***

토리아 왕국의 지부들에 건설되어 있는 공간이동 마법진 덕분에, 리카는 앤트러스라는 거물을 동반했음에도 불구하고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 에 제2근위대의 본거지 ‘붉은 궁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붉은 궁전은 말이 궁전이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약간 커다란 저택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 런데도 이 저택을 모두가 궁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곳의 주인이 까미유 드 크로데인 공작이었기 때문이다.

“전하, 월터가 커다란 공을 세웠사옵니다. 그가 잡아온 인물은 앤트러스 에이크 후작으로 놀랍게도 알카사스 왕실 직속 감찰부의 핵심 인물들 중 하 나였사옵니다.”

평소 후배들에게는 음탕스런 농담도 즐기고, 뜬금없는 육탄공격을 가해 상대가 당황하는 것을 보며 즐기던 리카였지만, 크로데인 공작 앞에서는 얌 전한 숙녀처럼 조신하게 처신했다.

그런 리카의 보고에 크로데인 공작은 반색했다.

“오, 그것참 잘 됐군. 그는 지금 어디에 있지?”

“정보부로 이송시켰사옵니다. 아무래도 그들이 그 방면의 전문가들이니까요.”

“그건 그렇지.”

“그런데 전하. 잠깐 심문하던 도중에 꽤나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아냈사옵니다.”

“그게 뭔가?”

“왕실과 원로원 간의 대립이 더욱 격화되고 있는 것 같았사옵니다. 원로원이 이번에 특별한 키메라를 대량 생산하는 데 성공한 모양이온데, 그 사실 을 철저히 숨기고 있는 걸 보면 아마도 왕실을 치는 데 쓰려고 하는 것 같사옵니다.”

리카의 말에 크로데인 공작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아무리 키메라 따위를 잘 만든다 해도 어디 기사만 하겠느냐. 누군가를 기습한다면 기사단을 동원하는 게 낫지, 키메라 따위야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다 헛거야.”

“그건 전하의 말씀이 옳사옵니다만, 서로가 백중지세인 상황이라면 세력의 균형추를 기울게 할 수도 있지 않겠사옵니까.”

“그건, 그렇겠지.”

“어쨌건, 앤트러스의 말로는 원로원 쪽에서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그러니 이 기회를 우리가 충분히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제2근위대는 제1근위대와 달리 황실 경호를 목적으로 조직된 곳이 아니라 해외 공작을 위해 조직된 단체다. 리카의 말대로라면 어쩌면 조만간 제2 근위대에 출동 명령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마도왕국을 뒤흔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면, 그걸 놓칠 리가 없었으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어쩌면 우리 제2근위대 전체가 필요할 지도………….”

지금 궁에 남아있는 오너는 자신과 부단장인 오스카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임무를 수행하러 해외에 나가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 대원들 모두 불러들 이는 게 나을까?

잠시 고심하던 크로데인 공작은 뭔가 떠올랐다는 듯 리카에게 물었다.

“월터는 어떻게 한다고 하더냐?”

“다시금 준비를 갖춰 알카사스로 들어갈 거라고 했사옵니다.”

“그렇겠지. 그 녀석은 포기할 줄 모르는 놈이니까.”

딴 녀석들이라면 몰라도 월터는 그대로 임무를 수행하게 놔두는 게 나을 듯도 싶었다. 필요하다면 합류하기 좋은 위치에 있었으니까.

“어쨌거나 수고했다. 이만 돌아가서 쉬어도 좋다.”

“예, 전하.”

고개를 숙인 뒤 방 밖으로 나가는 리카는 긴장이 풀렸는지 자신도 모르게 커다란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걸어가고 있었다. 어지간한 사내라면 그 녀의 뒷모습에 빠져 정신없이 바라보겠지만, 크로데인 공작은 달랐다. 그의 마음속은 다른 데 가 있었던 것이다.

“알카사스라………….”

크로데인 공작은 콧방귀를 뀌며 중얼거렸다.

“한번 제대로 맛을 보여줄 때가 되긴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