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5권 8화 – 돼먹지 못한 집안의 자제

돼먹지 못한 집안의 자제

마법사 파벨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추스리며 지국장 앞에 부동자세로 꼿꼿이 섰다. 지금껏 이렇게 높은 지위의 간부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그녀는 적잖이 긴장하고 있었다.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지국장님.”

집무실에 들어오기 전에 수십 번을 되뇌었던 말이었기에 첫인사는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국장은 그녀가 건넨 필사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곧바로 용건부터 꺼냈다. 상부에서 높으신 분이 오셨는데, 그분을 보좌하여 임무를 수행하고 오라는 것이었다.

“잘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네. 그런데 자네…, 외근은 이번이 처음이지?”

“옛, 지국장님.”

“그분께 절대로 실례를 범해서는 안 돼. 자칫하면 자네 목은 물론이고, 내 목까지 날아가는 수가 있으니까. 알겠나?”

눈앞의 지국장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할 지경인데, 그런 지국장의 목을 날려버릴 수 있는 높은 지위의 사람이라니…………… 파벨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지국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멍청한 인사처 새끼들! 이런 여자를 최전방 지국으로 보내면 어쩌자는 거야? 적당한 연구소에서 연구나 하는 그런 곳에 보낼

것이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가지고 파벨을 탓할 때가 아니었다. VIP를 보좌함에 있어, 자신이 지닌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잘 다독여 주는 게 우선이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없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임무에 필요한 물품들은 뮐러가 준비해 줄 걸세. 자네는 너무 긴장하지 말고, 그저 VIP께서 지시하시는 대로만 하면 돼. 자네가 지닌 능력이라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없을 테니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어. 알겠나?”

“그럼 나가 보게.”

나가라는 말에 파벨은 찍소리도 못하고 곧바로 지국장의 방에서 물러 나왔다. 방금 전에 지국장에게서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고, 그저 가슴만 벌렁거리고 있었다.

방 밖으로 나오자 뮐러라는 사내가 대기하고 있었다. 지국장의 비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나를 따라오게.”

뮐러는 그녀를 창고로 데리고 가서 여러 물품들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해줬다. 가죽옷 상하의와 그 위에 착용하는 가죽갑옷. 그리고 우아한 디자인의 가죽부츠. 허리에 차는 검대와 30cm 길이의 단검 1자루. 작은 배낭 속에는 휴대용 물통과 비상식량은 물론이고 야영에 필요한 소소한 물품들까지 들어 있었다. 아마도 첩자들에게 지급되는 야영물품 세트인 모양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한눈에 봐도 하나같이 값비싸 보이는 것들뿐이었다. 첩자에게 보급해 주는 기본 장비가 이렇게까지 고급이라는 데 파벨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뮐러는 제법 묵직한 돈주머니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건 경비일세. 혹, 필요한 물품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넉넉하게 넣어 놨으니 부족하지는 않을 게야. 지출내역은 제출하지 않아도 무방하니, 필요한 게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경비로 쓰도록 하게.”

“예, 뮐러님.”

지금껏 단 한 번도 외근을 뛰어본 적이 없었던 파벨이었기에, 외근을 나가게 되면 으레 이런 식으로 장비들을 지급받게 되는 것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외근에 필요한 물품들은 각자가 필요에 따라 외부에서 구입해서 쓴 다음, 반드시 지출 내역서를 제출하게 되어 있었다.

이곳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물품들은 예전에 한 번 이상 사용되었던 것들이었다. 더 이상 쓸 필요가 없는 물품들은 임무를 종료하면서 곧바로 처리해 버리지만, 나중에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큰 것들은 이렇게 따로 보관해 두게 된다. 파벨은 그런 물품을 지급받은 것이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지급받은 옷으로 갈아입던 파벨은 곧바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둑한 창고 안에서 얼핏 봤을 때는 상당히 고급한 질감의 가죽옷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직접 입고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쫙 달라붙어 몸의 굴곡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더군다나 가슴부분은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세상에! 이런 걸 입으라니…………….”

그 순간, 파벨은 자신의 임무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다.

『VIP를 보좌하여 임무를 수행하라.』

『절대로 실례를 해서는 안 된다.』

『잘못하면 너는 물론이고, 내 목도 날아간다.』

그런 지시를 내리면서 이런 야한 옷을 지급하다니. 그 의도가 너무나도 뻔하지 않은가. 일순 파벨의 안색은 치욕감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착각이었다. 이번 임무만 끝나면 장비를 더 이상 쓸 필요가 없는 파벨이었기에 따로 장비를 사 줄 필요를 못 느꼈고, 마침 창고에 그녀의 치수에 맞는 여자 장비가 있었기에 지급해줬던 것뿐이었다. 예전에 그 장비가 미인계를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쯤은 뮐러에게 문제될 게 없었다. 어차피 자기가 입을 것도 아니고, 파벨이 입을 것이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VIP라는 인물을 만났으니, 파벨의 VIP에 대한 첫인상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이 인간이 그렇게 지위가 높은 인물이라는 말이지? 지국장이 설설 길 만큼 그렇게 높은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는데…

이제 겨우 30대 초반, 많이 봐줘야 후반쯤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순해 보이는 인상의 사내였다. 더군다나 몸 전체를 허름한 옷가지로 감싸고 있었기에 전혀 VIP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빛이 바랜 회색빛의 두터운 로브 밑으로 낡은 가죽부츠의 코가 살짝 보인다. 그리고 장식용인지, 아니면 자신이 있어서 지니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허리에는 장검을 한 자루 차고 있다. 물론, 수수한 형태의 검이었다.

첩자들과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통신을 나눈 것은 몇 번 있었다. 수정구를 통해 봐 왔던 첩자들과 VIP가 비슷한 행색을 하고 있다는 데 파벨은 약간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새파랗게 젊은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높은 집안의 자제인 게 확실했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복색을 갖춰 입고 있는 걸 보면, 그나마 상식이라는 게 있는 인간인 모양이다. 알카사스로 침투하는 첩자가 눈에 확 띄는

호화로운 복장을 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자신의 목숨의 안전부터 걱정해야 했을 테니까. 최소한 유서는 써놓고 가지 않아도 되니, 그것만 해도 어딘가…………….

단 한 가지 옥의 티라면, 깨끗하게 다듬어져 있는 머리카락이 옷차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겠지만, 첩자들의 경우 저런 식으로 모험가 분장을 했다가는 상관에게 호되게 야단맞았으리라. 대개의 모험가들은 머리카락이 길어지면 자신이 직접 거울을 보며 가위로 잘라버렸기에 저렇게까지 단정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쪽은 파벨 요원입니다. 알카사스에 대해서 그리 무지한 건 아니니 제법 도움이 되실 겁니다.”

VIP에게 파벨을 소개한 것은 40대 후반쯤의 옆집 아저씨처럼 보이는 평범한 인상의 중년사내였다. 파벨은 그가 토리아 왕국 서부지부에 구축되어 있는 첩자망의 총책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물론, 그와는 통신용 수정구를 통해 몇 번인가 대화를 나눠봤을 뿐, 실제로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파벨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최대한 환하게 미소 지으며 VIP에게 인사를 건넸건만, 그녀의 기대와 달리 사내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그는 내키지 않는다는 듯 퉁명스런 어조로 대꾸했다.

“월터라고 한다.”

월터는 함께 가야 하는 마법사가 여자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방에서 둘이서만 생활해야 하는 만큼, 껄끄럽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근위대 동료처럼 서로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남자였으면 딱 좋겠지만, 지국장의 눈치를 보자니 찬밥 더운밥 가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닌 듯했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월터의 반응을 파벨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상대의 표정으로 봤을 때,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불만이 있음에 틀림없다. 파벨은 월터가 눈치채지 않도록 살짝 고개를 숙여, 자신이 지금 입고 있는 옷차림을 훑어보며 재차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벨은 보급받은 야하기 짝이 없는 옷을 감추기 위해 잡화점에서 검정색 로브를 사서 뒤집어썼다. 어쩌면 이게 월터라는 VIP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로브를 벗어야 하나?”

파벨이 내심 갈등하고 있을 때였다. 월터가 입을 연 것은.

“야숙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준비는 단단히 해 왔나? 아무래도 로브의 두께가 좀 얇은 거 같은데……………

“괜찮습니다, 월터님.”

파벨이 대답하자마자 서부지부장이 끼어들었다.

“바로 출발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월터님. 지금 출발하시면 내일 점심때쯤에는 국경을 넘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알카사스 쪽에는 연락을 해 놨나?”

“예,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시간에 맞춰서 마중을 나올 겁니다.”

알카사스 쪽에서 정보가 샐 것을 염두에 둔 통보였지만, 파벨은 둘이서 나누는 대화의 속뜻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내일 점심때쯤에는 알카사스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것 정도만이 그녀가 둘의 대화를 통해 알아낸 전부였다.

파벨은 자신이 맡은 바 임무를 다하려고 했다. 하지만 국경선까지 가면서 그녀가 한 일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모든 잡무 처리는 서부지부장인 상관이 재빨리 처리해 버렸기에, 그녀에게까지 기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리아 왕국 서부지부의 첩자망을 총괄 지휘하는 중책에 임명된 이유가 뭔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능력이었다.

국경 근처 여관에 도착한 후, 서부지부장이 방 2개를 달라고 하는 걸 옆에서 들으며 그녀는 마침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생겼다고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과 첫날밤을 함께하고 싶었는데…………. 싫다고 반항하면 목이 날아가려나? 인상은 그렇게 안보이던데, 엄청 여자를

밝히는 놈인가 보네.’

불안에 떨며 내심 월터에 대한 욕설을 늘어놓고 있을 때였다. 약간 뚱한 표정으로 서 있는 파벨에게 서부지부장이 말을 걸어왔다. “내근만 하다가 밖에 나오니 피곤하지?”

서부지부장은 열쇠 한 개를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

“올라가서 잠시 쉬도록 하게. 식사는 30분 후에 할 거니까, 늦지 않도록 내려오고.”

“예, 안스님.”

방으로 올라가며 파벨은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명확하게 지시를 해야 그에 따를 게 아닌가. 뭐, 어쨌거나 지금은 월터가 자신을 덮칠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시간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쉬어두는 게 좋겠다고 파벨은 생각했다.

저녁식사 후, 자신의 방으로 올라간 파벨은 겁에 질린 눈빛으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언제 월터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올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서부지부장과 한잔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취기가 오르면서 여자 생각이 나면 곧바로 달려 들어오리라.

하지만, 그녀의 우려와 달리 그날 그녀의 방을 찾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나 식사를 마친 후 또다시 길을 떠났다. 그리고 점심때쯤 되었을 때는 서부지부장이 예측한 대로 국경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월터님.”

“그래, 수고해 주게.”

“저로서는 월터님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영광입니다. 그럼, 이만…….”

서부지부장이 월터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을 보며, 파벨은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어젯밤 자신을 부르지 않은 것은, 서부지부장이라는 존재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단둘이 되는 오늘부터는 거리낌 없이 자신을 덮쳐 오지 않을까?

‘젠장, 능력이 모자라다 보니 별 거지같은 짓을 다 해야 하네………………

파벨은 자신이 배부른 투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운이 좋아서 지금까지는 통신실에서만 일하고 있긴 했지만, 지국에 소속된 첩자들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지 그녀가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몸 정도 바치는 것쯤은 희생 축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걸 잘 알면서도 입맛이 씁쓸한 이유는 그들은 국가를 위해서 한 희생이었고, 자신은 높으신 분의 돼먹지 못한 자제의 한순간 쾌락을 위해서 그 짓을 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파벨의 기대(?)와는 달리 월터는 그녀의 몸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다. 서부지부장과 헤어진 후, 파벨은 한동안 바짝 긴장한 채 월터의 눈치만 살폈다. 언제 월터가 자신에게 ‘신호’를 보내 성적 욕구를 채우려고 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는 눈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월터는 자신에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었다. 상대를 자세히 관찰하고 있다 보니, 한 가지 확실하게 와 닿는 게 있었다.

월터가 자신을 굉장히 껄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이

첫 대면에서 받았던 그 느낌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를 싫어하는 게 분명해. 왜?’

밀폐된 통신실에서 수면부족으로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길 정도로 혹사당하고 있다 보니, 운동은커녕 햇볕을 쬐며 산책 한 번 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몸매 관리를 제대로 못한 건 자신도 인정하지만, 그녀에게는 마법사만이 할 수 있는 비장의 수법이 있었다. 일반인과는 골격부터가 다른 것이다. 화장만 쪼~금 더 찐하게 하면 완벽에 가깝게 변신이 가능했다. 그런 자신을 싫어할 수 있는 사내가 감히 존재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때, 그녀의 뇌리에 번쩍하고 떠오르는 게 있었다. 여자 마법사의 현란한 미모에 전혀 속아 넘어가지 않는 족속이 있다는 것을. 그것은 바로 남자 마법사였다. 그들은 그 사기적인 수법의 비밀을 아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 사용할 줄도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아카데미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여마법사들을 만나봤을 테니 미모에 대한 내성 또한 최고 등급에 다다른다.

파벨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터져 올라오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에휴~ 마법사인가? 하기야, 그럼 모든 게 설명이 되지. 허리에 차고 있는 저 검도 일부러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차고 있는 걸 거야. 맞아. 그러니까 검만 차고 있지, 가죽갑옷조차 입고 있지 않잖아. 그럼 이게 뭐야……….?”

생각하기 싫어도 파벨의 머리는 빠른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월터가 마법사라면, 그것도 상부에서 파견되어 나온 마법사라면 자신보다 훨씬 더 실력이 좋을 것은 뻔한 사실. 그런 그가 왜 자신을 데리고 알카사스의 국경을 넘으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도 통신실에서 잡무나 맡고 있던 삼류 마법사를

이렇게 되면 그 용도는 뻔해진다. 어딘가의 희생양으로 써먹을 작정이리라. 안 좋은 방향으로만 자꾸 생각이 흘러가자 파벨은 애써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각의 방향을 바꾸려 했다.

‘설마~, 기분 탓이겠지. 저 사람이 마법사라는 건 순전히 내 짐작일 뿐이니……………

하지만 그녀의 망상은 더욱더 안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가고 있었다. 이건 썩 좋지 않은 현상이라는 걸 파벨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확인해 보면 모든 게 명확히 정리되겠지만, 문제는 월터가 마법사라면 마법을 써서 탐색하려는 순간, 역으로 포착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될까?

이도저도 못하고 월터의 눈치만 살피며 그의 뒤를 따라가고만 있을 때였다.

“국경을 넘은 후부터는 위험한 인물은 없는지 주위를 지속적으로 탐색해서 확인하도록 해라. 특히, 서부지부장 주변의 인물들에 대한 탐색을 게을리하지 말도록.”

“명심하겠습니다.”

월터의 허락이 떨어진 만큼, 파벨은 주저하지 않고 곧장 탐지마법을 펼쳤다. 뷰 마나 포스와 뷰 매직 포스. 그걸 통해 주변을 훑어보는 한편, 그녀는 월터의 모습도 살짝 훔쳐봤다. 그런데 아무런 변화도 느낄 수가 없었다. 대탐지마법으로 몸을 감싸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월터가 마법사임을 확인하는 순간, 파벨은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성 상납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건 좋았지만, 이젠 미끼로 내던져져 생명의 위험을 겪어야 할 차례였으니까.

‘젠장!! 역시 내 생각이 맞았잖아.’

실력 있는 마법사라 할지라도 대탐지마법을 하루 종일 실행시켜 몸을 감추고 있는 건 가능해도, 탐지마법을 하루 종일 실행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탐지하려는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더욱 많은 마나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아마 월터가 자신에게까지 탐지마법을 사용하라고 한 건 그 때문일 거라고 파벨은 짐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