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6권 11화 – 아레스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아레스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페가수스 용병단은 길가에 길게 늘어선 수많은 주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3만 명에 달하는 동료 용병들과 함께 보무도 당당하게 링카 성 중심로를 행진하는 영광을 누렸다.
링카 변경백은 주민들에게 이번 원정을 적극적으로 선전했다.
링카 성에는 사막 부족과 협력하고 있는 주민들 말고도, 사막 부족이 파견한 첩자들이 수두룩하게 깔려 있었다.
결국 이런 요식 행위는 그들에게 지금부터 사막 부족을 정벌할 것임을 대놓고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서쪽 관문인 링카 성문을 벗어나면 광대한 사막이 눈 앞에 펼쳐진다.
성벽까지는 마법진에 의해 기온이 조절된다. 그 때문에 성문을 벗어남과 동시에 주변 온도는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급상승하기에 적응하기가 아주 힘들다.
더군다나 용병 모두가 전투를 대비한 갑주와 각종 무기들, 그리고 식량과 물까지 잔뜩 짊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선선한 날씨에 움직인다고 해도 무거운 짐 때문에 땀이 날 지경인데,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뜨거운 공기가 호흡기 속으로 들어오니 죽을 지경인 것이다.
“조금만 참아라. 곧 있으면 해가 질 테니까.”
수풀이 없는 탓에 태양의 열기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막의 특성상, 뜨거운 태양 빛을 피해 밤에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3만의 용병부대도 어둠이 채 깔리기도 전에 링카 성을 출발했던 것이다.
사막 부족들이 기거하는 대부분의 성읍은 성읍이라 부르기조차 민망할 정도의 소규모였다.
주위에서 물과 풀을 구하기 힘들기에 그건 당연한 결과였다.
대다수의 성읍은 10~20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몬스터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마을 주위를 진흙 벽돌로 두껍게 원형으로 빙 둘러 세워놓은 정도가 다였다.
좀 더 튼튼하게 석벽을 쌓으면 좋겠지만 주변에 돌을 구할 데도 없었고, 유목하는 특성상 이런 성읍을 네다섯 개 지어놓고 근처에 풀이 다 떨어질 때쯤 되면 다른 성읍으로 옮겨가는 식의 생활을 했기에 공들여 제대로 된 성벽을 건설한다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무역로를 중심으로 점차 도시로 발달하고 있는 성읍들은 달랐다. 성읍의 크기도 클뿐더러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구도 많았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의 성읍은 과거 「알카사스 부족연합 시절에 건설된 것들로, 진흙 벽돌이 아닌 진짜 돌로 쌓은 튼튼한 성벽으로 성읍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성을 방비하기 위한 잘 훈련된 병사들까지 그 수가 결코 적지 않았다.
출병한 다음 날 아침, 밤새 행군한 부하들에게 휴식을 취하도록 한 용병대 지휘관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어떻게 진격로를 짤지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
링카 변경백 쪽에서 원하는 건 사막 부족이 크게 겁먹고 동맹 도시들에 구원을 청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막 성읍들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기에 3만 명의 용병들이 함께 움직이며 공격하는 건 너무나도 비효율적이었다. 차라리 진격로를 여러 갈래로 분산시켜 많은 성읍들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그리고 그런 방식이 사막 부족들에게도 더 커다란 위협과 공포심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에 지휘관들 모두 의견을 같이했다.
큰 다툼 없이 이렇게 쉽게 모두의 의견이 하나로 모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번 작전에 한해 허용된 약탈 때문이었다. 작은 성읍들이야 함락을 해봤자 3만 명이 다 같이 나눠 먹을 게 나오지 않을 건 불 보듯 뻔했다.
그럴 바에야 각 용병대가 자신들이 먹을 건 각자 알아서 찾아 먹는 게 낫지 않겠냐는 게 이번 회의의 골자였다.
그걸 그럴듯하게 명분으로 내세운 게 진격로를 분산해 사막 부족에게 더 큰 공포와 위협을 안겨주자는 것이다.
각 용병대의 지휘관들은 지도를 앞에 놓고 각자가 공격할 성읍들부터 정했다.
변경백 쪽에서는 저항하지 않고 항복한 성읍에 대한 약탈은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즉, 자신들에게 협조적인 부족은 놔두겠다는 거다.
알카사스에 가까운 성읍들은 오랜 세월 알카사스에 굴종해 왔었기에 곧장 성문을 열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전면적인 전투는 알카사스에서 최소한 사흘 거리 이상 떨어진 성읍들부터 벌어지게 되리라.
“최종 목표는 베이라 성으로 합시다.”
베이라 성은 무역로 상에 위치한 성읍들 중에서 가장 강대한 성읍이었다.
6만에 달하는 주민이 거주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무역로에 위치한 성읍들 중에서 성곽의 보수 상태가 가장 훌륭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게다가 베이라 성의 부족민들이 일치단결해서 성을 이용해 결사항전이라도 한다면 출병한 전체 용병단이 모두 달라붙어 공성전을 벌여도 함락 가망성은 희박했다.
“각자 자신들이 맡은 성읍을 확실히 처리한 후, 약속된 날짜에 베이라 성 인근에 집결한 후 일제 공격을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게 가장 현실적이겠지요. 문제는 과연 날짜를 맞출 수가 있느냐 하는 거겠지만.”
“용병대마다 최소한 두세 개 이상의 성을 함락해야 할 텐데, 집결 날짜는 언제로 하는 게 좋겠소?”
지휘관들은 하루라도 더 여유를 얻기 위해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을 때, 홉킨스가 손을 쓱 들며 제안했다.
“이렇게 사막 부족에게 여유를 줘서는 답이 없다고 생각하오. 특히 베이라 성은 적이 방심하고 있을 때, 기습하는 것 외에는 함락이 불가능할 테니까.”
“하지만 뒤쪽에 있는 다른 성읍들을 그냥 놔두고 사막 깊숙이 들어간다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요. 분명 놈들은 우리의 후방을 적은 병력으로 치고 빠지는 게릴라 작전으로 휘저으며 괴롭힐 게 불 보듯 뻔하지 않소? 기본적인 보급로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않고 전투에 들어갔다가 자칫 보급로가 끊어지면 본대는 그야말로 말라죽을 수밖에 없잖소!”
지휘관 중 한 명이 탁자를 거칠게 내리치며 분명한 반대 의사를 밝히자 홉킨스는 피식 웃으며 또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베이라 성을 우리 용병단에서 단독으로 맡아도 되겠소? 차례로 성을 함락시키며 공격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베이라 놈들이 아직 여유가 있다고 방심하고 있을 때 기습하는 것만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고 나는 생각하오.”
지휘관들은 홉킨스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것에는 거부감을 표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선뜻 홉킨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베이라 성이 전체 용병단이 다 달려들어도 함락하기 힘들다는 건 분명하지만, 혹시라도 홉킨스의 작전대로 기습이 성공해 혼자서 부유한 베이라를 독식할지도 모른다는 질투심에 찬성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혹시 다른 용병단에서 이 임무를 맡으시겠다면 기꺼이 양보해 드릴 생각도 있소. 우리야 안전하게 수익을 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 말이오. 그럴 생각이 있으신 용병단은 손을 들어 주시길 바라오.”
하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자신의 부하들만 거느리고 사막 속 깊은 곳까지 강행군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재수가 없어서 도중에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전멸을 면키 힘들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기습이라고는 하지만 소수의 병력만으로 베이라 같은 거대한 성을 자력으로만 점령해야 한다는 것도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아무도 하지 않겠다면 내가 하겠소.”
지휘관들은 홉킨스의 말에 입을 꾹 다문 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홉킨스는 좌중을 쭉 둘러본 후 힘차게 외쳤다.
“아레스(Ares)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빌겠소.”
홉킨스의 선창에 모든 지휘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따라 외쳤다.
“아레스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작전대로 페가수스 용병단은 홀로 떨어져 사막 위를 빠른 속도로 진격 중이었다.
진격로 제일 선두에 4개 중대(1개 대대)를 50미터 간격으로 횡으로 배치했다. 그리고 각 중대별로 돌아가며 1개 소대씩 50미터 앞쪽에서 선행하도록 하였다.
제일 앞쪽에서 이동하는 선두 소대는 자신들의 이동로 앞 20미터 앞에 세 명의 미끼를 배치해서 전진시켰다.
세 명이라면 숨어있던 몬스터도 부담 없이 달려 나올 정도의 만만한 숫자다.
그렇게 달려 나온 몬스터는 뒤따라오고 있는 일곱 명의 병사들과 힘을 합쳐 토벌한다.
소대 규모로 토벌이 힘들 정도의 강력한 몬스터라면 그 뒤쪽에서 오고 있는 40여 명의 병사들이 달려와 함께 처리해 버리면 된다.
왜 이렇게까지 위험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가 하면, 주변에 포착되는 사람의 숫자가 너무 많으면 몬스터가 모래 속 깊은 곳으로 몸을 감춰버리기 때문이다.
사막 몬스터들은 치열한 약육강식을 통해 성장한 놈들이다. 그들은 사막에서 사냥감을 찾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다 모처럼 엄청난 먹잇감을 찾아낸 경우,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한 놈을 잡아먹었다가는 나머지 다른 먹이들이 산산이 흩어져 도망쳐 버린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슬며시 몸을 감추고 숨었다가 사냥감들의 후방에서 조용히 뒤따르며 한 마리씩 사냥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후방에서 뒤따라오는 수송부대가 몬스터의 공격에 노출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 때문에 전투 경험이 풍부한 전위부대에서 몬스터들을 꾀어내 모두 처리해 버리는 게 최선이었다.
이 모든 것이 사막 몬스터의 습성을 이용한 사냥법인 것이다.
아르티어스는 호위대와 함께 카일 대대장의 34대대에 배속되었다.
현재는 38대대가 최선두에서 이동하고 있었지만 다음은 브로마네스가 소속되어 있는 35대대가 앞으로 나갈 것이고, 그 다음은 34대대가 그 역할을 대신할 터였다.
선두에서 이동하는 것이 가장 피로도가 높기에 그렇게 번갈아 가며 순환 배치하는 것이다.
아르티어스는 대대 내에서도 가장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카일 대대장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의 임무는 대대장의 통신기였다.
해질녘 저 멀리 지평선에 아스라이 성 같은 게 보였다. 시뻘겋게 타오르는 석양을 배경으로 솟아있는 작은 성은 뭐라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조장, 저건 뭔가? 저기 보이는 저 성 말일세.”
노마법사는 지금껏 사막에는 와본 적이 없었던 모양인지 뭔가 보일 때마다 신기하다는 듯 주위의 호위들에게 질문을 던져댔다.
나이를 먹어 폭삭 늙은 외모와는 달리, 제자인 디겔보다도 훨씬 더 왕성한 호기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수많은 질문 세례에 귀찮을 법도 했지만, 질문을 받은 호위들은 성실히 대답을 해줬다. 자신들이 존경하는 마법사이자 상관의 스승이었으니까.
“저건 붉은전갈 용병단이 자리 잡은 이래 전갈성이라고 불리고 있는 성새도시입니다. 무역로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기에 이렇듯
볼 수 있게 된 겁니다.”
호위 조장의 설명을 들은 노마법사가 감탄사를 연신 터트렸다.
“허어, 붉은전갈 용병단의 규모가 아주 대단한 모양이구먼. 저런 커다란 성을 이런 불모의 대지에 건설한 걸 보면 말일세.”
조장이 막 대답을 하려고 할 때, 갑자기 아르티어스가 끼어들었다.
“아, 스승님께서는 이쪽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용병단 따위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저런 성을 건설할 수 있겠습니까. 알카사스 정규군에서 사용하다 전략적 필요성이 없어져서 버려진 걸 차지하고 앉아있는 거죠.”
아르티어스는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어갔지만, 속사정은 꽤나 복잡했다.
저런 성채들은 공간이동 마법의 사용이 가능했을 때는 알카사스 정규군에서 계속 사용했었다.
공간이동 마법을 통해 적군이 언제, 어떻게 기습을 해올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공간이동 마법의 사용이 갑자기 불가능해졌다.
이때부터는 알카사스를 침공하려면 사막을 뚫고 행군해 들어오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대규모 병력이 이동하는 건 사막 위를 정기적으로 순찰하는 비룡정찰대의 눈을 절대 벗어날 수가 없다.
그리고 일반적인 보병들의 공격이라고 해봐야 타이탄을 보유한 기사단만으로 간단히 처리해 버릴 수 있기에 더 이상 성채에 대규모 병력을 주둔시켜둘 필요성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아르티어스가 왜 이런 설명을 건너뛰었느냐 하면 지금 자신들이 가고 있는 곳이 공간이동 마법이 안 되는 즉, 유사시 탈출이 불가능한 지역이라는 걸 노마법사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르티어스의 눈으로 봤을 때, 노마법사는 고블린 사냥터를 쫓아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과로사했어야 했는데, 운 좋게도 빠져나가 목숨을 연장하고 있는 운 좋은 호비트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 강한 운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지 지켜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웠다.
‘제자들의 운을 몽땅 다 빨아먹었나? 운 좋은 영감 같으니라고……
아르티어스가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던 노마법사는 감탄했다. 석양을 배경으로 하는 성이 너무나도 멋있었으니까. “용병단이 저런 멋진 성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구먼.”
“운이 좋았을 뿐이죠. 영주 쪽에서 저들이 이용하는 걸 그냥 묵인해 버렸거든요. 성 이용료 한 푼 받지 않고 말이죠. 영주 쪽도 다 생각이 있으니 모른 체하고 있는 겁니다. 붉은전갈 용병단이 저 성에 눌러앉아 있는 한, 자신들의 보급로 확보를 위해서라도 주변 몬스터들을 알아서 소탕할 게 아니겠습니까.”
“허~, 그렇구먼.”
대화를 하는 동안 서서히 해가 지평선 밑으로 내려갔고, 주위는 어둠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세상이 짙은 어둠으로 물든 후에야 노마법사의 입이 닫혔다. 사막이 주는 색다른 볼거리가 이제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사막은 밤이 되어서도 아름다웠다. 희미한 달빛과 별빛이긴 했지만 주위를 살펴보는 데는 그리 큰 문제가 없었다.
모두들 별빛과 달빛에만 의지해서 걸어갈 뿐, 그 누구도 횃불을 밝히려고 하지 않았다.
사막 부족을 기습하러 가는 만큼,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 불빛을 보고 몬스터들이 반응을 한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애써 진형을 짜서, 최선두 열이 미끼가 되어 행군하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갑자기 저 앞쪽 먼 곳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나긴 했지만, 뒤쪽으로 구원 요청을 위한 연락병이 달려오지 않는 걸 보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닌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티어스 일행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몬스터가 한 마리 출현했던 것이다.
사막에 서식하는 몬스터는 물과 식량을 구하기 힘들다는 한계로 인해 대규모 집단을 이루는 게 불가능했다.
각 개체가 제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한두 마리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제대로 된 능력을 과시하기도 전에 토벌당하기에 딱 좋았다.
좀 더 앞으로 나가자 용병 하나가 한 손에는 커다란 검을, 또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뱀 대가리를 높이 들어 올린 채 광소하고 있는 게
보였다.
어둠 속이라 다른 사람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드래곤인 아르티어스의 눈에는 희미하게나마 보였다.
“오오, 중대장님, 대단하십니다!”
“최곱니다!”
“으하하핫! 봤느냐! 이따위 것은 내 한칼감도 안 되지!”
부하들에 둘러싸여 칭송을 받고 잔뜩 흥분해 있는 사내.
밤이라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르티어스의 예민한 청각에는 그들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목소리만으로도 아르티어스는 중대장이라 불린 용병이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브로마네스였다.
“으이그~, 저렇게 나대고 싶을까?”
아르티어스의 투덜거림에 호위 조장이 힐끗 그를 쳐다봤지만, 더 이상의 말은 없었기에 다시 앞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눈에는 아직 저 앞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두에서 전진하는 대열과의 거리가 200여 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그들은 곧이어 방금 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가 있었다.
길이 2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엄청난 뱀이 대가리가 잘린 채 축 늘어져 있었던 것이다.
“바질리스크다!”
바질리스크는 사막을 대표하는 몬스터 중 하나로 길쭉한 유선형 몸통 덕분에 그 커다란 덩치를 모래 속에 완벽하게 숨길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완전 무방비 상태에서 기습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언제나 먹이 부족에 시달리는 사막 몬스터들은 최전방에서 걸어오는 미끼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병사 셋이 시야에 걸리자마자 먹잇감으로 착각하고 곧바로 달려들었던 모양이다.
물론 바질리스크가 용병들의 적수가 될 수는 없었지만, 300여 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구원중대가 채 뒤따라오기도 전에 이미 목이 날아가 버린 건 분명 의외의 일이었다.
“바질리스크가 이렇게 빨리 제압 가능한 몬스터였나?”
“그럴 리가 있나. 그렉 크레스터 중대장이 제압한 거래.”
“그렉 크레스터 중대장 몰라?”
“필마단기로 뚫고 들어가 붉은전갈 연대장의 목을 날려버린 그 중대장?”
“맞아. 크레스터 중대장이 저렇게 해놨다. 바질리스크가 모습을 보이자마자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더니 단칼에 목을
잘라버렸다는구만.”
바질리스크가 성채가 되면 20미터쯤 자라 낙타조차 한입에 삼킬 정도로 엄청난 굵기가 된다.
도검으로도 상처를 내기 힘들 정도로 질긴 가죽도 문제였지만, 비늘과 뼈대는 강철처럼 단단했다.
그런 바질리스크를 혼자서 단칼에 토막을 내버리다니! 모두 경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봐, 거기서 잡담들 하지 말고 빨리 해체부터 해!”
대대장의 명령에 중대원들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바질리스크를 향해 달려갔다.
“이야~! 오늘 식사는 바질리스크 고기다!”
“시작부터 운이 좋군. 사막에 들어선 첫날에 바질리스크를 잡다니!”
“오늘 배 터지게 한 번 먹어보자!”
생긴 것과 달리 바질리크스는 아주 맛있는 고급 식재료였다. 거기에다가 덩치가 엄청난 만큼 고기의 양도 아주 많았다. 용병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르티어스의 표정은 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뭔가 찜찜했던 것이다.
그가 예전에 유희를 했었던 경험에 비춰본다면, 바질리스크 같은 거물급 몬스터는 이렇게 사막 변두리까지 나오지 않는다. 그건 뭔가 사막 중심부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저런 거물조차 자신의 터전에서 쫓겨나 이런 변두리까지 밀려올 정도로.
아르티어스는 승리의 열기가 식을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브로마네스에게 살며시 통신을 보냈다.
곧이어 브로마네스의 유쾌한 음성이 들려왔다.
「흐흐, 내가 바질리스크 목 벤 거 봤냐?」
“내가 티 나는 행동 하지 말라고 했지?”
「뭐, 이 정도 가지고 티가 나겠냐? 그건 그렇고, 잔소리나 하려고 통신을 보낸 건가, 친구?」
“네가 준비해뒀다는 그래듀에이트는 지금 어디에 있냐?”
아르티어스의 질문에 브로마네스는 내심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놈이 아르티어스를 만나게 되면, 자신의 장난질이 바로 들통날 게 뻔했으니까.
그것만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만약에 그러다 녀석에게 자신이 아르티어스가 아니라 브로마네스였다는 게 알려진다면, 자칫 실버 패거리에게 자신의 이름이 전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걸 잘 알기에 브로마네스는 아르티어스가 녀석을 만나고 싶다는 걸 이리저리 핑계를 둘러대며 만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걱정 마. 적당한 거리를 두고, 우리를 뒤따라오라고 지시해 뒀으니까.」
“따라오라고 시켰다고?”
「그래. 그나저나 지금 난 바빠서 이만 끊어야 되겠어. 나중에 또 통화하자고.
“이봐…, 그러지 말고………….”
통신이 갑자기 끊겨버렸다.
“이런 망할 녀석!”
브로마네스가 일방적으로 통신을 끊어버리자, 성질난 아르티어스는 주변을 색적 마법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살펴봤다.
하지만 이렇다 할 만한 기척은 발견되지 않았다. 상당히 조심성이 많은 놈인 모양이다.
좀 더 강력한 마법을 사용한다면 못 알아낼 건 아니지만, 아르티어스는 그만뒀다.
그러다 자칫 실버 드래곤 패거리 쪽에서 눈치를 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 멍청한 놈은 아닌 것 같아서 안심이 되긴 하는군. 하지만 저 멍청이가 추진해 놓은 일이라서 당최 믿음이 가야 말이지. 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