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7권 6화 – 제가 삼류마법사다 보니

제가 삼류마법사다 보니

“끄응…, 이거 정말 난감하군. 방법이 전혀 없다면 어쩔 수 없이 말을 포기하고…….”

이때, 아르티어스의 뒤쪽에 서 있던 늙은 마법사가 다급히 소리쳤다.

리오 프라이스가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방법이 없으면 식수를 포기하고 이대로 떠날 것만 같았다. 그러면 얼마나 험난한 고난이 자신의 앞에 닥쳐올지는 불 보듯 뻔한 것이다.

마실 물이 없어 갈증에 시달리는 건 둘째 치고, 말이 죽어버린다면 그다음부터는 저 열사의 사막을 걸어서 건너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용병단원이 아님에도 염치 불고하고 불쑥 끼어들었다.

“방법이 있소.”

“저 사람은 누구지……?”

홉킨스의 시선을 받은 펜달은 곧바로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아주 빨랐다.

“디겔의 스승이야. 부대가 출동하기 전에 단장께서 데려가도 좋다고 허락하셨지.”

펜달의 말에 홉킨스는 가볍게 예를 갖추며 입을 열었다.

“아, 랄프 디겔의 스승이셨군요. 부대원이 워낙 많다 보니 합류하셨던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참, 방금 전에 방법이 있다고 하셨는데, 허언은 아니시겠죠?” 홉킨스의 물음에 프라이스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물론일세. 내 용병단을 따라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지금껏 모험을 꿈꾸며 여러 지식들을 섭렵했었지. 언데드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건 전투신관 이겠지만, 신관이 없을 때는 화염마법으로 태워버리면 간단히 해결된다네.”

그 말에 홉킨스는 반색하며 황급히 되물었다.

“화염마법이라……? 스승께서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물론 불가능했다. 작은 성이긴 했지만, 저 안에 있는 모든 언데드를 화염마법으로 불사르는 건 그의 능력 밖이었다.

“나 혼자서는 힘들겠지만 이곳의 모든 마법사가 힘을 합친다면 가능할 거 같은데……?”

그러면서 그는 힐끗 아르티어스를 바라봤다. 그의 능력이 출중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어느 정도 감추고 있다는 것도 도와주지? 하지 만 간절한 그의 바람과 달리 아르티어스는 슬그머니 시선을 다른 쪽으로 옮겨버린다. 그럼에도 리오 프라이스는 계속 아르티어스를 쳐다봤다. 주위의 그 누구라도 뭔가 있을 거라는 의구심이 생기도록.

당연히 그 광경을 홉킨스도 봤다. 스승의 저 애절한 눈길이 뭘 뜻하는 것일까? 통신기 역할로 온 디겔이지만 기막힌 마법 응용으로 성 점령 시 큰 활약을 하지 않았 던가. 제자를 잘 아는 건 그 스승일 테니 애절한 저 눈빛으로 미루어 추측해 본다면?

“디겔, 할 수 있겠나?”

하지만 아르티어스가 채 답하기도 전에 펜달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그는 당치도 않다는 듯 딱 잘라 외쳤다.

“물론 불가능하지! 나도 할 수 없는 걸 저따위 삼류 마법사가 할 수 있을 리가 있겠나? 연대 내의 모든 마법사가 달라붙어 화염구를 퍼부어도 저렇게 많은 언데드 들을 불사르는 건 불가능해!”

펜달의 말은 물론 맞다. 그리고 아르티어스는 그걸 핑계로 귀찮은 일에서 벗어나 슬그머니 빠져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허접한 실력의 마법사놈이 자신에게 삼류 마법사 운운해대자 살짝 기분이 나쁜 것이다. 아주 몹시…….

아르티어스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 증폭마법진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겠습니다만, 펜달 님의 말마따나 제가 삼류·마법사라 제 능력으로는 이렇게 많은 인원과 함께 마법 진을 가동하는 건 처음이라서요. 혹시 마법진의 중심에 펜달 님이 서주신다면, 미력하나마 마법진을 그릴 수는 있습니다.”

“흠, 마법진을 그릴 수는 있는데 그걸 가동시키지 못한다니, 그럴 수도 있나?”

홉킨스의 의문 섞인 시선에 아르티어스는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그리는 것과 가동시키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죠. 뭐라 할까……, 효율의 문제랄까요? 저 같은 경우, 평소에는 대자연의 마나를 끌어당기는 흡수 마법진의 도 움을 받습니다만…..

아르티어스는 짐짓 주변을 쓱 훑어보는 척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아마 이런 날씨라면, 저 혼자서도 넉넉잡고 2주일 정도면 저 안의 언데드들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그렇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홉킨스도 용병단 내에서 떠도는 얘기를 들은 게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디겔이라는 신입 마법사가 대지 마법진을 구동하여 땅속에 숨은 고블린들을 압살시키

고 있다고 말이다. 그런 걸 보면 마법진을 그리는 실력은 상당한 수준인 모양이다.

몸에 지닌 마력이 뒷받침하지 못해 연구소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용병단으로 흘러들어 온 것이라고 그는 이해했다.

저 스승이라는 사람 역시 평생을 연구소에서 연구만을 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마법진에 대한 지식은 저 스승에게서 전수받았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러니 자 신의 제자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것일 테고.

고개를 끄덕이던 홉킨스는 펜달에게로 시선을 돌려 침중한 음성으로 물었다.

“마법진을 제어할 수 있는 건 자네뿐인 듯하군. 어때, 해주겠나?”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거절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마법진의 중심에 위치한 마법사가 가장 큰 부하를 받게 된다. 당연히 몸에 극심한 압박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걸 펜달은 뻔히 알고 있었지만, 자신 말고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수가 없다 보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 것이다.

마법진을 그린다는 디겔에게 그 역할을 떠넘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좀 전에 삼류마법사라고 매도한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이다 보니 그것도 여의치가 않 았다.

그로서는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것이다. 펜달은 억지로 미소 지으며 홉킨스에게 대답했다. 하지만 미소와는 달리 그의 표정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 있 었다.

“누구의 부탁인데 거절할 수 있겠나. 어차피 그걸 할 수 있을 만한 고위 마법사라곤 나밖에 없는 듯하니 어쩔 수 없지.”

썩은 미소로 승낙하는 펜달의 말에 홉킨스는 피식 웃으며 디겔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펜달과 같이 일한 게 한두 해가 아니다 보니, 어떤 상황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고생이야 펜달이 하는 거지 자신은 명령만 내리면 되니 짐짓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디겔, 지금 당장 시작해 주게.”

그리고 주변에 서 있던 대대장들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자네들은 디겔이 저 안쪽에 마법진을 구축할 수 있도록 최대한 보호하도록.”

그 말에 아르티어스는 인상을 찡그리며 급하게 입을 열었다.

“성안에 마법진을 그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이곳에서 그려도 충분하죠.”

“호오, 그럼 더 좋지. 어서 시작하게!”

모두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아르티어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을 때, 아르티어스는 천천히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먼저 그리기 시작한 것은 흡수 마법진이었다.

이걸 통해서 전체 마법에 필요한 마나를 공급받게 되기에 가장 중요한 마법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르티어스는 숯가루를 뿌려가며 마법진을 천천히 하지만 조심스럽게 그려 나갔다.

마법진으로 고블린 킬러라는 명성을 떨치고 있는 디겔이었기에 주위의 마법사들까지 몰려들어 흥미로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 달리 그가 그린 마법진은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었기에 모두의 얼굴에 실망감이 떠올랐다.

흡수 마법진을 먼저 완성한 후 아르티어스는 주위에 서 있는 마법사들에게 말했다.

“자, 모두 마법진 위에 서 주십시오. 펜달 님은 정 중앙에 서 주시구요. 마나를 원활히 흐르도록 컨트롤하셔야 하는 만큼 좀 부하가 클 겁니다.”

“이보게, 중앙에서 컨트롤하는 건 마법진이 모두 완성된 다음이 아닌가?”

“물론 그렇습니다만, 제가 실력이 미천한 삼류·마법·사다 보니 선배님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전체 마법진을 완성할 수 있거든요. 그 부분은 죄송하게 생각합니 Ct.”

아르티어스의 이죽거림에도 펜달은 반박하기 힘들었다.

“쩝,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물론 이건 새빨간 거짓이었다.

겉으로 봤을 때는 단순한 4사이클급 마법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법진 위에 올라가 있는 모든 생명체의 기력(氣力)을 쫙쫙 빨아들이는 무시무시한 마법진이 었다.

실상 펜달의 컨트롤 따위는 애당초 필요도 없었다. 그저 펜달을 엿 먹일 생각으로 만든 마법진일 뿐인 것이다.

그런 아르티어스의 음흉한 속셈도 모른 채 모두들 마법진 위로 올라섰다.

“스승님께서도 좀 도와주시죠. 사실, 이 모든 게 스승님께서 원하셔서 시작된 게 아니겠습니까.”

마법사는 모두 다 동참하는 상황이었기에 스승도 거부하지 못하고 마법진 위로 올라섰다.

이제 제물(?)이 마련되었으니 아르티어스는 두 번째 마법진의 발동을 시작했다. 흡수 마법진에서 빨아들인 기력을 원동력으로 성 전체를 둘러싼 마법진이 빠른 속 도로 그려진다. 지금까지 흘러온 상황을 모른 채 봤다면, 마법진이 스스로 그려지는 것 같이 보일 정도다. 성벽 테두리를 따라 흰빛의 테두리가 완성된다 싶은 순간, 그곳에서부터 시작해 성 안쪽으로 빛이 번져 나가며 문양이 그려진 뒤 순식간에 성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자, 이제 발동하겠습니다. 펜달 님, 부탁드립니다.”

순간 마법사들이 서 있던 마법진이 밝은 빛으로 휩싸이고, 모두들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변했다. 주위에서 보고 있는 지휘부 간부들은 마법사들이 마법진을 제어하느라 힘들어서 그런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모든 기력을 쪽쪽 빨리고 있었기에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던 것이다.

다음 순간, 모두의 시선은 마법사들에게서 벗어나 성 안쪽으로 향했다. 성벽 위쪽으로 엄청난 불기둥이 치솟는 게 보였기에 자연히 그쪽으로 시선이 돌아갈 수밖 에 없었던 것이다.

“우와! 이게 무슨 일이야!?”

“와!! 저것 봐!”

엄청난 불기둥은 치솟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겨우 10초 정도 유지되었을까? 불기둥이 사라지자 성 안쪽에는 잔불만이 남아 불타고 있을 뿐, 마법은 종 료된 후였다. 그리고 마법진 위에 서 있던 마법사들은 모두 탈진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들이 성 안쪽에 사용된 마법이 뭔지 살펴볼 시간적 여유 따위는 처음부 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설마…, 모두 죽은 건가?”

경악한 홉킨스의 외침에 아르티어스는 별것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탈진해서 잠시 쓰러진 것일 뿐, 좀 있으면 정신을 차리실 겁니다.”

“그건 다행이군.”

“실패하지 않고 제대로 컨트롤 해내신 걸 보면 펜달 님의 능력은 과연 출중하시군요.”

나중에 펜달이 정신을 차리더라도 자신에게 따질 수가 없도록 미리 밑밥을 깔아 두는 것이다.

마법사들이 괜찮다는 말을 듣자 홉킨스는 아르티어스에게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우물은 괜찮을까?”

“그건 직접 확인해 봐야 확실하게 알 수 있겠습니다. 일단 지하 1미터 정도까지 깨끗하게 태웠으니 시독의 대부분은 소멸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뭐, 지하 수원 전체가 오염되어 있다면 그건 어쩔 수 없고요. 그렇게까지 오염되었다면 고위 신관이 정화술을 펼치지 않는 한 이 일대 지하수의 사용은 불가능합니다.”

잠시 후, 퍼 올린 우물물은 곧바로 아르티어스에게 전달되었다.

아르티어스는 품속에서 작은 약병들이 잔뜩 들어있는 상자를 꺼내, 그중 하나를 골랐다. 물론 병 속에 들어있는 액체는 시독 검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었 지만, 옆에서 구경하고 있는 용병들이 그걸 알 리가 없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병사들의 반응을 즐기기 위해 이런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르티어스는 조심스럽게 병을 기울여 한 방울을 물과 섞고 그 반응을 살펴보았다. 잠시 숨이 멎을 것만 같은 긴장감이 흐른 뒤 아르티어스가 짐짓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다행히 시독에 오염되지 않았습니다. 안심하고 식수로 사용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아르티어스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와! 이제야 갈증을 면하게 생겼네.”

“빌어먹을, 내 다시는 사막 쪽으로는 오줌도 안 싼다.”

홉킨스는 아르티어스의 두 손을 덥석 잡으며 얼굴 하나 가득 미소를 지었다.

“고맙네. 정말 수고했어. 자네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도록 하게.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홉킨스는 몰려든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빨리 최대한 물을 보충하고, 여기 쓰러진 마법사들을 모두 안전한 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

아직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탈진해 쓰러져 있는 마법사들을 병사들이 한 명씩 들어 옮겼다.

사실, 푹 쉬어야 할 건 아르티어스가 아닌 다른 마법사들이었지만 병사들이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다. 그저 마법진을 발동하느라 무지 힘들었나 할 뿐이다. 저렇게 온몸의 기력을 쪽쪽 빨렸으니 최소한 10일은 정양해야 이전의 몸으로 회복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았다. 미지의 적으로부터 하루빨리 이 열사의 사막에서 도주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병사들에게 짐짝처럼 들려가는 마법사들을 쳐다보며 아르티어스는 후련하다는 듯 이죽거렸다.

“감히 나를 귀찮게 하다니, 가소로운 것들. 유희를 하는 중이니 이 정도로 끝내준 줄 알아라.”

하지만 아르티어스의 통쾌하기 그지없던 기분이 우중충하게 변하는데 걸린 시간은 얼마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제가…, 통신을 담당해야 한다고요?”

떨떠름한 목소리로 묻는 아르티어스에게 홉킨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런 막중한 임무를 자네와 같은 신참 마법사에게 시켜야 한다는 게 나도 내키지 않지만 달리 방법이 없구먼. 지금 연대 내에서 앓아눕지 않은 마법사는 자네뿐 이니 말이야.”

통신마법을 할 줄 모른다고 할 수도 없다. 통신마법을 할 줄 모르는 마법사는 없다. 게다가 자신조차 통신기 역할로 여기 따라온 게 아니던가. 만약 초장거리 통신

이라면 능력 부족이라며 둘러댈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링카 영지까지는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다.

신참 마법사를 연대급 통신마법에 참여시키지 않는 건 기밀유지를 위해서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닌 것이다. 그 때문에 중대급을 전전하고 있던 아르티어스에게 이 런 임무를 맡길 일이 없었지만, 그가 저지른 못된 장난 탓에 연대 내의 모든 마법사들이 전원 뻗어버린 게 문제였다.

“이게 링카 성에 개설된 통신 채널일세. 정기 연락시간이 다 됐으니 지금 바로 접속해 보도록 하게.”

아르티어스로서는 짜증 나는 노릇이긴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채널만 알고 있다면 통신을 연결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지만 귀찮았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법사 한두 명 정도는 놔두는 거였는데…..

“여기는 홉킨스 연대입니다.”

「열사의 사막에서 수고가 많소. 귀 연대의 놀라운 분투에 상부에서도 아주 만족하고 계시오. 후퇴하는 데 어려움은 없소?」

“아직까지는 큰 문제없이 후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후퇴 도중, 에 그러니까…….”

아르티어스는 책자를 뒤져 언데드와 접전을 펼쳤던 작은 토성의 좌표를 찾아 불러주며 그곳에서 언데드와 전투를 벌였다는 보고를 했다.

아르티어스의 보고에 본부 쪽 마법사는 믿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언데드라니, 정확하오?」

“예. 성 내 언데드는 모두 소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만, 그 외에 다른 언데드 세력이 있는지 전혀 정보가 없어서 사전 대처가 불가능합니다. 아시다시피 현 상황에 서는 보급을 받을 수가 없잖습니까. 그런데 후퇴 경로에 언데드로 인한 주변 수원 오염이 있다면 문제가 아주 큽니다. 혹시 그쪽에 입수된 정보는 없습니까?” 잠시 생각하던 본부 쪽 마법사가 뭔가 떠오른다는 듯 대답했다.

「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의심해 볼 만한 게 있소. 도시국가 연합을 치기 위해 출동했던 6개 사단이 행방불명됐다는 소식은 들었을 거요.」

“예.”

「그들의 흔적조차 찾기 힘들었는데 귀하의 말을 듣고 보니, 아마 전멸 후 모두 언데드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겠구려. 이 점 상부에 보고하도록 하겠소.」 지금까지 사막에서 언데드가 발견된 적이 없었기에 모두 언데드는 상상조차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정식으로 언데드 발견을 보고하자 또 다른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6만에 달하는 병사들이 전멸당한 후 언데드가 되어 숨어있다면 못 찾는 게 당연했으니까.

여기까지 말하던 마법사는 아르티어스 뒤쪽에서 홉킨스가 허둥지둥 지도를 꺼내 살펴보고 있자 피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병사들이 사라진 곳과 귀 연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만큼 그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거요. 참, 희소식이 하나 있소. 콘도르 기사단이 어제 링카 성에 도착했소.」

“콘도르 기사단이요?”

「이번 6개 사단 행방불명에 대한 조사 및 그 후속 조치가 주 임무겠지만, 용병단의 후퇴를 지원해 달라는 우리 쪽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소. 조만간 그쪽으로도 지원이 갈 거라고 생각되는 바이오.」

그까짓 날파리 같은 놈들이 오든 말든 상관없었지만, 주위의 이목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정말 아주 좋은 소식이군요.”

「그쪽 지역에 언데드가 출현했다고 하니 앞으로는 가급적 야간행군은 자제하고 낮에만 움직이도록 하시오.」

“낮에만 말입니까?”

「내가 알기로는 언데드는 밤을 좋아하오. 야간에 습격당한다면 피해가 가중될 가능성이 크지 않겠소?」

“조언 감사합니다.”

「귀 연대의 무사 귀환을 빌겠소.」

왕실 기사단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소식에 모두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자, 빨리 준비해서 여기를 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