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7권 7화 – 그렇게 나대지 말라고 했거늘

그렇게 나대지 말라고 했거늘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여는 데 성공한 리오 프라이스는 힘겹게 주변을 둘러보며 신음성을 흘렸다.

온몸이 흔들흔들 흔들린다. 자신의 몸이 흔들리는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누워있는 바닥이 흔들리고 있었다.

“으윽…, 여기는…, 어디지?”

꼭 집어서 어디 아픈 데는 없었지만, 몸 전체가 천근만근인 듯 축 처져 꼼짝도 할 수가 없다. 혹여 병이라도 걸린 게 아닌가 싶어 자신의 얼굴에 손을 올려보는 프라 이스. 역시 얼굴이 뜨겁다. 하지만 그 뜨거운 열기는 비단 얼굴뿐만이 아니라 몸 주변 전체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리니 포장마차의 뒷부분으로 주변 경치가 엿보인다. 그는 포장마차에 타고 있었던 것이다. 바닥이 흔들리는 건 포장마차가 움직이며 발생된 진동 탓이었다.

그리고 자신 옆에 마치 죽은 듯 축 늘어져 있는 마법사 둘이 시야에 들어왔다. 자신과 달리 두 마법사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알 수가 없군.”

지금껏 단 한 번도 기력을 강탈당해 본 적이 없는 프라이스였기에 이렇듯 축 처진 몸 상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때, 마차 바깥에서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더 쉬십시오, 스승님. 지금 무리하게 움직이시면 영영 자리에서 못 일어나는 수가 있으니까요.”

분명 자신이 억지를 부려 제자로 만든 사내의 목소리였다.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싶어 자리에 다시 누운 프라이스였지만, 생각할수록 방금 전에 말한 사내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록 마차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였지만 사내의 음색이 비비 꼬여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프라이스가 아니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인간군상들을 겪어봤는데…….

“뭔가 심기가 불편한 듯하군. 무슨 일이 있었나?”

“아뇨.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부대는 현재 물을 잔뜩 보충한 후 다시 링카 성을 향해 이동 중입니다.”

물을 잔뜩 보충했다는 말에 프라이스의 뇌리에는 마법진 위에 올라섰던 일이 떠올랐다.

맞다. 내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했던 게 바로 그 마법진에 올라서는 것이었지.

“마법은 성공했나?”

“물론이죠. 스승님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겨우 식수를 보충할 수 있었죠.”

그 말에 프라이스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잠시 어이없다는 듯 마차 밖을 쳐다보며 아르티어스에게 물었다.

“성공적으로 마법이 성공했고, 식수까지 보충했는데 왜 그리 심기가 불편하지? 뭔가 다른 일이 있었나?”

“쯧, 부대 내의 모든 마법사들이 앓아누운 탓에 제가 연대장의 무전기 역할을 해야 하니 그렇죠.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명 정도는 빼두는 거였는데…….”

아르티어스의 대답에 일순 프라이스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설마, 자네는 우리가 이렇게 될 걸 미리 알고 있었단 말인가?”

자신의 의문에 아르티어스는 당황했는지 황급히 변명했다.

“아, 그건 아닙니다. 펜달이 마법진 제어에 실패해서 이렇게 된 것뿐이죠. 설마 제가 이렇게 될지 알았겠습니까?”

프라이스가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비록 허접한 마법사라지만 평생을 마법과 함께 살아온 프라이스다. 아르티어스의 변명이 뭔가 어색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투가 마치 추궁하듯 날카롭게 변했다.

“마법은 성공했다면서? 제어에 실패했는데도 제대로 된 위력을 발현하는 마법이 있다는 얘기는 내 평생 들어보지 못했는데?”

“아, 그 얘기는 그만둡시다. 그나마 마법이 성공했으니 스승님께서 이렇게 마차에 편안하게 누워서 가실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십쇼. 그럼 나는 이만 바빠 서…….”

프라이스의 의문에 아르티어스는 더 이상 대화할 마음이 사라졌다는 듯 퉁명스레 대꾸하며 떠나버렸다.

“끄응,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마법진 자체가 악의에 가득 찬 것이었음을 전혀 알지 못했기에 프라이스로서는 방금 전의 아르티어스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뭐, ‘제자’인 그의 성격이 썩 좋지 않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고.

아르티어스가 사라지고 난 뒤 포장마차 뒤편으로 용병들이 부지런히 행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들 안색이 좋다. 어쨌거나 물을 확보하는 데는 성공한 모양이다.

이대로 무사히 링카 영지까지 퇴각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끄응…, 책과 현실이 이리도 다를 줄이야. 이런 짓으로 밥을 먹고 산다니 난 죽어도 못 할 짓이군. 모험가들의 사망률이 높은 것도 다 이유가 있었어. 이렇게 개고 생할 줄 알았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텐데…….?

후회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상태다. 도망을 가려 해도 사막 위에서 뭘 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몸까지 이런 상황이니 더욱 절망적이었다.

여기저기 쑤셔오는 통증을 애써 참으며 프라이스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그저 한숨만 푹푹 내쉴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심란함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갈이다!”

“호위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

“지원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모두 자리를 지키고 연대장님의 지시를 기다려!”

다급한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자 뭔가 일이 생겼음을 짐작한 프라이스는 힘겹게 손을 뻗어 포장마차의 아래쪽 천을 옆으로 밀쳤다.

마차 옆에 긴장한 표정의 용병들이 서 있는 것이 보이자, 프라이스는 힘을 내어 그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

“아, 별거 아닙니다. 마법사님께서는 걱정마시고 푹 쉬시도록 하십쇼. 다른 분들은 아직 일어나지도 못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다급한 목소리가 계속 들리는 걸로 보아 그게 아닌 거 같은데……. 제발 숨기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주게.”

“사막전갈이 나타났습니다.”

“사막전갈?”

“예, 집채만 한 크기의 거대한 전갈이죠.”

“끄응…, 몸 상태가 이렇게나 원통할 수가…….”

사막전갈은 즐겨 보았던 영웅담에 자주 등장하는 초대형 몬스터들 중 하나였다. 그게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몬스터였을 줄이야.

만약 자신의 몸이 이런 상태만 아니었다면 당장 밖으로 달려 나가 영웅담에서 읽었던 것과 실물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가 있었을 텐데…… 자신의 이런 몸 상태가 억울했던 프라이스는 마차 밖 용병에게 불쑥 물었다. 자신이 기절한 지 얼마나 지났는지 알아야 언제쯤 일어날 수 있을지 예측을 할 수 있 지 않겠는가.

“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지?”

“벌써 이틀이나 됐습니다.”

이틀이나 몸져누워있었다는 그 말에 프라이스는 충격을 받았다.

분명 마법은 성공했다. 그런데 왜 마법진에 참여했던 마법사들이 모두 뻗어서 이틀씩이나 정신을 잃고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프라이스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선행하고 있던 정찰대가 기습 공격을 받았다.

가장 앞서가고 있던 정찰대원이 갑작스럽게 튀어 오른 모래 먼지 속으로 말과 함께 그 모습을 감춘 것이다.

자욱한 먼지 탓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뭔가의 공격을 받은 것만은 확실했다.

나머지 정찰대원 모두 황급히 뒤로 물러서며 방어태세를 갖췄다.

잠시 후, 자욱한 먼지가 걷히며 모래 속에서 튀어나와 있는 거대한 집게발을 볼 수 있었다.

기습을 가해 온 것은 사막 깊은 곳에서 서식한다고 알려져 있는 거대전갈이었다.

거대한 덩치만큼이나 두껍고 단단한 금속성 외피로 인해 화살 따위는 전혀 먹혀들지 않는 괴물이었다. 거대한 집게발도 무시무시했지만, 꼬리 끝에 달려 있는 독 침은 더욱 공포스러웠다. 보검 못지않은 날카로운 금속질의 독침은 어지간한 두께의 강철판쯤은 가뿐히 뚫어버릴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대사막에 서식한다는 거대전갈이 크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저렇게까지 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홉킨스다.

강철보다도 단단한 거대전갈의 뼈대가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홉킨스는 저 거대전갈을 사냥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알에서 깬 나약하고 작은 유충이 저렇게 거대한 성체가 되려면 숱한 경험을 쌓아야만 한다.

당연히 저놈 또한 강력한 적과 싸워 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경험으로 이미 체득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쪽에서 굳이 공격하지 않는다면 기습으로 획득한 먹잇감에 만족하며 뒤로 물러설 것이라고 홉킨스는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링카의 본부 쪽 마법사의 조언을 받아들여 주간행군을 하다가 거대전갈과 조우했다는 점이다.

만약 야간행군 중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면 그 피해는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났을 것이다.

“전방의 미하엘에게 전해라. 전투를 중지하고 놈과 최대한 거리를 벌리라고 해!”

최전선에 위치한 35대대장 미하엘에게 급히 전령을 보내 지시를 내렸지만 상황은 홉킨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홉킨스의 명령이 채 최전선에까지 전달되기도 전에 이미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버린 것이다.

거대전갈이 적극적으로 공격을 가해왔기에 벌어진 결과였다.

건들지 않으면 뒤로 물러설 거라는 홉킨스의 기대와는 달리 거대전갈은 굉장히 호전적이었다.

너무 굶주린 탓에 이성이 마비된 건가?

“젠장, 재수가 없으려니 잘못 걸렸군.”

대형 몬스터……, 그것도 거대전갈같이 두터운 외갑을 두른 종류는 어지간한 무기로는 상대가 아예 불가능했다.

마법사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르티어스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뻗어버린 상태다.

성문을 박살내는 데 쓰고 남은 웜 킬러가 2개 있긴 했지만 그건 웜처럼 강력한 턱과 이빨로 공격하는 몬스터들에게나 탁월한 위력을 자랑했다. 거대전갈처럼 집게발과 꼬리로 공격하는 종류에는 제대로 된 효과를 보기 힘들다. 웜 킬러를 몬스터의 몸속에 집어넣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거대전갈이 저렇게 미친놈처럼 달려든다면 아무 피해 없이 병사들을 뒤로 물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최전선에서 거대전갈을 저지하고 있는 미하엘과 그 부하들에게는 미안한 노릇이지만, 그들을 미끼로 던져주고 그 틈에 다른 부하들을 이끌고 전력으로 도망치는 게 피해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함께 오래 했던 미하엘과 병사들이 마음에 걸렸다.

“젠장, 어떻게 해야 하지?”

홉킨스가 답답한 마음에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을 때, 말에 박차를 가하며 엄청난 기세로 거대전갈에게 돌진하는 병사가 하나 보였다.

“저런 미친 새끼!”

될 수 있으면 싸우지 말고 뒤로 물러서라는 명령까지 내렸는데, 아예 거대전갈의 화를 돋우는 행동을 하는 미친놈이 있다니!

지켜보던 홉킨스의 분통이 터질 만도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홉킨스의, 아니 전 병사들의 두 눈을 의심케 하는 놀라운 장면이 전개되었다.

돌진해 들어간 그렉 크레스터 중대장은 적 연대장의 목을 베었던 것이 결코 운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돌진하는 말의 안장 위로 올라서더니 용맹스레 거대전갈을 향해 뛰어올랐다.

맨몸도 아니고 육중한 갑옷까지 걸친 상태에서 저런 놀라운 움직임을 보일 수가 있다는 것에 모두가 경악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거대전갈의 등껍질에 자신의 장검을 힘차게 박아넣었다.

놀랍게도 그의 장검은 거대전갈의 몸에 박히자마자 폭발을 일으켰다.

마법무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리 드문 것은 아니었기에 병사들은 폭발보다도 그의 놀라운 힘과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우와아아아! 대단하다!”

“안 돼!!”

하지만 단 한 사람, 그 모습을 보며 괴성을 지른 사람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아르티어스 어르신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거대전갈이 언데드라는 걸 알아봤다. 저렇게 큰 언데드 거대전갈이라면 일반 병사들로는 당해낼 방법이 없다. 그냥 이대로 내빼는 것만이 살길인 것이다.

그런데 홀로 뛰어들어 마법검 따위로 거대전갈을 사냥한다? 그것도 언데드를?

그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고, 조금이나마 언데드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브로마네스의 정체를 의심하게 될 게 불 보듯 뻔했다.

“이런 멍청한 놈! 내 그렇게 나대지 말라고 했거늘…….”

하지만 아르티어스 어르신의 우려와 달리 그 일격은 거대전갈에게 별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자신을 향해 거대전갈의 꼬리가 직격해 오는 것을 본 브로마네스는 즉시 모래 위로 뛰어내려 재빨리 뒤로 도망쳤다. 그리고 주변에 멈춰 서 있던 자신의 말로 달려 가 올라탄 뒤 박차를 가하며 도망쳤다.

그 뒤를 집게를 쫙 벌린 채 맹렬하게 쫓기 시작한 거대전갈.

박진감 넘치는 술래잡기가 시작된 것이다.

브로마네스가 거대전갈의 시선을 끌어준 덕분에 35대대장 미하엘은 그 틈을 이용해 병사들을 뒤로 물리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안전권으로 도망친 병사들은 자신들을 위해 거대전갈의 목표가 되어 사력을 다해 도망치고 있는 영웅을 향해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모두 브로마네스 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환호성 지르는 건 나중에 하고 일단 방어태세부터 제대로 갖춰!”

“방패 든 병사는 선두로!!”

“누구 활 가진 사람들이 있으면 지원해줘!”

“저놈에게 활은 아예 안 통합니다. 화살 낭비예요.”

“이런 젠장..”

동료 용병들이 이 죽음의 도주극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거대전갈 따위에 생명의 위협을 느낄 리 없는 브로마네스는 달리는 말 위에서 딴 생각 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는 검을 원망스레 바라봤다. 유희를 한답시고 너무 허접한 놈을 들고나온 게 문제였다.

물론 호비트들을 상대하는 데는 이 정도 검이면 충분했지만, 저런 초대형 언데드를 사냥하기에는 절대적으로 화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일반 용병으로 꾸 민 자신이 마법을 써 유희를 망치기도 싫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르티어스처럼 마법사로 유희를 시작하는 거였는데…….

이때 브로마네스의 뇌리에 기발한 계책이 하나 떠올랐다.

성문을 박살내는 데 썼던 그 아이템, 그걸 전갈의 등껍질 구멍에 집어넣으면 된다.

방금 전의 일격으로 인해 전갈의 등껍질에는 주먹 하나는 넉넉히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뚫린 상태였다.

회복력에 의해 그 구멍은 점차 작아지고 있긴 했지만, 어쨌거나 자신의 검으로 커다란 구멍을 뚫을 수 있다는 건 확인이 된 셈이다.

물론, 웜 킬러의 화력으로는 언데드인 거대전갈을 없앨 수 없다는 건 안다. 일전에 사용하면서 어느 정도 위력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럴듯하게 보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부족한 화력은 자신의 마법으로 보충하면 되니까.

흐흐흐 , 어떤 놈에게 말해야 그 아이템을 쓸 수 있을까??

연대장이든 자신의 직속상관인 미하엘이든 건의한다면 분명 들어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의 뒤를 맹렬하게 뒤쫓고 있는 거대전갈을 어떻게 떼어놓느냐 하는 것이다.

저놈의 거대전갈을 달고 웜 킬러를 받기 위해 동료들에게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랬다가는 그야말로 대참사가 벌어질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 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그가 도움을 청할 사람…, 아니 드래곤이라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어이, 아르티어스! 아르티어스, 듣고 있나?”

그러자 곧이어 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고 있다. 왜 그래?」

“좀 도와주게, 친구.”

「이 새끼는 지가 궁할 때만 친구래.」

다급한 자신과 달리 아르티어스의 목소리에는 귀찮음이 잔뜩 묻어있는 걸 느낀 브로마네스는 분노가 치솟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곤란한 처지에 빠진 건 자신이었으니까.

“친구, 홉킨스에게 웜 킬러를 한 개만 나한테 주라고 전해줄 수 없겠나? 그럼 내가 저놈을 작살낼 테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멍청한 놈. 너와는 모르는 사이로 되어있는데, 그렇게 하면 수상쩍어 보이잖아!」

“그럼, 저 전갈과의 거리라도 좀 벌려줘. 이래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그걸 아는 놈이 왜 나대? 나대기는…….

“미치겠다.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을, 유희 중이라 어떻게 할 방도가 없으니. 그래도 자네는 마법사로 위장하고 있잖은가. 어떻게 방법이 없겠나? 친구.”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냐? 겨우 3내지 4싸이클급 마법으로 저런 덩치를…, 그것도 언데드를 쓰러뜨린다는 건 언어도단이야. 분명히 눈치챌걸?」

“자네가 저놈을 쓰러뜨리라는 말이 아니라, 잠시만 미끼 역할을 해달라는 말이야. 놈이 자네를 쫓는 동안, 나는 웜 킬러라는 아이템을 가져올 테니까 말이야.” 「에휴……. 좋아, 속는 셈 치고 기회를 주지. 두 번 다시 이러지 마. 알겠어?」

“부탁함세, 친구. 이것도 다 우리의 즐거운 유희를 위한 게 아니겠나. 히히힛.”

하급 마법사라고 해도 비행마법을 잠시 사용하는 거라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비행마법을 사용해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 나가는 아르티어스. 그런 그를 모두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용병단 내에서 저런 광경은 처음 봤으니까.

높은 상공에서 마법으로 공격을 퍼붓는 게 가장 효율적이겠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급 마법사가 두 가지 마법을 동시에 사용한다는 것 자 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아르티어스는 땅바닥에 발을 붙인 후에야 공격마법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수많은 용병이 손에 땀을 쥐며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니 절대로 의심을 살만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멍청한 놈, 귀찮은 일을 만들고 있어.”

하급 마법사의 마법으로 거대전갈에게 타격을 준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방법을 써야 하는 게 귀찮 은 것이다.

아르티어스의 손에서 뻗어나간 불덩이는 거대전갈의 바로 앞 모랫바닥에 직격했다. 물론 그런다고 언데드인 거대전갈의 시야를 교란할 수는 없었다. 거대전갈은 눈을 통해서 앞을 보는 게 아니라, 생명의 기운을 느끼고 달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에서 보고 있는 용병들은 저 거대전갈이 언데드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아르티어스는 거기에 착안해 마법을 쓴 것이다.

거대전갈 바로 앞쪽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엄청난 모래 먼지가 비산했다.

그 와중에 은밀한 타격을 당한 거대전갈이 잠시 멈춰서는 건 모두의 눈에 시야를 교란당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우와아와!!”

“빨리 도망쳐!”

용병들의 응원이 쏟아지는 가운데, 거대전갈이 멈칫한 틈을 타 브로마네스는 말에 더욱 박차를 가해 거리를 확 벌리는 데 성공했다.

잠시 후, 먼지가 가라앉을 때쯤, 거대전갈은 아르티어스를 목표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켜보는 용병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아르티어스가 슬쩍 내뿜은 생명의 기운에 홀린 거대전갈은 모든 걸 무시하고 그를 먹잇감으로 흡수하기 위해 달려갔던 것이 다.

아르티어스는 거대전갈이 가까이 육박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슬아슬한 찰나에 비행마법을 전개해 놈의 공격권에서 벗어나 도망쳤다.

지켜보고 있는 용병들은 긴장감에 손에 땀이 찰 정도였겠지만, 아르티어스로서는 전혀 생명의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어떻게 하면 그럴듯하게 거대전 갈을 꼬셔서 멀찌감치 떨어질 수 있느냐 하는 것만 생각할 뿐이었다.

“어서 서둘러! 나 같은 삼류 마법사가 너무 오랫동안 비행마법을 쓴다는 것도 의심을 살 수 있으니까.”

「흐흐. 조금만 기다리라구, 친구.」

답신을 한 브로마네스는 지휘부가 진을 치고 있는 곳에 거의 다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바로 웜 킬러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아이템을 받아서 돌아오 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동안 계속 비행마법을 쓰고 있는 걸 용병들이 납득해 줄 것이냐 하는 점이다.

마법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자가 있다면 말도 안 되는 사기극이라는 걸 곧바로 알아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마법사들 중에는 이걸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흠, 어떻게 한다?”

그냥 거대전갈을 잡아버리고, 지켜보고 있는 용병들까지 몽땅 다 없애버린 뒤 유희를 쫑을 칠까 고민하고 있을 무렵, 저 먼 하늘 위에서 와이번 몇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웜 킬러를 구하느라 정신이 없는 브로마네스는 아직 와이번의 등장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와 교감하는 정령들이 알려줬겠지만, 아티펙트의 효과 로 인해 정령과 단절되어 있었기에 자신이 직접 알아내야만 했다.

다가오는 와이번을 본 아르티어스는 수정구를 입에 대고 빠르게 말했다.

“됐어. 이제 서두르지 않아도 돼.”

「친구, 그게 무슨 말인가? 설마 포기하자는 거야?」

“그게 아니라, 하늘을 봐.”

「하늘?」

방향조차 제시하지 않은 조언이었지만, 일단 찾아내려고 하면 브로마네스의 탐색망을 벗어날 수 있는 존재는 거의 없다.

슬쩍 주위를 둘러보자 동쪽 상공에서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 와이번 여덟 마리.

야생 와이번이 아니라 등 위에 사람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기사와 마법사 두 사람이 한 조로 타는 게 정석인데, 저 와이번들에는 셋씩 탑승하고 있다. 기사 둘에 마 법사 하나. 가장 뒤쪽에 안장 없이 매달리듯 앉아있는 기사를 수송해서 이리로 오고 있는 모양이다.

브로마네스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딴 놈들을 지원군이랍시고 보내다니. 자신이 대기시켜 놓은 기사 한 명조차 감당할 수 없는 허접한 놈들이다.

「저놈들은 뭐야?」

“아마 링카 변경백이 보낸 지원군일걸.”

「저런 허접한 놈들이 전갈을 처리할 수 있을까?」

“믿음은 그닥 가지 않지만, 우리가 처리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나을 거야. 어쨌거나 일단은 저놈들 하는 거 보고 움직이자구.”

「알았어. 그렇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