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8권 36화 : 토사구팽(兎死狗烹)-2 [38권 끝]

묵향 38권 36화 : 토사구팽(兎死狗烹)-2 [38권 끝]


토사구팽(兎死狗烹) – 2

알파3과 그 부하 알파들이 회의를 하고 있을 때, 미네르바는 알파2를 만나고 있었다.

요 근래 그녀의 상태나 활약상에 대한 보고를 들은 알파2가 베타1을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보내왔던 것이다.

오랜만에 알파2의 모습을 본 미네르바는 놀라움을 감추기 힘들었다.

뭔가 음흉스런 해골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오늘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지만 알파2에게서 은근히 흘러나오는 위압감은 다른 알파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한 것이었다.

‘그래듀에이트와의 싸움 이후로 내가 조금 성장한 것일까?’

빛으로 가득했던 경이로운 타이탄의 모습을 본 이후 시각을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눈이 떠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래듀에이트와의 격전을 통해서 얻은 죽음의 기운에 대한 수많은 가능성들.

이미 마스터의 경지를 한번 개척했던 그녀였기에, 그 짧은 시간에 엄청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리라.

《알파17로부터 보고를 들었다. 오너급 그래듀에이트와 정면대결을 펼치며 검술에서 밀리지 않았다고?》

《운이 좋았습니다. 그때그때 대응책이 떠올라줬기에……………》

《호오, 그래? 자네는 예전에 꽤나 뛰어난 그래듀에이트였던 모양이군. 죽음의 기운을 제대로 다룰 줄도 모르는 상태에서 오너급과 상대가 가능했다니….》

알파2의 눈구멍에서 음산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알파17과 비교해 보면 정말 재수 없는 해골 녀석이다.

하지만 2라는 번호가 말해주듯 알파들 중에서는 거의 최상위에 자리 잡고 있는 리치다. 감히 경시할 수가 없는 놈이다.

《・・・・・・》

《죽음의 기운을 사용하는 방법은 좀 익혔나?》

《초반 기습을 통해 승기를 잡았기에 어느 정도 유리한 대결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만, 정면대결이었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혹시 죽음의 기운을 사용할 수 있는 검법서라던지 그런 건 없습니까?>

알파2는 해골 주제에 팔짱을 끼며 거만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처럼 자아를 지닌 데스 나이트가 몇이나 세상에 나왔다고 생각하나? 거의 대부분의 데스 나이트가 자아를 얻기도 전에 광기를 드러내다 토벌당해 버렸지. 주인님께서 대량의 성상의 보권을 보급해 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들 중에 누가 자아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 은혜를 잊지 말고 주인님께 충성을 다하도록 하라.》

《명심하겠습니다.》

《앞으로 자네처럼 자아를 지닌 데스 나이트가 계속 나오게 될 거야. 우리 리치들처럼 말이지. 그러니 자네는 앞으로 나올 베타들을 위해서 검법서를 기록해 보는 건 어떤가? 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테지.>

지시를 받은 이상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물론 제대로 된 검법서를 만들어 줄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네는 이번 대결에서 죽음의 기운만을 사용했나?》

알파2의 물음에 미네르바는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죽음의 기운 말고 다른 뭔가 사용할 수 있는 게 있습니까?》

《자네의 베슬 속에는 마나도 들어있지 않은가.》

미네르바는 깜짝 놀랐다는 듯 말했다.

《폭탄과도 같은 그걸 사용한다고요? 저는 도저히………….》

알파2는 음산한 눈빛으로 베타1을 바라봤지만,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마나를 썼다가는 한순간에 골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죽음의 기운에 대한 연구만 하지 말고, 마나도 어떻게든 쓸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연구해 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이후, 알파2는 미네르바에게 죽음의 기운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여 전투를 했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자아를 찾은 데스 나이트는 베타1이 최초였기에 모든 것이 궁금했던 것이다.

미네르바는 꽤 오랜 시간 알파2의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이게 그녀의 정신을 상상 이상으로 피곤하게 만들었다.

곧이곧대로 대답하기도 위험했고, 그렇다고 숨기고 엉터리로 얘기를 해줄 수도 없었다. 상대가 뭘 알고 있고, 뭘 모르고 있는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 또한 언데드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았고,

무려 두 시간이 넘게 면담을 끝낸 후에야 알파2는 미네르바를 놔줬다.

오랜 세월 크루마 제국을 좌지우지했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던 미네르바였다.

리치는 마법사가 죽어 된 존재인 만큼, 마법사만큼이나 뛰어난 지능과 기억력을 지니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베타1이 대답한 것에서 모순점이 있다면 곧바로 찾아내 의심을 품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 일은 결단코 피해야 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는 면담을 끝내고 알파2의 방을 나오면서 미네르바는 너무나도 찜찜했다.

10자리 이내의 알파들의 능력이 처음에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월등하게 뛰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이곳을 벗어나는 게 가능하기나 할지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알파들은 단순무식하게 전투력만 높은 게 아니다.

알파17과 함께 행동하며 놀라운 지성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아주 교활하기까지 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알파2는 더욱 위험한 존재라고 봐야 했다.

‘좀 더 조심해야 해. 하지만 언데드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 없다는 게 문제야 문제……………. 잘해 나갈 수 있을까?’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네르바는 이곳에서 탈출해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노력하는 것뿐,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운이 좋다면, 이번에 벌어진 전투를 통해 뜻밖에도 많은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망할 놈의 알파들은 어지간한 거리만 넘어가도 무조건 공간이동을 사용한다. 그렇기에 지금 자신이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주인이라는 존재야.’

황당한 예상이긴 했지만, 알파들의 주인은 아무래도 드래곤인 것 같았다.

대사막의 남쪽 지역은 실버 드래곤의 지배력이 미치는 영역이라고 들었다.

그 때문에 4대 강국에 들어가는 알카사스임에도 무역로를 지배하고 있는 토착민들에게 무력행사를 자제하고 있다고.

만약, 자신의 생각이 옳다면, 그건 끔찍스러운 미래로밖에 연결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영원한 시간을 드래곤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으니까.

미네르바는 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건 아닐 거야. 마왕이겠지. 설마하니 드래곤이 언데드 떼를 부리고 있겠어? 마왕이 강림한 게 틀림없어. 그렇고말고.’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미네르바는 중얼거렸다.

《마왕을 토벌하기 위해 주변국들이 대규모로 군사를 일으켰을 때, 그때가 탈출할 수 있는 최고의 적기가 될 거야. 그래, 그렇게 흘러갈 거라고 생각하고 미래를 준비해 나가자.》

***

언데드 대부대와 격전을 벌인 라시드의 병력은 패잔병의 몰골을 하고 발키란 성으로 몰려갔다.

“우리는 라시드의 지원부대요. 성문을 열어주시오.”

“자, 잠시만 기다리시오.”

처참한 몰골을 본 성의 수비병들은 바짝 긴장하며 사막 저 뒤편부터 바라봤다. 혹, 저들의 뒤를 쫓아 언데드 대부대가 몰려오지는 않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일단 추격해 오는 무리는 보이지 않았기에 안도하며, 상관에게 기별을 넣어 성문을 열어줘도 되는지 문의했다.

라시드의 병력이 극소수인 데다 언데드 대부대에 전멸당했다는 나세르 장군의 보고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성주는 급히 나세르 장군을 불러들여 이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부터 물었다.

“운 좋게 살아남은 패잔병들인 모양입니다.”

“라시드의 병사들인 건 확실한가?”

성주의 물음에 나세르 장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문을 열어 맞아주도록 해라.”

이때, 옆에서 듣고 있던 총리가 끼어들었다.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듯합니다, 성주님.”

총리의 말에 성주는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이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왜?”

“막대한 피해를 당하게 된 것을 우리 쪽에 보상해 달라고 압력을 가해올 게 뻔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겠지.”

총리는 음산한 눈빛을 빛내며 성주에게 조언했다.

“아예 몽땅 다 없애버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성주님. 그리고 라시드에게는 구원병을 보내달라고 다시 한번 전령을 보내는 겁니다. 이쪽에 구원병이 오지 않은 걸로 한다면, 라시드 쪽에서도 배상을 요구하지는 못하지 않겠습니까?”

황당한 얘기이기는 했지만, 라시드 측에 지급해야 할 물품이 아까워 그들에게 구원을 요청하지 말자고 주장해 왔던 총리의 의견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었다.

원래는 반대해야 옳겠지만, 나세르 장군은 이게 자신에게도 그리 나쁜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원하러 달려온 그들을 구해주지 않고 성으로 내뺐지 않던가. 저들이 성으로 들어와 그런 사실을 떠들어대면 아주 곤란해진다.

뭐, 성의 주민들이야 자신이 압력을 행사하면 끝이겠지만, 저들이 돌아가 라시드에게 이 일에 대해서 떠들어대기라도 한다면 자칫 부족 간의 분쟁으로 번질 우려마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세르 장군은 자신의 속셈은 숨기고 슬쩍 반대했다.

총리의 고집을 알기에 그가 한번 결정을 내리면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것도 특히나 자신과의 대립이 된다면 더욱…

“그건 안 됩니다, 성주님. 소수의 병력밖에 보내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서둘러 구원병을 파견해 주지 않았습니까. 자칫 저들을 없앤 게

라시드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는 날에는…………….”

총리가 버럭 화를 내며 나세르 장군의 말을 막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겐가, 장군. 여기서 일어난 일을 라시드에서 어떻게 알 거라고. 그런 걱정은 할 필요도 없네. 만약 그런 귀가 여기에 있었다면, 겨우 저따위 소수의 병력만 보내는 짓은 하지 못했을 거야.”

“그건 그렇습니다만………….”

“성주님. 이게 다 우리를 우습게 보고 소수의 병력만 보내준 라시드의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놈들에게 보상을 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고민하던 성주가 총리에게 신중한 어조로 물었다.

“깨끗이 처리할 수 있을까?”

성주에게 질문을 받았음에도 총리는 나세르 장군에게 고개를 돌려 강압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장군, 처리할 수 있겠지?”

주변에 몸을 감출 수 있는 산악이나 숲이라도 있다면 혹 모를까, 평평한 사막뿐이다. 부드러운 모래라서 전속력으로 달리기도 힘들다. 마음만 먹는다면 단 한 명도 남김없이 처치하는 건 아주 쉬웠다.

상대의 숫자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고, 그들은 방금 전까지 언데드 떼와 치열한 접전을 벌인 후라 사람도 말도 체력이 바닥난 상태가 아니겠는가. 그런 라시드 병력을 없애지 못한다고 하면 자신의 무능을 드러내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지요. 명하신다면 깨끗하게 처리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해라.”

“명을 따르겠습니다. 성주님.”

<묵향> 39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