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4권 2화 – 꿈꾸는 자들

꿈꾸는 자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발 뒤쪽에 있는 여인의 부드러운 목소리.

뭔가요?”

“장인걸이 교주가 되는 데 성공한 모양입니다.”

“설마…, 한중길 교주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닌데…. 그리고 그는 결코 장인걸보다 하수가 아니잖아요?”

발 뒤편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는 약간이지만 떨리고 있었다. 그만큼 이번에 일어난 일은 그녀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또 한중길에 비한다면 대 단히 호전적인 장인걸이 교주가 됨으로써 얼마나 많은 변화가 무림에 일어나게 될지 예측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야 그렇죠. 이 일은 아무래도 무림맹주의 실종과 관계가 있는 모양입니다. 마교 쪽에서 흘러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무림맹주 옥청학까지 지하 감옥에 갇혀 있 다고 합니다. 물론 신뢰하기 힘든 정보이기는 합니다만..

발 안쪽의 여인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흐음, 그렇다면 한중길이 맹주를 만나기 위해 비밀리에 마교를 벗어났다가 기습당했다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교주가 장인걸에게 당할 가능성은 토끼 머리에 뿔날 가능성보다도 떨어질 테니까요.”

“일이 아주 재미있게 되어 가는군요. 하지만 그래도 장인걸은 교주가 되기에 세력 기반이 너무도 약한데…….?”

“교주의 가족들을 인질로 잡아 독수마제(毒手魔帝)의 간섭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이후로는 장인걸과 독수마제가 대립하게 될 거라고 사료 됩니다.”

“그럴 가능성이 크겠죠. 묵향 쪽은 어떤가요? 그도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인물은 아닐 텐데.”

“글쎄요. 그쪽에도 장인걸이 교주 자리를 찬탈했다는 정보가 들어갔을 텐데, 첩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답니다. 만약 묵향이 장인걸을 공격한 다면 아직 장인걸이 입지를 견고하게 다지기 전인 지금이 최적의 시기인데 말이죠.”

이번에 발속의 여인은 좀 더 오랜 시간 생각에 잠겼다.

“흐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군요.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본녀에게 조속히 연락해 주세요.”

“예, 그러면 소인 물러가겠습니다.”

“참, 영인이는 돌아왔나요?”

“예, 맹주의 실종으로 회합이 취소되었기에 3일 전에 돌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시자마자 곧바로 연공관으로 가셨답니다.”

“그럼 총관이 직접 가서 그 아이를 데려오시겠어요?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 전하세요.”

“예.”

잠시 후 매영인이 들어왔다. 매영인은 4봉(四鳳)에 들어갈 정도로 뛰어난 실력에 보는 이마다 찬사를 보내는 외모를 지녔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조금 장난기가 있는 것 같은 발랄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구휘 대협의 무덤에 얽힌 각 문파 사이의 갈등 해소를 위해 마련한 회합에 참여하려고 무영문을 나섰다가 돌연한 맹주의 실종으로 회합이 취소되었기에 돌아온 것이다. 그녀가 돌아오자마자 연공관에 처박힌 이유는 정말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고수를 여행 도중에 만나 그 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7룡(七龍) 중에서 아마도 최강의 무공을 지니고 있을 거라 추측되는 황룡문의 부문주 비천검(飛天劍) 혁련운(赫蓮運). 그의 무공은 철부지 매영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다. 43세란 나이에 벌써부터 검강을 자유로이 구사하다니……. 하지만 그런 그를 간단히 바닥에 패대기친 묵향이란 인물이 있었다. 그야말로 기는 놈이 봤을 때는 뛰는 놈이 대단해 보이지만, 그 위에는 나는 놈도 있지 않던가? 고차원적인 신법과 초식의 절묘한 조화. 묵향이란 인물의 말마따나 “자신에게 걸리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그냥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무시무시한 무공과 또 그에 걸맞은, 비뚤어진 것 같으면서도 외모와는 달리 패기가 넘치는 성격. 그 마교의 부교주는 그녀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녀는 두 고수의 비무를 보고 뭔가 자신의 내면에서 불타오르는 것 같은 전율을 느꼈고, 그렇기에 여태까지처럼 할머니의 강압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연공관에 들어 간 것이다.

그녀는 총관이 앉아 보고를 하던 곳이 아니라 발 안쪽으로 들어갔다. 발 안에는 놀랍게도 아리땁고 청순한 미모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매영인은 그녀를 보고 싹싹 하게 인사하며 말했다.

“안녕하셨습니까? 할머니.”

“오냐, 어서 오너라.”

“다녀와서 인사 못 드려서 죄송해요. 뭔가 할 게 있어서 연공관으로 바로 갔거든요.”

“총관에게 들었다. 이리 와서 앉거라.”

“예.”

조손(祖孫)이 한 자리에 앉았지만 언뜻 보아서는 도무지 그들의 나이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 매영인이 제법 높아 가는 내력으로 인해 서른한 살의 제 나이가 아 니라 발랄한 스무 살 정도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면, 그녀의 할머니는 자타가 공인하는,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화경에 든 여인. 그 고차원적인 내공으로 20 대 중반 정도의 청순한 미모를 과시하고 있으니 둘은 할머니와 손녀가 아닌 자매로 보일 지경이었다.

“오늘 너를 부른 것은 한 가지 상의할 일이 있어서다.”

“뭔데 그러세요?”

“너,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느냐? 그러니까 결혼하고 싶다든지 뭐 그런 식의 마음에 품은 상대가 있느냐 하는 거야.”

매영인의 얼굴빛이 약간 붉어지긴 했지만, 그건 숨겨 놓은 남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할머니가 이렇게 대놓고 남자에 대해 물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매영인은 정보력 하면 천하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무영문의 금지옥엽이다. 어렸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이 떠받들어 키웠기에 남자 보기를 돌같이(?) 하며 자기 잘난 맛에 여태껏 살아왔으니, 그녀의 마음에 찰 만큼 그럴듯한 상대가 있을 리 없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대부분이 무영문 소속의 무사들―그녀에게 남성미 를 뽐내기보다는 아부와 존경만을 보냈기 때문에 그녀의 마음에 새겨질 만한 남자라는 동물은 없었던 것이다.

“아뇨, 아직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묻는 것은 너를 내가 고른 어떤 남자와 결혼시킬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건 아주 중요한 거야. 네 마음속에 이미 다른 남자가 자리 잡고 있다면, 결혼 후의 네 생은 아주 비참해지기 때문이란다. 무슨 말인지 알겠니?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렴.”

매영인은 어떻게 보면 조금 놀란 듯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비난하는 듯도 한 눈초리로 할머니에게 따졌다.

“할머니께서 고른 어떤 남자라니요? 저에게 정략결혼이라도 시키실 생각이세요? 저에게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어요?”

옥화무제(玉花武帝)의 청순한 얼굴은 잠시 슬픔에 물드는 것 같았지만 곧 원상태로 돌아갔다. 무림의 대세를 무영문이 잡기 위해서는 아끼는 손녀라도 정략결혼 의 재물로 써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결혼 상대로 점찍은 인물들도 말이 정략결혼이라서 그렇지 어디 하나 손색이 없는 인물들이 아닌가?

그들의 뛰어남은 자신이 사랑하는 무영문의 첩보력이 보증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녀로서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라면 매영인의 선택인데, 그녀가 반 려자로 삼고 싶은 어떤 인물이 있다면 이 이야기는 거론할 수 없는 것이다. 옥화무제 자신도 여인이었기에 한 사람을 마음속에 품고 다른 남자와 사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잘 알았고, 그래서 손녀에게 그 점을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다.

“그래, 어떻게 보면 정략결혼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상대는 대단히 뛰어난 인물들이다. 문제는 네게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가 하는 거야. 만약 있다면 나는 이 계획을 포기할 거다. 계획보다는 네 행복이 더욱 소중하니 말이다. 그래도 그냥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상대들이기에 네게 이렇게 물어보는 거란다.”

할머니가 이렇게까지 나오는 데야 할 말이 없었다. 자신에게 뚜렷이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저, 아직은 그런 사람 없어요.”

옥화무제는 손녀의 말에 화사하게 미소를 지었다.

“오냐, 그렇다면 정말 잘됐구나. 말이 정략결혼이지, 상대는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괜찮은 남자들이야. 남녀 간의 사랑이란 것은 별 게 아니야. 딱히 상대에게 문제가 있지 않은 한 결혼해서 살다 보면 차츰 정이 쌓이고 사랑이 싹트는 것이지. 그러다가 자식들도 생기고 하면… 참, 내 정신 좀 봐. 잠시만 기다리거 라.”

옥화무제는 몇 장의 종이를 가지고 돌아왔다.

“네게 권하고 싶은 남자는 이 둘이다.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거라.”

옥화무제가 매영인 앞에 펼쳐 놓은 두 장의 그림. 그건 아주 정밀하게 그린 초상화였다. 개개인의 특징이 아주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 것으로 얼굴만이 아니라 서 있는 자세로 전신(全身)을 세밀하게 그려 놓았다. 매영인은 두 장의 그림을 보고 잠시 숨을 죽였다. 둘 다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놀라게 한 그림 은…….

“이 사람은 누구예요?”

“너는 잘 모르겠지만, 묵향이라는 마교의 인물이다. 추정되는 나이는 약 70세 정도. 하지만 그는 무림에서 두 번째로 기록되는 현경의 고수기에 70세란 나이는 별 로 중요한 것이 아니지. 대단히 뛰어난 인물이란다. 영인이의 남편감으로 빠지지 않는 인물이야.

다만 성격이 좀 거칠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살다 보면 어떻게 바뀔지 누가 알겠냐? 수하들이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그에게는 수양딸이 하나 있고, 그와 동거 생활 비슷한 걸 했던 여인도 하나 있었다. 낙양 분타에서 그가 일할 무렵이었는데……. 그가 무당파와 가벼운 충돌을 일으켰기에 그걸 파고들다 보니 새어 나 온 정보니까, 아주 우연히 알게 된 것이지.

그 모녀와의 생활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꽤나 정이 많은 인물인 모양이야. 훗날 교주와의 충돌을 무릅쓰고, 수양딸이 제자로 있는, 대력도패(大力刀覇) 진양(振揚) 이 이끄는 천지문과 화해를 주선하기도 했지. 아마 그 일이 ‘부교주 묵향’이란 이름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계기가 되었을 거야.”

“그렇지만 마교의 인물이잖아요.”

그러자 옥화무제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출신은 마교지만, 지금 그는 마교와 싸우고 있다. 또 그가 거느리고 있는 수하들도 엄청난 숫자지. 해체된 찬황흑풍단의 세력까지 흡수했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 이야. 현재 무림에서 그만큼 무공이 뛰어난 인물은 없고, 또 현 무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력한 수하들을 거느리고 있단다. 본문이 무림에서 더욱 커 나가 기 위해서 아주 필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

“그렇지만 그가 마교도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잖아요. 아무리 마교와 싸우고 있다고 해도 그게 소문이 나면…….”

“그건 네가 걱정할 것이 아니란다. 사실상 그가 주로 익힌 것은 마공이 아니야. 그가 아무리 무공이 뛰어나고 또 강대한 세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교와 정 면으로 대결하기에는 아무래도 좀 부족하지. 그러니 그도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다면 혼인 제의를 거절하지는 못할 거야. 너를 연결 고리로 그와 본문이 손을 잡게 된다면, 본문은 무림에서 최고, 최강의 세력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알겠느냐?”

“예.”

“그리고 이 사람은 너도 잘 알다시피 서문세가의 벽력도객(霹靂刀客) 서문길(공자다. 현재 나이 29세. 너보다 두 살 어리지만 그것 역시 큰 문제가 아니 지. 현재 가문의 비전(秘傳)인 뇌전도법을 5성 이상 익힌 대단히 뛰어난 청년이야.

그리고 그가 태어난 서문세가는 현재 5대세가의 으뜸이지. 8천에 이르는 식솔을 거느리고 있으며, 그 장문인인 수라도제(修羅帝) 서문길제(西門吉制)가 다음 맹주로 선출될 확률이 높단다. 현 무림 최고의 명가라 볼 수가 있지.

서문세가와 맺어져도 본문은 강대한 세력을 얻게 될 거야. 본문은 이제야 겨우 4천의 식솔을 거느린 그럴듯한 방파로 성장했단다. 과거 무영문은 암살 따위 의뢰 를 받거나 기방, 도박장, 전당포, 밀수 등 온갖 불법적인 사업으로 돈을 벌어들였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 무영문은 그 숨기고 싶은 과거를 딛고 일어서 정부에서 허 가받은 국경 무역과 전방, 표국 등 각종 사업체와 수많은 상권을 가지고 떳떳하게 돈을 벌어들이고 있지. 오히려 지금에 들어서는 정보의 거래보다는 그 정보를 기 반으로 한 각종 상거래를 통해서 더욱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이만큼 본문이 성장한 것도 시기를 잘 읽고, 또 그 시기를 잘 이용했기 때문이지. 그러니 영인이 네가 이 할머니를 좀 도와주지 않겠느냐? 결코 어려운 게 아니란 다. 그 둘 중 하나만 선택해서 혼인하면 된단다. 둘 다 남 주기 아까울 만큼 대단한 인물들이 아니냐?”

할머니의 상세한 설명에도 매영인은 누구 한 사람을 선택하기 힘들었다. 원래 이성대로라면 서문길을 선택해야 옳겠지만, 묵향이란 인물이 워낙에 첫 대면에 그녀 에게 준 인상이 강렬했었기 때문이다.

등에 4척 장검을 네 자루나 짊어진 6척(약 180센티미터) 장신의 무사가 장인걸의 앞에 당당히 서 있었다. 수염이 텁수룩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인물로, 강렬한 안광과 더불어 숨이 막힐 정도로 지독한 마기가 전신에서 뿜어 나왔다. 그는 평상시와 같이 구역질이 날 듯한 검붉은 핏빛이 도는 낡은 옷으로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었기에 군데군데 묻어 이미 말라붙은 피는 별로 표시도 나지 않았다. 그 핏자국 중 일부는 자신의 것이기도 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도 몇 군데 상처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보고를 위해 꿋꿋하게 교주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는 평상시에는 한두 자루의 장검만을 휴대했다. 하지만 직접 전투에 나설 때는 네 자루의 장검을 사용했다. 마교 최강의 무력 단체인 천마혈검대(天魔血劍隊)를 책임지고 있는 이 인물은 마교에서도 흔치 않은 검의 고수였고, 또한 어기동검술(御機動劍術)의 대가였기 때문에 항상 다수의 검을 썼던 것이다.

사내는 당당한 어조로 교주에게 선언했다.

“이제 본교 내에 교주께 불복하는 놈들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

장인걸은 그런 그를 믿음직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흠, 수고했네. 그런데 제갈천 장로는 어디 있나?”

그러자 환영비마(幻影飛魔) 구양운(丘陽雲)의 표정이 뭔가 씁쓸한 빛을 띠었다. 그와 함께 동행했던 멸절신장(滅絶神掌) 제갈천(諸葛天)은 마교 서열 8위의 인물 이었지만, 장인걸이 거느린 반란 세력으로 봤을 때는 서열 2위의 엄청난 고수였다. 물론 마교 서열 6위의 혁무상 장로가 장인걸 편에 섰지만 그는 그 두뇌를 높이 평 가받아 높은 서열을 받은 것이지 무공은 아무래도 좀 떨어졌다. 그렇기에 장인걸에게는 제갈천의 안부가 대단히 중요했던 것이다.

“황노각(角)대호법에게 죽었습니다. 하지만 죽기 전 그에게 중상을 입혔기에 속하가 손쉽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흠, 자네 혼자 돌아온 것은 정말 유감이군. 황노각 대호법은 어떻게 했나?”

구양운은 무뚝뚝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수급을 잘라왔는데, 보시겠습니까?”

“아닐세. 눈에 잘 띄는 곳에 전시하여 본좌에게 반역하는 놈들은 어떻게 되는지 널리 알리게나.”

“예.”

“어쨌든 벅찬 상대였을 텐데 잘해 줬네.”

“과찬이십니다. 묵향 부교주와 합류를 시도했던 호법원과 혈마대의 잔존 세력, 한중길 교주 직속의 천살대, 지살대, 인살대 등 본교 최고 정예들이었지만 천마혈 검대와 환영대의 적수는 아니었습니다. 그중 40여 명은 비록 중상자들이긴 하지만, 지하 감옥에 넣어 뒀습니다.”

“참, 우리 쪽 피해는 어떤가?”

피해 얘기가 나오자 구양운 장로의 표정이 약간 더 굳어졌다. 하지만 그로서는 자신들이 입은 피해를 장인걸에게 숨길 수는 없었다. 구양운 장로는 정말 하고 싶지 않은 보고였지만 선임자가 죽은 덕택에 자신이 할 수밖에 없었다. 구양운 장로가 피해 보고를 잠시나마 망설일 만큼 상대는 강했던 것이다.

“환영대는 전멸, 천마혈검대는 전사 32명, 중상자 43명, 나머지는 경상입니다. 그 외에 지원해 주신 수라마참대(修羅魔斬隊) 1백 명은 대부분이 전사했습니다. 나 머지는 한 달 정도 치료하고 요양하면 회복될 겁니다. 마지막 한 녀석까지 악착같이 저항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는 결과였습니다.”

의외로 피해가 크자 장인걸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장인걸이 권력을 차지하자 호법원의 수장이었던 마교 서열 7위 흑풍마령(黑風魔靈) 황노각이 주축이 되어 내전(戰) 중 살아 남은 호법원의 고수 2백여 명과 교 주 직속 원거리 호위대인 혈마대의 잔존 세력 50여 명, 그 외에 교주 직속 무력 단체 천살대, 지살대, 인살대의 초절정고수 50여 명을 이끌고 묵향 부교주의 세력에

합류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불행스럽게도 장인걸이 그 사실을 미리 포착했다. 그는 자신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교내 서열 7위 제갈천 장로와 서열 10위 구양운 장로에 게 수라마참대 1백 명까지 붙여 주며 급파했다. 사실 상대의 전력으로 미루어 본다면 자신이 직접 가는 것이 안심이 되었을 테지만, 아직 교내에서 제대로 기반을 잡지 못했기에 자신이 직접 가는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교주의 아버지, 독수마제를 견제할 만한 고수가 교내에 남아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제갈천 장로는 무영대(無影隊)라 불리는 30여 명의 초절정고수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구양운 장로는 천마혈검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거기에다 교주는 수라마참 대 2백 명 중에서 반을 잘라 제갈천 장로에게 줬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정말 장인걸로서는 총타에서 일어날지도 모를 또 다른 반란 세력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을 빼고는 몽땅 다 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장인걸은 손쉬운 싸움은 아니더라도 그리 큰 피해는 없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제갈천 장로는 아예 돌아오지도 못했고 무영대는 전멸. 그 렇기에 그 모든 경과를 구양운 장로의 보고를 통해 들으면서 장인걸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것이다.

“피해가 그렇게 크다니……. 과연 교주 직속의 무력 단체로군. 한중길 교주가 그들을 항상 주위에 두었다면 본좌는 이 거사를 꿈도 못 꿨겠지. 하여튼 자네가 본좌 를 도와줬기에 이번에 용단을 내릴 수 있었다네. 정말 자네에게는 고맙게 생각하네.”

“과찬이십니다. 속하는 마도천하(魔道天下)를 이룩하는 최선의 길을 선택한 것뿐입니다.”

“돌아가서 치료부터 받게.”

“예.”

미세한 혈향(香)을 풍기며 서 있던 환영비마 구양운 장로가 자리를 뜨자 장인걸은 호화로운 태사의에 푸근히 몸을 묻으며 밖을 향해 말했다.

“차(茶)를 가져오너라.”

“예.”

아름다운 시비가 들어와 태사의 옆에 마련된 자그마한 탁자에 살며시 차를 올려놓고는 나갔다. 장인걸은 천천히 차를 마시며 깊은 생각에 잠겨 들어갔다. “이제 나에게 저항하는 놈들은 원로원뿐이군. 독수마제를 어떻게 없애야 할까??

이때 밖에서 음산한 마기를 뿌리는 인물이 들어서 예를 올렸다.

“교주를 뵙습니다.”

“무슨 일인가?”

“혁무상 장로가 뵙기를 청합니다.”

“들라 하라.”

“예.”

그가 나가고 혁무상 장로가 들어왔다. 혁무상 장로는 이번 모반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교내의 정보를 완전히 장악하여 장인걸을 도운 일등 공신이었다. 사실상 그가 없었다면 아예 반란 자체를 일으킬 수 없었을 것이다. 장인걸에 대한 위험 신호를 그가 몽땅 다 막아 버렸기에 교주는 장인걸에 대해 거의 무방비 상태로 당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혁무상 장로는 예를 올리고는 곧장 장인걸에게 서류뭉치를 건네준 후 태사의 앞에 정중한 자세로 서서 입을 열었다. “이번에 작성한 본교의 재편성 계획입니다. 빨리 시행하셔서 하루라도 빨리 세력을 다지는 것이 유리할 것입니다.” 하지만 장인걸 교주는 혁무상 장로의 말에 답하지 않고 시선을 창문 쪽으로 돌리며 쓸쓸한 어조로 말했다.

“이번 모반에서 많은 고수들을 잃은 것은 참으로 유감일세.”

“어쩔 수 없는 결과였습니다.”

“자네가 보기에 마교의 세력이 어느 정도 감소되었는가? 솔직히 말해 보게.”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설명을 올릴까요?”

“묵향 부교주가 있을 때부터!”

“예, 묵향 부교주가 본교에 있을 때가 본교의 최고 전성기라 볼 수 있습니다. 한중길 교주도 그를 놀려 두지 않고 적절히 잘 써먹었으니까요. 그는 혼자만으로도 천 마혈검대와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웬만한 일은 그 혼자만 투입해도 끝이 났죠. 그가 본교를 빠져나감으로써 본교는 1할의 힘을 상실했다고 봐야 할 것입 니다.

또한 본교는 묵향 부교주를 없애기 위해 투입했던 능비계 부교주와 천랑대, 염왕대를 잃었습니다. 그들만 해도 2할5푼은 넘어가는 힘이죠. 거기에 이번 내전으로 한중길 교주와 그가 이끌던 모든 세력을 없애야만 했습니다. 이들을 합한다면 2할은 됩니다. 그리고 그들을 없앤다고 소모한 전력이 있습니다. 그게 1할은 됩니다. 물론 강시는 다시 만들 수 있으니 예외로 하고 말이지요.

그러니 묵향 부교주가 있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면 지금 남은 전력은 3할 5푼쯤? 그 정도로 생각됩니다. 물론 여기에서 한중길 교주가 묵향에게 보낸 분타들의 세 력은 뺐습니다. 사실 그들은 하수들과 대결하는 데나 쓸까 거의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혁무상 장로의 솔직한 답변에 장인걸은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얻은 자린데, 얼마나 원했던 자린데, 이제 빈껍데기만 남아 있는 것이다.

“흐음, 정말 전력이 많이도 깎였구먼. 이 자리를 차지한다고 너무 많은 대가를 지불했어. 겨우 그걸로 무림통일을 생각할 수나 있을는지…….”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어떻게?”

“우선 태상교주를 잘 처리해서 원로원의 힘을 얻는다면 3할의 힘을 얻으시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리한다면 교주께선 6할 5푼의 힘을, 묵향 부교주는 3할 정도 의 힘을 가지게 됩니다. 충분히 묵향 부교주를 제압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묵향 부교주와 전면전을 벌인다면 죽도 밥도 안 되죠. 교주께선 묵향 부교주를 핍박했던 그 모든 과거의 일을 한중길 교주 단독 행동으로 덮어씌우고 묵향 부교주와 손을 잡으셔야만 합니다. 그와 완전히 합치는 건 아니고, 그를 이용해서 무림맹을 없애야만 합니다.

묵향 부교주는 정파와 싸우다가 죽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가 탈마의 고수라 해도, 또 그가 지닌 힘이 현재 무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말입니 다. 또 정파에서도 묵향 부교주를 없애려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만 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무림은 교주님의 것이 되겠지요.”

“하지만 그가 그렇게 움직여 줄까?”

장인걸의 회의적인 반응에 혁무상은 단정적으로 답했다.

“움직이게 만들어야 합니다.”

“알겠네. 본교의 남은 세력을 재편성하는 동안 그대는 묵향 부교주를 무림맹과 함께 소멸시킬 계획을 세워 보게나.”

“존명!”

“참, 감옥에 가둬 둔 자들은 어찌 되었나?”

“지금 열심히 설득 중입니다. 그들이 교주님께로 전향한다면 대단한 힘이 될 것이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 수고하게나.”

혁무상 장로가 정중히 예를 올리고 나가자 장인걸은 시비를 불렀다. 시비는 재빨리 다가와 그의 앞에서 다소곳이 허리를 굽히고 하명을 기다렸다. 장인걸은 그녀 를 향해 눈길 한 번 보내지 않은 채 손가락만을 까딱였다. 그녀는 이런 일을 많이 겪어 봤는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장인걸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편안하게 앉아 있 는 장인걸 앞에 살포시 주저앉아 그의 바지 끈을 풀어 내렸다. 그 속에는 자그마하게 쭈그러든 물건이 얌전하게 축 처져 있었다. 그녀는 그걸 조심스럽게 받쳐들고 고개를 숙였다.

현재 마교의 지하 감옥에는 5백여 명이 넘는 고수들이 투옥되어 있었다. 언제나 권력을 찬탈했을 때 그에 거부하는 세력은 있게 마련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었지만

한 명이라도 고수가 아쉬운 때라, 속마음 같아서는 몽땅 목을 잘라 효시해 버렸으면 속이 시원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이쪽으로 돌아서도록 회유와 설득을 거듭하고 있었다. 호법원의 수장인 황노각은 제압하기 전에 탈출을 시도하였기에 세력을 동원해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외 중상을 입은 마교 서열 18위 묵 인겁마(墨刃劫魔) 초진걸(楚眞杰)이나 19위 은편패왕(銀片覇王) 여문기(呂文起) 같은 고수들은 내전 중 포획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장인걸이 잡아들이는 데 가장 고생했던 인물은 수라혈신(修羅血神) 북궁뇌(北)내총관이었을 것이다. 그는 한중길 교주가 대단히 신임하던 서열 9위의 고수 였고, 그만큼 잡아들이는 데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그리고 수라마참대를 이끌던 인도(人屠) 동방뇌무(東方雷武)는 장인걸에게 가장 먼저 붙잡힌 인물이 었다. 그가 수라마참대를 동원하여 저항한다면 승리를 거두더라도 그야말로 껍데기도 못 건질 것이 분명했기에 미혼약을 써서 그를 포획한 후 수라마참대를 장악 했다.

높은 서열에 있는 인물들 중 상당수가 장인걸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기에 장인걸은 그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마교란 본래 약육강 식의 세계. 지금 태상교주가 존재하기에 그들이 그나마 의리를 찾고 있지만, 아마도 태상교주가 사라진다면 그들은 무조건 자신에게 충성을 다할 것이라고 장인걸 은 생각했다. 묵향이란 변수가 있긴 하지만…….

장인걸은 하체를 앞으로 들이밀며 태사의에 좀 더 깊숙이 몸을 묻었다. 강렬한 쾌감이 전해져 오고 있었지만 그의 생각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중길 교주는 너무 꿈이 없는 인물이었어. 마교 최고 전성기의 전력으로 무림을 일통할 생각은 안 하고 쓸데없이 혈교니 뭐니 하는 것들을 제압할 궁리만 하다 니. 거기에 무림맹주와 밀월 관계까지. 마교는 마교일 뿐, 그런 일은 정파 놈들한테 맡겨 두어도 충분했는데 말이야.

마교의 본업은 피의 역사를 창조하는 것이야. 그 당시 내가 교주였다면 최소한 중원의 반은 차지했을 거야. 멍청한 녀석. 어쨌든 그 때문에 불만을 품은 여러 고수 들을 회유할 수 있었지. 하지만 피해가 너무 컸어. 그 멍청한 한중길 교주의 입김이 그렇게도 강했던가?

뭐 이제 곧 재편성이 끝나게 될 거야. 그렇다면 슬슬 혁무상 녀석을 십분 활용하여 천천히 중원을 장악해야지. 지금은 송과 요가, 또 황제와 진천왕이 다투는 난세 가 아니던가? 잘만 하면 무림일통만이 아니라 황제 자리도 꿈이 아니지, 흐흐흐흐. 혁무상 녀석은 그 시각을 무림에만 국한시키고 있지만, 무림인은 황제가 될 수 없단 말인가? 이런 난세는 영웅을 만드는 것. 천운이 나와 함께하고 있어.

참, 혁무상 저 녀석은 너무 똑똑해. 위험한 놈이지. 언제 배신할지 모른다구. 절대로 놈에게 실권을 줘선 안 돼. 아주 조심조심해서 이용해 먹다가 나중에는…….? “크하하하하핫!”

장인걸은 갑자기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곳을 열심히 애무하고 있던 시비가 놀래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봤지만, 아무래도 자신의 애무 때문은 아 닌 것이 확실했기에 그녀는 잠시 멈춘 채 장인걸의 하명을 기다렸다.

그녀의 행동에 대한 대답은 곧이어 돌아왔다. 장인걸은 시비를 나무라는 수고를 생략하고 곧장 그의 그 커다란 손바닥으로 한 대 주물러 줬던 것이다. 한쪽 구석에 나뒹굴어진 시비는 경련을 일으키더니 잠시 후 몸을 쭉 뻗으며 잠잠해졌다.

“멍청한 계집! 그따위 것도 제대로 못 하다니.”

장인걸은 그쪽으로는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또 다른 시비를 불러들였다. 그녀를 대신할 시비들은 많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장인걸을 교주로 옹립한 천마신교는 전격적인 세력 재편성을 완료했다. 상층부 고수들의 사망이나 투옥으로 마교 내의 서열이 대폭 수정되었 고, 또 그로 인해 각 조직의 축소와 통폐합이 불가피했다.

우선 장인걸은 아홉 명의 장로였던 장로원을 다섯으로 줄였다. 한중길 교주 편을 들어 전멸한 교주 직속의 호법원을 새로이 편성하고, 절정고수 50명, 고수 1천 명 을 주어 서열 5위로 급상승한 흑수천마(黑手魔) 여진(呂震)에게 맡겼다. 그 외에 이번에 피해가 없었던 자성만마대(紫星萬魔隊)를 4천 명으로 줄여 서열 6위로 뛰어오른 무영신마(無影身魔) 장영길(張影吉)에게 맡겼고, 과거 자성만마대의 수장이었던 삼면인마(三面人魔) 소무면(簫無面)을 서열 4위로 올려 이제 4백 명으로 축소된 수라마참대를 지휘하게 했다.

제갈천장로의 사망으로 일약 서열 2위로 뛰어오른 환영비마 구양운 장로는 장로원의 수장으로서, 약간의 인력을 보충해 80명이 된 천마혈검대를 계속 맡았다. 그 리고 장인걸 교주의 교주 독립 호위대로 초절정고수 열 명, 원거리 호위대 수마대(守魔隊)는 절정고수 50명을 두었으며, 그 외에 교주 직속으로 사사혈시마대(邪死 血屍魔隊) 1천 명을 편성해 서열 17위로 떠오른 학살인도(虐殺人屠) 박용(朴龍)에게 맡겼다.

어쨌든 그런대로 모두에게 만족할 만한 개편이긴 했지만 약간 불만을 품은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혁무상이었다. 그는 제갈천이 죽었기에 이번 반란에서 가 장 큰 공을 세운 자신이 2인자의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자리는 구양운 장로에게 빼앗겼고, 게다가 자신의 삼비대(三秘隊)는 이비대(二秘隊)로 축소되었다. 이번 내전에서 엄청난 숫자의 고수를 잃었기에 삼비대 중 유일한 전투 집단이라 할 수 있는 비마대(秘魔隊)를 해산하여 각 집단의 전력강화에 사용한 다는 데 그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원래가 삼비대는 첩보 공작이 주 임무였기에 강력한 무력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개편으로 장인걸의 의도대로 혁무상의 세력은 상당히 약화되었다. 비마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실지로는 열 명에 이르는 초절정고수와 40명에 이르는 절정고수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몽땅 털렸으니 당연히 혁무상의 세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주요 세력이 이탈해 버린 혈화궁은 마화단(魔花團)으로 그 지위가 떨어졌다. 첩보, 암살 등 각종 임무를 수행하던 외부 지단이 떨어져 나가고, 총단 에서 마교 내 고수들에게 성과 향락을 제공하여 하층 고수들의 불만을 해소시켜 주던 자들만 남게 되었으니 그건 당연한 조처였다. 마화단의 단주로 서열 458위 흑 미요요(黑眉天姚) 진란(辰蘭)이 선택되었고, 그녀들의 주된 임무는 별 볼일 없는 성적 노리개 생활이었다.

만악궁 또한 혈화궁과 같은 신세를 면키 힘들었다. 만악궁은 만마단(萬魔團)으로 재편되었는데, 만악궁주 이하 대부분의 세력이 묵향 쪽으로 붙어 버렸으니 그건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하지만 마교 총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세력들이 몽땅 다 묵향 쪽으로 붙어버린 결과, 장인걸은 새로운 자금줄을 찾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물론 마교라는 단체 자체가 움직이는데 그리 많은 자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고, 지금까지 한중길 교주가 총타의 창고에 쌓아 놓은 금은보화 가 적지 않았기에 지금 당장 돈줄이 틀어 막힌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부분이 어떤 형식으로든 장인걸이나 혁무상 장로에게 심적 압박감을 심어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