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5권 10화 – 또다시 만난 말썽꾸러기
또다시 만난 말썽꾸러기
“스승님.”
“뭐냐?”
“좋은 걸 발견했습니다. 혹시 흥미가 있으실 것 같아서 우선 몇 권 가져왔는데요.”
그러면서 내미는 책 세 권. 토지에르 경은 그 책을 받아서 쭉 훑어봤다. 마법책들이었다. 그것도 6사이클급의…………. 토지에르 경은 놀라움에 가득 찬 어조로 제자에게 물었다.
“이걸 어디서 구했느냐?”
“전부터 우리가 사용해 오던 거점 중 한 곳이 마법사의 집이란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 밑에 있는 던전에서 발견했죠. 거의 1천 권에 달하는 책들 과 마법 실험 장비들이 있습니다. 그중 쓸 만한 거는 다 가져 왔으니 한번 보시죠.”
“오오, 정말 잘했다. 이건 대단한 발견이야. 국가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시는 폐하께 최고의 선물이 되겠어.”
“마법 도구(tool)도 몇 개 있더군요. 바로 이것들입니다.”
그는 제자가 꺼내 놓은 검 한 자루와 반지 두 개, 또 수정 구슬 하나를 바라보며 만족스런 탄성을 흘렸다.
“흐음, 대단해. 빨리 사람들을 보내서 그것들을 왕궁으로 옮겨라. 아니지, 우선 내가 그리 가 봐야겠다. 빨리 안내하거라.”
“예.”
다크 일행은 일주일 동안 추격하면서 상대의 꼬리가 지나간 길은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상대의 꼬리는 구경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가스톤만이 아니라 안토니 크로와까지 섞여서 다크와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데, 정찰을 나갔던 팔시온이 급히 돌아왔다. “발견했습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마을 외곽에 있는 집인데, 거기가 적들의 본거지인 모양입니다.”
시드미안 경이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그럼, 빨리 가 보세.”
그들은 재빨리 말을 타고 팔시온이 찾아낸 상대방의 본거지를 향해 달려갔다.
“상대의 수는 얼마 정돈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좀 수상한 곳이라고 주민들이 그러더군요. 그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녀석을 봤다는 사람 말이 그놈도 그곳을 찾더랍 “니다.”
“그 집의 규모가 큰가? 성처럼 지어 놨다면 이 인원 가지고 힘들지도…….”
“그렇게 큰 집은 아니랍니다. 옛날 마법사가 살던 집이라고 그러던데…”
일행이 도착할 때쯤에는 이미 날이 저물었지만 달빛에 비친 그 집은 과연 그렇게 크지 않았다. 벽돌로 지은 2층 건물이었는데, 뒤쪽의 마구간에 말 이 몇 필 매어져 있는 것으로 봐서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집은 꽤 넓은 공터에 지어져 있었기에 그쪽으로 들키지 않고 접근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 보였다. 일행이 도착하자 저택이 잘 보이는 숲 쪽에 지미와 라빈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팔시온은 그들을 둘러본 후 급히 물었다.
“미디아는?”
“반대편을 둘러본다고 가셨어요. 올 때가 지났는데…
“조금 있으면 오겠지. 보초는?”
“정문에 한 명, 마구간 쪽에 한 명 있어요.”
“흠, 여기서 저택까지 5백 미터는 족히 되겠는데? 이거 활 가지고는 힘들겠군. 어떻게 한다? 이봐요, 안토니. 마법으로 어떻게 안 될까요?”
“흐음, 마법으로 안 되는 건 아니지만, 혹시 저쪽에도 마법사나 기사가 있다면 마나의 움직임을 눈치 챌 텐데………….”
“제길, 정면 돌파 외에는 방법이 없군. 안 그런가요, 시드미안 경?”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내가 스미온을 데리고 정문을 맡지.”
“그러면 우리들은 후문으로 가겠습니다. 시간은 이걸로……………”
팔시온은 품속에서 작은 모래시계 두 개를 꺼냈다.
“이건 10분 단위로 모래가 떨어지죠. 10분 후에 합시다.”
“알겠네.”
모두들 와글와글 정신이 없었지만 다크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 건물 안에서는 강력한 기를 지닌 존재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물 안 에 10명 정도의 인물들이 있는 게 느껴졌지만 쓸 만한 실력을 가진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쉭쉭쉭!
미카엘, 지미, 라빈은 각자 말안장에 매어 뒀던 활을 가지고 상대를 향해 발사했다. 이 정도 떨어진 상태에서 상대에게 활을 날린다면 그 정확도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거기다 밤이라서 상대도 잘 보이지 않았고, 더구나 상대가 맨몸이라면 상관없겠지만 갑옷을 입었다면 과연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지 의문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활을 쐈고, 상대는 어느 정도 피해를 입었는지는 모르지만 쓰러졌다. 그걸 확인한 다음 그들은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푸르륵거리는 말들을 달래며 마구간 옆에 난 문으로 접근한 팔시온은 시드미안 경 일행도 반대편 문에 접근했기를 빌면서 곧장 문을 열고는 안으로 뛰어들었다.
갑자기 검을 든 인물들이 들이닥치자 널찍한 탁자에 앉아 야식을 먹고 있던 덩치 큰 녀석들이 각자 옆에 세워 둔, 혹은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고 저 항했지만, 그 반수 정도는 검을 채 뽑아 보지도 못하고 팔시온의 거대한 검에 두 토막이 돼 버렸다.
이때 2층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남은 다섯 명 정도가 검과 방패를 들고 나타났다. 하지만 이쪽이 숫자도 많고 뛰어난 실력을 가진 자들도 많아 간 단히 정리되고 말았다. 마지막 두 명을 간단히 해치워 버린 시드미안 경은 두 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2층을 조사하기 위해 뛰어 올라갔고, 지미와 라 빈은 1층의 여러 방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보게 안토니, 이리 좀 와 보게나.”
시드미안 경이 안토니를 부르자 무슨 일인가 하고 팔시온과 가스톤까지 2층으로 올라갔다.
“여기 문이 잠겨 있는데 도저히 열리지가 않는군.”
“어디 좀 보게 비켜 주십시오.”
안토니는 이리저리 문을 검사해 보더니 확정적으로 말했다.
“마법을 걸어 놨습니다. 문짝에 직접 마법을 걸어 놓은 것 같지는 않고, 아무래도 문지기 부적을 걸어 놓은 모양인데요?”
“문지기 부적? 열 수는 있나?”
“별로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문짝에 마법을 걸어 놨으면 그 문을 마법이 직접 방어하지만 부적은 다르죠. 어떤 약속어를 말하기 전에는 문이 안 열 리게만 막아 주니까요. 그냥 문을 때려 부수면 되죠. 하지만 이런 부적은 비싸니까 되도록 살살 부숴 주세요. 회수해서 써먹게………..”
“알겠네.”
시드미안 경은 곧장 검을 꺼내서는 경첩 부분을 잘라내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 뒤쪽에 부적이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아마도 이 부적은 단순한 도 둑 방지용이거나 아니면 부하들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붙여 놓은 모양이었다.
그 방 안에는 가구도 거의 없었고, 창문에 부적 한 장 붙어 있는 것과 책상 위에 부적 몇 장이 놓여 있는 것 외에는 별게 없었다. 시드미안 경이 서랍 을 뒤져 나가는 동안 팔시온은 휴지통을 뒤지기 시작했고, 나머지는 이곳저곳에 뭔가 있나 해서 샅샅이 들췄다.
이때, 스미온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시드미안 경을 불렀다.
“시드미안경, 여기 좀 보시지요.”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집중됐다. 그곳에는 멍청한 표정의 예쁜 여자 애가 한 명 앉아 있었다. 그 꼬마 아이는 모두 다 알고 있는 라나 슈바이텐베 르크였다. 맙소사……………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라나의 몸을 살펴보던 안토니가 곧장 답했다.
“마법에 의해 정신이 제압당해 있군요.”
팔시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그 마법을 풀 수 있습니까?”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안토니 크로와가 라나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 뭔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하자 손바닥에서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깨어나라!”
그러자 눈을 동그랗게 뜬 라나가 사방을 둘러보더니 곧이어 눈에 익은 얼굴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저, 그냥 이리저리 물어보며 따라오다가 또 그 사람한테 잡혔거든요……. 으응,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안 나요.”
“당연하겠지. 저 애를 어떻게 돌려보내지?”
시드미안 경의 한탄 섞인 질문에 팔시온이 고개를 저었다.
“돌려보내도 또 따라오려고 들 텐데요. 게다가 누가 이 아이를 데려다 줄 겁니까? 지금 한 사람이 아쉬운데…………… 어쩔 수 없어요. 그냥 데리고 갑시 다. 그건 그렇고 너 배는 안고프냐?”
“배고파요.”
“안토니 씨, 죄송하지만 저 아이 좀 데리고 가서 뭘 좀 먹여 주십시오. 밑에 식당이 있고 그 녀석들이 끓여 놓은 야식도 있더군요.”
“그러지요.”
안토니 크로와가 라나를 데리고 계단 밑으로 내려가자마자 시드미안 경이 팔시온을 붙잡고 말했다.
“저 아이를 데리고 갈 수는 없네. 이건 애들 장난도 아니고 아주 위험하다구.”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시드미안 경. 그렇지만 지금은 돌려보낼 방법도 없구요. 또 돌려보내는 방법을 그 아이 앞에서 쑤군거리면 그 애도 주의 하게 될 텐데, 그때는 잡아서 돌려보내기도 힘들어지죠. 일단 국경경비대나 신전 같은 신뢰할 수 있는 단체를 만나면 꽁꽁 묶어 그들에게 부탁하고 떠나는 게 나을 거예요. 그렇지만 또 따라온다고 하다가 다시 잡힐 수도 있으니, 제길…….”
한참 생각하던 팔시온이 덧붙여 말했다.
“할 수 없군요. 우선은 추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다크에게 맏기죠. 검술 실력이 뛰어나니 별 문제야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