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5권 18화 – 최악의 저주
최악의 저주
일행들의 여행은 토리아 제국에서 사실상 끝났다. 토리아 제국의 수도가 있는 갈라파인 평야. 거기서 그 회색 갑옷 기사들의 흔적은 끝이 났다. 일행 들은 모두들 흩어져서 사방을 돌아다니며 “혹시 회색 갑옷을 입은 기사들과 검은색 가죽 갑옷을 입은 젊은이가 함께 가는 걸 못 봤느냐?”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3일 정도가 지났지만 그런 자들을 봤다는 인물들이 없었기에 그들은 더욱 범위를 넓히며 알아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다크는 수도의 마법사 길드에 잠깐 들러 혹시나 차원, 시간, 공간을 함께 거슬러서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이곳에서도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 후에 다크는 그냥 여관에 박혀 있기도 하고 때로는 거리를 산책하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팔자 좋게도…………. 하지만 그가 여관에 있지 않고 거리를 배회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콩알만 한 계집애 하나가 정말이지 꼴 보기 싫어서였다.
그런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기 있군요.”
“예, 바로 저놈입니다.”
“좋아. 너는 공간 이동 마법을 준비해라. 내가 저놈에게 저주를 걸기로 하지.”
“예.”
그의 제자가 세 명이 이동할 수 있는 공간 이동 마법을 외우고 있을 때 노마법사는 왼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향해 중얼거렸다. 저주의 주문처럼 장기 간 지속되는 마법인 경우 언제나 마법의 매개물이 필요하다. 그 매개물을 명확히 정하지 않았을 때는 시전자 자신이 매개물이 되지만, 이번 대상의 경우 상당히 위험한 인물이기에 매개물을 자신의 반지로 결정한 것이다. 마법의 매개물은 상당한 강도를 가지는 게 좋다. 그래야 실수로 그게 부서져 마법이 풀릴 가능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석 종류는 여러 가지 마법의 매개물로 아주 각광받았다.
“이 반지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되어라.”
6사이클에 들어가는 마도사인 그가 제법 시간을 들여 외워 놓은 주문은 저주……. 그중에서도 꽤나 고위급에 들어가는 저주였다. 이 저주에 걸린 놈 들은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서 자살할 확률이 99퍼센트에 이를 정도로 뛰어난 위력을 자랑한다.
자아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몸만 깨끗하게 바뀌어 버리기에 자신이 가장 싫어하던 것과 똑같은 모습이 된 자신을 용납할 수 있을까? 보통은 비통한 나날을 며칠 정도 보내다가 절망하여 그대로 자살하게 된다.
그렇기에 이걸 쓰기만 하면 저 황당할 정도로 강한 놈도 자살의 충동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잘못 저주에 걸려 무시무시할 정 도로 강한 놈이 될 수도 있는데싫어하던 대상이 드래곤이라면-이때는 살기 위해서 죽자고 도망 다녀야 하는 비극이 시작된다. 하지만 상대가 뭐 가 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안고서라도 저주라는 방법을 택한 것은 그 상대를 죽일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윽고 제자가 모든 주문을 다 외운 후 고개를 까딱거려 신호를 하자 노마법사는 저 멀리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놈을 향해 시동어를 외쳤다. “디스라이크(Dislike)!”
노마법사가 주문을 외움과 동시에 반지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저쪽에서 천천히 걸어가던 다크의 몸에서도 빛이 났다. 다크는 자신의 몸에서 빛이 나오는 걸 느낌과 동시에 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방금 전까지 막대한 기는 느꼈지만, 그 어떤 살기도 느껴지지 않았 기에 모른 척했던 것인데 그게 지금 엄청나게 후회스러웠다.
엄청난 속도로 다크가 뛰어오는 걸 본 다론은 재빨리 시동어를 외쳤다.
“워프!”
겨우 1, 2초 정도 주문이 발동되는 시간이 그렇게 느리게 느껴지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상대와의 거리가 순간적으로 좁혀지는 그때 갑자기 상대 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는 것이 보였고 그 순간 그들은 공간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적당히 땅 위에 그려 놓은 마법진이 갑자기 엷은 빛을 띠기 시작하더니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간 이동 마법은 대단히 위험한 마법이다. 이동 위치는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지만 만약 그 높이 설정에 실패하면 곧바로 땅바닥이나 나무에 끼여 사망하는 수가 있었다. 그 때문에 대부분 공간 이동 을 할 때는 반대편에 높이 설정을 해 주는 마법진을 그려 두든지 아니면 아예 끼일 위험성이 없는 하늘 위로 워프해서 거기서 비행 주문을 외우는 것 이 통상적인 방법이었다.
어쨌든 토지에르 일행은 워프에 성공해서 나타났고, 토지에르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걸 본 크로마스가 말했다.
“성공한 것 같습니까? 저는 어떻게 되었는지 잘….”
“성공한 것 같네. 자네도 그걸 봤겠지? 놈의 몸에서 빛이 나는 것을 말이야. 일단 저주는 걸렸어. 뭐로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런데 돌진 해 오던 놈의 속도가 나중에 급속도로 느려지기 시작하는 것도 느꼈나?”
“예.”
“그 밝은 빛 때문에 뭐로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확실해. 놈은 지금 상태보다 훨씬 더 약해졌어. 그건 우리 쪽으로 돌진해 오던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일단은 성공했으니 이제 돌아가서 축배를 들어야지. 다론!”
“예, 스승님.”
“돌아갈 준비를 해라.”
“예.”
다론은 커다란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왕궁에 있는 거대한 이동 마법진을 향해 장거리 워프를 하려면 쓸데없이 마나를 움직이고 주 문 외운다고 시간을 소모하는 것보다는 초대형 마법진이 최고였다. 대강 그려 놓으면 나중에 바람 한 번 불면 그 흔적은 사라질 것이고, 또 마법진이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주문을 알지 못한다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이동에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제자가 쓱쓱 마법진을 그리는 걸 보면서 토지에르가 크로마스에게 말했다.
“우리나라에도 저런 이동 마법진 체계를 만들어야겠어. 힘은 많이 들겠지만………….”
“돈도 많이 들 텐데요. 지금 전 국토에 이동 마법진을 깔아 놓은 국가는 마도 왕국 알카사스뿐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나중에 전쟁이 시작되면 간이 마법진이라도 만들어 둬야 만일의 사태가 일어났을 때 대비가 되지. 옛날에 코린트가 습격해 왔을 때도 이동 마법진만 있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거야.”
대화를 나누는 사이 다론이 노마법사에게 다가왔다.
“다 끝났습니다, 스승님.”
그들은 마법진의 중앙으로 걸어가서 자리를 잡았고, 곧이어 다론의 주문에 의해 마법진이 발동했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사물이 뿌옇게 흐려지면서 곧이어 시커멓게 바뀌었다. 그 순간 토지에르 경은 자신의 손가락에 끼고 있던 그 반지를 빼어서 던져 버렸다. 공간과 공간의 틈 속에 버려진 이 반지 는 무슨 수단과 방법을 써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토지에르 경의 입가에는 짙은 미소가 어렸다.
아무래도 좀 이상했다. 주위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거리며 쳐다보는 것도 이상했고, 온몸에 힘이 없는 것도 이상했다. 그리고 허리에 걸린 그 얄 팍한 샤벨이 이렇게 무겁다는 것도 이상했다. 하여튼 아까 몸에서 빛이 난 이후로 모든 것이 이상할 뿐이었다.
이때 문득 다크는 자신의 옷소매가 손목이 아닌 저 밑에까지 내려와 있다는 걸 느꼈다. 손을 들자 자그마한 손이 소매 속에 가려져 있는 게 보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잘 맞던 옷이었는데…………. 문득 이상함을 느낀 다크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져 봤다. 확실히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느낌 뿐인 것 같기도 하고. 몸 위로 손이 지나가는 감각이 오는 걸 보면 몸에 큰 이상은 없는 것 같은데… 이때 문득 그의 손에 뭉클하고 큼직한 살덩어 리가 만져졌다.
다크는 경악해서 여관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말이 달려가는 거지 아무리 꽁지 빠지게 힘을 써도 속도는 나지 않았다. 온몸에서 기라고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70여 년을 수련해서 모았던 기가 일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곧 숨이 턱에 차올랐고, 몸 곳곳에서 산소를 원하는 아우성이 들리 는 것 같았다.
“헉, 헉, 헉…….”
지금 여관에 남아 있는 사람은 마법사들과 라나뿐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이라면 지금 왜 자신의 몸이 이렇게 바뀌었는지 알려 줄지도 몰랐다. 쿵!
갑자기 라나가 문을 박살 낼 듯 열고 들어와서는 숨을 헐떡거리는 걸 보고 가스톤이 놀라서 말했다.
“왜 그러니? 놈들을 봤냐?”
“헉헉헉, 헉………….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라나를 보다가 가스톤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라나가 다크의 옷에 다크의 검을 차고 있었으니 이상할 수밖에 없었 다.
“설마…….”
“이봐요, 가스톤! 갑자기 산책하다가 내 몸이 이상해진 것 같은데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 줘요.”
“산책하다가 무슨 일을 당했는데?”
“그때 봤던 그 마법사 놈들을 만났는데, 이상한 주문을 외웠고, 내 몸이 이렇게 변하는 사이 도망가 버렸다구요.”
“크하하하핫!”
일의 전말을 알아챈 가스톤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무슨 저주 같은 걸 받은 모양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라나가 되다니… “왜 그래요?”
다크가 약간 언성을 높이자 가스톤은 두말하지 않고 저쪽에 있는 거울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직접 봐. 내가 백번 말해 봐야 소용없으니까 직접 보라구.”
“꺅!”
그와 동시에 다크가 쓰러져 버렸다. 그러자 가스톤은 가벼운 다크의 몸을 안아 들어 침대에 눕힌 다음 중얼거렸다.
“놀라운 저주야. 육체가 완전히 바뀌었어. 아무리 정신이 강하다 해도 그 충격을 버틸 수는 없었겠지. 일이 더럽게 되어 가는데. 저녁때가 되자 수색 작업에 나갔던 일행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가스톤으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다크는?”
“지금은 잠들어 있어요. 충격이 컸겠죠.”
“흐음…, 지금 다크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가스톤은 시드미안의 질문에 침중한 어조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물론 라나보다는 낫겠죠. 그러니까 지금의 상태는 검술의 궁극을 강의만 받아서 이론상으로는 완전히 터득하고 있는 어린 여자 애와 같다고 보시 면 될 겁니다.”
그러자 시드미안은 로니에 사제를 향해 물었다.
“그 저주를 풀 수는 없었습니까?”
로니에 사제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는 이미 도착하자마자 자고 있는 다크를 향해 축복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저주를 풀 수 있다고 배 운 모든 신성 마법을 다 실행해 보고 내려온 길이었다.
“대단히 고위급의 저주인 모양입니다. 제 실력으로는 불가능하니까 어디 신전에라도 가서 문의를 해 보는 게 좋겠더군요.”
그러자 저쪽에 앉아 있던 스미온이 궁금하다는 듯 말했다.
“저… 안토니 씨, 다크는 이제 완전히 여자가 된 건 가요? 아니면 얼굴과 체형만?”
이해한다는 듯 미소를 띠며 안토니가 대답했다.
“아, 그게 궁금한 모양이군. 지금 다크는 완전히 여자야. 원래 다른 형태로 모습을 바꾸는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변형) 같은 경우 겉모 습은 완전히 바꿀 수 있지만 타고난 성(性)이 바뀔 수는 없지. 그러니까 남자가 어떤 여자의 모습으로 트랜스포메이션한다면 겉모습은 그 여자와 같 게 되겠지만 성기는 남자의 것이야. 물론 유방이 붙을 수도 없지. 무슨 말인지 알겠나?”
“아, 예…….”
“다른 종으로 바뀐다 해도 그건 변함이 없어. 개구리로 바뀐다 해도 수캐구리가 되고, 닭이면 수탉이 되는 거야. 하지만 저주는 다르지. 성은 물론, 무엇으로든 바뀐단 말이야. 대신 트랜스포메이션이나 마찬가지로 무생물로는 바뀌지 않아. 즉, 저주를 걸면 사람이 개구리나 뱀 등으로는 바뀔 수 있 어도 의자나 탁자로는 바뀔 수 없어. 하지만 완벽한 변환에 있어 저주가 가장 무서운 거야. 성별까지 완전히 바뀐단 말일세. 대신 약간의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이번에 일어난 일처럼 상대가 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구. 다크가 갑자기 개구리가 될 수도 있었고, 말, 소, 고브린, 오크, 트롤, 오우거, 늑대 등 뭐든지 될 수가 있었지. 알겠나?”
“헤, 재미있군요. 그 저주란 거 배우기 어려운 건가요?”
“저주의 주문은 대표적인 흑마법이지. 흑마술을 익히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지. 악마를 불러내기가 힘들지만 일단 불러내기만 한다면 그다음은 일 사천리지. 그놈에게 영혼만 팔면 되니까 생각 있으면 한번 시도해 보게나.”
“에엑! 싫다구요.”
이때 다크는 잠에서 깨어나 멍청하게 침대에 앉아 있었다. 잠시 기절했다가 그게 잠으로 연결되었지만, 사람이 낮잠을 몇 시간이나 계속 잘 수는 없 었기에 깬 것이다.
나중에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렇게 형편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은 정말이지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다크는 여자로 바뀌 면서 자신이 평생 이룩한 모든 것을 잃었다. 70년 동안 쌓았던 그 막강했던 내공과 환골탈태를 거치면서 다져진 육신을…………….
다크는 허리에 찬 샤벨을 천천히 뽑았다. 여자용 검 샤벨…………. 처음 이곳에서 여행을 시작했을 때 여강도로부터 빼앗은 검. 처음 빼앗아 쓸 때는 종 잇장보다도 가볍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한 손으로 들기도 어려울 만큼 묵직한 무게가 전해져 왔다. 지금의 육체로는 1.5킬로그램도 너무나도 무거 웠던 것이다.
“과연 나는 중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런 나약한 몸으로……………. 지금은 내 한 몸 지킬 힘도 없어…, 흑흑…….”
자신도 모르게 커다란 눈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져 바닥을 적시기 시작했다. 다크에게는 너무나 큰 시련이었다. 이때 미디아가 방 안으로 들어오려고 문을 열었다가 다크의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는 살며시 방문을 닫고 사라졌다.
‘실컷 울면 기분이 좀 가라앉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