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5권 20화 – 신탁
신탁
미카엘 일행이 낑낑거리며 짐을 지고 와서는 아데나 신전에 맡겨 뒀던 말들에 실었다. 그리고 신탁 내용을 듣기 위해 신전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물음이 사라진 드래곤 하트의 행방이라고 하셨죠?”
“예.”
“신탁에 따르면 푸른색 괴물이라고 하더군요. 두 번째 물음에 대해서는 답이 없었어요. 어쩌면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도 몰라요. 그리 고…, 세 번째 물음이 저 아이에게 저주를 건 마법사의 행방이죠?”
“예.”
“거대한 건물에 있다는군요. 그 건물이 뭔지는 모르겠어요. 큰 기둥들이 세워진 걸 보면 신전인지도…………. 어쨌든 사제의 말을 토대로 그림을 그렸어 요. 그걸 보시면 참고가 될 겁니다.”
미카엘은 달랑 두 장의 그림만을 받아 들고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두 그림 다 그냥 대강 그려진 것이었기에 뭐가 뭔지 알아보기가 매우 어려웠 다. 특히 한 장의 그림은 정말 괴물이었다. 거대한 머리통만 봐 가지고는 뭔지 알 수가 있나?
“떠그랄! 이게 뭐야?”
같이 그림을 들여다보던 지미도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글쎄요.”
“색깔이 푸르죽죽한 걸 보니 트롤인가?”
옆에서 함께 보던 라빈이 참견했다.
“하지만 트롤은 뿔이 없잖아요.”
그러자 지미가 대꾸했다.
“뭐 모르지. 트롤의 변종인지……………. 아니면 뿔이 세 개일 수 있어?”
둘의 말을 듣고 있던 미카엘이 투덜거렸다.
“이게 네 발로 걷는지 두 발로 걷는지, 몸통도 그려야 할 거 아냐? 제길 머리통만 대강 그려 놓고는 이게 뭔 줄 알고 찾으라는 거야?”
그러자 지미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다른 그림도 그래요?”
“이게 그 그림이다.”
널찍한 홀 중간에 마법진 같이 보이는 것 몇 개와 크고 높은 기둥들이 그려져 있는 이상한 그림이었다. 이게 그냥 넓은 건물인지, 아니면 신전의 일 부인지 알기 힘들었다.
“이거만 봐서는 알 수가 없겠는데요.”
“제길! 이래서 처음부터 저 신탁이란 걸 믿지 않았어.”
“원래 신탁이란 게 이래요?”
“신탁 자체가 이상한 약 먹고 오랜 시간 아데나 여신에게 바치는 춤이랍시고 광란의 춤을 추면서 본 어떤 환각을 말(言)이나 그림으로 표시한 거니, 환각제 먹고 지랄하는 미친년들하고 뭐가 달라.”
“얘기가 그렇게 되나요?”
“어쨌든 필요한 건 다 구입했으니 돌아가자.”
“휴우, 또 한 대 만들었군.”
한 마법사가 토지에르 경의 푸념에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는 널찍한 건물의 한 귀퉁이에 쌓여 있는 엑스시온들을 가리켰다.
“엑스시온 한 대 만드는 데 이렇게 힘이 들어서야…………. 과연 저 많은 것들을 다 만들 수나 있을지 걱정입니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 폐하의 칙명(勅命)이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완성해야 하는 거야. 그건 그렇고, 자네들은 수고했으니 이만 들어가서 쉬게나. 일주일 후에 또다시 중노동을 해야 하니.”
마법사들은 감히 궁정 제1마법사 토지에르의 앞에서 투덜거리지는 못하고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토지에르 경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마법진의 중심으로 걸어가서 이번에 생명을 불어넣은 엑스시온을 쓰다듬으며 뿌듯한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하
지만 왕국 내의 전 마법사를 동원해야만 하나의 엑스시온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 타이탄을 못 만드는 것 은 돈이 없어서, 또는 타이탄을 만들 재료가 부족해서…………. 그러고 보니 그 말이 그 말이군. 뭐 어쨌든 이런 이유들이었다. 확실히 자금의 문제는 타 이탄의 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몸통이야 쇠니까 별 문제가 없지만 크로네나 미스릴 같은 경우 엄청난 액수의 돈을 들여야 구입할 수 있었다.
또 엑스시온을 만들려면 상당량의 금과 은, 백금, 크로네가 필요했고, 또 엑스시온 힘의 핵을 만드는 데는 루비(홍옥)가 필요했다. 루비가 완벽한 덩 어리일 필요는 없다는 점 때문에ᅳ가루가 된 상태라도 상관없고 많기만 하면 된다어느 정도 돈이 적게 들지만…………. 청기사의 엑스시온은 달랐다. 엑스시온의 크기가 더욱 커짐으로 인해 더 많은 귀금속들이 들어간 데다가 루비와 함께 다른 엑스시온에는 들어가지 않는 드래곤 하트까지 집어넣 었던 것이다.
안피로스가 최후에 개발해 낸 엑스시온 제조법에 따르면, 엑스시온 내에 루비와 함께 드래곤 하트를 일정량 넣으면 더욱 막강한 증폭력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안피로스의 마지막 작품은 헬 프로네의 엑스시온을 더욱 발전시킨 형태의 것이었다.
아쉽게도 그의 던전에는 그가 마지막에 연구하던 여러 가지 물건들과 자료만 발견되었을 뿐 과거 크루마 제국 궁정 제1마법사로 활동하던 시절에 만들었던 타이탄들에 대한 자료는 없었다. 만약 그게 있었다면 아마도 청기사가 아닌 위험도가 훨씬 떨어지는 헬 프로네에 미스릴을 입힌 타이탄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지금 만들고 있는 이 청기사는 안피로스조차 드래곤 하트를 구하지 못해 이론상으로 설계만 해 둔 작품일 뿐 실질적인 테스트를 거친 작품은 아니었 다. 그 때문에 프로토타입 엑스시온을 만들기 위한 연구가 거의 10년에 걸쳐 진행되었고, 시험용 소형 엑스시온에 마력을 불어넣다가 폭발 사고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토지에르 경은 그때마다 그의 뛰어난 실력으로 대형 사고로 이어지지 않게 막아냈고, 드디어 안피로스의 이론을 실제로 만들어 내는 데도 성공했던 것이다.
그 첫 번째 수확물이 한쪽 구석에 서서 얕은 잠을 자고 있었다. 아직 완성품이 나오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그 출력은 통상 출력의 2.5배 내지 3.5배 사이일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다. 헬 프로네급이 2.2배였으니까 그보다 더 발전된 엑스시온이라면 그보다 더 뛰어나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 가? 그래서 보통보다 좀 더 큰 엑스시온을 위해 청기사 설계진들은 6.1미터의 거대한 타이탄을 만들어 냈다.
과연 프로토타입의 엑스시온이 어느 정도 출력을 내 줄지는 신만이 아는 사실이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여튼 저 프로토타입 청기 사가 깨어난 후에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 시간은 60일도 남지 않았다.
토지에르가 여태까지의 고생을 회상하며 감회 어린 표정으로 앉아 있는데, 제자 녀석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저, 놈들의 동태를 감시하라고 보낸 첩자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오오, 그래? 어떻게 되었느냐?”
“여관을 착실하게 감시했지만 더 이상 그런 검은색 옷을 입은 검객의 모습은 확인할 수 없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자살하거나 파티를 떠난 모양입니 다.”
토지에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피어 올렸다.
“호오, 너도 오늘 일한다고 피곤했을 텐데, 이렇게 달려와 알려 줘서 고맙구나. 이제 들어가서 푹 쉬거라.”
“예, 스승님. 스승님께서도 쉬십시오.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탁은 도저히 도움이 되지 않는데…
미카엘은 파티를 이끌어 가고 있는 리더격 존재들인 시드미안 경, 팔시온, 안토니와 맥주를 마시며 앞으로의 향방에 대해 의논을 시작했다. 얄궂은 그림 한 장으로는 도저히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아니, 도움이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네. 이 그림을 보면 확실히 괴물이야. 하지만 이 세상에 뿔 달린 짐승만 생각해 보면 뭔가 답이 나올 수도 있지.” 시드미안 경의 말에 안토니가 덧붙였다.
“푸른색에 뿔 달린 짐승이라…………. 거기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면 가장 유력한 녀석이 있기는 있죠.”
“누군데요?”
“블루 드래곤. 나도 본 적이 없어서 뿔이 몇 개나 달렸는지, 안 달렸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드래곤의 색상 중에는 블루도 있어요.”
“드, 드, 드래곤이라구요? 저는 이렇게 빨리 죽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안토니도 좀 더 오래 살고 싶으면 딴 걸 생각해 보라구요. 우리가 가기만 하면 불문곡직 아작아작 씹어서 디저트로 먹어 버릴 텐데…………….”
미카엘의 엄살에 시드미안 경은 침착하게 대꾸했다.
“꼭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지. 드래곤을 방문하려면 좀 더 강력한 동료가 있는 게 좋겠지.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알카사스로 가세. 거기서 할 일이 있으니까.”
“마도 왕국 알카사스에는 왜요?”
“그야 다크의 저주를 그쪽에서 혹시 풀 수 있을까 알아보려고……………. 만약 안 된다고 해도 어떤 저주에 걸렸는지는 알 수 있을 거 아니겠나? 혹시 알 아? 그 저주가 아주 독특한 거라면 범인을 잡아낼 수 있을지…….”
“그럼 제가 일행들에게 연락하죠.”
팔시온이 위로 올라가려는데 위에서 미디아가 약간은 창백한 얼굴로 급히 뛰어 내려왔다.
“혹시 다크 못 봤어?”
“어? 미디아하고 같이 안 있었어? 아까 저녁 식사 때 술 실컷 마시고 뻗어서 네가 데리고 올라갔잖아.”
“그런데 샤워하고 나와 보니까 없잖아.”
“이런 제기랄, 콩알만 한 게 되게 말썽을 부리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