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5권 23화 – 또 다른 깨달음
또 다른 깨달음
점심 식사 후 시드미안 경 일행은 미네온 마법사 길드를 향해 길을 나섰다. 미네온 마법사 길드는 제법 높다란 탑같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 높이는 8 층이었다. 마법사 길드 건물의 옆에는 거대한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라빈이 호기심에 그 건물 안을 들여다보더니 놀라서 지미를 불렀다.
“지미!”
“왜?”
“이리 와 봐”
지미도 그 안을 살짝 들여다보고는 탄성을 터뜨렸다.
“우와!”
모두 호기심에서 그 안을 보았다. 거대한 공장 같은 건물이었는데, 여섯 대의 타이탄이 줄지어 서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타이탄을 만든다고 뛰어다 니고 있었다.
“타이탄을 만드는 공장이군. 저 타이탄은 쿠마보다 훨씬 작은 거 같은데?”
이때 뒤에서 근엄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작을지도 모르지. 저건 ‘크로메’라는 타이탄으로 높이가 4미터밖에 안 되니까 말이다.”
그들이 놀라서 뒤를 돌아보자 근엄하게 생긴 노마법사가 마법사의 정식 복장인 로브를 입고 서 있었다.
“저건 미란 국가 연합에서 주문한 타이탄이야. 몬스터 토벌을 위해 주문한 거지.”
“몬스터 토벌에도 타이탄을 써요?”
“그럼. 대신 저 타이탄은 대타이탄 전투를 생각하지 않고 만들었기 때문에 출력은 형편없지만 원체 가벼워서 제법 빠르지. 저거 가지고 오우거 사냥 을 하면 꽤 재미있을지도 몰라………..”
노마법사는 당당한 덩치를 가지고 있으면서 꽤나 실력이 있어 보이는 시드미안에게 말했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이오? 일반인은 들어올 수 없는 곳인데…..”
“아, 그게…………. 마법사 길드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우연히 안을 들여다보게 된 겁니다.”
“마법사 길드에는 무슨 일로?”
“다크! 이리 와 봐.”
여자애의 양쪽 어깨를 그 큰 손으로 잡고는 노마법사를 향해 밀어 보이며 팔시온이 말했다.
“이 아이가 저주에 걸렸죠. 혹시 고칠 수 있을까요?”
“흐음, 저주라고? 저주에 걸린 지는 얼마나 되었나?”
“한 달 정도 되었죠.”
“한 달이나? 으음, 어디 보자…………..?
이리저리 주문을 중얼거리면서 다크를 살펴보던 그 마법사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디스라이크군.”
“디스라이크요?”
“그렇네.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어떤 것이 되도록 만드는 주문이지. 그런데 왜 이런 예쁜 여자 애가 된 거지?”
“그야 그 여자 애를 다크가 끔찍이도 싫어했으니까요. 정말 감당 못 할 애였거든요.”
“그래도 이렇게 젊고 예쁜 애가 되었으면 다행 아닌가? 꼭 원상태로 돌아가야만 하나?”
“저, 사실 다크는 남자라서 생활하기가 좀…………. 그리고 원래 아주 뛰어난 무사였는데, 이런 근육 가지고 어디 힘이 나오겠어요?”
“그건 그렇구만…………….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군. 디스라이크는 상당히 고위급 저주라서 시전자나 풀 수 있을까. 대안으로 트랜스포메이션을 걸어 준 다 해도 그건 최대 30일 정도밖에 효과가 없는 데다가 여자 몸에 근육을 아무리 붙여 줘 봐야 그게 그거거든. 아무리 마법이 전능하다고 하지만 저 정 도 이상은 안 돼.”
그러면서 노마법사는 꽤 근육질의 몸매를 가지고 있는 미디아를 가리켰다.
“그러면 과거에 지녔던 마나라도 회복할 수 없을까요?”
“흐음…… 그건 힘들지. 육체는 그대로 두고 마나만 되돌리는 마법은 존재하지 않아.”
“그럼, 아예 방법이 없는 겁니까?”
“그렇다네. 저주라는 것은 매우 완벽하게 몸을 바꿔 주지. 트랜스포메이션은 안 그렇지만…………. 저 아이는 이제 아이도 낳을 수 있어. 그러니 딴 생각 말고 그냥 지금의 상태에 만족하고 적응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겠지. 저 몸을 가지고는 복수는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 정도 고위급 흑마법을 구사하는 마도사라면 대단한 인물일 테니까………….”
“그럼 그 정도 흑마법을 구사할 만한 인물들의 명단을 혹시 알 수 있을까요?”
“복수라도 대신해 주게?”
“예.”
“자네들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그런 명단은 없어. 나도 과거 흑마법에 대해 연구를 해 본 적이 있어서 약간 알 뿐…………. 사실 흑마법사들은 악마와 거 래를 하는 사악한 자들이기에 대놓고 ‘나는 흑마법을 배웠다’하고 떠벌이지는 않는다 이 말일세. 그러니 지금 이 세계에 얼마나 많은 흑마법사들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가 없지.”
“어쨌든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낙심한 일행이 인사를 하고는 돌아가려고 하는데 노마법사가 다크를 불렀다.
“다크라고 했나? 잠깐만 이리 와 보게.”
다크가 다가가자 노마법사는 약간 불쌍하다는 눈빛을 띠었다.
“흑마법사를 상대해야 하는 경우 저주에 자주 걸리게 되지. 아무리 능력 있는 마법사라도 저주의 손길을 벗어나기는 힘들지. 미리 저주를 막기 위해 매직 실드나 바리어라도 치고 있었다면 모르지만……………. 어쨌든 디스라이크에 걸려 아직도 자살을 하지 않은 걸 보면 자네도 꽤나 정신력이 대단한 인 물인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자네는 지금 육체만이 엉망일 뿐, 자네가 쌓았던 그 높은 무술에 대한 기억은 보존하고 있지?”
다크는 노마법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몹시 화가 난다는 듯 대답했다.
“그렇죠.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
“어떤 사람이라도 한 번 갔던 길을 다시 가기는 쉬운 법이야. 노력을 한다면 과거와 같은 힘을 발휘하기는 힘들겠지만, 그와 비슷한 경지까지는 몇 년 걸리지 않아 이룩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런 노력 한 번 안 해 보고 포기하기에는 이르지 않을까?”
“다시 한 번 더… 해 보라구요?”
“그렇네. 저주를 건 마도사를 잡는다 하더라도 저주에서 벗어나기 힘들지도 몰라. 무턱대고 언젠가 저주가 풀릴 때를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현재의 몸이라도 최대한 단련을 해 보게. 그러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지.”
노마법사의 친절한 조언은 다크의 마음을 꽤나 흔들어 놓았다. 여태껏 자신을 지탱해 왔던 것은 끈기와 집념이 아니었던가? 그게 아니었다면 어떻 게 탈마(脫魔)라는 지고한 경지에 올라설 수 있었겠는가? 다크는 무의식중에 중원에서 인사하던 방식, 즉 양손을 포개 쥐고 포권 배례를 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도움 말씀 감사합니다.”
이 특이한 인사법에 노마법사는 약간 어리둥절해졌지만 그래도 그 상대의 말 속에서 진심 어린 감사의 감정을 읽었기에 따뜻하게 배웅을 했다.
그다음부터 보여 준 다크의 태도는 모두를 경악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대로 여관에 돌아가자마자 바로 현문(門道家)의 태허무령심법(太 虛無靈心法)을 운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속성인 마교의 내공 심법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자신처럼 조급한 마음 상태로 마교의 심법을 썼다가는 언제 주화입마를 당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고, 또 주화입마에 걸리면 지금 이 상태로는 곧바로 죽음이었다.
현문이 개발한 최고의 정통 심법인 태허무령심법의 강점은 그 정순함을 근원으로 하는 강인한 힘에 있었다. 만약 태허무령심법 이전에 또 다른 심법 을 익혔거나, 또는 그 이후에 익힌다면 기가 정순해지지 못해 태허무령심법이 가진 힘의 10퍼센트도 발휘하기 힘들었다. 다크의 경우 지금 완전히 내 공이 무(無)로 돌아간 상태였기에 이 방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이상한 자세로 앉아 눈을 반쯤 감고 내공 수련을 하고 있는 다크의 모습을 그들은 신기하게 생각했다. 이 들도 명상을 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고도로 발달된 내공 수련이란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나가 충만한 곳에서는 지속적인 수련만 해도 자연스레 기가 돌면서 어느 정도 성취를 얻을 수 있기에 기초적인 토납법 정도만 익혀도 충분 했기 때문이다.
육체의 수련을 선(先)으로 내공의 수련을 후(後)로 보는 그들의 입장에서 그따위 가냘픈 육체로 내공만 수련하는 사람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내공만 가지고 모든 게 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크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어느 정도까지 기반을 잡은 후 북명신 공을 이용해서 대량으로 기를 흡수하여 속성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해 버리는 것. 그것이 최선이자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3일간 시간을 준 시드미안이 다크에게 말했다.
“드래곤을 만나러 가는데, 너도 갈 거냐? 아니면 여기서 계속 수련하면서 우리들을 기다릴래?”
“같이 가죠.”
“내일 아침에 출발할 테니까 준비해.”
다음 날 아침 일행은 전과 같이 공간 이동 문으로 갔다. 그곳에서 사용료를 주고 그레이시온 산맥 부근에 있는 제법 큰 상업 도시 고헨으로 향했다.
그들이 밖으로 걸어 나오자 전과 마찬가지로 경비병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각 도시에는 도시 나름대로 경비병들을 고용해서 도시 내의 치안을 관리 했기에, 떠날 때는 별로 어렵지 않지만 안으로 들어갈 때는 이와 같이 복잡한 절차가 기다리는 것이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미네온에서요. 통행증은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이용권도…
팔시온이 내미는 서류와 미네온에서 받은 파란 표를 본 경비원이 말했다.
“모두 토리아에서 오셨군요. 그런데 방문 목적에는 무투회 참가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는 무슨 일로?”
“아, 여기 그레이시온 산맥에 몬스터들이 많다고 해서요. 그거 좀 사냥하면서 무투회 준비도 할 겸해서 말이지요.”
“오, 몬스터를 잡아 주신다면 저희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죠. 그런데 이 아이는 왜 통행증이 없죠?”
“저쪽에서도 말했지만 노예한테 무슨 통행증이 있겠소?”
“흐음, 노예라구요?”
경비병은 다크의 아름다운 얼굴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찬찬히 살펴보더니 말했다.
“하지만 인간인데?”
“인간처럼 보이지만 하프 엘프요.”
“아, 하프 엘프. 귀가 사람 같아서 깜빡 속았군요. 사냥 많이 하시길 빌겠습니다. 참, 그런데 그레이시온 동쪽에 있는 카마가스 지대에는 가지 마십 시오. 거기에는 성질 더러운 드래곤이 살고 있으니까요.”
“예,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