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5권 5화 – 한밤의 방문객

한밤의 방문객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으며 길을 가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었고, 일행은 모닥불을 피우고 야영을 준비했다. 가스톤은 의외로 상당히 부지런해 보였 는데, 특히 먹는 것에 더욱 부지런했고 또 그만큼 신경을 썼다. 그는 점심은 여관에서 산 빵과 햄 등으로 해결했지만, 야영을 시작하자 곧바로 모닥불 에 냄비를 올리면서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다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가스톤과 오랜 시간 함께 생활했기에 그런 것에 익숙한 듯했다. 팔시온은 조금 떨어진 개울에서 물을 길어 왔고, 미네 리아와 미디아는 요리하는 것을 도왔다. 미카엘, 라빈, 지미는 이곳저곳을 뒤지며 땔감을 모았다. 다크도 눈치를 살피고는 주변을 돌면서 땔감을 줍 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모닥불 주위에는 충분한 땔감이 쌓였고, 맛있는 스프 냄새가 사방에 퍼졌다. 사람들은 모닥불 주위로 모여들어 미네리아가 돌리는 스프 그릇을 받아 들고는 시장에서 충분히 구입한 빵과 햄, 소시지 등을 돌리며 만족스런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를 하면서 가스톤이 팔시온에 게 물었다.

“야영을 하면서 보초를 세울 필요가 있을까?”

“여기는 시가 가까워서 별 필요는 없을 거야. 하지만 중부 대로에서 벗어나는 모레부터는 돌아가면서 보초를 서야겠지.”

“그 근처에서 가장 위험한 몬스터라면 어떤 게 있나?”

그러자 팔시온이 음식을 우물거리며 자신의 짐 보따리를 뒤지더니 책 한 권을 꺼내 뒤적였다.

“뭐 별로 대단한 건 없어. 위어울프(Werewolf: 늑대 인간) 정도군. 원래가 겉모양도 사람이고, 또 사람과 같이 살다가 보름달만 보면 발작을 하는 놈들이니…………. 도시 주변에도 자주 나타나는 모양이지.”

세 명의 남녀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밤이기에 눈에 잘 띄는 불빛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아주 부드럽고도 긴 금발머리를 가진 여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옆 사람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 여자의 귀는 조금 특이하게 생겼다. 사람의 귀라고 보기에는 너무 크고 뾰족했다.

“네가 말한 녀석이 저들 중에 있는 게 확실하냐?”

“예.”

“어떻게 생긴 녀석이야?”

“보통 그냥 여행자 옷을 입었어요. 검은색 망토에 갑옷은 없었구요. 그리고 응…, 얼굴은 20대 초반 정도로 아주 젊어요.”

그 말을 들으면서 여자는 저 멀리 보이는 불꽃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쏘아봤다. 대강 잡아도 5백 미터는 족히 넘는 거리였기에 사람의 얼굴은 좁쌀 알갱이보다 작게 보였다. 하지만 여자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저기 보이는군.”

“지금 공격할 건가요?”

“아니, 나중에 잠들면. 그런데 그 남자가 그렇게 실력이 뛰어나다는 게 사실인가?”

“예, 검술은 잘 모르겠지만 격투술은 대단하던데요. 거의 손도 못 써 보고 칼 뺏기고, 돈 뺏기고, 옷 뺏기고, 익사할 뻔했다구요.”

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가 덧붙였다.

“그 녀석 마법도 쓸 줄 안다구요. 피하지도 않고 화살을 막은 걸 보면 무슨 방어 마법을 쓴 것 같았고, 또 곧바로 내 쪽으로 파이어 볼이 날아왔다니 까요. 그때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흥, 겨우 파이어 볼 가지구…………. 좋아 저놈은 내가 처리해 주지. 자, 배고프니까 식사부터 하자구.”

첫 번째 화살은 어두운 밤하늘에서 갑자기 날아왔다. 저녁때부터 감도는 희미한 살기(殺氣) 때문에 어느 정도 대비를 하고 있었기에 다크는 간단히 그 화살을 포착할 수 있었고, 곧바로 허리에 매여 있던 샤벨이 날아갔다.

쾅.

놀라운 일이었다. 화살과 검이 부딪치면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챙? 아니면 화살 잘리는 소리, 싹둑 정도 되려나? 하지만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소리 가 울려 퍼진 것이다.

화살에 폭탄이라도 장착했는지 화살은 강렬한 힘으로 폭발했고, 아무 생각 없이 샤벨을 거기에 가져다 댄 다크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물론 호신 강기(護身剛氣) 덕분에 큰 부상은 면했지만 그래도 타격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앞부분의 옷이 폭발의 충격으로 너덜너덜해졌으니까……………

그 폭발음과 동시에 가스톤이 외쳤다.

“마법입니다. 모두들 조심하세요.”

그런 다음 그는 중얼중얼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고, 그의 뒤에서 미네리아도 함께 주문을 외웠다. 이때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서 날 아올지 모를 마법 화살을 막으려고 주위를 살폈다.

무예 수업자들은 방패를 꺼내어 들었고, 미디아도 얄팍한 방패로 마법사들의 앞을 가렸다. 그들은 자신의 몸이야 어찌 되든 우선적으로 마법사를 보 호하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었다. 또 다른 화살이 몇 발 날아왔지만 이번 것들은 폭발을 일으키지 않았다.

다 찢어진 옷을 보면서 망연히 서 있는 다크를 보고 팔시온이 물었다.

“몸은 괜찮아?”

“아…, 괜찮아요. 그런데 방금 그게 마법입니까?”

“그렇지. 나도 자세히는 잘 모르겠지만 마법사들 중에 궁술(弓術)을 배운 자들을 위해 화살의 파괴력을 높이는 몇 가지 마법이 있다고 언젠가 들었 어.”

“그러니까 상대는 마법사면서 궁수라는 말인가요?”

“그렇지. 하지만 그렇게 강한 마법사는 아니야. 어이, 이봐!”

그와 동시에 다크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때 또 앞에서 다른 화살이 날아왔다.

‘알고도 당할 바보는 없지. 무상검법(無上劍法) 1장 4절, 방防!’

다크의 앞쪽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둥그런 막이 형성되었고, 그 화살은 방에 격중된 다음 강렬한 열기를 뿜으며 폭발했다. 하지만 방을 뚫지는 못 했다. 다크는 마법이 방을 뚫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더욱 빠른 속도로 경공술을 펼쳐 접근해 갔다. 드디어 나무 옆에 몸을 반쯤 감추고 화살을 날리는 상대가 보였다.

‘한 놈, 두 놈, 세 놈……………’

그중에 화살을 활에 먹인 상태에서 중얼거리고 있는 여자가 한 명 있었다. 다크의 몸은 그쪽으로 날아갔다. 여자는 다크가 자신을 향해 접근해 오는 것을 보며 주문을 완성할 시간도 없이 곧장 화살을 날렸고, 그 화살은 허무하게도 샤벨에 막혀 버렸다. 그와 동시에 날아드는 다크의 주먹……………… 퍽!

“꺅!”

그다음 우아하게 몸을 선회하여 저 녀석……………’

팍!

“윽!”

‘나머지…, 응? 어디선가 본 여자 같은데…

퍽!!

“악!”

다크는 한 대씩 맞고 기절해 버린 두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를 보고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응? 이 녀석 체격이 나하고 비슷하군.’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타 버린 옷을 벗어 버리고 그 남자의 옷을 벗겨서 입었다.

“뭐, 쓸 만하군. 옷을 태웠으니 보상을 해야지.”

옷을 바꿔 입고, 세 명의 손과 발을 꽁꽁 묶고 난 다음 그들을 툭툭 발로 차 깨웠다.

“이봐!”

그들이 깨어나자마자 다크의 심문(審問)이 시작되었다.

“방금 공격한 이유가 뭐야?”

하지만 상대로부터 답은 없었다.

“좋게 말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그런 거야?”

퍽!

거의 벌거벗은 채 묶여 있는 남자가 정통으로 배를 채여 고꾸라졌다.

“말로 할 때 들으라구. 왜 습격했지?”

그러자 저쪽에 있던 금발 여자가 매서운 눈매로 다크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 녀석이 더 잘 알 거 아냐? 불케인시의 도둑 길드 회원을 건드렸고, 또 도둑 길드에는 신고도 안 하고 도둑질을 했지? 그러고도 네 녀석이 무사할 줄 알았냐?”

다크는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나야 처음부터 무사할 줄 알았고, 또 지금도 무사하잖아. 가만있어 봐라……………. 일단은 그냥 놔두고 가고 싶다마는 그랬다가는 또 따라올 테고………….. 어떻게 하지?”

잠시 궁리를 하던 다크는 좋은 방법이 떠올랐는지 곧장 달려들어서 그 두 여자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끼약! 뭐 하는 거야? 이 파렴치한 놈.”

“이 치한!”

저마다 한소리씩 했지만 남자의 힘을, 그것도 무술 고수의 힘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그들의 속옷을 제외하고 홀딱 벗겨 버린 다크는 그녀들의 짐 보따리들과 뒤에 매여 있던 말 세 필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을 압수, 아니 그야말로 약탈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어쨌든 압수했다.

“두고 보자. 이 나쁜 놈!”

“죽여 버릴 거야……………”

“흐흐흐, 좋으실 대로…………… 다음에 또 봅시다.”

다크는 휘파람을 불며 새로 생긴 말 세 필에 짐을 싣고는 일행에게 돌아갔고, 짐은 물론 옷까지 다 뺏긴─거기다가 앞부분이 타 버린 옷까지 몽땅 다 가져가 버렸다—두 여자와 한 남자는 이를 갈면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남자라면 몰라도 여자가 속옷만 입고 돌아다닐 수는 없었고, 또 무기는 물론 말, 식량, 돈까지 다 빼앗겼으니 추격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주위를 경계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다크가 말 세 필을 끌고 오자 모두들 궁금해했다.

“그건 웬 말이야?”

“까불기에 몽땅 다 뺏어 왔죠. 옷이고 식량이고 말이고 다 뺏겼으니, 꼼짝없이 다시 불케인시로 돌아가야 할 겁니다. 아, 알고 보니 저한테 원한이 있는 녀석들이더군요.”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마법을 걸어 놓은 화살까지 날아오나요?”

“뭐, 별짓 안 했다구요. 불케인시로 들어가는데 웬 여도적이 돈 달라기에 잡아서

“수비대에 넘겼나?”

“아뇨. 돈 뺏고, 옷 뺏고, 무기도 뺏은 다음 손만 묶어서 강에다가 던져 버렸죠. 그래도 인간적으로 손만 묶었으니까 익사는 안 했다구요. 그때 가게 에서 팔았던 게 그 도둑 물건이니까…………….”

“꺄하하하…….”

기발한 대응책에 모두들 배꼽을 잡았지만, 뭐 그래도 도둑 길드의 회원을 건드리는 것은 별로 장수(長壽)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팔시온은 먼저 그 점을 상기하며 걱정을 해 줬다.

“그래도 상대가 도둑 길드의 회원이라면 조금 귀찮아질 텐데…………?

“상관없어요. 방금 그 녀석들도 도둑 길드 회원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몽땅 다 뺏어 왔죠.”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미디아가 다크에게 조언을 했다.

“그건 현명한 방법이 아니군. 나도 어렸을 때는 도둑 길드에서 일한 적이 있지. 단검 던지기도 그때 배운 거고, 도둑들은 하급 인생이라는 열등감 때 문인지 자존심이 강해. 그래서 무너진 자존심을 다시 살리기 위해 더 강한 사람하고 다시 올 거야. 그땐 아주 귀찮아지게 되지.”

“뭐 괜찮을 거예요. 멀리 도망치면 찾기도 어려워질 거고, 기껏 찾아서 복수 따위 한다고 해도 막대한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까 아마도 포기하겠 죠.”

“그렇다면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