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6권 18화 – 침입자

침입자

다음 날부터 까미유는 다크의 행방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게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의례적인 방문을 가장해서 귀족들 집에 들러 말을 빙빙 돌려 가며 수소문을 해 봐도 다크 크라이드라는 소녀는 없었고, 더욱 황당한 사실은 크라이드 남작 가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들 그와 소녀가 함께 나타난 것을 보고 둘 다 코린트의 귀족인 줄 알았다고 말하는 데야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죽자고 수소문을 해 본 결과 이곳 크라레스 귀족층의 정보통이라고 부를 수 있는 크류넨 자작 부인으로부터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크류넨 자작 부인은 거의 세 시간이나 별 재미도 없는 연애 얘기와 스캔들을 떠들어 댄 다음 마지막으로 제법 큰 스캔들이나 되는 듯 목소리를 낮춰 가며 말했다.

“호호호, 국왕 전하께서는 여색을 별로 안 밝히시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요즘 떠도는 소문을 들으니 그게 아니지 뭐겠어요.”

목소리를 낮춰 가며 말을 했기에 뭔가 큰 건수라도 챙기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까미유가 신경질 나서 일어설까 말까 망설이는 동안 크류넨 자작 부인의 목소리 는 계속 이어졌다.

“글쎄, 국왕 전하께서 요즘 사랑에 빠지셨다고 그러지 뭐예요. 벌써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는데……. 놀라지 마세요. 상대가 열다섯 살짜리 소녀라고 하잖아요? 긴 금발에 대단한 미인이라더군요.”

열다섯 살에 긴 금발, 미인이라는 말에 까미유는 자신의 성급했던 판단을 뒤로 미루면서 약간 흥미를 보였다.

“대단한 스캔들이군요.”

“글쎄 말이에요. 얼마나 빠지셨는지 그 아이를 남작에 봉하셨다고 하더라구요. 하기야 왕비 전하께 들키는 게 약간 걱정이 되셨는지 비밀리에 봉하기는 하셨지만, 그래도 그걸 기사단에는 발표를 하셨으니 이건 공식적인 작위죠. 왕비 전하께서 아신다면 얼마나 원통해하시겠어요?”

“놀랍군요. 하기야 국왕 전하는 한창 혈기왕성하실 때가 아닙니까? 그래, 그 소녀의 이름은 뭐라고 하던가요?”

“크라이드 남작이라고 들었어요. 이름은 모르겠구요.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아예 궁에서 기거하게 하셨대요.”

하마터면 까미유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 나올 뻔했다. 궁 안에 처박아 놨으니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게 뻔한 노릇이었다. 이리 되면 일이 매우 어려워진다. 국왕의 애 첩이라면 납치하기도 매우 성가실 게 분명했다.

예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적당히 30분 정도 더 크류넨 자작 부인과 떠들어 댄 후 까미유는 사신 일행이 묵고 있는 관사(舍)로 돌아갔다.

아무리 막강한 배경을 지닌 까미유라도 왕궁 안을 돌아다니며 수소문할 수는 없었다. 또 그런 것을 수소문하러 다녔다간 그녀가 사라진 후 첫 번째 용의자에 자신 의 이름이 올라가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소녀와 노예의 초상화를 그려 가지고 첩자 둘을 풀어 위치 파악을 명령했다. 하지만 장소가 왕궁 안이다 보니 수색 작업은 매우 힘들었다.

코린트에서 파견한 사신 일행이 떠나기 이틀 전, 그날도 까미유는 여자를 꼬시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자신의 뛰어난 용모와 분위기 덕분에 안 넘어오는 여자는 거 의 없었다. 이곳은 코린트에 대해 별로 감정이 좋지 못한 나라였기에 자신이 코린트 사람이라는 것만 잘 숨기면 나머지 사항은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것이다.

보통 한 여자를 꼬시는 데 짧게는 30분, 길게는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소모되기는 하지만, 그는 구태여 귀부인보다는 평민을 유혹하는 걸 즐겼다. 그쪽이 훨씬 가 식이 없었고, 뒤처리가 깨끗했기 때문이다.

까미유가 사냥감이 없는지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산뜻한 모자를 쓰고,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눈에 띄었다. 전체적인 옷의 스타일을 보면 하녀 같기도 했지 만 까미유에게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녀라도 얼굴만 예쁘고 몸매만 좋으면 되지 평생 데리고 살 게 아닌 바에야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과 그녀의 출신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쭉 쫓아가던 까미유는 상대의 얼굴을 보고 약간 눈에 익은 얼굴임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꼬셨던 아가씨들 중의 하난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저쪽에서 이쪽의 얼굴을 봤는데도 아는 척을 안 하는 걸 보면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그녀를 따라가다 보니 그녀가 대장간으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온 짤막한 검을 주인에게 넘기면서 몇 가지를 설명 했다. 설명을 마친 후에도 돌아가지 않고 계속 서 있는 걸 보면, 주문 사항이 완성될 때까지 그곳에서 기다릴 거라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상 무료하게 서 있다 보면 옆에서 말을 걸었을 때 거절하기 힘들다. 그게 완성되기까지 기다리자면 심심하기 때문이다. 까미유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고 생 각하고는 그녀가 있는 쪽으로 갔다.

“저, 말씀 좀 묻겠습니다.”

“예? 무슨 일이십니까?”

그녀가 자신 쪽으로 얼굴을 돌렸을 때 까미유는 상대의 얼굴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뭔가 밸런스가 맞지 않는 얼굴……. 잠시 생각하던 까미유는 곧 그녀의 귀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귀가 없다면 그 귀는 저 모자 안에 있을 것은 당연한 일. 귀가 없는 동물은 없으니까 간단하게 추리하면 수인족 (獸人族)이란 해답이 나온다. 그래서 얼굴이 낯이 익었다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인간이나 묘인족, 견인족, 조인족 등은 척 보면 그게 어떤 종족인지 금세 알 수 있다. 견인족을 묘인족으로 착각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또 묘인족이 묘인족을 찾거 나 견인족이 견인족, 또는 사람이 사람을 찾는 것은 쉽다. 하지만 사람이 묘인족 중의 하나를 찾으려면 얘기가 달라진다.

종(種)이 달라서 그런지 자세히 보면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서로 비슷비슷하게 생겼기에 알아보기 힘들다는 난점이 있었다. 흑인이 흑인들 중에서 흑인 한 사람

알아보기는 쉽지만, 백인이 흑인들 중에서 어떤 한 흑인을 알아보기는 매우 힘든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그건 수인족도 마찬가지다. 이쪽이 인간이라는 것은 빨리 알아보겠지만 누가 누군지 알아보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는 것이다. 하지만 노예들의 경우 원체 인간들 과 섞여 살면서 인간들의 얼굴을 많이 보기에 인간들이 수인족을 보는 것과는 조금 상황이 다르다. 그들은 수많은 인간들의 얼굴을 보아 왔기에 그 모양을 금방 구 분할 줄 알았다.

거기에다가 그들에게는 인간이 가지지 못한 장점이 있다. 바로 냄새를 잘 맡는 뛰어난 코다. 그렇기에 돈이 별로 없는 크라레스는 군견을 쓰지만, 코린트의 경우 상당수의 견인족(犬人族)을 호위병으로 쓰고 있었다. 어쨌든 까미유가 잠시 생각을 한다고 멍하니 있는 사이 상대도 이쪽을 보면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저, 혹시 무도회에 주인님과 함께 들어가신 나리가 아니십니까?”

“오, 너였구나. 그래 다크 크라이드 남작은 잘 계시냐?”

까미유는 혹시나 노예가 혼동한 것일 수도 있기에 주인 이름을 분명히 밝혀 확인을 했다. 만약 여기서 노예가 “실례했습니다. 어쩌구” 한다면 그냥 돌아설 생각이 었는데, 노예의 대답은 그의 마음에 매우 흡족한 것이었다.

“예, 나리.”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이냐?”

“주인님 심부름 왔습니다. 검 손잡이를 바꿔 달라고 하셔서요.”

“너희 주인은 검도 쓰시냐?”

“예.”

“손잡이를 어떻게 바꿔 달라고 했는데?”

“손잡이가 너무 짧다고 하시면서 30센티미터로 늘려 달라 하셔서요.”

“손잡이를 그렇게 길게? 검이 꽤 무거운 모양이지? 롱 소드냐?”

“아니요, 샤벨입니다.”

노예가 가리킨 곳을 보니 과연 검신이 60센티미터 정도 되는 샤벨의 손잡이를 떼어 내고, 대장장이가 30센티미터나 되는 손잡이를 붙이고 있었다. 60센티미터 검 에 양손 검에나 쓸 만한 손잡이를 붙이는 걸 보고 까미유는 기가 막혔다.

“저렇게 하면 검의 모양이 안 나는데, 그걸 너희 주인은 알고 시킨 거냐?”

“예, 정확히 그렇게 명령하셨어요. 30센티미터짜리 손잡이를 붙여 오라구요. 대신 칼날받이는 없애 버리라고 하시더군요.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참, 너희 주인은 어디서 사시냐?”

“왕궁에요.”

“한번 찾아뵈어도 상관없겠는지 물어봐 다오.”

“예, 하지만 제가 물어봐도 소용없을 겁니다. 주인님 찾아오는 손님은 본 적이 없거든요. 참, 토지에르 나리는 한 번씩 들르시지만요.”

“왕실 마법사 토지에르 경 말이냐?”

“예.”

“그럼, 너희 주인은 토지에르 경의..”

까미유는 뒷말을 못 잇고 조금 버벅거렸다. 잘못하면 정부(情婦)라는 말이 나올 뻔했지만, 그건 자신이 생각해도 답이 아니었다. 토지에르의 정부에게 어떻게 작 위가 수여되겠는가? 또 왕궁에서 살고…….

“그냥 친구세요. 어쩌다가 한 번씩 찾아오시구, 또 주인님을 많이 생각해 주시는 분이죠.”

그렇다면 어찌 된 일이지? 아무도 안 찾아온다면 왕의 첩은 아니잖아. 그렇다면 설마 왕의 숨겨 놓은 자식? 설마……. 그것도 아니면 실력 때문에? 그것도 설마 지. 겨우 열다섯 살짜리 꼬마 계집애를 보고 뭐가 답답해서 벌써부터 작위까지 주면서.

까미유는 도통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까미유가 잠시 궁리하는 동안 검은 완성되었고, 노예는 대장간에 값을 지불하고는 전에 붙어 있던 손잡이와 검을 받아 들고 돌아섰다. 까미유는 그 뒤를 따라가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더 주고받았다. 일단 어느 쪽으로 가는지 감시를 해 두면 편하기 때문이다.

한참을 따라가 본 결과 그녀는 왕궁이 아닌 왕궁 옆쪽에 있는 건물로 들어갔고, 그는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왕궁 바로 옆의 건물이기에 경비가 매우 삼엄한 축 에 들어가는 곳이다. 그 말은 매우 소중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는 말. 그렇다면 저 아이의 정체는? 왕궁으로 곧장 들어가지 않은 걸 보면 후궁은 아니고, 정부? 숨 겨 놓은 딸? 미래를 보고 투자? 그것도 아니면 어떤 총애하던 인물의 자식? 이때 총애하던 인물은 귀족은 아니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평민에게 왕이 신세질 이유가 없으니 더욱 아리송해진다.

“제길, 어쨌든 위치는 대강 알아냈으니 납치하고 보는 거야.”

왕궁에 괴한들이 습격한 것은 한밤중이었다. 단 세 명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었다. 이들은 고도의 훈련을 받은 인물들이었고, 그런 만큼 기척을 숨기고 매끄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거기다가 이들로서는 다행인 것이 크라레스에서 보유하고 있는 그래듀에이트의 3분의 2가 점령지에 가 있다는 점과 목표물이 왕궁 안 이 아닌 왕궁에 부속된 건물에 있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그곳은 왕궁보다 경비병들의 감시가 소홀할 것이다.

며칠간에 걸친 첩자들의 감시를 통해 목표물의 방까지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지체하지 않고 3층에 위치한 그 방을 향해 뛰어올랐다. 발코니들이 줄줄이 연결되어 있어서 그들이 3층까지 올라가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 방 안으로 뛰어들었을 때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목표물이 잠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듯 얄팍한 샤벨을 뽑아 들고 저항했다. 여기서 그들은 두 번째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상대의 검술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생각하고 뛰어들었던 첫 번째 사내의 목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엄청나게 매끄러운 검 놀림. 어린 계집애라고는 상 상도 할 수 없는 기술과 속도에 그들은 감히 방심하지 못하고, 각자 무기를 뽑아 들고 그녀를 최대한 빨리 제압하려 했다.

두 번째 사내가 휘두르는 검을 재빨리 막아 내면서 뒤로 물러섰던 상대는 튕기듯 앞으로 나오면서 예리한 각도로 세 번째 사내를 공격했다. 정신없이 세 번째 사내 가 막는 동안 두 번째 사내가 그녀를 향해 돌진해 갔고, 그녀는 재빨리 뒤로 빠지면서 방어 태세에 들어갔다.

기술은 엄청나지만 힘과 무게에서 떨어지기에, 상대는 자신의 속도와 기술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공격과 방어법을 택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상대는 이쪽을 죽여 도 되지만 이쪽은 저쪽을 죽이지 못하니 그게 가장 큰일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상대를 제압하기는 매우 힘들어진다.

어쨌든 잡아가려는 쪽과 잡혀 가지 않으려는 쪽이 맞붙었으니 결코 조용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챙챙거리는 소리가 몇 번 들리지도 않아서 거의 문을 부수듯이 열 고 들어온 사람을 본 순간, 그들은 세 번째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 안으로 뛰어든 사내에게서 풍기는 기운이 결코 만만한 기사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해 줬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안에 뛰어든 걸 보면 이자는 근처에 있었을 거 라는 예측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 남자가 여자 애의 호위병이라는 말이었고, 호위병으로 그래듀에이트급을 세워 둘 정도라면 이 여자 애의 신분은?

세 번째 문제점을 깨닫는 순간 그들은 창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어내려 탈출했고, 나중에 뛰어든 사내는 검을 뽑아 들고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추격해 왔다. 다크는 박살난 창문을 통해 씁쓰레한 표정으로 밤하늘을 바라봤다. 오늘 일은 매우 급박했다. 운기조식 중에 낌새가 수상함을 포착하고 재빨리 운기조식을 마치 기는 했지만, 상대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움직였다면, 운기조식을 채 풀기도 전에 제압당했을 것이다. 오죽 경황이 없었으면 마법 장갑을 착용도 못하고 적들과 싸 우는 사태를 빚었을까. 마법 장갑만 끼고 있었다면 모두 다 죽일 수도 있었겠지만, 장갑이 없는 그녀로서는 하나 죽인 것만 해도 천행이었다. 그것도 며칠 전에 손잡 이를 양손용으로 개조를 한 덕분에 힘에서 크게 밀리지 않았던 덕분이다.

다음부터는 장갑을 벗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장갑을 끼고 있을 때 실바르가 돌아왔다. 아무리 그래듀에이트라도 야밤에 혼자 놈들을 추격하기에는 무리 가 있었고, 자신이 호위해야 하는 사람에게서 오랫동안 떨어져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디 다친 곳은 없습니까?”

“덕분에.”

“방을 옮기시죠. 창문이 깨져서 여기서 주무시지는 못합니다.”

사건이 끝난 후에야 들어와서 여기저기 물건을 정돈 중인 세린을 보며 실바르가 말했다.

“세린, 빨리 아씨를 모셔라.”

““예, 나리.”

“그자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예, 모두 도망쳤습니다. 야밤에 수색은 불가능하니 내일 아침에 수색을 시작할 겁니다.”

“어떻게 되었나?”

까미유의 질문에 검은 복장의 두 인물은 고개를 푹 숙였다.

“실패했습니다.”

“실패 원인은?”

“예, 세 가지가 문제였습니다.”

““세 가지? 뭔가?”

“첫 번째는 우리가 그 방에 도착했을 때 목표물이 벌써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상대는 대단히 예민한 감각을 지닌 것 같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지레느가 참견했다.

“정령을 다룬다면 정령에게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거나 문제가 있을 때 신호를 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어요. 그러니 그건 앞으로도 조심해야 할 사항이군요.”

“두 번째는 목표물의 검술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단칼에 2호의 목을 잘랐으니까요.”

까미유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단칼에? 그 아이의 힘으로 그건 무리일 텐데…….?”

“사실입니다. 대단한 기술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리고 이 상처도 그녀에게 당한 겁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아주 예리하고 긴 상처가 나 있었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아마도 그것 때문에 꽤나 피를 흘렸을 법했다. 그들은 실바르를 따돌린 후 상처 를 포션으로 치료하고는 줄기차게 도망쳐 와서 까미유에게 보고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개인 경호병이 한 명 붙어 있습니다.”

“경호병 한 명 가지고…….”

까미유가 비웃듯이 말하자, 부하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그 경호병의 실력이 그래듀에이트급이었습니다.”

“그래듀에이트라고?”

“예, 그자는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거기에 콜렌 기사단의 문장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자는 잠시 추격하다가 아무래도 여자 쪽이 걱정되는지 그냥 돌아갔 기에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점점 더 놀라게 만드는 아가씨군. 마법 같은 건 쓰던가?”

“예? 마법을 쓰는 건 못 봤습니다. 순수한 검술이었습니다.”

“역시……. 내 느낌이 정확했나?”

까미유가 중얼거리자 지레느가 끼어들었다.

“마법사와 달리 정령술사 중에는 검을 쓰는 사람도 많아요. 정령 마법에 깊숙이 빠져 들지 않고 그냥 정령만 부리면서 검을 쓰는 사람도 있으니까 단순하게 생각 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검술만으로 이들을 그토록 고생시켰다는 걸 보면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 모양이군요.”

“생각보다 더 거물인 것 같은데? 언젠가는 꼭 납치해 와야겠어,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