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6권 5화 – 전설의 골든 나이트

전설의 골든 나이트

“이상하군, 저건 뭐지?”

마법사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던 기사들 중의 한 명이 대답했다.

“그냥 돌무더기 같습니다. 지오네 경.”

“멍청하기는……. 내가 그걸 몰라서 자네한테 묻나? 왜 저런 돌무더기가 저렇게 많은지를 물은 거야.”

“글쎄요.”

“할 수 없군.”

지오네는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더니 시동어를 외쳤다.

“뷰 매직 포스!”

시동어를 외친 지오네는 약간 인상을 찌푸리고 뭔가를 궁리하더니 말했다.

“만일을 대비해서 타이탄을 두 대만 꺼내라. 저기서 희미하지만 마법의 기운이 느껴진다.”

“예.”

그와 동시에 공간이 열리면서 거대한 타이탄 두 대가 나타났다. 타이탄들은 허리에 있는 철 구조물에 검을 끼고—대부분의 타이탄은 검집을 쓰지 않고 그냥 검을 꽂아 놓을 수 있는 갈고리 비슷한 철 구조물만 가진다방패가 부착된 왼손에는 창 세 자루를 들고, 또 오른손에는 철퇴를 들고 있었다. 그들이 나타나자 주인들은 각자의 타이탄에 탑승했다.

“자, 이제 내려가기로 하지.”

이때 뒤에서 잠자코 있던 시드미안이 말했다.

“저, 지오네 경. 여기는 전에 와 본 곳입니다. 이곳에는 카렐이라는 엘프가 살고 있습니다. 저 구릉지대 중앙에 있는 돌집에서 살고 있지요.”

그 말에 지오네가 시드미안을 잠시 노려봤다.

“그런 보고는 하지 않았잖나?”

“예, 사실 그에게서 알아낸 건 아무런 보탬이 안 되는 정보였기에 생략했습니다.”

“무엇을 알아냈나?”

“블루 드래곤의 뿔이 하나라는 사실과 신탁의 그림은 본 적도 없다는 것입니다.”

“흐음.”

한참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하던 지오네가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혹시 그 녀석이 키아드리아스가 아닐까?”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매우 친절했고, 또 대단한 검술 실력을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검술? 검술이라……. 그렇다면 드래곤이 아닐지도 모르겠군. 일단 가 보자.”

타이탄 두 대의 경호를 받으며 구릉 지대 안으로 들어서자 과연 시드미안의 말대로 그 중앙쯤에 낡은 석조 건물 한 채가 서 있었다.

“너희 둘은 이 근처에 수상한 점이 없는지 살펴라. 또 너희 둘은 땔감이나 모아 와. 타이탄에 탄 녀석들은 주위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마라. 나머지는 같이 들어가 보 자.”

건물 안에 들어간 지오네는 엄청나게 놀랐다. 전에 시드미안 일행이 이 집의 묘한 불일치에 놀랐던 것과 같이, 허름한 겉모습과는 달리 매우 호화로운 내부 구조에 놀랐던 것이다. 집 안을 장식하는 방대한 양의 금은 세공품들과 매우 뛰어난 솜씨로 그린 그림들…

““대단하군.”

함께 들어간 기사 녀석들은 이리저리 주인도 없는 집 안을 뒤지며 값나가는 물건들을 챙기기에 바빴다. 지오네는 뭔가에 빠져 부하들의 그런 움직임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뷰 매직 포스 주문을 이용해서 알아본 결과 여기 있는 금붙이들 중 몇 개가 뛰어난 마법 도구라는 것을 포착했던 것이다. 지오네가 그 마법 도구들의 가치를 가늠해 본다고 정신이 빠져 있을 때, 사건이 벌어졌다.

“지오네 경!”

“무슨 일이냐?”

“스톤 골렘입니다.”

“뭐?”

그가 붙잡고 감상하던 마력검을 거의 던지다시피 하고 밖으로 뛰어나갔을 때, 여섯 대의 타이탄이 각자 무기를 휘두르며 수백에 달하는 스톤 골렘들과 격전을 벌 이고 있었다.

스톤 골렘은 돌을 각종 형상으로 깎고 다듬은 후 거기에 마법을 걸어 움직이게 만든 마법 생명체였다. 짐승이나 사람 모양 등 수많은 형태들이 존재했는데, 여기에 나타난 것은 사람과 같이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스톤 골렘뿐이었다. 이 스톤 골렘들은 3미터나 되는 육중한 덩치를 지니고 있었지만, 상대가 5미터가 넘는 타이탄들 이다 보니 어른 몇 명을 공격하는 아이들처럼 보였다.

“이럴 수가! 여기 있는 물건을 건드리는 것이 저것들을 움직이게 하는 열쇠였단 말인가?”

지오네는 건물 안으로 재빨리 뛰어 들어가, 탐욕에 사로잡혀 보물을 담고 있는 기사들을 불러 모았다.

“스톤 골렘이다. 건물 수색은 미루고 빨리 나와랏!”

그와 동시에 안에서 튀어나오는 기사들……. 주머니 여기저기에는 이미 이 집에서 약탈한 비싼 금은 세공품들이 들어 있었지만 지오네는 그것을 자세히 살펴볼 정신이 없었다. 자신이 만지다가 떨어뜨렸던 마법검을 제자리에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사이에 수하들은 밖으로 뛰어나갔고, 각자 타이탄을 불러내서 싸움을 벌 였다.

타이탄 아홉 대.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전력이다. 하지만 그 엄청난 위력의 타이탄들로도 거의 1천 개에 달하는 스톤 골렘과의 싸움은 벅찰 수밖에 없었다. 골렘이 박살 나 없어진다면 그들의 싸움도 별 어려움이 없었겠지만 돌덩어리가 되어 뭉개졌다가도 또다시 스톤 골렘으로 뭉치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타이탄의 철퇴나 전투 도끼가 한 번씩 휘둘러질 때마다 3미터 정도 크기의 스톤 골렘은 두세 개씩 박살 났지만, 곧이어 새로이 재생되었기에 이 싸움은 멈추지 않 고 계속되었다. 지오네나 그가 데리고 온 신관도 정신없이 마법을 날려 댔지만 힘만 빠질 뿐, 박살 났던 스톤 골렘들은 다시금 재생되었기에 나중에는 그것마저 포 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이곳을 탈출할 방법을 궁리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춰라.”

그러자 스톤 골렘들은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공이 스톤 골렘들 사이로 멋지게 등장했다. 바로 카렐이었다.

카렐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시드미안은 쿠마에서 내렸고, 시드미안이 내리는 것을 보고 시드미안의 부하인 도미니크도 함께 뛰어내렸다. 곧 쿠마는 공간 사이로 사라졌고, 시드미안은 카렐의 앞에 나가서 공손하게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카렐. 전과는 달리 갑자기 여기서 싸움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카렐은 시드미안을 냉정하게 노려보았다.

“그대도 탐욕에 눈이 먼 인간이었나?”

“예? 저는 이 부근의 땔감을 주운 죄밖에는…….”

시드미안이 멍청한 표정으로 반문하자 카렐은 그 눈길을 딴 곳으로 돌렸다.

“여기는 내 집이다. 너희 같은 도둑놈들이 올 장소가 아니야. 좋게 말로 할 때 주머니 속에 넣었던 것들을 놔두고 꺼져라.”

엘프답지 않은 쌍스러운 말이었지만, 일반적인 엘프와는 달리 전사의 기운을 풍기는 그였기에 별로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때 지오네가 물었다.

“당신이 이 집의 주인인가요?”

“그렇다.”

“당신이 키아드리아스이십니까?”

카렐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나는 엘프 카렐이다.”

그러자 지오네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키아드리아스가 아니라면 별로 겁날 것도 없지요. 아마도 7사이클급 정도의 마법을 익혔다고 까부는 모양인데… 우리들도 그렇게 만만한 사람들은 아니오. 이봐, 저 자식을 죽엿!”

그와 동시에 한 대의 타이탄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갔다. 그 타이탄은 커다란 철퇴를 들어 카렐을 떡을 만들 심산으로 내리 찍었지만, 이미 카렐은 몸을 날린 후 였다. 그리고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카렐이 재빨리 몸을 위로 날린 후에 그의 고색창연한 검이 뽑혔고, 곧이어 그 검에서는 엄청난 열기를 동반한 강기 세례가 뻗어 나와 바로 코앞에 있는 타이탄의 머리에 퍼부어졌다.

쿠쾅!

대 폭발이 일어나면서 이미 주인을 잃은 타이탄이 동작을 멈춰 버렸고, 순간적으로 일어난 이 경악할 일에 모두들 입이 쩍 벌어져 멍청하게 서 있었다.

이때 멍해진 그들의 시야에 아름다운 황금빛 타이탄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통의 타이탄들보다는 조금 더 우아한 맛이 있었지만 그래도 타이탄 본래의 그 투박함과 강인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공간을 열고 모습을 드러내는 그 황금빛 찬란한 타이탄은 어깨까지의 높이가 5미터는 훨씬 넘어 보였고, 오른손에는 3미터 정도의 거대한 검을 들고 있었다. 하지 만 다른 타이탄들과 달리 방패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황금빛 타이탄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지오네는 경악해서 외쳤다.

“골든 나이트(Golden Knight : 금빛의 기사)? 저건 이 세상에 단 한 대밖에 만들어진 적이 없는데, 어떻게 저자가? 저 녀석을 공격해! 놈이 타이탄에 못 타게 막

앗!”

절규에 가까운 지오네의 외침에 기사들은 정신을 차렸고, 여섯 대의 타이탄은 골든 나이트를 향해 돌격해 들어갔다. 도미니크도 지오네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타 이탄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시드미안은 도미니크를 잡아끌었다.

“빨리 타이탄을 숨겨 전설의 골든 나이트다. 전설대로라면 우리 모두가 덤벼도 승산이 없어!”

도미니크의 타이탄은 공간의 저편으로 슬며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때 카렐은 이미 골든 나이트에 들어간 후였고, 그는 머리가 닫히는 걸 기다리지도 않고 골든 나이트를 조종하여 앞에서 달려오는 타이탄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무시무시한 기운이 검에서 뿜어져 나왔다.

“검강……!”

각 타이탄에서 비명성이 터져 나왔지만 그 어마어마한 푸른색의 강기는 순간적으로 지상 4미터 지점을 흐르며 아직 공간 저편으로 완전히 도피하지 못한 도미니 크의 타이탄까지 합쳐서 여덟 대의 타이탄을 덮쳤다.

타이탄들은 곧 가슴 부분이 완전히 잘려 나가 엑스시온이 파괴된 채 고철이 되어 쓰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의 절반 이상 공간 저편으로 이동해 있던 도미니크 의 타이탄만은 요행히 생명은 건져서 저쪽 공간으로의 이동에 성공했다.

쿵! 쿵!

각 타이탄들의 손이 방패째로 잘려 떨어졌고, 곧 가슴 부분이 절단 난 채 하체 부분과 분리되어 땅에 처박혔다. 이때 골든 나이트가 쿵쿵거리며 다가오더니 주저하 지 않고 잘려진 채 뒹굴고 있는 상대 타이탄들의 목을 잘랐다. 타이탄의 목이 떨어지면서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도 두 토막이 난 채 밖으로 떨어졌다.

이 잔인한 광경을 보면서 타이탄에 타고 있던 기사들은 자신이 지금 갇혀 있는 타이탄의 머리를 들어 올리려고 용을 써 댔지만 운 좋게 열기 쉽게 자빠진 타이탄에 탑승한 두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엄청나게 무거운 쇳덩이를 들어 올리지 못한 채 시체가 되어야 했다.

천천히 돌아다니며 타이탄들의 머리를 떼어 내고 있는 골든 나이트를 향해 길레트 지오네와 사제는 미친 듯이 마법을 날렸지만 상대에게는 그 어떤 타격도 줄 수 없었다. 골든 나이트는 타이탄에 탄 셋을 완전히 죽인 후 탈출한 두 명에게 뛰어갔고, 공포감에 우왕좌왕하는 둘 중 하나는 발로 밟고 또 하나는 검으로 찍어 버렸 다. 순간적으로 몸이 두 토막이 나서 좌우로 갈라지는 기사……. 그제야 골든 나이트는 지오네를 향해 천천히 몸을 옮기기 시작했다.

골든 나이트의 다리가 들리자 그 밑에는 사람이 있었던 흔적, 뼛가루와 피와 살이 흙에 범벅이 되어 납작해져 있었다.

쿵, 쿵!

“으아아악!”

골든 나이트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이제 그 둘은 광란 상태에 접어들어 주문이고 뭐고 외울 생각도 못했다. 두 사람은 골든 나이트가 한 번 검을 휘두르자 허리 위 쪽으로 두 토막이 난 채 쓰러져 버렸다.

시드미안과 도미니크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을 다 죽여 버린 골든 나이트의 머리가 뒤로 들려지고,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렐이 나타났다. 카렐은 곧장 밑으로 뛰어내렸고, 곧이어 그 무시무시한 위용을 자랑했던 골든 나이트는 이제 볼일이 다 끝났다는 듯 공간 저편으로 사라졌다.

스톤 골렘들이 고철 조각들을 치우면서 정리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을 잠시 바라보던 카렐은 시드미안에게 싸늘한 시선을 옮겼다.

“내가 자네들을 살려 주는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유일하게 인정한 인간의 동료라는 사실이다. 알겠나?”

살기를 띠고 있는 카렐의 또 다른 모습을 보면서 시드미안은 식은땀을 흘렸다. 타이탄 일곱 대가 거의 저항도 못 해 보고 박살이 났다. 예전의 그 인자했던 모습에 서 도저히 고수의 면모를 찾아볼 수 없었기에 다크의 말을 믿을 수 없었지만, 오늘의 카렐에게서는 그게 너무나도 짙게 느껴졌다. 무시무시하게 강한 자……. 시드 미안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목숨을 살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뭐, 그대가 잘못한 것은 없는 것 같으니까……. 이제 돌아가게나. 될 수 있다면 이번 같은 탐욕에 찬 무리는 데려오지 않기를 바라네. 알겠나?”

“예. 도미니크, 가자.”

말을 타고 재빨리 구릉지대를 벗어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카렐이 무표정하게 보고 있을 때, 그의 뒤에서 부드러우면서도 고운, 하지만 약간의 슬픔이 묻어 나오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골든 나이트를 보니까 2백 년 전, 당신이 나를 죽이겠다고 찾아왔던 때의 일이 생각나는군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음에도 카렐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점점 작아지는 시드미안 일행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인이 뒤에서 그의 강인한 몸을 살며시 끌어안 자, 그는 더 이상 무표정하지 않았다. 천천히 그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당신은 너무나 강해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 하지만 저는 언젠가 당신이 제 곁을 떠날 것 같아 늘 불안하답니다.”

그러자 카렐은 빙그레 미소 지으면서 그녀의 손을 잡아 살짝 입을 맞췄다.

“2백 년 전, 당신을 만난 후부터 당신은 나의 전부요.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당신과 함께 기나긴 생을 함께하고 싶다오. 쓸데없이 불안해하지 마시오, 키아드리아 스. 나는 언제까지나 당신과 함께 할 테니까.”

“도대체 골든 나이트가 뭡니까? 저는 저런 타이탄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죽자고 도망치다가 어둑해져서야 숨을 돌릴 여유를 찾고 말을 쉬게 했다. 카렐이 있는 곳에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지금에야 정신을 차린 듯, 고기포를 우물거리 면서 도미니크가 시드미안에게 물어 왔다. 시드미안은 오래전에 들었던 전설을 떠올렸다.

“나도 자세한 건 잘 몰라. 오래전 인간들이 타이탄을 실전에 도입해서 전쟁을 벌이던 그때, 사람들은 말했지. 타이탄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것은 유일하게 인 간뿐이라고… 그도 그럴 것이 엘프는 마법은 좋아했지만 금속에 대한 제련술(製鍊術)은 떨어졌고, 드워프는 금속 제련술은 최고였지만 마법을 부릴 줄 몰랐지. 나머지 딴 종족들은 기술이 떨어져서 사람들이 잡아다가 노예로 부리는 판이니 더 이상 거론할 것도 없고 말이야. 하지만 그 말에 엘프와 드워프는 발끈했지. 그래 서 그 두 종족이 연합해서 타이탄을 제작하기로 합의를 봤어. 드워프는 타이탄의 제작을, 엘프는 엑스시온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을 맡았지. 그래서 단 한 대의 타이 탄이 완성되었지. 금을 좋아하는 드워프의 취향대로 금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타이탄이 말이야. 물론 그 한 대를 만든 후에는 “인간들만 만들 수 있는 게 아냐!”하 고는 헤어져 버렸지만……. 어쨌든 그 당시 최강의 타이탄은 바로 그 골든 나이트뿐이었지.”

‘그 당시’라는 말에 힌트를 찾아낸 듯 도미니크가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헬 프로네가 최고인 모양이군요.”

“글쎄, 그건 아무도 모르지. 그 둘이 격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헬 프로네가 골든 나이트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타이탄임은 부정할 수가 없겠지.”

한동안 말이 없던 도미니크는 이윽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제가 예전부터 궁금하게 여기고 있었던 건데 말입니다. 그토록 강한 헬 프로네를 만들었으면서, 왜 크루마에서는 겉에다 미스릴을 입히지 않았을까요? 그들에게 도 뭔가 깊은 생각이 있기는 했겠지만, 저로서는 왜 그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더라구요. 표면에 미스릴 처리만 했어도 그때 제작했던 세 대 모두 남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시드미안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자네는 타이탄의 표면에 왜 미스릴 처리를 하는지 아는가?”

“타이탄이 필요 이상으로 정보를 입수하지 못하게 막는 장치라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 놓지 않으면 시야가 개방된 타이탄이 주인을 잃은 후 곧바로 도망쳐서 다 른 주인을 찾아 헤맨다고 말입니다.”

“물론 그 말이 옳아. 타이탄 한 대를 만드는 가격을 생각한다면, 단 한 대가 도망친다고 해도 국가적으로는 커다란 손실을 입게 되는 셈이지. 더군다나 최강급의 타 이탄이라면 상상도 못 할 만큼 엄청난 돈이 필요할 거야. 하지만 미스릴을 입힌다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네?”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개와 늑대의 차이겠지.”

도미니크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자신을 멍청하게 바라보자, 시드미안은 좀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개와 늑대의 차이가 뭐겠나? 야성을 지니고 있는 엄청난 가능성. 개가 떼로 덤벼서 늑대를 이길 수는 있겠지만, 아무리 사나운 개라도 결코 일대일로는 늑대를 당 할 수 없다네.”

“하지만 개는 열심히 훈련시킬 수 있지 않습니까? 군견처럼 특별히 훈련된 개의 경우 늑대와도 승부가 가능하다고 들었는데요.”

“물론 그렇지. 개와 사람은 하나의 팀을 이룰 수 있어. 그리고 그 주인은 사람이지. 개에게는 선택권이 없어. 하지만 자유로운 늑대에게는 선택권이 주어지지. 늑대 가 자기 마음에 드는 훌륭한 인물을 찾아낸다면 사람과 팀을 이룰 수도 있겠지? 그렇게 되었을 때, 그 팀을 당해 낼 수 있겠나?”

“그러니까 그 미스릴이라는 게 늑대를 개로 만들어 주는 열쇠라는 겁니까?”

“바로 그걸세. 미스릴이 입혀지지 않은 타이탄은 끊임없이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가장 뛰어난 기사를 찾아 헤매게 되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팀이 방금 자네가 봤던 카렐과 골든 나이트야.”

“그렇다면 골든 나이트의 그 번쩍거리는 금빛이 미스릴이 아니라 진짜 금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미스릴도 금빛이기는 하지만 진짜 금빛과는 조금 다르지. 어떤 타이탄들은 멋을 더하려고 일부 미스릴 위에 페인트를 칠하지 않고 남겨 놓아 멋을 내기도 하지 만, 저건 미스릴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은 그냥 금도금이야.”

시드미안은 상대에게 생각할 시간 여유를 주려는 듯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늑대와 사람의 그 야성미 넘치는 조합을 이기려면, 당연히 이쪽도 그와 같은 팀을 이루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지. 물론 품종 개량을 통해 압도적으로 강한 타이탄 을 개발해 낸다면 모르지만, 내가 알기로는 골든 나이트와 헬 프로네는 거의 비슷한 능력을 지닌 타이탄들이야. 그렇기에 크루마에서는 헬 프로네에 미스릴을 입히 지 않은, 아주 모험적인 선택을 한 것이지. 하지만 그 모험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지. 어쨌건 세 대 중 한 대는 남았으니까 말이야.”

“제 생각에 그건 최악의 결과라고 봅니다. 세 대 중 한 대가 크루마 최대의 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코린트의 총사령관과 죽이 맞아 버렸으니까요.” 시드미안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자네 말이 맞겠군. 발렌시아드 대공(大公)이 헬 프로네를 가지게 된 것은 크루마로서는 생각하기도 싫었던 최악의 결과일 테니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