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7권 10화 – 새로운 모험 파티

새로운 모험 파티

대 아르곤 제국의 서부에 위치한 거대 도시 트로이데. 트로이데는 아르곤 제국이 가진 5개의 수도(首都) 중 하나였다. 아르곤은 대 제국이란 칭호가 어울릴 정도로 거대한 국가였기에, 전 국토를 5개로 나누어 4명의 법왕(法王)이 각기 하나씩 다스렸고, 남은 하나는 현재 교황(敎皇)인 고도 5세가 직접 다스렸다.

트로이데는 아르곤의 서부에 위치한 안지오 지역의 수도였고, 아르곤 서부의 종교, 교통, 상업, 문화, 군사, 정치의 중심지였다. 트로이데의 주민 수는 무려 45만에 달했고, 트로이데 일대에는 2개 기사단과 3개 사단이 주둔했다. 그야말로 트로이데의 규모는 이제 신흥 제국인 크라레스의 수도 크로돈에 비해 비교가 안 될 정도 였다.

“정말 대단하군. 하지만 ‘중원’의 도시들에 비하면 별건 아냐.”

여기저기 이색적인 석상(石像) 등 각종 종교적인 예술품들이 눈에 띄었고, 가옥의 구조도 크라레스가 돌이나 나무를 사용하는데 반해 여기서는 벽돌을 애용했다. 곳곳에 색유리를 이용해 특이한 그림들을 그려 놓은 거대한 창문이 난 건물들도 보였다. 그 건물들의 규모는 매우 대단해서 수백 명이라도 들어가서 살 수 있을 정 도로 커 보였다.

하여튼 크라레스에 비해 아르곤의 도시들은 아주 호화롭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도시에는 거대한 분수대가 설치된 공원이 있었고, 색유리로 모양을 낸 창문이 달린 큰 건물이 적어도 하나 이상씩은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날개 달린 사람이나, 아름다운 여인 또는 남자들을 흰 대리석으로 조각한 조각상들이 있었다. 이 모든 걸 본다면 엄청나게 호화로운 도시이고, 또 부유한 게 틀림없어 보이는데도 사람들의 복장은 매우 수수했다. 어떻게 보면 옷에 신경 쓸 돈으로 도시를 단장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말 아름다운 도시야. 아르곤의 도시들은 모두 깨끗하고 아름답군.”

“그렇네요.”

마지못해 대꾸하는 지미와 라빈의 얼굴에는 그새 수많은 상처들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들의 망할 상관이 가는 곳곳마다 말썽을 불러 일으켜 대니 지미와 라빈의 몸이 성할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거의 4일에 한 번씩 패싸움을 해야 했고, 이틀에 한 번 이상 결투를 해야만 했다. 여행이 시작된 후 겪은 그 수많은 칼부림 속에서 아직 살아남 아 있다는 것이 기적같이 느껴지는 지미와 라빈이었지만, 사실 그 둘은 절대 죽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살아 있는 것이다. 언제나 다크가 시비를 건 상대는 그들 과 비슷한 실력이거나 다수인 경우 한 수 처지는 인물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도둑도 없고, 시비 거는 사람도 없고, 약간의 다툼만 벌어지면 수비대원들이 칼을 들고 뛰어오니 별로 재미없다는 게 좀 단점이긴 하지 만…….”

“그건 그래요.”

그러면서 히죽거리는 지미. 변방에서는 몰랐지만 이런 도시에서는 다크가 아무리 시비를 붙여 싸움이 나도 어디서 나타나는지 수비대원들이 뛰어와서 싸움을 말 렸다. 그 때문에 지미와 라빈은 꾀가 생겨서, 크라레스에서는 인적 없는 곳만 찾아서 다녔지만 아르곤 깊숙이 들어온 다음부터는 치안이 좋은 도시에서 도시로만 이 동해 왔다.

이때 다크는 저 앞쪽 마차 옆에 서 있는 젊은이가 자신을 홀린 듯이 멍청히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끼고, 빙그레 미소 지으며 라빈에게 조용히 물었다.

“이봐, 라빈. 저 앞에 서 있는 저 녀석 보기에 어때?”

갑작스런 상관의 질문에 라빈은 그 상대를 자세히 쳐다본 후 상대에게서 느낀 점을 솔직히 얘기했다.

“예? 제법 옷차림이 그럴듯해 보이는데요. 여태껏 저 정도로 옷을 잘 입은 사람이 별로 없었던 걸 보면 꽤 높은 집안의 자제인 것 같습니다. 롱 소드를 차고 있는 데다, 팔의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는 걸 보면 검술도 꽤 연마한 것처럼 보이구요.”

“꺄하하하…….”

라빈이 얘기를 하는 동안에도 그들이 타고 있던 말은 계속 전진했기에 그 젊은이와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져 있었다. 이때 다크가 그 젊은이를 힐끔거리면서, 의도 적으로 크게 웃으며 들으라는 듯 약간 큰 소리로 말했다.

“그건 실례잖아요, 라빈. 아무리 상대가 실력이 없어 보이더라도 겉멋만 잔뜩 든 멍충이라니…….”

그 젊은이의 안색은 순간 창백해지는 듯하더니 곧 시뻘게졌다. 눈앞의 이 아름다운 소녀가 말하는 ‘겉멋만 잔뜩 든 멍충이’가 누군지 재빨리 알아챘기 때문이다. 

“이런 무례한 녀석!”

“아, 아니…, 제가 뭐라고……..

이 능구렁이 같은 상관의 속임수에 넘어간 걸 재빨리 깨달은 라빈이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다크는 일부러 라빈에게 말을 걸었고, 라빈이 한참 말하게 놔둔 후 상대에게 가까이 접근해서는 상대가 오해하기 딱 좋은 말을 떠들어 댔으니, 결과는 당연했다.

정말 보기 드문 미녀를 보고 가슴이 콩닥콩닥하고 있던 그 젊은이는 자신이 숙녀 앞에서 어떤 무뢰배에게 매우 심한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고는 재빨리 다음 행 동을 취했다.

그 젊은이는 오른쪽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 들고는 라빈의 얼굴에다가 냅다 던지면서 외쳤다.

“무례한 녀석! 숙녀 분 앞에서 나를 모욕하다니……. 결투를 신청한다. 말에서 내렷!”

“아…, 그게, 그게 아니고…….”

“라빈, 저런 애송이 따위는 한주먹 거리도 안 된다면서요. 빨리 처리하고 가요. 예?”

살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하지만 상대가 들으라는 듯 적당히 큰 소리로 얘기 하는 소녀와 ‘안 됐군. 한두 번 당해 보냐? 알아서 조심해야지’라는 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지미를 의식하며 라빈은 할 수 없이 말에서 내렸다.

기사는 상대가 결투를 신청하는 절차로 던진 장갑에 맞으면 그건 피할 수 없었다. 그다음부터는 정의와 함께 하시는 신께서 누가 옳은지를 결정지어 주는 게 정확 한 순서였다.

“제기랄, 정말 싸우기 싫은데…….”

어제 결투에서 찔린 허벅지 때문에 라빈은 약간 다리를 절면서 상대 앞에 다가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제가 졌다고치고 이 결투를 끝낼 수는 없을까요?”

그 말에 상대는 이제 완전히 무시까지 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안색이 새파래지며 분노를 억누른 음성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닥치고 검을 뽑아라. 샤이하드께서 정의의 편에 선 자가 누군지 밝혀 주시리라.”

라빈은 투덜거리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롱 소드를 뽑아 들었다. 라빈의 롱 소드는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기에, 몇몇 전쟁터와 요 근래에 자주 겪은 결투 덕분에 칼 날이 많이 상해있었다.

“무슨 일이니? 피러스!”

막 결투를 시작하려던 두 사람의 움직임은 다급하게 들려온 높은 목소리의 인물에 의해 멈춰졌다.

“왜 검을 뽑아 들고 있는 거냐?”

재빨리 건물에서 뛰어 나오는 여인은 젊은이와 같은 엷은 갈색의 머리카락과 눈을 가지고 있었다.

“누, 누나.”

“무슨 일이야, 응? 이런 곳에서 결투를 하려는 거냐? 저, 제 동생이 무슨 실례를 저질렀는지?”

그 여인의 말에 라빈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일부러 다리를 더욱 심하게 절룩거리며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공손하게 설명했다.

“약간의 오해가 있었을 뿐입니다. 저희 일행이 워낙 장난을 좋아해서 동생 분이 오해를 하셔서 말이죠.”

“오해라고? 네 녀석은 분명히 나를 모욕.”

“가만히 있거라, 피러스. 다리까지 부자유스러운 분인데, 네가 또 오해한 모양이구나. 저렇게 정중하신 분인데 너를 모욕했을 리가 없잖아?”

그녀는 동생에게 따끔하게 말한 후 미안한 듯 라빈에게 얼굴을 돌렸다.

“저, 무사님. 대단히 죄송한 부탁이지만 결투는 없었던 걸로 해 주시겠습니까?”

“저야말로 그렇게 해 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름다우신 레이디.”

“헛소리하지마. 네 녀석과는 무슨 일이 있어도…….”

“피러스! 결투를 금한다는 아버지의 엄명이 있었잖니? 말 안 들으면 아버지한테 말씀드릴 거야.”

피러스라 불린 그 젊은이는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더 이상의 볼일은 끝났다고 생각한 다크는 지미에게 눈짓을 하면서 말을 앞으로 몰았다. 속으로는 ‘오늘도 잘 하면 한판 하는 거 구경할 수 있었는데’하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다크와 지미, 그리고 라빈은 갑작스런 여인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혹시 여행객들이시라면, 저희 집에서 묶고 가시지 않겠습니까? 아버님께서는 과거 여러 곳을 여행하셨고, 또 여행담 같은걸 좋아하시기에 잠시 시간을 내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갈 길이 바빠서…….”

다크는 거절하고 계속 앞으로 나가려 했지만, 지미가 그녀의 말(馬) 꼬리를 붙잡고 가지 못하게 했다. 운 좋으면 오늘 저녁은 맛있는 식사와 조용한 잠자리가 보장 되는 것이다. 지난번에 갔던 도시에서는 패싸움을 벌이다가 몽땅 잡혀 감옥에서 밤을 새웠는데, 지미는 이 도시에서까지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이 도시는 처음이라 생소한 점이 많았는데, 부탁드립니다. 저희들은 크라레스의 견습 기사(騎士)들로 저는 지미 도니 에라고 하고, 이쪽은 다크 크라이드, 저쪽은 라빈 엘느와라고 합니다.”

“호호호, 예, 크라레스 분들이셨군요. 이쪽은 제 동생 피러스 도우러, 저는 앤 도우러입니다. 집이 약간 먼데, 따라오세요. 피러스 가자.”

피러스는 원망 가득한 표정으로 누나를 쏘아봤지만, 곧 다크 쪽으로 시선을 한번 던진 후 마음을 고쳐 잡고는 집을 향해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남매가 안내한 곳은 시외에 있는 제법 큰 이층 저택이었다. 저택의 가장인 미켈 도우러 씨는 5년 전에 은퇴한 상인이었다. 그는 젊었을 때 여기저기를 많이 떠돌아

다니다가 뒤늦게 기반을 잡은 덕분에 느지막이 결혼을 했다. 도우러 씨는 결혼 후 세 명의 자식이 성장할 때까지 상인 노릇을 하다가, 그들이 성장하자 즉시 은퇴한 후 다시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여행 광이었다.

일행이 도우러 씨에게 안내되었을 때, 도우러 씨는 네 명의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앤은 아버지에게 새로운 손님들을 소개했다.

“아버지, 크라레스에서 오신 여행객들이에요. 지미 도니에 씨, 다크 크라이드 양, 그리고 라빈 엘느와 씨세요.”

앤의 소개를 시작으로 서로 간에 인사가 오고갔다. 가장인 미켈 도우러, 그리고 하루 전에 도착해서 신세를 지고 있던 모험가들인 스펜 안트리아, 아더 존슨, 그리 고 그들과 함께 모험 여행 중이었던 베티 도니안이란 사제였다. 이곳 아르곤 제국 자체가 샤이하드 외의 신을 부정하는 만큼 베티란 신관은 신관복을 입지 않고 여 행복을 입고 있었다. 베티를 제외한 모두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정도의 인물들인 걸로 미루어 꽤나 수준 있는 모험 파티인 모양이었다.

“자자, 모두들 앉으시지요. 오랜만에 집 안이 북적거리는군요.”

“감사합니다.”

도우러 씨가 원체 손님들을 반기는 덕에 응접실에는 큰 테이블과 의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제법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의자의 반도 채우기 힘들었다. 모두들 쭉 둘러앉자 남자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눈에 확 띄는 미녀인 다크에게 집중되었다. 베티야 원래가 신관이었기에 그녀가 미인인 것은 모두들 당연하게 여 겼다. 사실 신관들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은 신성 마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기에 결코 찬탄의 대상이 되지 못했지만, 다크는 신관이 아닌데도 베티에 버금갈 정 도의 미모를 지니고 있었으니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남자들의 시선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베티까지도 다크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정중하게 질문했다.

“혹시 마법사이신가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제님.”

“은근하게 마법의 기운이 느껴지기에 물어보는 겁니다. 아마도 하이드 마나 포스의 주문을 사용하고 계신 모양이죠?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해서는 마법의 기운이 뿜 어져 나오기에 신관들에게 발각당할 수 있답니다. 물론 여행객이라서 사형까지 당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귀찮은 일을 당하실 수 있죠.”

“그런가요?”

다크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하이드 매직 포스(Hide Magic Force)에 해당하는 용언 마법을 나직하게 외웠다.

“은마력(隱魔力)!”

그 순간 다크에게서 나오던 마법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베티는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아주 능숙한 마법사셨군요. 두세 가지의 마법을 한꺼번에 사용할 수 있다면 대단한 거라고 들었는데 말이에요.”

베티가 이렇게 단정 짓는 것도 당연했다. 원래가 신성 마법은 신성력, 즉 얼마나 신을 믿느냐에 좌우되는 것이었고, 또 그 신성 마법은 그녀의 아름다움이 유지되 듯 한 번 발동시키면 신에 대한 믿음이 유지되는 한은 그 마법을 유지하기 위해 신경 쓰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마법은 다르다. 마법은 정신력으로 마나를 다루어 이뤄지는 산물. 그렇기에 두 가지 마법을 동시에 쓸 수 있다는 것은 양쪽에 신경을 쓸 수 있다는 말이 된 다. 대단히 뛰어난 마법사들의 경우 다섯 가지 이상의 마법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다고도 하지만, 대부분의 수련 마법사들의 경우 한두 가지 마법으로도 허덕거리는 게 보통인지라 그녀는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다. 어쨌든 베티의 말을 듣고 옆에 앉아 있던 스펜이 다크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어디로 여행을 하시는 길이신가요? 혹시 정해진 목적지가 없다면 저희들과 함께 모험을 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아르곤이란 곳이 마법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곳이라서 말이죠. 저희와 함께 여행을 할 일행이 세 명 더 있습니다. 두 명은 사전(事前) 조사차 먼저 떠났구요. 저희들은 남은 세 명을 기다리 고 있는 중입니다.”

“모험 여행치고는 인원이 너무 많군요. 지금 계신 분만 해도 셋, 그리고 또 다섯, 거기에 저희들까지 합하면 열한 명인데, 그렇게 많은 인원이 필요할까요?”

“아마도 그 인원가지고도 힘들 겁니다. 어쩌면 여기서 몇 명 더 들어올지도 모르죠.”

“좋아요. 목적이 마음에 들면 참가하죠.”

그 말에 스펜이 조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래곤을 사냥할 생각입니다.”

“드, 드래곤이라구요?”

경악한 지미와 라빈의 외침에 스펜은 손을 입에 가져다 대고는 “쉿!”하고 주의를 주더니 말을 이었다.

“이건 모험을 할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린 드래곤 한 마리가 살고 있는 곳을 알아냈죠. 아직 1천 살도 안 된 녀석입니다. 모두들 알고 계시죠? 1천 살짜리 드 래곤 찾아내기가 얼마나 힘든지…….

“드래곤 중에서 가장 약한 그린 드래곤이니만큼 해치우기는 별로 어렵지 않을 겁니다. 브레스도 거의 쓸 줄 모르는 어린 녀석인지라 보물을 많이 모아 두지는 못 했겠지만, 모두에게 충분히 돌아갈 정도는 있을 겁니다. 만약 보물이 없다 해도 활약한 정도에 따라 아쉽지 않게 대우해 드리겠습니다. 대신 드래곤의 사체(死體)는 저희들이 가질 겁니다. 어떻습니까?”

지미가 약간은 탐탁치 않은 어조로 대꾸했다.

“하지만 드래곤의 사체는 엄청난 가치가 있는데, 그쪽에서 다 가진다는 건 좀 그렇군요.”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저희 일행에는 타이탄 세대가 있습니다. 그쪽에는 몇 대가 있죠?”

“……”

“저희들이 드래곤을 공격할 때 당신들은 옆에서 도와주기만 하면 됩니다. 겨우 옆에서 조금 도와주는 정도만으로도 평생 쓰고도 남을 정도의 돈이 생기는 겁니다. 별로 나쁜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만, 이견(異見)이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지미가 풀이 죽은 어조로 말하자 스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살짝 미소 지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 드래곤이 사는 곳이 이곳, 아르곤이라는 겁니다. 드래곤을 처치한 후 그 사체를 국외로 반출하는 것은 미켈 도우러 씨가 책임지게 되겠지만 사 실 드래곤의 덩치가 보통 큰 게 아니므로 매우 힘든 작업이 될 겁니다.”

“그걸 어디로 반출하는 겁니까?”

“그건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그건 그때 가서 알려드리기로 하고……. 저희 일행에 6사이클급 마법사가 한 명 있습니다. 다크 양은 어느 정도 실력이신지 여쭤 봐 도 될까요? 작전을 세우려면 필요하니까 하는 말입니다.”

다크는 잠시 생각했다. 아르티어스에게서 배운 용언 마법은 거의가 1사이클과 2사이클급이었다. 하지만 과거 가스톤과 안토니에게서 배운 몇 가지 공격 마법을 5 사이클까지 익혔었다. 물론 배운 게 파이어 볼 계통하고 뭐 그런 몇 가지 안 되는 것들이었지만 사실 들통 날 것도 아니니, 그걸 대놓고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5사이클까지 익혔어요. 물론 공격 마법만.

모두들 놀랍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이제 겨우 10대 후반의 여자 아이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다. 거기에다가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공격 마법이라 니…….

“보기보다는 과격하시군요. 허허…… 그럼 자네들은 어느 정도 실력인가? 실전 경험은 좀 있나?”

“저희는 둘 다 수련 기사입니다. 크라레스가 스바시에를 침공할 때도 용병대에 참가해서 싸웠으니 실전 경험은 충분할 겁니다.”

지미의 말에 아더가 약간 비꼬는 듯한 어조로 참견했다.

“호오, 그 전쟁에 참가했었나? 정말 인상 깊은 전쟁이었지. 그렇게 후다닥 끝내기도 참 어려운데 말이야.”

빨리 끝났다는 아더의 말은, 타이탄들이 주축으로 싸운 전쟁이었으니 실전에 직접 참가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뜻이었다. 그 말에 지미는 설명을 조금 더 첨가 했다.

“전쟁이 끝난 후 반군 토벌한다고 한 6개월 돌아다녔죠.”

반군 토벌에 참가했다면 어느 정도 실력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더는 그 한마디로 상대의 실력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3일 후에 일행이 도착하는 대로 출발하기로 하세. 그동안 우리들도 준비할 게 많고 말이야. 자네들도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보게. 준비해 주겠 네.”

“별로 필요한 건 없어요. 참, 사제님. 일행이 다리에 부상을 좀 입었는데 치료해 주실 수 없을까요?”

“호호호, 그건 별로 어렵지 않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