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7권 2화 – 아르티어스의 아들
아르티어스의 아들
나이아드에게 놀림까지 당해 꽤나 열이 받은 아르티어스는 다크에게 마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딸이 나이아드 따위가 가지고 놀 수 있을 정도로 허약한 아이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르티어스가 다크에게 가르치기 시작한 마법은 정상적인 마법은 결코 아니었다. 겨우 3주 동안 무슨 제대로 된 마법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마나의 개념 과 그 통제력의 기본만을 가르치는 데도 3주일은 모자랐다. 그만큼 자신의 체외에 흩어진 마나를 끌어 모아 활용하는 것은 매우 고차원적인 집중력을 필요로 했고, 또 그것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작업이었다.
그렇기에 이 음흉한 아르티어스 어르신은 다크에게 용언 마법을 가르쳤다. 용언 마법은 일반 마법과 달리 체외가 아닌 체내의 마나를 사용한다. 그 말은 곧 마나를 끌어 모아 통제하는 그 귀찮은 작업이 없어도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용언 마법을 인간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드래곤에게는 드래곤 하트 라는 마나가 집중되는 작은 기관이 있었고, 이 드래곤 하트를 이용해 마나를 압축하고 가속하는 일을 행함으로써 용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드래곤 하트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크의 체내에는 용언 마법을 사용하기에 충분한 방대한 마나가 쌓여 있었기에 아르티어스는 이리저리 궁리한 끝에 인간의 단전이라 불리는 마나가 모이 는 기관을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일주일이란 시간을 투자하여 용언 마법을 인간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해 내는 데 성공했다. 아르티어스가 드래곤 하트를 단전으로 대체하는 신기술을 겨우 일주일 만에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따지고 보면 다크에 대한 맹렬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그 일주일이란 기간 동안 다크는 밥하고 빨래하고 바느질도 하고 과일을 따다가 잼도 만들고, 하여튼 수많은 가사 노동에 시달려야 했지만, 어김없이 밤마다 시작되는 아르티어스 교수 의 마법 강좌를 꼭 들어야만 했다.
“화염구(球)!”
주문을 외치자마자 순식간에 소녀의 손에서 날아가 바위에 작렬하는 불덩어리를 보며 아르티어스는 희열을 느꼈다.
‘으헤헤헤, 총명한 녀석 같으니…….’
“잘했어요, 잘했어요. 정말 재능이 있군요.”
아르티어스는 다크가 제대로 했을 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잘 못 하면 눈물을 찔끔거릴 정도로 혹독하게 야단을 쳤지만 말이다. 어쨌든 아르티어스는 용언 마법 외에도 아쿠아 룰러의 사용법 또한 가르쳤다.
“아쿠아 룰러는 성능이 뛰어난 일종의 마력 증폭 장치예요. 계약에 의해 사용자가 아쿠아 룰러에게 준 마나의 몇 배 위력에 해당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 는 장치죠. 복잡한 중간 과정이 있지만 사실 그건 사용자가 알 필요가 없어요. 그냥 사용법을 익혀 쓸 줄만 알면 될 뿐.”
아르티어스는 반지의 정의를 내린 후 그 사용법을 가르쳤다.
“아쿠아 룰러는 두 가지 효용이 있어요. 하나는 직접 사용이고 하나는 간접 사용이죠. 직접 사용은 그때 말해 준 대로 마나를 쏟아 부으며 행하는 공격 및 방어 마 법이에요. 간접 사용은 조금 달라요. 이건 나이아드의 허락 하에 사용할 수 있는데, 나이아드가 상당 부분 개입하기 때문에 소용되는 마나에 비해 매우 폭넓고도 방 대한 위력을 갖죠. 구름을 불러 모으거나 폭우를 쏟아지게 할 수 있어요. 그것도 매우 광범위하게 말이에요. 자연 재해를 일으켜 웬만한 나라 하나를 알거지로 만드 는 것은 문제도 아니라는 말이죠. 알겠어요?”
“예.”
다크는 스펀지처럼 아르티어스의 지식을 흡수했고, 그런 그녀의 총명함을 아르티어스는 더욱 사랑했다. 어쨌든 뛰어난 스승에 뛰어난 제자였던 것이다.
어느덧 바쁜 가운데 3주일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아르티어스는 그날도 일찍 일어나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귀여운 소녀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 만, 뭔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침마다 소녀가 해 주던 모닝 키스가 빠졌던 것이다. 아르티어스의 딸은 그와 생활한 지 일 주일 만에 붙은 버릇대로 상냥하고 귀여운 얼굴로 다가와 자신의 뺨에 가벼운 키스를 해 주며 잘 잤느냐고 인사를 했어야 정상인데, 그냥 말로만 인사를 했던 것이 다.
아르티어스도 처음에는 그걸 그냥 무심결에 넘겼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뭔가 빠진 것 같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드래곤의 그 뛰어난 기억력으로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과 어제 아침에 있었던 일을 비교해 봤다. 아르티어스의 머릿속에는 두 대의 영사기가 돌아가듯 화면들이 겹쳐졌고, 곧이어 무엇이 빠졌는지 깨달 을 수 있었다. 또 오늘이 그가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그날이라는 것도…….
아르티어스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소녀에게 물었다.
“기억은 돌아왔나요?”
소녀는 잠시 멈칫했지만 정직하게 말했다.
“예.”
“난 다크가 전에 뭘 했었고, 또 어떤 사람인지는 신경 쓰지 않아요. 또 다크를 잡고 싶은 생각 또한 없습니다. 드래곤이란 원래 강한 만큼 고독해야 하는 존재니까요.”
“꼭 강하다와 고독하다가 연관성이 높아야만 하나요?”
“내가 4천 년 정도 살아오면서 느끼기로는 그랬습니다. 강자는 약자를 친구로 받아들일 아량이 있을지 모르지만, 약자가 강자를 열등감 없이 순수하게 친구로 받 아들일 배짱을 가지기는 힘들지요. 그 정도 배짱이 있다면 그는 이미 약자가 아니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당신이 꼭 딸처럼 생각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나를 부모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요?”
그 말에 소녀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르티어스는 절망했다.
“역시…….”
“딸은 어렵지만 아들은 안 될까요?”
소녀의 의외의 말에 아르티어스는 매우 감동 어린 표정으로 그녀를 지그시 바라봤다. 여태껏 단조로웠던 그의 생애에서 4천 년을 살아오면서 느낀 감동보다 짧았 던 이 한 달간의 감동이 더 진했던 게 사실이었다. 아르티어스는 가냘픈,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그 소녀를 살며시 껴안으며 중얼거렸다.
“내 아들아…….”
다크는 아르티어스에게 배우기 시작한 마법이란 것에 꽤나 흥미가 있었고, 또 자신만큼이나 강한 자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매우 만족했기에 기억을 되찾았 다고 밖으로 떠돌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의부와 차원 이동에 대해 폭넓은 의논을 했다. 하지만 드래곤인 아르티어스에게도 그에 대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아르티어스가 기억을 되찾은 다크에 게 별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씀씀이가 꽤나 마음에 들었기에 다크는 그를 매우 좋아했다. 그 넓은 중원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의지할 만한 존재’를 여 기서 찾은 것이다.
아르티어스는 그날 저녁, 늦게까지 잠들지 않고 있는 다크에게 잠의 요정 시시를 보내어 잠들게 만들었다. 그런 후 또 한 번 나이아드를 불러냈다.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아드는 이번에는 우람한 근육질의 2.3미터나 되는 거구의 남자가 되어 나타났다. 나이아드는 그 큰 덩치를 일부러 자랑하듯 근육을 과 시하며 거만하게 아르티어스를 내려다 봤다.
“무슨 일이냐?”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 불렀다.”
“무슨 부탁?”
“일 년만 우리에게 시간을 다오. 그다음은 네가 무슨 짓을 해도 상관하지 않겠다.”
아르티어스의 조심스런 말에 나이아드는 비웃음을 터뜨렸다.
“훗! 아쿠아 룰러에게 들으니 용언 마법과 아쿠아 룰러의 사용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더군. 겨우 그따위 얄팍한 재주로 나를 거역할 수 있다면 큰 오산일 텐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내 아들에게 다만 일 년만이라도 평화로웠던 기억을 간직하게 해 주고 싶다.”
“훗! 평화로운 기억이라고? 좋아, 일 년 정도야.. 내 계획이 일 년 미뤄지는 거지만 마지막 부탁인데 뭐, 그 정도는 들어줘야겠지.”
“왜 너는 저 아이에게 그렇게 집착하는 거지? 또 계획이란 것은 뭐냐?”
“전에도 말했잖아. 여러모로 실험해 봤지만 꽤 쓸 만하다고. 나는 저 아이를 조종해서 인간의 수를 좀 줄일 생각이야. 지금 인간의 숫자는 너무 많거든. 지금 수의 백분의 일 정도가 딱 좋겠지.”
“미쳤군.”
“나는 절대 미치지 않았어. 이건 벌써 대지의 정령왕 다오와도 얘기를 끝낸 거야. 그 녀석도 인간들이 돌아다니면서 그와 내가 이룩해 놓은 것들을 파괴하고 있는 게 별로 마음에 안 들던 참이었거든. 물론 나머지 세 녀석들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으니 이번 계획에 찬성하지 않겠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내가 저 아이를 지배하고, 또 힘을 준다면 그 누구도 우리를 막을 수 없지.”
“다, 닥쳐랏! 그렇게 방대한 살육을 다른 드래곤이나 엘프들이 놔둘 성싶나?”
“드래곤? 흥! 저 아이의 마스터에 이르는 능력과 두 정령왕의 힘, 그리고 멍청한 네놈은 몰랐겠지만 저 아이가 거느리고 있는 타이탄까지 합쳐진다면 드래곤 따위 는 상대가 안 돼.”
의외의 반격에 아르티어스는 멈칫했다.
“그, 그렇다면 카렐은?”
“카렐은 대단하지. 그랜드 마스터급인 그 녀석의 힘에다가 엘프들이 만든 최고의 걸작 골든 나이트와 이프리드의 힘이 보태진다면.. . 하지만 이건 몰랐을걸? 저 아이가 가진 타이탄은 골든 나이트와 쌍벽을 이루지. 또 저 아이의 모자란 능력은 정령왕 둘이 보태 줄 거고. 그렇다면 아무리 카렐이라도 힘든 건 마찬가지야.”
아르티어스는 나이아드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카렐이 가진 타이탄의 위력은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카렐이 자신의 타이탄에 탄 상태라면 거의 에인션트 드래곤 을 제외하고는 적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랑스러운 저 아이가 그와 대등한 타이탄을 가지고 있다니……. 저 아이의 신분이 뭐기에? 하지만 지금 그건 중 요한 게 아니었다. 나이아드는 이번에야 말로 꼭두각시 하나를 만들어 인간들을 멸종시키려고 드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살인이 반복된다면 저 가냘픈 아이의 섬세 한 영혼은 반복되는 살인에 짓눌려 황폐해질 것이고 결국은…..
일단 아르티어스는 후퇴해서 시간을 벌기로 했다. 일 년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좋아. 네 녀석이 무슨 계획을 세우든 간에 그건 내가 상관할 수 없지. 다만 일 년의 시간은?”
“잘 생각했어. 원래가 드래곤은 다른 하등 생물의 일에 관여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 흐흐흐, 자네도 우리들 정령과 같이 조화와 균형을 소중히 여기게나. 단순 히 인간 편만 든다고 될게 아니야. 자연을 생각한다면 인간의 수는 좀 줄어들어야 해. 그게 균형도 맞고, 조화로운 거야. 물론 일 년은 주지. 겨우 일 년으로 뭐가 되 겠느냐마는.
흐흐흐흐흐.”
나이아드는 얄미운 웃음소리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