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7권 21화 – 일종의 속임수

일종의 속임수

“추격 중지!”

제임스의 외침에 안티고네를 추격하여 달려가던 흑기사들이 멈춰 섰다. 제임스는 상대방의 저 강력한 타이탄들 중 한 대라도 박살 내서 본국으로 끌고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잠시 갈등했다. 비록 파괴된 엑스시온일망정 그걸 가지고 가면 코린트 제국이 자랑하는 대마법사 그라세리안 코타스가 저 신형 타이탄의 비밀을 하나 하나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엑스시온에 새겨진 각종 주문은 더없이 중요한 자료들 중의 하나이니까 말이다. 물론 그걸 보자고 멀쩡하게 살아 있는 타이탄을 죽여 서 분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가 좋아할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제임스에게는 적국 신형 타이탄의 포획이 아닌, 드래곤본의 포획이라는 명령이 먼저 떨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우선적으로 침몰한 화물선에서 드래곤 본을 꺼내 본국으로 수송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우선이었다.

“끌어 올려라.”

제임스의 지시를 받은 흑기사 한 대가 방패와 검을 놔둔 채 운하 속으로 뛰어들었다.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키며 흑기사는 물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물론 타이탄은 육중한 무게 덕분에 헤엄치는 것이 아니라 물속을 걸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타이탄의 조종석은 방수가 되는 구조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종자가 물속에서 버틸 수 있는 순간까지는 상관없었다. 보통 사람이 죽자고 물속에서 호흡을 멈춘다면 3분 정도밖에 못 버티지만, 그래듀에이트급에 이르는 무술의 고수는 3분이 아니라 10 분 이상이라도 버틸 수 있었다. 약 8분 정도가 지나고 나자 흑기사는 화물이 들어 있는 상자 몇 개를 가지고 나왔다.

“흐흐흐흐, 이제 드래곤 본은 본국의 것이군.”

제임스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흑기사가 내려놓은 상자 몇 개를 지켜봤다. 이윽고 부하 한 명이 검을 꺼내서는 상자를 열었다. 잔뜩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상자 안을 들여다본 제임스의 얼굴은 똥색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 이게 뭐야?”

그 속에는 물에 잔뜩 젖은 지푸라기로 조심스럽게 감싼 도자기 몇 개가 들어 있을 뿐이었다. 다른 상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제임스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타이탄을 공간 저편으로 보내 버린 까미유가 다가오더니 상자 속을 훑어보았다.

“화물선은 내륙 항해용 중형(形) 선박이야. 150톤의 화물은 실을 수 있는 놈이었지. 드래곤 본은 제아무리 무거워 봐야 대형 마차 일곱 대로 옮길 수 있을 정도 로 가벼워. 그 배에는 드래곤 본 외에도 많은 화물들이 들어 있다는 말이야. 배를 아예 꺼내서 보는 게 빠를 거야.”

“자네 말도 일리는 있군. 이봐! 죠드!”

그러자 뒤에서 껄끄러운 노마법사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예, 후작 각하.”

“저 화물선을 꺼낼 수 있나?”

“화물선을 꺼내기는 힘듭니다. 화물선의 전체 무게는 3백 톤이 넘습니다. 설혹 그게 두 토막이 나 있다고 해도 제 능력으로는 들어 올리기가 힘듭니다. 저와 동급 의 마법사가 두 명 더 있다면 양 방향에서 물을 막고 토네이도(Tornado)를 사용해 물을 퍼낼 수 있겠지만, 그 모든 마법을 6사이클급 마법사 한 사람이 한 군데씩 맡아도 벅찬 작업이죠. 코타스 공작 전하라면 모르겠지만…….”

“하기야, 운하를 막고 물을 뺀다는 게 누구 말대로 쉬운 거라면 마법사가 이 세상을 지배했겠지. 어떻게 한다?”

제임스는 죠드의 말을 되새기며 생각에 잠긴 채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의문에 까미유는 별로 생각해 보지도 않고 곧장 답했다. 마법으로 안 된 다면 물리적인 힘으로 해결하면 되니까 말이다.

“끌어당기면 되지. 밧줄 하나 구해다가 토막 난 선체를 묶은 후 타이탄들로 그 줄을 당기는 거야. 간단하게 들어낼 수 있지.”

노마법사는 까미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임스의 지시를 기다리지도 않고 비행 마법을 사용해서 어디론가 날아갔다. 노마법사는 거의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굵 직한 밧줄이 가득 실린 마차 한 대를 끌고 돌아왔다. 노마법사가 돌아왔을 때 모든 일행들이 운하 옆에 모여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일을 벌이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 버렸기에, 어쩔 수 없이 일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시작해야 했다.

다음 날 침몰된 화물선을 끌어 올렸지만, 아무리 뒤져도 드래곤 본은커녕, 비룡(飛龍)이라고 불리며 드래곤 사촌쯤으로 취급되는 와이번 뼛조각조차도 나오지 않 았다. 그제야 자신들이 완전히 상대방에게 농락당했다는 것을 알고 제임스는 신경질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기껏 끌어 올린 화물선을 운하 속에 다시 처넣어 버 렸다.

“젠장할! 지원까지 받고도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가야 하다니……. 으윽! 아버지 얼굴을 어떻게 보지?”

뒷일을 상상하며 새파랗게 질려 있는 제임스의 어깨를 부드럽게 툭툭 두들기며 까미유가 능청을 떨었다.

“걱정하지 마. 공작 전하께서 신경질 나 봐야 별일 있었냐? 한 번씩 실수할 때마다 외출 금지에 수련이었잖아? 뭐, 매번 실수할 때마다 일주일씩 그 기간이 늘었으 니까, 아마 이번에는 5주일의 수련이겠지. 나야 자네가 부럽다네. 모든 코린트의 젊은이가 꿈에도 그리는 공작 전하와의 비무도 매일 하고 말이야. 이번 수련이 끝 나면 또다시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겠군.”

하지만 그것은 말이 좋아 비무였고,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수준이 비슷해야 비무가 되는 것이고, 또 서로 간에 어느 정도 양보를 해 줘야 비무가 될 것이 아닌가?

게다가 상대는 아버지인 관계로 이쪽은 공격을 하는 데 문제가 있었고, 저쪽은 아들이면서 하급자니까 사정 안 보고 몽둥이질을 한다. 거기다가 그 아버지란 양반은 아마도 세계 최고의 검객이 아닐까 생각되는 인물이다. 그렇다 보니 이건 비무가 아니라 그야말로 개 맞듯 매일 두들겨 맞아야만 했다. 까미유도 그걸 잘 알고 있었 기에, 짐짓 위로하는 척하면서 제임스를 놀렸던 것이다.

까미유의 말에 제임스의 안색이 더욱 핼쑥해졌다. 생각하기도 싫은 비무 장면이 기억났던 것이다. 무려 5주일 동안이나 화풀이 대상이 되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5 주일, 35일…, 840시간…, 5만 4백 분…….

“제기랄! 그게 부러우면 네 녀석이 대신 햇!”

제임스의 말에 까미유는 짐짓 몸서리쳐진다는 듯한 행동을 과장해서 표현하며 느글느글하게 말했다.

“무슨 그런 끔찍한 악담을 자네니까 그걸 견디지, 보통 사람이면 일주일도 못 버티고 자살할걸? 더군다나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아주 섬세한 사람이라구. 그 건 그렇고 자네한테 만회할 기회가 있지.”

그 말에 제임스는 솔깃해서 물었다.

“뭔데?”

까미유는 턱으로 슬쩍 운하 옆 바위 위에 앉아서 나른한 듯 하품을 하고 있는 소녀를 가리켰다.

“저 애는 대단한 실력자야. 정령술에 있어 꽤나 높은 실력과 함께 가능성까지 가진 아이지. 또 상당한 실력의 검술까지 익히고 있어. 저 아이를 납치해 간다면 인재 를 아끼시는 공작 전하께서 꽤나 흡족하게 생각하실걸? 그런 후 공작의 기분이 좋을 때, 이번 사건에 대해 말하고 크루마의 처분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이 자네 장수 에 도움이 되겠지. 어때?”

하지만 제임스는 까미유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사실상 다크의 마법이라고는 풀 위를 걸어 다닌 것 외에는 본 게 없으니 당연했다. 비행 마법을 이용해서 몸을 가볍게 한 후 풀 위를 걸어 다니는 척하는 거야 별로 고난이도의 기술이 아니었다. 또 마법사라면 뷰 마나 포스 정도의 마법으로 상대의 위치를 잡아내는 것도 매우 쉬울 것이다. 그렇기에 못 믿겠다는 듯이 제임스는 시큰둥한 어조로 말했다.

“정말 그 정도로 대단해?”

“정말이라니까. 지레느의 말로는 잘만 교육시키면 정령왕의 힘까지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

“정령왕이라고? 그럼 마법으로 치면 어느 정도야?”

“놀라지 마. 무려 7사이클이야. 그것도 정령 마법의 특성상 주문 없이 7사이클이라구. 1백만 기간트라급의 위력이지. 물론 지금은 그 정도가 아니지만 말이야.” “좋아, 한번 해 보자구.”

까미유와 제임스는 머리를 맞대고는 소녀를 어떻게 유괴(?)할 것인지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물론 뒤통수 한 대 때린 후 기절시켜서 운반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었지만, 납치만 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 코린트 제국의 정령술사로서 포섭할 것이기에 어린 소녀에게 그런 무식한 방법을 동원할 수는 없었다. 첫인상이 좋아 야 그다음 일도 부드럽게 진행될 것이 아닌가?

한참 의논을 한 후 그들은 미끼를 동원해서 제 발로 찾아들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입을 맞췄다. 만약 말을 안 듣는다면 마법으로 잠재우든지, 그도 안 된다 면 최후에 무력(武力)을 동원하기로 했다. 또 상대가 정령술사이기에 시동어를 외울 시간을 주지 말아야 하므로, 그들은 함께 천천히 소녀에게 걸어갔다. 소녀를 꾀 기로 한 제임스는 소녀의 앞에서 말을 걸고 까미유는 슬쩍 소녀의 뒤쪽에 위치했다. 협상 결렬과 동시에 주문이고 뭐고 외울 시간 여유를 주지 않고 기절시킬 생각 으로 말이다.

““다크?”

“왜?”

“혹시 코린트 제국에 가 보실 생각은 없습니까? 전에 보니까 드래곤에 꽤 흥미가 있으신 모양이던데, 코린트에도 드래곤은 많이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지 기로는 열 마리 정도 살고 있죠. 아마도 더 많은 드래곤이 살고 있을 겁니다. 또 마법사시니까 마법에도 꽤 흥미가 있으실 겁니다. 저희 코린트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대마법사 그라세리안 코타스 공작께서 살고 계십니다. 그분께 마법을 배우실 수 있는 영광된 자리를 주선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코린트에는 아주 경 치 좋은 곳도 많고 볼거리도 많습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강대한 제국이기 때문이죠. 또 오는 길에 보니까 술도 즐기시는 모양이던데, 코린트의 특산품 인 ‘칼레온’은 독하면서도 그윽하고 깊은 향기를 지녀 많은 사랑을 받는 술입니다. 절대 코린트를 여행하신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어떻습니까?”

며칠 함께 여행하면서 제법 상대의 취향을 파악하고 있던 제임스의 말은 꽤나 다크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드래곤, 마법, 술, 거기다가 새로운 볼거리. 다크가 어느 정도 제임스의 말에 흥미를 가지는 듯한 눈치를 보이자 제임스는 더욱 신이 나서 떠들었다.

“거기에다가 황도(皇都)인 코린티아 시가지(市街地) 주위를 흐르는 도나우강에서 잡히는 민물고기 요리는 매우 유명합니다. 송어, 잉어, 메기 등을 주로 이용하는 데, 특히 송어 요리는 모든 여행객들이 즐기는 최고급 요리지요. 거기에 크로나사 지방에서 생산되는 백포도주까지 곁들이면 정말 입에서 살살 녹습니다.”

제임스는 교활하게도 배 인양 작업이 다 끝나고 점심때가 다 되어간다는 점까지 이용해서 음식 얘기로 말을 마쳤다. 안 그래도 배가 슬슬 고파오는 형편에 맛있는 음식 얘기까지 들으면 솔깃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흐음, 하지만 코린트는 너무 멀잖아?”

“아닙니다. 가져갈 화물도 없으니 바로 마법진을 그려서 공간 이동을 하면 됩니다. 시간도 얼마 안 걸리죠. 점심 식사는 백포도주로 찐 맛있는 송어찜을 드실 수 있 을 겁니다. 그리고 식후에는 코린티아 시내에 있는 많은 볼거리들을 구경하실 수도 있을 거구요.”

바로 갈 수 있다는 것에 적잖이 마음이 움직인 소녀는 옆에서 지미나 라빈이 제지하기도 전에 승낙하고야 말았다.

“좋아, 코린트에 가기로 하지.”

소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지미와 라빈이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외쳤다.

“안 됩니다!”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파이어해머도 한마디 덧붙였다.

“나도 그 악의 제국에 갈 생각은 없소.”

파이어해머는 반쯤은 포로나 다름없는 형편이었기에 스리슬쩍 벗어날 방도만 궁리하던 중이었는데, 코린트로 간다면 재수 없으면 사형까지 당할 가능성이 있었 다. 소녀는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들을 쭉 훑어본 후, 마지막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는 파시르까지 슬쩍 바라보고는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간다고 했으면 가는 거야.”

소녀의 말에 파이어해머는 하마터면 욕설을 퍼부을 뻔했다. 이런 멍청하고, 저 잘난 맛에 사는 어린 계집하고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의 저주였다. 자신은 거의 포로나 다름없으니 거기 가서 재수 없으면 사형당할 가능성이 다분했다. 저들이 소녀를 왜 데려가려고 하는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녀 외의 인물들도 거기 에서 환영받을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코린트 일당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저 두 명이 꽤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소녀 한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이어해머의 의견은 묵살되었고, 소녀가 한 번 결론을 내리자 반대하던 두 수련 기사들은 입을 다물었다. 파시르야 처음부터 조용했으니 어쨌거나 싫든 좋든 코린트행은 결정되고 말았다.

제임스가 손짓을 하자 노마법사는 재빨리 거대한 이동용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손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품속에서 꺼낸 작은 병 속에 들어 있던 하얀 가 루를 조금씩 뿌리면서 마법진을 그리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마법진을 그리면 바람 한 번 불고나면 마법진이 완전히 없어지므로, 추격자가 있다손 치더라도 이들의 행방을 알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했기에 마법사들 간에 상당히 애용되는 방법이었다. 마법진이 완성된 후 그들은 모두 마법진 위에 올라섰고, 곧이 어 뿌연 광채를 흘리면서 사라져 버렸다.

일행이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한 그곳에 하루쯤 지난 후 또다시 손님들이 찾아들었다. 손님들의 숫자는 여섯 명. 그들 중에는 익히 잘 알고 있던 미카엘, 팔시온이 포함되어 있었고, 또 한 명 아르티어스 어르신도 끼어 있었다.

선두에 서서 여기저기를 관찰하고 있는 기사는 40대 중반쯤으로,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하는 갈색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기른 노련해 보이는 인물이었다. 그는 뒤늦게 일행에 합류한 아르티어스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상대는 황제 폐하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토지에르 공의 친필 서한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거기에다가 그가 여태껏 함께 여행하면서 보통 실력이 넘는 대단한 마법사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기에 절대로 경시할 수 없었다.

“여기서 흔적이 끊겼습니다.”

아르티어스는 팔짱을 낀 채 지면에 여기저기 수놓인 타이탄의 거대한 발자국들을 보았다.

“이건 또 뭐야? 여기서 뭔가 크게 한바탕한 모양이군.”

그 기사는 재빨리 지면에 패여 있는 거대한 타이탄의 발자국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예, 상당수의 타이탄이 여기서 싸웠습니다. 원체 발자국이 어지러워 몇 대나 동원되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세 종류의 타이탄이 싸웠습니다. 두 종류는 코린트 제국의 것이고 한 종류는 크루마 제국의 것입니다.”

기사의 말에 아르티어스는 약간 감탄했다는 듯 말했다.

“호, 자네 안목이 대단하군. 마법도 쓰지 않고 어떻게 알았나?”

아르티어스의 질문에 기사는 여기저기 찍힌 거대한 발자국들을 가리키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예, 마법을 쓴다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만, 저 발자국은 분명히 코린트에서 사용하는 타이탄들의 발 모양입니다. 또 저 발자국들을 유심하게 살피면 각 타이 탄들이 사용한 검법의 검형(劍)을 알 수 있죠. 저 발자국으로 보건대, 코린트 정규 기사단에서 교육하는 코린티아 검법입니다. 코린티아 검법은 코린트의 3대 무 가(家)라고 할 수 있는 발렌시아드가, 로체스터가, 크로데인가의 검법을 합쳐서 만든 것이죠. 이 발자국들의 깊이 등을 봤을 때 타이탄들의 무게는 1백 톤이 약간 넘는 정도. 그렇다면 결론은 코린트의 근위 타이탄인 흑기사입니다.

또 저쪽에 찍힌 발자국은 1백 톤 내외로 추측되는데, 흑기사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발자국 모양이 코린트 타이탄의 모양이 아닌 데다가 흑기사보다 조금 더 가볍 습니다. 이 두 대는 다른 흑기사들과 실력 차이가 상당합니다. 한쪽은 정통적인 발렌시아드가의 검법을, 한쪽은 크로데인가의 검법을 사용하고 있죠. 모두들 자신의 실력을 십분 발휘한 덕분에 그들의 검법이 완전히 드러나 있는 겁니다. 그만큼 그들의 상대가 강했다는 말이 되겠지만 말입니다.

상대 타이탄의 발자국 모양은 상당히 특이해서 국적을 알아볼 수 없지만, 그 무게는 110톤 정도. 대단히 무거운 타이탄입니다. 이쪽은 크루마 기사단이 사용하는 크루지에 검법을 사용했습니다만, 저쪽에 발자국이 찍혀 있는 한 대는 정말 대단한 실력입니다. 크루마 쪽의 검법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그렇게 깊게 조사하지 못했 기에 어느 가문의 검법인지까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크루지에 검법은 아닙니다. 아마도 크루마의 이름 있는 명가(名家)의 검객인 모양입니다.”

“호, 발자국만으로도 그토록 많은 걸 알아내다니 대단하군. 그래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있나?”

“상당히 대단한 격투가 벌어진 모양이지만 쌍방 간의 타이탄 손실은 없었습니다. 크루마의 타이탄들은 저쪽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남은 코린트의 인물들과 로니에르 공작 전하께서는 이쪽에서 공간 이동을 하신 것 같습니다.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구요. 아마도 코린트로 갔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젠장! 거의 다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더니… 코린트 쪽은 좌표를 모르니까 공간 이동을 할 수가 없잖아!”

아르티어스가 투덜거리자 그의 뒤편에 서 있던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인상의 마법사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아르티어스는 마법으로 자신의 모든 기척 을 숨기고 있었기에 마법사는 상대가 드래곤이라는 걸 몰랐지만, 아르티어스가 한 번씩 보여 주는 마법으로 그가 자신보다는 훨씬 윗줄의 마법사라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코린트 쪽은 철저하게 조사가 되어 있습니다. 코린트의 워프 좌표도는 여기 있습니다.”

마법사는 품속에서 두툼한 책자를 하나 꺼내서는 아르티어스에게 건넸다. 아르티어스는 그걸 받아 들고 뒤적뒤적 대충 훑어봤다.

“자네는 어디로 공간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나?”

“일단 상대는 흑기사를 사용하는 근위 기사단입니다. 그렇다면 코린트의 수도인 코린티아시로 갔겠죠. 코린티아시 가깝게 워프하면 발각될 수 있으니, 적당하게

거리를 두어야 그쪽에서 눈치 채지 못할 겁니다. 거기다가 도나우강이 근처에 흐르니까, 이쯤에 워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마법사가 책자 위에 가리킨 곳은 코린티아시에서 50킬로미터쯤 떨어진 도나우강 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