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8권 1화 – 알카사스 원로 회의

알카사스 원로 회의

마도 왕국 알카사스는 개국(國) 이래 줄곧 중립 노선을 걸어온 거의 유일한 국가였다. 그 덕분에 전쟁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먼 국가처럼 느껴지지 만, 사실 알카사스가 지금까지 중립을 지켜 올 수 있었던 것이 막강한 군사력 덕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알카사스의 군 사력은 막강했고, 그 뒤를 받치는 마법사들의 힘 또한 세계 최강이었다. 타이탄까지 사용하지 않더라도 웬만한 국가쯤은 마법사들만으로 간단하게 멸망시킬 수 있는 저력이 이들에게는 있었기 때문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옛말이 있다. 개국 이래 역대 왕들과 중신(臣)들은 이 말을 착실히 실행해 왔고, 지금에 이르러서 알카사스는 4대 강국에 들어갈 정도의 군사력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알카사스는 여전히 중립국이었다.

알카사스의 왕궁 지하 4층에 마련된 비밀회의실. 이곳은 튼튼한 강철과 벽돌로 이루어진 매우 튼튼한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방의 외곽에는 다섯 겹 의 마법 방어막까지 쳐져 있어서 사실상 이 안에 거주하는 한 타살당할 염려는 거의 없었다.

“크루마와 코린트의 움직임이 수상하오. 아무래도 대규모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대들의 의견은 어떻소?”

원탁을 중심으로 놓여진 다섯 개의 의자에 앉아 있던 노인들 중 한 명이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은 채 나지막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워낙 조용한 곳이라 그 노인의 말을 듣지 못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정보에 따르면 양국(國) 모두 마법사들을 비밀리에 소집하고 있다고 합니다. 은둔하여 마법 실험에 몰두하던 고위급 마법사들까지 움직이는 것으 로 봤을 때 의장(長)님의 생각이 거의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원탁 한쪽에 앉아 있던 노인이 재빨리 상대의 말을 받았다. 하지만 그 노인의 말이 끝났음에도 오랜 시간 그의 말을 받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들 생각에 잠겨 왕국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곳에 모인 다섯 명의 노인들, 이들이 바로 알카사스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진 인 물들이었다.

개국 초에 형성된 원로원(元老院)은 필요에 의해 왕권을 능가하는 최고의 권력 기관으로 성장해 왔다.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원로원의 멤버는 최고 의 마법사들만이 될 수 있었고, 또 종신직이었기 때문에 원로원의 멤버들 모두는 거의 1백 세에 이른 노인들이었다. 그 때문인지 이들은 아직까지 파 격적인 일을 행한 적은 거의 없었다. 좋게 말하면 보수적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구태의연하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이런 인물들이 최강의 권력을 가 지고 있다 보니, 알카사스는 예로부터 큰 변화 없이 전해지는 대로 마법만을 추구하는 국가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나쁜 방향으로 흐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마법사들이란 원래 지능이 우수해야만 될 수 있는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한 노인이 오랜 침묵을 깨며 찌푸린 얼굴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국왕은?”

“국왕은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국왕이 처리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죠.”

“흐음…, 그거야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소. 일단 전쟁이 벌어진다면 최악의 경우 금지된 마법이 사용될 수도 있소. 이번에 전쟁을 벌이려는 국가들은 그 정도 능력을 지닌 마법사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오. 그렇기에 우리들도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할 것이고, 또 수출용 타이탄의 생산 대수도 좀 늘려 놓을 필요가 있소. 아무래도 전쟁이 벌어진다면 타이탄의 수요는 증가할 테니 말이오.”

“타이탄의 생산량은 어느 정도나 늘리는 게 좋을까요?”

“그대의 생각은?”

“50퍼센트 정도 더 생산해 두면 될 듯합니다. 그 외에 마법 무기들도 좀 더 만들구요.”

“잘만 하면 이번 기회에 왕국 내에서 수십 년 동안 처리하지 못했던 모든 재고품들을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려면 지금부터라도 코린트와 크루마에 사자를 보내 판매 교섭을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면 그들도 교섭에 응해 올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오. 그리고 코린트와 크루마의 동향을 면밀히 감시하여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본국에 피해가 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오.”

여기까지 말한 후 그 노인은 한쪽에 앉아 있는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라지에르 경.”

“예.”

“본국의 마법 방어막은?”

“예, 현재는 생산 에너지의 50퍼센트 정도를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도록 돌리고 있습니다만, 만일의 경우 전량을 방어벽으로 돌리도록 지시해 두었 습니다.”

“좋소. 하지만 그 두 국가들이 전쟁을 확대시켜 나간다면 본국도 위험할 가능성이 있소. 이번에 전쟁을 벌이는 국가들은 그만큼 강대한 제국들이기 때문이오. 그대들의 의견은 어떻소?”

“내 생각은 이렇소이다. 본국의 기사단은 모두 네 개. 상당한 전력이지요. 하지만 기사단은 이곳저곳에 조금씩 분산되어 있는 게 사실이오. 우선 기

사단이 주둔하고 있던 요충 지대에는 중장기병사단(重裝騎兵師團)을 집어넣고, 몇몇 중요한 곳에 기사단 전력을 집중시켜 두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 각하오. 본국은 타국과 달리 공간 이동망이 매우 발달되어 있으니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전력을 집중 투입할 수 있소. 그러니까, 기사단이 주둔할 곳은 최강의 마법 방어막이 쳐져 있는 5대 도시가 좋겠지요.”

“찬성이오.”

“찬성입니다.”

몇몇 노인들이 찬성의 뜻을 밝혔지만 의장(長)이라 불린 노인은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한다면 국왕 직속의 기사단들까지 우리들이 통제해야만 하지 않소? 근위 기사단이야 모두들 수도에 집중되어 있으니 상관없지 만, 레드 이글(Red Eagle: 붉은 독수리) 기사단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여덟 개 도시에 분산되어 있는데, 그들을 한 곳으로 끌어 모은다는 것은………….”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오. 국왕이 정면으로 거부 의사를 밝혀 온다면………….”

“국법에도 정해져 있지만, 위급 시에는 왕권보다는 원로원이 우선합니다.”

“내가 그걸 모르는 게 아니요. 그렇게 된다면 국왕파와 정면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 특히 혈기 넘치는 젊은 기사들의 대부분이 국왕파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오. 여기서 문제를 일으킨다면 국론만 분열시키는 결과밖에 낳지 않는다 이 말이오. 물론 그들 대부분이 그래듀 에이트가 아니기에 지금은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나중에 그들이 그래듀에이트로 성장했을 때는 문제가 될 수 있소. 그러니 그것은 내가 국왕과 의논해서 조용히 처리하도록 할 테니까 그대들은 관여하지 마시오.”

“알겠습니다.”

“대신 원로원 직속의 2개 기사단은 회의가 끝난 후 곧장 이동 배치하는 것이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