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8권 16화 – 살인 기계 안드로메다
살인 기계 안드로메다
점령지를 관리하는 데는, 기사단보다는 숫자가 많은 군대가 더욱 요긴하게 쓰인다. 그렇기에 지오르네 후작은 전투가 끝난 다음을 위해서 군대에게 현 위치를 지킬 것을 지시한 후, 처음부터 압도적으로 많은 타이탄을 보유한 기사단을 전장에 투입했다. 며칠 전 15대가 행방불명되기는 했지만 아직 도 그의 휘하에는 3백 대에 가까운 타이탄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상대방은 이쪽의 반 정도밖에 타이탄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그에게는 작전을 선택 할 수 있는 폭이 매우 넓었다.
지오르네 후작이 여러 나라에서 파견되어 온 많은 기사들과 의논을 하여 선택한 작전은 타이탄 전투에 있어서는 매우 상투적인 전법이었다. 적과 아 군의 병력이 비슷하거나 또는 전력이 비슷하다면, 승리하기 위해 별의별 작전을 짜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압도적인 병력의 우위. 이 런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병력을 나누어 별동대로 하여금 퇴로를 차단하게 하고, 정면에서 밀어붙이는 포위 작전이 최고였다.
그런데 적은 포위당하는 것을 꺼린 탓인지 세 개의 부대로 꽤 거리를 두고 포진한 상태였기에, 지오르네 후작도 자신의 부대를 세 개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 지그무스 후작은 타이탄 50대를 이끌고 우측으로 폭넓게 돌아 30여 대 정도로 추측되는 상대의 좌익이 아르곤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압박한 다. 그리고 크발리에 공작이 이끄는 타이탄 50대는 좌측으로 폭넓게 돌아 36대로 편성된 적의 우익 부대인 엠페른 기사단이 쟈렌 왕국으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압박하며 공격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130여 대로 이루어진 본대를 이끌고 적의 본대를 제압한다. 적의 본대가 보유한 타이탄은 기사의 수를 따져 봤을 때 최대한으로 잡아도 60대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기에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로안스엘 공작이 이끄는 별동대 50대는 놈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뒤에서 압박한다.
지오르네 후작이 세운 작전은 여러 기사들과 의논에 의논을 거듭한 결과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포위 공격이었다. 이렇게 단순한 작전이 세워 진 이유는 뚜렷하게 작전을 담당할 참모가 정해져 있지 않았기에 모두들 한 가지씩 작전을 떠들어 댔으므로 그중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작전을 선 택하게 된 결과, 가장 무난하고 또 흔히 쓰이는 작전이 채택되었던 것이다.
별동대는 새벽 4시에 마법진을 통하여 적의 후방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그때를 즈음하여 후작 휘하에 있던 모든 정찰조들이 상대의 정찰조들과 격 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둔하고 있는 적의 군대는 아예 건드리지 않았기에, 미란 국가 연합의 알렌 주둔군 보초들 중에는 저 멀리서 아련히 들려오는 검 부딪치는 소리를 들은 사람도 있었다.
이윽고 5시 정도가 되어 먼동이 틀 때쯤, 코린트 연합군은 조용하게 진격을 시작했다. 엄청난 수의 대군(軍)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었고, 마법사와 기사들로 이루어진 3백 명 남짓한 인원이 말을 타고 이동하는 것이었기에 그렇게 소란스럽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3백여 명의 인원으로도 멸망시키 지 못하는 나라는 몇 개 되지 않을 정도로 괴력을 낼 수 있는 것은 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타이탄의 덕분이었다.
그 3백여 명의 인원은 바실리시 외곽에서 세 개의 부대로 나누어 이동을 시작했다. 두 개의 작은 부대들은 각각 왼쪽과 오른쪽으로 돌아갔고, 이들 에 의해 적의 좌우익에 포진하고 있는 기사단이 밀려서 중앙으로 몰려들 것이다. 두 개의 부대가 분리된 후, 본대는 천천히 이동을 시작하여 국경 가 까이까지 접근했다. 그런 후 잠시 동안 기다렸다. 네 방향에서 적을 압박하여 중앙으로 몰아넣어 섬멸하려면 시간이 정확히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한 부대라도 시간을 어긴다면 불행하게도 각개격파당할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지오르네 후작은 자신이 보유한 타이탄이 원체 많았기에 그런 걱정까지는 하지 않고 있었다.
“약속된 시간입니다, 후작 각하.”
마법사의 말에 후작은 마시다가 남은 차를 단숨에 들이켠 후, 잔디 위에 펴 놓은 모포에서 몸을 일으켰다.
“미안하군. 아침에 차를 꼭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말일세.”
후작의 말에 마법사는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죄했다. 향긋한 차를 마신다는 것은 귀족들이 누리는 매우 사치스러운 습관이었다. 물론 서민들 을 위해서도 여러 종류의 차가 공급되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향이나 맛이 훨씬 떨어지는 하급품들이었다. 향긋한 차를 마시는 행위, 그 행위가 매우 고상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기에 귀족들은 마시기 싫어도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차를 마셔야 했고,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값비싼 차를 구입한다고 막대한 돈을 낭비하고 있었다. 물론 지오르네 후작도 부하들에게 자신의 교양이 얼마나 고상한지 과시하기 위해 차를 마셨을 뿐, 남들이 보지 않을 때는 포도주를 마셨다.
“아닙니다, 후작 각하. 각하의 고상하신 취미 생활을 방해하게 된 것이 송구할 따름입니다.”
“전쟁 때문이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나? 자, 경들 이제 토끼 사냥하러 갈까요?”
지오르네 후작의 농에 모두들 미소를 지으면서 말에 올랐다. 물론 후작의 지시를 받은 몇 명은 타이탄을 꺼내어 경계에 들어갔다. 하지만 정찰조의 보고에 따르면 이 일대는 완전히 자신들의 정찰조가 제압한 상황이었기에 타이탄을 꺼내어 호위하는 것은 거의 무의미한 행위였다.
세 시간 정도 달려 들어가자 가장 선두에 섰던 기사가 말을 멈추며 손을 들었다. 그의 행동에 맞춰 모두들 말을 세웠고, 선두의 기사는 뒤쪽으로 달 려오며 지오르네 후작에게 보고했다.
“적들이 보입니다.”
“뭐? 진형은?”
“이미 우리가 올 줄 알았는지 전투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준비성이 좋은 놈들이군. 좋아, 내려가자.”
후작의 부대가 언덕에서 달려 내려가 적의 진형 앞에 자리를 잡았다. 후작의 부대는 타이탄 전투를 벌이기에 최적의 거리인 2킬로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진형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은 재빨리 통신용 마법진들을 그리기 시작했고, 후작의 지시를 받은 기사 한 명이 흰 깃발을 들고 상대편 진영을 향해 말을 달려가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상대를 기습하지 않는 한, 정규전을 그것도 기사단들끼리 전투를 벌이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의례적으로 행해지는 몇 가지 행동들이 있었다. 기사라는 지위 자체가 기사도를 숭상하는 무리들이었기에, 될 수 있다면 전투도 기사도의 원리에 입각하여 행해야 했다. 그중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먼저 도착한 쪽에서 상대가 진형을 갖추기 전에 공격을 시작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는 이쪽에서 기다려 준 것을 치하하고, 또 자신들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서 전투를 하러 왔음을 전하기 위해 전령을 보내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전투를 하게 된 목 적을 밝히고 상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후퇴하든지 아니면 항복하라고……………
물론 그 자리에서 항복하는 경우도 간혹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전투를 선택하게 된다. 전투를 하려고 할 때, 상대는 전령이 들고 간 흰 깃 발을 상대 쪽에서 잘 보이도록 높이 들어 그 깃대를 꺽은 후 땅바닥에 내동댕이친다. 이것이 바로 쌍방 간에 교섭이 결렬되었다는 신호가 되고, 곧바 로 전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이때 화가 난다고 전령의 목을 벤다든가 하는 야만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적 진형을 망원경으로 바라보던 기사가 후작에게 말했다.
“교섭이 결렬되었습니다. 상대방이 타이탄을 꺼내고 있습니다.”
기사의 보고를 들은 후작은 항복 따위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자, 모두들 전투 준비! 타이탄을 꺼내라. 적들의 타이탄은 뭐지?”
후작의 물음에 기사는 망원경을 이용해서 적진을 다시금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기사의 시력이 보통 사람보다 월등하게 좋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자세히 관찰하기에는 기사들의 시력으로도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 모두 시커먼 색을 칠해 놨는데……………. 예, 저 뒤편에 있는 것은 로메로입니다. 그리고 저건 가만있자, 안토로스 같은데요?”
부하의 말에, 후작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뭐? 이리 줘 봐.”
후작은 부하의 손에서 망원경을 뺏듯이 받아 들고는 상대편 진영을 쏘아봤다. 부하의 말은 사실이었다. 후작의 눈으로 봐도 안토로스가 분명했다. 안토로스는 과거 14대밖에 생산되지 않았지만 매우 뛰어난 타이탄들 중의 하나였다. 지금도 몇 대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것을 보유 하고 있는 나라가 세 나라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고, 또 그 세 나라는 매우 잘 알려진 나라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안토로스가 맞군. 시뻘건 도마뱀의 문장. 그 반대편에 붙어 있는 쌍두 사자의 문양. 틀림없는 트란 근위 기사단의 문장이야.”
“예? 트란 근위 기사단이면 멸망한 트루비아의 기사단 아닙니까?”
“그렇지. 트루비아 전쟁에서 적 타이탄을 구경도 하지 못했었는데 여기에 와 있었군.”
“예, 아마도 크루마에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저 앞쪽에 도열해 있는 타이탄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혹시 알고 계십니까?”
“아니, 나도 처음 보는 타이탄이야. 상당히 육중해 보이는데, 50대 정도나 모여 있으니 상대하기 힘들 것 같아. 기껏해야 60대 정도로 생각했는데, 저 녀석들 예상외로 타이탄을 많이 가지고 있군. 또 성능도 상당히 우수한 것 같고…………”
“그래도 이쪽이 50대 정도 많습니다, 각하.”
“숫자야 그렇지. 하지만 성능은 어떨지 모르지.”
기사와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던 후작은 뒤에서 통신을 시도하고 있는 마법사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딴 부대로부터의 연락은?”
후작의 질문에 한 마법사가 재빨리 답했다.
“예, 지그무스 후작 각하로부터의 연락입니다. 현재 적 기사단과 대치 중. 적 기사단의 타이탄 수는 숨겨 놓은 것이 없다면 로메로 27대, 노리에 5 대, 합해서 32대라는 보고입니다. 모두 검은색을 칠했고, 붉은색으로 뱀의 문장을 그려 놨다고 합니다.”
“알겠다. 8시 정각에 작전을 시작하라고 전해라. 그 전까지는 대충 상대방과 비슷한 수의 타이탄만 꺼내어 적이 안심하게 하는 것 잊지 말라고 하 고.”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딴 곳에서는 연락 없나?”
이번에는 그 마법사의 옆에 앉아 있던 마법사가 말했다.
“크발리에 공작 전하로부터의 연락입니다. 산드라 요새에 접근, 대치 중이라고 합니다. 요새에 가려 상대 타이탄의 수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쪽에도 8시에 공격하라고 전해.”
“예, 각하.”
그 마법사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또 다른 마법사도 급히 보고를 올렸다. 타이탄은 마법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기에 기사단들끼리 타이탄을 앞세워 전투를 할 때 마법사는 이런 식으로 기사들을 보조했던 것이다.
“로안스엘 공작 전하로부터의 연락입니다. 현재 퇴로 장악 완료. 상대의 정찰조 세 개를 포착, 격멸했다고 합니다.”
“조금 있다가 전투가 시작되니까 적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으라고 전하라.”
“예, 각하.”
일단 휘하 부대와 연락이 끝나자, 후작은 또 다른 마법사를 향해 외쳤다.
“본국을 불러라.”
그 마법사는 열심히 주문을 외워 댄 후 후작을 행해 말했다.
“각하, 본국이 나왔습니다.”
후작이 수정 구슬 앞으로 다가가자 수정구슬 안에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마법사는 후작을 알아보고 공손히 절을 하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후작 각하.”
“그래, 자네도 안녕한가?”
“예.”
“발렌시아드 대공 전하께 전해라. 현재 적 타이탄과 대치 중이다. 살라만더 기사단이 가지고 있는 타이탄은 로메로 20대 정도,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신형 타이탄 50대 정도다. 그리고 그들 속에 트루비아의 기사단도 보인다. 상대 타이탄의 모습을 전송하겠다.”
여기까지 말한 후작은 마법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봐, 기억을 전송할 준비를 해 주게.”
“예, 각하.”
마법사는 수정 구슬 위에 손을 얹고 주문을 몇 마디 외운 후 후작에게 말했다.
“구슬에 손을 대시고 전송할 타이탄의 모습을 기억하십시오. 예, 됐습니다, 각하, 전송이 끝났습니다.”
후작은 다시금 시선을 수정 구슬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방금 보낸 검은색 타이탄에 대해 조사해서 발렌시아드 공작 전하께 전해라.”
“알겠습니다, 각하. 무훈을 빕니다.”
“고맙군.”
이제 모든 것이 다 갖춰졌다고 생각한 후작은 기사들을 향해 우렁차게 외쳤다.
“자, 8시가 다 되어 간다. 모두들 준비하도록.”
이때 한 기사가 후작을 향해 말했다.
“각하께서도 싸우실 겁니까?”
“아니, 나는 여기서 지휘를 하기로 하지. 자네가 전방 지휘를 해 주겠나?”
“영광입니다, 각하.”
쌍방은 타이탄들을 꺼내어 전투 대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선두에 서 있는 타이탄들은 모두 보조 무장으로 창을 한 자루씩 가지고 있었다. 일단 상대 와 격투에 들어가기 전에 그걸 던지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뒤쪽 열에 있는 타이탄들은 각자 취향에 따라 거대한 철퇴나 도끼를 오른손에 쥐고 있 었다. 타이탄의 손이 두 개밖에 없다 보니 무기를 추가로 가지고 가는 것에는 한도가 있었다.
타이탄들끼리의 전투에서도 보병들끼리의 전투와 마찬가지로 육중하고 두터운 장갑을 가진 것들이 선두에 서게 된다. 선두에 서서 상대방과 격전에 들어갈 타이탄들은 뒤로는 아군이, 앞으로는 적군이 몰려들어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매우 좁기에 강력한 장갑으로 몸을 보호하며 죽자고 검을 휘 둘러야 했다. 하지만 양쪽 측면이나 뒤에 위치하는 타이탄들은 가볍고 기동력이 빠른 것이 사용되었다. 이들의 경우 움직이는 데 충분한 공간이 있었 기에, 무식하게 방패와 장갑만으로 적의 공격을 막아 내지 않아도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상대방도 크고 몸집이 좋은 신형을 중앙에 배치하고 로메로를 좌우 측면에 배치했다. 예법에 따라 상대방의 진형이 다 갖춰질 때까지 기다린 후작 은, 적들도 모든 준비를 갖췄다고 생각되자 우렁차게 외쳤다.
“전원, 돌격 준비!”
이때, 후작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갑자기 적들 타이탄의 뒤쪽에서 거대한 것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몸통은 앞쪽에 도열해 있는 타이 탄들 때문에 보이지 않았지만, 세 개의 뿔이 나 있는 거대한 머리통과 가슴 위쪽은 앞을 막아서고 있는 많은 타이탄들에도 불구하고 명확하게 보였 다. 그 말은 앞에 서 있는 타이탄보다 최소한 1미터는 더 크다는 말이었다.
“저.. 저건 또 뭐야?”
후작의 당황한 태도에 마법진 앞에 앉아 있던 마법사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예? 뭐 말입니까? 각하.”
“저 뒤에 서 있는 타이탄 말이야.”
“예? 뒤에 말입니까?”
원래가 마법사의 시력은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한 보통 사람들이나 다를 바가 없었기에, 마법사는 후작의 옆에 놓여 있던 망원경을 집어 들고 나서 야 후작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엄청나게 큰 타이탄입니다. 백기사하고 거의 비슷한 크기겠는데요?”
마법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후작이 지시했다.
“맞아. 바로 저 녀석이다. 본국에 지급으로 다시 연락을 넣어라.”
“옛, 각하.”
이때 상대방 타이탄들이 돌격해 왔기에 코린트 동맹군의 타이탄들은 후작의 명령 없이 상대방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원래가 전투는 기세(氣勢)에 는 기세로 대응해야 했기에 적이 돌진해 들어오는데도 가만히 서서 기다리다가는 먼저 주눅이 들게 되기 때문에 취해지는 행동이었다. 부하들이 달 려 나가는 모습을 보며 후작은 재빨리 마법사에게 외쳤다.
“로안스엘 공작에게 급전을 보내라. 퇴로 차단 명령을 철회하겠다. 지금 즉시 별동대를 이끌고 이리로 달려오라고 전해라.”
로안스엘 공작과의 마법 통신을 담당하고 있던 마법사는 즉시 지시를 전달하지 않고 이의를 제기했다.
“각하, 그렇게 되면 포위망에 구멍이 생기게 됩니다.”
“포위망이 구멍이 나건, 무너지건 상관없다. 문제는 저 큰 타이탄이야. 아마 저 녀석이 대공 전하께서 찾고 계시던 녀석일 거야. 그건 그렇고, 아직 도 본국에 연락이 되지 않았나?”
후작의 투덜거림에 본국을 향해 통신 마법을 다시금 구사하고 있던 마법사는 재빨리 답했다.
“예, 이제 연락이 되었습니다. 각하.”
“에잇, 비켜라. 이보게.”
다급한 후작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수정 구슬 안에 비춰져 보이는 늙은 마법사는 느긋한 어조로 대답했다.
“예, 후작 각하.”
“최대한 빨리 이 타이탄에 대해 조사해 봐라.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덩치가 크다. 백기사와 맞먹는 것 같은데 이놈이 대 공 전하께서 찾고 계시던 타이탄인 것 같다.”
허둥대는 후작을 향해 노마법사는 역시 느긋한 어조로 답했다.
“예, 확인해 보겠습니다. 빨리 모습을 전송해 주십시오.”
상대 마법사의 주문에 후작은 자신이 하는 것보다는 통신을 담당하는 마법사가 직접 하는 것이 더욱 안정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본국과의 마법 진을 연 마법사를 향해 말했다.
“망원경을 보고 자네가 직접 전송해.”
“옛, 각하.”
“자네는 이제부터 저 타이탄이 움직이는 모습을 모두 다 전송해라. 딴 일은 안 해도 좋아. 저 타이탄만 주시해라. 알겠나?”
“예, 각하.”
마법사가 망원경을 들고는 상대 타이탄을 주시하며 그 영상을 본국으로 전송하는 것을 잠시 지켜보다가 후작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별동대와의 연락을 담당하는 마법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마법사는 지금 통신 마법진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뒤쪽의 풀숲을 화염 마법으로 불태운 후 그 위에 거대한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로안스엘 공작에게는 연락이 되었나?”
마법진을 그리고 있던 그 마법사는 즉시 후작을 향해 답했다.
“예, 지시를 전달했습니다, 각하.”
“언제 도착한다고 하던가?”
“여러 개의 퇴로에 산개해 있는 기사들을 소집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들이 모이는 대로 곧 마법진을 통해 이쪽으로 오실 것입니다, 각하. 아마 10 분 정도 걸리실 거라는 보고입니다.”
마법사의 대답에 후작은 시선을 격렬한 전투가 전개되고 있는 전장으로 돌리며 중얼거렸다.
“10분이라. 늦지 말아야 할 텐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지?>
안드로메다의 투덜거림에 다크는 짜증이 섞인 음성으로 답했다.
“좀 기다려 봐.”
〈나는 기다리는 게 싫어. 나는 내 힘을 과시하고 싶어. 그렇게 마나를 막아 놓지 말고 개방해라. 그다음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기다리라고 했지.”
〈모두들 잘 싸우고 있어. 이렇게 나가면 내 먹이가 줄어들 뿐이야. 나는 하나라도 더 죽이고 싶다. 너는 그것을 도울 힘이 충분히 있어. 사람의 몸속 에서 흐르는 그 따스한 것. 그 따스함을 다시 한 번 더 느끼고 싶어. 나에게 힘을 줘.>
“으아아악! 제발 좀 닥치지 못해? 네 녀석 말을 듣고 있으면 옛날의 악몽이 다시 떠오른단 말이야. 나는 무인일 뿐 절대로 살인귀는 아니야. 아니, 살 인귀는 안 되도록 노력해 왔다구. 그러니까 자꾸 옆에서 부추기지 말란 말이야. 알았어? 이 망할 살인귀 놈아.”
다크는 지금 전장으로 달려 들어갈 것이냐 마느냐를 가지고 한참 고심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의 타이탄이 한 번 피 맛을 보더니 거기에서 무한한 매력을 찾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피에 젖은 광기를 지닌 마교라는 단체에서 자라 온 그였기에, 다크 또한 살인이라는 것에 대해 무덤덤한 상 태였다. 일부 고수들의 경우 살인을 미학으로까지 발전시켜 그것에서 쾌락을 찾는 진짜 미치광이들도 있었지만 다크는 예전부터 그것을 의식적으로 회피해 오고 있었다.
피, 피, 피…….
하지만 피에 굶주려 헐떡이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련한 과거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다크가 매우 특수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 서 다크가 고심하고 있는 부분은 이 직설적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타이탄이 하고 있는 생각을 자신도 지금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자신은 그것을 억제해 왔고, 또 그것을 표현하는 것 자체를 꺼려했지만 단도직입적으로 피에 굶주려 헐떡이는 소리를 듣다 보니까 남의 일 같지 않다 는 생각이 드는 것은 또 무슨 해괴한 일일까?
〈흐흐…, 그걸 ‘살인’이라고 하는 거냐? 그래, 살인이라는 것이 그렇게 기분 좋은 것인 줄은 몰랐어. 너도 그걸 즐기고 있었잖아. 그런데 왜 지금 와 서 부인하는 거야?>
“제길! 전번의 도로니아가 더 좋았어. 이 살인마 녀석아.”
〈도로니아 따위와 나를 비교하려 들지 마라. 그런 형편없는 것과 비교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모욕이야. 도로니아를 가지고서 그때 한 것과 같이 멋지게 살인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를 소유하고 있는 한 너는 무적이야. 수많은 사람들과 타이탄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일 수 있어.〉
“제기랄, 겨우 몇 명 죽이고 나서 이렇게 들뜨는 놈은 처음 보겠네. 처음부터 살인을 위한 병기로 제작되었기에 그런 건가? 그래, 나도 살인을 위해 서 키워졌…, 그아악! 나는 아니야. 나는 사람 죽이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다구.”
다크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안드로메다는 매우 집요한 데가 있었다.
〈아니야, 너도 좋아하잖아. 너와 나는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다. 내 성격이 싫다고 했지만, 처음 제작된 타이탄은 첫 번째로 만난 주인의 성격을 가장 많이 닮게 되어 있어. 나는 너의 거울이나 다름없어. 너는 지금 달려 나가서 나를 이용해서 저것들을 죽이고 싶지? 그렇지?>
“달려 나가서 죽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가도 네 녀석의 이죽거리는 소리를 듣고 나니 그럴 마음이 없어진다.”
<너는 지금 참고 있지만, 사실은 피가 끓고 있잖아. 안 그래? 뜨끈한 피의 감촉. 금속성의 내 몸의 말단을 통해 전해지는 간단한 감각인데도 이렇듯 나를 흥분시키는데, 너는 더욱 섬세한 감각 기관들이 있잖아. 너를 통해 느껴지는 저 뜨끈한 피의 향기. 너는 그것을 맡으면서 흥분하고 있다구. 너는 오래전부터 피에 굶주려 있어. 부인하려고 하지 마. 자 나를 움직이라구. 그런 후 죽이는 거야. 흐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