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8권 18화 – 예상 밖의 승리

예상 밖의 승리

“뭣이라고? 전멸?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아무리 여러 나라에서 끌어 모은 손발이 잘 안 맞는 기사단이라고 해도, 자그마치 3백 대의 타이탄이다. 그런데 어떻게 전멸을 당할 수 있지? 더군다나 제3근위대의 엘리트들을 두 명이나 지원해 줬는데.”

“황송하옵니다, 전하. 그때 그 검은색의 초대형 타이탄을 막아 내지 못한 것이 알렌 방면의 패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조사되었사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그렇다면 페트릭과 크리스틴이 놈을 막지 못했다는 말이냐?”

“예, 전하. 유감스럽게도 그렇사옵니다.”

“그럴 수가…, 그렇다면 그때 전송되어 온 전투 자료가 있는가?”

“예, 있사옵니다.”

마법사는 알렌 방면 기사단이 붕괴되기 직전에 보내 왔던 전투를 회상하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마법사는 매우 머리가 우수했기에 가능한 작업 이었다.

“디스플레이 이미지!”

곧이어 검은색 타이탄과 붉은색 타이탄들이 싸우는 모습이 나타났다. 초반에는 붉은색 타이탄들이 압도적인 우세 속에 전투가 전개되었다. 하지만 곧이어…………….

“이럴 수가…………. 저놈은 마스터급이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왜 처음에는 그 기술을 쓰지 않고 힘들여서 한 대씩 부숴 나갔지? 이해할 수가 없군.” 전투 모습을 보고 충격 받은 키에리가 중얼거리고 있자, 마법사는 재빨리 주의를 환기시켰다.

“바실리시에 집결했던 모든 동맹 기사단은 저 단 한 번의 전투로 괴멸당했사옵니다. 놈들은 중앙에서 승리를 거둔 후 좌우에서 압박해 들어오고 있 던 동맹군의 좌우익을 간단히 제압했사옵니다. 이렇게 된 이상 가므에서 결전을 벌이고 있는 중앙 부대가 위험하옵니다. 아마도 곧이어 적의 좌익 부 대가 아군 중앙 부대의 측면 내지는 후미를 공격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옵니다. 빨리 결정을 내려 주시옵소서.”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사옵니다. 일단 전 군을 쟈크렌 요새 부근으로 후퇴시키심이 어떠하는지요? 놈들의 좌익 부대에게 퇴로를 차단당 하기 전에 전 군을 후퇴시켜야 하옵니다. 그런 후 동쪽 최강의 요새 쟈크렌을 중심으로 놈들을 막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 될 것 같사옵니다.”

“구스타프 백작의 의견은 잘못되었사옵니다. 그런 식으로 급속히 후퇴시킨다면 기사단은 건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군대는 적에게 포착되어 괴멸당 할 우려가 있사옵니다. 그것보다는 적의 좌익 부대를 막기 위한 기사단을 급파하는 것이 옳을 것이옵니다. 본국에는 아직도 두 개 기사단이 남아 있 지 않사옵니까?”

“그건 틀립니다, 후작 각하. 3백 대의 타이탄을 전멸시킨 엄청난 저력을 가진 기사단을 어떻게 철십자나 동십자 기사단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 까? 저 괴력을 자랑하는 적 기사단장을 제압할 수 있는 기사는 두 기사단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놈을 해치울 수 있는 기사는 따로 파견하면 되지 않나? 왜 그걸 생각하지 못하는 거지? 발렌시아드 후작 각하나 크로데인 백작님을 파견하면 저 녀석을 충분히 없앨 수 있단 말일세.”

“하지만 그분들은 중요한 일로 타국에서 작전 중이 아닙니까? 어떻게 그분들을 돌릴 수 있단 말입니까?”

모두 시끄럽게 떠들어 대기 시작하자 키에리는 손을 들어 그들을 조용히 시키며 말했다.

“자, 자, 조용히들 하게나. 상대 기사단이 중앙을 덮친다면 시간은 얼마나 걸리겠소?”

“예, 일단 놈들도 대격전을 벌인 후이니만큼 휴식과 재편성을 필요로 하옵니다. 그런 후 마법진으로 투입한다면 시간은 매우 절약될 것이니…, 아마 도 24시간?”

“그렇다면 내일쯤 퇴로를 차단하고 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예, 공작 전하. 물론 적 마법사들의 능력이 따라 줄 때의 가정이옵니다.”

“그렇다면 후속 부대를 투입시키기에도 빠듯한 시간이 아닌가?”

“예, 공작 전하. 그리고 전방 부대들을 후퇴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구요.”

“어쩔 수 없지. 철십자 기사단을 끌어 모아라. 철십자 기사단을 그곳에 투입하기로 하자.”

“하지만 전하, 그 괴물 같은 기사단장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건 내가 직접 가겠다.”

코린트는 적의 좌익 부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수많은 첩자들을 파견했고, 아직 크루마와 격전을 벌이고 있는 중앙과 우 익 부대는 전방만이 아니고 후방에까지도 정찰조를 파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라도 뒤통수를 얻어맞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모두가 관심을 쏟고 있던 크루마 동맹의 좌익 부대는 현지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남의 전쟁이야 어찌되든 간에 다크가 거느린 살라만더 기사단은 전쟁 외에도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바로 3백여 대에 달하는 노획 타이탄의 처리 문제가 그것이었다. 이들은 노획한 타이탄 중에서 아직 살아 있는 것들은 계약을 맺어서 운반했고, 죽 어 버린 타이탄은 또 다른 타이탄이 가지고 공간으로 사라지게 만든 후 기사들을 공간 이동시키는 방법으로 운반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전투에서 살아남은 엠페른 기사단과 연합 기사단의 생존 타이탄들은 모두 다 살라만더 기사단의 50킬로미터 후방에 위치시켜 퇴로 확보를 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들도 그 결정에는 찬성이었다. 그들은 우선 자신들과 격전을 벌이다가 파괴된 노획 타이탄을 챙겨 본국으로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나중에 적의 힘에 밀려 중앙 쪽으로 후퇴하다가 중앙부에서 지원 나온 타이탄들과 협동하여 적을 무찌르긴 했지만, 모두들 거의 30여 대 정도로 50여 대의 적을 막다 보니 피해가 막심한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제대로 된 전력을 내기 위해서는 휴식과 재편성이 꼭 필요한 상태였다.

“여기는 살라만더 기사단입니다.”

마법사가 자신의 수정 구슬에 모습을 나타낸 처음 보는 인물에게 말했다. 통신용 마법진의 경우 서로 간의 접속 신호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어야 했 기에, 딴 사람의 도청은 거의 불가능했고 또, 접속 신호를 모르는 다른 인물이 무작위로 그 신호를 알아맞혀 끼어들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자신이 처음 보는 인물이 수정구에 모습을 드러냈다면 이 수정구의 접속 신호를 알고 있는 사람, 즉 동맹국의 어떤 인물인 것이 확실했다. “여기는 살라만더 기사단 임시 마법사 본부입니다. 불렀으면 답을 해 주십시오.”

상대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예. 저는 살라만더 기사단에 파견 나온 마법사입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당신은 내가 모르는 사람인데?”

“아, 예. 오늘 오전에 있었던 격전으로 인해, 후방 기지가 파괴되었습니다. 그때 크루마에서 파견 나왔던 모든 마법사가 전사했습니다. 그렇기에 공 작 전하께서는 또다시 크루마에 인력 지원을 할 수는 없다고 결정하시고 본국에서 마법사와 기사의 지원을 요청하셨습니다. 저희들이 이곳에 도착한 후에 마법 통신망이 재구축되었습니다.”

상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모두 전사했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파견 나왔던 기사들은 전쟁 직전에 벌어졌던 정찰대끼리의 치열한 교전에서 모두 전사했습니다. 그러니까 크루마에서 파견된 분들은 지금 아무도 없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그…, 그렇다면 전투는 어떻게 되었나요? 연락이 워낙 오랜 시간 불통되어 있었기에 우리들은 귀 기사단이 전멸당한 줄 알았습니다.”

“전투는 승리했습니다.”

그 말에 상대방 마법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승리? 승리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거의 3백여 대의 적 타이탄을 파괴했고, 이쪽은 50여 대가 파괴되었습니다. 특히 적 기사단의 우회 공격조를 끝까지 막아 줬던 엠페른 기사단 쪽의 피해가 큽니다.”

“이럴 수가…… 곧 미네르바 공작 전하께 이 승전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그럼 이만.”

전멸을 당하더라도 오랜 시간만 버텨 주면 다행이라고 생각되던 지점에서 승전 보고가 나오자 미네르바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렇게 되면 예상과 달리 적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진격조차 불가능에 가까운 중앙 전선에서 적을 돌파하기 위해 무리한 공격을 감행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이럴 수가…, 제장(諸將)들. 기쁜 소식이 도착했소. 서쪽으로 나가는 길이 열렸소. 아직 전선을 유지하면 다행으로 생각했던 알렌 방어군이 대승을 거뒀다는 보고요.”

“알렌 방어군이라면 동맹 연합군이 아니옵니까? 설마 그들이……

“매우 강력한 기사단과 기사들을 보내 준다고 하더니, 진짜 그들이 해낸 것 같소.”

한 노장군이 지도 앞에 나서서 손가락으로 위치를 짚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빨리 이쪽으로 진격해서 적의 측면을 압박하라고 지시하시옵소서. 그렇게 된다면 지금 이곳에서의 힘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지 게 될 것이옵니다. 코린트의 정예를 완전히 궤멸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니옵니까?”

이때 미네르바가 뭐라고 답하기도 전에 또 다른 노장군이 나서서 앞의 인물이 지도 위에 짚은 지점보다 훨씬 더 왼쪽 부분을 짚으며 말했다.

“그것보다는 뒤로 더욱 진격해서 아직 준비 태세가 갖춰지지 않은 동쪽의 관문 쟈크렌 요새를 점령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이옵니다. 본국에서 이 곳 정면을 돌파한다면 적이 다음 전선을 유지하기에 쟈크렌 요새만큼 좋은 곳은 없사옵니다. 대타이탄 공격 무기를 대량으로 보유한 거대 요새일 뿐 아니라 북쪽으로는 웜급 레드 드래곤 브로마네스의 둥지가 있고, 남쪽으로는 웜급 그린 드래곤 그라시안의 둥지가 있사옵니다. 그 두 드래곤의 영토 의 경계점에 교묘하게 세운 요새이기에 포위 공격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또 그곳에서 너무 장시간 치열한 접전을 벌이면 그 두 드래곤의 분노를 살 수도 있사옵니다. 그리고 그 일대는 20여 마리에 달하는 드래곤들의 집단 서식지이기에 그곳을 피해 우회하려면 너무 먼 거리를 돌아가야

하옵니다. 전략상 최고의 요충지라 할 수 있지요. 적들의 대비가 아직 갖춰지지 않았을 지금이 그곳을 공격하는 데 적기이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한 중년의 장군이 나서서 그의 의견을 지지했다.

“로젠나르 자작님의 의견이 옳사옵니다. 쟈크렌 요새가 점령된다면 적의 보급로는 드래곤들의 둥지를 우회해야 하기에 크게 늘어나게 될 것이 분명 하옵니다. 퇴로 확보 및 보급로의 유지가 힘든 적들은 자연히 후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옵니다.”

미네르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로젠나르 자작의 의견이 가장 좋은 것 같군요.”

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뒤쪽에 서 있는 미녀를 보며 말했다.

“마리나.”

미네르바의 부름에 그녀의 뒤쪽에 조용히 서 있던 아름다운 여자가 얌전을 빼며 다소곳이 답했다. 그녀는 매우 젊어 보였지만 실은 60세가 넘은 6 사이클급에 달하는 궁정 마법사였다.

“예, 공작 전하.”

“알렌 방어군에게 지시해라. 쟈크렌 요새 부근에 공간 이동할 만한 좌표를 알려 주고 즉각 기사단을 투입하라고 일러라.”

“예, 전하. 그렇게 이르기는 하겠지만…, 도착 지점에 수신 마법진이 없다면 크라레스의 실력이 낮은 마법사들로서는 대규모의 기사단을 공간 이동 시키기 힘들 것이옵니다. 마법사에게 들으니 후방을 몇 대의 적 타이탄에게 기습당해서 본국에서 지원해 준 마법사들을 모두 잃었다고 하옵니다. 지 금 자국에서 마법사를 몇 명 데려다가 통신망을 새로이 구축한 모양이던데, 그들의 실력으로는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옵니다.”

미네르바는 그녀의 의견에 동조하며 또 다른 가능성을 찾기 위해 지도를 쳐다보며 말했다.

“맞아, 그걸 생각하지 못했군. 음, 어디 보자. 쟈크렌 요새 부근에는 강이나 호수 같은 공간 이동하기 좋은 곳이 없군.”

“예, 전하.”

“그렇다면 자네가 해 주지 않겠나? 기사 몇 명을 붙여 줄 테니 그곳으로 먼저 가서 수신 마법진을 설치하고 그들을 불러들이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