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8권 8화 – 다크 폰 로니에르 파견군 사령관
다크 폰 로니에르 파견군 사령관
위대한 대마법사 그라세리안 드 코타스가 갑작스럽게 행방불명이 되자 제임스 드 발렌시아드 후작을 주축으로 그의 행방을 찾기 위한 움직임이 시 작되고 있었다. 물론 아직 하루도 안 되는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기에 그를 찾기 위해 움직이는 인원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위쪽의 높은 분들께는 아 직 보고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혹시나 그라세리안 드 코타스 공작이 머리를 식히기 위해 어딘가 조용한 장소에서 차라도 한잔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 었고, 만약 사실이 그러하다면 엄청난 망신이었기에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질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들이 찾고 있는 그라세리안 드 코타 스, 아니 블루 드래곤 카드리안은 이미 싫증이 나버린 인간 생활에서 탈피하여 오랜만에 본체로 돌아간 상태로 자신의 레어에 틀어박혀 낮잠을 즐기 고 있었으니, 애당초 수색조들은 그를 찾을 수 없었다.
또 제임스가 쫓고 있는 두 번째의 인물, 즉 다크라고 이름을 밝혔던 소녀는 지금 코린티아시에서 멀찍이 떨어진 크라레스의 수도 크로돈에 와 있었 다.
“로니에르 총독 전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만약 이곳이 코린트나 크루마 같은 거대한 강대국이었다면 팡파레까지 울리며 입장을 하셨겠지만 로니에르 공작은 조용히 수행원만을 거느리고 입 궁했다. 사실 입궁이라고 해봐야 황실 한쪽 구석에 있는 마법진에서 순식간에 튀어나와 황궁 쪽으로 걸음을 옮긴 것이 다였고, 그녀와 그 일행이 튀 어나오는 것을 본 인물들이 허겁지겁 황궁으로 달려간 것이 다였다.
“안녕하셨사옵니까? 전하.”
로니에르 공작이 황실 내전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안에서 나오던 인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로니에르 공작을 보자마자 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인 사를 건네 왔다. 가장 큰 힘이 되어 줄 인물이 시기도 적절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호오, 이게 누구신가. 토지에르 경, 잘 있었나?”
“예, 덕분에.”
소녀는 다짜고짜 토지에르의 멱살을 그러쥐고 자신의 얼굴 가까이로 끌어당긴 후에 조용히, 하지만 위압적인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오붓하게 여행을 즐기고 있던 나를 소환한 이유는? 내가 돌아가는 방법을 찾기라도 했다는 거냐?”
토지에르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속으로는 ‘성격은 하나도 안 변했군’이라고 생각하면서.
“저,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은 전쟁이 임박한 관계로 그 때문에 찾은 것이옵니다.”
“전쟁이라고? 내가 알기로는 지금 전쟁을 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은데?”
“예. 그런데 지금 시기가 꽤 적절하기에……………”
로니에르 공작은 미소를 지으며 상대의 멱살을 풀어 주고는 구겨진 상대의 옷을 슬쩍 펴 주면서 다정스럽게 말했다.
“호오, 상당히 재미난 일이 생길 모양이군. 좋아, 기·대·해·보·지.”
다정스런 목소리였지만 제일 뒤에 내뱉은 말은 상당히 어감이 야릇했고, 만약 기대에 어긋난다면 반쯤 죽여 놓을 수도 있다는 경고로 들렸다. 하지 만 토지에르는 그 정도에 다리를 후들거릴 정도로 배짱이 약한 인물은 아니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지금 해야 할 일은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기대하셔도 될 것이옵니다. 제가 판단하기로 전하께서 가시지 않는다면 패전할 것이 확실할 정도로 끝내 주는 전쟁터지요. 그건 그렇고, 폐하께서 기다리십니다. 저쪽으로.”
내전 앞에 다다르자 소녀는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의문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파시르와 파이어해머를 무시한 채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려라. 그리고 아버지도 여기서 기다리세요.”
소녀는 그 말을 끝으로 경비병들이 좌우에 배치되어 있는 호화로운 문을 밀치고 들어가 버렸다. 그녀가 들어가는 것을 본 후 파시르는 지미와 라빈 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여기 서 있는 인물들 중에서 가장 만만하게 보이는 인물이 이 둘이었고, 또 오랜 여행을 함께 했었기에 가장 친숙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저 ‘전하는 누구야? 황녀인가?”
지미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아뇨, 아직까지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다크 폰 로니에르 공작 전하시죠.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은 저기 아르티어스 님을 제외하고는 그분의 친위 기사단 소속입니다. 이제 아무래도 한식구가 될 것 같은데, 정식으로 소개를 드리죠. 저는 제2친위 기사단 소속 수련 기사 지미 도니에, 이 녀석 은 라빈 엘느와. 그리고 저쪽 둘도 같은 수련 기사 미카엘 드 로체스터, 팔시온 엘마리노. 그리고…………”
공작 전하라는 말에 파시르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전하라니…………. 왕녀와 공작이 지닌 권력은 하늘과 땅 차이였기 때문이다.
지미는 서 있는 모든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파시르에게 소개했다. 서로가 인사를 끝내자 지미는 대충 필요한 부분을 덧붙였다.
“제2친위 기사단은 공작 전하의 개인 기사단이에요. 공작 전하까지 포함한다면 기사 열세 명, 여덟 대의 타이탄, 그리고 다섯 명의 수련 기사, 세 명
의 마법사로 구성되어 있죠. 모두들 좋으신 분들이에요. 저희 기사단에 입단하시게 된 걸 우선 축하드려요.” “으응…, 고맙구나.”
파시르는 좀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왠지 속은 것 같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정규 기사단이라는 단어가 아닌 ‘개인 기사단’이라는 말에 약 간은 구미가 당기는 부분이 있었다. 용병 생활을 오래 해 온 기사가 정규 기사단에 들어가 적응하기는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개인 기사단이라면 정 규 기사단보다는 좀 더 많은 자유가 있었고, 또 기강도 좀 느슨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경의 얼굴을 잊어 먹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네.”
“별 말씀을, 폐하.”
“그리 좀 앉지.”
“예, 폐하.”
“지도를 가져와라.”
“옛, 폐하.”
곧이어 시종이 큼직한 두루마리를 가져오자 황제는 그것을 다크가 앉아 있는 테이블 위에다가 쫙 펼쳐 놓은 후 일일이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는 별로 이곳 지리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지도를 보면서 설명을 듣는 게 이해하기 편할 거야. 아마도 곧 코린트와 크루마 사이에 전쟁이 벌어 질 것 같아. 두 나라 다 매우 강대한 제국들이야. 원로들과 토론해 본 결과 우리들이 힘을 키워 코린트와 대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이 들과의 전쟁에 편승한다면 코린트에 복수할 수 있을 거라는 결론이 나왔네.”
“상당히 멀리 떨어진 국가들이군요.”
“그렇지. 우리는 이번 전쟁에서 전폭적으로 크루마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어. 크루마는 전쟁이 끝난 후 그 대가로 크로나사 평원을 우리에게 돌려주 기로 합의했지. 크로나사를 제외하고 과거 코린트의 땅만을 집어삼킨다 하더라도 크루마는 아마도 전쟁 후에는 최대의 대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거야.”
“병력은 어느 정도나 파견하실 생각이십니까?”
“응, 원래는 파병을 하지 않고 눈치를 좀 보다가 크루마에게 승리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참전할 생각이었지. 하지만 대신들과 의논해 본 결 과 만약 이번에도 코린트가 승리한다면 크루마까지 삼켜 초거대 제국이 되어 버린 그들을 도저히 상대할 방법이 없다는 거야. 그래서 참전하려면 처 음부터 적극적으로 참전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졌지. 저쪽에서도 우리들이 보병이나 기병 따위를 파견해 주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야. 그 런 것을 이동시켰다가는 당장에 코린트가 눈치 채게 될 테니까 말이야. 자네에게는 유령 기사단 중에서 테세우스와 로메로만을 주겠다. 나머지 타이 탄들은 너무 밖에 알려져 있는 탓에 줄 수가 없어. 테세우스 40대, 로메로 23대. 그리고 경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타이탄 청기사를 사용해야 할 거 야. 카프로니아는 이미 본국에서 총독 전용으로 제작한 것이라는 걸 타국도 알고 있다고 봐야 해. 자네가 그걸 가지고 치레아에서 연습하고 있는 것 을 상대방 첩자들이 포착하지 못했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으니까 말일세.”
“그렇다고 보는 게 좋겠죠.”
“자네의 타이탄은 현재 총독 대행직을 수행하고 있는 카알 폰 카슬레이 백작에게 인계하도록 하게나. 타국에서 봤을 때 본국의 타이탄이 단 한 대라 도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발각된다면 본국은 파멸이야. 알겠나?”
“예.”
“나중에 장군들의 브리핑을 받아 보면 알겠지만 상대국의 타이탄은 대단히 강력하다. 코린트가 자랑하는 근위 타이탄은 흑기사. 흑기사 자체의 성 능도 대단하지만 가장 큰 위협은 그 수에 있지. 강력한 근위 타이탄을 30대나 제작해서 가지고 있는 나라는 코린트뿐이야. 그리고 기사들의 질적인 면에서도 대단히 우수하다. 그 점을 언제나 명심하게. 생각 같아서는 청기사를 몇 대 더 붙여 주고 싶지만 만약에 있을지도 모르는 코린트와의 충돌 을 생각한다면 청기사를 뺄 수가 없어.”
“뭐, 그렇게 안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언제 크루마로 가면 됩니까?”
“일단 경도 처리할 일이 있을 테니 5일 후로 하세. 그때 경에게 유령 기사단을 주기로 하지.”
“저…, 폐하. 혹시 로메로나 뭐 그 정도 등급의 타이탄을 한 대 얻을 수 없을까요?”
“왜 그러는가?”
“타이탄을 한 대 주기로 약속한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 줘야 하거든요. 원래는 제 카프로니아를 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걸 카슬레이 백작에게 줘야 하니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면 되겠지. 자네 것은 카슬레이에게 주고 카슬레이가 가지고 있는 미가엘을 그 친구에게 주게. 그러면 되지 않겠나? 미가엘이 좀 무겁긴 해도 출력은 로메로와 같으니까 말일세.”
“예, 폐하.”
“참, 그리고 그쪽으로 출발하기 전에 토지에르 경을 만나고 가게. 파견대 사령관이 될 자네하고 몇 가지 의논해야 할 사항이 있을 거야.”
“예, 폐하.”
다크는 황제의 집무실에서 나온 후 그녀의 수하들이나 아르티어스에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한 후 토지에르를 다시 찾았다.
“안녕하…….”
그녀를 보고는 황급히 인사를 하는 토지에르의 말을 막으며 다크는 느긋하게 말했다.
“아까도 인사했으니 인사는 생략하고 넘어가기로 하지. 나를 부른 이유는?”
“예, 전하. 그러니까 이번에 크루마로 파견되는 병력의 규모는 이미 폐하께 전해 들으신 걸로 아옵니다. 청기사 1대, 카프록시아II 40대, 로메로 23 대. 총 타이탄 64대지요. 그리고 전하를 포함하여 64명의 기사가 투입될 예정이옵니다. 문제는 이들이 본국의 기사라는 것이 절대로 밖에 알려져서 는 안 된다는 것이옵니다. 그 때문에 모든 타이탄들의 외장 도색도 다시 해야 하고, 문장도 다시 그려 넣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치레아로 가시기 전에 청기사를 반납해 주셔야 하옵니다.”
테세우스는 모든 재원이 카프록시아와 거의 동일하다. 원래가 카프록시아를 생산하고 싶었지만 타국이 알아챌 우려가 있기에 카프록시아의 엑스시 온을 그대로 쓰고, 그 겉장갑만 딴 사람이 알아볼 수 없도록 상당 부분 모양을 바꿔 놨을 뿐 실질적으로는 카프록시아와 똑같았다. 그렇기에 타이탄 생산공들은 테세우스를 ‘카프록시아]II’라고도 불렀다. 그런 의미의 연장선상에서 총독 전용의 타이탄인 카프로니아는 ‘카프록시아III’라고 불린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 치레아로 가기 전에 병기창에 가서 반납하겠다. 그다음은?”
“카프록시아의 남은 여덟 대는 나중에 보내 드리겠사옵니다. 아마도 20일쯤 걸릴 것이옵니다. 아직 생산 중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사옵니다.” “아직 생산되지 않았다는 데야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시드미안이라는 사람을 아실 것이옵니다. 그도 이 전쟁의 참전을 원하고 있사옵니다. 허락해 주실는지?”
“시드미안만 참전하겠다는 것인가?”
“아니옵니다. 외인 기사단 전체지요.”
“흠, 외인 기사단이라면 들은 적이 있지. 트루비아에서 망명해 왔다는 왕자 일행들. 하지만 왕자까지 데리고 가면 시시콜콜 잔소리가 많아서 사양하 겠어. 만약 그들이 싸우기를 원한다면 타이탄을 소유한 기사만 보내 달라고 해. 아, 참. 마법사도 여유가 있다면 보내 주든지………….”
“예, 현명하신 판단이옵니다. 그리고 크루마에 파견되는 타이탄의 색상을 정해 주십시오. 시간이 얼마 없는 관계로 단일색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청 색, 흑색, 적색 등등 뭐든지 상관은 없사옵니다. 그리고………….”
토지에르는 자신의 품속에서 몇 가지 문장이 그려진 종이를 꺼내든 후 말했다.
“타이탄에 문장이 없을 수는 없사옵니다. 여기 그려진 쌍두의 그린 드래곤은 크루마 제국의 국가 문장이고, 또 여기 그려진 백합은 크루마의 국화 (國花), 그리고 이게 크루마로부터 할당받은 기사단 문장. 자세히 보실 것 없사옵니다. 살라만더니까요.”
“살라만더? 살라만더가 뭐야?”
“살라만더는 불의 상급 정령이옵니다. 원래가 불이란 것은 파괴를 상징하는 것이니까 원래 기사단에서는 잘 쓰지 않는 문장인데, 아마 그런 이유 때 문에 그쪽에서 지정해 준 문장이겠죠. 그리고 원래는 탑승하는 기사의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 그리고 에이, 하여튼 원래는 정식적으로 타이탄에 수 많은 문장들이 붙어 있어야 하옵니다.”
“그만! 자네가 알아서 대충 그려 넣도록! 타이탄 껍데기에 그림 잘 그려 놨다고 잘 싸우는 것은 절대 아니니까 그런 자질구레한 것은 자네가 알아서 해.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자네 얼굴 보기 싫으니까, 그런 간단한 일은 누구를 시켜서 전하면 될 거 아냐?”
“상관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예법에 어긋나는 일이옵니다, 전하.”
“그럼, 더 이상 볼일이 없다면 나는 가 보겠어.”
“참, 전하.”
“왜?”
“그 아르티어스라는 분도 전쟁터에 함께 가실 겁니까? 그곳은 경치가 좋은 곳이 많으니 함께 시간을 내서 관광을 하시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 옵니다.”
“아마도…………. 그건 자네가 신경 쓸 일이 못 되니까 신경 쓰지 말게나.”
쿵하고 문을 닫고 나가는 것을 보며 토지에르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물론 다른 사람을 보내어 통보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제일 마지막 에 한 말 때문에 다른 사람을 시키지 못한 것이다. 드래곤이 자신들의 편에 서 주기만 한다면…, 결코 코린트 따위는 무서운 적이 될 수 없었다.
다크는 우선 자신에게로 할당된 방으로 간 후 뜨끈한 물에서 목욕을 하면서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 그런 후 그녀가 목욕을 하는 동안 치레아에서 긴 급 수송되어 도착해 있는 자신의 옷을, 옷과 함께 도착한 세린의 시중을 받으며 입었다.
“그동안 잘 지냈냐? 괴롭히는 녀석은 없었어?”
“아뇨, 주인님. 이곳에 비해 치레아는 아주 살기 좋은 곳이에요. 훨씬 따뜻하고……”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왜 황제는 여기서 계속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 치레아나 스바시에의 왕궁이 여기보다는 훨씬 더 호화로운데 말이야. 검을 다오.”
“예, 주인님.”
그녀는 세린이 건네는 검을 허리에 찬 후 밖으로 나왔다. 더 이상 일행들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도착했을 때 널찍
한 방에서 모두들 목욕을 했는지 뽀송한 얼굴로 새 옷을 입고 있었다. 파이어해머는 맞는 옷이 없자 대충 자신에게 맞는 어린아이 옷을 입고 있었는 데, 그게 체형에 잘 맞지 않았기에 거북한 부분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모두들 말쑥하군. 이제부터 치레아로 가기로 하지. 아버지도 함께 가세요. 거기서 한 이틀 머물고 다시 돌아올 거예요.”
“뭐? 갔다가 올 거라면 뭐 하려고 그 먼 곳에 가겠다는 거야?”
“예, 좀 할 일이 있어서요. 파시르 자네도 함께 갈 거지?”
“그러죠.”
“말 타고 갈 거냐?”
“아뇨, 마법진으로 곧장 그리로 갈 거예요.”
아들의 말을 들은 아르티어스는 히죽 미소 지으며 파이어해머에게 말했다.
“자네도 갈 거지?”
그 말에 파이어해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아래위로 휙휙 소리가 나게 흔들며 답했다.
“물론이죠, 헤헤.”
치레아로 돌아간 다크는 일단 자신의 타이탄 도로니아와의 계약을 종료시켰다. 도로니아는 처음부터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 주인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음 순번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안드로메다 때문인지 모르지만 순순히 계약 종료에 찬성했다. 그리고 다크는 자신 을 대신해서 총독 노릇을 하고 있던 카알 폰 카슬레이 백작에게 도로니아를 인계했다. 카슬레이 백작은 자신의 타이탄 밀레토레와 계약을 종료한 후 월등히 뛰어난 타이탄인 도로니아와 계약을 맺고는 엄청나게 기뻐했다. 뛰어난 연주자들이 보다 더 좋은 악기를 원하듯 기사들도 더욱 뛰어난 타이 탄을 원하기 때문이다.
“자네는 저 타이탄을 가지게. 내가 약속했던 녀석이야.”
“하, 하지만 저런 걸 받아도 될지………….”
“아니야. 내가 그냥 주겠다는 것이 아니고 자네를 제2친위 기사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거야. 이곳에 있으면서 검술도 수련하면 좋지 않나? 떠돌이 용병 기사가 되는 것보다는 이편이 훨씬 좋을 거야.”
“감사합니다, 공작 전하. 이 은혜 잊지 않고 충성을…..”
“이봐, 그 말이 좀 틀렸어. 자네가 한동안 충성을 바칠 상대는 내가 아니라 저쪽에서 헤벌쭉거리고 있는 카슬레이 백작이야. 저 녀석이 한동안 여기 총독이 될 거거든.”
“예?”
“나는 내일 이곳을 떠날 거야. 몇 가지 일이 있어서 말이지. 자네는 빨리 저 녀석과 계약을 맺은 후 우정을 쌓아 나가는 것이 좋겠지. 한 두어 달 후 에 만났을 때는 저 녀석과 좀 더 친숙해져 있기를 바라네.”
“예, 아, 알겠습니다. 그럼.”
파시르는 대충 인사를 한 후 갑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타이탄을 향해 달려갔다. 파시르도 이런 식으로 타이탄을 주는 것이 어느 정도로 파격적인 대 우인지 잘 알고 있었다. 용병 기사로 떠돌이 생활을 하기 전에 그 또한 부푼 꿈과 높은 이상을 가지고 정규 기사단에 소속되어 수련을 쌓았던 무인이 었기 때문이다. 크라레스가 아무리 요 근래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고 하더라도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기로는 총 106명의 그레듀에이트에 타이탄 97대, 그것도 정규급 이상의 출력을 가진 타이탄은 29대뿐인 약소국이었다. 물론 나중에 국력을 더 키워 나간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현 재로 봤을 때는 형편없는 전력을 소유한 국가였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규급 출력을 가진 타이탄을 자신에게 줬으니 엄청나게 감동했을 것은 분 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파시르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다. 사실상 크라레스의 전력은 치레아와 스바시에를 병합한 후 최고조를 달리고 있었다. 그 두 곳에서 포로 로 잡은 거의 180여 명이나 되는 그래듀에이트들의 세뇌 작업이 끝나가고 있었고, 노획한 타이탄들을 이용해서 50여 대의 신형 타이탄이 대량 생산 되었다. 그것도 출력 1.3인 녀석들만, 현재 크라레스의 전력은 새로 포섭된 기사를 포함한다면 기사 총원 450여 명, 그리고 타이탄 178대였다. 숨겨 진 전력인 유령 기사단이 차지한 정규급 타이탄이 80대인 것을 안다면 그 누구도 크라레스가 약소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